•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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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황진이(黃眞伊) <제22話>

기사입력 2017-05-10 09:36     최종수정 2017-05-10 10:57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곱게 갈아입은 묘향산은 단아한 한복으로 차려입은 미인도(美人圖)같다. 묘향산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향나무와 측백나무가 많아 싱그러운 향기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어 묘향산이라 했다는 산명(山名)의 유례다.

향기가 아침 안개처럼 피어나는 묘향산으로 가는 진이는 마음이 들떠 있다. 보현사에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금강산 등 팔도유람을 떠나기 전에 이곳에 들려 어머니를 모셔놓고 떠났다. 어느새 5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다.

묘향산엔 비운의 황태자 양녕대군의 얘기도 숨겨져 있다. 양녕은 태종의 장남이다. 왕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성장하여 일찌감치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때부터 말썽을 일으켰다. 섹스 스캔들이다.

태종에게 무한 신뢰를 받아 다음 보위가 보장되었으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어 셋째 충녕(후에 세종)에게로 왕위가 넘어가는 비극의 씨앗이 탄생하였다. 세종하면 훈민정음이 우리에게 상기된다. 양녕이 임금이 되고 충녕이 대군으로 끝이 났다면 오늘날 우리가 세계적인 한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양녕은 왕세자 자리에서 내려와 주류 천하 중 묘향산에 까지 왔다. 양녕은 동생 세종의 윤허를 얻어 송도를 거쳐 묘향산 유람에 나섰다. 여기서 기생 정향(丁香)을 만나게 된다. 유난히 형제간 우의가 돈독한 세종이 주색(酒色)에 익숙한 형을 배려한 것이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으라 했다던가? 양녕이 정향을 떼어놓고 떠날 때 그녀 치마폭에 쓴 칠언율시(七言律詩)다. ‘한 번의 이별로 음성 용모 듣고 보지 못하리니/ 초대(楚臺) 어느 곳에서 좋은 때를 찾을고/ 곱게 단장한 얼굴 누가 보리오/ 수심에 잠긴 붉은 낯을 거울만이 알리라./ 밤 달이 수 놓은 베게 엿보는 것도 미운데/ 새벽바람 무슨 뜻으로 비단 휘장을 걷는고// 뜰 앞에 다행히도 정향(丁香)나무 서 있는데/ 어찌 춘정(春情)으로 굳이 꺾지 않으리오// 이별하는 길엔 향기로운 구름 흩어지고/ 헤어진 정자엔 조각달이 걸렸어라/ 가련타 잠 못 이뤄 뒤척이는 밤에 뉘 다시 그대 수심 위로해 주리...’ “혹 서방님께서 지금 소첩이 노래한 이 시를 알고 계신지요?” 진이가 설마 이 시를 알고 있으랴는 음성으로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이나 뜸을 들인 벽계수가 “글쎄다! 처음 들어보는 시인데....”라고 미안하고 계면쩍어 하는 목소리다. “네 서방님 그러셨군요? 이 곳 송도 기방계에선 널리 알려진 노래예요! 양녕대군께서 정향이란 기생과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기 아쉬워 쓰신 칠언율시가 아닌지요?” 진이의 음성에 자신이 붙었다.

보현사로 가는 길이 평탄치 않다. 길마다 낙엽이 떨어져 말발에 치이고 밟혔다. 향나무와 측백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싱그러운 향기는 어젯밤에 벽계수한테 시달린 육신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서방님은 소첩의 어디가 좋으셔서 이곳까지 오셨나요?” 벽계수는 진이의 물음에 아무 대답이 없다. 말위에서도 능숙하게 거문고를 타며 노래까지 하는 모습에 그만 기가 죽은 듯해 보이기까지 하다.

진이 말이 끝난 지 한참 만에 “나는 지금 같은 상황이 생길 것을 예상하지 못했소이다.”라고 말 엉덩이에 채찍을 가해 말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제 그만 떠들고 갈 길이나 빨리 가자는 태도다. 말이 달리자 자연스럽게 진이는 거문고를 메고 벽계수 등에 매미처럼 착 붙었다.

산사의 저녁은 일찍 왔다. 특히 늦가을 끝자락의 해는 오후가 되자 금방 저물기 시작하였다. 진이가 4~5년 전에 어머니를 모셔 주지스님과는 안면이 있는 사이다. “주지스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아 예 진이 보살님! 진이 보살님도 그 동안 별일 없으셨지요?” 말은 그렇게 예사롭지 않게 인사말에 대구하면서도 옆에 있는 벽계수에게 시선이 꽂혔다.

보기 드문 헌헌장부에 옥골선풍의 사내다. “주지스님 오늘도 하룻밤 묵고 가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그렇게 해 드려야지요... 진이 보살님은 우리 절에 특별한 분이시니 언제 오셔도 환영이지요! 4~5년에 쓰셨던 방에 유숙하시지요...” 말은 담담하게 하면서도 진이와 벽계수를 번갈아 훑어보았다.

예사롭지 않은 관계로 보는 눈치다. “아참! 진이 보살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사찰에선 잠자리에선 남녀유별이예요!” 주지스님의 남녀유별이란 말에 힘이 들어갔다. “예 주지스님 이 보살진이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저녁 예불에 참석하겠습니다.” 진이는 서둘러 주지스님의 걱정스런 시선을 잠재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내들이 자신을 옆에 두고 밤을 그냥 보내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불타는 사내의 욕정을 채워주어야 하는 것이 여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진이가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주지스님은 사미승(沙彌僧)편에 저녁을 보냈다.

산채나물과 우엉무침에 감자가 들어있는 보리밥이다. 하지만 점심도 거른 저녁상은 꿀맛이다. 저녁상이 끝나기가 무섭게 벽계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주지스님 방으로 가기 전에 번개방사를 치르자는 눈치다.

사랑을 위해 한양에서 송도까지 온 사대부의 표상인 벽계수가 진이를 찾은 것은 수준 높은 시의 세계가 아닌 향기 나는 육체에 끌렸으리라는 생각에 이르자 진이는 사내의 뜨거운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저녁상을 윗목으로 밀어놓고 뜨거운 살을 떼어 놓았을 때는 보름달이 산사의 밤을 대낮같이 밝히고 있었다. “빨리 주지스님 방으로 가세요!” 진이가 벽계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등을 떠밀었다. 벽계수는 욕정을 마음껏 못 채운 표정으로 진이를 다시 한 번 포옹하고 긴 혀를 목구멍까지 넣었다 빼고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방문이 쾅하고 닫혔다. 나가고 싶지 않은데 마지못해 나간다는 행동이다. 문밖엔 저녁상을 들고 왔던 사미승이 합장을 하고 서 있다. 숨차게 뜨거웠던 방안 풍경을 사미승은 가슴을 조이며 상상했으리라... 어느새 밤은 깊어 접동새 울음소리가 진이의 가슴에 와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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