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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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황진이(黃眞伊) <제32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7-07-19 09:36     최종수정 2017-07-19 09:5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화담 스승의 오늘 목욕을 하였다. 1546년(명종원년) 7월7일이다. 허엽에 업혀가는 화담의 모습을 진이는 뒤따라가며 살폈다. 애벌레가 성충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가고 남은 껍데기(번데기) 같이 보였다. 허엽의 뒤를 따라가며 진이는 스승의 위기지학(爲己之學:자기 자신의 수양을 위한 학문)에 대한 가르침을 떠올렸다.

그는 움직임 보다 멈춤을 강조하고 마음의 정(靜)을 주로 가르쳤다. 물론 스승은 멈춰야 할 경우 세심한 상황판단을 주문했으며 동(動)을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세상의 인연을 끊고 면벽으로 생을 보내라는 것은 아니며 세상과 인연이 열리면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마음을 먼저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정암(靜庵:조광조 호)이 기묘년에 큰 화를 당한 것은 너무 크게 너무 멀리 움직이려 했기 때문이라며 더 나가고 싶을 때는 참을 수 있는 지혜를 정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이라고 따끔한 충고다.

진이는 좀더 일찍 화담을 찾았을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지금 허엽의 등에 업혀가는 화담의 모습에서 세상으로 나가 천하의 도(道)를 바로 잡고 싶어 했던 그 누구보다도 배우고 익히기를 즐겼던 성인(孔子)의 모습을 느꼈다.

아마도 허엽도 자신의 등에 업혀있는 화담을 진이의 생각과 같은 마음으로 검불 같은 스승을 생각했으리라... ‘허유(許由·BC2323~BC2244, 요순시대 현인)는 억지로 요(堯)임금의 요청을 사양한 게 아니요/ 성인의 조정 움직일 재주 없음을 스스로 안 것이지/ 태평시대에 발 들여놓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니/ 홀로 더나가 자유로이 거닐며 사는 게 좋을 듯하네.’ 서경덕의 《또한 수 지어 올림》을 회상해 낸 듯하다.

진이는 허엽을 동생처럼 생각하다가도 문득문득 질탕하게 살을 섞었던 이생을 떠올리곤 하였다. 특히 하루 종일 20여명에 이르는 문하생들의 밥 짓고 빨래하는 일에 지쳐 파김치가 되어 누웠을 때 번개처럼 금강산과 지리산 등을 유람하며 이생과의 스스럼없었던 장면들이 잊히지 않고 천장에 방금 있었던 일같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스승은 허엽과 진이의 모습을 오누이 같아 보기 좋다고 칭찬까지 아끼지 않았다. 부엌에서 밥 짓고 설거지를 할 때도 허엽은 동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도와주었으며 빨래할 때도 바구니를 들어주는 등 알뜰살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손이 우연히 부딪칠 때면 싱긋 웃으며 정겨운 교감이 짜릿하게 오고갔다.

두 남녀는 서로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자칫 더 다가갔다가 속마음을 들킬까 겁이나 한치의 앞으로도 더 나가려 하지 않는다. 천재일우로 만들어진 오늘의 소중한 기회를 한여름의 번개처럼 찰나의 순간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혀를 깨무는 자제다. 스승의 불호령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눈만 뜨면 아침안개처럼 피어나는 행복을 가능한 길게 누리고 싶은 것이다.

화담은 목욕을 하고 와서 진이가 백옥같이 깨끗하게 빨아놓은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누웠다.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스승님이 무겁지 않으셨어요?” 진이가 허엽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검불 같았소이다.” 허엽의 목 메인 목소리다. 허엽은 아마 목욕을 하는 화담을 보고 예감을 했으리라... 지상에 잠시 내려왔던 선인(仙人)이 이제 소임을 다하고 선계(仙界)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것으로 짐작한 듯한 표정이다.

진이는 허엽의 진지한 표정에서 무지개 같은 것이 떠오름을 느꼈다. ‘나이 들어 그저 조용한 것이 좋아/ 모든 일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되었네./ 돌이켜 보건데 별 방책이 없는 지라./ 고향에 돌아오는 수밖에요/ 솔바람에 허리띠 솔솔 푸리고/ 산 달은 거문고 타는 내 모습 비추네./ 그대 궁통이 이치를 물으시는가./ 갯가에서 들리는 어부노래 그 아니 흥겨운가.’ 왕유(王維:699~750)의 《장소부(張少府)에게》를 회상한 듯하다.

진이도 문득 비몽사몽에 화담이 학으로 변해 금강송 위에 앉았다 훌쩍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곤 하였다. 더욱이 꽃 못에 가서 목욕을 하고 깨끗이 빨아 놓은 옷을 갈아입고 누운 모습을 보자 그런 마음이 들었다.

우연이겠으나 허엽과 진이의 마음에 똑같이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여자는 남자를 ‘너는 내 사내야’ 라고 마음먹었고 남자는 ‘너는 내 여자야’하는 속내가 일어나고 있었다.

더욱이 화담이 병석에 눕자 곁에서 같이 수발을 들자 부쩍 더 가까워졌다. 바늘 가는데 실 가듯 그들은 부엌에서부터 빨래터에 가는 길까지 잠자리에 들기 전엔 떨어지는 경우가 없을 정도다.

박지화 등 여타 문하생들은 서책을 놓고 여가를 즐길 때는 예외 없이 진이와 허엽얘기다. “쟤네들 부부 같아! 벌써 무슨 일 있었겠지?”라고 수군대다가도 진이가 둥굴레차를 가지고 가면 시치미를 떼고 격물치지 얘기를 했었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눈치 빠른 진이가 그런 분위기를 모를리 없다.

하지만 진이는 그런 정도의 분위기에 동요를 느낄 그녀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사내들의 끈적끈적한 시선이 궁둥이와 불룩 나온 앞가슴에 와 있음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허엽도 같은 마음일 터다. 화담의 병수발을 핑계로 천하의 재색인 진이와 지근거리에서 호흡을 같이하다 어쩌다 손발이 부딪히면 아픔은 잊고 가슴이 뛰는 흥분의 기분에 들떠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녀 간의 오묘한 마음이 오갔을 것이다. 이미 그들은 육체는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한 곳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스승의 병 수발을 신명나게 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부부 이상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듯해 보였다.

오후가 되자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아침 꽃 못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던 문하생들이 빨래를 걷어가지고 왔다. 진이와 허엽은 방문턱에 나란히 앉아 그들을 맞았다. 하늘에선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치자 진이와 허엽은 한 몸같이 동시에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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