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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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김금원(金錦園) <제9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1-10 09:36     최종수정 2018-01-10 10:03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오동나무 잎이 꽃처럼 떨어지는 오후다. 빨래 줄엔 제비가족들이 강남 갈 채비에 분주하다. 하늘은 전형적 가을 날씨로 구름 한 점 없는 청자 빛 하늘이다. 그런데 금원의 마음이 전례 없이 무겁다. 죽서의 건강이 심상치 않아서다. 워낙 병약한 몸이지만 무더운 여름을 지내면서 더 쇠약해졌다.

 

오늘이 삼호정 모임이다. 죽서가 올지도 의문이다. 금원은 집안 분위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오늘은 시보다 생활얘기에 무게를 둘 예정이다. 시사운영은 삼호정 안주인인 금원의 책임이자 뜻대로다. 그래서 오늘은 부부생활을 주제로 삼았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시사가 시작되었다.

무더운 여름엔 만나지 않아 어느새 한달반 만에 만나는 그리운 얼굴들이다. “무더위를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이 운초는 오늘을 학수고대 했어요!” 개회사는 맏언니 운초가 맡아서 하였다. “금원 아우님은 얼굴이 지난번 보다 좋아 보여요? 금슬이 좋은 것 같아요... 뭐니 뭐니 해도 부부는 금슬이 뜨거워야 해요. 세상살이 재미가 어디 있겠어요?” 금원을 바라보며 운초가 무지개 빛깔 같은 은근한 미소를 입가에 띠며 말했다.

금원과 미리 각본을 짠 진행 스케줄이다. 오늘은 시사얘기보다 남녀관계의 얘기인 사랑을 주제로 예술의 꽃을 피워보려는 것이다. “예 운초언니가 잘 보셨네요! 저는 요즘 금슬이 아주 좋아요. 김덕희(金德喜:1800~1853) 대감께서 벼슬길에서 나와 풍류를 즐기면서 저에게도 각별한 사랑을 주시네요! 여자는 역시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인 것 같아요...” 말하는 금원의 얼굴이 잘 영근 석류 알 같이 붉게 물들었다. “우리가 길가의 꽃인 노류장화로만은 살수 없지요. 우리도 인간인데 오다가다 마음에 드는 꽃처럼 꺾어갈 수 있는 삶으로 인생을 끝낼 수는 없지 않나요?” 단호한 금원의 포효(咆哮)다.

금원은 금강산 유람을 하고 돌아온 후 새사람이 되었다. 남자로 못 태어났음을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가 너무나 왜소하고 무능함도 동시에 느꼈다.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일은 너무나 많은데 정작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것이 조선사회의 서녀 위치다. ‘치장한 사람과 말 모두 영롱하고/ 누각 앞에 줄지어 서니 대열 온통 붉다/ 세 번 울리는 북소리에 나는 듯 달려가니/ 향기로운 먼지 속에 꽃바람이 분다’ 《무제》(無題)다.

사실 금원은 14살의 나이에 남장을 하고 금강산 유람을 떠난 당차고 기개가 넘치는 소녀다. 철이 일찍 들었다고는 하지만 가녀린 소녀로 감히 쉽게 도전할 목표는 아니다. 그러나 금원은 금강산 유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금은 안락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물론 자신이 희망했던 사회적 위치에서는 아니다.

김이양의 소실자리가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영혼의 자유를 위해 한동안 김앵(金鶯)이란 이름의 기녀 생활을 하면서 이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사대부들과 교류도 해봤다. 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최대한의 자유인으로 삶을 영위하려 했으나 뜻과 생활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금원은 오늘날의 생활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녀의 영혼은 남성들이 주도하는 정약용의 중심인 죽란시사와 이덕무·박제가·홍대용 등의 백탐시사와 춤추고 노래하며 지란지교(芝蘭之交)의 우정을 나누고 싶었을 게다.

그런데 그것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차선책으로 김이양의 소실을 택했을 것이다. 그녀의 주위엔 영특한 시우(時友)들이 있다. 운초·경산·죽서, 그리고 동생 경춘이 그들이다. 그들은 시우 이전의 삶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현재의 그들은 모두 소실의 위치에 있다. 동병상련의 위치에서 상처 난 가슴을 보듬어 주는 마음을 치유해 주는 정신과의사 역할까지도 하는 정신적 반쪽이기도 하다.

그들이 오늘 한달반 만에 만났다. 삼호정이 결성된 이후 처음으로 긴 공백 끝에 만나는 것이다. ‘죽서의 얼굴이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도 더 안 좋아 보이네?“ 금원의 음성에 어느새 촉촉이 물기가 묻었다.

금원과 죽서는 친자매 같이 따뜻하고 가까운 사이다. 친동생 경춘이 질투를 할 정도로 알뜰한 관계다. 경춘이 시샘을 하여 ”언니는 누구 언니야? 죽서 언니야? 이 경춘 언니야?“ 라고 말다툼을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편 원주에선 원주댁과 김명원의 사랑놀이가 뜨겁고 뜨겁다. 늦둥이 가상임신으로 뜨거웠던 두 사람 관계가 이젠 떨어져서는 못 사는 연리지(連理枝) 관계가 되었다. 속궁합이 척척 맞아 밤이면 밤마다 날 새는 줄 모른다. 김명원은 그동안 원주댁을 소실이란 생각에 머물러 사실상 관심밖에 있었다.

금원과 경춘이 신동에 가까운 영특함을 보였어도 계집아이라 무릎 위에 앉혔을 때의 애틋함에 빠졌을 뿐 원주댁에 대해선 늘 뜨뜻미지근했었는데 가상임신 소동 이후 마음이 변했다.

원주댁의 진정성에 마음이 흔들렸다. 3~4일 더 머물러 있다 가려던 생각이 어느새 열흘이 훌쩍 지나갔다. “대감 어른, 언제 올라가시려고 그래요?” 원주댁이 이젠 김명원이 조강지처가 있는 한양으로 올라가라고 재촉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내가 집안에 오래 있으면 마음이 쓰여서다. 김명원이 내려와도 바람처럼 왔다가 무지개 같이 사라졌는데 이번엔 벌써 열흘이 훌쩍 지났다.

원주의 가을은 한양과 달라 흡사 초겨울 같은 가을이다. 밤마다 뜨거운 살을 섞을 수 있으니 더 좋을 수 없으나 사내가 떠난 뒤가 겁이 났다. 주책없는 몸뚱이가 턱도 없는 욕심을 부릴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아침엔 그래도 밤새 시달린 몸으로 원주댁은 술국을 잊지 않고 끓였다.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해가 중천에 떴어요...” 원주댁이 김명원의 이불을 휙 걷어치우며 소리쳤다. 오늘은 꼭 한양으로 쫓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설움부터 복받쳐 올라왔다. 그게 소실의 마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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