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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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김부용(金芙蓉) <제7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3-21 09:36     최종수정 2018-03-21 10:3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성천에서 평양은 하루해 거리가 아니다. 부용과 유관준은 꼬박 이틀 걸려 평양에 도착했다. 사또는 말을 탔으나 부용은 판교(板橋·기생이 타는 가마)를 타고 와 더욱 시간이 걸렸다. 초겨울 날씨는 제법 쌀쌀하다. 유관준이 서두르는 바람에 부용이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였다.

자기를 알아준다는 유사또의 말에 감동되어 속곳조차 제대로 입지 못하고 서둘러 따라나섰다. 부용이 감기 기운이 돌기 시작하였다. 기침까지 간간히 터져 나왔다. 성천과 평양 사이는 거리가 꽤있는데 속옷을 단단히 챙겨 입지 않는 것이 화근이 되었다.

“사부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유사또는 큰 절로 연천에게 인사를 올렸다. “허... 참... 늦기는, 이렇게 먼 길을 정사에 바쁜 목민관이 직접 찾아오다니... 서찰이나 보내면 됐지...” 연천은 온화한 웃음으로 제자 유사또를 맞았다. “참, 성천의 목민관이 자주 바뀐다는데 자네는 오래 좀 있게나... 그래 자네가 가보니 목민관이 자주 바뀌는 이유가 어디 있든가?” “예 사부님 아직 정무를 모두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참! 사부님, 소생에게 시가 아름답고 멋스럽다는 시 《부용당청우시》(芙蓉堂聽雨詩)의 작가 부용을 데리고 왔습니다. 지금 밖에 와 있습니다.” 부용이 밖에 와 있다는 말을 들은 연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문을 박차고 나갈 태세다. “어서 들라하라!” “제체례를 해야 되지 않을까요. 사부님?” “여기는 동헌도 선화당도 아니고 내 처소니라... 어서 날씨도 차가운데 안으로 들라하라!” 연천이 성큼성큼 문가로 걸어가 문을 열고 밖에 서 있는 부용을 방안으로 끌어들였다. “내 천재 여류시인을 직접 만나게 될 줄이야... 어서 이리 앉으시게!” 연천은 부용에게 아랫목을 내어주었다. “아니옵니다. 대감어른 천첩(賤妾)은 윗목도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아니올시다. 지금부터는 시기(詩妓) 부용이 아닌 여류시인 부용이니 내가 하자는 대로 하시오! 아랫목에 앉아 몸을 녹인 다음 그 유명한 《부용당청우시》를 직접 낭송해주면 내 더 없는 행복이라 생각하겠소이다.” 연천은 부용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었다.

부용이 그때 불과 19살이고 연천은 77살이다. 무려 58년이란 세월의 강이 놓여있는 남과 녀의 관계다. 옆에 있는 유관준은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었다. 눈치 빠른 부용은 벽에 세워져 있던 거문고를 켜며 자작시 《부용당청우시》를 낭송하기 시작하였다.

천상의 목소리가 비 오듯 켜지는 거문고 소리와 어울려 방안은 금방 선경(仙境)의 세계로 바뀌었다. 연천은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자 이제 부용시인이 몸도 녹았을 터이니 술 한 잔이 빠질 수 없지! 자자 내가 즐겨 마시는 소곡주를 마십시다. 소곡주는 백제 의자왕이 즐겨 마셨다하여 유명해진 술인데 구하기 쉽지 않은 술이나 오늘 같은 즐거운 날에 그까짓 소곡주가 뭐 대단한가...” 연천은 좀처럼 웃음이 없는 사대부인데 지금은 웃음이 만면에 가득하다.

옆에서 목석같이 분위기만 지켜보던 유관준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사부님! 실은 부용이 이미 연천 사부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소생이 연당에서 연꽃을 감상하며 부용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우연찮게 사부님이 《부용당청우시》에 대해 말씀해준 얘기를 했더니 그때 이미 부용이 사부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부님이 평양감사 부임을 축하하는 뜻에서 부용을 선물로 데려왔습니다.” 선물이란 말에 연천은 그윽한 표정을 짓는 동시에 야릇한 어두운 그림자가 번개처럼 지나갔다. “유 목민관이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마운데 선물이라니... 사람을, 더욱이 천하의 여류시인 부용을...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지...” 말끝을 흐린 연천이 부용의 표정을 살폈다.

이때다. 거문고 음률에 맞춰 《부용당청우시》의 낭송을 마친 부용이 입을 열었다. “천첩이 유 목민관에 애걸하여 따라왔습니다. 대감 나으리 마음에 드시면 지금부터라도 손발이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감격하여 목이 멘 목소리다. ‘갈대밭에 바람 일어나니 이슬이 반짝이네/ 넓은 들판은 끝이 없어 시름겹게 하네/ 흘러가는 물처럼 빠른 세월을 어찌 견디랴/ 봄꽃 가을 낙엽에 이 몸만 가여워라’ 《시름을 풀다》다.

열 살까지는 무남독녀로 금지옥엽처럼 컸으나 갑자기 부모를 잃고 기적에 올랐다. 천애고아로서 생계가 막막한 부용은 기생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인생인지 따져 볼 겨를도 없이 발을 들여 놨다. 벌써 몇 년째다. 꽃다운 청춘을 오다가다 객고를 푸는 사내들의 품에서 아양을 떨며 보냈다.

이제 날개를 접고 둥지를 틀고 싶은 때다. 그때 마침 유 목민관이 연천을 얘기하였다. 날개를 접을 우연이자 절호의 기회다. 노 시인에겐 젊음이 필요했고 세상시름에 지친 천재여류시인은 큰 그늘에서 쉼이 절실할 때다. ‘가랑비에 엉킨 안개가 저녁 들며 개이자/ 참새들은 좋아라고 처마 끝에서 울어대네/ 화창한 봄 날씨에 초목들은 자라나고/ 쇄락한 기운이 강산을 새로 씻었네/ 바느질 할 생각도 없이 마음이 산란해서/ 여기 저기 손가는 대로 책장을 뒤적이네/ 시름은 나날이 게으름과 더불어 쌓이니/ 꽃바람이 성안에 가득 불어오면 어찌 할거나/ 《이른 봄》이다. (시옮김 허경진)

그렇다. 백프로 만족의 삶은 어디에도 없다. 부용도 이놈저놈의 품에서 마음에도 없는 아양을 떠는 기생의 삶을 접었으나 칠순을 넘어 팔순이 가까운 연천이 마음에 꽉 차지는 않을 것이다. 감수성이 뛰어난 시인의 감성에 노인내가 나는 연천이 마음에 흡족하지는 않았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붕정만리(鵬程萬里)를 향해 끝없이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나 날개가 짧다. 세상 시름을 접고 시인의 삶만 영위하고 싶은 것이다. 성천에서 고단한 기생노릇이 너무 고달팠다.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으려는 찰나에 유사또가 나타났다.

유사또 역시 색이나 밝히는 목민관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부용의 생각을 유사또는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틀 밤을 꼬박 유혹의 몸짓을 해 봤으나 끝내 부용의 이불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부용은 사내구실을 못하는 고자로 생각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생기리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던 현실이다. 부용은 연천을 일찍 여윈 아버지 겸 기둥서방으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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