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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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김부용(金芙蓉) <제11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4-18 09:36     최종수정 2018-04-18 09:52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이틀이란 시간이 남녀 간의 방사 순간처럼 지나갔다. 정무 마무리와 짐을 챙기느라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운우지락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동창이 밝았다. “부용은 성천 네 집에 잠시 가 있거라! 내 한양에 올라가 네 거처부터 마련할 것이니라...” 부용에게 기다려 줄 것을 신신 당부하고 연천은 뻐꾸기 비둘기 둥지 떠나가듯 떠나갔다.

헛헛하고 상쾌하다. 부용이 호의호식이 짐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노류장화가 어느 날 갑자기 지체 높은 사대부 부실이 되어 둥지 안의 새가 되었다. 노류장화가 비록 신분은 낮고 사회적으로 대접 받는 신분은 아니지만 바람 부는 대로 다닐 수 있는 신세다.

하지만 사대부 부실의 신분은 어항속의 금붕어요 조롱(鳥籠)속의 새 신세다. 언제 어떻게 연천의 부실로 복귀 할지는 모르나 지금 부용은 자유의 몸이다. “어머니 부용이 왔어요!” 안으로 들어선 부용이 어머니부터 불렀다. “어- 네가 벌써 어쩐 일이냐? 기별도 없이 대감어른은 어쩌고 너 혼자 왔느냐?” “예 어머니 연천대감은 엊그제 한양으로 올라가시었어요.” “그랬구나. 그렇게 빨리 올라가시었어? 그래 너는 이제 끈 떨어진 연이 되었으니 어찌 하려느냐? 먹고 살 궁리는 되었느냐?” “어머니는 별 걱정을 다 하세요... 연천대감이 호조판서로 영전되셔 올라가셨어요. 저도 곧 한양으로 올라가게 될 거예요. 어머니도 제가 한양에 가서 자리가 잡히면 모셔갈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설매는 부용의 말에 심드렁한 표정이다.

달콤한 사내 말을 철석같이 믿는 부용이 한심하다는 눈치다. 부용은 긴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현찰 외엔 믿으려 하지 않는 설매에게 구구한 설명을 한들 별 효과가 없어서다. 노복(奴僕·사내종)이 나귀에 싣고 온 짐을 풀어 평양에서 가져 온 설매 선물을 건넸다. “어머니 이것은 나이 많은 대감 사위가 장모에게 보낸 선물이에요... 중국 사신한테 선물로 받은 것인데 어머니에게 드리는 것이래요.” 원앙 한 쌍이 수놓아진 비단 한 필이다.

설매는 그때서야 눈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흡족하다는 표정이다. ‘조양에서 한번 헤어진 뒤로 산천이 가로막혀 / 주렴 안이 침침한 채로 낮에도 걷지를 않았네. / 달은 생각도 없이 가볍게 문으로 들어오고 / 바람은 어찌나 당돌한지 또한 자리에 불어오네. / 걱정이 생기면 때도 없이 술을 따라 마시고 / 흥이 일어나면 시를 짓지만 끝내지 못한 것이 많아라. / 다정한 이 몸이라 도리어 병이 되었으니 / 봉래산 가자던 옛날의 약속이 구름처럼 아득하기만 해라.’ 《연천 상공께》다.

평양에서 헤어져 고향 성천에 와 있으니 연천(부군) 생각이 새록새록 할게다. 추우면 따뜻하게 해주고 더우면 시원하게 해주었던 할아버지 같았던 연천이 훌쩍 한양으로 떠난 자리는 봉황이 날아간 둥지 같았으리라... 하지만 재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소꿉동무 문칠이가 툭하면 찾아와 말동무를 해주어서다.

문칠이는 장가가서 돌 지난 딸까지 있어 부용은 부럽기 그지없다. 문칠이가 다녀간 밤이면 꿈에 나타나 사내구실을 하고 가 부용은 즐겁기도 하며 연천에겐 죄스럽기도 하다. 연천이 한양으로 영전해 가기 전에도 문칠이는 이따금 비몽사몽에 나타나 자기 여자인 냥 갖가지 체위로 욕심을 채우고 갔다. 부용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즐기는 태도다.

연천은 삼일이 멀다하고 서찰을 보내왔다. 부용은 서찰을 읽는 재미로 날을 새며 세월을 보냈다. 한두 달 세월이 쌓이자 서찰로는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동안 알뜰하게 보살피며 금지옥엽 사랑해 준 연천으로 부용은 어느새 사내를 알게 되었다. 게다가 소꿉동무 문칠이가 어엿한 장정이 되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문칠이는 떡대도 좋다. 이젠 장가들어 아이 아버지가 되어 돌 지난 딸을 안고 와 부용이 너를 쏙 빼 닮아 예쁘다며 너스레를 떨 때는 연천의 부실이 된 것이 은근히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부용은 “너 네 딸이 나 닮았다는 소문이 유 목민관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말조심 해야 돼” 부용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연천이 유 목민관에게 부탁하여 소꿉동무 문칠이를 부용이 신경 쓸까 장가보내고 전답까지 마련해 주었는데 불륜설이 나돌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부용은 그런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한편으론 안타깝고 목마르다.

자신을 닮았다는 계집아이를 안고 와서 너스레를 떨 때면 부아가 나다가도 차라리 문칠이 아내가 되어 농사짓고 오순도순 사는 편이 행복했을 것이란 생각에까지 이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부용은 허벅지를 꼬집으며 현실로 돌아왔다.

덧없는 세월은 또 흘렀다. 화려한 여름 꽃들이 지고 가을꽃들이 정원에 만발했다. 부용은 자신의 이름과 같은 연분홍 부용을 특히 좋아하였다. 정원 한가운데는 부용이 차지했고 그 주위로 분꽃·방울꽃·하얀 울릉국화 등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연천도 부용과 화촉동방을 치룬 후론 연분홍 부용을 끔찍이 사랑하였다. ‘정자 이름이 사절이라니 / 그 또한 의심스러워라. / 사절은 옳지 않고 / 오절이라야 마땅하리. / 산·수 모두 좋은데다 / 풍·월까지 어울린 곳 / 게다가 미인까지 올라 와 있으니 / 세상에 뛰어난 다섯이어라. 《사절정에 올라》다. (시옮김 허경진)

부용은 재색(才色)에 자신을 가진 듯하다. 《사절정에 올라》 시에 산·수와 풍·월에 자신의 미모를 넣어 오절이 마땅하다고 읊은 것을 보면 당당한 자존이다. 사대부 집 무남독녀로 태어나 10살에 부모를 잃고 천애고아 되어 동기(童妓)로 16살부터 기계(妓界)에 본격적으로 데뷔하여 성천을 넘어 한양에까지 이름을 떨친 명기(名妓)가 되기까지 세파에 시달리며 자존을 키웠다.

더욱이 연천의 부실이 되어 부귀와 영화를 분에 넘치게 누린 후 고향에 내려와 다시 연천의 부름을 기다리며 하루를 여삼추로 보내고 있다. 부용은 요즘 새삼스럽게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란 얘기에 민감하다. 부용이란 이름은 한량세계에 모르는 이가 없다.

성천에 부임하는 목민관은 의례 부용의 수청을 당연시 하는 상태다. 그 같은 사내들의 세상살이를 잘 아는 부용은 연천에게 부탁하여 기적(妓籍)에서 빠져 지금은 연천의 부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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