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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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김부용(金芙蓉) <제12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4-25 09:36     최종수정 2018-04-25 12:44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하루를 여삼추로 보낸 세월 끝에 연천의 ‘상경하라’는 서찰을 받았다. 부용은 봉황의 날개를 얻은 듯 기뻤다. 하지만 겁도 났다. 성천에선 자신이 재색이 뛰어났다고 하지만 한양에 가서는 그러하리란 보장이 없어서다. 한양엔 팔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미인들이 장악원(掌樂院)에 즐비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제 약관을 살짝 벗어난 난숙한 여인에게 팔십 줄에 접어든 노인의 정력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다. 그러나 부용은 어느새 연천의 호의호식의 포로가 되었다. 연천도 나날이 달라지는 체력에 풋풋한 부용의 아름다움에 밤을 새고 나면 회춘(回春)된 기분이었다. 불로장생은 누구나 희망하는 꿈이다. 중국의 진시황이 아방궁을 짓고 이팔청춘 이전의 소녀들을 가까이 한 것도 회춘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연천이라고 무병장수를 꿈꾸지 않을 리 없다. 노래와 춤, 그리고 시와 미모에다 나이까지 50이나 어렸으니 부용은 연천에겐 하늘이 내려준 선녀로 불로장생에 금상첨화 적 존재였을 것이다. 연천은 바쁜 정무 중에도 틈을 내 부용이 상경하여 안락하게 거처할 곳을 마련한다. 경치 좋은 남산 녹청정이다.

한편 부용은 연천을 한양으로 떠나보내고 고향 성천으로 와 수양모 설매의 알뜰한 보살핌 속에 소꿉동무 문칠이와 이따금 어릴 때 추억을 되살리곤 했으나 공허한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다. 부용은 이미 몸은 떨어져 있어도 연천과 일심동체가 되어 있었다.

부용은 오매불망 연천을 사모하는 마음뿐이다. 소꿉동무 문칠이가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하며 위로 반 농담 반의 말 “너 이제라도 소꿉장난이 아닌 진짜 내 각시가 되어라.”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평양 감영에서 예방 관속이 찾아왔다. 한양에서 온 손님이 만나자는 소식이다. 부용은 겁이 덜컥 났다. 지금도 기생인 줄 수청을 들라는 통고인 줄 알고 지례 겁을 먹었다. “나는 지금은 기생이 아니고 연천 소실이니라...” 부용이 서슬이 퍼렇게 실린 음성으로 예방관속을 나무랬다. “한양에서 오신 손님도 네가 연천의 소실인줄 알고 너를 보자고 하는 것 같더라.” 예방관속은 예전의 말투가 아니다.

부용은 한양에서 온 손님이란 말에 행여 연천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감영에서 보낸 나귀를 타고 평양으로 떠났다. 가마가 아닌 나귀를 타고 떠난 길은 땅거미가 지고 하늘엔 별이 총총할 때에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 감사가 툇마루에까지 마중을 나왔다. “먼 길에 부용 명기 수고가 많으셨네! 강참판(강순황)께서 평양에 온 김에 부용 명기를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하여 내 어려운 길을 부탁하였느니라. 양해하여 주시게...” 연천의 소실이 된 이후 관속들의 말투에서부터 품세가 확 바뀌었다. “아닙니다. 천첩 감영 나으리께서 부르시면 언제라도 올 수 있으나 연천어른 체면이 있어 주저하였사옵니다.” 부용다운 깍듯한 예의다.

지체 높은 선비는 부용을 재색을 겸한 여류시인으로 예우하였다. “내 일찍이 부용 시인의 절창 《부용당 청우시》에 매료된 사내요. 이곳까지 왔다 부용 시인을 못 보고가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아 감사 어른께 부탁을 했소이다.” 강참판은 옥골선풍에 헌헌장부다. 얼어붙었던 부용의 마음도 봄 눈 녹듯 사라지고 가슴 깊이 숨겨놨던 여심도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부용은 경계의 마음을 거두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수창(酬唱)에 끼어들었다. 주거니 받거니 한 수창은 밤이 깊어서야 끝이 났다. 성별을 넘어 그들은 술과 시를 매개로 어느새 진정한 지우가 되었다. 서로 헤어지기 싫은 분위기다. 하지만 헤어져야 할 순간이다.

특히 강참판이 부용과 헤어짐이 안타까워 즉흥시를 썼다. ‘나의 혼은 그대를 쫓아가고 / 빈 몸만 문간에 기대섰네.’ 아쉬움이 가득한 시인의 속내다. 부용이 누구인가! 즉석에서 시를 썼다. ‘나귀 걸음 더디기에 내 몸 무거운가 했더니 / 남의 혼 하나 함께 싣고 있었소.’ 절창의 화답이다. 강참판은 “네가 연천의 소실만 아니었으면...”하고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집에 돌아온 부용은 그 유명한 회문체(回文體) 《부용상사곡》(芙蓉相思曲)을 썼다. ‘여의니/ 그리워 / 길은 멀고 / 소식 늦네. / 마음은 거기 / 몸은 여기에 / 수건과 빗에는 눈물 / 님 오실 기약은 없네. / 향각에서 종이 우는 밤 / 연광정에 달이 떠올랐네. / 외롭게 자다 놀라 깨어난 뒤에 / 구름만 바라보며 임을 원망했네.... 중략 / 은장도로 여린 창자 끊기야 어렵지 않지만 / 신 끌고 나가서 오는 사람 눈여겨보네. / 아침저녁 바라보며 그리는 마음을 모르는지 / 어제도 오늘도 아니오니 나만 혼자 속는구나... 중략 / 어지신 임께서 마음 돌이켜 강 건너 돌아와서 옛 얼굴 그대로 촛불아래서 만나주소 / 연약한 아녀자 눈물 머금고 황천길 가서 슬픈 혼백이 달 속에 울며 만나지는 말게 하오’ (시옮김 허경진)

이 얼마나 절절한 호소일까! 사랑하는 연인이자 종교 같은 연천이 되었다. 연천이 없는 부용은 시체나 다름이 없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연천도 팔십 청년을 호언하며 꽃다운 부용을 부실로 맞아 하루도 보지 않으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임금의 부름(영전)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연천도 몸은 한양에 와 있어도 마음은 부용이 곁에 두고 왔다. 하루라도 빨리 한양에 데려오고 싶으나 거처가 문제였다. 가엾고 사랑스런 부용을 아무데나 거처하게 하고 싶지 않다. 북촌의 집 못지않은 아담하고 고풍스런 거처를 마련한 뒤 데려오려는 속내다.

호조판서(현 행정자치장관)의 정무를 보면서 틈틈이 짓기 시작한 녹청정은 쉽게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천의 불타는 집념으로 녹청정은 생각보다 일찍 말끔히 마무리가 되어 며칠 앞으로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연천은 서둘러 부용이 타고 올 승교(乘轎)와 노자도 넉넉히 보냈다. 성천과 한양은 엿새 거리다. 연천의 하루는 여삼추다. 연천은 기다리다 못해 말을 타고 마중을 가기로 했다. 엿새째 날에 사인교(四人轎)는 홍제(무악재)에 도착하였다.

마침 그때다. 흰 말이 사인교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연천이다. 부용은 사인교에서 내려 큰 절로 인사를 올렸다. “그래. 오느라 수고가 많았느니라... 어서 집으로 가자!” 연천은 말을 타고 부용의 사인교를 호위하듯 하여 남산 녹청정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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