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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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김부용(金芙蓉) < 제16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5-23 09:36     최종수정 2018-05-23 15:19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화단엔 봄꽃들이 만개하였다. 연천이 육조로 출근 할 때는 부용이 직접 꽃들을 가꾸었으나 퇴임 후론 손을 놓았다. 연천의 정성어린 가꿈에 화단은 어느 해보다 화려한 봄을 맞았다.  흰목련·연분홍자목련·노란유채·흰영산홍 등의 자태가 눈부시다. 그 중에서도 흰 영산홍이 화단을 더욱 빛내고 있다.

부용은 초당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유의 몸이 되고 싶다. 아버지의 딸에서 뭇 사내들의 노리개인 기생의 길에서 연천의 회춘 마중물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오래전부터 마음 한 구석에 싹터온 생각이었으나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니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연천이 목에 생선가시처럼 걸리었다. 젖먹이 같이 자신에게 전적으로 매달려 있는데 뻐꾸기 비둘기 둥지 떠나듯 훌쩍 떠나 버리면 연천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부용은 그 같은 현실이 눈에 선하다.

북촌의 조강지처는 부용이 초당으로 들어온 이후 남남이나 다름이 없다. 허울뿐인 조강지처다. 그런 상황에서 부용이 초당을 훌쩍 떠나면 연천은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일 게다. 하지만 부용은 초당을 떠날 채비를 착착 진행시킨다.

영원히 떠나갈 듯이 사시사철 갈아입을 옷을 몇 달 전부터 챙겼다. 하인들이 눈치 채지 않게 주로 새벽녘까지 깊은 잠에 빠졌다. 연천은 평소엔 부용을 죽부인(竹夫人)안고 자듯 품에 꼭 안고 잤다.

틈틈이 지난겨울부터 부용은 연천이 일 년 열두 달 계절에 따라 벗고 입을 옷을 차곡차곡 준비해 놨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쉽게 떠날 날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 때문이다. 하지만 떠나가야만 한다. 접었던 날개를 펴고 한번 날개 짓에 구만리를 난다는 봉황처럼 거침없이 창공을 훨훨 날고 싶은 것이다.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날짜를 잡았다. 4월 어느 달 밝은 새벽녘 남장을 한 부용은 날랜 걸음으로 평양을 향하였다. 산 넘고 물 건너 9일 만에 평양에 닿았다. 평양에 오니 연천대감이 감사로 있을 때 연을 맺어 용광로 같이 뜨거운 밤으로 사랑을 꽃피웠던 시절이 눈앞을 가렸다.

부용은 그럴 때마다 무거운 발길을 재촉하여 달콤한 추억의 사슬에서 벗어났다. 어차피 연천의 따뜻한 품을 벗어나려 했으니 하루라도 빨리 잊는 것이 상책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붉은 여뀌 꽃이 피어 처음으로 성 밖에 나왔으니 / 산과 물의 모습이 더욱 새롭게 개었네. / 긴 방죽 버들 숲에는 가을빛이 들렸는데 / 나루 멀리 어인일로 임을 따라 예까지 왔나. / 꿈속에 여러 생각을 끝내 이루지 못했네. / 달을 보려고 난간에 기대었더니 이슬만 차가운데 / 고깃배 불빛이 저 멀리서 두어 곳 반짝이네.’ 《오강루에서 한밤중 생각하다》다.

말 타면 종 세우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망이다. 마음에도 없는 웃음과 교태를 부려야 했던 부용도 기생의 몸에서 고관대작의 정실은 아니지만 부실로 호의호식하다 보니 더 뜨거운 욕망이 발동하였다. 비단 옷에 고기반찬에 맛있는 밥만으론 욕망이 충족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허위허위 열사흘 만에 묘허(妙虛)스님이 있는 영명사(永明寺)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부용이 깜짝 놀랄 상황이 벌어졌다. 절 입구에 묘허스님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언니 언니가 아냐? 언니가 어떻게 여길 나와 있어요?” 부용은 묘허스님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그랬구나. 네가 결국 오고 말았구나! 나는 꿈이 하도 심란해서 행여나 하고 며칠째 나와 있는 거야. 네가 뭐가 아쉬워 이곳을 찾았느냐?” 싸늘한 표정이다. 부용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을 반갑게 맞아 주리라고 허위허위 달려왔는데 뜻밖에 얼음장 같은 표정에 서운하기까지 하였다.

산사(山寺)의 낮은 짧다. 해는 어느새 서산에 걸렸고 영명사 추녀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시장 할 텐데 요기부터 하고 너의 얘기는 저녁 후에 듣자구나...” 준비를 했던지 동자(童子)승이 저녁상을 들고 들어왔다.

시래깃국과 묵은지 한쪽에 감자가 섞인 옥수수밥이다. 배가 고프지만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아 반이나 남겼다. “다 먹어라! 여긴 그 밥과 반찬밖에 없느니라... 초당생각을 하면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묘허스님의 경고다.

묘허스님과 몇 마디 말도 못하고 자리에 들었다. 영명사 대웅전 뒤 암자에 누웠다. 다정한 자매같이 두 손을 꼭 잡고 자리에 들었다. 많은 말들이 오고 갈 듯 했으나 무거운 침묵만 흐른다. 부용은 피곤하기도 하지만 절 입구에서 싸늘한 묘허스님의 표정이 떠올라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묘허스님도 부용의 행색으로 봐 잠시 바람을 쐬러온 것이 아닌 출가(出家)의 모습이 보여 역시 어떤 말을 해야 될까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어젯밤 들판에서 봄을 보내고 돌아와 / 깊은 시름 견디지 못해 술잔을 들었더니 / 아직도 석류나무에 붉은 꽃이 피어있어 / 때때로 울타리 넘어 찾아오는 벌 나비들이 보이네./ 《봄을 보내고 서다》 (시옮김 허경진)

묘허스님은 부용보다 네댓 살 위다. 퇴기스님이다. 누구보다 부용의 생각을 잘 안듯하다. 묘허스님은 입을 좀처럼 열지 않는다. 산사의 밤은 깊어가고 서쪽 새 울음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갔다. 부용이 동창이 밝아 눈을 떴을 때는 묘허스님의 손을 꼭 잡은 채다.

몸은 평양에 와 있어도 마음은 초당에 두었다. 묘허스님의 손은 따뜻하다. 고향 성천 언니다. 결혼했으나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과부가 되었다. 몹쓸병(결핵)에 걸린 것을 모르고 결혼했으나 남편이 명을 재촉한 것이다. 사내는 밤마다 색을 밝혀 짧은 인생을 더 단축시켰다.

사내 집은 대대로 부농이었다. 병이 깊어 백약이 무효로 장가나 보내 총각 귀신을 면하게 한 것이다. 초희(묘허) 부모는 그런 것을 알고 서둘러 결혼시켰다. 논 열 마지기에 밭을 주는 조건이다. 남편 3년 상을 치루고 묘허는 영명사로 출가하였다.

그녀도 출가 전에 앵두기명(妓名)으로 잠시 기적에 있었다. 묘허스님은 운초가 태어나기 전엔 성천에서 알아주는 미인이었었다. 벌써 스님 삼년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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