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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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송덕봉(宋德峰) <제2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8-07-11 09:36     최종수정 2018-07-11 10:05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남편의 편지가 왔다. 그런데 냉큼 뜯어보려 하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도착하자마자 하던 일도 제쳐놓고 뜯어봤는데 지금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다. 왠지 편지를 오늘은 뜯어보고 싶지 않는 눈치다.

덕봉은 가슴이 답답하면 집안 안팎을 뱅글뱅글 도는 버릇이 있다. 사립문을 나와 야산이 멀리 보이는 울타리 뒤에까지 벌써 서너 번은 돌았다. 하녀인 죽매(竹梅)와 옥매(玉梅·가명)도 쫄랑쫄랑 따라 다녔다. 초여름이라고는 하지만 한낮의 햇볕은 따갑다. 이마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입에선 가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때다. “마님! 치마가 흘러내리고 있습니다.”라고 울타리를 돌 때 수족처럼 따라다녔던 죽매와 옥매가 한입처럼 동시에 소리쳤다.

덕봉의 집엔 노래하는 악기(樂妓)와 춤추는 무기(舞妓)가 있다. 비록 중앙에까지 뜨르르하는 사대부는 아니지만 지방에선 알아주는 향반이다. 덕봉의 친정인 송준의 집안과 시집 역시 미암도 스물네 살에 이미 호남에서 학문과 문학으로 이름을 날렸다.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석양을 만들고 있었다. 점심도 걸렀다. 그런데도 허기가 지지 않았다. 남편의 편지가 왔는데도 뜯어보지 않은 죄책감이 마음을 편치 않게 하고 있는 것이다. 편지를 뜯지 않자 남편이 멀리 한양에서 와 자기를 보려 하는데 만나주지 않는 것 같은 태도가 되어 버려 지금 덕봉은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 마음이 들면 들수록 편지 뜯기가 겁이 났다.

편지를 뜯으면 가슴을 치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지금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던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지금 덕봉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편지를 뜯어보지 않을 수는 없다. 편지를 뜯어보지 않고 있으니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였다. 기쁨이 넘치는 소식보다는 가슴을 치고 통곡할 벼락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불길한 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것 같은 예감들이다.

점심도 거른데 저녁도 먹는둥마는둥 시늉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편지는 베개 맡에 놓여있다. 아침에 받은 대로다. 편지는 인편에 와 하루 만에 왔다. 같은 향반인 김덕배(가명)는 처자가 한양에 잘 살고 있어 수시로 하인이 오가며 소식을 전하였다. 그 하인 편에 미암의 편지가 왔다. 김덕배와 미암은 죽마고우로 형아우하는 사이다. 미암이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어 김덕배 처가까지 알게 되어 편지 정도는 하인 편에 보낼 수 있는 관계다.

그 편지를 덕봉이 뜯으려 한다. 그런데 지금 문득 기녀 옥경아가 눈앞을 가렸다. 미암의 혼과 넋을 빼앗는 첩이다. 방굿덕 소춘풍도 울고 갈 빼어난 미모에 노래와 춤에도 능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까지 줄줄이 낳아주니 미암인들 발길을 끊을 수 없을 것이 뻔하다.

사실 덕봉은 나긋나긋한 여자가 아니다. 학자 가문에서 태어나 자연스런 가풍의 분위기에서 덕봉은 남자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았다. 그녀의 학문과 시의 수준은 전라도에서 알아주는 미암과 별 차이가 없다. 어떤 경우엔 남편인 미암보다 한발 앞서 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뜰의 꽃 흐드러져도 보고 싶지 않고/ 음악소리 쟁쟁 울려도 관심 없어/ 좋은 술, 어여쁜 자태엔 흥미 없으니/ 참으로 맛있는 건 책속에 있다네’ 지극한 즐거움은 책속에 있다며 미암이 아내 덕봉한테 보낸 《지락》(至樂)이다.

덕봉이 누구인가! 그녀는 남편의 시를 보자 즉각 차운(次韻:이어 시를 씀)하였다. ‘봄바람 아름다운 경치는 예부터 보던 것이요/ 달 아래 거문고 타는 것도 한가지 한가로움이지요./ 술 또한 근심을 잊게 하며 마음을 호탕하게 하는데/ 그대는 어찌 책에만 빠져있단 말입니까?’ 자칫 가식적인 태도로 보일 수 있는 남편의 고고한 선비 같은 모습에 대해 부인은 인간다운 진실한 정감이 얼마나 소중한 것에 관해 따끔하게 얘기하듯 충고다. 이 모습은 뜨거운 살을 섞고 있는 아내의 태도가 아닌 쉽게 말하기는 버거운 친구 같은 조언이다.

그들은 친구 같은 부부인 동시에 부부 같은 친구로 보이기도 하는 관계다. 하지만 여자문제는 다르다. 시앗(첩)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하지 않았던가! 덤덤하게 남편 대신 살림살이를 도맡아하고 있는 덕봉도 여자문제엔 단호하다.

여자이기 때문이다. 어느 여자가 자기 남편 품에서 새근새근 잠자며 베개 밑 송사를 그냥 웃어넘길 수 있을까? 학식으로 보면 한양에 잘 나가는 사대부에 뒤지지 않으나 시샘은 보통여자와 다를 바가 없다. 미암도 면벽 학자인 냥 아내인 덕봉에게 자랑하지만 남자는 남자인 것이다.

그 같은 미암의 성정을 덕봉은 꿰뚫어 보고 있다. 그 같은 사실은 기녀 소실 방굿덕을 보고 뒤늦게 실감하였다. 고추 단 사내들은 여자 앞에 가면 동물적 욕망이 주체하기 어렵게 꿈틀댄다는 것을 덕봉은 미암을 보고 깨달았다. 덕봉은 열여섯에 결혼하여 동네 밖을 나가 본적이 없어 박속같이 순수해 보이는 남편은 제 아무리 예쁜 항아(姮娥)같은 여자가 눈앞에서 아양을 떨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생불인 지족선사(知足禪師)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기대가 방굿덕에서 깨졌다. 방굿덕은 미암과 사이에서 딸을 넷이나 낳았다. 덕봉은 하늘을 찌르는 분노와 천하를 잃는 실망감이다. 부부는 믿음으로 맺어진 이심동체로 생각했었던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일심이체(一心二體)가 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사려 깊은 덕봉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끝까지 현모양처 자리를 지켜갔다.

지금까지 지켜왔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서다. 더욱이 친정집의 높은 신뢰에 추호만치도 흠이 갈까 언행에 더 조심스럽다. 미암의 어처구니없는 망동에 자신까지 정신을 놓으면 양가 가문에 미칠 어두운 그림자에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역시 덕봉은 흔들림 없는 현모양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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