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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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홍랑(洪娘) <제3話>

편집부

기사입력 2019-04-17 09:36     최종수정 2019-04-17 11:2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으라 했더니 홍랑과 김별장이(고죽 최경창) 그러하였다. 하룻밤을 지냈어도 그들은 천생연분 연리지(連理枝)는 되지 못하였다. 아직도 그들은 홍랑과 김별장 그대로다. “아직 취침중인가 김별장?” 다그치는 이 사또의 목소리다. “어 이 사또 들어오게나. 홍랑과 정지상의 《대동강》 시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네...” 이 사또는 주저주저하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여전히 남녀관계를 하지 않은 분위기다. 옷매무새가 가지런하고 표정이 정색 그대로다. “김별장 오늘은 경성 임지로 떠나야 하네! 자칫 늦어지면 문제가 생기네... 지금 변방이 얼마나 어려움에 있는지 자네는 상상도 못할걸세. 어서어서 출발준비를 하세...” 이 사또의 김별장에게 거듭된 다급한 재촉이다.

하지만 김별장은 요지부동 돌부처다. 홍랑을 뜨겁게 품지 않고는 떠날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다. 임지로 갈 당사자 최경창 보다 이 사또가 더 몸 달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홍랑아! 김별장이 네가 좋아 이곳을 못 떠나하니 네가 임지로 같이 가면 어떠하겠느냐?” “어머머 소녀가 어떻게 생면부지의 사내를 따라 임지로 가겠어요? 당치도 않은 말씀은 거두어 주세요...” 살엄음장 같은 태도다.

이 사또는 짐짓 태도를 바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러면 이 분이 네가 그토록 오매불망 사모하고 존경했던 고죽 최경창이라면 경성으로 따라가겠느냐?” 이 사또의 최경창이란 말에 홍랑은 갑자기 얼굴에 홍안(紅顔)의 기쁨을 띄우며 반기는 표정을 보였다. “이 분이 바로 네가 그토록 존경했었던 고죽 최경창 어른이시니라...” 이 사또가 김별장을 쳐다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러나 홍랑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덤덤한 표정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태도다.

하지만 의심하는 표정이다. 자기를 놀리려는 것으로 믿는 태도다. 이 사또는 김별장에게 눈짓을 하였다. 임명장을 보이라는 눈짓이다. “홍랑아! 내가 최경창이란 것을 보여주어야겠구나. 그래야 네가 나를 믿겠구나.” 김별장은 짐에서 임명장(敎旨)이 있는 보자기를 꺼냈다. “자 이제 네 손으로 이 보자기를 펴서 임명장을 보려무나.” 김별장은 홍랑 앞에 교지가 싸인 보자기를 놓았다. 홍랑은 별로 믿으려는 눈치가 아닌 표정으로 붉은 비단 보자기를 성의도 없게 풀었다.

그리고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면서 동시에 두 무릎을 꿇었다. 차마 입은 열지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고죽의 표정을 살폈다. 무엇인가 비교하는 듯 한 눈치다. “홍랑아 아직도 나를 못 믿겠다는 것이냐? 그렇게 쳐다만 보는 것은 무슨 짓이냐?” 옆에 있던 이 사또가 홍랑을 힐책 하듯 말하였다.

그때서야 홍랑이 입을 열었다. “사또어른, 사실은 어젯밤 꿈에 고죽을 뵈었는데 그분과 맞나 상상을 해 보는 중이옵니다.” “그랬구나. 그래 꿈에 본 분과 지금 앞에 있는 분과 얼굴이 맞느냐?” “무례한 소녀를 죽여주시옵소서! 나으리를 못 믿은 소녀를...” 홍랑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고죽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 사또는 만족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

고죽은 서둘렀다. 품에 들어온 홍랑을 두 팔에 힘을 넣어 욕심을 채우려 하였다. 그때다. “아니 되옵니다.여기선 소녀가 나으리를 못 모십니다. 하루만 더 머물다 가시옵소서...” 말을 마친 홍랑은 고죽의 품에서 벗어나 바람처럼 방을 빠져 나갔다. 닭 쫓던 개모양이 된 고죽은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얼마 후다. 홍랑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나으리 이곳에서 나으리를 모시면 기방정사(妓房情事)에 불과하지요. 소녀 정식으로 나으리를 모시려 하옵니다. 오늘밤에 소녀의 집으로 오시옵소서...” 말을 남기고 역시 홍랑이 특유의 향기를 풍기며 바람처럼 방을 빠져나갔다.

여삼추(如三秋)보다 더 긴 기다림 끝에 밤이 왔다. 어느새 어떻게 구했는지 전통혼례복식을 오롯이 준비하여 놨다. 주례는 없지만 신랑신부가 정식으로 교례(交禮)를 통해 부부가 되었다. 뜨거웠다. 날이 밝으면 헤어질 남녀는 떨어질 줄 모른다. 요철(凹凸)이 뜨거워 불이 날 듯 하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 않고 뜬 눈으로 꼬박 밤을 샜다. ‘두 줄기 눈물 흘리며 서울을 나서네 / 새벽 꾀꼬리가 헤어지는 걸 알고서 수없이 울어주네 / 비단옷에 천리마로 강 건너고 산 넘는 길 / 아득한 풀빛만이 혼자 배웅해 주네 // 서로가 뛰는 마음 바라보며 그윽한 난초를 건네 주리 / 이제 하늘 끝으로 가버리면 언제나 언제나 돌아올까 / 함관의 노래는 옛 곡조이니 부디 부르지마오 / 지금은 운우의 정이 푸른 산을 뒤덮었네’ 고죽의 《헤어지면서》다. (시옮김 허경진)

평소엔 아름다운 시(詩)로만 그리워하였다. 홍랑은 실제로 고죽을 만나자 현실은 잊었다. 동창이 밝자 고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꿈에 선조(宣祖)가 나타났던 것이다. 아무 말 없이 교지를 거두어 갔다.

홍랑은 깊은 잠에 빠져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홍랑이 자신의 품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동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홍랑의 나신에 머문다.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옥황상제가 보낸 선녀 같다. 아니 달나라로 도망간 항아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고죽은 떠나야만 한다.

어떻게든 홍랑과 뜨거운 사랑을 잊고 임지 경성으로 말달려 가야할 북평사다. 그런데 벌거숭이 홍랑이 “안돼요. 안돼요! 가시면...”라고 두 팔을 벌리고 다시 고죽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았던 것이다. 그것도 뜨겁고 뜨겁게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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