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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남한산성

편집부

기사입력 2020-10-08 14:56     최종수정 2020-10-08 15:26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남한산성>(황동혁, 2017)에는 음악이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냉혹한 현실을 관조하는 영상의 결을 따라 소리 또한 조심스럽다. 눈 덮인 겨울 산성의 적요함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이나 삶과 죽음 사이의 심오한 공방을 강조하기 위해 때로 공간의 소리(엠비언스)도 숨을 죽이고, 악기는 한 발 뒤로 물러선다. 그 공백이야말로 <남한산성>을 격조 높은 사극으로 완성시킨 음악적 밑바탕이다. 이는 ‘영화의 빈 공간과 이미지의 감흥’을 중시하고 ‘시간과 공간의 소리’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해왔던 이 영화의 음악 감독, 류이치 사카모토의 철학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남한산성> 스코어의 두 번째 전략은 장르적 관습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적지 않은 제작비로 굴욕적인 우리 역사를 영화화하겠다는 용기만큼 도전적인 결단이다. 중반부 두어 차례의 전투 신, 추격 신에서 음악은 이기는 자와 지는 자,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어느 한 편의 시점이나 정서를 대변하기보다 그 상황 자체의 서스펜스에 초점을 둔다. 마치 버나드 허먼이 히치콕의 스릴러에서 사용했던 음악처럼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선율이 아비규환의 전투 공간을 쪼개며 심리적 압박감을 표현한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에서도 음악은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는다. 대신 최대한 절제하고 누르고 돌아보면서 더 넓고 깊게 관객들의 지각을 열어준다. 이는 오욕의 역사 및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에 대한 원작자와 감독의 사려 깊은 태도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처럼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남한산성>이 한층 세련된 스타일을 성취하는데 공헌했다. 그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준 <마지막 황제>(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87)부터 암투병을 하며 참여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2015)까지, 그는 매 작품마다 스스로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그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나 ‘레인’처럼 멜로디가 강하고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들을 많이 남겨주기를 기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항상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관성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공인으로서 그의 활동과 음악 작업 과정을 두루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스티븐 쉬블, 2017)에는 새로운 소리를 찾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찾아가는 그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남한산성>의 스코어 또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천재적 음악성과 더불어 우리 전통 음악과 역사, 한국영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땀방울이 더해진 결과다. <남한산성>은 그의 재능과 열정이 담긴 첫 한국영화였다. 앞으로도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윤성은의 Pick 무비 /  <디바> 

보기만 해도 아찔한 스포츠들이 있다. 눈과 얼음 위를 가로지르고 암벽을 맨 손으로 기어오르고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운동들, 그 스릴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분명 범상치 않은 이들이다. <디바>(조슬예)의 두 주인공, ‘이영’(신민아)과 ‘수진’(이유영)은 인간이 가장 공포를 크게 느끼는 10미터 높이에서 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다이빙 선수다. 낙하하는 짧은 순간에도 기교를 부리며 안정된 자세로 착지해야 하는 이 스포츠는 신체적 능력 뿐 아니라 담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 이영과 수진은 단짝이자 라이벌로서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태극마크를 달지만, 이들에게 선수생활이 안겨준 것은 다이빙의 짜릿함이 아니라 경쟁의 고통과 낙오에 대한 공포다.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이영은 수진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수진과 심하게 다툰다. 그 바람에 수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있던 두 사람은 도로 밑 절벽으로 추락하고, 수진은 실종되지만 이영은 구조되어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영은 수진의 환영과 자책감으로 다이빙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영의 무의식은 사고 당일보다 훨씬 더 전으로 돌아가 모든 인과 관계를 뒤섞어 놓는다. 다이빙 디바의 자리가 수진에서 이영으로 바뀌던 그 날부터 수진과 이영의 관계 또한 위태롭게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실오라기 같던 이마의 상처가 덧나고 곪아서 터져 버리는 과정 속에 오래 전 해결하지 못했던 수진과의 앙금은 이영을 광기로 몰아간다. 

영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이영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따라 거침없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블랙 스완>(2010, 대런 아로노프스키)과 같은 뛰어난 레퍼런스가 있기에 새롭다고 할 수는 없어도 아름답게 낙하해야만 이길 수 있는 다이빙의 성격과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인간의 심리가 그럴 듯한 대구를 이루며 결말까지 무리 없이 나아간다. 결국 공포의 근원은 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러닝 타임 이상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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