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혁신, ‘제2의 한강의 기적’ 이끌다
수십년간 수백, 수천억원 투자 개발한신약들 하나둘씩 '빛'
유한양행, 국내 최초 항암신약 ‘렉라자’ 미국 FDA 승인
GC녹십자, 지씨셀 면역세포치료제 '이뮨셀엘씨주'로 퀀텀점프
입력 2024.09.30 06:00 수정 2024.09.3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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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선수가 1998년 US여자오픈 골프대회 연장전 마지막 홀에서 맨발로 연못에 들어간 모습.©USGA(미국골프협회)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IMF를 겪은 세대라면 누구나 알 법한 가요 '상록수'의 가사 중 일부이다. 고난과 역경에도 꺾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골프선수 박세리가 힘겹게 우승한 1998년 US여자오픈 골프대회 경기 장면과 함께 공익광고로 쓰여 더 유명해졌다.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서도 이 가요와 '맨발 투혼'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수십년간 수백, 수천억원을 투자해 개발한 신약들이 드디어 하나둘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국산 치료제들이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으며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유한양행 항암 신약 ‘렉라자’ 미국 FDA 승인 쾌거

유한양행은 국산 항암 신약 ‘렉라자’로 미국 FDA의 까다로운 승인을 획득했다. 유한양행은 지난달 19일(현지 시간) 렉라자와 존슨앤드존슨(얀센 바이오테크)의 비소세포폐암 이중항체 치료제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에 대해 FDA의 사용 승인을 받았다. 이는 국내에서 개발한 항암제가 FDA의 승인을 받은 최초 사례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렉라자는 1차 치료제로서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엑손 19 결실 또는 엑손 21 L858R 치환 변이가 확인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NSCLC) 성인 환자에 대한 적응증으로 승인받았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의 비소세포폐암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비소세포폐암 중 EGFR 변이는 최대 40%이며, 이 중 45~50%는 엑손 19 결실 변이, 40~45%는 엑손 21 L858R 변이가 확인된다. 즉, 렉라자를 통해 치료받을 수 있는 비소세포폐암 환자가 상당수며, 유한양행이 확보할 수 있는 매출 또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 파마(Evaluate Pharma)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시장 규모는 313억 달러(약 41조2534억원)이며, 연평균 9%씩 성장해 2028년에는 528억 달러(약 69조5904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FDA 승인 후 유한양행의 주가는 상장 이래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유한양행의 주가는 지난 24일 16만3000원을 기록했으며, 1년 전인 2023년 9월 25일(월) 종가 7만921원 대비 129.83%나 상승했다. 27일(금) 종가는 14만 6100원으로 최고가 대비 다소 하락했으나, 여전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제대로된 신약 하나가 기업의 가치를 완전히 변화시킨 것이다.

유한양행의 성장세는 앞으로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2018년 얀센 바이오테크에 렉라자를 라이선스 아웃한 계약에 따라, 대규모 마일스톤 기술료와 판매 매출에 따른 로열티가 지속적으로 실현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렉라자의 연간 추정 매출치는 3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유한양행은 얀센 바이오테크에 총 12억5500만 달러(약 1조6578억 원) 규모로 글로벌 개발 및 판매 권리를 라이선스 아웃했다. 최근 계약이 일부 조정되어 9억5000만 달러(약 1조2551억원) 규모로 감소했으나, 여전히 추가 기술료로 7억4000만 달러(약 9776억원)가 남아 있다. 업계는 FDA 승인을 획득한 만큼, 다른 규제 기관의 승인과 같은 추가 조건도 충분히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한양행은 FDA 승인에 따른 마일스톤 달성으로 약 6000만 달러(약 792억원)를 획득했으며, 이미 계약 당시 선급금 등으로 1억5000만 달러(약 1981억원)를 수령했다.

유한양행은 제2, 제3의 렉라자 개발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유한양행 조욱제 사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렉라자 FDA 승인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글로벌 혁신 신약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며 “2026년까지 글로벌 50위권에 들 수 있도록 신약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한양행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 지씨셀 항암면역세포치료제 ‘이뮨셀엘씨’.©유한양행, 지씨셀

GC녹십자의 혁신 신약개발 그룹사 지씨셀 ‘이뮨셀엘씨주’ 필두로 차곡차곡 성장 중

백신으로 유명한 국내 대표 정통 제약사 녹십자가 혁신 신약개발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씨셀과 이뮨셀엘씨주의 역할이 크다. 지씨셀은 녹십자셀과 녹십자랩셀이 2021년 11월 합병해 설립된 면역세포·줄기세포 기반 혁신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지씨셀은 면역세포치료제 이뮨셀엘씨주가 글로벌 블록버스터로 성장할 가능성을 확인하고, 여러 임상시험을 통해 데이터를 확보 중이다. 특히 ‘실사용 데이터(RWD)’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국내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전략을 세우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250억 달러(약 32조8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가 이 같은 전략을 통해 수많은 적응증을 확보, 현재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다. 이뮨셀엘씨주는 현재 확보한 적응증인 간암을 비롯해 췌장암 임상시험 3상, 유방암 타깃 임상연구 1b/2상을 진행하며 적응증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뮨셀엘씨주는 환자의 면역세포를 활용한 맞춤형 면역세포치료제로, T세포와 NK세포 같은 세포독성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제거하는 혁신적인 항암제다. 이뮨셀엘씨주는 환자의 혈액에서 T림프구를 분리한 후, 세포를 배양해 살해세포 기능을 극대화한 항암 활성을 높인 세포를 환자에게 다시 투여한다. 이는 T세포가 종양미세환경 내에서 암세포를 인식하고 제거하는 능력을 강화해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이뮨셀엘씨주는 외부 물질이나 다른 사람의 세포를 사용하지 않고 환자의 자가 면역세포를 기반으로 제작된다. 면역계 이상 반응이나 거부 반응 등의 부작용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항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암으로 인해 기능이 저하된 몸속 천연 항암제를 본래 역할을 하도록 지원·강화한 치료제인 셈이다.

이뮨셀엘씨주는 2007년 식약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아 출시된 지 17년이 된 치료제다. 업계에서 이뮨셀엘씨주를 차세대 블록버스터로 꼽는 이유기도 하다. 이뮨셀엘씨주는 출시 후 17년간 1만명이 넘는 환자에게 사용됐다. 임상적 유효성과 안전성이 보장됐다는 의미다.

지씨셀은 다년간 축적된 이뮨셀엘씨주의 과학적 신뢰성을 바탕으로 이뮨셀엘씨주의 퀀텀 점프를 추진 중이다. 지씨셀은 2021년 이뮨셀엘씨주를 식약처 첨단바이오의약품으로 재품목허가받고, 이와 함께 임상시험 확대를 통한 추가 적응증을 확보 및 마케팅에 집중하며 처방량을 늘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뮨셀엘씨주에게도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이뮨셀엘씨주는 국산 1호 항암 면역세포치료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강보험 급여 등재되지 못한 상황이다. 지씨셀은 더 많은 환자에게 이뮨셀엘씨주의 치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낮은 가격을 고수하고 있으나, 산업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가격 유지가 어려운 실정이라는 후문이다. 이뮨셀엘씨주는 급여 등재된 노바티스 CAR-T 치료제 ‘킴리아’와 유사한 제조 공정임에도 가격은 5분의 1 수준이다.

지씨셀 2024년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이뮨셀엘씨주 매출은 2021년 62억8000만원에서 2022년 306억7100만원으로 388.39% 증가했다. 2023년에도 전년 대비 13.91% 증가한 349억38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국산 세포치료제 중 매출액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처방 증가와 매출 성장은 이뮨셀엘씨주의 진가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이뮨셀엘씨주 세계 시장 진출 전략에서도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씨셀은 지난 10일 인도네시아의 줄기세포치료제 전문기업 비파마(PT Bifarma Adiluhung)에 이뮨셀엘씨주를 라이선스 아웃하는 데 성공했다. 계약 규모만 160억원이며, 매출액에 따라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8000만명으로 한국의 5배가 넘는 만큼, 상당한 매출이 발생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지씨셀은 지난 7월 대만 루카스 바이오메디칼(Lukas Biomedical)과의 전략적 협력을 체결했고, 같은 달 미국 체크포인트 테라퓨틱스(Checkpoint Therapeutics)와 병용요법 공동연구 계약을, 이에 앞서 2022년에는 인도의 리바아라(Rivaara Immune Private Limited)와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특히 지난해 2월에는 미국 관계사 바이오센트릭(BioCentriq)에 이뮨셀엘씨주 공정 기술을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지씨셀은 이뮨셀엘씨주가 포함된 세포치료제 사업에서 기술이전 등을 통해 지난해만 137억9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2021년에는 85억4100만원, 2022년 65억8400만원을 기록하며 기술이전 매출도 상승세를 탔다. 지씨셀 전체 매출도 지속해서 상승세를 그리며, 지난해 1875억원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지씨셀 2024년 반기보고서 기준이다.

지씨셀은 이뮨셀엘씨주를 글로벌 블록버스터로 성장시키기 위한 전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지씨셀 제임스 박 대표는 최근 기술이전 성공을 발표하며 "국산 항암신약 세포치료제 1호인 이뮨셀엘씨주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 더 많은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면서 "이뮨셀엘씨주의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해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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