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트럼프 행정부’ 보편관세‧對중국 제재, 韓 제약업계 대응 방안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일이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보건의료 정책에 많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특히 약가정책을 비롯한 제약산업에 대대적인 변화가 전망되면서 국내 제약업계도 이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제언이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7일 글로벌 보건산업 동향 심층보고서인 ‘트럼프 2.0 정부의 정책 동향과 국내 보건산업 영향 및 전망’을 통해 이같이 전했다.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2.0 행정부는 자국 우선주의를 기조로 필수의약품‧의료기기와 같은 핵심 산업에서 자국 생산을 강화하고, 중국산 수입을 배제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한국 보건산업은 미국 시장에서 직접적인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미국은 2022년 기준 5조4526억 달러 규모로, 글로벌 보건산업 시장의 42.6%를 차지하며 세계 1위 시장의 위엄을 유지하고 있다. 제약, 의료기기, 바이오의약품 등 주요 산업의 핵심 시장이며 한국 보건산업의 주요 수출국으로, 미국 바이오시밀러와 디지털헬스 시장에서 강점을 가지는 만큼 중요한 파트너로 평가받고 있다.이런 가운데 미국은 약가와 관련한 여러 문제에 봉착해 있는 상황. 다른 고소득 국가보다 평균 2.6배 높은 약가, 특허로 인한 독점적 지위, 정부 차원의 약가협상 부재로 인해 환자들에게 과도한 경제적 부담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허로 보호받는 신약의 경우, 경쟁 약물이 없는 상황에서 제약사가 고가 정책을 유지할 수 있고, 미국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정부 차원의 약가협상 매커니즘이 부족한 만큼 약가가 자유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도 있다.높은 약가는 환자의 약물 복용 제한을 초래해 건강 악화와 추가 의료비 지출을 유발하며, 저소득층과 보험 미가입자에게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점 역시 미국이 지닌 약가 문제로 꼽힌다. 약가 부담으로 인해 환자들이 약물 복용을 중단하거나 복용량을 줄이는 사례가 빈번하고, 저소득층 및 보험 미가입자의 경우, 고가 의약품에 접근하기 어려워 건강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이에 미국 내 제약사는 고가정책이 신약개발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마케팅과 이윤 배당에 과도한 자금이 쓰인다는 비판이 존재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약가 인하와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며 중요한 정치적 아젠다로 부각되고 있다.보고서는 트럼프 2.0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한국 보건산업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우선 전세계 수입품에 10~20%의 단일 관세율을 적용하는 ‘보편관세’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국내 제약업계가 그 여파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보고서는 “의료기기와 의약품은 한국의 주요 대미 수출 품목으로, 진단기기‧백신‧바이오의약품이 대표적”이라며 “보편 관세가 도입될 경우 이러한 품목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돼 미국 시장 점유율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전했다.이어 “현재 바이오시밀러와 위탁생산 제품은 미국에서 관세가 면제된 상태이며 보편관세 적용 여부에 대해 논란이 존재한다”며 “만약 이들 품목에 보편 관세가 적용된다면, 가격 경쟁력이 약화돼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편관세는 미국 내 소비자 물가 상승과 수입품 의존도 감소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한국 기업들에게 추가적인 수출 감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2020년 제정된 경기부양패키지법에 따라 소비자 접근성이 높은 일반의약품(OTC) 제품의 혁신을 촉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 기존 처방약으로 분류됐던 약물이 OTC로 전환될 경우, 소비자들의 의료접근성이 강화되고 OTC 산업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백신 개발과 승인 절차에 보다 엄격한 검토를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개발된 백신에 대한 지속적인 의문이 제기됨에 따라,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성을 보장하기 위한 추가적인 증거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는 백신 개발 시간과 비용을 증가시켜 제조사들에게 더 많은 임상 데이터를 요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낙태약에 대한 접근성 제한과 피임약과 같은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편을 통한 낙태약 배송은 주요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의약품 사용을 촉진하는 정책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산 바이오시밀러가 미국에서도 현재 수준의 수요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된다.다만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인도‧유럽‧일본 기업과의 경쟁 심화가 예상되며, 가격 경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한국 기업들은 단기적인 가격 경쟁보다는 중장기적 바이오벡터 기술과 특허 확보를 통해 차별화를 모색해야 한다”며 “필수의약품 적정 재고 관리를 강화해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의 생물보안법 등 대(對) 중국 제재로 인해 한국 기업이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협업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존의 협력 관계에 혼란을 초래하고,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에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미국의 제재로 인해 중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감소하면, 일본‧인도 등 다른 경쟁국 기업들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것이며, 이는 한국 기업에게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바이오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이 제한되면, 한국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이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국내 기업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보고서는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시장 모두를 포기할 수 없으므로 두 시장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수립해 대응해야 한다”며 “미국 시장에서는 품질과 신뢰성을 강조하고, 중국에서는 현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미국 약가를 다른 국가 중 최저 수준으로 제한하는 MFN 정책을 트럼프 행정부가 도입할 경우, 한국 제약사들의 신약개발과 고가 바이오의약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반면,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의약품 시장에는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미국 시장에서 고가 약품의 수익성이 감소할 수 있으며, 이는 R&D 투자 여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특히 바이오의약품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은 가격 하락 압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보고서는 “국내 신약개발의 경우, MFN 모델 도입 시 미국 시장에서의 약가가 낮아지면 신약의 수익성이 감소할 수 있다”며 “이는 제약사들의 연구개발 투자 여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특히 고부가가치 신약개발에 대한 투자 유인이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반면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의약품 시장은 MFN 모델 도입으로 인해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 사용 촉진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한국 제약사의 제품 수요를 최소한 현재 수준으로 유지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주영
2025.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