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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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의사 등 건강관련 전문직이 면허를 자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예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편집부

기사입력 2021-03-02 15:50     최종수정 2021-03-02 16:05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인이 강력범죄나 성폭력범죄를 저지르는 등 의료법 외의 법률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을 때 의사 면허를 최장 5년간 취소시킬 수 있는 법률안을 심의 통과시켰다.  단, 의료 행위중 발생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예외를 두었다.  이에 대해 의사단체들은 “범죄의 종류나 유형을 한정하지 않은 채, 사실상 모든 범죄로 하여 강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오히려 의료인이 자율적으로 윤리의식을 제고하고 스스로 엄격하게 면허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오히려 자율징계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직역의 경우, 직역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소비자 (건강관련 전문직역의 경우, 환자)의 신뢰이다.  그런데, 일반 공무원처럼 직역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면허의 관리를 맡기면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가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타율적인 조직으로 보이며 스스로의 자정 능력조차도 없는 것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전문직역들은 오래전부터 면허관리 행정에 직접 참여해 오고 있다.  이번 컬럼은 캘리포니아주에서 건강관련 전문직역의 면허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소개함으로써 직역의 자율적인 면허관리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면허제도의 목적

캘리포니아 제도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면허제도의 목적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면허는 기본적으로 그 소지자가 면허와 관계된 일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있어 적어도 최소한의 능력 (minimum competency)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부기관이 인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 지원자는 차를 안전하게 운전하고 다니는 데 필요한 적어도 최소한의 도로교통법 지식과 운전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따라서,  면허소지자가 면허와 관계된 일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그 면허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운전 면허 소지자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었을 경우 혈중 알코올 농도 등에 따라 면허가 취소된다.  그 이유는 면허 소지자가 차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의사와 약사와 같은 건강관련 전문직 종사자의 면허도 마찬가지다 - 만약 건강관련 전문직 종사자의 건강 상태나 행위 등이 그들의 직무를 안전하게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면허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환자를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건강관련 종사자의 면허관리제도는 면허 소지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고 유지하며 환자를 안전하게 돌볼 수 있는 지를 정기적으로 검증, 관리하여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2. 면허관리 주체와 방식

미국은 각 직업군마다 상임위원회 (Board)라는 조직에서 면허를 관리한다.  Board라는 영어 단어는 어떤 조직의 최종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의미가 있으므로 이 상임위원회는 면허와 관련된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소비자 사업부 (Department of Consumer Affairs)에 의사 상임위원회 (Medical Board of California), 약사 상임위원회 (Board of Pharmacy), 간호사 상임위원회 (Board of Nursing) 등 직역별로 약 40개의 상임위원회들이 있다 (소비자 사업부 소속이기 때문에 이 직역에는 건강에 관련되지 않은 것들도 많다).

각 상임위원회는 해당 직역의 면허와 직역의 행위 (practice)를 관리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건강에 관련해서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따라서, 각 상임위원회는 면허 발급과 갱신, 직역의 재교육과 벌칙 (discipline), 및 직역에 관련된 법과 규정을 제안하고 만드는 역할을 한다.    

상임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는 각 직역에 관한 법률과 규정에 따른다.  가령, 약사 면허를 관리하는 약사 상임위원회는 총 1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7명은 캘리포니아 주 여러 곳에서 일하는 약사들이고 6명은 일반인이다.  약사 7명과 일반인 4명은 주지사가 임명하며, 나머지 2명은 주의회 하원과 상원에서 각각 지명한 일반인들 (대개는 법률가)이다. 상임위원회 구성원의 임기는 4년이며 최대 8년동안 상임위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위에서 보듯이,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역종사자들이 상임위원회에 참여하기 때문에 직역이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관리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상임위원회의 구성원으로 법률가 등 일반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상임위원회가 직역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면 이들이 내린 중요한 결정, 가령, 규정을 어긴 면허 소지자의 벌칙에 대한 결정 등이 직역에 유리하게 내려져서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또, 상임위원회의 임무가 건강에 관련되어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상임위원회가 어떤 사항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 일반인들의 관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상임위원회는 직역을 관리하는 법과 규정을 만드는 일도 하므로 법률가의 관점도 필요하다.  따라서, 직역 혼자 면허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가 등을 포함한 일반인과 함께 협력하여 하고 있는 것이다. 

3. 면허의 발급, 갱신 및 면허소지자에 대한 징계와 벌칙

미국의 면허 발급과 갱신의 주체는 각 직역의 상임위원회이다.  즉, 상임위원회가 면허 소지자격의 기준을 정하고 면허시험을 집행한다.  또, 상임위원회는 해당 직역 면허 소지자의 징계와 벌칙을 조사하고 결정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면허에 관련된 모든 행정상의 업무가 상임위원회로 일원화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면허에 관련된 정책의 설정과 집행이 효율적이며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면허 취소와 정지는 관련 법을 어긴 면허 소지자에게 내릴 수 있는 징계와 벌칙이다.  그리고, 징계와 벌칙의 사유와 내용은 각 직역에 관련된 법률과 규정에 정해져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의료법은 비직업적인 행위 (unprofessional conduct)가 징계와 벌칙의 중요한 사유로 취급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과처방 (clearly excessive prescribing), 과량의 검사 (clearly excessive use of diagnostic procedures), 환자에 대한 성적인 비행 (sexual misconduct) 등을 비직업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성적인 비행은 성폭행 뿐만 아니라 성희롱, 동의없이 이루어진 성적인 행위, 가령 만지기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런 비직업적인 행위는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이는 법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비직업적인 행위는 건강관련 종사자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건강관련 종사자에 대한 환자의 신뢰는 치료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왜냐하면, 환자가 자신의 몸에 대한 치료를 건강관련 종사자에 맡기는 것은 건강관련 종사자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신뢰가 깨지면 성공적인 치료를 이룰 수 없다.  그리고, 그 직역의 존립 자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각 건강관련 직역의 상임위원회는 환자의 신뢰를 깨뜨릴 수 있는 행위 – 성적인 비행, 과처방, 과잉검사, 부당청구 등 – 에 대해 형사처벌과 별도로 징계와 벌칙을 내리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의 건강관련종사자의 면허 취소와 징계 과정은 다음과 같다. 환자 등이 상임위원회에 신고를 하면 조사가 진행되고 여기서 법규를 어긴 것과 징계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상임위원회가 이를 검찰에 알린다.  이 때, 면허 소지자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면허 소지자는 청문회를 요구할 수 있다.  청문회는 정식 재판은 아니지만 재판과 비슷한 과정을 따른다.  청문회를 주관하는 사람은 행정법 판사 (Administrative Law Judge)로 이 판사는 청문회가 끝난 뒤 판결 결과를 상임위원회에 보낸다.  이 때 상임위원회는 이 판결 결과를 받아들이거나 바꾸거나 판결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조사와 징계 결정의 주체는 면허의 발급과 갱신을 책임지고 있는 상임위원회이다.  또, 조사 결과 위법사항이 확인되면 상임위원회가 검찰에 알려 형사소송도 따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즉, 면허 정지나 취소와 별도로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는 이중처벌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면허소지자는 면허를 갱신할 때마다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있는지 또는 병원 등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지에 대해 싱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만약 면허소지자가 그런 적이 있으면 상임위원회는 처벌과 징계의 이유가 직역을 수행하는 동안 환자 보호를 담보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여 면허 갱신 여부 - 면허 정지나 취소 여부 - 를 결정한다.

(의사 면허 갱신때 형사처벌 또는 징계 받았는지를 보고해야 한다는 안내문.  미국이나 외국에서 $300 이상 벌금 - 우리돈으로 약 30만원 - 낸 것은 모두 보고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캘리포니아주의 전문직종의 면허관리제도를 통해 보았을 때 전문직역이 자율적으로 면허관리를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필요하다.

1) 면허관리주체의 일원화
면허 정책에 대한 일관성과 효율성을 위해 한 주체 (예를 들면, 상임위원회)가 면허관리에 대한 모든 것 (면허 발급, 갱신, 면허관련법 제안 및 면허 소지자에 대한 징계와 벌칙) 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면허 소지자의 징계와 벌칙에 대한 행정을 면허 발급, 신고 (우리나라는 면허관리 주체가 소지자의 면허 유지 자격을 다시 검토하는 갱신제가 아니라, 이보다 덜 엄격한 – 면허관리 주체의 검토없이 소지자의 신고로만 면허가 유지될 수 있는 - 신고제이다)에 대한 행정과 분리하는 것은 면허 정책에 대한 일관성을 떨어뜨리며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
 
2) 직역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환자를 보호하는 면허관리 주체
면허 정책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문직역의 특성과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전문직역의 특성과 성격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그 전문직역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이 면허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데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면허관리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소비자와 환자 보호이므로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도 함께 참여해햐 한다.  그리고, 면허의 발급주체는 정부이고 면허관리제도의 목적은 소비자와 환자 보호이므로 면허를 관리하는 주체는 이익단체가 아닌 정부기관 소속이어야 한다.  

3) 소비자 및 환자 보호를 위해 제정된 면허관리법 
면허관리는 면허를 관장하는 법에 따라야 하며 이 법의 목적은 소비자와 환자의 보호이다. 그런데, 현재 집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의료법과 약사법은 이런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선, 환자에 대한 성적인 비행 등 비직업적인 행위에 대한 조항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를 저질러서 소비자와 환자의 보호를 담보할 수 없는 면허소지자도 면허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형사처벌을 받았거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병원 등의 조직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경력이 있는 면허소지자의 경우, 면허관리주체는 처벌과 징계의 이유에 따라 면허소지자가 직역을 수행하는 동안 환자 보호를 담보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서 면허 유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조항이 빠져있다 (신고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보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4) 법에 따른 면허소지자에 대한 징계와 처벌
면허소지자에 대한 징계와 처벌은 면허관리 주체의 임의가 아닌 법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현행 면허관리에 관련된 법은 소비자와 환자 보호라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무리 이익단체가 최선을 다해 자율적으로 관리를 하려고 하더라도 현행법의 한계로 인해 소비자와 환자의 보호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건강관련직종의 면허제도는 소비자 및 환자 보호라는 목적아래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제도의 여러가지 미비점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현행 면허제도는 이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전문직역, 정부, 소비자 단체들이 협력하여 보다 나은 제도를 만들 수 있길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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