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우리가 사랑한 디즈니의 음악들, 알렌 멘켄

편집부

기사입력 2021-06-11 17:41     최종수정 2021-06-11 17:48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목록보기   폰트크게 폰트작게


영화계 불황 속에서도 꾸준히 개봉하고 있는 장르가 있다면,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전연령대를 타겟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상에 몰입감을 더하고 지루함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디즈니사는 첫 장편이었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데이비드 핸드, 1937)부터 애니메이션을 뮤지컬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삽입된 넘버들은 주지하다시피 시대를 뛰어넘어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세대차나 개인의 취향차는 있겠지만 디즈니 클래식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이라면 ‘인어공주’(존 머스커 외, 1989), ‘미녀와 야수’(게리 트러스데일 외, 1991), ‘알라딘’(존 머스커 외, 1992)의 장면 장면을 수놓았던 명곡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알란 멘켄은 소위 디즈니 르네상스라 불리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디즈니의 중요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이 시기에만 아카데미상을 네 작품에서 8개(오리지널 송, 오리지널 스코어)나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음악에 흐르는 긍정성과 낭만성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겠으나 ‘언더 더 시’(Under the Sea),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처럼 사뭇 다른 분위기와 화법의 음악들을 공히 대중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의 타고난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즐거움과 희망, 다양한 사랑의 감정이 흘러넘치는 그의 노래들은 모두 아이들도 즐길 수 있을 만큼 쉽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미녀와 야수’에서 그토록 다른 두 인물이 팔짱을 끼고 긴 계단을 내려와 춤을 출 때 흐르는 로맨틱한 음악은 이종간의 이질감이나 위화감을 모두 눈 녹듯 사라지게 만든다. 디즈니의 판타지는 바로 이런 순간들에서 알렌 멘켄의 음악으로부터 결정적 마법의 힘을 얻어 실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디즈니 르네상스는 벌써 역사 속의 이야기지만, 우리는 실사화 되고 있는 디즈니 클래식 작품들에서 계속 그의 음악을 듣는다. 좋은 콘텐츠의 힘은 세월에 녹슬지 않음을 실감하게 하는 위대한 선율들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내 안의 그녀를 대면하다, ‘크루엘라’

오랜만에 극장가가 뜨거워지고 있다.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저스틴 린)가 개봉 10일 만에 1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올해 최단기간 흥행성적을 기록한데 이어 디즈니사의 ‘크루엘라’(크레이그 질레스피)도 박스오피스에 합류해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바이러스가 무서워서 극장을 찾지 않는다고 했던 관객들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피로감이 누적된 요즘은 극장에 볼 만한 작품이 없다는 불만을 내놓고 있던 차, 시원한 액션과 볼거리가 있는 할리우드발 영화들이 반갑다. 


‘크루엘라’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월트 디즈니사가 도디 스미스의 소설을 애니메이션화 한 ‘101마리 달마시안의 개’(클라이드 제로니미 외, 1961)에 나오는 악녀다. 빌런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 그러나 그녀도 원래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 등 때문에 ‘조커’(토드 필립스, 2019)와 비견되기도 하는데, 한 인물의 전사를 따라가면서 그의 변화에 논리를 부여한다는 지점에서는 확실히 유사하다. 

‘크루엘라’에도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실망과 혐오가 분노로 바뀌고 파괴적인 인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조커’가 동시대의 다른 영화들보다 다소 고요하고 느리고 집요하게 한 남성의 내면을 파고드는 작품이라면 ‘크루엘라’는 시끄럽고 빠르고 경쾌하게 한 여성의 행위를 포착해낸다. 전자가 극사실주의 회화라면 후자는 캐리커쳐에 가깝다. 어린 관객들을 위해 악행의 수위는 낮추는 대신 수 백 벌의 멋진 의상으로 시각적 자극을 더한 것도 ‘크루엘라’의 특징이다. 

‘에스텔라’(엠마 스톤)는 어릴 때부터 자기 안에 사회적 통념이나 기본 질서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살아가려 하는 또 하나의 성향, 혹은 존재를 억누른 채 살아간다.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고 소매치기들과 어울리며 성인이 된 그녀는 이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기회를 잡고자 한다. 곡절 끝에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 ‘바로네스’(엠마 톰슨) 남작부인의 눈에 들어 재능을 펼치지만 에스텔라는 바로네스가 엄마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때부터 에스텔라는 잠자고 있던 내면의 크루엘라를 깨워 복수를 감행한다. 

가능한 한 선하게 살아가려던 크루엘라의 ‘에고’(자아)는 ‘수퍼에고’(초자아)의 자리를 ‘이드’(원자아)에게 내어주며 욕망을 불태운다. 고마움이나 연민 같은 감정과는 거리가 먼 크루엘라가 오직 바로네스의 몰락을 위해 폭주하면서 두 사람의 화려하고도 스릴 넘치는 맞대결이 펼쳐진다. 종극으로 가면 이 영화는 ‘조커’ 보다 여성판 오이디푸스 신화에 가까워진다. 

머리카락이 흑발과 금발로 양분된 크루엘라의 모습은 선과 악, 두 가지 측면을 형상화 한 것이다. 사실 양쪽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는 그 헤어스타일이 크루엘라의 대표적 이미지라는 점은 흥미롭다. 인간의 악한 본성을 인정하고 꺼내놓는 것 자체가 철저히 사회화 된 우리들에게는 금기시되어 있기 때문일까. 오히려 에스텔라보다 크루엘라가 매력적이고, 원한이 없는 이들에게는 크루엘라가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늘 우리 안에 있고, 외면하기 보다 대면하고 다스려야 할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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