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스토리와 중독성 강한 선율로 관객을 매료시키다_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도 그런 작품이다. 2015년 워싱턴에서 처음 막을 올린 후 소극장을 거쳐 브로드웨이에서 큰 흥행을 기록하며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쓰는 대파란을 연출했다. 화려하거나 특출난 주인공이 아닌, 흔히 ‘아싸’라 불리며 주목받지 못하던 주인공의 이야기가 이토록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리라곤 쉽게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캐나다, 영국, 아르헨티나, 핀란드, 이스라엘, 호주 그리고 마침내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막을 올리며 글로벌 흥행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이야기는 평범하게 시작된다. 사회불안장애를 겪고 있던 주인공 에반 핸슨은 주치의로부터 스스로에게 편지를 써보라는 권유는 받는다. 제목인 ‘디어 에반 핸슨’은 영어권에서 편지를 쓸 때 자주 활용하는 첫 문구인 ‘에반 핸슨에게’라는 의미다. 이야기는 에반과 비슷한 ‘아싸’지만 부유한 가정의 문제아 코너 머피가 우연히 에반의 편지를 가져가게 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 교장실로 불려가게 된 에반은 코너의 부모를 만나게 되고, 며칠전 그가 자살을 했으며 유서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서의 첫 문장은 바로 ‘디어 에반 핸슨’이었다.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코너의 부모에게 차마 진실을 밝힐 수 없던 에반은 자신이 코너와 절친이었다 거짓말을 한다. 문제는 아무리 선한 의도로 시작한 거짓이었다 해도 점차 그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 게다가 이 일을 계기로 에반은 평소 짝사랑하던 코너의 여동생 조이와 연인으로 발전하고, 우여곡절 끝에 편지가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사건은 확대되어간다. 에반의 선한 거짓말은 알파만파로 확산되며 거짓이 또 따른 거짓을 낳게 되는 상황이 전개된다. 에반이 과연 사건을 수습하게 될지, 또 스스로를 바라보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뮤지컬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물론 절대적이다. 뮤지컬의 작사가나 작곡가가 관극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디어 에반 핸슨’은 꽤나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음악을 만든 제작진이 바로 파섹 앤 폴이기 때문이다. 파섹 앤 폴은 미시간 대학교에서 동문수학하던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을 콤비로 부르는 이름이다. 이들이 만든 작품이 바로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할 만큼 검증받은 음악가들의 저력을 뮤지컬 ‘디어 에반 헨슨’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뮤지컬이 이들 콤비의 작품 중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인 경우는 아니다. 베트남 전쟁 파병을 하루 앞둔 미 해병과 순진한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도그파이트’도 이미 우리말 무대가 꾸며진 적이 있다. 파섹 앤 폴 특유의 섬세하고 중독성 강한 음악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음악적 산물이 ‘디어 에반 핸슨’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면, 또 다른 매력은 마이클 그라이프다. 그는 우리나라 뮤지컬 마니아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넥스트 투 노멀’과 ‘렌트’ 그리고 최근에 국내에 선보여 인기를 누렸던 뮤지컬 ‘이프 덴’을 만든 연출가다. 내면의 이야기나 정신적 방황을 잘 묘사해내는 그의 연출 스타일은 ‘디어 에반 핸슨’에도 잘 녹여져 관객들을 쉴 새 없이 자극한다. 왕따 문제가 공공연한 교육계 이슈로 부각되고, SNS의 과도한 영향력이나 인플루언서의 사생활이 너무 쉽게 논란을 불러오고 또 휘발되는 작금의 우리 대중들에게 이 작품이 적절히 그리고 잘 공명되는 이유는 너무도 그럴싸한 이야기와 무대 연출의 매력이 어우러지며 효과적으로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키는 탓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디어 에반 핸슨’은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2021년 처음 선을 보인 뮤지컬 영화는 무대의 성공을 이어가는 실험을 시도하듯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벤 플랫을 다시 기용하는 행보를 선보엿다. 하지만, 아쉽게도 흥행은 공연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만 남겼다. 극중 17살 고등학생이었던 에반의 모습을 영화가 제작될 시기 27살이었던 벤 플랫에게서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무리였다는 신랄한 비평도 따랐다. 벤 플랫은 이 작품을 통해 토니상과 에미상, 그래미상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오스카상까지 기록하는 문화계의 그랜드 슬램격인 EGOT까진 달성하지 못했다.
사실 캐스팅이라는 측면으로만 보자면 우리말로 제작된 무대용 뮤지컬이 영화보다 훨씬 원작과의 유사성이 높다고 인정할 만하다. 올해 초연된 우리말 무대에서는 인피니트의 메인 보컬 출신인 김성규가 뮤지컬 배우 박강현과 임규형과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해 무대를 꾸몄다. 쉽지않은 난이도의 음악들을 찌질한 주인공의 연기와 함께 실감나고 설득력 있게 구현해내 애호가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냈다. 한국어 버전이 준비될 당시, 전형적인 뮤지컬 음악이라기보다 팝에 가까운 음악적 스타일 탓에 효과적인 우리말 의미 전달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기우에 불과했다. 여러 창작 뮤지컬들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한정석 작가의 손을 거친 우리말 가사는 어렵지 않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적절한 의역과 변화를 더해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말 번안 뮤지컬들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프로덕션을 구현해낼 수 있음을 믿게 해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이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역시 MZ를 포함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구될만한 환경과 소재 그리고 이야기, 또 설득력이 강한 무대 위 비주얼 효과다.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소문과 추론들이 뮤지컬에서는 강렬한 영상 효과와 시각적 장치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연된다. 등장인물이 느낄 심리적 압박과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낳는 통제되지 않는 인터넷 세상의 상황들, 짐짓 이야기들을 꾸며내는 주인공의 가짜 편지를 코믹하게 묘사하는 장면 등은 이 뮤지컬이 어떻게 치열한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의 각축 속에서 그토록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는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케 한다. 올해 만나볼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뮤지컬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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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스토리와 중독성 강한 선율로 관객을 매료시키다_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도 그런 작품이다. 2015년 워싱턴에서 처음 막을 올린 후 소극장을 거쳐 브로드웨이에서 큰 흥행을 기록하며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쓰는 대파란을 연출했다. 화려하거나 특출난 주인공이 아닌, 흔히 ‘아싸’라 불리며 주목받지 못하던 주인공의 이야기가 이토록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리라곤 쉽게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캐나다, 영국, 아르헨티나, 핀란드, 이스라엘, 호주 그리고 마침내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막을 올리며 글로벌 흥행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이야기는 평범하게 시작된다. 사회불안장애를 겪고 있던 주인공 에반 핸슨은 주치의로부터 스스로에게 편지를 써보라는 권유는 받는다. 제목인 ‘디어 에반 핸슨’은 영어권에서 편지를 쓸 때 자주 활용하는 첫 문구인 ‘에반 핸슨에게’라는 의미다. 이야기는 에반과 비슷한 ‘아싸’지만 부유한 가정의 문제아 코너 머피가 우연히 에반의 편지를 가져가게 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 교장실로 불려가게 된 에반은 코너의 부모를 만나게 되고, 며칠전 그가 자살을 했으며 유서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서의 첫 문장은 바로 ‘디어 에반 핸슨’이었다.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코너의 부모에게 차마 진실을 밝힐 수 없던 에반은 자신이 코너와 절친이었다 거짓말을 한다. 문제는 아무리 선한 의도로 시작한 거짓이었다 해도 점차 그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 게다가 이 일을 계기로 에반은 평소 짝사랑하던 코너의 여동생 조이와 연인으로 발전하고, 우여곡절 끝에 편지가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사건은 확대되어간다. 에반의 선한 거짓말은 알파만파로 확산되며 거짓이 또 따른 거짓을 낳게 되는 상황이 전개된다. 에반이 과연 사건을 수습하게 될지, 또 스스로를 바라보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뮤지컬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물론 절대적이다. 뮤지컬의 작사가나 작곡가가 관극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디어 에반 핸슨’은 꽤나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음악을 만든 제작진이 바로 파섹 앤 폴이기 때문이다. 파섹 앤 폴은 미시간 대학교에서 동문수학하던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을 콤비로 부르는 이름이다. 이들이 만든 작품이 바로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할 만큼 검증받은 음악가들의 저력을 뮤지컬 ‘디어 에반 헨슨’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뮤지컬이 이들 콤비의 작품 중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인 경우는 아니다. 베트남 전쟁 파병을 하루 앞둔 미 해병과 순진한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도그파이트’도 이미 우리말 무대가 꾸며진 적이 있다. 파섹 앤 폴 특유의 섬세하고 중독성 강한 음악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음악적 산물이 ‘디어 에반 핸슨’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면, 또 다른 매력은 마이클 그라이프다. 그는 우리나라 뮤지컬 마니아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넥스트 투 노멀’과 ‘렌트’ 그리고 최근에 국내에 선보여 인기를 누렸던 뮤지컬 ‘이프 덴’을 만든 연출가다. 내면의 이야기나 정신적 방황을 잘 묘사해내는 그의 연출 스타일은 ‘디어 에반 핸슨’에도 잘 녹여져 관객들을 쉴 새 없이 자극한다. 왕따 문제가 공공연한 교육계 이슈로 부각되고, SNS의 과도한 영향력이나 인플루언서의 사생활이 너무 쉽게 논란을 불러오고 또 휘발되는 작금의 우리 대중들에게 이 작품이 적절히 그리고 잘 공명되는 이유는 너무도 그럴싸한 이야기와 무대 연출의 매력이 어우러지며 효과적으로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키는 탓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디어 에반 핸슨’은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2021년 처음 선을 보인 뮤지컬 영화는 무대의 성공을 이어가는 실험을 시도하듯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벤 플랫을 다시 기용하는 행보를 선보엿다. 하지만, 아쉽게도 흥행은 공연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만 남겼다. 극중 17살 고등학생이었던 에반의 모습을 영화가 제작될 시기 27살이었던 벤 플랫에게서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무리였다는 신랄한 비평도 따랐다. 벤 플랫은 이 작품을 통해 토니상과 에미상, 그래미상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오스카상까지 기록하는 문화계의 그랜드 슬램격인 EGOT까진 달성하지 못했다.
사실 캐스팅이라는 측면으로만 보자면 우리말로 제작된 무대용 뮤지컬이 영화보다 훨씬 원작과의 유사성이 높다고 인정할 만하다. 올해 초연된 우리말 무대에서는 인피니트의 메인 보컬 출신인 김성규가 뮤지컬 배우 박강현과 임규형과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해 무대를 꾸몄다. 쉽지않은 난이도의 음악들을 찌질한 주인공의 연기와 함께 실감나고 설득력 있게 구현해내 애호가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냈다. 한국어 버전이 준비될 당시, 전형적인 뮤지컬 음악이라기보다 팝에 가까운 음악적 스타일 탓에 효과적인 우리말 의미 전달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기우에 불과했다. 여러 창작 뮤지컬들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한정석 작가의 손을 거친 우리말 가사는 어렵지 않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적절한 의역과 변화를 더해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말 번안 뮤지컬들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프로덕션을 구현해낼 수 있음을 믿게 해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이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역시 MZ를 포함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구될만한 환경과 소재 그리고 이야기, 또 설득력이 강한 무대 위 비주얼 효과다.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소문과 추론들이 뮤지컬에서는 강렬한 영상 효과와 시각적 장치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연된다. 등장인물이 느낄 심리적 압박과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낳는 통제되지 않는 인터넷 세상의 상황들, 짐짓 이야기들을 꾸며내는 주인공의 가짜 편지를 코믹하게 묘사하는 장면 등은 이 뮤지컬이 어떻게 치열한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의 각축 속에서 그토록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는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케 한다. 올해 만나볼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뮤지컬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