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아라리
북쪽으로 오대산부터 반 시계 방향으로 치악산, 소백산, 태백산이 둘러 있는 태백산맥 한가운데에 아라리의 고장 정선이 있다. 고산준령이 첩첩이 어깨를 겯고 방어진을 짠 형세이지만, 아우라지에서 합수해 이 고장을 관통해 흐르는 조양강 강물은 그 틈을 비집고 흘러넘쳐 동강이 되고 남한강이 되어 서해로 향한다. 먼 옛날,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아리랑 또한 물과 함께 흘러 한양에 닿았을 것이다.
아리랑, 아라리 등의 말을 후렴구로 쓰는 아리랑 계통의 노래는 한반도 곳곳에서 그 흔적이 발견된다. 지역별로 전승되는 아리랑만 100곡이 훌쩍 넘고, 전해오는 노랫말(사설)이 수천 수에 이를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일노래, 유희요, 투쟁가 등으로 기능한 아리랑의 노랫말은 사랑과 이별, 신세 한탄, 세태 풍자 등 그 소재도 매우 다채롭다.
정선의 아라리는 강원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정선아리랑’으로 지정되었다. 지정 명칭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아리랑’이지만, 아리랑의 모태로 보기도 하는 ‘아라리’가 강원 전역에서 더 흔하게 불리는 이름이다. 정선의 민요 아라리가 중앙으로 진출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다.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추진하며 백두대간의 나무들이 목재로 쓰였다. 나무는 뗏목으로 만들어 물길 따라 한양으로 옮겼는데, 뗏목 나르는 일을 하던 이들에 의해 정선 아라리가 한양에 전해지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노래를 향토 민요, 전문 음악인들에 의해 다듬어진 노래를 통속 민요라 하는데, 이렇게 수도에 입성한 향토 민요 정선 아라리는 경기 명창들에 의해 통속 민요로 재탄생하게 된다. 정선 아라리 중 긴 아라리는 ‘긴 아리랑’으로, 엮음 아라리는 ‘정선 아리랑’이란 이름으로 경기 명창들의 공연 종목에 포함된 것이다.
오늘날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과 국가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은 향토 민요와 통속 민요를 아우른다. 정선 아리랑과 함께 3대 아리랑으로 꼽는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은 통속 민요에 속한다. 진도 아리랑은 남도 아리랑을 발전시킨 것으로, 남도 명창들이 주로 불렀다. 노랫말에 경상도 지역 사투리나 풍정이 나타나는 밀양 아리랑은 경상도 민요로 보기도 하지만 음악적 특성상 경기 민요에 속하고, 실제 경기 명창들의 공연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리랑’ 하면 떠올리는, 교과서에 실린 노래 역시 영화 음악으로 만들어진 통속 민요 아리랑이다. 나운규가 만든 영화 <아리랑>의 주제 음악으로, 영화가 전국적으로 흥행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곡이다.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기념해 정선군은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아라리>를 제작해 선보였다. 목숨을 걸고 뗏목을 몰아 한양으로 향했던 떼꾼들의 이야기를 아리랑과 버무려 낸 작품으로, 올림픽 후에도 전국 순회공연을 이어가며 8만여 관객을 만났다. 지난해엔 호주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올해 8월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현지 관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는 낭보가 전해지기도 했다.
이 공연은 올해 11월까지 정선 오일장(2일, 7일장)이 서는 날 오후 2시에 정선 아리랑센터 아리랑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장날을 제외한 매주 토요일에는 정선 아리랑 상설 공연 <뗏꾼>이 무대에 오른다. 일제 강점기에 뗏목을 타고 정선 아리랑을 부른 무명의 떼꾼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으로, 정선아리랑 전승교육사 홍동주 등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원들이 선보이는 아리랑을 만나볼 기회다.
10월에는 정선 아리랑제가 열린다. 전국 아리랑 경창대회를 비롯해 아리랑 퍼레이드 등이 정선공설운동장과 아라리공원, 아리랑시장 일원에서 펼쳐진다. 1976년 시작해 올해로 49회째를 맞이한 유서 깊은 축제로, 지역의 특산품과 먹거리 등 향토 문화를 두루 체험할 수 있다. 한편 정선의 민둥산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억새꽃 군락지로, 늦가을까지 이어지는 억새꽃 축제 역시 아라리의 고장에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손색이 없을 듯하다. 꾸밈없이 담박하게 평상심을 노래한 정선의 아라리는 저물어가는 뭇 생명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계절, 가을을 닮았다. 시월에는 웅숭깊은 가을을 만나러, ‘검은산 물밑이라도 해당화가 피는, 살기 좋은 곳’ 정선으로 발걸음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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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라리
북쪽으로 오대산부터 반 시계 방향으로 치악산, 소백산, 태백산이 둘러 있는 태백산맥 한가운데에 아라리의 고장 정선이 있다. 고산준령이 첩첩이 어깨를 겯고 방어진을 짠 형세이지만, 아우라지에서 합수해 이 고장을 관통해 흐르는 조양강 강물은 그 틈을 비집고 흘러넘쳐 동강이 되고 남한강이 되어 서해로 향한다. 먼 옛날,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아리랑 또한 물과 함께 흘러 한양에 닿았을 것이다.
아리랑, 아라리 등의 말을 후렴구로 쓰는 아리랑 계통의 노래는 한반도 곳곳에서 그 흔적이 발견된다. 지역별로 전승되는 아리랑만 100곡이 훌쩍 넘고, 전해오는 노랫말(사설)이 수천 수에 이를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일노래, 유희요, 투쟁가 등으로 기능한 아리랑의 노랫말은 사랑과 이별, 신세 한탄, 세태 풍자 등 그 소재도 매우 다채롭다.
정선의 아라리는 강원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정선아리랑’으로 지정되었다. 지정 명칭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아리랑’이지만, 아리랑의 모태로 보기도 하는 ‘아라리’가 강원 전역에서 더 흔하게 불리는 이름이다. 정선의 민요 아라리가 중앙으로 진출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다.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추진하며 백두대간의 나무들이 목재로 쓰였다. 나무는 뗏목으로 만들어 물길 따라 한양으로 옮겼는데, 뗏목 나르는 일을 하던 이들에 의해 정선 아라리가 한양에 전해지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노래를 향토 민요, 전문 음악인들에 의해 다듬어진 노래를 통속 민요라 하는데, 이렇게 수도에 입성한 향토 민요 정선 아라리는 경기 명창들에 의해 통속 민요로 재탄생하게 된다. 정선 아라리 중 긴 아라리는 ‘긴 아리랑’으로, 엮음 아라리는 ‘정선 아리랑’이란 이름으로 경기 명창들의 공연 종목에 포함된 것이다.
오늘날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과 국가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은 향토 민요와 통속 민요를 아우른다. 정선 아리랑과 함께 3대 아리랑으로 꼽는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은 통속 민요에 속한다. 진도 아리랑은 남도 아리랑을 발전시킨 것으로, 남도 명창들이 주로 불렀다. 노랫말에 경상도 지역 사투리나 풍정이 나타나는 밀양 아리랑은 경상도 민요로 보기도 하지만 음악적 특성상 경기 민요에 속하고, 실제 경기 명창들의 공연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리랑’ 하면 떠올리는, 교과서에 실린 노래 역시 영화 음악으로 만들어진 통속 민요 아리랑이다. 나운규가 만든 영화 <아리랑>의 주제 음악으로, 영화가 전국적으로 흥행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곡이다.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기념해 정선군은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아라리>를 제작해 선보였다. 목숨을 걸고 뗏목을 몰아 한양으로 향했던 떼꾼들의 이야기를 아리랑과 버무려 낸 작품으로, 올림픽 후에도 전국 순회공연을 이어가며 8만여 관객을 만났다. 지난해엔 호주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올해 8월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현지 관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는 낭보가 전해지기도 했다.
이 공연은 올해 11월까지 정선 오일장(2일, 7일장)이 서는 날 오후 2시에 정선 아리랑센터 아리랑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장날을 제외한 매주 토요일에는 정선 아리랑 상설 공연 <뗏꾼>이 무대에 오른다. 일제 강점기에 뗏목을 타고 정선 아리랑을 부른 무명의 떼꾼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으로, 정선아리랑 전승교육사 홍동주 등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원들이 선보이는 아리랑을 만나볼 기회다.
10월에는 정선 아리랑제가 열린다. 전국 아리랑 경창대회를 비롯해 아리랑 퍼레이드 등이 정선공설운동장과 아라리공원, 아리랑시장 일원에서 펼쳐진다. 1976년 시작해 올해로 49회째를 맞이한 유서 깊은 축제로, 지역의 특산품과 먹거리 등 향토 문화를 두루 체험할 수 있다. 한편 정선의 민둥산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억새꽃 군락지로, 늦가을까지 이어지는 억새꽃 축제 역시 아라리의 고장에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손색이 없을 듯하다. 꾸밈없이 담박하게 평상심을 노래한 정선의 아라리는 저물어가는 뭇 생명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계절, 가을을 닮았다. 시월에는 웅숭깊은 가을을 만나러, ‘검은산 물밑이라도 해당화가 피는, 살기 좋은 곳’ 정선으로 발걸음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