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들의 이른 성공
권위있는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으로부터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된 바 있는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홍콩필)는 아시아 대표 오케스트라로 손꼽힌다. 최근 2000년생 24세의 지휘자 타르모 펠토코스키가 뉴욕필 수장을 지냈던 세계적인 지휘자 얍 판 츠베덴 후임으로 홍콩필의 차기 음악감독에 선정되며 화제가 되었다. 작년 지인들로부터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긴 몇몇 지휘자들이 물망에 올랐다고 전해 들었는데 24살의 앳된(?) 지휘자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선출되었다는 점에서 파격적 결정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가장 권위 있는 음반사로 통하는 그라모폰과 계약한 최연소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이 지휘자는 신성한(?) 모차르트 교향곡 음반에 자신이 직접 동시대적인 감성으로 편곡한 모차르트 교향곡의 피아노 버전을 함께 선보이는 '번뜩임'을 선사하기도 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노련한 노장 지휘자의 이미지 그리고 세간에서 얘기하는 지휘자의 전성기는 60세부터라는 속설. 사실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잘 살펴보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세계적인 지휘자들은 대부분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이른 나이에 성공을 거두었다. 나이에 비례한 성공과 업적이라는 공식을 깨는 '영 앤 리치'의 개념은 지휘자 세계에서는 자연스레 통하는 말이다.
우선 몇몇 정상급 지휘자들의 예를 들어보자. L.A필을 17년간 이끌며 전성기를 이끌었던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은 21세의 나이에 핀란드를 대표하는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과 데뷔했으며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하딩은 21세의 나이에 세계 최고의 악단인 베를린 필을 지휘한 최연소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핀란드 출신으로 톱스타 반열에 오른 클라우스 메켈레는 24세 나이에 북유럽 명문악단 오슬로 필하모닉의 수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28세 나이에 로얄 콘세르트헤바우, 시카고 심포니를 비롯하여 4개의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를 책임지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 20세기 전반에 걸친 수많은 정상급 지휘자들 또한 이른 나이에 데뷔했다는 사실이다. 30대 나이에 1935년 독일 아헨 극장의 음악감독 자리에 올랐던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은 당시 독일 최연소 음악감독에 이름을 올린 바 있으며 현재 97세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노장 지휘자 블롬슈테트 또한 27세의 나이에 스웨덴의 명문악단 노르키핑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떠오르는 한가지 의문. 경험을 통해 쌓인 음악적 지식과 연륜 없이도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갈 지휘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지휘자의 성장에 있어 경험이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으나 많은 악단들이 지휘자의 '재능'을 경험보다 더 높게 쳐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보통 지휘자의 재능을 얘기할 때 음악적 역량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스킬, 리더십, 인성 등 여러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데 노련함은 없어도 될성부른 떡잎임이 입증되면 기회를 준다는 얘기다. 20대 중반의 새내기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를 수장으로 선택한 오슬로 필하모닉 단원들은 그에 대해 나이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오케스트라 전체를 사로잡는 재능을 가진 지휘자'라고 입을 모은다.
연습지휘자로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던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하딩의 일화를 소개한다. 17세 나이에 그는 학생들과 함께 녹음한 음악을 버밍험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에게 보냈고 그의 재능을 간파한 래틀은 그를 단번에 부지휘자로 기용했다. 19세에 버밍험 시립 교향악단 지휘, 21세에 최연소 베를린 필 지휘라는 놀라운 이력을 써 내려간 그가 기회를 잡게 된 이유는 경험은 전무했지만 지휘자로서의 재능을 높이 샀던 지휘자와 단원들의 이해심과 배려다. 게다가 전통에 있어 진심인 빈 필과 함께 슈만 교향곡과 같은 낭만시대 음악에 고전주의 시대 연주방식을 절충해서 도입하는 등 해석에 있어 늘 신선함을 추구하는 면모도 갖췄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평소에 그의 어시스턴트를 지냈던 하딩을 '나의 작은 천재'라고 부르며 아꼈다고 한다.
지휘야말로 그 어떤 분야보다 '나이'라는 장벽이 사라진 지 오래다. 해외에서는 20대 지휘자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한국에서도 30대 젊은 지휘자들이 점차 등용되면서 오랜 시간을 통해 연륜을 쌓은 지휘자에게 자동으로 후한 점수를 주는 인식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과거의 음악을 반복해서 재현하는 클래식의 특성상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나이 든 지휘자보다 경험은 부족해도 새로운 시도에 거침없는 젊은 지휘자가 가져올 참신성에 더욱 주목하는 세상이다.
공연의 흥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젊은 지휘자는 매력적이다. 예전 유명 매니지먼트의 직원이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나이가 지긋한 유명 마에스트로는 누적된 음악적 깊이와 업적으로 인한 흥행이 보장되어 있고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콩쿠르에 갓 입상하거나 주요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활동하는 재능이 입증된 20~30대의 젊은 지휘자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른 성공은 위험하다고 했던가. 지휘계에서는 통하는 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른 성공을 거둔 수많은 지휘자들이 탄탄대로를 걸으며 노련한 대가로 성장했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경험 없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해 주고 재능이 꽃피울 수 있도록 기다려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이해심과 배려라는 사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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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들의 이른 성공
권위있는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으로부터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된 바 있는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홍콩필)는 아시아 대표 오케스트라로 손꼽힌다. 최근 2000년생 24세의 지휘자 타르모 펠토코스키가 뉴욕필 수장을 지냈던 세계적인 지휘자 얍 판 츠베덴 후임으로 홍콩필의 차기 음악감독에 선정되며 화제가 되었다. 작년 지인들로부터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긴 몇몇 지휘자들이 물망에 올랐다고 전해 들었는데 24살의 앳된(?) 지휘자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선출되었다는 점에서 파격적 결정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가장 권위 있는 음반사로 통하는 그라모폰과 계약한 최연소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이 지휘자는 신성한(?) 모차르트 교향곡 음반에 자신이 직접 동시대적인 감성으로 편곡한 모차르트 교향곡의 피아노 버전을 함께 선보이는 '번뜩임'을 선사하기도 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노련한 노장 지휘자의 이미지 그리고 세간에서 얘기하는 지휘자의 전성기는 60세부터라는 속설. 사실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잘 살펴보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세계적인 지휘자들은 대부분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이른 나이에 성공을 거두었다. 나이에 비례한 성공과 업적이라는 공식을 깨는 '영 앤 리치'의 개념은 지휘자 세계에서는 자연스레 통하는 말이다.
우선 몇몇 정상급 지휘자들의 예를 들어보자. L.A필을 17년간 이끌며 전성기를 이끌었던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은 21세의 나이에 핀란드를 대표하는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과 데뷔했으며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하딩은 21세의 나이에 세계 최고의 악단인 베를린 필을 지휘한 최연소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핀란드 출신으로 톱스타 반열에 오른 클라우스 메켈레는 24세 나이에 북유럽 명문악단 오슬로 필하모닉의 수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28세 나이에 로얄 콘세르트헤바우, 시카고 심포니를 비롯하여 4개의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를 책임지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 20세기 전반에 걸친 수많은 정상급 지휘자들 또한 이른 나이에 데뷔했다는 사실이다. 30대 나이에 1935년 독일 아헨 극장의 음악감독 자리에 올랐던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은 당시 독일 최연소 음악감독에 이름을 올린 바 있으며 현재 97세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노장 지휘자 블롬슈테트 또한 27세의 나이에 스웨덴의 명문악단 노르키핑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떠오르는 한가지 의문. 경험을 통해 쌓인 음악적 지식과 연륜 없이도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갈 지휘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지휘자의 성장에 있어 경험이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으나 많은 악단들이 지휘자의 '재능'을 경험보다 더 높게 쳐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보통 지휘자의 재능을 얘기할 때 음악적 역량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스킬, 리더십, 인성 등 여러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데 노련함은 없어도 될성부른 떡잎임이 입증되면 기회를 준다는 얘기다. 20대 중반의 새내기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를 수장으로 선택한 오슬로 필하모닉 단원들은 그에 대해 나이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오케스트라 전체를 사로잡는 재능을 가진 지휘자'라고 입을 모은다.
연습지휘자로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던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하딩의 일화를 소개한다. 17세 나이에 그는 학생들과 함께 녹음한 음악을 버밍험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에게 보냈고 그의 재능을 간파한 래틀은 그를 단번에 부지휘자로 기용했다. 19세에 버밍험 시립 교향악단 지휘, 21세에 최연소 베를린 필 지휘라는 놀라운 이력을 써 내려간 그가 기회를 잡게 된 이유는 경험은 전무했지만 지휘자로서의 재능을 높이 샀던 지휘자와 단원들의 이해심과 배려다. 게다가 전통에 있어 진심인 빈 필과 함께 슈만 교향곡과 같은 낭만시대 음악에 고전주의 시대 연주방식을 절충해서 도입하는 등 해석에 있어 늘 신선함을 추구하는 면모도 갖췄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평소에 그의 어시스턴트를 지냈던 하딩을 '나의 작은 천재'라고 부르며 아꼈다고 한다.
지휘야말로 그 어떤 분야보다 '나이'라는 장벽이 사라진 지 오래다. 해외에서는 20대 지휘자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한국에서도 30대 젊은 지휘자들이 점차 등용되면서 오랜 시간을 통해 연륜을 쌓은 지휘자에게 자동으로 후한 점수를 주는 인식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과거의 음악을 반복해서 재현하는 클래식의 특성상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나이 든 지휘자보다 경험은 부족해도 새로운 시도에 거침없는 젊은 지휘자가 가져올 참신성에 더욱 주목하는 세상이다.
공연의 흥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젊은 지휘자는 매력적이다. 예전 유명 매니지먼트의 직원이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나이가 지긋한 유명 마에스트로는 누적된 음악적 깊이와 업적으로 인한 흥행이 보장되어 있고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콩쿠르에 갓 입상하거나 주요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활동하는 재능이 입증된 20~30대의 젊은 지휘자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른 성공은 위험하다고 했던가. 지휘계에서는 통하는 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른 성공을 거둔 수많은 지휘자들이 탄탄대로를 걸으며 노련한 대가로 성장했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경험 없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해 주고 재능이 꽃피울 수 있도록 기다려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이해심과 배려라는 사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