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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비탄과 두려움이 아닌 낭만
아드리엘김.
입력 2024-12-23 13: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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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죽음의 섬>의 첫 번째 버전

비탄과 두려움이 아닌 낭만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시, 죽음의 섬 Op.29

20세기 러시아 후기낭만의 정점을 찍은 인물로 평가받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클래식 작곡가로 통하며 이는 티켓 파워로도 증명된다. 특히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영상이 세간의 화제를 모으며 장르를 뛰어넘어 라흐마니노프의 인기는 치솟았다.

3개의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들만으로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라흐마니노프가 내놓은 교향시 <죽음의 섬 Isle of the Dead>은 비교적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작품으로 라흐마니노프 덕후라면 지나칠 수 없는 불후의 명곡이다.

1907년 5월, 본인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의 협연자로 직접 나선 그가 파리에 머무르며 마주하게 된 그림 한 점. 스위스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öklin)의 '죽음의 섬'이라는 스산한 타이틀의 작품으로 흑백 복제화를 보고 감명을 받은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에 착수하여 1909년 초연 무대에 올렸다.

죽음이라는 모티브에 오랫동안 경도되었던 화가 뵈클린이 그린 죽음의 섬은 관을 실은 한 척의 배에 올라 섬으로 향하는 흰 옷의 인물과 가파른 절벽과 어우러진 섬 중앙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눈길을 끄는 작은 섬을 묘사하고 있다. 첫번째 약혼자와 사별했으며 열 네 명의 자녀 중 여덟 명을 먼저 떠내보낸 그에게 죽음은 그 누구보다도 가깝고 현실적인 개념으로 다가왔을 터. 뵈클린은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남기지 않았는데 그림 속의 인물은 그리스 신화에서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뱃사공 카론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무명의 뵈클린을 유명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이 작품은 5가지 버전이 존재하는데 1차 세계대전 중 병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엽서 그림으로 통했고 독재자 히틀러도 열렬한 팬으로서 세번째 버전을 소유한 바 있다.

이 그림이 주목받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이미지가 가져다주는 스산함뿐 아니라 고요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낭만성을 자아낸다는 점인데 흥미로운 사실은 죽음의 섬은 화가가 붙인 제목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죽은 남편을 애도하기 위해 그림을 주문한 '마리 베르나'라는 여성의 요청에 의해 그림의 주요 핵심인 사공과 관이 추가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죽음으로 인한 슬픈 이별에 대한 정서 이면에 화가 본연의 낭만적 정서가 감지되는 단서이기도 하다.

이 그림을 묘사하고자 했던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분명 마냥 침울하거나 어둡기만 하지 않다. 죽음을 암시하듯 어두운 색조의 저음부로 포문을 연 음악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며 후기 낭만시대 특유의 관현악 색채를 한껏 펼쳐내며 서정성과 낭만성을 뿜어낸다. 도입부의 5/8박자의 변박을 통해  묘사한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죽음'으로 전진하는 배, 곳곳에 장조의 악상을 안배하여 희망의 불씨를 살린 라흐마니노프의 죽음에 대한 이상, 덧붙여 레퀴엠의 '진노의 날(Dies Irae)' 테마를 심어놓아 죽음에 대한 숙연함 또한 놓치지 않았다. 그림 속의 죽음에 대한 물리적 실체는 회화적인 묘사를 뛰어넘어 자유롭고 아름다운 라흐마니노프의 낭만적 악상 속에 녹아들어 있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염세주의자에 가까웠던 라흐마니노프가 바라본 비탄의 '죽음' 그 자체가 아닌 '죽음의 섬'이라는 작품을 관조적으로 묘사함으로서 듣는 이로 하여금 무거운 정서보다는 고요함과 존엄함 그리고 그 저변의 낭만적 정서로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 추천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dbbtmskCRUY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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