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에 가려진 진실, 사랑을 노래하다 / 뮤지컬 <마타하리>
세상은 늘 선택의 순간으로 가득 차 있다. 살을 엘 듯한 추위와 공포, ‘살아가는 법’ 대신 ‘살아남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던 여인에게 눈앞에 놓인 선택은 자의보다 타의에 가까웠다.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던 그가 운명처럼 만난 인연을 통해 새 이름을 얻고 향한 곳은 또 다른 위험이었다. 아픈 과거를 딛고 일어설 기회 역시 선택에 따른 결과였다. 하지만 이번 선택만큼은 달랐다. 희대의 스파이라 불린 ‘마타하리’는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을 기꺼이 ‘선택’했다.
EMK뮤지컬컴퍼니의 창작뮤지컬 <마타하리>가 네 번째 시즌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지난해 12월 5일 서울 LG아트센터 LG SIGNATURE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를 받고 프랑스 당국에 체포돼 총살로 생을 마감한 무희 마타하리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운 만큼 역사에 기반을 두면서도 적절한 상상력을 가미해 만든 전개는 2022년에 선보였던 3연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신 특정 캐릭터의 역할을 하나로 집중하면서 몰입감을 높이고, 무대 장치나 연출 등에 섬세한 변화를 주었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한 캐스팅은 올 시즌 ‘마타하리’를 향한 기대감을 높였다. 먼저 타이틀롤 마타하리 역은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옥주현, 솔라가 다시 맡았다. 그리고 마타하리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연인이자 곧은 신념을 지닌 프랑스 공군 조종사 아르망 역에는 에녹, 김성식, 윤소호가 이름을 올렸고, 마타하리를 향한 끝없는 집착 탓에 모두를 위기로 몰아넣는 프랑스 정보부 소속 대령 라두 역으로는 최민철, 노윤이 함께한다. 여기에 마타하리의 구원자이자 버팀목이 된 안나 역 최나래, 윤사봉, 야망으로 가득 찬 국방부 장관 펭르베 역 김주호, 홍경수가 같이 무대에 오르며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뮤지컬 <마타하리>는 ‘마타하리’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여인 마가레타 거투르드 젤르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마가레타는 네덜란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업 실패 이후 역경과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과 마주하게 된다.
살고자 했던 의지는 잔인한 운명 속에서도 찬란히 빛났다. 목숨을 끊으려 숨어들었던 숲에서 신비로운 자바 여인들의 춤을 본 마가레타는 마음 깊이 위로 받으며 고통스러운 과거를 잠시나마 묻어두고 새 삶을 위한 길로 나아간다. 살아남기 위해 도망친 파리에서 우연히 만난 안나가 꺼져가던 생의 불씨에 의지를 북돋는다. ‘새벽의 눈’이라는 뜻처럼 신비롭고도 고혹적인 무희 ‘마타하리’는 불안정한 시대상마저 잊게 할 만큼 매력 넘치는 춤으로 모두의 마음을 훔친다. 유럽 사교계 유명인이 돼 승승가도를 달리던 그에게 불쑥 다가온 아르망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미래를 꿈꾸게 만든 또 하나의 의지였다. 전쟁 속에 피어난 사랑은 마타하리가 아닌 마가레타도 행복한 내일을 꿈꿀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마타하리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질투에 휩싸인 라두 대령의 계략으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은 국경을 넘나들며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누구도 믿지 못할 상황에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여인이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은 베일에 가려진 슬픔의 깊이만큼이나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적이다. 누군가는 그를 그저 ‘국가의 명을 따르지 않은 배신자’나 ‘돈을 벌기 위해 몸을 던진 스트립 댄서’ 정도로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뮤지컬은 마타하리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했다. 독특하게도 마타하리 이야기가 무대 위로 펼쳐지는 동안 마가레타가 같이 등장해 마타하리의 과거와 내면을 표현하는데, 가상의 존재로서 복잡한 감정을 오직 춤으로만 표현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거짓으로 포장해야 했으나 사실 누구보다 진실했던 여인의 삶은 무대 위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며 안타까움을 더한다.
마타하리 역 솔라의 무대는 완성도 높은 작품에 넘치는 매력을 선사했다. 작고 가녀린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와 안정적이면서도 폭발적인 가창력, 매혹적인 음색, 한층 더 성숙해진 연기가 좌중을 압도한다. 특히 <마타하리>의 핵심과도 같은 ‘사원의 춤’과 ‘마지막 순간’은 눈길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각인된다. 여기에 무한한 사랑으로 연인의 아픔을 감싸는 아르망 역 김성식과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한 라두 역 노윤도 조화롭게 어울린다.
<웃는 남자>, <몬테크리스토>, <지킬 앤 하이드> 등 유명 뮤지컬 작곡을 맡은 프랭크 와일드혼과 작사가 잭 머피의 아름다운 음악 외 풍성한 볼거리 또한 <마타하리>의 강점이다.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를 재현한 고풍스러운 세트와 200벌이 넘는 배우들의 의상은 마치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느덧 얼마 남지 않은 올 연말과 다가오는 연초를 풍성하게 장식할 <마타하리>는 오는 2025년 3월 2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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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에 가려진 진실, 사랑을 노래하다 / 뮤지컬 <마타하리>
세상은 늘 선택의 순간으로 가득 차 있다. 살을 엘 듯한 추위와 공포, ‘살아가는 법’ 대신 ‘살아남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던 여인에게 눈앞에 놓인 선택은 자의보다 타의에 가까웠다.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던 그가 운명처럼 만난 인연을 통해 새 이름을 얻고 향한 곳은 또 다른 위험이었다. 아픈 과거를 딛고 일어설 기회 역시 선택에 따른 결과였다. 하지만 이번 선택만큼은 달랐다. 희대의 스파이라 불린 ‘마타하리’는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을 기꺼이 ‘선택’했다.
EMK뮤지컬컴퍼니의 창작뮤지컬 <마타하리>가 네 번째 시즌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지난해 12월 5일 서울 LG아트센터 LG SIGNATURE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를 받고 프랑스 당국에 체포돼 총살로 생을 마감한 무희 마타하리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운 만큼 역사에 기반을 두면서도 적절한 상상력을 가미해 만든 전개는 2022년에 선보였던 3연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신 특정 캐릭터의 역할을 하나로 집중하면서 몰입감을 높이고, 무대 장치나 연출 등에 섬세한 변화를 주었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한 캐스팅은 올 시즌 ‘마타하리’를 향한 기대감을 높였다. 먼저 타이틀롤 마타하리 역은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옥주현, 솔라가 다시 맡았다. 그리고 마타하리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연인이자 곧은 신념을 지닌 프랑스 공군 조종사 아르망 역에는 에녹, 김성식, 윤소호가 이름을 올렸고, 마타하리를 향한 끝없는 집착 탓에 모두를 위기로 몰아넣는 프랑스 정보부 소속 대령 라두 역으로는 최민철, 노윤이 함께한다. 여기에 마타하리의 구원자이자 버팀목이 된 안나 역 최나래, 윤사봉, 야망으로 가득 찬 국방부 장관 펭르베 역 김주호, 홍경수가 같이 무대에 오르며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뮤지컬 <마타하리>는 ‘마타하리’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여인 마가레타 거투르드 젤르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마가레타는 네덜란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업 실패 이후 역경과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과 마주하게 된다.
살고자 했던 의지는 잔인한 운명 속에서도 찬란히 빛났다. 목숨을 끊으려 숨어들었던 숲에서 신비로운 자바 여인들의 춤을 본 마가레타는 마음 깊이 위로 받으며 고통스러운 과거를 잠시나마 묻어두고 새 삶을 위한 길로 나아간다. 살아남기 위해 도망친 파리에서 우연히 만난 안나가 꺼져가던 생의 불씨에 의지를 북돋는다. ‘새벽의 눈’이라는 뜻처럼 신비롭고도 고혹적인 무희 ‘마타하리’는 불안정한 시대상마저 잊게 할 만큼 매력 넘치는 춤으로 모두의 마음을 훔친다. 유럽 사교계 유명인이 돼 승승가도를 달리던 그에게 불쑥 다가온 아르망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미래를 꿈꾸게 만든 또 하나의 의지였다. 전쟁 속에 피어난 사랑은 마타하리가 아닌 마가레타도 행복한 내일을 꿈꿀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마타하리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질투에 휩싸인 라두 대령의 계략으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은 국경을 넘나들며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누구도 믿지 못할 상황에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여인이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은 베일에 가려진 슬픔의 깊이만큼이나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적이다. 누군가는 그를 그저 ‘국가의 명을 따르지 않은 배신자’나 ‘돈을 벌기 위해 몸을 던진 스트립 댄서’ 정도로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뮤지컬은 마타하리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했다. 독특하게도 마타하리 이야기가 무대 위로 펼쳐지는 동안 마가레타가 같이 등장해 마타하리의 과거와 내면을 표현하는데, 가상의 존재로서 복잡한 감정을 오직 춤으로만 표현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거짓으로 포장해야 했으나 사실 누구보다 진실했던 여인의 삶은 무대 위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며 안타까움을 더한다.
마타하리 역 솔라의 무대는 완성도 높은 작품에 넘치는 매력을 선사했다. 작고 가녀린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와 안정적이면서도 폭발적인 가창력, 매혹적인 음색, 한층 더 성숙해진 연기가 좌중을 압도한다. 특히 <마타하리>의 핵심과도 같은 ‘사원의 춤’과 ‘마지막 순간’은 눈길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각인된다. 여기에 무한한 사랑으로 연인의 아픔을 감싸는 아르망 역 김성식과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한 라두 역 노윤도 조화롭게 어울린다.
<웃는 남자>, <몬테크리스토>, <지킬 앤 하이드> 등 유명 뮤지컬 작곡을 맡은 프랭크 와일드혼과 작사가 잭 머피의 아름다운 음악 외 풍성한 볼거리 또한 <마타하리>의 강점이다.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를 재현한 고풍스러운 세트와 200벌이 넘는 배우들의 의상은 마치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느덧 얼마 남지 않은 올 연말과 다가오는 연초를 풍성하게 장식할 <마타하리>는 오는 2025년 3월 2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