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거슬러 스크린 속으로, ‘위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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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개봉한 ‘위키드’(감독 존 추)는 1995년에 발표된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소설, ‘위키드: 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소설 보다는 2003년 초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를 영화화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뮤지컬 ‘위키드’는 소설의 방대한 세계관을 간결하게 축약하면서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도 가볍고 발랄하게 바꾸어 놓아 2000년대 중반 이후 가장 인기 있는 뮤지컬로 꼽힌다. 영화 ‘위키드’도 뮤지컬의 밝은 톤 앤 매너와 음악들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소설과 달리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다.
‘위키드’의 음악들을 작곡한 스티븐 슈워츠는 뉴욕 출신으로 연극학을 전공한 후 브로드웨이에서 일하다 음악감독직을 제안받는다. 1971년에 작곡과 작사를 맡았던 ‘가스펠’은 그에게 두 개의 그레미상을 포함한 여러 상을 안겨주었고, 1970년대 중반부터 그의 공연들은 대히트를 치기 시작했다. 제작비 130억이 들어간 ‘위키드’는 10년 넘게 브로드웨이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흥행작으로, 스티브 슈워츠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그의 완성도 높은 넘버들은 화려한 세트, 탄탄한 스토리와 잘 어우러지며 계속해서 두터운 팬덤을 쌓아가고 있다.
영화의 삽입곡들은 대부분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지만, 몇몇 곡들은 촬영장에서 부른 것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캐릭터의 감정과 현장감을 함께 살리기 위한 훌륭한 선택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준다. ‘위키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넘버는 ‘중력을 거슬러(Defying Gravity)’라는 곡으로 마법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엘파가’(신시아 에리보)가 마법사의 불의의 맞서기로 결심하는 대목에서 부른다. ‘한계는 무너졌어. 내 길을 갈거야...(중략)... 우리가 함께 중력을 벗어나면 아무도 우릴 막지 못할 거야’ 라는 대사가 감정적 깊이를 드러내는 스티븐 슈워츠의 강렬한 선율과 함께 ‘위키드’ part1의 대미를 장식하면 관객들의 가슴 속에서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엘파바가 무대 공연의 한계를 벗어나 스크린에서 마음껏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에서는 왜 이 뮤지컬이 영화화 되어야만 했는지도 알 수 있다.
뮤지컬의 2막에 해당하는 ‘위키드’ part2는 올 연말 개봉 예정이다.
윤성은의 픽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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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 무어가 출연한 스릴러, ‘서브스턴스’(감독 코랄리 파르자)가 화제다. 지난 달 11일에 개봉한 ‘서브스턴스’는 연말 성수기를 맞은 블록버스터들의 공세 속에서도 스크린을 사수하며 소소하게 흥행중이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바 있는 이 영화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신선한 소재와 충격적 표현이 특징이다. 전자는 긍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지만, 후자는 부정적 평가도 동반한다. 이 영화는 젊음에 대한 과도한 욕망이 자신을 망가뜨려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후반부의 극단적 이미지와 내용 전개는 그 욕망만큼이나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주제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인 방식이었는지, 영화에 대한 거부감만 조장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관객들 각자의 몫이다.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한 때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했던 스타였지만 지금은 TV에서 에어로빅쇼를 진행하는 한물 간 배우다. 엘리자베스가 50살 생일을 맞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는 진행자를 어리고 섹시한 여성으로 교체하겠다며 그녀를 해고해 버린다. 마침 그 날, 차사고로 병원에 간 그녀에게 한 범상치 않은 간호사가 젊음과 미모를 가져다준다는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해오자 엘리자베스는 장고 끝에 주문 전화를 건다. 놀랍게도 서브스턴스는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젊고 완벽한 미모를 가진 ‘수’(마가렛 퀄리)를 탄생시키고, 수는 엘리자베스의 후임으로 TV쇼를 맡게 된다. 단, 이 약물에는 일주일 간격으로 본래의 몸과 새로운 몸을 교체해야 한다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처음에는 수와 엘리자베스가 균형을 잘 잡아가는 듯 보였지만 점점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 수는 결국 그 규칙을 깨뜨리고 만다. 그리고 수가 더 많은 날들을 점유할수록 엘리자베스의 몸은 급속도로 노화를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가 새로운 육체를 포기하지 못하자 수는 급기야 엘리자베스 없이 살기로 결심한다. 서브스턴스 판매자가 반복해서 말하듯 둘은 한 사람이다.
영화는 나이 든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시선, 젊음과 아름다움을 동일시하는 시각을 비판하는 한편,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끔찍한 최후를 보여준다. 완벽한 미모만을 스타의 조건으로 내거는 방송계의 생리도 사회악으로 묘사된다. 영화의 스타일은 명확한 주제의식만큼이나 자극적이다. 카메라는 초반부터 신체나 사물을 자주 극접사(익스트림 클로즈 업)로 보여주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엽기적인 사건들과 이미지가 난무하는 후반부에서는 메스꺼움과 구토까지 유발한다. 인간의 신체는 낱낱이 분해되었다가 다시 아무렇게나 뭉쳐지고, 새해전야 쇼의 녹화장은 공포영화, ‘캐리’(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의 파티장처럼 새빨간 피로 물들어 버린다. 이 기괴하고도 괴팍한 마무리는 매우 독창적인 반면, 비호감도 유발시킨다. 3분의 2 지점까지 아삭한 식감을 유지하던 영화가 갑자기 쉰내가 날 정도로 폭삭 익어버린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설지 않은 주제를 참신한 설정으로 흥미진진하게 끌어간 점이나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데미 무어의 농익은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단, 비위가 약한 관객들에게는 비닐 봉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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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을 거슬러 스크린 속으로, ‘위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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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개봉한 ‘위키드’(감독 존 추)는 1995년에 발표된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소설, ‘위키드: 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소설 보다는 2003년 초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를 영화화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뮤지컬 ‘위키드’는 소설의 방대한 세계관을 간결하게 축약하면서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도 가볍고 발랄하게 바꾸어 놓아 2000년대 중반 이후 가장 인기 있는 뮤지컬로 꼽힌다. 영화 ‘위키드’도 뮤지컬의 밝은 톤 앤 매너와 음악들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소설과 달리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다.
‘위키드’의 음악들을 작곡한 스티븐 슈워츠는 뉴욕 출신으로 연극학을 전공한 후 브로드웨이에서 일하다 음악감독직을 제안받는다. 1971년에 작곡과 작사를 맡았던 ‘가스펠’은 그에게 두 개의 그레미상을 포함한 여러 상을 안겨주었고, 1970년대 중반부터 그의 공연들은 대히트를 치기 시작했다. 제작비 130억이 들어간 ‘위키드’는 10년 넘게 브로드웨이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흥행작으로, 스티브 슈워츠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그의 완성도 높은 넘버들은 화려한 세트, 탄탄한 스토리와 잘 어우러지며 계속해서 두터운 팬덤을 쌓아가고 있다.
영화의 삽입곡들은 대부분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지만, 몇몇 곡들은 촬영장에서 부른 것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캐릭터의 감정과 현장감을 함께 살리기 위한 훌륭한 선택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준다. ‘위키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넘버는 ‘중력을 거슬러(Defying Gravity)’라는 곡으로 마법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엘파가’(신시아 에리보)가 마법사의 불의의 맞서기로 결심하는 대목에서 부른다. ‘한계는 무너졌어. 내 길을 갈거야...(중략)... 우리가 함께 중력을 벗어나면 아무도 우릴 막지 못할 거야’ 라는 대사가 감정적 깊이를 드러내는 스티븐 슈워츠의 강렬한 선율과 함께 ‘위키드’ part1의 대미를 장식하면 관객들의 가슴 속에서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엘파바가 무대 공연의 한계를 벗어나 스크린에서 마음껏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에서는 왜 이 뮤지컬이 영화화 되어야만 했는지도 알 수 있다.
뮤지컬의 2막에 해당하는 ‘위키드’ part2는 올 연말 개봉 예정이다.
윤성은의 픽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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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 무어가 출연한 스릴러, ‘서브스턴스’(감독 코랄리 파르자)가 화제다. 지난 달 11일에 개봉한 ‘서브스턴스’는 연말 성수기를 맞은 블록버스터들의 공세 속에서도 스크린을 사수하며 소소하게 흥행중이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바 있는 이 영화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신선한 소재와 충격적 표현이 특징이다. 전자는 긍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지만, 후자는 부정적 평가도 동반한다. 이 영화는 젊음에 대한 과도한 욕망이 자신을 망가뜨려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후반부의 극단적 이미지와 내용 전개는 그 욕망만큼이나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주제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인 방식이었는지, 영화에 대한 거부감만 조장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관객들 각자의 몫이다.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한 때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했던 스타였지만 지금은 TV에서 에어로빅쇼를 진행하는 한물 간 배우다. 엘리자베스가 50살 생일을 맞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는 진행자를 어리고 섹시한 여성으로 교체하겠다며 그녀를 해고해 버린다. 마침 그 날, 차사고로 병원에 간 그녀에게 한 범상치 않은 간호사가 젊음과 미모를 가져다준다는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해오자 엘리자베스는 장고 끝에 주문 전화를 건다. 놀랍게도 서브스턴스는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젊고 완벽한 미모를 가진 ‘수’(마가렛 퀄리)를 탄생시키고, 수는 엘리자베스의 후임으로 TV쇼를 맡게 된다. 단, 이 약물에는 일주일 간격으로 본래의 몸과 새로운 몸을 교체해야 한다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처음에는 수와 엘리자베스가 균형을 잘 잡아가는 듯 보였지만 점점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 수는 결국 그 규칙을 깨뜨리고 만다. 그리고 수가 더 많은 날들을 점유할수록 엘리자베스의 몸은 급속도로 노화를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가 새로운 육체를 포기하지 못하자 수는 급기야 엘리자베스 없이 살기로 결심한다. 서브스턴스 판매자가 반복해서 말하듯 둘은 한 사람이다.
영화는 나이 든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시선, 젊음과 아름다움을 동일시하는 시각을 비판하는 한편,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끔찍한 최후를 보여준다. 완벽한 미모만을 스타의 조건으로 내거는 방송계의 생리도 사회악으로 묘사된다. 영화의 스타일은 명확한 주제의식만큼이나 자극적이다. 카메라는 초반부터 신체나 사물을 자주 극접사(익스트림 클로즈 업)로 보여주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엽기적인 사건들과 이미지가 난무하는 후반부에서는 메스꺼움과 구토까지 유발한다. 인간의 신체는 낱낱이 분해되었다가 다시 아무렇게나 뭉쳐지고, 새해전야 쇼의 녹화장은 공포영화, ‘캐리’(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의 파티장처럼 새빨간 피로 물들어 버린다. 이 기괴하고도 괴팍한 마무리는 매우 독창적인 반면, 비호감도 유발시킨다. 3분의 2 지점까지 아삭한 식감을 유지하던 영화가 갑자기 쉰내가 날 정도로 폭삭 익어버린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설지 않은 주제를 참신한 설정으로 흥미진진하게 끌어간 점이나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데미 무어의 농익은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단, 비위가 약한 관객들에게는 비닐 봉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