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267> 친절한 상술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2-13 09:38 수정 최종수정 2019-02-2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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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1979-1982년 동경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대학 구내에 있는 생활협동조합 (보통 生協, 즉 ‘세이꾜’라고 불렀다)에 가전(家電) 제품과 문방구 등을 파는 코너가 있었다. 가전 제품에는 거의 늘 “안 사면 손해, 전시 품목에 한해 50% 할인!” 같은 충격적인 광고가 붙어 있었다. 나도 당장 사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뺏길 것 같은 초초한 마음으로 아침 일찍 달려가 쏘니 티브이를 한대 산 적이 있었다.

문방구 코너에 가면 자잘한 아이디어 상품이 너무 많았다. 특히 신기했던 것은 요즘의 컴퓨터 마우스 만한 크기의 탁상용 고무지우개 파편 흡입기 (진공 청소기)였다. 소형 밧데리로 작동되는 것이었는데 연필로 쓴 글씨를 지우개로 지웠을 때 생기는 고무나 종이 파편을 제거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가볍게 누르면 귀여운 엥~ 소리와 함께 파편을 흡인하는 모습이 얼마나 앙증맞던지!

그러나 탁상용 진공청소기보다 내가 더 감탄했던 것은 문장 중 잘못 쓴 글자만을 선택적으로 지울 수 있도록 다양한 크기의 구멍들을 뚫어 놓은 얇은 플라스틱 막대자였다. 잘못 쓴 문장 위에 그 막대자를 올려 놓고 구멍을 지우고자 하는 글자 위에 맞추어 놓은 다음, 고무지우개로 구멍 부위를 문지르면 목표로 한 글자만을 선택적으로 지울 수 있었다.

구멍의 크기를 선택하기에 따라 한 글자로부터 다섯 글자까지 지울 수 있었다. 당연히 옆의 글자는 지워지지 않는다. 지우고 난 다음에 생기는 고무 파면은 앞서 말한 탁상용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면 상황 끝이었다.

말이 난 김에 하나 추가하자면 세이꾜에 가면 도장포 (圖章鋪)가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일본 사람들은 도장을 파 달라고 주문하지 않고,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새겨져 있는 기성품 도장을 산다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도장에 성(姓)만 새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명 (姓名)을 다 새기니까 그 많은 성명을 미리 도장에 파 놓을 수 없지만, 일본인의 성은 우리의 성명 보다 훨씬 그 수가 적기에 미리 새기기가 가능하였다. 덕분에 급히 도장이 필요할 경우 후딱 세이꾜에 가서 사오면 끝이었다. 물론 나처럼 일본에서 희성(稀姓)인 사람은 주문해서 도장을 새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세이꾜 문방구에 가서 ‘혹시 이러이러한 문방구 팝니까?’ 물었는데 마침 그 물건이 없다면, 그 때의 점원의 반응은 우리나라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없어요’ 라고 대답하곤 끝이다. 손님이 ‘그런 물건 어디 가면 살 수 있을까요?’ 라고 추가로 물으면 대개는 ‘모릅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딴 일을 본다.

한번은 ‘무슨 가게에 가보세요’ 라고 하길래 ‘그 가게가 어디 있는데요?’ 라고 물었더니 ‘인터넷 뒤져 보세요’ 하였다. 자기네 가게에서 안 파니 더 이상 나에게 말 시키지 말라는 분위기였다.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다시 이 가게에 오나 봐라’

세이꾜에서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상품이 없을 경우 점원은 반드시 이렇게 말한다. “아, 대단히 죄송합니다. 필요한 물품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 수배하겠습니다. 구내 번호를 남겨 주시면 곧 가부 간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2, 3일 후엔 정말 가부간에 연락이 온다. 이렇게 해서 내가 원하던 문방구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세이꾜에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내가 있던 약학부 제제학 연구실에는 각종 시약과 기구를 공급해 주는 업자가 주 2-3회 방문하였는데, 카탈로그에 없는 유리 기구도 그 사람에게 설명하면 최선을 다해 어디에선가 구해다 주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니까 연구자도 극히 소량 밖에 수요가 없는 기구를 구입하려면 어디서 사면 좋을지 몰라 어려움이 많았다. 이럴 때 그 업자에게 설명해 주면 어디선가 구해다 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다.

오늘날 사업이나 장사가 안되어 죽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요리 사업가 백종원씨의 말마따나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일본인들의 친절한 상술을 배우면 상황이 좀 나지지는 않을까? 내가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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