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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409> 일본인의 전통 지키기
심창구
입력 2025-01-03 09: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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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

◇합격자 발표
작년 초인가 TV를 보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요즘도 일본 동경대학 입시에 응시한 학생들이 발표 당일 학교에 가서 게시판에 게시된 합격자 명단(수험번호)를 보고 있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이 인터넷 시대에 아직도 그런 옛날 방식으로 합격자 명단을 발표한다고?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되는대로 이 것이 과연 사실인지 확인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마침 작년말에 동경대학 한인(韓人) 유학생 송년 모임이 있어서 참석했더니, 현재 동경대학에 다니고 있는 일본인 여학생 한 명이 봉사자로 참석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대뜸 ‘과연 게시판에 합격자 번호를 써 붙인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물어봤더니, 그 학생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대답하였다.

와, 그게 사실이었구나! 다만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게시판을 보기 전에 인터넷 등으로 자신의 합격 여부를 미리 알기는 한다’고 하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수험번호를 써서 운동장에 게시를 하느냐? 그리고 설마 수험번호도 아직 붓글씨로 쓰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그 학생 왈 ‘합격자 발표는 옛날부터 그렇게 써 붙이는 것이 전통이라 그러는 모양’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붓글씨로 쓰지는 않고 아마 컴퓨터 글씨로 프린트하는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 전통이라 그냥 하는 거라고?

우리나라에서는 게시판에 가서 합격자의 수험번호를 확인하는 그 전통이 없어진 것이 언제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1967년에는 얼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약대 운동장 한 곁에 서있는 게시판에 가서 자신의 합격 여부를 확인해야만 했다. 합격한 수험생과 부모는 환호했고, 떨어진 학생과 부모는 낙심의 한숨을 쉬곤 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없어진 그 전통이 왜 일본에는 아직도 남아 있을까?

◇전국고교야구대회
2024년 일본에서 열린 제106회 고시엔(甲子園) 전국 고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에서 재일 한국인이 설립한 교토국제고가 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간토다이이치고를 2-1로 꺾으며 대회 사상 외국계 학교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특히 경기 후 한국어 교가(校歌)가 일본 전역에 생중계됨으로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오늘은 교토국제고가 아니라 고시엔 대회의 권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고시엔 대회는 몇 개의 일본 고교 야구 대회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이 대회에 출전하는 학생들은 출전 자체를 엄청난 명예로 생각한다고 한다. 다들 고시엔 운동장 흙을 기념으로 담아 가는 바람에, 주최 측이 계속해서 흙을 보충해 주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고교 야구가 인기를 끌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인천에서 중 고등학교 다닐 때(1960년대 전반)만 해도 약 5개의 전국규모의 고교 야구대회가 국민들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적인 스포츠 이벤트가 되는 고교 야구대회는 없어지고 말았다. 전통이 사라진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물론 프로야구의 출범이겠지만, 프로야구의 인기 가운데서도 고시엔 대회의 인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일본을 보면 두 나라의 사정이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야구 팀 수가 우리나라의 야구선수 수보다 훨씬 많다고 할 정도로 야구 인구가 워낙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에 비해 적은 야구 인구에도 불구하고 전국 고교 야구대회 수가 너무 많아 인기가 시들 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먼저 출범한 전국 대회의 권위와 전통을 인정하지 않고 신문사마다 전국대회를 만든 바람에 빚어진 당연한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고찰
일본인의 심성이 우리와 얼마나 다르기에, 때로는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전통을 이토록 잘 지키고 있는가? 혹시 나의 지론처럼 일본인은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섣부른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결과가 이와 같은 전통 지키기로 남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변화무쌍 정도가 아니라 늘 격변의 와중에 있는 우리와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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