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411> 무재능(無才能)의 비유전(非遺傳).
심창구
입력 2025-01-22 09:07 수정 최종수정 2025-02-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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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구 교수 

얼마전에 ‘약창춘추 3’이라는 수필집을 내면서 막내 손녀 (초5)가 그린 그림을 표지에 실었더니 주변에서 그림이 참 좋다는 평들을 해 주셨다. 그림을 잘 그리는 피(遺傳)가 흐르지 않는 우리 집안으로서는 좀 신기한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림과 나의 인연을 회고해보았다.   
내가 시골 초등학교 6학년일 때 (1959년) 담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멀리 보이는 계양산 (인천)을 그린 일이 있었다. 크레용으로 그린 내 그림을 보신 선생님은 ‘산의 등성이와 계곡을 입체감 나게 묘사했다’고 몇 번이나 칭찬을 해 주셨다. 계곡을 산등성이보다 진하게 칠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 그럼 혹시 내가 그림에 재능이 있나?” 이런 생각을 그때 살짝 했던 추억이 있다. 
그 후 나는 인천으로 가 동산(東山)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첫 미술 시간에 미술 선생님께서 ‘미술반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할 때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초등학교 때 들은 칭찬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누님에게 이 말씀을 드렸더니 ‘그림을 그리면 배가 고프다’며 미술반에 들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그 말에 별 아쉬움도 느끼지 않고 미술반 가입을 취소하였다.
그 미술 시간에 한번은 에노구(絵の具)라는 수채화 물감으로 흰색 꽃병을 그리다가 그만 파란색 물감 한 방울을 떨어트리는 실수를 했다. 잘 지워지지가 않기에 일부러 파란색을 한 방울 더 떨어뜨려 큰 원을 그려 넣었다. 나름 독창성(?) 을 발휘한 셈이었다. 그러나 이를 보신 선생님은 ‘물감을 잘못 떨어트렸으면 지워야지’라고 지적하셨다. 나 혼자 독특하다고 우겨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나는 중학교 3년간 인천 금곡동 집에서 동산 중학교까지 약 3km 길을 걸어서 다녔는데 그 길에 외화 재개봉(再開封) 상영관인 문화극장이 있었다. 문화극장에서는 미국의 서부영화를 상영하는 날이 많았다. 당시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게리 쿠퍼' ‘버트 랑카스터’ 그리고 '아란 낫드’가 결투를 하면 누가 이길까? 같은 논쟁(?)을 할 정도로 서부영화가 인기가 높았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또는 시간 날 때면 일부러 문화 극장 앞에 가서 입구 위에 크게 걸려있는 영화 광고 간판을 쳐다보곤 했다. 당시는 사람이 일일이 간판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었다. 문화 극장의 경우 극장 입구 바로 왼쪽에 간판을 그리는 화실이 있었는데 가끔 입구가 반쯤 열려 있어 간판 그리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우선 지난번에 사용했던 캔버스 간판에 있는 그림을 흰 유화 물감으로 덧칠해서 완전히 지우고 난 다음에 새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 중 특히 인물의 모습이 영화 포스터에 있는 배우의 모습과 어쩌면 그리 똑같은 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도 문화 극장의 그 그림들이 국내 아니 어쩌면 세계에서 최고의 극장 간판 작품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그림들이 멋있어서 나도 몇 번 스케치 북에 서부영화 주인공을 그려 보기도 했다. 그후로는 그림에 흥미를 느껴본 기억이 전혀 없다. 
 

1967년 대학에 들어 갔는데 바로 엉뚱한 일이 일어났다. 미술반에 놀러갔다가 고등학교 동기의 권유로 얼떨결에 미술반장에 추대(?)됨을 당한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명색이 반장인 내가 문외한이니 미술반도 당연히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함으로 반항(?)하고 지내는데 어느 날 정말 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숙명여대 종학생회 회장 출마자로부터 선거 포스터를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실력이 없어 못 그리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몇일을 고민한 끝에 지물포(紙物鋪)에 가서 예쁜 도배지 한 장을 사서 포스터 크기로 자른 다음, 그 위에 파스텔로 후보자의 성명과 공약 몇 자를 써 봤더니 제법 그럴 듯했다. 휴~ 잔꾀로 위기를 모면한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에 진땀이 난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 손녀는 이런 나의 무재능을 전혀 물려받지 않아 정말로 그림을 잘 그린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할렐루야! 
혼돈기에 한가한 이야기를 쓰는 심사가 괴롭다. 
 

 약창춘추3 표지에 실린 손녀딸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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