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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2025년) 설날 아침이다. 그래서 속절없이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 설날이면 나이 먹어 좋아라 하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더 늙게 되었다고 한숨을 내 쉬는 노인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문득 내가 몇 살이나 먹었는지 잘 모르겠다. 누가 몇 살이냐고 물어도 금방 대답을 못할 정도이다. 치매(痴呆)에 걸려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나이 셈법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나자 마자 한 살로 치는 전통적 나이 셈법이 있는가 하면, 태어난 다음 해부터 한 살로 치는 셈법, 또 자기가 태어난 생일이 되어서야 비로서 한 살을 더 먹는 서구식 셈법 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뱃속에서 열 달 있다가 태어나기 때문에 태어나자 마자를 한 살로 치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도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기가 다음날 아침에 두 살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빨라 보인다. 최근에 정부가 서구식 즉, 생일날에 나이를 먹는 셈법을 권장(?)하자, 갑자기 나이가 줄어들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바람에 나이 셈법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생일날 축하 케이크에 양초를 몇 개 꽂아야 하는 지도 금방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누가 나이를 물으면 아예 ‘몇 년 몇 월 몇 일생’이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과연 나는 몇 살이라고 해야 옳은가?
같은 맥락에서 언제 나이를 먹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양력 새해 첫 날인지, 음력 새해 설날인지, 아니면 생일인지 헷갈린다. 생일에도 양력, 음력이 다 있으니 더욱 헷갈린다.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들은 세월이 너무 빠르다며 나이 먹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그러는 한편으로는 김형석 교수님처럼 100세가 훨씬 넘은 분들의 장수를 부러워한다. 나이 먹기를 싫어하면서 나이 많은 분을 부러워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나이 먹는 일을 기쁘고 감사한 일로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이를 더 먹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얼른 얼른 나이를 먹다 보면 어느덧 나도 내가 평소에 부러워하던 대 선배님들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건강해야 나이도 먹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다만 젊은이들의 나이에 대해서는 느낌이 좀 다르다. 우리 아들 며느리들과 손주들은 언제까지나 나이를 먹어 늙지 말고 젊게 활기차게 살았으면 좋겠다. 요컨대 늙은이가 나이 먹는 것은 괜찮지만, 젊은이들이 나이를 먹어 늙는 것은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다.
문득 ‘나이’의 어원(語源)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거의 전지전능(?)한 챗지피티(Chat GPT)에게 물어봤더니 ‘낳다(출생하다)’가 ‘낳이’를 거쳐 변한 것이란다. 맞는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또 왜 나이를 ‘먹는다’고 표현하는지도 물어봤다. 영어로는 ‘get older’ 또는 ‘age’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年を取る年(토시오토루)’라고 하는데 우리는 ‘먹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대답인즉 ‘먹는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음식물을 섭취하는 행위를 가르키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경험의 축적, 내면화(內面化), 체화(體化, 몸에 축적됨을 가리킴)를 강조하는 의미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음식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 몸속에 쌓이는 것처럼, 나이도 경험처럼 삶의 일부로 몸속에 쌓인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더위를 먹는다’, ‘욕을 먹는다’, 상대방에게 한방 먹었다’ 등도 비슷한 생각에서 나온 표현이라는 설명 같았다.
챗지피티에게 물으면 무엇이든 일단 아는 척은 잘 한다. 그러나 이 설명은 내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다. 나는 오히려 무엇이든 먹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배고프던 시절에 나이라도 ‘먹자’라는 생각에서 이런 표현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독자 여러분, 이번 설을 쇠시면 몇 살이 되시나요? 어르신들께는 이렇게 여쭙겠습니다. 올해로 춘추(春秋)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연세(年歲)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올해도 연부역강(延富力强) 하시고 평안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근하신년(謹賀新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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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2025년) 설날 아침이다. 그래서 속절없이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 설날이면 나이 먹어 좋아라 하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더 늙게 되었다고 한숨을 내 쉬는 노인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문득 내가 몇 살이나 먹었는지 잘 모르겠다. 누가 몇 살이냐고 물어도 금방 대답을 못할 정도이다. 치매(痴呆)에 걸려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나이 셈법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나자 마자 한 살로 치는 전통적 나이 셈법이 있는가 하면, 태어난 다음 해부터 한 살로 치는 셈법, 또 자기가 태어난 생일이 되어서야 비로서 한 살을 더 먹는 서구식 셈법 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뱃속에서 열 달 있다가 태어나기 때문에 태어나자 마자를 한 살로 치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도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기가 다음날 아침에 두 살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빨라 보인다. 최근에 정부가 서구식 즉, 생일날에 나이를 먹는 셈법을 권장(?)하자, 갑자기 나이가 줄어들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바람에 나이 셈법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생일날 축하 케이크에 양초를 몇 개 꽂아야 하는 지도 금방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누가 나이를 물으면 아예 ‘몇 년 몇 월 몇 일생’이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과연 나는 몇 살이라고 해야 옳은가?
같은 맥락에서 언제 나이를 먹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양력 새해 첫 날인지, 음력 새해 설날인지, 아니면 생일인지 헷갈린다. 생일에도 양력, 음력이 다 있으니 더욱 헷갈린다.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들은 세월이 너무 빠르다며 나이 먹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그러는 한편으로는 김형석 교수님처럼 100세가 훨씬 넘은 분들의 장수를 부러워한다. 나이 먹기를 싫어하면서 나이 많은 분을 부러워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나이 먹는 일을 기쁘고 감사한 일로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이를 더 먹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얼른 얼른 나이를 먹다 보면 어느덧 나도 내가 평소에 부러워하던 대 선배님들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건강해야 나이도 먹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다만 젊은이들의 나이에 대해서는 느낌이 좀 다르다. 우리 아들 며느리들과 손주들은 언제까지나 나이를 먹어 늙지 말고 젊게 활기차게 살았으면 좋겠다. 요컨대 늙은이가 나이 먹는 것은 괜찮지만, 젊은이들이 나이를 먹어 늙는 것은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다.
문득 ‘나이’의 어원(語源)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거의 전지전능(?)한 챗지피티(Chat GPT)에게 물어봤더니 ‘낳다(출생하다)’가 ‘낳이’를 거쳐 변한 것이란다. 맞는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또 왜 나이를 ‘먹는다’고 표현하는지도 물어봤다. 영어로는 ‘get older’ 또는 ‘age’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年を取る年(토시오토루)’라고 하는데 우리는 ‘먹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대답인즉 ‘먹는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음식물을 섭취하는 행위를 가르키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경험의 축적, 내면화(內面化), 체화(體化, 몸에 축적됨을 가리킴)를 강조하는 의미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음식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 몸속에 쌓이는 것처럼, 나이도 경험처럼 삶의 일부로 몸속에 쌓인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더위를 먹는다’, ‘욕을 먹는다’, 상대방에게 한방 먹었다’ 등도 비슷한 생각에서 나온 표현이라는 설명 같았다.
챗지피티에게 물으면 무엇이든 일단 아는 척은 잘 한다. 그러나 이 설명은 내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다. 나는 오히려 무엇이든 먹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배고프던 시절에 나이라도 ‘먹자’라는 생각에서 이런 표현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독자 여러분, 이번 설을 쇠시면 몇 살이 되시나요? 어르신들께는 이렇게 여쭙겠습니다. 올해로 춘추(春秋)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연세(年歲)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올해도 연부역강(延富力强) 하시고 평안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근하신년(謹賀新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