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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둘째날 오후
제인스 저택: 이틀째 오후에는 메이지 유신 (1868) 이후 구마모토에서 서양 교육을 했던 제인스 저택을 방문하였다. 1869년 구마모토번(藩)이 세운 양학소(洋學所)는 다름 해 양학교로 개명하고, 구마모토 최초로 서양식 건물 2동을 세워, 양학교 교사로 초빙한 미 육군 포병장교 출신 제인스의 가족과 의학소 교사 만스펠트의 저택으로 제공하였다. 제인스는 3년간 수학, 지리, 물리, 화학, 천문, 생물 등을 혼자 영어로 강의하였다. 이 건물은 2016년 구마모토 지진으로 완전 붕괴되었다가 2023년 재건되었다.
사노쓰네타미 기념관: 사노는 에도(江戶) 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유신에 걸쳐 근대화에 공을 세운 ‘사가의 7현인’ 중 한 명으로, 당시의 대표적인 난학자(蘭學者, 네델란드 학문)들로부터 최신 서양의학과 과학이론을 배웠다.
1852년에 번주(藩主)가 세운 세이렌카타(精煉方)이라는 이화학연구소의 주임으로 임명되어 네델란드 군 교관을 통해 대포와 화약 개발에 필요한 화학 실험 및 기계 시험제작 등을 배워1855년 일본 최초로 증기선 모형 제작에 성공하였다.
사가번(佐賀藩)은 1857년 네델란드로부터 군함 실습용 증기선을 구입하고, 1865년에는 일본 최초의 실용 증기선을 건조하였다. 2005년 미에쓰 해군소(3重津海軍所) 터 발굴 중 발견된 19세기 말의 드라이 도크가201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일과를 마치고 히라도(平戶)시로 이동하였다.
2. 셋째날
‘히라도상관(平戶商館)’: 1609년 애도(江戶) 막부(幕府)로부터 무역허가를 받은 네델란드 동인도회사가 동아시아 무역의 거점으로 설립하였다. 1641년 나가사키에 있는 데지마(出島)로 상관을 이전하면서 33년의 역사를 마쳤다.
하비에르 기념교회: 하비에르(Javier)는 포르투갈 국왕인 주앙 3세로부터 선교사로 임명되어 인도, 실론, 말레이 반도 등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1548년 일본인 야지로에게 세례를 준 것을 계기로 1549년 가고시마(鹿児島)에 상륙하였다. 많은 주민들에게 세례를 주고, 메이지 시대에 금교령(禁敎令)이 해제되자1931년 현 위치에 성당을 세웠다.
점심 식사 후 나가사키(長崎)로 이동하여 원폭자료관과 평화공원을 둘러 ‘지볼트(Siebolt) 기념관’을 탐방하였다.
지볼트 기념관: 1823년 일본에 온 신성로마제국 주교령 뷔르츠부르크 (현 독일 바이에른 주) 출신의 의학자 겸 박물학자인 지볼트는 에도시대에 일본에 서양의학과 박물학을 전수하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일본의 자연과 문화 등을 유럽에 널리 소개한 인물이다. 1832년 네델란드 라이덴에 ‘일본박물관’을 개설하였다.
데지마(出島): 이어서 나가사키 시의 데지마를 방문하였다. 1550년 포르투칼 상선이 입항한 것을 계기로 히라도는 일본과 중국 등지와의 무역, 즉 남만(南蠻) 무역과 일대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후 상황의 변화로 데지마로 그 거점이 옮겨졌다. 데지마는 바다를 메운 4천평 미만의 섬이다. 네델란드가 기독교 포교 금지와 관련되어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제치고 유일한 서양 통상국이 되었다. 데지마에는 상관장(商館長), 서기, 창고장 등의 상원과 의사, 목수, 요리사 등 10~15인의 네델란드인 등이 거주했다. 상관장은 애도를 방문하여 서양 지식을 일본에 확산시켰다.
3. 마지막 넷째날
출발지인 후쿠오카로 돌아와 ‘규슈대학의학역사관’과 근처에 있는 원구사료관(元寇史料館)을 방문하였다.
원구사료관: 13세기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2차례 일본을 침략하였다. 1274년 제1차 침공에는 고려군 5천여명을 포함한 약 3만명의 원군이, 1281년 2차 침공에는 고려군 4만명을 포함한 14만병이 나섰다. 그러나 두 번 다 폭풍우(神風, 가미가제) 때문에 퇴각하였다.
이번 탐방은 일본 근대화의 경로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공부가 되었다.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대한의사학회(大韓醫史學會)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상의 내용도 동 학회의 ‘2025해외답사-일본 근대 의료사’에서 발췌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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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둘째날 오후
제인스 저택: 이틀째 오후에는 메이지 유신 (1868) 이후 구마모토에서 서양 교육을 했던 제인스 저택을 방문하였다. 1869년 구마모토번(藩)이 세운 양학소(洋學所)는 다름 해 양학교로 개명하고, 구마모토 최초로 서양식 건물 2동을 세워, 양학교 교사로 초빙한 미 육군 포병장교 출신 제인스의 가족과 의학소 교사 만스펠트의 저택으로 제공하였다. 제인스는 3년간 수학, 지리, 물리, 화학, 천문, 생물 등을 혼자 영어로 강의하였다. 이 건물은 2016년 구마모토 지진으로 완전 붕괴되었다가 2023년 재건되었다.
사노쓰네타미 기념관: 사노는 에도(江戶) 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유신에 걸쳐 근대화에 공을 세운 ‘사가의 7현인’ 중 한 명으로, 당시의 대표적인 난학자(蘭學者, 네델란드 학문)들로부터 최신 서양의학과 과학이론을 배웠다.
1852년에 번주(藩主)가 세운 세이렌카타(精煉方)이라는 이화학연구소의 주임으로 임명되어 네델란드 군 교관을 통해 대포와 화약 개발에 필요한 화학 실험 및 기계 시험제작 등을 배워1855년 일본 최초로 증기선 모형 제작에 성공하였다.
사가번(佐賀藩)은 1857년 네델란드로부터 군함 실습용 증기선을 구입하고, 1865년에는 일본 최초의 실용 증기선을 건조하였다. 2005년 미에쓰 해군소(3重津海軍所) 터 발굴 중 발견된 19세기 말의 드라이 도크가201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일과를 마치고 히라도(平戶)시로 이동하였다.
2. 셋째날
‘히라도상관(平戶商館)’: 1609년 애도(江戶) 막부(幕府)로부터 무역허가를 받은 네델란드 동인도회사가 동아시아 무역의 거점으로 설립하였다. 1641년 나가사키에 있는 데지마(出島)로 상관을 이전하면서 33년의 역사를 마쳤다.
하비에르 기념교회: 하비에르(Javier)는 포르투갈 국왕인 주앙 3세로부터 선교사로 임명되어 인도, 실론, 말레이 반도 등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1548년 일본인 야지로에게 세례를 준 것을 계기로 1549년 가고시마(鹿児島)에 상륙하였다. 많은 주민들에게 세례를 주고, 메이지 시대에 금교령(禁敎令)이 해제되자1931년 현 위치에 성당을 세웠다.
점심 식사 후 나가사키(長崎)로 이동하여 원폭자료관과 평화공원을 둘러 ‘지볼트(Siebolt) 기념관’을 탐방하였다.
지볼트 기념관: 1823년 일본에 온 신성로마제국 주교령 뷔르츠부르크 (현 독일 바이에른 주) 출신의 의학자 겸 박물학자인 지볼트는 에도시대에 일본에 서양의학과 박물학을 전수하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일본의 자연과 문화 등을 유럽에 널리 소개한 인물이다. 1832년 네델란드 라이덴에 ‘일본박물관’을 개설하였다.
데지마(出島): 이어서 나가사키 시의 데지마를 방문하였다. 1550년 포르투칼 상선이 입항한 것을 계기로 히라도는 일본과 중국 등지와의 무역, 즉 남만(南蠻) 무역과 일대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후 상황의 변화로 데지마로 그 거점이 옮겨졌다. 데지마는 바다를 메운 4천평 미만의 섬이다. 네델란드가 기독교 포교 금지와 관련되어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제치고 유일한 서양 통상국이 되었다. 데지마에는 상관장(商館長), 서기, 창고장 등의 상원과 의사, 목수, 요리사 등 10~15인의 네델란드인 등이 거주했다. 상관장은 애도를 방문하여 서양 지식을 일본에 확산시켰다.
3. 마지막 넷째날
출발지인 후쿠오카로 돌아와 ‘규슈대학의학역사관’과 근처에 있는 원구사료관(元寇史料館)을 방문하였다.
원구사료관: 13세기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2차례 일본을 침략하였다. 1274년 제1차 침공에는 고려군 5천여명을 포함한 약 3만명의 원군이, 1281년 2차 침공에는 고려군 4만명을 포함한 14만병이 나섰다. 그러나 두 번 다 폭풍우(神風, 가미가제) 때문에 퇴각하였다.
이번 탐방은 일본 근대화의 경로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공부가 되었다.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대한의사학회(大韓醫史學會)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상의 내용도 동 학회의 ‘2025해외답사-일본 근대 의료사’에서 발췌하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