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967년 약대에 입학했을 때부터 조윤성 교수님은 임상약학(clinical pharmacy, 臨床藥學)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셨습니다. 그 후 실로 오랜 세월에 걸쳐 논란을 벌이다가 근래에 와서 드디어 임상약학 교육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6년제 교육을 실시하던 2009년부터 본격적인 임상약학 교육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임상약학이란 창약학, 제약학, 용약학(用藥學)이라는 약학의 3대 분야 중에서 용약학의 목적을 구체화시킨 이름입니다. 임상약학 교육을 통해 약사들의 보다 정확하고 안전한 약물 투여가 가능해졌습니다.
종래의 약물요법을 돌이켜보면, 환자에게 어떤 약을 투여할 때 일률적으로 어른은 1정, 어린이는 1/2정을 투여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체중이 심하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어른은 무조건 1정을 투여하는 것은 불합리해 보이지 않습니까? 더구나 인종이나 개인에 따라 약물에 대한 반응 (약효 또는 부작용)도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률적으로 일정량을 투여하는 종래의 약물 투여방식에는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지요.
1995년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9살짜리 소녀가 어느 날 프로작(Prozac, fluoxetine)이라는 치료약을 복용하는 도중에 발작을 일으키고 사망하는 사고가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소녀를 부검한 결과 프로작의 혈중 농도가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그래서 이 소녀를 입양한 양부모가 살인 의혹을 받았는데, 누군가의 의견에 따라 유전자 검사를 해 본 결과 이 소녀에게는 간에서 프로작을 대사시키는 CYP2D6라는 효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상용량의 약을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약이 간에서 대사되지 않고 체내에 축적되어 사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2000년도에 포춘(Frotune)이라는 잡지의 표지에 ‘유전자 비극(a DNA tragedy)’라는 제목으로 크게 실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약물 대사에만 개인차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약물 분자가 결합하여 약효를 나타내는 체내 약물수용체(receptor)에도 개인차가 있었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에서 개발한 폐암 치료제인 이레사(Iressa, gefitinib)는 서구인보다 아시아인에서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이는데, 이는 이 약의 수용체인 EGFR의 변이체(mutation)가 아시아인에게 월등히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밖에 약물의 흡수와 배설의 속도를 좌우하는 막 수송 단백질(membrane transporters)도 인종과 개인에 따라 그 발현과 활성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와 같은 환자의 유전적 특성의 개인차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같은 약을 같은 용량으로 투여하는 종래의 약물요법은 매우 잘못이라는 사실을 모두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특정한 약에 대해서는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파악한 다음에 투여할 약을 선택하고 사용량을 결정하도록 되었지요. 옛날에 이제마 선생이 주창한 사상의학(四象醫學), 즉 환자의 체질에 따라 약을 달리 써야 한다는 생각과 같은 맥락이지요.
이처럼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여 약물요법을 결정하거나 신약을 개발하고자 하는 생각을 맞춤약학(individualized or personalized medicine)이라고 부릅니다. 구두에 발을 맞추는 방식에서 발에 구두를 맞추자는 생각이라고나 할까요? 미국 UCSF병원에서는 약 의사 (藥醫師, Pharm. D)가 환자상담을 통해 맞춤약학을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약학, 특히 임상약학에서 약물유전학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될 것입니다.
다만 환자의 유전자(DNA) 검사는 윤리적 문제 때문에 당장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의 유전적 정보가 공개될 때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장차 과학과 윤리가 적절한 합의를 이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맞춤약학’에 대해서는 이미 약춘 31과 32 (2008.1.2과 1.16일)에서 언급한 바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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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내가 1967년 약대에 입학했을 때부터 조윤성 교수님은 임상약학(clinical pharmacy, 臨床藥學)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셨습니다. 그 후 실로 오랜 세월에 걸쳐 논란을 벌이다가 근래에 와서 드디어 임상약학 교육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6년제 교육을 실시하던 2009년부터 본격적인 임상약학 교육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임상약학이란 창약학, 제약학, 용약학(用藥學)이라는 약학의 3대 분야 중에서 용약학의 목적을 구체화시킨 이름입니다. 임상약학 교육을 통해 약사들의 보다 정확하고 안전한 약물 투여가 가능해졌습니다.
종래의 약물요법을 돌이켜보면, 환자에게 어떤 약을 투여할 때 일률적으로 어른은 1정, 어린이는 1/2정을 투여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체중이 심하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어른은 무조건 1정을 투여하는 것은 불합리해 보이지 않습니까? 더구나 인종이나 개인에 따라 약물에 대한 반응 (약효 또는 부작용)도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률적으로 일정량을 투여하는 종래의 약물 투여방식에는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지요.
1995년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9살짜리 소녀가 어느 날 프로작(Prozac, fluoxetine)이라는 치료약을 복용하는 도중에 발작을 일으키고 사망하는 사고가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소녀를 부검한 결과 프로작의 혈중 농도가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그래서 이 소녀를 입양한 양부모가 살인 의혹을 받았는데, 누군가의 의견에 따라 유전자 검사를 해 본 결과 이 소녀에게는 간에서 프로작을 대사시키는 CYP2D6라는 효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상용량의 약을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약이 간에서 대사되지 않고 체내에 축적되어 사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2000년도에 포춘(Frotune)이라는 잡지의 표지에 ‘유전자 비극(a DNA tragedy)’라는 제목으로 크게 실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약물 대사에만 개인차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약물 분자가 결합하여 약효를 나타내는 체내 약물수용체(receptor)에도 개인차가 있었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에서 개발한 폐암 치료제인 이레사(Iressa, gefitinib)는 서구인보다 아시아인에서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이는데, 이는 이 약의 수용체인 EGFR의 변이체(mutation)가 아시아인에게 월등히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밖에 약물의 흡수와 배설의 속도를 좌우하는 막 수송 단백질(membrane transporters)도 인종과 개인에 따라 그 발현과 활성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와 같은 환자의 유전적 특성의 개인차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같은 약을 같은 용량으로 투여하는 종래의 약물요법은 매우 잘못이라는 사실을 모두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특정한 약에 대해서는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파악한 다음에 투여할 약을 선택하고 사용량을 결정하도록 되었지요. 옛날에 이제마 선생이 주창한 사상의학(四象醫學), 즉 환자의 체질에 따라 약을 달리 써야 한다는 생각과 같은 맥락이지요.
이처럼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여 약물요법을 결정하거나 신약을 개발하고자 하는 생각을 맞춤약학(individualized or personalized medicine)이라고 부릅니다. 구두에 발을 맞추는 방식에서 발에 구두를 맞추자는 생각이라고나 할까요? 미국 UCSF병원에서는 약 의사 (藥醫師, Pharm. D)가 환자상담을 통해 맞춤약학을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약학, 특히 임상약학에서 약물유전학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될 것입니다.
다만 환자의 유전자(DNA) 검사는 윤리적 문제 때문에 당장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의 유전적 정보가 공개될 때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장차 과학과 윤리가 적절한 합의를 이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맞춤약학’에 대해서는 이미 약춘 31과 32 (2008.1.2과 1.16일)에서 언급한 바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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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