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위조와 DI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는 옛노래가 있다. 그 노래는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빼면 도로 ‘님’이 될 수도 있다는 2절로 더욱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점 하나를 더하는지 빼는지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글의 정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최근 박세리희망재단 측에서 골프선수 박세리의 부친을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해당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사건은 박세리 선수의 부친이 재단 명의로 채무를 부담한 것에 대하여, 재단 측에서 더 이상 그 채무를 부담할 수 없어서 부친을 고소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그후 이어진 일부 보도 중에는 박세리 선수가 부친의 채무 약 500억 원을 갚는 데에 그동안 번 돈의 대부분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문서의 위조는 그 자체로 범죄이지만, 위조문서가 작성 및 사용되는 경위와 과정에 따라 그 가벌성이 달리 평가된다. 예컨대 문서를 위조한 범행은 그 문서가 사기의 수단으로 활용된 경우 더 무거운 범죄가 되는 것이다. 즉 위조문서의 사용 실질이 그 위조행위의 가벌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형법은 문서위조를 크게 둘로 나누어서 허위 “명의”로 문서를 위조하는 경우와 허위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는 경우로 구분한다. 허위 “명의”로 문서를 위조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명의로 문서를 위조하는 것을 말하는 반면, 허위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는 것은 거짓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형법은 허위 “명의”로 사문서와 공문서를 위조하는 것 모두를 처벌하는 반면(형법 제225, 231조), 허위 “내용”은 공문서의 경우에만 처벌한다(형법 제227조). 즉 형법은 허위 내용의 사문서를 작성하는 행위를 처벌하지 아니하므로, 예컨대 허위 내용의 일기 작성은 형법상으로 죄가 되지 아니한다.
그런데 이와 달리 제약업계의 GMP 기준은 사적인 영역의 데이터도 허위의 내용으로 작성해서는 안 되는 것을 골자로 한 데이터 완전성(Data Integrity, 이하 DI)을 법제화하였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허위로 작성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정도를 넘어서, 데이터는 완전하고, 일관되며, 정확하여야 하고, 출처를 확인할 수 있으며, 판독이 가능하고, 발생과 동시에 기록된 원본이거나 사본이어야 한다는 원칙(이른바 ALCOA+ 원칙)으로 표현된다.
실제로 DI 침해 행위를 하는 제약사는 행정적 제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약사법은 제약사의 사문서인 제조기록 등에 대한 허위 내용의 작성이 거짓의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는 가혹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GMP라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제약업의 속성상 불가피한 면이 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끝 부분에는 누구든지 성경의 내용을 더하거나 빼면 하나님이 이를 용서하지 않으시리라는 엄한 명령이 기재되어 있다(요한계시록 22장). 이는 그만큼 성경의 권위가 막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약업계에서는 DI 의무화를 두고 여러 부담스러운 시선이 많다고 한다. 모든 기록을 있는 그대로 다해야 한다는 것이 제약 실무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는 수긍할 측면이 분명히 있다. 약효와 본질적 관련이 없는 첨가제의 다과에 대한 기록의 오류를 이유로 GMP 인증취소를 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님’과 ‘남’이 갈리는 점 하나를 더 찍는 것이 사소하다는 주장이나 아버지가 서명한 것이니 딸이 설립한 재단에서 책임을 지라는 주장에 수긍할 사람은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제약에 관한 주요 기준을 벗어난 일탈을 숨기기 위하여 사실과 다른 내용의 기록을 하는 관행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 시각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필자소개>
송영승(宋永勝) 변호사는 서울동북고등학교(1993년)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1998년)를 졸업했다.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제31기)을 거쳐 인천지법 , 서울중앙지법, 수원지법에서 판사생활을 했다.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지난 2023년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송 변호사는 현재 주식회사 타스코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문서위조와 DI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는 옛노래가 있다. 그 노래는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빼면 도로 ‘님’이 될 수도 있다는 2절로 더욱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점 하나를 더하는지 빼는지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글의 정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최근 박세리희망재단 측에서 골프선수 박세리의 부친을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해당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사건은 박세리 선수의 부친이 재단 명의로 채무를 부담한 것에 대하여, 재단 측에서 더 이상 그 채무를 부담할 수 없어서 부친을 고소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그후 이어진 일부 보도 중에는 박세리 선수가 부친의 채무 약 500억 원을 갚는 데에 그동안 번 돈의 대부분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문서의 위조는 그 자체로 범죄이지만, 위조문서가 작성 및 사용되는 경위와 과정에 따라 그 가벌성이 달리 평가된다. 예컨대 문서를 위조한 범행은 그 문서가 사기의 수단으로 활용된 경우 더 무거운 범죄가 되는 것이다. 즉 위조문서의 사용 실질이 그 위조행위의 가벌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형법은 문서위조를 크게 둘로 나누어서 허위 “명의”로 문서를 위조하는 경우와 허위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는 경우로 구분한다. 허위 “명의”로 문서를 위조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명의로 문서를 위조하는 것을 말하는 반면, 허위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는 것은 거짓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형법은 허위 “명의”로 사문서와 공문서를 위조하는 것 모두를 처벌하는 반면(형법 제225, 231조), 허위 “내용”은 공문서의 경우에만 처벌한다(형법 제227조). 즉 형법은 허위 내용의 사문서를 작성하는 행위를 처벌하지 아니하므로, 예컨대 허위 내용의 일기 작성은 형법상으로 죄가 되지 아니한다.
그런데 이와 달리 제약업계의 GMP 기준은 사적인 영역의 데이터도 허위의 내용으로 작성해서는 안 되는 것을 골자로 한 데이터 완전성(Data Integrity, 이하 DI)을 법제화하였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허위로 작성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정도를 넘어서, 데이터는 완전하고, 일관되며, 정확하여야 하고, 출처를 확인할 수 있으며, 판독이 가능하고, 발생과 동시에 기록된 원본이거나 사본이어야 한다는 원칙(이른바 ALCOA+ 원칙)으로 표현된다.
실제로 DI 침해 행위를 하는 제약사는 행정적 제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약사법은 제약사의 사문서인 제조기록 등에 대한 허위 내용의 작성이 거짓의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는 가혹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GMP라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제약업의 속성상 불가피한 면이 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끝 부분에는 누구든지 성경의 내용을 더하거나 빼면 하나님이 이를 용서하지 않으시리라는 엄한 명령이 기재되어 있다(요한계시록 22장). 이는 그만큼 성경의 권위가 막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약업계에서는 DI 의무화를 두고 여러 부담스러운 시선이 많다고 한다. 모든 기록을 있는 그대로 다해야 한다는 것이 제약 실무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는 수긍할 측면이 분명히 있다. 약효와 본질적 관련이 없는 첨가제의 다과에 대한 기록의 오류를 이유로 GMP 인증취소를 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님’과 ‘남’이 갈리는 점 하나를 더 찍는 것이 사소하다는 주장이나 아버지가 서명한 것이니 딸이 설립한 재단에서 책임을 지라는 주장에 수긍할 사람은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제약에 관한 주요 기준을 벗어난 일탈을 숨기기 위하여 사실과 다른 내용의 기록을 하는 관행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 시각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필자소개>
송영승(宋永勝) 변호사는 서울동북고등학교(1993년)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1998년)를 졸업했다.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제31기)을 거쳐 인천지법 , 서울중앙지법, 수원지법에서 판사생활을 했다.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지난 2023년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송 변호사는 현재 주식회사 타스코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