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 약사연말이 다가온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음주의 계절이지만, 약을 복용하는 사람에게는 주의가 필요한 시기다. 알코올이 약과 상호작용을 일으키면 부작용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면제나 신경안정제와 같은 약이 대표적이다. 알코올의 진정 작용이 약물의 효과에 더해져서 과도하게 졸리고 정신기능과 운동기능, 기억력에도 문제가 생긴다. 술 마신 다음 날 숙취가 더 심해지거나 오래갈 수도 있다.
항생제 복용 중에도 알코올음료는 피하는 게 좋다. 한두 잔을 마시는 정도로는 항생제와 별다른 상호작용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세균성 감염이 있을 때 술을 마셔서 좋을 것도 없다.
게다가 메트로니다졸과 같은 일부 항생제는 복용 중에 술을 마시면 맥박이 빨리 뛰고, 구역, 구토 등의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메트로니다졸은 중단하고 나서도 48시간 동안은 금주를 권한다.
당뇨병으로 약을 복용 중인 경우에도 술을 조심해야 한다. 당뇨약에 더해 알코올도 혈당을 떨어뜨려서 저혈당이 오기 쉽다. 당뇨병 치료제 중 메트포르민이라는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과음하면 젖산산증이라는 위험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특히 위험하다.
술 마신 다음 날 머리 아프다고 두통약을 먹는 습관도 금물이다. 연말이라고 매일 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 연말이 아니어도 매일 같이 소주 반 병 이상을 마시는 사람이 두통약을 복용할 경우,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은 간독성 때문에, 소염진통제는 위장관 출혈과 같은 부작용 때문에 위험하다.
술 마신 다음날 어쩌다 한 번 두통약을 한두 알을 복용하는 정도로는 큰 해를 입을 가능성이 낮지만, 과음 뒤에 두통약을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약에 과민 반응이 있거나 평소 알레르기성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과 술 속에 녹아있는 아민 성분들이 알레르기 증상을 악화시키고, 과민 반응이 일어나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술 마신 뒤 알레르기성 비염 증상이 심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경우 졸음이 덜한 2세대 항히스타민제는 증상 완화에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졸음, 진정 부작용이 있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예를 들어 클로르페니라민, 디펜히드라민)는 알코올로 인해 부작용이 증폭되므로 피해야 한다.
흔히 “이 약과 술은 관계가 없을거야”하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문제가 되는 약도 있다.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혈액 응고를 억제하는 와파린 같은 약을 복용 중일 때 술을 마시면 단기적으로 부작용이 증가하거나 장기적으로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골다공증 치료제를 복용 중인 경우도 과음은 금물이다. 골다공증 환자는 약을 복용하는 것에 더해 무엇보다 낙상을 조심해야 한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치명적이다.
금연을 도와주는 처방약을 복용 중인 경우에도 술을 마시면 약 부작용이 증가하고, 음주로 인해 담배를 피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연말 지나친 술자리는 피하는 게 최선이다.
알코올은 이뇨제이기도 하다. 술 마시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는 이유다. 이로 인해 체내의 수분과 전해질이 빠져 나간다. 연말이라고 며칠 연속으로 술을 마시고 나면 쥐가 잘 나거나 눈꺼풀 경련이 생기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알코올 때문에 마그네슘이 더 많이 빠져나가 일시적으로 부족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는 마그네슘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을 섭취하거나 또는 마그네슘 보충제를 복용하는 게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눈꺼풀 경련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밤새 술을 마시고 양질의 수면 부족으로 쥐가 나는 경우에 마그네슘만 보충한다고 증상이 좋아질 리는 없다. 눈꺼풀이 떨리고 쥐까지 날 때는 무엇보다 음주량과 회수를 줄여줘야 한다. 쉽게 말해, 일주일이라도 술을 끊는 게 좋다.
약 복용을 이유로 술을 안 마시겠다고 선언하면 마음 편하겠지만, 그래도 한두 잔은 마셔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연말 술자리 참석 전에 내가 복용 중인 약과 술의 상호작용에 대해 미리 약사와 상담해보는 건 그래서 좋은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