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 약사얼굴 하얘지는 약이라며 글루타티온이 뜬지도 1년에 다 되어간다. 지난 1월 구독자 수가 당시 7만 5천 명(지금은 20만명)에 달하는 유튜버가 개인 방송을 통해 “평소 복용하는 약을 설명하겠다”며 “급성·만성 간염 치료제지만 피부가 하얘지는 ‘백옥주사’와 성분이 같다”고 글루타티온을 들고 나와 벌어진 소동이다.
얼굴이 원래 하얀 편으로 보이는 이 유튜버는 글루타티온 캡슐을 “3~4일 복용했더니 얼굴이 맑고 투명해졌다”며 “주사(수액주사)를 맞느니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사실 이 약성분은 간세포로 들어갈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간염 치료보조 효과도 미미하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진통제 과용으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에게 이 약을 투여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요즘도 열심히 이 약을 복용 중인 사람이 제법 있다. 하지만 이 약으로 미백 효과를 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일단 흡수가 거의 안 된다. 먹어도 체내로 거의 안 들어온다. 예를 들어, 하루에 알약 20개 분량(1000mg)을 4주 동안 복용해도 혈중 농도에서 유의할만한 차이가 안 나타났다. 한 번에 알약 60개 분량(3000mg)을 복용해도 별 효과를 볼 수 없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주사하면 100프로 체내로 들어오지만 그래도 효과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2017년 4월 발표한 ‘미용·건강증진 목적 정맥주사 성분의 안전성 및 유효성 연구’를 보면 국내외 연구를 살핀 뒤 내린 결론은 백옥주사의 주성분인 글루타티온의 미백효과에 임상적 근거가 부족하며 “오히려 백반증·피부위축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사해서 글루타티온을 피 속으로 직접 넣어주어도 혈중의 글루타티온이 세포 속으로 그대로 들어갈 방법도 없을 뿐더러, 신장에서 효소에 의해 쉽게 분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연구 보고서에 언급된 것처럼 글루타치온 주사에는 잠재적 위험성이 있다.
해외에서는 치명적 약 부작용으로 스티븐스존슨증후군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있었고, 이로 인해 하얀 피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글루타티온 주사가 큰 인기를 끈 필리핀에서는 정부 기관이 직접 나서서 그 위험성을 경고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알약으로 복용할 때 이 성분의 부작용은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루타티온은 다른 펩타이드처럼 소화, 흡수되므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으며, 한 번에 엄청나게 많은 양을 먹지 않는 이상 별다른 부작용은 없다. (하지만 다른 단백질과 펩타이드가 그러하듯 거의 대부분이 쪼개져서 흡수되므로 효과도 없는 것이다.)
약에 대해서 조심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체험담이다. 누가 뭔가를 먹고 좋았다며 한 번 드셔보라고 하면 귀가 솔깃해진다. 사실 음식에는 이게 통하는 전략이다. 맛집 추천을 받아서 찾아가면 모르는 집을 가서 먹을 때보다는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약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다. 무엇보다 플라시보 효과가 있다. 약을 써서 뭔가가 좋아진 건지, 믿음 때문인지, 효과가 정말 있었는지, 아니면 효과는 없었는데 기대로 인해 그렇다고 믿고 있는 건지 구별하기가 정말 어렵다.
제약회사에서 신약이 개발될 때도 약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많은 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과 연구를 진행하는 이유다. 전에는 이웃의 체험담만 조심하면 됐지만, 이제는 인터넷 체험담이나 동영상을 더 조심해야 한다. 파워 유튜버와 소셜미디어 인플류언서의 말 한마디에 절대적 신뢰를 보내는 환자를 전문가가 제대로 상담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지난 1월 문제의 동영상을 보고 그 약이 정말 효과가 있냐며 물어보거나 확인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다짜고짜 특정한 약을 찾으며, 포장마저도 동일한 걸로 달라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설명이 참 어렵다.
글루타티온과 같은 특정 성분에 대해서 다양한 주장과 이야기가 난무하지만 스토리는 스토리일 뿐이다. 이론은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 효과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에 대한 유튜브 동영상을 즐겁게 시청하더라도 그것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지는 말자.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려면 약의 전문가, 약사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게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