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65> 약을 만드는 것도 쓰는 것도 사람이다
정재훈 약사
입력 2020-08-05 09:43
수정 최종수정 2020-08-06 14:47
▲ 정재훈 약사 최초의 항생제는 페니실린이 아니다. 독일의 화학자들이 합성한 설파제 프론토실이다. 페니실린이 프론토실보다(1932) 조금 앞서 1928년에 발견되긴 했지만 실제 환자에게 사용된 것은 1942년이다. 프론토실(스트렙토존)이 인체에서 효과를 나타냈다는 첫 번째 공식 발표는 1933년이다. 설파제는 미생물을 이용하지 않고 화학 합성으로 낮은 비용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당시 항생제의 발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는 과학저술가 토머스 헤이거의 책 <감염의 전장에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제는 <현미경 아래의 악마 The Demon Under the Microscope>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번역서 제목이 마음에 더 깊이 와 닿는다. 1차 세계 대전을 겪은 유럽인들에게 세균 감염의 공포는 전쟁만큼이나 참혹한 것이었고 문자 그대로 또 하나의 전쟁터였다. 책 내용 자체도 흥미롭지만 노승영 번역가의 유려한 번역 덕분에 한달음에 읽을 수 있다.
약을 개발하고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그 약을 처방하고 조제하고 투여하는 것도 사람이며 약을 실제 사용하는 것도 사람이다. 편견에 휘둘리고 때로는 감정적이며 자신과 소속 집단의 이익에 민감하기도 한 사람이다. 토머스 헤이거의 책에서 최초의 항생제 프론토질이 개발되는 과정을 보면 인간의 그러한 약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바이엘은 특허를 더 확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새로운 신약을 원했고 미리 정보를 공개해서 경쟁사의 관심을 끌고 수익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당시 독일은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가져다준 염료산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이로 인해 연구진도 아조 염료 자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의사들은 지나치게 완벽한 것으로 보였던 동물실험 결과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이런 복합적 이유로 최초의 설파제 프론토질이 실제 현장에 사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독일에서는 1935년, 영국에서는 1936년에 설파제가 알려지고 사용되기 시작했고, 미국에는 1937년이 되어서야 설파제 열풍이 일었다.
인간의 약점으로 인해 신약 출시가 지연되고 그로 인해 구할 수 있었던 생명을 구하지 못했던 과거의 기록을 읽다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도 80여 년 전의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류가 세균과의 전쟁에서 어느 정도 승리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바이러스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은 바이러스로 인한 역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백신이 언제 나올 것인지, 신약 개발은 가능할 것인지 궁금해 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아직은 모든 게 예상일뿐 실제 어떤 시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165종 이상의 백신을 연구 개발 중이고 27종의 백신이 이미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들어갔으니 그래도 내년에는 뭔가 좋은 소식이 있길 바라고 기다리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감염자 수가 5백만 명을 향해 가고 있는 미국에서는 백신을 두고 정치적 논쟁이 한창이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최대한 빨리 백신을 내놓고 싶어 하는 정치인 트럼프가 있고 그를 불신하는 대중이 있다. 백신이 나와도 못 믿겠다며 접종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로 인해 심화된 사회적 인종적 차별로 인해 고통 받는 흑인의 경우에 이런 불신이 더 크다. 지난 6월 마이애미 대학 연구팀의 설문조사에서 흑인 42%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인에게 위험하고 불필요한 백신을 강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고 답했다. 그 반대편에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이 나온다고 해도 역병의 확산을 막는데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약을 만드는 것도 쓰는 것도 사람이다. 음모론이 난무하고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그 어떤 신약과 백신으로도 역병을 막을 수 없다. 지금껏 한국이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사회 구성원 간의 기본적 믿음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모쪼록 그런 신뢰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유지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