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176> 치매 위험을 낮추는 백신
정재훈
입력 2025-04-10 13:39 수정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스크랩하기
작게보기 크게보기
정재훈 약사.

치매는 자신과 가족의 삶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이다. 전 세계적으로 5,500만 명 이상이 치매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매년 약 1,000만 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한다. 불행히도 치매의 발병을 늦추는 예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지난 4월 2일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새로운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대상포진 백신 접종이 치매 발병 위험을 무려 20%나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도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와 흡사한 자연 실험을 이용한 것이어서 눈여겨볼 만하다.

과학자들이 왜 대상포진 백신과 치매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대상포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대상포진은 어린이에게 수두를 일으키는 것과 동일한 바이러스인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에 의해 발생한다. 대개 어린 시절 수두에 걸린 후, 이 바이러스는 수십 년 동안 신경 세포에서 무증상 휴면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면역 체계가 약해지면, 휴면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어 대상포진을 일으킬 수 있다.

화끈거리거나 따끔거린 느낌의 통증, 고통스러운 물집, 무감각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포진 후 신경통이 만성화되어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추는 이유에 대한 이론 하나는 백신이 대상포진으로 인한 신경 염증을 줄인다는 것이다.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사람과 안 맞은 사람을 단순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백신 접종 여부가 아닌 다른 생활상의 차이가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을 접종받는 사람이 건강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더 나은 식습관에 운동을 더 자주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상포진 백신이 정말 치매 위험을 낮추는지 인과성을 확인하려면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마침 2013년 영국 웨일스에서 우연히 그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 백신 공급 부족으로 2013년 9월 1일 시점에 79세인 사람은 누구나 1년간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고 80세 이상인 사람은 무료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시행일 일주일 전에 태어난 사람과 일주일 후에 태어난 사람을 비교하면 두 그룹에는 그 짧은 시간차 외에는 차이점이 거의 없어서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시행하는 것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진이 교육 수준, 만성질환(당뇨병, 심장병, 암), 약물 등 치매 위험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을 비교한 결과 두 그룹은 모든 면에서 비슷했다.      

연구진은 이후 7년 동안 이들 두 그룹을 추적했다. 2013년에 2주일 차이로 79세 또는 80세였던 사람은 2020년에 86세와 87세가 되었고 그 사이 일부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은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이 기간 동안 치매에 걸릴 확률이 20% 낮게 나타났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스탠포드 의학 조교수 파스칼 겔드세처 박사는 “이는 정말 놀라운 발견”이라며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으로 더 강력하게 인과성을 밝히는 후속 연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추는 이유에 대한 또 다른 이론은 백신이 면역 체계를 광범위하게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백신의 치매 보호 효과를 더 크게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여성의 면역체계가 남성보다 더 잘 반응하기 때문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자가면역 질환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서 백신의 치매 보호 효과가 더 컸다.

2017년 미국에서 기존 대상포진 백신(Zostavax)보다 더 효과적이며 지속적인 새 백신(Shingrix)으로 전환된 후 자료를 분석한 2024년 영국 연구에서도 새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기존 백신을 맞은 사람보다 치매 진단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후속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대상포진 백신의 효과와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할 이유가 늘어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전체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176> 치매 위험을 낮추는 백신
아이콘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관한 사항 (필수)
  - 개인정보 이용 목적 : 콘텐츠 발송
- 개인정보 수집 항목 : 받는분 이메일, 보내는 분 이름, 이메일 정보
-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 기간 : 이메일 발송 후 1일내 파기
받는 사람 이메일
* 받는 사람이 여러사람일 경우 Enter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 (최대 5명까지 가능)
보낼 메세지
(선택사항)
보내는 사람 이름
보내는 사람 이메일
@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176> 치매 위험을 낮추는 백신
이 정보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
스크랩한 정보는 마이페이지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