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데이터 관련 정보통신기술과 비즈니스 프로세스 혁신에 이어서 금번에는 약업현장에서 인적자원 관리의 한가지 혁신요소를 고찰해 보자.
2013년도 MIT대학교 Sloan 경영전문대학원의 발표에 따르면, Digital Transformation의 최대 목표는 (1)고객경험 혁신(44%), (2)운영프로세스의 효율∙ 효과 향상(30%), (3)비즈니스 가치의 제고(26%)라고 하였다. 이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고객, 직원, 사업파트너를 위한 최우선적인 혁신분야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바로 인적자원일 것이다. 예부터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격언이 있으며, 삼성그룹을 창업했던 이병철 회장도 “기업(企業)은 사람이다.”라며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역설했었다.
가까운 미래에 약사직능이 크게 위축된다는 예측에 대하여 약업계의 관심과 우려가 높다. 왜냐하면 (1)일상 업무가 정형화 되어있고, (2)업무수행을 위한 동선과 시간의 계측 및 통제가 수월하며, (3)업무에 투입되는 자원이 고가일수록 인공지능과 자동시스템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약사의 통상적인 업무프로세스가 이에 부합하며, 1~4차 산업혁명이란 결국 산업생산력 향상을 제고하려는 경제사회적 혁신과정이기 때문이다.
약사 직업의 미래
2017년도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약사의 주요업무는 전문의약품의 처방감사(10.1%), 조제와 투약(23.5%), 복약지도(17.1%), 일반의약품 판매 및 상담(14.2%), 기타 보건의료제품의 판매와 경영 행위였다. 각개 업무는 정확성과 안전성이 중요하므로 컴퓨터나 자동화 기계를 활용한 정형화, 표준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 효과를 지속적으로 달성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약사직능의 핵심영역은 처방조제와 복약지도를 넘어, 약물사용의 성과를 모니터링하고 지역주민에 대한 건강과 만성질환 관리까지 수행하는 이른바 헬스케어 전문가(healthcare professional, HCP)로 확장시켜 인공지능(AI)이나 로봇에 의하여 대체될 위험은 낮추면서 국민의 보건의료수준을 향상시키고 보험재정의 절감에 기여하도록 조속히 변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간적∙감성적 접촉(Human touch)에 대한 약사의 역량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증가하고있는데, 약국을 방문한 서비스 수요자가 느끼는 감성적 터치, 곧 고객경험은 약사뿐 아니라 종업원(약국 보조인력)으로부터도 동시에 제공받으며, 약국의 경영의 대상은 모든 인력을 포괄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약무보조인력을 중심으로 약업계의 인적자원 활용실태를 점검해 보자.
우리나라 보조인력의 활용 실태와 현안
약국은 접근성의 우수함 덕분에 예전에는 1차적 보건의료서비스까지 제공했으나, 의약분업 이후에는 처방조제와 복약지도, 재고관리, 보험청구, 경영관리 등 총체적 업무량은 오히려 더 증가하였다. 그래서 약사업무를 보조하는 인력의 수는 증가하였으며 그들의 담당업무도 다양해졌다. 2019년말 현재, 전국에 개설된 약국은 2만3천여개이며, 종사 중인 약사는 3만여명이므로 이른바 ‘나 홀로 약국’이 77%에 이른다. 그리고, 약국 보조인력(補助人力)의 수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지만, 통계청 자료를 근거로 추산하면, 약 2만명을 상회한다는 것이 약업계의 중론이다.
지난 수십 년간 약국내 ‘무자격자’에 의한 불법조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약국보조인력의 본질적 역할과 직무범위를 재정비할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래서 약국 보조인력의 자격제도 도입을 위한 논의도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약국의 불법적 면허대여를 조장할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큰 진전이 없이 답보상태이다. 약국에서 법률위반사례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아직까지 보조인력에 대한 표준업무지침(SOP)이 없으며, 자격자를 양성할 교육과정과 인증평가체계의 법제화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 2012년 5월의 약사법 개정으로 ‘안전상비의약품’의 약국외 소매점 판매가 허용되었다. 약사가 아닌 자에게 소정의 교육 후 의약품 판매 자격을 부여한 것은 일반의약품의 판매 주체를 약국내의 약사로만 한정했던 약사법의 취지와 배치되기에, 약국으로부터 전문카운터를 근절하고, 종업원의 일반의약품 판매보조행위의 위법성 및 일반의약품의 판매주체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추세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래의 약사직능은 예전처럼 의약품을 분포, 배합하는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약의 전문가로서 환자의 건강을 관리하는 의료전달체계의 구성원으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의사처방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강조하였고, 전문적인 약료(藥療)서비스를 강화하여 환자의 복약순응도와 약물치료성과를 향상시키며, 보건의료비용을 절감시키는 다중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실제로, 근무약사 중에서 복약지도와 환자 관리를 모두 담당할 때의 급여수준이 주로 조제만 담당하는 경우보다 높게 책정되고있는 현실은 환자를 임상적으로 관리하는 업무에 큰 가치를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약사는 여전히 전통적 업무인 조제와 복약지도에 약 50%의 시간을 할애 중이며 약사인력의 공급과 업무의 개선에도 한계가 있어 선진국처럼 약사의 역할을 확장하거나 변환시키려면 약국의 보조인력자원을 이제와는 다르게 해석하여 활용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무자격자의 조제실태 점검 및 구체적인 해결안 도출, 미래의 약사역할 확대를 지원할 보조인력 ‘자격제도(일명 약무보조원)’를 도입할 구체적인 방안과 시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미 시작된 약학교육 6년제 시행의 배경에는 선진국처럼 저난이도의 단순∙반복적 업무는 보조인력에게 위임하고 약사는 심화약료행위의 전문가답게 분석, 평가, 판단, 결정, 교육, 관리하는 일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각에서 여전히 약무보조원 자격제도의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조무인력이 담당하는 업무를 아직도 약사가 맡아 수행하면서 장차 인공지능과 기계에 대체될 지도 모르는 위태한 상태에 머물면서 정작 선진형 약사의 역할과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아니될 것이다.
약무보조인력에 대한 새로운 시각
세계약사연맹(FIP)이 전세계 약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2009년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2%의 약사가 일상업무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으로 소비자의 급증하는 요구에 부응하다가 일상생활이 과부하에 빠져 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이 파괴되었다고 하소연하였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약국경영측면에서 사회적 요구가 급격히 증가한 원인으로 몇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령환자 돌봄서비스(care service)의 수요가 급증했으며, 난치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의 개발로 약사의 역할과 업무는 현저히 확대되었다. 둘째, 직업 및 기술 환경의 변화에 부응하기위하여 약국서비스의 범위는 확장되고 약물안전성을 보장받으려는 욕구의 증가는 약국의 업무시간 증가로 이어졌다. 셋째, 환자안전을 향상시키려는 제도적 장치인 ‘Professional Quality Assurance (PQA)’가 심화되어 약사의 책임부담이 무거워졌다. 넷째, 구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여성약사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직업적 노동과 가사 및 육아 노동의 균형이 깨어졌고 약국의 근무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이 같은 변화상이 약사에게 업무상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직장생활의 갈등을 유발시킨 요인이기에 궁극적으로 약무조무원(Pharmacy Technician)의 필요성과 수요를 자극하게 되었다고 분석하였다.
따라서 이제 우리나라도 약국 보조인력의 자격요건이나 업무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일을 더이상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인구대비 약사 수가 적으며 최근에 연간 배출 인력이 증가추세이다. 보조인력은 이러한 인력 수급문제와 밀접히 연관되므로, 지금 국민의 선진형 약료서비스의 수요증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기회를 잃는다면, 필수 인력수급은 부족한 채 비전문적 업무량만 가중될 것이고 약사직능은 이러한 고비용-저효율의 문제점을 인공지능과 자동화를 통하여 타개하려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흐름에 산업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인적자원의 중요성에 대한 재고(再考)
인적자원관리는 어떤 조직이든지 현재와 장래를 위한 혁신활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요소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약국 현장의 주요한 인적자원인 약사와 보조인력 사이에는 동업자 혹은 동료의식이 잘 형성되어 있지는 못하다.
필자는 올해로 46년차를 맞이하는 ‘대한민국 약국경영대상’ 수상 약국을 선별하는 심사위원 자격으로 지난 4년간 전국 64개의 약국을 직접 방문하여 약사와 조무인력 약 200여명을 인터뷰하고 해당 약국의 특장점을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수상 약국들은 인적자원관리 측면의 차별성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한 조직의 인적자원관리 프로세스는 채용-교육∙개발-배치-평가-보상-재교육∙재배치-면직∙해고라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그림 1).
그림 1. 인적자원 관리의 세부 요소 (출처: https://mbanote2.tistory.com/195)
하지만 전국 대다수의 약국이 이런 세부과정의 중요성을 잘 모르거나 체계적으로 운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우수한 약국이 가진 공통점은 다음기회에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래서 지금은 선진국들이 약국 보조인력의 역할변화를 어떻게 제도화 했고 사회적으로 수용했는지 면밀히 연구하고, 우리나라 임상∙경영 현장에 효율적으로 적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미국의 경영컨설턴트이자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이란 저서로 유명해진 짐 콜린스는 그의 또다른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지속적 성장을 희망하는 경영자와 조직에게 강렬한 통찰력을 제공하였다 그는 ‘도약에 성공한 조직이 그렇지 못한 비교 조직과 구별되는 공통점이 무엇인지, 무엇이 다른지 혹은, 어떻게 특별한 지를 탐구하였다.
좋은 조직을 위대한 조직으로 도약시킨 리더들이 먼저 한 일은 적합한 사람을 버스에 태우는 일, 그리고 부적합한 사람을 내리게 하는 일이었다. 그 후에 이들은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위대한 조직에 이르는 길을 찾는 과정에 착수했다. 물론, 좋은 기업으로 남는 것도 충분한 의미는 있다. 그러나 위대한 기업으로 오래 기억되고 싶은 이들에게 콜린스가 강조한 것은 결국 ‘사람(인적자원)’이었다.
77%의 약국이 1인 약사가 운영하는 현실이니, 약국의 경영 초점이 오직 현실 문제의 타개에만 치우친 듯하여 안타깝다. 21세기 헬스케어 격변기에 약국이 현명히 대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