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26> 환자가 복용하고 있는 약을 확인하기 힘든 우리나라 의료제도
신재규 교수
입력 2017-06-08 08:49 수정 최종수정 2017-06-0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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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일 전 어머니께서 무릎이 안 좋으시다고 정형외과에 다녀오셨고 지난 주에는 발에 물혹 (cyst)이 생겨서 큰 병원에 다녀 오셨다고 하신다.  복숭아뼈 근처에 생긴 모양인데 주사로 물혹을 좀 뽑아 내는 처치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물혹을 말리는 약을 받아 오셔서 드시는 중이란다.

필자 : 무슨 약을 받으셨어요?
어머니 : 물빼는 약으로 쎄넥스 캡슐 100 mg과 소화제로 엘버스정 이렇게 받아 왔어. 의사 선생님이 약을 하루에 두 번씩 일단 일주일 먹고 다시 보자고 했어.  그런데, 이주 전에 정형외과에서 받아온 약이 있는데 약국에 물어보니 쎄넥스 캡슐과 적응증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건 안 먹고 있어.
필자 : 그 약이름이 뭐예요?
어머니 ; 아크로정.

쎄넥스 캡슐과 아크로정은 각각 셀레콕시브 (celecoxib)와 아세클로페낙 (aceclofenac)을 성분으로 하는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다.  환자가 쉽게 알아듣도록 설명하려 했겠지만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는 물 빼는 약이 아니고 통증 경감을 목적으로 널리 쓰인다.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는 통증 경감에 비교적 효과적이기는 하나 위장관 출혈, 혈압 상승 등 여러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이들은 널리 사용되기 때문에 시판되는 약들 중 위장관 출혈을 가장 많이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어머니의 경우 물혹 시술 후에 통증완화라는 적응증이 있으므로 쎄넥스 캡슐의 사용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통증이 없다면 굳이 복용할 필요가 없으므로 매일 두번씩 복용하기보다는 필요할 때 – 즉, 통증이 있을 때 - 하루 두 번까지 복용하는 것이 좀 더 약을 안전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사례에서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은 서로 다른 의사에 의해 중복처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즉, 물혹 시술을 한 큰 병원 의사는 어머니가 일주일 전에 정형외과에서 아세클로페낙을 처방받은 줄 모르고  이와 비슷한 쎄넥스 캡슐을 처방했다.  만약 약사에게 두 약에 대해 묻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비슷한 약 두 종류를 복용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노인인데다 위염 병력이 있기 때문에 위장관 출혈 위험이 다른 사람보다 좀 높을 수 있다.  따라서, 두 약을 동시에 복용했으면 부작용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다.
 
환자가 현재 무슨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정확한 진단과 안전하고 효과적인 처방에 가장 필요한 정보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마다 현재 무슨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를 환자본인이나 약국으로부터 반드시 확인해서 환자 차트에 적게 되어 있다.  이를 “medication reconcilia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의 사용에 가장 기초가 되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medication reconciliation을 하지 않고 보험을 청구하면 메디케어와 같은 공보험로부터 받는 보험지급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그런데, medication reconciliation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만약 병원차트에 환자가 복용하고 있는 약에 대한 기록이 있다면 환자가 집에서 복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 이에 따라 기록을 개정 (update)해야 한다 (서로 비교한 다음 개정한다고 해서 reconciliation – 화해 – 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환자가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약을 잘 모르면 약국에 전화해서 알아본 다음 개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환자가 약을 각각 어떻게 복용하고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나도 초진이건 재진이건 클리닉을 방문하는 모든 환자에게 이 작업을 하는데 여기에 적어도 5분은 걸리고, 환자가 복용하고 있는 약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에는 20-30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보통 15-20분이 진료시간에 할당되지만 환자가 많은 약을 복용하거나 복용하고 있는 약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이 정도의 진료시간으로 medication reconciliation, 진단, 치료를 모두 충분히 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약사에게 medication reconciliation 작업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내가 받는 협진의뢰 중 상당부분을  medication reconciliation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보험수가 등을 이유로 3분 진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진료시간이 아주 짧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주치의라고도 불리는 일차의료제공자 (primary care provider)가 환자 케어를 주관하고 조정한다.  즉, 주치의는 환자 케어의 일종의 허브 (hub)이기 때문에 주치의는 환자가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에 기록을 보관하고 있어 이를 다른 의사들과 이를 공유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주치의 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고 환자들이 독립적으로 여러 의사를 만날 수 있는데다 의사들끼리 환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제도가 미흡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계열의 약을 중복 사용하거나, 같이 쓸  경우 건강에 위해를 일으킬 수 있는 약을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진료시간을 현실화시키고 일차의료제공자 제도 등을 도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현재 우리나라 의료제도와 의학교육제도로는 이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 환자들의 모든 보험처방기록을 보관하고 있고 약국이 이 기록을 접근할 수 있는 것 같으니 이를 이용하면 어떨까?  즉, 약국은 새로 내린 처방약과 그동안의 보험처방기록을 대조하고 만약 문제가 있으면 의료기관에 알리고 대안을 제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일부 약국에서 자발적으로 중복처방에 대해 병원과 상의해서 처방을 조정하고 있는 것 같으나 어머니의 예에서 보듯이 모든 약국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약국이 중복처방 조정 업무에 대한 보상을 받도록 한다면 더 많은 약국들이 참여할 것이다.  양질의 복약지도를 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도 함께 고려해야 하므로 보험처방기록을 검토하는 것은 약국으로서도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약국이 보험처방기록을 검토하고 의료기관에 알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는 약국과 의료기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기관과 약국의 관계가 현재와 같이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수평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의 사용은 어느 직역 혼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직종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필자약력>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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