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료 경험기 2 – 진단 이후의 삶 (Life After the Diagnosis)
어머니가 췌장암의 진단을 받을 때 내 마음을 가장 무겁게 만든 것은 예후 (prognosis)였다. 암이 주변에 퍼지지 않은 단계의 환자들조차 5년 생존율은 30%를 넘지 못하며, 어머니처럼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경우에는 5년 생존율이 고작 3%다. 그래서, 미국의 국립 암 센터는 2017년에 약53,000여명의 췌장암 환자가 새로 발생하여 전체 암 중 발생건 수로 12위를 차지하겠지만, 약 43,000여명이 사망하여 사망자 수로는 3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을 정도다.
주변으로 퍼지지 않은 췌장암의 경우 수술도 고려할 수 있으나 어머니처럼 전이된 경우에는 항암제가 주로 쓰인다. 이전에는 gemcitabine 단독요법이 많이 쓰였지만 지금은 4가지 약을 함께 쓰는 FOLFIRINOX요법이나 두 가지 약 - gemcitabine과 nab-paclitaxel – 을 쓰는 요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FOLFIRINOX요법은 leucovorin (FOLinic acid), 5-Fluorouracil, IRINotecan, OXaloplastin이라는 약을 함께 쓰는 방법이다. 임상시험에 의하면, 이 요법은 gemcitabine 단독 요법보다 평균 수명 (정확히는 median survival지만 간단히 평균 수명으로 한다)을 약 7개월에서 11개월로 늘린다. 그러나, 부작용으로 심한 신경통증 (sensory neuropathy)과 설사가 gemcitabine 단독요법에 비해 훨씬 많이 발생한다. 그리고, 면역세포인 호중구 (neutrophil) 수 부족으로 인한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발열 (febrile neutropenia) 위험도 더 크다.
Gemcitabine과 nab-paclitaxel의 두 약을 함께 쓰는 요법은 gemcitabine 단독요법에 비해 평균 수명을 약 7개월에서 8.5개월로 늘린다. 하지만, 호중구수 부족으로 인한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발열 (febrile neutropenia), 피로 (fatigue), 말초 신경 손상에 의한 통증 (peripheral neuropathy), 설사 등의 부작용을 더 많이 일으킨다.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다른 장기로 전이된 췌장암 환자의 기대 수명은 3-6개월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항암제 치료를 하면 평균적으로 3-6개월 정도 생존 기간이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대신 그 댓가로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부작용을 겪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3-6개월 더 살기 위해 부작용의 위험을 무릅써야 할 만큼 항암제 치료가 가치있는 것일까?
한국으로 떠나기 전 운이 좋게도, 같이 일하는 의대 생리학 교수인 이고르 미트로비치 (Dr. Igor Mitrovic)의 소개로 우리학교 병원의 완화의료팀 (palliative care service) 주임교수인 스티브 팬틸라트 (Dr. Steve Pantilat)를 만날 수 있었다. 스티브는 완화치료라는 분야를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을 치료할 때 새로운 접근 방법을 이용한 의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고르가 소개를 해 주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한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불과 하루밖에 남지 않은 데다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의사라면 매우 바쁠 것이기 때문에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고르가 이메일을 보낸 바로 그 날 오후 4시반에 시간이 되니 만날 수 있다는 답장을 받았다.
스티브는 날 따뜻하게 맞아 주면서 어머니가 췌장암에 걸려서 매우 유감 (I am so sorry that your mother has pancreatic cancer)이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필자: 어머니에게 어떤 치료방법이 좋을까요?
스티브: 우선 환자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What is most
important to you?), 환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What do you hope for?),
또 환자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What worries you most?) 알아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처음에는 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환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바라는 것, 걱정하는 것이 치료방법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곧이어 영양공급에 대한 질문에 관한 대답으로부터 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필자: 암환자는 영양이 중요하잖아요. 어머니에게 어떤 것을 드려야 할까요?
스티브: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주세요. 어머니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면 아이스크림을 주시면 됩니다.
항암치료를 받던 안 받던 남은 삶이 길지 않으니 그동안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치료방법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환자가 기대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것을 바라고 중요하게 여기면 항암제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거나 부작용을 두려워하면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즉, 환자 중심적으로 치료 방법을 선택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언과 더불어 스티브는 자기가 최근에 쓴 책, <진단 이후의 삶: 중병을 가지고도 잘 사는 것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 (Life after the Diagnosis: Expert Advice on Living Well with Serious Illness)>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이 책은 스티브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 수천여 명을 돌보면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쓴 것으로 제목 그대로 중병 진단을 받은 이후 삶이 어떻게 변화하며 삶을 마무리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래서, 진단 이후 신체적, 심리적인 변화, 항암제, 방사선, 수술, 시술 등의 혜택, 간과되는 부작용, 통증 및 구토 등의 조절 방법, 임종 등의 의학적인 문제를 다룰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dignity), 희망, 가족, 친구들과 나누어야 할 대화, 간병인 구하는 방법, 연명치료 동의서 작성 요령 등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어머니 삶의 마지막 8주를 함께 지내는 동안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스티브의 책이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지엽적인 것에만 신경을 써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을 것 같다. 또, 내 의도와는 다르게 어머니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치료방법을 선택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고통없이 죽음을 맞기 원한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장수를 누리다가 어느 날 잠자는 중에 조용히 세상을 떠나길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스티브는 이런 행운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고, 우리 대부분은 어느 날 중병으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은 뒤에 죽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삶의 마지막 단계를 맞은 환자들을 돌보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그의 책은 이런 현실에 맞닥칠 때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실용서라고 할 수 있다. 환자와 그 가족들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우리나라 의료 경험기 2 – 진단 이후의 삶 (Life After the Diagnosis)
어머니가 췌장암의 진단을 받을 때 내 마음을 가장 무겁게 만든 것은 예후 (prognosis)였다. 암이 주변에 퍼지지 않은 단계의 환자들조차 5년 생존율은 30%를 넘지 못하며, 어머니처럼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경우에는 5년 생존율이 고작 3%다. 그래서, 미국의 국립 암 센터는 2017년에 약53,000여명의 췌장암 환자가 새로 발생하여 전체 암 중 발생건 수로 12위를 차지하겠지만, 약 43,000여명이 사망하여 사망자 수로는 3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을 정도다.
주변으로 퍼지지 않은 췌장암의 경우 수술도 고려할 수 있으나 어머니처럼 전이된 경우에는 항암제가 주로 쓰인다. 이전에는 gemcitabine 단독요법이 많이 쓰였지만 지금은 4가지 약을 함께 쓰는 FOLFIRINOX요법이나 두 가지 약 - gemcitabine과 nab-paclitaxel – 을 쓰는 요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FOLFIRINOX요법은 leucovorin (FOLinic acid), 5-Fluorouracil, IRINotecan, OXaloplastin이라는 약을 함께 쓰는 방법이다. 임상시험에 의하면, 이 요법은 gemcitabine 단독 요법보다 평균 수명 (정확히는 median survival지만 간단히 평균 수명으로 한다)을 약 7개월에서 11개월로 늘린다. 그러나, 부작용으로 심한 신경통증 (sensory neuropathy)과 설사가 gemcitabine 단독요법에 비해 훨씬 많이 발생한다. 그리고, 면역세포인 호중구 (neutrophil) 수 부족으로 인한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발열 (febrile neutropenia) 위험도 더 크다.
Gemcitabine과 nab-paclitaxel의 두 약을 함께 쓰는 요법은 gemcitabine 단독요법에 비해 평균 수명을 약 7개월에서 8.5개월로 늘린다. 하지만, 호중구수 부족으로 인한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발열 (febrile neutropenia), 피로 (fatigue), 말초 신경 손상에 의한 통증 (peripheral neuropathy), 설사 등의 부작용을 더 많이 일으킨다.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다른 장기로 전이된 췌장암 환자의 기대 수명은 3-6개월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항암제 치료를 하면 평균적으로 3-6개월 정도 생존 기간이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대신 그 댓가로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부작용을 겪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3-6개월 더 살기 위해 부작용의 위험을 무릅써야 할 만큼 항암제 치료가 가치있는 것일까?
한국으로 떠나기 전 운이 좋게도, 같이 일하는 의대 생리학 교수인 이고르 미트로비치 (Dr. Igor Mitrovic)의 소개로 우리학교 병원의 완화의료팀 (palliative care service) 주임교수인 스티브 팬틸라트 (Dr. Steve Pantilat)를 만날 수 있었다. 스티브는 완화치료라는 분야를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을 치료할 때 새로운 접근 방법을 이용한 의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고르가 소개를 해 주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한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불과 하루밖에 남지 않은 데다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의사라면 매우 바쁠 것이기 때문에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고르가 이메일을 보낸 바로 그 날 오후 4시반에 시간이 되니 만날 수 있다는 답장을 받았다.
스티브는 날 따뜻하게 맞아 주면서 어머니가 췌장암에 걸려서 매우 유감 (I am so sorry that your mother has pancreatic cancer)이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필자: 어머니에게 어떤 치료방법이 좋을까요?
스티브: 우선 환자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What is most
important to you?), 환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What do you hope for?),
또 환자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What worries you most?) 알아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처음에는 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환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바라는 것, 걱정하는 것이 치료방법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곧이어 영양공급에 대한 질문에 관한 대답으로부터 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필자: 암환자는 영양이 중요하잖아요. 어머니에게 어떤 것을 드려야 할까요?
스티브: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주세요. 어머니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면 아이스크림을 주시면 됩니다.
항암치료를 받던 안 받던 남은 삶이 길지 않으니 그동안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치료방법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환자가 기대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것을 바라고 중요하게 여기면 항암제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거나 부작용을 두려워하면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즉, 환자 중심적으로 치료 방법을 선택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언과 더불어 스티브는 자기가 최근에 쓴 책, <진단 이후의 삶: 중병을 가지고도 잘 사는 것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 (Life after the Diagnosis: Expert Advice on Living Well with Serious Illness)>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이 책은 스티브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 수천여 명을 돌보면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쓴 것으로 제목 그대로 중병 진단을 받은 이후 삶이 어떻게 변화하며 삶을 마무리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래서, 진단 이후 신체적, 심리적인 변화, 항암제, 방사선, 수술, 시술 등의 혜택, 간과되는 부작용, 통증 및 구토 등의 조절 방법, 임종 등의 의학적인 문제를 다룰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dignity), 희망, 가족, 친구들과 나누어야 할 대화, 간병인 구하는 방법, 연명치료 동의서 작성 요령 등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어머니 삶의 마지막 8주를 함께 지내는 동안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스티브의 책이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지엽적인 것에만 신경을 써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을 것 같다. 또, 내 의도와는 다르게 어머니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치료방법을 선택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고통없이 죽음을 맞기 원한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장수를 누리다가 어느 날 잠자는 중에 조용히 세상을 떠나길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스티브는 이런 행운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고, 우리 대부분은 어느 날 중병으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은 뒤에 죽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삶의 마지막 단계를 맞은 환자들을 돌보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그의 책은 이런 현실에 맞닥칠 때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실용서라고 할 수 있다. 환자와 그 가족들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