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38>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9 – 암환자와 가족들을 혹하게 하는 민간요법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대학 임상약학과 부교수 신재규
입력 2018-05-04 09:54 수정 최종수정 2018-05-0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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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효험이 있다고 하니 한 번 해 보렴.”

7월 어느 날 무더웠던 한낮, 외삼촌이 카톡 메시지를 보내셨다.  메시지에는 부추와 요구르트로 말기 췌장암 환자가 완치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블로그가 연결되어 있었다 – 블로거의 할아버지가 서울대 병원에서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었는데 매일 노지 부추와 요구르트를 믹서에 함께 넣고 갈아서 마셨더니 암이 다 없어졌더라는 이야기였다.  

증거에 입각한 치료 (evidence-based medicine)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나는 검증되지 않은 방법을 이용하는 데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결정하신 어머니는 한 번 해 보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고지식한 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 부추와 요구르트는 음식이니 적어도 해는 끼치지 않을 것 아니야.  그러니 한 번 해 볼까?   어머니는 나와 같이 나가서 재료를 사오고 싶어 하셨다.  아마 노지 부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들을 믿고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런데, 난 걱정이 되었다.  체중이 거의 10 kg이나 빠지고 물도 잘 드시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바깥 날씨가 너무 뜨거우니 열기가 좀 식는 저녁무렵에 나가서 사오는 게 좋지 않을까?  어머니도 이 계획에 동의하셨다.     

기운이 없으신 어머니는 저녁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주무셨다.  그동안 난 그 블로그를 다시 찬찬히 읽어 보며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환자인 할아버지는 항암주사 치료를 받는 동안 노지 부추와 요구르트 요법을 쓰고 계셨구나.  가만 있자.  항암주사를 맞는 동안은 면역기능이 떨어지니까 익히지 않은 생야채나 생과일을 먹으면 안 되잖아?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항암주사를 맞는 동안 생야채인 부추를 계속 드시고 계셨네?!  그럼 심각한 감염에 걸릴 수 있을텐데…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어떤 의도로 썼는지 모르지만 말기암 환자와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거짓말을 하다니!!  지금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화가 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꽤 인기가 있는지 수없이 많은 블로그와 카페에서 인용하고 있다.그런데,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친척과 친구들로부터 소개받은 민간요법은 단지 부추와 요구르트에 국한되지 않았다 – 말기 폐암 환자가 시도해서 폐암이 완치되었다는, 우유와 계란은 피하고 감자, 고구마와 야채만을 이용한 식단 (그런데, 우유와 계란이 암세포를 더 잘 자라게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올리브유에 볶은 토마토 (다른 기름에 볶으면 효과가 없단다), 어떤 말기암 환자를 완치시켰다는 쑥과 비름나물 요법 등등.  소개해 주신 분들의 정성을 생각해서 모두 다 한 번씩은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물도 마시기 힘든 췌장암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결국은 내가 다 소비해야만 했다.그래도, 차가버섯은 어머니께서 가장 오랫동안 시도해 본 것이었다.  친한 친구분이 러시아에서 제조된 차가버섯 가루를 사오시면서 너무나 간곡하게 권유하셨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차가버섯 상품들은 면역강화, 항암효과 등을 광고하고 있었는데 꽤 인기있는 건강기능식품으로 보였다.  문헌을 검색해 보니 차가버섯의 항암작용을 보고한 논문들이 좀 있었다. 주로 러시아, 중국, 우리나라 등에서 발표한 논문들로 모두 배양된 암세포를 이용하거나 쥐 등 동물을 이용한 실험결과들이었다.  하지만,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에게 항암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차가버섯은 여러가지 제제로 팔리고 있었다 - 버섯 자체로 파는 것도 있었고 캡슐로 되어 복용이 편리한 것도 있었으며 친구분이 사오신 것처럼 가루로 된 제제를 물에 타서 복용하는 것도 있었다.  직업이 약사인지라, 차가버섯 가루 물을 만드는 일은 내가 도맡았다.  그런데, 만들 때마다 항상 궁금한 점 몇 개 있었다.

1)얼마나 많은 양의 물에 얼마나 많은 양의 버섯가루를 넣아야 할까?
2)얼마의 양을 얼마나 자주 드려야 하나?

어떤 물질이 약으로 효과를 내려면 적절한 용량과 횟수로 복용해야 한다.  너무 적게 복용하면 효과가 없고 너무 많이 복용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허가받은 약들은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효과는 최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용량과 횟수로 사용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효과를 최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용량과 횟수는 암세포 배양시험나 동물시험에서는 알 수 없고 반드시 임상시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암세포 배양시험이나 동물시험은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사용하는 용량보다 훨씬 많은 용량 - 보통 몇 배 이상 - 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적절한 용량과 복용횟수는 대상 환자에 따라서, 또, 제형에 따라서도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같은 항암제라도 대장암환자냐 췌장암환자냐에 따라 용량과 횟수가 다를 수 있다.  

또, 같은 종류의 암을 가진 환자라도 제형에 따라 흡수 속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효과를 최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용량과 복용 횟수는 제형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차가버섯을 가공하능 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제형이라도 제조사에 따라 주요 성분의 함량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제조사마다 알맞은 용량과 횟수가 다를 수 있다. 차가버섯의 알려진 부작용으로는 신장결석이 있다.  문헌보고에 의하면 일본의 한 간암환자가 차가버섯 가루를 하루에 찻숫갈 4-5술의 용량으로 6개월 동안 복용해서 발생한 신장결석때문에 신장투석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이는 차가버섯에는 물에 잘 녹지 않는 옥잘레이트 (oxalate)라는 성분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품이라 안전한 줄 알았지만 너무 많이 복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따라서, 신장결석 등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머니께 너무 많이 드리지도 너무 자주 드리지도 않아야 한다.  그런데, 차가버섯은 임상시험 연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난 차가버섯 가루물을 어떤 농도로 만들어서 얼마나 많이 또 얼마나 자주 드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차가버섯 가루 상품의 설명서에는 얼마의 양을 얼마의 물에 녹여 얼마의 양으로 얼마나 자주 복용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임상시험의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지시를 따랐어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다행히, 차가버섯 가루물은 어머니에게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가 어머니께 뭔가를 해 드리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을 빼고는 어머니에게는 아무런 효과를 찾을 수도 없었다.  약으로 허가를 받으면 상업적으로 더 큰 돈을 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가버섯이 민간요법에 머무르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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