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 지금 무슨 약 드시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좀 봐 드릴께요.”
77세로 고령이신데다가 우리집과 비교적 먼 거리에 떨어져 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모님은 우리집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방문해서 말기암에 걸린 동생을 위로해 주셨다. 전에 이모님이 심방세동 (atrial fibrillation)으로 와파린 (warfarin)을 드시고 계신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모님이 복용하고 계신 약에 대해서 조언해 드리고 약물상호작용도 체크해 드리고 싶었다.
“이게 내가 먹는 약들이야”.
이모님이 주신 리스트에는 5개의 약들이 적혀 있었다.
아스피린 (Aspirin) 100 mg 하루에 한 번
심바스타틴 (Simvastatin) 20 mg 하루에 한 번
졸피뎀 (Zolpidem) 5 mg 취짐전에 한 번
에티졸람 (Etizolam) 0.5 mg 취침전에 한 번
뉴옥시탐정 (성분명: 옥시트라세탐, oxytracetam) 800 mg 하루에 두 번
이모님이 건강하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예상보다 많은 종류의 약을 드시고 계셔서 좀 놀랐다. 이모님께 드린 상담 내용이 비교적 길어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각각의 약에 대한 상담 내용을 적응증 별로 나누어 정리해 본다.
1) 아스피린
“이모님, 와파린은 안 드세요?”
“응, 의사가 아스피린으로 바꿨어.”
“위장출혈같은
출혈로 입원하신 적 있으세요?”
“아니.”
“의사가
왜 아스피린으로 바꿨는지 아세요?”
“아니. 그냥 바꿨어. 왜?”
“이모님은
불규칙한 심장박동이 있으시죠?”
“응, 그래.
의사가 그랬어.”
“의사가
불규칙한 심장박동이 있으면 왜 아스피린이나 와파린을 복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나요?”
“기억이
안나.”
“이모님이
가진 종류의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심방세동이라고 불러요.
심장에는 네 개의 방이 있잖아요 - 위에 두 개, 아래 두 개.
위에 있는 두 개의 방을 심방이라고 하고 아래에 있는 방들을 심실이라고 불러요. 심장에서 피는 위의 심방을 거쳐 아래에 있는 심실로 내려 가죠. 그런데,
심방세동에 있으면 심방이 제대로 수축을 못해서 피가 심실로 잘 내려 가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심방에 피가 고여 있게 되요. 그런데,
피가 고여있게 되니 피딱지인 혈전이 생기기 쉽죠. 그리고, 이 혈전은 심방에만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심실로 내려갈 수 있어요.
그런 경우, 심실은 동맥으로 전신의 피를 공급하니까 심방으로부터 내려온 혈전이
동맥을 따라 뇌로 갈 수 있어요. 그러면, 뇌에 있는 혈관이 막히게 되죠. 이게 중풍이예요. 다시 말하면, 심방세동은 혈전을
만들어 뇌 혈관을 막히게 해서 중풍을 일으킬 수 있어요. 그래서, 심방세동이 있는 환자들은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약을 복용해야 해요.”
“그렇구나. 그래서,
아스피린을 먹는 거야?”
“예. 아스피린 같은 약을 항혈소판제라고 불러요. 혈소판은 우리 혈액에 있는 성분으로 피가 났을 때 서로 엉겨붙어 혈전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죠. 그런데, 항혈소판제 말고도 항응고제라는 약들도 있어요. 예전에 드셨던 와파린이 항응고제죠. 혈전을 만드는데에는 혈소판 외에도 혈액이 응고하는 데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효소들이 필요해요. 항응고제는
이런 효소들이 작용하는 것을 막죠. 그런데,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를 비교해 보면 심방세동에서는 항응고제가 혈전을 막는데에 있어 더 효과적이예요. 반면, 출혈의 위험은 더 높죠.”
“그러면
뭘 써야 해?”
“심방세동
환자들은 모두 다 똑같은 정도로 혈전의 위험이 있는 게 아니예요. 어떤 분은 높고 어떤 분은 낮죠. 그런데, 이 위험의 정도는
나이, 성별에 따라, 또 고혈압, 당뇨병 같은 동반질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미국 심장학회와 심장내과학회는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혈전을 방지하는 약을 고르도록 권고하고 있어요. 혈전 위험이 높지 않으면 아스피린을 써도 되고, 높으면 항응고제를 권하고 있어요. 이모님같이 출혈의 위험이 높지 않고, 연세가 75세 이상이며 여성인 경우, 미국에서는 항응고제를 씁니다.”
“그럼 항응고제로
바꿔야 하는 거야?”
“나라마다
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지만 의사랑 한 번 이야기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알았다. 의사에게 물어 보아야겠다.”
2) 심바스타틴
“심바스타틴은
왜 드세요?”
“콜레스테롤이 높대. 그런데, 금년에 내가 건강검진 받았을 때 나쁜 콜레스테롤은 80이라고 했어.”
“그 정도면
괜찮네요. 심바스타틴 드시기 전에는 나쁜 콜레스테롤이 얼마였는지 기억하세요?”
“아니.”
“심바스타틴 20 mg은 나쁜 콜레스테롤을 한 30%에서 50% 정도 떨어뜨리니까 복용 시작전의 수치와 비교해서 이 정도 낮춰졌으면 약이 잘 듣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근육 통증 같은 것은 없으시죠?”
“없어.”
“제 생각에는
그냥 계속해서 드시면 되겠어요.”
3) 졸피뎀과 에티졸람
“졸피뎀은
왜 드시는 거예요?”
“응, 내가 불면증이 있거든. 그래서, 오랫동안 복용해왔어.”
“잘 들어요?”
“응. 이거 먹으면 잠 잘 자. 그런데,
예전에는 10 mg을 잠자기 30분전에 먹었는데
한 2년 전엔가 5 mg으로 줄이더라고. 대신,
에티졸람이라는 것을 졸피뎀과 같이 먹으라고 하면서 줬어.”
“그럼 졸피뎀 5 mg하고 에티졸람 0.5 mg을 주무시기 전에 같이 드시겠네요?”
“맞아.”
“아침에
피곤하고 그렇지 않으세요?”
“그렇지는
않아. 왜?”
“에티졸람은
밤에 잤더라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피곤하게 느낄 수도 있거든요. 또 기억이 잘 나지 않게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연세 많은 분들에게는
넘어질 수 있는 위험이 커서 노인들에게는 사용을 피하도록 하고 있어요.”
“그래?”
“에티졸람없이
졸피뎀 5 mg만 드셔본 적은 있으세요?”
“없어.”
“졸피뎀은
그동안 10 mg을 써 왔었어요. 그런데, 약 3년전에 미국의 식의약품 안전청에서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그동안의 임상 데이타를 분석했어요. 이 분석에서 남성환자와 달리 여성 환자에게
졸피뎀을 10 mg으로 주게 되면 혈중농도가 너무 높아져서 부작용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그래서,
2014년 12월에 미국 식의약품 안전청은 여성 환자에게 졸피뎀을 사용할 경우 하루에 최고 5 mg만 주도록 허가사항을 바꿨어요. 우리나라 식약청도 미국 식약청에 따라 졸피뎀 허가사항을 바꿨는데 이모님
의사도 아마 이에 따라 졸피뎀 용량을 줄인 것 같아요.”
“그럼, 에티졸람은 필요없는 거야?”
“그렇게
보여요. 아마도 의사가 여성환자에게
왜 졸피뎀의 최고허가 용량을 줄이게 되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식약청에서
용량을 줄이라고 해서 줄였으니 다른 약을 더해야 겠다고 생각해서 준 것 같아요.”
“그러면
에티졸람을 그만 먹을까?”
“에티졸람과
같은 약을 갑자기 끊게 되면 잠이 안 오게 될 수 있으니 1주일 동안은 반 알만 드신 다음 완전히 중단하세요.”
“알았어. 그렇게 해 볼께.”
4) 뉴옥시탐정
“얘야, 그런데 뉴옥시탐정은 뭐니? 의사가 작년 8월에 딜티아젬 (diltiazem)에서 바꾼 거야.”
“예?? 딜티아젬과 뉴옥시탐정은 같은 용도로 쓰이는 약이 아닌데요. 딜티아젬은 심방세동에 쓰이고 뉴옥시탐정은 치매, 간질에 쓰이거든요.”
난 이모가 치매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모에게 여쭤보았다.
“이모, 간질 있으세요?”
“아니.”
“그러면, 의사가 뭐라고 하면서 뉴옥시탐정을 주었어요?”
“아무 말
없었어. 난 딜티아젬과 같이 심장약인 줄 알았는데. 의사에게
가서 물어 봐야 겠네.”
난 너무 황당해서 의사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알아보니 그 의사는 조선일보 명의 시리즈에
실린 분이었다. 유명한 의사이니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그로부터 약 2주쯤 지나서 이모의 약이 궁금해서 여쭈어 보았다.
“이모, 에티졸람은 어떻게 하셨어요?”
“네 말대로
반 알을 1주일 먹고 끊었어.”
“잠은 잘
주무세요?”
“응. 졸피뎀만으로도 잠 잘 자고 있어.”
“잘 되었네요. 근데 의사는 만나 보셨어요?”
“응. 의원에 가서 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지. 접수를 하고 간호사에게 뉴옥시탐정이 뭐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뇌영양제래. 그래서 내가 뇌영양제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왜 주었냐고 물으니까 뇌건강을
위해서 원장님이 주신 것 같다고 하더라고.
기가차서. 달라고
한 적도 없는 것을 왜 주었는지 몰라. 원장을
만나 물어보니 자기가 처방을 해 놓고는 내가 하루에 몇 번 복용하는지도 모르더군. 치매도 없고 간질도 없는 나한테 왜 처방했느냐고 따지니까 한다는 소리가
그 약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약이래.”
“의사가
그런 소리를 해요? 드셔도 되고
안 드셔도 되는 약이면 왜 처방했대요?”
“거기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더라. 그런데, 생각해 보니 처음 처방하던 날 뉴옥시탐정이 의사 책상에 놓여져 있었고 그걸 보고 처방한거 같아.”
“그럼 아마
제약회사 직원이 다녀간 다음인 것 같군요.”
“그럴지도
몰라. 생각할수록 괘씸해. 나도 찾아보니까 뉴옥시탐정은 수면장애도
일으킬 수 있대. 불면증있는 사람한테
그런 약을 주다니. 그래서, 더 이상 안 먹겠다고 하고 그냥 나왔어. 그리고, 병원도 바꿀 생각이야.”
“잘 하셨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나한테만 있겠니? 환자들은 잘 모르니까 의사들은 돈벌려고 자기 맘대로 하는 것 같아.”
이모는 약국에 대해서도 불만을 쏟아내셨다.
“또, 약국에 가서 뉴옥시탐정은 심장약도 아닌데 왜 나한테 조제해 주었냐고 물어 보니까 약사가 자기도 그 약이 심장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처방의사와의 관계 때문에 그랬다고 그래. 그러면서, 약사는 나한테 기억력이 좀 좋아지지 않았냐고 묻더라. 웃기지도 않아. 환자보다는 처방전 줘서 돈 벌 수 있게 해 주는 의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한가 봐. 환자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
<필자소개>
“이모님, 지금 무슨 약 드시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좀 봐 드릴께요.”
77세로 고령이신데다가 우리집과 비교적 먼 거리에 떨어져 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모님은 우리집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방문해서 말기암에 걸린 동생을 위로해 주셨다. 전에 이모님이 심방세동 (atrial fibrillation)으로 와파린 (warfarin)을 드시고 계신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모님이 복용하고 계신 약에 대해서 조언해 드리고 약물상호작용도 체크해 드리고 싶었다.
“이게 내가 먹는 약들이야”.
이모님이 주신 리스트에는 5개의 약들이 적혀 있었다.
아스피린 (Aspirin) 100 mg 하루에 한 번
심바스타틴 (Simvastatin) 20 mg 하루에 한 번
졸피뎀 (Zolpidem) 5 mg 취짐전에 한 번
에티졸람 (Etizolam) 0.5 mg 취침전에 한 번
뉴옥시탐정 (성분명: 옥시트라세탐, oxytracetam) 800 mg 하루에 두 번
이모님이 건강하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예상보다 많은 종류의 약을 드시고 계셔서 좀 놀랐다. 이모님께 드린 상담 내용이 비교적 길어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각각의 약에 대한 상담 내용을 적응증 별로 나누어 정리해 본다.
1) 아스피린
“이모님, 와파린은 안 드세요?”
“응, 의사가 아스피린으로 바꿨어.”
“위장출혈같은
출혈로 입원하신 적 있으세요?”
“아니.”
“의사가
왜 아스피린으로 바꿨는지 아세요?”
“아니. 그냥 바꿨어. 왜?”
“이모님은
불규칙한 심장박동이 있으시죠?”
“응, 그래.
의사가 그랬어.”
“의사가
불규칙한 심장박동이 있으면 왜 아스피린이나 와파린을 복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나요?”
“기억이
안나.”
“이모님이
가진 종류의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심방세동이라고 불러요.
심장에는 네 개의 방이 있잖아요 - 위에 두 개, 아래 두 개.
위에 있는 두 개의 방을 심방이라고 하고 아래에 있는 방들을 심실이라고 불러요. 심장에서 피는 위의 심방을 거쳐 아래에 있는 심실로 내려 가죠. 그런데,
심방세동에 있으면 심방이 제대로 수축을 못해서 피가 심실로 잘 내려 가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심방에 피가 고여 있게 되요. 그런데,
피가 고여있게 되니 피딱지인 혈전이 생기기 쉽죠. 그리고, 이 혈전은 심방에만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심실로 내려갈 수 있어요.
그런 경우, 심실은 동맥으로 전신의 피를 공급하니까 심방으로부터 내려온 혈전이
동맥을 따라 뇌로 갈 수 있어요. 그러면, 뇌에 있는 혈관이 막히게 되죠. 이게 중풍이예요. 다시 말하면, 심방세동은 혈전을
만들어 뇌 혈관을 막히게 해서 중풍을 일으킬 수 있어요. 그래서, 심방세동이 있는 환자들은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약을 복용해야 해요.”
“그렇구나. 그래서,
아스피린을 먹는 거야?”
“예. 아스피린 같은 약을 항혈소판제라고 불러요. 혈소판은 우리 혈액에 있는 성분으로 피가 났을 때 서로 엉겨붙어 혈전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죠. 그런데, 항혈소판제 말고도 항응고제라는 약들도 있어요. 예전에 드셨던 와파린이 항응고제죠. 혈전을 만드는데에는 혈소판 외에도 혈액이 응고하는 데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효소들이 필요해요. 항응고제는
이런 효소들이 작용하는 것을 막죠. 그런데,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를 비교해 보면 심방세동에서는 항응고제가 혈전을 막는데에 있어 더 효과적이예요. 반면, 출혈의 위험은 더 높죠.”
“그러면
뭘 써야 해?”
“심방세동
환자들은 모두 다 똑같은 정도로 혈전의 위험이 있는 게 아니예요. 어떤 분은 높고 어떤 분은 낮죠. 그런데, 이 위험의 정도는
나이, 성별에 따라, 또 고혈압, 당뇨병 같은 동반질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미국 심장학회와 심장내과학회는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혈전을 방지하는 약을 고르도록 권고하고 있어요. 혈전 위험이 높지 않으면 아스피린을 써도 되고, 높으면 항응고제를 권하고 있어요. 이모님같이 출혈의 위험이 높지 않고, 연세가 75세 이상이며 여성인 경우, 미국에서는 항응고제를 씁니다.”
“그럼 항응고제로
바꿔야 하는 거야?”
“나라마다
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지만 의사랑 한 번 이야기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알았다. 의사에게 물어 보아야겠다.”
2) 심바스타틴
“심바스타틴은
왜 드세요?”
“콜레스테롤이 높대. 그런데, 금년에 내가 건강검진 받았을 때 나쁜 콜레스테롤은 80이라고 했어.”
“그 정도면
괜찮네요. 심바스타틴 드시기 전에는 나쁜 콜레스테롤이 얼마였는지 기억하세요?”
“아니.”
“심바스타틴 20 mg은 나쁜 콜레스테롤을 한 30%에서 50% 정도 떨어뜨리니까 복용 시작전의 수치와 비교해서 이 정도 낮춰졌으면 약이 잘 듣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근육 통증 같은 것은 없으시죠?”
“없어.”
“제 생각에는
그냥 계속해서 드시면 되겠어요.”
3) 졸피뎀과 에티졸람
“졸피뎀은
왜 드시는 거예요?”
“응, 내가 불면증이 있거든. 그래서, 오랫동안 복용해왔어.”
“잘 들어요?”
“응. 이거 먹으면 잠 잘 자. 그런데,
예전에는 10 mg을 잠자기 30분전에 먹었는데
한 2년 전엔가 5 mg으로 줄이더라고. 대신,
에티졸람이라는 것을 졸피뎀과 같이 먹으라고 하면서 줬어.”
“그럼 졸피뎀 5 mg하고 에티졸람 0.5 mg을 주무시기 전에 같이 드시겠네요?”
“맞아.”
“아침에
피곤하고 그렇지 않으세요?”
“그렇지는
않아. 왜?”
“에티졸람은
밤에 잤더라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피곤하게 느낄 수도 있거든요. 또 기억이 잘 나지 않게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연세 많은 분들에게는
넘어질 수 있는 위험이 커서 노인들에게는 사용을 피하도록 하고 있어요.”
“그래?”
“에티졸람없이
졸피뎀 5 mg만 드셔본 적은 있으세요?”
“없어.”
“졸피뎀은
그동안 10 mg을 써 왔었어요. 그런데, 약 3년전에 미국의 식의약품 안전청에서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그동안의 임상 데이타를 분석했어요. 이 분석에서 남성환자와 달리 여성 환자에게
졸피뎀을 10 mg으로 주게 되면 혈중농도가 너무 높아져서 부작용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그래서,
2014년 12월에 미국 식의약품 안전청은 여성 환자에게 졸피뎀을 사용할 경우 하루에 최고 5 mg만 주도록 허가사항을 바꿨어요. 우리나라 식약청도 미국 식약청에 따라 졸피뎀 허가사항을 바꿨는데 이모님
의사도 아마 이에 따라 졸피뎀 용량을 줄인 것 같아요.”
“그럼, 에티졸람은 필요없는 거야?”
“그렇게
보여요. 아마도 의사가 여성환자에게
왜 졸피뎀의 최고허가 용량을 줄이게 되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식약청에서
용량을 줄이라고 해서 줄였으니 다른 약을 더해야 겠다고 생각해서 준 것 같아요.”
“그러면
에티졸람을 그만 먹을까?”
“에티졸람과
같은 약을 갑자기 끊게 되면 잠이 안 오게 될 수 있으니 1주일 동안은 반 알만 드신 다음 완전히 중단하세요.”
“알았어. 그렇게 해 볼께.”
4) 뉴옥시탐정
“얘야, 그런데 뉴옥시탐정은 뭐니? 의사가 작년 8월에 딜티아젬 (diltiazem)에서 바꾼 거야.”
“예?? 딜티아젬과 뉴옥시탐정은 같은 용도로 쓰이는 약이 아닌데요. 딜티아젬은 심방세동에 쓰이고 뉴옥시탐정은 치매, 간질에 쓰이거든요.”
난 이모가 치매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모에게 여쭤보았다.
“이모, 간질 있으세요?”
“아니.”
“그러면, 의사가 뭐라고 하면서 뉴옥시탐정을 주었어요?”
“아무 말
없었어. 난 딜티아젬과 같이 심장약인 줄 알았는데. 의사에게
가서 물어 봐야 겠네.”
난 너무 황당해서 의사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알아보니 그 의사는 조선일보 명의 시리즈에
실린 분이었다. 유명한 의사이니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그로부터 약 2주쯤 지나서 이모의 약이 궁금해서 여쭈어 보았다.
“이모, 에티졸람은 어떻게 하셨어요?”
“네 말대로
반 알을 1주일 먹고 끊었어.”
“잠은 잘
주무세요?”
“응. 졸피뎀만으로도 잠 잘 자고 있어.”
“잘 되었네요. 근데 의사는 만나 보셨어요?”
“응. 의원에 가서 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지. 접수를 하고 간호사에게 뉴옥시탐정이 뭐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뇌영양제래. 그래서 내가 뇌영양제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왜 주었냐고 물으니까 뇌건강을
위해서 원장님이 주신 것 같다고 하더라고.
기가차서. 달라고
한 적도 없는 것을 왜 주었는지 몰라. 원장을
만나 물어보니 자기가 처방을 해 놓고는 내가 하루에 몇 번 복용하는지도 모르더군. 치매도 없고 간질도 없는 나한테 왜 처방했느냐고 따지니까 한다는 소리가
그 약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약이래.”
“의사가
그런 소리를 해요? 드셔도 되고
안 드셔도 되는 약이면 왜 처방했대요?”
“거기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더라. 그런데, 생각해 보니 처음 처방하던 날 뉴옥시탐정이 의사 책상에 놓여져 있었고 그걸 보고 처방한거 같아.”
“그럼 아마
제약회사 직원이 다녀간 다음인 것 같군요.”
“그럴지도
몰라. 생각할수록 괘씸해. 나도 찾아보니까 뉴옥시탐정은 수면장애도
일으킬 수 있대. 불면증있는 사람한테
그런 약을 주다니. 그래서, 더 이상 안 먹겠다고 하고 그냥 나왔어. 그리고, 병원도 바꿀 생각이야.”
“잘 하셨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나한테만 있겠니? 환자들은 잘 모르니까 의사들은 돈벌려고 자기 맘대로 하는 것 같아.”
이모는 약국에 대해서도 불만을 쏟아내셨다.
“또, 약국에 가서 뉴옥시탐정은 심장약도 아닌데 왜 나한테 조제해 주었냐고 물어 보니까 약사가 자기도 그 약이 심장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처방의사와의 관계 때문에 그랬다고 그래. 그러면서, 약사는 나한테 기억력이 좀 좋아지지 않았냐고 묻더라. 웃기지도 않아. 환자보다는 처방전 줘서 돈 벌 수 있게 해 주는 의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한가 봐. 환자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
<필자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