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드디어 당화혈색소가 6.9%로 목표치에 도달했습니다.”
50대 중반 남성인 A는 금년초부터 당뇨병 약물치료를 위해 내 클리닉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오고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 그의 당화혈색소는 10.9%로 목표치인 7% 미만보다 훨씬 높았다. 이처럼 당화혈색소가 10%가 넘는 경우,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를 여러 개 쓰더라도 목표치인 7% 미만으로 내리기 힘들다. 그래서 첫 방문때 인슐린을 시작했다. 인슐린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환자가 혈당을 집에서 정기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하지만 CD는 피를 보는 것을 두려워해서 혈당을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슐린을 곧 중단해야만 했고 메트포민 (metformin),글리피지드(glipizide),엠파글리플로진(empagliflozin), 리라글루티드 (liraglutide) 등 네 가지 약물을 처방받아 사용하고 있다.
“복용하고 계신 약들을 가지고 오셨나요?”
“여기 있습니다.”
나는 환자들이 약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반드시 확인한다
1)라벨에 적혀 있는 약국에서 교부받은 날짜와 약의 수량
2)약병내의 내용물 (즉, 정제나 캡슐)과 그 숫자
3)약병 겉에 붙어 있는 라벨을 가리고 약병 뚜껑을 열어 환자에게 내용물을 보여 주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복용하는지 (예, 하루 한 번, 하루 중 언제 등) 질문
내가 이러한 사항을 확인하는 이유는 환자의 복약순응도 – 환자가 약을 처방받은대로 복용하는 정도 –를 평가하기 위해서다. 약국에서 교부받은 날짜와 약의 수량, 그리고 현재 약병내에 남아있는 내용물의 숫자를 비교해 보면 환자의 복약순응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또, 간혹 어떤 환자들은 한 약병내에 여러 약을 함께 담아 두기도 한다. 이때 각각의 내용물을 동정해서 이들이 처방받은 약들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도 복약순응도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약을 어떻게 복용하는지 물었을 때 많은 환자들이 라벨에 적혀 있는 복약지시사항 (예, 하루에 한 번 복용)을 그대로 읽어 대답한다. 라벨을 가리고 내용물만을 보여주면 환자가 실제로 집에서 어떻게 복용하는지를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가 가져온 각각의 약병에는 단 한 종류의 내용물만이 들어 있었다. 메트포민과 글리피지드는 각각 90일치를 6개월전에 약국에서 교부받았다.
“이 약병들이 가장 최근에 약국에서 교부받은 것인가요?”
그는 남미출신으로 영어로 말할 줄 모른다. 그런데, 영어를 읽을 줄 모르는 일부 환자들은 첫번째 받은 약병에 자신들이 쓰는 언어로 복약지시사항을 따로 적어 놓은 다음, 약국에서 약을 새로 교부받을 때마다 내용물을 그 약병을 옮겨담기도 한다.
“예.”
따라서, 그가 오늘 가져온 메트포민과 글리피지드는 6개월전에 약국에서 교부받은 것들이다
“선생님 메트포민을 어떻게 복용하세요?”
나는 메트포민 한 알을 하루에 두 번 복용하도록 처방했었다.
“하루에 한 알을 두 번 복용합니다. 아니. 하루에 한 번 복용합니다.”
“하루에 한 번 복용하세요 아니면 두 번 복용하세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난 일주일동안 약 복용하는 것을 몇 번 잊으셨나요?”
“가끔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약에 대해 우려사항이 있으신지요?”
“그런 것은 없고요. 술을 마실 때 같이 복용하면 안 될 것 같아 술을 마실때에는 약을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술을 얼마나 자주 마시나요?”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어떤 술을 주로 마십니까?”
“맥주를 마십니다.”
“한 번에 얼마나 마십니까?”
“여섯 병 마십니다.”
나는 그의 당화혈색소가 왜 낮아졌는지 깨달았다. 술과 그의 생활환경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음주량과 당화혈색소 수치는 일반적으로 서로 반비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음주량이 많을수록 당화혈색소는 떨어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알콜 자체가 칼로리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알콜은 1그램당 7킬로칼로리를 낸다. 그런데, 설탕 1그램이 4킬로칼로리를 공급하므로 알콜이 훨씬 더 많은 칼로리를 공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술배 나왔다”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맥주 1병은 약 360 ml로 약 150킬로칼로리의 열량을 낸다. 맥주 6병이 내는 열량은 약 900 킬로칼로리이다. 성인 남성이 하루에 필요한 열량은 보통 2000 킬로칼로리이다. 따라서, 그는 하루에 필요한 열량의 거의 반을 술로부터 얻어왔던 것이다 (물론, 이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경우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음주량을 줄여서 말하고운동량은 과장한다).
그런데, 술에서 얻는 열량이 모두 알콜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술은 탄수화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탄수화물의 양은 술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와인 150 ml에는 단 4그램만의 탄수화물이 들어있는 반면, 맥주 한 병에는 13그램이 들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술 중 소주는 일반적으로 탄수화물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고 막걸리는 100 ml당 2 그램이 들어 있다.
이처럼 많은 종류의 술이 아주 적은 양의 탄수화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들은 술을 마실때 저혈당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저혈당을 직접 일으킬 수 있는 설포닐우레아계 약물이나 인슐린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 더욱 그렇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 술에 포함된 탄수화물의 양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안주의 종류와 양(즉, 탄수화물이 포함된 안주와 그 양)을 결정해야 한다. 또 인슐린의 용량을 줄이거나 잠시 중단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그처럼 맥주 6병을 마신다면 약 80그램의 탄수화물을 술로부터 얻는 셈이다. 이는 물론 안주를 제외한 것으므로 안주의 종류에 따라 탄수화물로부터 얻는 총열량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달리 서구는 안주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경우 술을 마시는 동안 섭취하는 탄수화물의 양은 80 그램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당뇨병 환자들은 식사당 약 45~60 그램의 탄수화물을 섭취할 것을 권장한다. 따라서, 약 80그램의 탄수화물의 양은 적은 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당화혈색소는 어떻게 떨어졌을까? 이는 아마도 그가 많은 열량을 술로부터 얻어서 탄수화물이 포함된 다른 음식을 따로 섭취하지 않았기 때문인것으로 보인다. 보통 술이 깬 다음 식욕이 떨어지는 것도 다른 음식 섭취를 줄이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그의 현재 생활환경도 중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그는 특별한 직업이 없고 친구들 집에서 산다. 그래서, 집에 여분의 음식이 있느냐에 따라 하루에 먹는 식사량이 달라지곤 했다.
“선생님, 술의 양이 좀 많습니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여러 어려운 상황을 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또 고국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생각이 날 때도 그렇고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어려운 상황을 견디면서 본인의 미래와 가족들을 위해 생활하고 있다. 특히 적은 액수의 수입임에도 이를 쪼개서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분들을 보면 이들의 의지와 가족사랑이 얼마나 큰 지 느껴진다.
“저는 환자분의 건강이 많이 걱정됩니다. 이처럼 술을 많이 드시면 간 등 여러 장기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술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현재 상황을 잊기 위해서 술이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는 아버님, 어머님, 형제들 모두 당신이 술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바라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네, 노력 해 보겠습니다.”
진료실 문을 나서는 그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는 복약순응도 확인에 대한 중요성이다. 만약 그의 당화혈색소 수치가 좋다고 복약순응도에 대한 확인을 건너 뛰었다면 그의 수치가 좋아진 것에 대해 엉뚱한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검사결과가 좋건 나쁘건 복약순응도에 대한 확인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째는 건강관련종사자로서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그의 현재 처한 상황이 술을 마시도록 만든 원인이기 때문에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그가 술을 완전히 끊기는 힘들 것이다. 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만 그의 건강이 좋아질 수 있는데 나는 여기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다. 환자의 건강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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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드디어 당화혈색소가 6.9%로 목표치에 도달했습니다.”
50대 중반 남성인 A는 금년초부터 당뇨병 약물치료를 위해 내 클리닉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오고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 그의 당화혈색소는 10.9%로 목표치인 7% 미만보다 훨씬 높았다. 이처럼 당화혈색소가 10%가 넘는 경우,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를 여러 개 쓰더라도 목표치인 7% 미만으로 내리기 힘들다. 그래서 첫 방문때 인슐린을 시작했다. 인슐린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환자가 혈당을 집에서 정기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하지만 CD는 피를 보는 것을 두려워해서 혈당을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슐린을 곧 중단해야만 했고 메트포민 (metformin),글리피지드(glipizide),엠파글리플로진(empagliflozin), 리라글루티드 (liraglutide) 등 네 가지 약물을 처방받아 사용하고 있다.
“복용하고 계신 약들을 가지고 오셨나요?”
“여기 있습니다.”
나는 환자들이 약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반드시 확인한다
1)라벨에 적혀 있는 약국에서 교부받은 날짜와 약의 수량
2)약병내의 내용물 (즉, 정제나 캡슐)과 그 숫자
3)약병 겉에 붙어 있는 라벨을 가리고 약병 뚜껑을 열어 환자에게 내용물을 보여 주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복용하는지 (예, 하루 한 번, 하루 중 언제 등) 질문
내가 이러한 사항을 확인하는 이유는 환자의 복약순응도 – 환자가 약을 처방받은대로 복용하는 정도 –를 평가하기 위해서다. 약국에서 교부받은 날짜와 약의 수량, 그리고 현재 약병내에 남아있는 내용물의 숫자를 비교해 보면 환자의 복약순응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또, 간혹 어떤 환자들은 한 약병내에 여러 약을 함께 담아 두기도 한다. 이때 각각의 내용물을 동정해서 이들이 처방받은 약들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도 복약순응도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약을 어떻게 복용하는지 물었을 때 많은 환자들이 라벨에 적혀 있는 복약지시사항 (예, 하루에 한 번 복용)을 그대로 읽어 대답한다. 라벨을 가리고 내용물만을 보여주면 환자가 실제로 집에서 어떻게 복용하는지를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가 가져온 각각의 약병에는 단 한 종류의 내용물만이 들어 있었다. 메트포민과 글리피지드는 각각 90일치를 6개월전에 약국에서 교부받았다.
“이 약병들이 가장 최근에 약국에서 교부받은 것인가요?”
그는 남미출신으로 영어로 말할 줄 모른다. 그런데, 영어를 읽을 줄 모르는 일부 환자들은 첫번째 받은 약병에 자신들이 쓰는 언어로 복약지시사항을 따로 적어 놓은 다음, 약국에서 약을 새로 교부받을 때마다 내용물을 그 약병을 옮겨담기도 한다.
“예.”
따라서, 그가 오늘 가져온 메트포민과 글리피지드는 6개월전에 약국에서 교부받은 것들이다
“선생님 메트포민을 어떻게 복용하세요?”
나는 메트포민 한 알을 하루에 두 번 복용하도록 처방했었다.
“하루에 한 알을 두 번 복용합니다. 아니. 하루에 한 번 복용합니다.”
“하루에 한 번 복용하세요 아니면 두 번 복용하세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난 일주일동안 약 복용하는 것을 몇 번 잊으셨나요?”
“가끔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약에 대해 우려사항이 있으신지요?”
“그런 것은 없고요. 술을 마실 때 같이 복용하면 안 될 것 같아 술을 마실때에는 약을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술을 얼마나 자주 마시나요?”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어떤 술을 주로 마십니까?”
“맥주를 마십니다.”
“한 번에 얼마나 마십니까?”
“여섯 병 마십니다.”
나는 그의 당화혈색소가 왜 낮아졌는지 깨달았다. 술과 그의 생활환경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음주량과 당화혈색소 수치는 일반적으로 서로 반비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음주량이 많을수록 당화혈색소는 떨어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알콜 자체가 칼로리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알콜은 1그램당 7킬로칼로리를 낸다. 그런데, 설탕 1그램이 4킬로칼로리를 공급하므로 알콜이 훨씬 더 많은 칼로리를 공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술배 나왔다”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맥주 1병은 약 360 ml로 약 150킬로칼로리의 열량을 낸다. 맥주 6병이 내는 열량은 약 900 킬로칼로리이다. 성인 남성이 하루에 필요한 열량은 보통 2000 킬로칼로리이다. 따라서, 그는 하루에 필요한 열량의 거의 반을 술로부터 얻어왔던 것이다 (물론, 이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경우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음주량을 줄여서 말하고운동량은 과장한다).
그런데, 술에서 얻는 열량이 모두 알콜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술은 탄수화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탄수화물의 양은 술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와인 150 ml에는 단 4그램만의 탄수화물이 들어있는 반면, 맥주 한 병에는 13그램이 들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술 중 소주는 일반적으로 탄수화물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고 막걸리는 100 ml당 2 그램이 들어 있다.
이처럼 많은 종류의 술이 아주 적은 양의 탄수화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들은 술을 마실때 저혈당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저혈당을 직접 일으킬 수 있는 설포닐우레아계 약물이나 인슐린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 더욱 그렇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 술에 포함된 탄수화물의 양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안주의 종류와 양(즉, 탄수화물이 포함된 안주와 그 양)을 결정해야 한다. 또 인슐린의 용량을 줄이거나 잠시 중단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그처럼 맥주 6병을 마신다면 약 80그램의 탄수화물을 술로부터 얻는 셈이다. 이는 물론 안주를 제외한 것으므로 안주의 종류에 따라 탄수화물로부터 얻는 총열량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달리 서구는 안주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경우 술을 마시는 동안 섭취하는 탄수화물의 양은 80 그램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당뇨병 환자들은 식사당 약 45~60 그램의 탄수화물을 섭취할 것을 권장한다. 따라서, 약 80그램의 탄수화물의 양은 적은 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당화혈색소는 어떻게 떨어졌을까? 이는 아마도 그가 많은 열량을 술로부터 얻어서 탄수화물이 포함된 다른 음식을 따로 섭취하지 않았기 때문인것으로 보인다. 보통 술이 깬 다음 식욕이 떨어지는 것도 다른 음식 섭취를 줄이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그의 현재 생활환경도 중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그는 특별한 직업이 없고 친구들 집에서 산다. 그래서, 집에 여분의 음식이 있느냐에 따라 하루에 먹는 식사량이 달라지곤 했다.
“선생님, 술의 양이 좀 많습니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여러 어려운 상황을 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또 고국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생각이 날 때도 그렇고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어려운 상황을 견디면서 본인의 미래와 가족들을 위해 생활하고 있다. 특히 적은 액수의 수입임에도 이를 쪼개서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분들을 보면 이들의 의지와 가족사랑이 얼마나 큰 지 느껴진다.
“저는 환자분의 건강이 많이 걱정됩니다. 이처럼 술을 많이 드시면 간 등 여러 장기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술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현재 상황을 잊기 위해서 술이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는 아버님, 어머님, 형제들 모두 당신이 술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바라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네, 노력 해 보겠습니다.”
진료실 문을 나서는 그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는 복약순응도 확인에 대한 중요성이다. 만약 그의 당화혈색소 수치가 좋다고 복약순응도에 대한 확인을 건너 뛰었다면 그의 수치가 좋아진 것에 대해 엉뚱한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검사결과가 좋건 나쁘건 복약순응도에 대한 확인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째는 건강관련종사자로서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그의 현재 처한 상황이 술을 마시도록 만든 원인이기 때문에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그가 술을 완전히 끊기는 힘들 것이다. 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만 그의 건강이 좋아질 수 있는데 나는 여기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다. 환자의 건강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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