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111> 지역사회간호에 관한 논의에서 빠진 것 – 일차의료제공자
신재규
입력 2023-06-30 17:46 수정 최종수정 2023-06-3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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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간호에 관한 논의에서 빠진 것 – 일차의료제공자
 

“AS님, 병원 차트에서 지난주 흉골 골절 진단을 받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거동이 많이 불편하실텐데 다음주에 예약된 재진전에 병원에 직접 오셔서 혈액검사를 받으실수 있으신지요?”
“약사님,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AS는 50대 환자로 폐에 혈전이 발생하여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될 수 있는 폐색전증(pulmonary embolism)을 두 번이나 앓았다. 폐색전증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 항응고제인 와파린 (warfarin)이라는 약을복용 중이다.

와파린은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와파린의 효과가 너무 약하면 혈액응고가 생기기 쉽고, 효과가 너무 세면 출혈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또 와파린은 사람마다 적절한 용량이 다른데 혈액검사를 통하지 않고는 이를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뿐만 아니라 와파린은 음식, 같이 복용하는 약, 동반 질환 등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와파린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6~12주마다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AS가 흉골 골절로 인해 병원을 방문해서 혈액검사를 받을 수 없다면? 난감했다. 이때, 난 병원 차트 시스템상에서 아직 안 읽은 메시지를 발견했다. AS의 일차의료제공자로부터 온 것이었다.
 

‘약사님, 함께 협진하고 있는 환자인 AS건으로 연락드립니다. AS가 지난주 흉골 골절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AS가 회복할 때까지 가정방문 간호사가 AS의 집에 직접 방문해서 혈액을 채취하도록 오더를 내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위의 AS 사례에서 보듯이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가정방문 간호사를 두고 있다. 이 간호사들은 환자의 집을 직접 방문해서 채혈을 할 뿐만 아니라 간호에 관련된 다른 일, 예를 들어 혈압측정, 상처관리 등을 수행한다. 또,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가정의학과는 복합적 케어관리팀 (complex caremanagement team)을 별도로 운영한다. 간호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팀은 여러 동반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 중 병원에 자주 입원하거나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환자들의 케어를 돕는다. 예를 들어, 복용하는 약이 너무 많거나 복잡해서 환자가 혼란스러워 하면 이 팀은 직접 환자의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약 복용을 도와준다. 또, 환자가 재진 약속에 나타나지 않는 일이 잦으면 재진 약속에 맞추어 그 환자의 집을 직접 방문해 병원에 데리고 오기도 한다.
 

가정방문 간호사나 복합적 케어 관리팀이 환자의 집을 방문해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오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의사의 오더가 있어야만 간호사는 환자의 집을 방문하고 그 오더에 따라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오더를 내는 의사는 AS의 사례에서 보듯이 일차의료제공자(primary care provider)이다. 일차의료제공자는 이 컬럼의 다른 글에서 소개했듯이 환자 치료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맡는다. 즉, 환자 치료에 필요한 다른 전문의와 직역에 진료의뢰를 요청하고 이들간 협력을 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의 케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일차의료제공자는 가정방문 간호나 복합적 케어관리 오더를 내고 이들의 역할을 모니터한다.
 

우리나라도 상급종합병원들은 가정방문간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도가 효율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한 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의사들이 자기 진료과 소관이 아닌 질환에는 가정간호 의뢰서 발급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흡기내과에서 폐렴 치료를 받고 퇴원한 환자가 자택에서 욕창이 생기면 욕창 처치를 위한 방문간호 의뢰서를 써주지 않아 환자는 성형외과 등에서 새로 진료를 봐야 하고 이에 따른 외래 예약에만 2주 이상 걸려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호흡기내과 등 병원입원팀은 폐렴과 같이 입원이 필요한 특정 질병의 치료만을 담당한다. 그 입원팀은 환자가 입원하기 전에는 그 환자를 돌본 적이 없을 수 있다. 그래서 입원중 담당했던 의료팀이 환자의 퇴원 후까지 효과적으로 돌봐 줄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 일차의료제공자는 환자를 오랜기간 보아온 주치의로서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일차의료제공자가 퇴원후 환자의 돌봄을 주도하고 조정하는 책임을 맡는 것이 효과적이다.

따라서, 위의 폐렴 치료를 받고 퇴원한, 욕창의 위험이 높은 환자에게 일차의료제공자가 있다면 일차의료제공자의 판단하에, 또는 입원팀과의 협의하에 가정방문간호 오더를 내고 욕창발생 여부를 모니터할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기술한 AS의 일차의료제공자가 채혈을 위해 가정방문간호 오더를 내었듯이 말이다.
 

이러한 일차의료제공자의 역할은 상급병원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미국은 간호사들을 고용한 사설 가정돌봄간호서비스 (home care nursing service) 업체들이 많다. 환자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의사의 의뢰서, 즉 오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오더를내는 의사는 환자의 일차의료제공자이다.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가정돌봄간호 서비스 업체들이 있고 (우리나라는 이를 방문간호라고 부른다) 이 서비스를 받으려면 의사의 오더가 필요하다. 그런데, 환자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의료행위별로 수가를 주는 현행      우리나라 건강보험 지불제도하에서 어떤 병원이 직접 관련이 없는 간호업체에 방문간호 서비스를 의뢰한다면 환자를 직접 보지 못하여 병원 수익이 줄어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는 일차의료제공자가 없다는 것도 또 다른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이상과 같이, 환자가 병원내 가정방문간호 서비스와 병원외 사설 가정간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오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오더는 환자를 가장 잘 알고 환자 치료의 콘트롤 타워인 일차의료제공자가 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따라서, 가정간호 등 지역사회 간호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환자의 치료결과를 증진시키기 위한 논의에 일차의료제공자 제도의 도입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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