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거신 전화 번호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번호입니다.”
막막했다. HT는 벌써 세 번 연속으로 재진 약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전화 통화를 해서 재진 예약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핸드폰 전화 번호가 아예 불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HT는 일차의료제공자의 당뇨병 협진의뢰를 받아 약 3년전 처음으로 내 클리닉을 찾아 왔었다. 당시 76세였던 HT는 인슐린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혈당에 따라 인슐린 투여용량을 자신이 임의로 조절하고 있었다. 그의 일차의료제공자는 이를 여러번 만류했지만 HT 는 계속해서 용량을 임의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저혈당이 발생하여 응급실에서 여러 번 치료를 받았었다.
나를 만나기 시작한 다음에도 HT는 인슐린의 용량을 임의로 조절했다. 많은 환자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한 환자를 자주 볼 수 없는 일차의료제공자와는 달리 나는 HT를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었다. HT는 혈당을 하루에 언제 측정했는지, 인슐린을 얼마나 투여했는지를 자세하게 달력에 기록한 것을 항상 가지고 왔다. 이 기록에 따라 나는 그가 인슐린의 용량을 조절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었다. 그리고, 식사량과 운동량에 대한 조언을 해 주었다. 이로인해 HT가 인슐린의 용량을 임의로 조절하는 빈도는 많이 줄어 들었고 저혈당 발생 빈도도 감소했다. 그리고, 2022년 중반에는 당화혈색소 (hemoglobin A1c)의 수치가 목표치인 8%미만에 이를 정도로 혈당이 비교적 잘 조절되었다. 이와같이 치료효과가 좋아지자 HT가 나를 “내 약사님 (my pharmacist)”라고 부를 정도로 나와 그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런 HT가 금년들어 갑자기 변했다. 재진 약속에 반드시 나오던 그가 가끔 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서 측정한 혈당수치와 인슐린 용량을 기록한 달력을 가지고 오지 않은 날도 많아졌다. 그래서, 인슐린의 용량을 조절하는 것을 도와줄 수 없었던 만남이 늘어났다.
무엇보다 그의 혈당수치가 크게 높아졌다.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은 환자의 검사결과 수치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임상병리과에서 검사를 오더한 의사에게 바로 연락을 한다. 만약 의사에게 연락할 수 없으면 의사가 소속한 과의 당직의사에게 연락을 한다.
금년 3월이었다. 가정의학과 당직의사가 당일 측정한 HT의 혈당수치가 700 mg/dL이었다고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혈당수치가 이처럼 높으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당뇨병성 케톤산증 (diabetic ketoacidosis)이 나타날 수 있지만, 다행히 HT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문제는 이와같이 높은 혈당 수치가 일시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에 HT가 혈당수치를 기록하여 가져온 달력을 보면 그의 혈당은 낮으면 300이었고 400~600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따라 그의 당화혈색소 수치도 13.7%로 크게 높아졌다.
내가 아무리 인슐린의 용량을 증가시켜도 그의 혈당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HT와 같이 당뇨병을 수십년 앓아 온 환자는 병의 진전으로 인해 같은 용량의 인슐린에 대해 혈당이 줄어드는 정도가 많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HT는 작년 중반까지 혈당이 비교적 잘 조절되었었다. 물론, 갑작스럽게 병이 진전될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래서, 음식 등 그의 생활습관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았다.
어느 재진 날, HT는 망고 쥬스를 가지고 와서 연신 마시고 있었다.
“HT님, 혈당이 높으면 목이 마르게 됩니다. 그래서, 음료수를 찾게 되는데요. 그런데, 망고 쥬스 등 과일 쥬스에는 설탕이 많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이를 마시게 되면 혈당은 더 올라가고 목은 계속 마르게 됩니다. 쥬스대신 물을 마시는 것이 어떨까요?”
“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이가 이제 80이 다 되었습니다. 신이 저를 부르실 날 멀지 않았고 저도 언제든지 부름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은 날 동안 제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습니다.”
“HT님, 그래도 최대한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다가 부름을 받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렇게 아주 높은 혈당이 지속되면 심장, 신장, 신경에 모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 예전에 앓으신 뇌경색도 다시 생길 수 있고요. 저는 HT님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
이로부터 한 달쯤 지나 나는 HT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난 그의 혈당이 높아진 또 하나의 원인을 발견했다.
“HT님, 아침으로 어떤 것을 드세요?”
“밥과 생선을 먹습니다.”
“점심은 무엇을 드세요?”
“밥과 생선 남은 것을 먹습니다.”
“저녁은요?”
“밥과 생선.”
“다른 것은 안 드세요?”
“요새 식재료 가격이 많이 올라서 먹지 못합니다. 채소, 과일도 못 사먹고 그냥 밥만 있습니다. 큰 공기에…… 배가 안 고프게요.”
마음이 아팠다. 식료품의 가격이 평균 10% 오를 정도로 작년부터 미국의 물가가 크게 올랐다. 그리고, 높은 물가는 HT와 같은 저소득층에게 큰 영향을 준다.
HT의 혈당이 금년에 갑자기 높아진 것은 식료품 가격의 증가때문에 다양한 영양소의 섭취대신 많은 양의 밥으로 식사를 하고 남은 인생에 대한 생각의 변화로 혈당 등 건강관리에 대한 동기부여가 없어진 것이 원인으로 보였다. 인생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없는 것이지만, 식료품 보조는 병원의 사회사업팀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HT의 일차의료제공자에게 사회사업팀의 도움을 요청하도록 부탁했다.
2주뒤 HT의 재진을 준비하기 위해 그의 진료차트를 보니 사회사업팀이 HT에게 다섯번이나 연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 날, 그는 나와의 재진 약속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두 번이나 더 재진 예약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는 모두 다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전화번호는 아예 끊어져 버렸다.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지금 거신 전화 번호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번호입니다.”
막막했다. HT는 벌써 세 번 연속으로 재진 약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전화 통화를 해서 재진 예약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핸드폰 전화 번호가 아예 불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HT는 일차의료제공자의 당뇨병 협진의뢰를 받아 약 3년전 처음으로 내 클리닉을 찾아 왔었다. 당시 76세였던 HT는 인슐린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혈당에 따라 인슐린 투여용량을 자신이 임의로 조절하고 있었다. 그의 일차의료제공자는 이를 여러번 만류했지만 HT 는 계속해서 용량을 임의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저혈당이 발생하여 응급실에서 여러 번 치료를 받았었다.
나를 만나기 시작한 다음에도 HT는 인슐린의 용량을 임의로 조절했다. 많은 환자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한 환자를 자주 볼 수 없는 일차의료제공자와는 달리 나는 HT를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었다. HT는 혈당을 하루에 언제 측정했는지, 인슐린을 얼마나 투여했는지를 자세하게 달력에 기록한 것을 항상 가지고 왔다. 이 기록에 따라 나는 그가 인슐린의 용량을 조절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었다. 그리고, 식사량과 운동량에 대한 조언을 해 주었다. 이로인해 HT가 인슐린의 용량을 임의로 조절하는 빈도는 많이 줄어 들었고 저혈당 발생 빈도도 감소했다. 그리고, 2022년 중반에는 당화혈색소 (hemoglobin A1c)의 수치가 목표치인 8%미만에 이를 정도로 혈당이 비교적 잘 조절되었다. 이와같이 치료효과가 좋아지자 HT가 나를 “내 약사님 (my pharmacist)”라고 부를 정도로 나와 그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런 HT가 금년들어 갑자기 변했다. 재진 약속에 반드시 나오던 그가 가끔 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서 측정한 혈당수치와 인슐린 용량을 기록한 달력을 가지고 오지 않은 날도 많아졌다. 그래서, 인슐린의 용량을 조절하는 것을 도와줄 수 없었던 만남이 늘어났다.
무엇보다 그의 혈당수치가 크게 높아졌다.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은 환자의 검사결과 수치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임상병리과에서 검사를 오더한 의사에게 바로 연락을 한다. 만약 의사에게 연락할 수 없으면 의사가 소속한 과의 당직의사에게 연락을 한다.
금년 3월이었다. 가정의학과 당직의사가 당일 측정한 HT의 혈당수치가 700 mg/dL이었다고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혈당수치가 이처럼 높으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당뇨병성 케톤산증 (diabetic ketoacidosis)이 나타날 수 있지만, 다행히 HT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문제는 이와같이 높은 혈당 수치가 일시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에 HT가 혈당수치를 기록하여 가져온 달력을 보면 그의 혈당은 낮으면 300이었고 400~600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따라 그의 당화혈색소 수치도 13.7%로 크게 높아졌다.
내가 아무리 인슐린의 용량을 증가시켜도 그의 혈당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HT와 같이 당뇨병을 수십년 앓아 온 환자는 병의 진전으로 인해 같은 용량의 인슐린에 대해 혈당이 줄어드는 정도가 많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HT는 작년 중반까지 혈당이 비교적 잘 조절되었었다. 물론, 갑작스럽게 병이 진전될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래서, 음식 등 그의 생활습관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았다.
어느 재진 날, HT는 망고 쥬스를 가지고 와서 연신 마시고 있었다.
“HT님, 혈당이 높으면 목이 마르게 됩니다. 그래서, 음료수를 찾게 되는데요. 그런데, 망고 쥬스 등 과일 쥬스에는 설탕이 많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이를 마시게 되면 혈당은 더 올라가고 목은 계속 마르게 됩니다. 쥬스대신 물을 마시는 것이 어떨까요?”
“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이가 이제 80이 다 되었습니다. 신이 저를 부르실 날 멀지 않았고 저도 언제든지 부름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은 날 동안 제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습니다.”
“HT님, 그래도 최대한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다가 부름을 받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렇게 아주 높은 혈당이 지속되면 심장, 신장, 신경에 모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 예전에 앓으신 뇌경색도 다시 생길 수 있고요. 저는 HT님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
이로부터 한 달쯤 지나 나는 HT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난 그의 혈당이 높아진 또 하나의 원인을 발견했다.
“HT님, 아침으로 어떤 것을 드세요?”
“밥과 생선을 먹습니다.”
“점심은 무엇을 드세요?”
“밥과 생선 남은 것을 먹습니다.”
“저녁은요?”
“밥과 생선.”
“다른 것은 안 드세요?”
“요새 식재료 가격이 많이 올라서 먹지 못합니다. 채소, 과일도 못 사먹고 그냥 밥만 있습니다. 큰 공기에…… 배가 안 고프게요.”
마음이 아팠다. 식료품의 가격이 평균 10% 오를 정도로 작년부터 미국의 물가가 크게 올랐다. 그리고, 높은 물가는 HT와 같은 저소득층에게 큰 영향을 준다.
HT의 혈당이 금년에 갑자기 높아진 것은 식료품 가격의 증가때문에 다양한 영양소의 섭취대신 많은 양의 밥으로 식사를 하고 남은 인생에 대한 생각의 변화로 혈당 등 건강관리에 대한 동기부여가 없어진 것이 원인으로 보였다. 인생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없는 것이지만, 식료품 보조는 병원의 사회사업팀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HT의 일차의료제공자에게 사회사업팀의 도움을 요청하도록 부탁했다.
2주뒤 HT의 재진을 준비하기 위해 그의 진료차트를 보니 사회사업팀이 HT에게 다섯번이나 연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 날, 그는 나와의 재진 약속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두 번이나 더 재진 예약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는 모두 다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전화번호는 아예 끊어져 버렸다.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