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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27> 일본식으로 약학교육제도를 바꾸자는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 약학대학 교육제도가 2+4년제로 바뀐 지 5년이
조금 넘었지만 정착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제도를 다시 바꾸자고 하니 계속 혼란만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약학대학 쪽에서는 통6년제로 바꾸자고 하고 제약업계 쪽에서는 일본식 4+2년제를 모델로
삼자고 한다. 그리고, 이 일본식 모델에 대해 약대의 일부
기초과학 전공 교수들도 찬성하고 있는 것 같다.
제약업계 쪽 설명은 6년제를 도입한 후 약대 졸업생의 대부분이
임상약사를 지향하는 편중이 일어나 신약개발을 담당할
제약기업에서의 약학전공자가 태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 하는 것처럼, 6년제 과정 도중 4년을 이수한 시점에서 약과학자를 지향하는 사람은
임상약학 실무 교육을 이수하지 않고 약학사로 졸업하도록 하자고 한다. 즉, 4년은 약과학자 교육을
중심으로 하고 임상약사를 지향하는 사람은 2년을 추가해서 임상약학에 관련된 과목과 실습을 하자는 내용이다. 또, 현행 2+4약대 학제가 이공계 대학의 학부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으므로 약대 입학생을 처음부터 선발하면 이공계 학과의
황폐화를 막고, 신약개발과 임상약학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우리나라 현 약대교육제도가 임상약학에 편중되어 있다는 과장은 차치하고라도 일본식 제도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약과학자와 약사의 양성은 완전히 다른 교육목적(educational goals)을 갖기 때문에 교육과정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약대의 교육목적은 약사양성이다. 이는 의대의 교육목적이 의사양성이고 치과대학의 교육목적이 치과의사의 양성인
것과 같다. 그리고, 이 교육목적은 세계 어느나라를 가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약사의 직능은 약과학자의
직능과 아주 다르다. 직능이 다른
데 어떻게 같은 과정으로 4년간 교육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신약개발에 필요한 기초의학자가 부족하니 의과대학 4년은 기초의학자 교육을 중심으로 하고, 임상의사를 지향하는 사람은
병원에서 수련을 2-3년 더 하게 하자는 것과 같다.
일본은 제약산업에서는 미국과 겨루는 선진국이지만 약사의 임상능력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UCSF약대는 일본의 약대들과 교류가 많은 편이라 일본 약대 교수들과도
많이 만나 보았고 여름마다 우리학교 병원으로 실습 온 일본 약대 교환학생들을 지난 8년간 계속 가르쳐
왔다. 일본 약대교수들은 대부분
기초과학 전공자들이며 약대교육과정도 연구와 산업중심이다. 그리고, 일본 약대 졸업반
학생들의 임상능력은 같은 학년의 우리학교 학생들과 차이가 난다. 또, 국제 임상약학 학술지에
발표한 일본 논문의 수도 미국에 비하면 크게 적다.
이는 아마도 미국과 일본의 약사양성 과정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자원이 적은 우리나라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약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신약을 만들어도 그 약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컬럼에서 여러
번 지적했듯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약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이는 의약품 사용 제도 전반의 문제점에 기인한다고 생각하지만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의 사용을 도모해야 할 약사들과 이들을 배출하는 약학대학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약대교육은 단순히 임상약학이니 기초약학이니 하는 좁은 관점이 아니라 양질의 약사 양성이라는 보다 큰 범위의 프로그램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다른 전문직종 대학들은
모두 전문 직종의 양성이라는 프로그램 관점에서 교육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의과대학은 양질의
의사 양성을 위해 교육하고 있지 기초 의학자나 심장내과 임상의의 배출을 위해 교육하지 않는다. 기초 의학자나 심장내과 임상의는 일단 의대를 졸업한 후 다른 소정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약대의 교육프로그램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질의
약사를 배출하는 것이 우선이고 이후의 경력은 졸업후 과정을 거쳐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약대가 2+4년제라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시작한 이후 이공계 학부생들이 약대로 이탈하여 이공계 교육이 황폐화되었다고 한다. 이 문제점은 현 약대교육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공계 학부의 정원을 늘리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현 약대교육제도하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약대로 진학할 수 없기
때문에, 현 이공계학과 입학생들 일부는 처음부터 약대로의 진학을 목적으로 들어온 학생들이고 많은 경우
결국 떠날 것이다. 이들이 떠날
것을 고려한 정원 조정이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면, 교육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주어야 한다.
둘째,
미국의 대학처럼 pre-medicine 등 약대나 의대로의 진학을 목적으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만을 위한 과정을 따로 설치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들은 특별한 학과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약대나 의대로 이탈한다고
해도 이공계 전공 학부생 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세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약대입시에서 PEET의 비중을 낮추고 다른 요소의 배점을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약대 입시에서 PEET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 크다. PEET와 비슷한 것으로 미국에는PCAT (Pharmacy College Admissions Test)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UCSF약대의 경우 PCAT 성적을 입학지원에 요구하긴 하지만 이는 지원자가 약대 교육과정을 따라 갈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참고자료로만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시험성적은 그 날의 운, 컨디션 등 여러 요소가 영향을 끼치고,
PCAT 성적이 높은 학생이 양질의 약사가 된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또, 교육과정을 따라오는 데
중요한 성실성은 PCAT 성적으로 판정할 수 없다. 대신, 전공 성적은 성실성도
알려주는 지표이기 때문에 전공성적을 PCAT보다 좀 더 중요하게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전공성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PEET보다 낮은 약학대학들이 많다. 이 비중이 낮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부 전공 수업보다는 PEET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약국 등
약사직능 관련 경험 여부와 추천서를 입시성적에 크게 반영해야 한다. 약대는 직업학교이므로 약사라는 직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경력으로
삼겠다는 학생들을 입학시켜야 한다. 따라서, 약대에 입학하기 전에 제약회사나 지역 또는 병원 약국에서 자원봉사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약사 직능 경험을 요구하게 되면 안정적인 노후 등을 이유로 면허증을 얻고자 하는
무분별한 지원을 줄일 것이다. 또, 직장인이 약대에 지원하고 싶으면 직장에 다니면서도 약사직능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약사에 뜻이 있는
사람들만이 지원하게 될 것이다.
또, 현재 대부분의 우리나라 약대들은 추천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반면 미국 약대들은 적어도 추천서 3장을 요구하며 그 중 하나는 반드시 약사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큼 지원자를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추천서는
가장 중요한 입시자료다. 그래서, 학교에서 추천자에게 전화를 걸어서까지
지원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볼 정도다.
물론, 추천서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추천서가 조작될 위험이 있어 입학사정에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추천서 조작여부는 입학면접에서 추천서
내용의 구체적인 사항을 물어봄으로써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 약사 직능 경험과 추천서를
요구하고 심화인터뷰를 시행하면 학교가 입학사정 평가에 들여야 할 시간과 노력이 늘어난다. 하지만, 이 시간과 노력은
학교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왜냐하면, 학교의 가장 큰 자산은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필자약력>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7-07-04 1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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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26> 환자가 복용하고 있는 약을 확인하기 힘든 우리나라 의료제도
2주일 전 어머니께서 무릎이 안 좋으시다고 정형외과에 다녀오셨고 지난 주에는 발에 물혹 (cyst)이 생겨서 큰 병원에 다녀 오셨다고 하신다. 복숭아뼈 근처에 생긴 모양인데 주사로 물혹을 좀 뽑아 내는 처치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물혹을 말리는 약을 받아 오셔서 드시는 중이란다.
필자 : 무슨 약을 받으셨어요?
어머니 : 물빼는 약으로 쎄넥스 캡슐 100 mg과 소화제로 엘버스정 이렇게 받아 왔어. 의사 선생님이 약을 하루에 두 번씩 일단 일주일 먹고 다시 보자고 했어. 그런데, 이주 전에 정형외과에서 받아온 약이 있는데 약국에 물어보니 쎄넥스 캡슐과 적응증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건 안 먹고 있어.
필자 : 그 약이름이 뭐예요?
어머니 ; 아크로정.
쎄넥스 캡슐과 아크로정은 각각 셀레콕시브 (celecoxib)와 아세클로페낙 (aceclofenac)을 성분으로 하는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다. 환자가 쉽게 알아듣도록 설명하려 했겠지만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는 물 빼는 약이 아니고 통증 경감을 목적으로 널리 쓰인다.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는 통증 경감에 비교적 효과적이기는 하나 위장관 출혈, 혈압 상승 등 여러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이들은 널리 사용되기 때문에 시판되는 약들 중 위장관 출혈을 가장 많이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어머니의 경우 물혹 시술 후에 통증완화라는 적응증이 있으므로 쎄넥스 캡슐의 사용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통증이 없다면 굳이 복용할 필요가 없으므로 매일 두번씩 복용하기보다는 필요할 때 – 즉, 통증이 있을 때 - 하루 두 번까지 복용하는 것이 좀 더 약을 안전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사례에서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은 서로 다른 의사에 의해 중복처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즉, 물혹 시술을 한 큰 병원 의사는 어머니가 일주일 전에 정형외과에서 아세클로페낙을 처방받은 줄 모르고 이와 비슷한 쎄넥스 캡슐을 처방했다. 만약 약사에게 두 약에 대해 묻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비슷한 약 두 종류를 복용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노인인데다 위염 병력이 있기 때문에 위장관 출혈 위험이 다른 사람보다 좀 높을 수 있다. 따라서, 두 약을 동시에 복용했으면 부작용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다.
환자가 현재 무슨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정확한 진단과 안전하고 효과적인 처방에 가장 필요한 정보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마다 현재 무슨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를 환자본인이나 약국으로부터 반드시 확인해서 환자 차트에 적게 되어 있다. 이를 “medication reconcilia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의 사용에 가장 기초가 되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medication reconciliation을 하지 않고 보험을 청구하면 메디케어와 같은 공보험로부터 받는 보험지급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그런데, medication reconciliation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만약 병원차트에 환자가 복용하고 있는 약에 대한 기록이 있다면 환자가 집에서 복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 이에 따라 기록을 개정 (update)해야 한다 (서로 비교한 다음 개정한다고 해서 reconciliation – 화해 – 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환자가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약을 잘 모르면 약국에 전화해서 알아본 다음 개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환자가 약을 각각 어떻게 복용하고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나도 초진이건 재진이건 클리닉을 방문하는 모든 환자에게 이 작업을 하는데 여기에 적어도 5분은 걸리고, 환자가 복용하고 있는 약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에는 20-30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보통 15-20분이 진료시간에 할당되지만 환자가 많은 약을 복용하거나 복용하고 있는 약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이 정도의 진료시간으로 medication reconciliation, 진단, 치료를 모두 충분히 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약사에게 medication reconciliation 작업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내가 받는 협진의뢰 중 상당부분을 medication reconciliation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보험수가 등을 이유로 3분 진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진료시간이 아주 짧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주치의라고도 불리는 일차의료제공자 (primary care provider)가 환자 케어를 주관하고 조정한다. 즉, 주치의는 환자 케어의 일종의 허브 (hub)이기 때문에 주치의는 환자가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에 기록을 보관하고 있어 이를 다른 의사들과 이를 공유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주치의 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고 환자들이 독립적으로 여러 의사를 만날 수 있는데다 의사들끼리 환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제도가 미흡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계열의 약을 중복 사용하거나, 같이 쓸 경우 건강에 위해를 일으킬 수 있는 약을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진료시간을 현실화시키고 일차의료제공자 제도 등을 도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현재 우리나라 의료제도와 의학교육제도로는 이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 환자들의 모든 보험처방기록을 보관하고 있고 약국이 이 기록을 접근할 수 있는 것 같으니 이를 이용하면 어떨까? 즉, 약국은 새로 내린 처방약과 그동안의 보험처방기록을 대조하고 만약 문제가 있으면 의료기관에 알리고 대안을 제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일부 약국에서 자발적으로 중복처방에 대해 병원과 상의해서 처방을 조정하고 있는 것 같으나 어머니의 예에서 보듯이 모든 약국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약국이 중복처방 조정 업무에 대한 보상을 받도록 한다면 더 많은 약국들이 참여할 것이다. 양질의 복약지도를 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도 함께 고려해야 하므로 보험처방기록을 검토하는 것은 약국으로서도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약국이 보험처방기록을 검토하고 의료기관에 알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는 약국과 의료기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기관과 약국의 관계가 현재와 같이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수평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의 사용은 어느 직역 혼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직종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필자약력>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7-06-08 0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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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25> 대한의사협회가 만든 성분명 처방에 대한 동영상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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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경제적 혜택을 최대화할 수 있는 제네릭 약 제도를 생각해야
우연히 대한의사협회가 만든 성분명 처방에 대한 동영상을 보았다. 이 동영상에서는 두 개의 제네릭 약의 예을 이용하여 성분명 처방을 문제삼고
있다. 이 동영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로 삼은 두 약들이 현행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판정 기준에서
벗어나서 허가받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데 이를 마치 과학적인 사실인양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cEYebu8For0
이 동영상은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더 근본적으로는 신뢰구간에
따라 임상 시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만들어졌다.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결과를 제대로 해석할 줄도 모르면서 그간 제네릭
약을 사용해 온 것도 걱정스럽지만, 신뢰구간에 따라 임상 시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은 더 걱정스럽다. 왜냐하면, 이는 근거 중심 의학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근거 중심의 의학이 우리나라에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처방전에 성분명을 반드시 기입하도록 하는 제도다. 캐나다에서 수행되고 있는 이 제도를 도입하자고 하는 쪽은 약사 단체인데, 이는 현행 제도하에서 약국의 재고부담이 너무 큰 데에 기인한다. 즉, 현행 제도는 의사가 상품명을
처방했을 경우 성분은 같지만 상품명이 다른 약으로 대체조제를 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으면 약사는 그 상품만을 환자에게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한미약품이 제조 판매하는 한미아스피린 장용정 100 mg을
처방하면 약국은 경동약품의 경동아스피린 장용정은 물론이고 아스피린을 최초로 만든 바이엘사가 제조한 상품조차도 환자에게 교부할 수 없다.
약국이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아스피린
상품을 비치하고 있어야만 환자가 가지고 오는 모든 아스피린 처방을 조제 교부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약국이 비치하지 않은 상품을
처방받아 오는 환자는 그 상품을 비치하고 있는 다른 약국을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의사가 어떤
상품을 지정하고 처방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제약회사와 의사간의 뒷거래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성분명 처방 제도에서는 약국이 한 성분에 대해 몇 개의 상품만을 비치 하면 되므로 약국의 재고 부담이 적다. 또, 환자가
어느 약국을 가더라도 처방된 약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환자의 불편함이 줄어든다. 하지만, 역시 특정 제약회사와
약사간의 뒷거래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럼 어떻게 제도를 개선해야 할까?
제네릭 약을 쓰는 유일한 이유는 싼 가격이므로 환자가 경제적인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많은 임상 시험을 거쳐 허가받는 오리지널 약과는 달리 제네릭 약은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만으로
허가를 받는다. 즉, 엄밀히 말하면 제네릭 약은 그 효과와 안전성을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받은 적이 없고 단지 성분, 용량, 제형이 오리지널과 같으니 효과와 안전성이 비슷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쓰는 약이다.
그런데, 신약개발 단계에서 가장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임상시험들을 생략했으므로 제네릭 약은 오리지널보다 가격이 싸야
한다. 만약 제네릭 약의 가격이
오리지널 약의 가격과 비슷하다면 제네릭 약을 쓸 이유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제네릭 약은
오리지널 약과 비교했을 때 가격이 크게 차이 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가격이 같거나 아예 더 비싸다.
이는 미국의 오리지널 약과 제네릭 약의 가격과 비교해 보면 극명하게 들어난다. 예를 들어,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고지혈증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아토바스타틴 10
mg으로 허가받은 제네릭 상품은 모두 86개가 있는데, 오리지널
약인 리피토의 보험약가인 663원과 동일한 보험약가를 받는 제네릭 상품의 수는 전체 80%인 69개에 달한다. 반면 미국은 단 10개 회사만이
아토바스타틴 10 mg 제네릭 약 허가를 받았는데, 오리지널
약의 가격은 약 $9이지만 제네릭 약가는 고작 $0.7에
불과하다 (www.costco.com 참조).
또, 우리나라에서 텔미사르탄이란 고혈압 치료제의 경우, 오리지널 약인 미카르디스 정 40 mg의 2016년 보험약가는 418원인 반면 현대약품이 만든 제네릭 약인 미텔리스정 40 mg은 이보다 비싼 426원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오리지널 약가는 $7.1이고 제네릭 약가는 $0.8이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건강보험 가입자들 돈으로 제네릭
약을 만드는 제약회사들을 보조해 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리지널 약에 비해
가격에 아무런 잇점이 없는 제네릭 약을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현행 제도는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임상 시험 증거도 없는 제네릭 약에 대해 상품명을 허용하고 처방전에 "대체조제 불가"를 기입하면 바꿀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
오리지널 약 처방을 제네릭 약으로 바꾸는 것을 제한할 수는 있어도, 제네릭 약 상품을 의사의 허가 없이
다른 제네릭 약 상품이나 오리지널 약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의사가 제네릭 약을
처방할 경우, 환자의 동의하에 약사가 오리지널 약이나 약가가 같거나 싼 동일 성분의 제네릭 약으로 바꿀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물론, 건강보험 혜택의 공평함을
위해, 환자가 오리지널 약을 원할 경우 제네릭 약가와의 차액만큼은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성분명 처방 제도로 바꾸더라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처방한 제네릭 상품보다 가격이
같거나 더 싼 제네릭 약으로만 환자의 동의하에 약사가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환자가 오리지널 약을
원한다면 비싸더라도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 어떤 제도로 하든 약사가 약을 교부할 때 제조회사와 로트 넘버에 대한
정보를 환자에게 제공해서 추후에 의사, 환자, 다른 약사들도
환자가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이렇게 하면 제조과정에
인한 오류로 약화사고가 발생했을 때 교부받은 환자들을 추적할 수 있는 잇점도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제네릭 약을 씀으로써 받는 유일한 혜택은 오리지널 약에 비해 싼 가격이다. 현행 보험약가와 대체조제 제도로는 이 혜택을 환자들이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제네릭 약을 쓰는 혜택을
충분히 받게 하려면 환자가 오리지널 약과 제네릭 약에 대한 선택권을 갖게 하여야 한다. 즉, 환자에게 오리지널 약과 제네릭 약의 가격 차이에 대한 정보를 주고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환자 중심적인 제도이며, 제약회사와 의사 또는 약사와의 뒷거래를 방지할 수 방법이기도 하다.
<필자약력>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7-05-02 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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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24> 인공지능과 미국의 의학과 약학교육
최근 대한의학회의 E-뉴스레터에 실려 의약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기고문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의학교육이
개편되고 있다고 전하며 우리나라 의학교육도 이에 뒤지지 않게 대대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공지능 시대가 교육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면서 그 예로,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은 2019년부터 뒤집어진 교실 (flipped classroom)을 모든 수업에 적용하고 임상실습을 과정 초기부터 도입하며 3-4학년에는 집중적이고 심화된 학습과 연구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한다고 전하고, 이런 교육과정의
변화의 이유로 인공지능을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좋은 연구를 통해 의미있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의학교육의 경쟁 내용이 될 것이다. 하버드의대는 그것을 의식하고 변화해 나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이 기고문에서 다루는 두 가지 이슈 중 인공지능과 의약학 직능 변화에 대해서는 지난 달 컬럼에서 다루었다. 이번
주에는 또 다른 이슈인 미국의 의약학교육의 개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많은 미국의 의과대학과 약학대학은 현재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UCSF)의 의과대학도 ‘BRIDGES 교과과정이라
불리는 새로운 교과과정을 2016년 가을학기부터 도입했고, 약학대학은 2018년 가을학기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UCSF의과대학은 존스 홉킨스 의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의대와 함께 미국내 의과대학 중 연구분야에서 공동 3위, 일차의료분야에서도 3위로 선정되는 등 미국내에서 가장 좋은 의과대학 중 하나다(두 분야에서 모두 3위이내인 학교는 UCSF 의과대학이
유일하다).한 학년 학생 수 150여명에 의대 전체 교수 숫자 (full time)만 2400명이 넘는다.
우리학교 의과대학은 의학교육분야도 선도하고 있는데 (전임부학장이자 명예교수인 David Irby, 현재 부학장인 Catherine Lucey,
Patricia O’Sullivan 등 의학교육분야에 쟁쟁한 교수들이 많다), 학교내에
의학교육 및 관련연구만 담당하는 교원과 스태프가 100명이 넘을 정도다.난 작년에 의과대학이 주관하는 Teaching Scholars Program에 참여하여
의학교육과 연구만을 담당하는 교원들과 자주 교류하였다.
또, 약학대학의 교과과정 개편에도 Working Group의 일원으로 참여하였고, Education Policy Committee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하고 있기 때문에 의과대학의 새로운 BRIDGES 교과과정과 약학대학의 새 교과과정이 왜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어떻게 디자인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의과대학의 BRIDGES 교과과정 홈페이지에서 개편의 이유를 밝히고 있듯이 의학과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교육과정으로는 환자
치료 결과에 큰 개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교과과정의 목적은 환자에게 더 안전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의학 지식만으로 안전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1학년부터clinical
microsystem clerkship이라는 임상수련 과정을 시작하고 의료시스템 개선에 대한 과제를 함께 수행함으로써 환자와 의료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의료시스템 개선에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그리고, 안전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직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약대생, 간호대생, 치대생, 물리치료과 학생들과의 협력교육 (interprofessional education)을 강화하여 1학년때부터
시작하고 있다. 또,의학교육 분야 (domains of science)를 교육과학 (educational science), 임상과학 (clinical
science), 사회과학 (social & behavioral science), 역학 (epidemiology & population science), 생물의학 (biomedical science), 시스템과학 (systems
science) 등 여섯 개의 분야로 분류하고, 각 분야에서 배워야 할 지식과 기술 (knowledge & skills)의 단계를 기본 핵심 (core),
중급 (enhanced), 고급 (advanced)으로
나누어 모든 학생들이 각 분야의 기본 핵심 지식과 기술을 갖추도록 했으며, 분야별 중급 및 고급 지식과
기술은 학생의 선호과 장래 원하는 경력에 따라 다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의학과학의 분야 (Domains of Science) (출처: www.ucsf.edu)
교육방법에서도 뒤집어진 교실 (flipped classroom)과 같은 교육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를 의학교육에 적용하고, polleverywhere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UCSF 약대가
새로운 교과과정에서 추구하는 방향도 1학년부터 clinical
microsystem clerkship의 도입과 다른 직역과의 협력교육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의과대학과 비슷한 점이 많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여름방학을 없애고
대신 계속 교과과정을 진행하여 3년안에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할 수 있도록 하여 학생들이 1년 빨리 자신의 경력을 시작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 졸업생의 60%이상은
레지던시 등 졸업후 과정을 밟기 때문에 새로운 3년 교육과정은 이들이 원하는 경력을 빨리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기초과학과
임상과학 과목들을 하나로 묶는 block 교과과정을 도입할 계획이다.
Block 교과과정에서는 과목들이 심순환기, 호흡기 등 장기별로 분류되고 이에 관련된 기초와 임상과학 과목들이 하나로 합쳐진다. 예를 들어, 심순환기 block에서는 심순환기와 관련된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과 심순환기 질병에 쓰이는 약의 유기화학, 약리학, 약동력학, 약물치료학을
함께 교육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약대의 교육과정에는 각 과목에 배정된 학점수가 적기 때문에 학생들은 졸업이수학점을 채우기 위해 학기마다 많은 과목을 들어야 했다. 많은 과목을 들으면, 이론적으로는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지만, 교습과 평가가 암기
위주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시험만 많고 기억에는 남지 않는 문제가 있다.즉, 학생들이 배움 자체보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의과대학에서 1950년대부터
사용해 온 block 교육과정은
– 약대는 교육개편이 왠지 좀 느리다 –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며
학생들의 학습에 좀 더 효율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UCSF 약대의 새로운 교육과정에서는 암기보다 비판적 사고와 문제풀이
능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려고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시험 성적보다는 배움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그럼 원래의 이슈였던 인공지능이 미국 의과대학과 약학대학의 새로운 교육과정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내가 아는 한 인공지능은 적어도 우리학교 교육과정 개편에 큰 관계가 없다. 의과대학의 BRIDGES 교과과정 개편의 이유에서 인공지능은 언급되고 있지 않으며 우리학교의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수많은 회의와 토론에서
난 한번도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앞서 말했듯이 교육과정 개편의 동기는 안전하고 양질의 의료와 약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와 약사를 길러내는 것이다. 사실,
인공지능이 의사와 약사를 완전히 대체하여 의사와 약사가 “인공지능이 지시하는 대로” 환자를 치료한다면 사회적으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의사와 약사를 길러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또, “제대로
된 좋은 연구를 통해 의미 있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연구능력을 의미하는 데 이는 임상교육이
목적인 의과대학과 약학대학의 교육목적보다는 연구 대학원의 교육목적에 더 잘 부합된다.인공지능이 눈부시게 많은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역할에 대해 좀 과장된 면이 있는 것 같다. 인공지능에 대해 대비하고 이를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의료와 약료의 질을 좀 더
높이기 위해 의과대학과 약학대학의 교육과정을 평가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필자약력>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7-04-05 1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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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23> 인공지능과 의사/약사의 직능의 변화
인공지능과 의사/약사의 직능의 변화
최근 대한의학회의 E-뉴스레터의 한 기고문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의학교육이 개편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의학교육도 이에 뒤지지 않게
대대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의약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 같다.
이 기고문에 의하면, 미래의
의사는 인공지능이 지시하는 대로 환자에게 진료를 제공하는 집단과 그 인공지능에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입력시키는 집단이라는 두 개의 의사 집단으로
나뉠 것이며,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의사들은 기존 의사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더 큰 사회적, 의학적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좋은 연구를 통해 의미있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의학교육의 경쟁 내용이 될 것이다. 하버드
의대는 그것을 의식하고 변화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기고문에는1) 인공지능과
의약학 직능 변화와 2) 미국의 의약학 교육의 개편라는 두 가지 이슈가 있다. 이 글에서는 첫번째 이슈를 살펴보기로
한다.
인공지능인 알파고가 이세돌와 바둑대결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나라의 길병원이 도입한 ‘왓슨’
이라는 인공지능은
환자의 상태와 문헌 자료에 근거해 단 수 초만에 최적의 치료방법을 제시하여 의약계에서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약사와 의사는 미래에 인공지능으로 없어질 직종들이라고 하고 위의 기고문에서는 아예 의사직종의 일부는 “인공지능이 지시하는 대로” 환자에게 진료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나는 이 예측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인공지능이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단 수 초내에
문헌자료를 토대로 최적의 치료방법을 제시해 내는 인공지능의 능력은 실로 놀랍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의사와
약사를 대체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뉴스와 인터넷으로 접한 인공지능 왓슨은 현재 임상적인 결정을 도와주는 수단(clinical decision support tool)이다. 임상적인 결정을 도와주는 수단이란 의사나 약사가 진단이나 처방 등의 임상적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병원의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페니실린 알러지가 기록되어 있는 환자에게 페니실린 계열의 항생제를 처방하려고
할 때 경고가 뜨거나, 헤파린이라는 항응고제를 처방하려고 할 때 진단명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알맞은 용량을
선택해 주는 것 등이 임상적인 결정을 도와주는 수단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비교적 단순한 프로그램이나 왓슨처럼 좀 더 발전된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으려면 먼저 필요한 환자의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잘못되거나 불필요한 환자의 정보를 입력하면 오히려 환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의사와 약사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우선 환자의 정보를 스스로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사람의 경우, 오랜 기간의 수련을 통해 얻어진다. 그 이유는 환자의 정보를 얻는 것이 복잡한
인지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즉, 환자의 상태에서 어떤 것이 필요한 정보인지,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는지 판단해 내는 데에는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과 문제풀이 (problem-solving) 능력이 필요하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일의 우선순위 (priority)를 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능력은 단시간 안에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예로 지난 주 내 클리닉에 찾아 온 환자 케이스를 이야기해보겠다. 80대의 이 환자는 여러 개의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혈압 조절이 잘 안 되어 주치의로부터 협진의뢰로 방문하였다. 환자는 오후 2시경 클리닉을
방문했는데 전날 집에서 잰 수축기 혈압이 180 mmHg를 계속 넘어,
주치의의 지시에 따라 방문 당일 아침에 복용하고 있던 카르베딜롤을 12.5 mg에서 25 mg으로 올려 복용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뒤 설사, 어지러움증 등의 증상으로 오전에 매우 힘들어서 응급실을 가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클리닉에서 잰 혈압은 158/70, 맥박은 55였다. 당일 아침 카르베딜롤을 복용하고 집에서 잰 혈압은 126/61이었으며 맥박은 기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상인 (clinician)으로서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비록 혈압조절을 위해 방문했다 하더라도 아침에 있었던 증상이 현재 환자의
가장 큰 문제이므로 이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환자의 짧은 설명에 따라 증상의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은 우선 저혈압, 서맥
등이 있다. 저혈압의 원인은 다시
카르베딜롤의 용량 증가와 설사로 세분할 수 있다.
이를 구분해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먼저 증상이 나타났을 때 서맥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 “아침에 혈압을 쟀을 때
맥박은 얼마였나요?”
환자: “기억이 안 나요. 아무도 맥박을 기록하라고 하지 않아서
기록하지 않았어요.”
나: “서맥도 어지러움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고, 복용하고 계시는 혈압약들이 맥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고혈압약을 잘 조절하기
위해서 맥박수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다음부터는
혈압과 함께 맥박도 같이 기록해서 가져오시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환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설사와 어지러움과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나: “어지러움 증상은 설사가
일어난 후에 일어났나요 아니면 설사 전에 일어났나요?”
환자: “설사 전에 일어났어요.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는데 어지러웠어요. 그리고 화장실 갔다와서 몸이 안 좋아
좀 누워있었고 좀 지나니까 괜찮아져서 클리닉에 오게 되었어요.”
이 대답으로 보아 설사는 어지러움 증상을 일으킨 원인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또, 환자의 설명으로 보아 기립성 저혈압일 가능성이 높았고 카르베딜롤은
기립성 저혈압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나: “카르베딜롤을 복용한 지
얼마나 지나서 어지러움이 나타났나요?”
환자: “약 두 시간쯤 되었어요.”
경구로 복용하고 보통 1-2시간
뒤에 혈중 농도가 가장 높아지므로 약 복용 시간과 어지러움 사이의 관계로부터 카르베딜롤이 어지러움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맥은 기록이 없었으므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상의 정보로 아마도 환자에게 카르베딜롤의 용량증가에 의한 기립성 저혈압 (일어날 때 어지러움을 느꼈음)이 나타났던 것 같다.
위에서 보듯 필요한 정보를 생각해 내고 그것을 환자로부터 얻어내어 분석하는
것은 고도의 인지능력이 필요한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인공지능이 고도의 인지능력을 갖추었다고 할 지라도
아직 의사와 약사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좋은 환자 치료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환자와 잘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이에는 환자 말을 잘 들어주고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된다), 환자의 감정을 이해하며 환자의 선호도를 치료에 고려해 주는 능력도 필요하다.
또, 다른 직역과도 잘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단순히 지식이 많다 또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반드시 훌륭한 임상의나 약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또, 임상에서는 한 가지만 정답인 상황이 드물다. 여러가지 정답이 존재하거나 환자의 선호도, 사회경제적인 환경 등 문헌에서는 찾을 수 없는 요인에 따라 답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위 환자의 예를 계속 들어본다.
외래환자 수련 과정 (ambulatory
care rotation)을 시작하는 약사 레지던트 (pharmacy resident)와
함께 환자를 보았기 때문에 레지던트에게 물어 보았다.
나: “이 환자 치료 어떻게
할래요?”
레지던트: “환자가 카르베딜롤 6.25 mg을 가지고 있으니까 4개 (25 mg) 대신 3개(18.75 mg)를 복용하는 것이 어떨까요?”
괜찮은 생각이었다. 특히, 환자는 벌써 여러 개의
혈압약을 최고 용량으로 복용하고 있기에. 하지만, 약에 의해 부작용이 나타나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 약을 더 이상 복용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에게 물었다.
나: “18.75 mg을 복용하는
것이 괜찮으신지요?” (내가 쓴 표현은 “Are you
comfortable with taking 18.75 mg at this time?)
환자: “용량을 올린 것이 분명히
응급실에 갈 생각까지 할 정도의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지금은 싫습니다.”
나: “그럼, 원래 용량이던 12.5 mg을 다시 복용하시다가 설사가 완전히 끝난
다음 날부터 18.75 mg으로 올려 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계속 복용하셨던 12.5 mg으로는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았으니까 용량을 좀 올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환자: (좀 머뭇거리다가) “그건 할 수 있습니다.”
나: “그리고, 기립성 저혈압을 방지하려면 되도록 천천히 일어나세요. 침대에서 일어나실 때에는 한 2-3분
앉아 계시다가 일어나시고요. 또, 물을 자주 드셔야 합니다.”
환자: “네, 알겠습니다.”
임상에서는 여러가지 답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또, 문헌자료로부터
답을 구할 수 없는 임상적 경우도 많은데 이 때에는 임상인의 임상경험과 기존의 지식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환자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좋은 결과를 내기 때문에 이를 잘 유도해야 한다. 이처럼 임상결정 과정은 매우 복잡하며 좋은 치료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환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기계가 이를 갖추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면허를 가진 전문직종인 의사와 약사는 치료결정과
같은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치료방법을 자신의 지식과 임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검토하여 환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 결정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임상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약사들도 “인공지능에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입력시키는” 의사/약사들 못지 않게 임상문헌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의사와 약사의 일부 직역은
인공지능에게 넘겨질 것이다. 예를
들어, 약사의 단순 조제 업무는 자동화될 가능성이 큰 데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 약사 직역은 조제
중심이다. 직역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해야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시대의 도래에 대비하기 위해, 또 무엇보다 환자의 좋은 치료
결과를 위해 우리 약사들은 지식을 적절하게 이용하는데 필요한 비판적인 사고능력, 문제해결 능력, 의사소통 능력 등을 사용하는 분야로 직역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필자약력>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7-03-06 1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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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22> 이완기 혈압이 낮은 수축기 고혈압 (isolated systolic hypertension)의 치료
혈압조절이 잘 안 되는 85세
할머니가 주치의의 의뢰로 내 클리닉을 방문했다. 이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서 생긴 3기 만성신장질환 (사구체 여과 속도 30-60ml/min/1.73m2)외에는
다른 동반질환이 없으며, 다음과 같은 4개의 고혈압약을 드시고
계셨다.
로사탄 (losartan) 100 mg 하루에
한 번, 클로르탈리돈 (chlorthalidone)
25 mg 하루에 한 번, 카르베딜롤 (carvedilol)
12.5 mg 하루에 두 번, 스피로노락톤 (sprinolactone)
25 mg 하루에 한 번.
전에는 암로디핀 (amlodipine)을
드셨었는데 말초부종이 생겨서 중단하셨단다. 이 외에는 약에 의한 알러지반응이나 부작용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
최근 1년간, 주치의 방문 등 클리닉에서 잰 혈압은 160-175/60-70 mmHg, 그리고
맥박은 분당 60-65회 정도였다. 혼자 살고 계신 할머니는 집에서도 스스로 혈압과 맥박을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3번씩
재서 그 기록을 가지고 오셨다. 집에서의 혈압은 140-180/30-60 mmHg, 맥박도 분당 50-60회였다.
가슴통증, 어지러움, 현기증 같은 증상은 없으셨다. 그리고, 약은 매일같이 잊지
않고 드신다고 하셨는데 이는 약국의
리필 기록과도 일치한다. 또, 혈중 칼륨은 4.9 mEq/L로 정상이다. 그런데,
JNC8에 따르면 할머니의 목표혈압은 만성신장질환 때문에 140/90미만이다. 할머니의 혈압은 어떻게 조절하면 좋을까?
이 할머니의 고혈압은 수축기 고혈압(isolated systolic hypertension)이라고 불리는데 노인에게서 흔히 나타나며,
특징은 수축기 혈압이 높은 반면 이완기 혈압은 낮다는 것이다. 동맥은 고무줄같은 탄력성이 있어 늘었다(이완) 줄었다 (수축) 하면서 혈관내 압력이 적당히 유지된다. 즉, 심장이 수축해서 동맥에
많은 양의 혈액이 공급될 때 적당히 이완하고, 또 심장이 이완해서 혈액이 공급되지 않을 때에는 적당히
수축함으로써 혈압이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게 유지시킨다.
그런데, 나이가 들게 되면
노화현상에 따라 동맥이 탄력을 잃어 마치 파이프처럼 뻣뻣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동맥이 잘 이완하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서 심장이 더 세게 수축해야 하므로 수축기 혈압이 높아진다. 반면, 이완기에는 혈액을 많이
담을 수 없어서 혈압이 낮아진다.
이런 수축기 고혈압 치료에는 티아지드계열의 이뇨제와
칼슘 차단제를
우선적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티아지드계열의 이뇨제로 클로르탈리돈을 드시고 계시다. 벌써 임상적으로 사용하는 최고 용량인 하루 25 mg을 드시고 계시기 때문에 클로르탈리돈의 용량을 더 이상 올릴 수 없다. 또, 할머니는 이전에 칼슘차단제인
암로디핀에 의해 말초부종이 발생했었기 때문에 칼슘차단제는 더 이상 사용하기 힘들다.
로사탄의 경우, 할머니가 만성신장질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선택이다. 그런데,
하루 최고 용량인 100 mg을 드시기 때문에 더 이상 용량을 올릴 수 없다. 카르베딜롤과 스피로노락톤은 최고 용량을 드시고 있지 않지만 용량을 올리기 힘들다. 그 이유는 맥박이 분당 60회대이기 때문에 카르베딜롤을 최고 용량인 25 mg 하루에 두
번으로 올리면 맥박이 분당 60미만으로 떨어져 서맥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또, 스피로노락톤의
용량을 올리게 되면 혈중 칼륨의 농도가 정상
범위의 최대치인 5 mEq/L보다 높아져 고칼륨혈증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약을 추가하는 것이 좋을까?
여기서 잠깐 할머니가 집에서 측정한 혈압의 양상을 보자. 할머니의 혈압은 수축기 혈압이 목표혈압보다
훨씬 높지만 이완기 혈압은 훨씬 낮다. 수축기
혈압이 높을수록 뇌졸중, 심근경색, 신장기능저하 등이 나타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이에 따라 수축기 혈압을 목표혈압으로 낮추는 것이 일반적인 치료의촛점이 되어
왔다.
하지만, 이완기 혈압이 너무 낮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수축기에 혈액을 공급받는 다른 장기들과 달리 심장은 관상동맥을 통해 이완기에
혈액을 공급받는다. 따라서, 이완기 혈압이 너무 낮게 되면 심장에 공급되는 혈액의 양이 줄어 심근경색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적절한 이완기 혈압은 60-70 mmHg인 것으로 보이는 데 할머니가 집에서 측정한 이완기 혈압은30-60 mmHg으로 이보다 낮다.
그런데, 아직 수축기만 선택적으로 낮추는 혈압약은 없기 때문에 혈압약을 추가하게
되면 이완기 혈압은 더 떨어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가지 더 생각해 보자. 할머니가 집에서 측정한 혈압과 클리닉에서 측정한 것이 좀 차이가 있다. 집에서 측정한 혈압과 클리닉에서 측정한
혈압이 반드시 같거나 비슷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의 이완기 혈압은 집에서 측정했을 때 일정하게 좀 더 낮았기 때문에 혈압약을 추가할 지에
대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할머니의 혈압계가 얼마나 정확한지 또, 할머니가 어떻게 혈압을 측정하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할머니에게 다음에 클리닉에 오실 때에는 혈압계를 가져오시라고 부탁했다. 혈압계를 가져 오시면 클리닉의 혈압계와 함께 측정하여 두 혈압계의 측정치를비교할
계획이다. 또, 할머니가 직접 본인의 혈압을 측정하는 것을 관찰해서 혈압을 재는 기술이 올바른지도 평가할 생각이다. 만약 집에서 쓰던 혈압계의 측정치가 클리닉
혈압계와 다르면 새로운 혈압계를 처방해서 쓰시도록 할 계획이다. 만약 두 혈압계의 측정치가 비슷하면 할머니는 JNC8이 권장하는 목표혈압치를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힘드므로 목표혈압치를 150/90이나 160/90미만으로 올리는 것을 주치의에게 권고할 생각이다.
<필자약력>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 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
2017-02-03 1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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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21> 새로운 고혈압 치료 지침서 JNC 8의 논란거리인 목표혈압치
새로운 고혈압 치료 지침서 JNC 8의 논란거리인 목표혈압치
새로운 고혈압 치료 지침서가 발표된다는 것은 일차의료 (primary care)를 맡은 사람들에게는 큰 뉴스다. 왜냐하면, 고혈압 치료 지침서는 가장 흔한 만성 질환인 고혈압의 치료에 근간이 되며 또 일차의료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도 이용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Joint National Committee (JNC)라고 불리는, 의사, 약사, 간호사, 통계학자, 역학자 (epidemiologist) 등 고혈압 치료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고혈압 치료 지침서를 만들고 새로운 임상연구 결과를 반영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개정한다.
가장 최근인 발표된 JNC 8 지침서는, JNC 7 지침서가 발표된 지 무려 11년이 지나 개정된 것으로 미국의 일차의료에서 고혈압 치료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San Francisco General Hospital의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클리닉에서는 새로운 지침서를 바탕으로 고혈압 치료에 관한 프로토콜을 만들어 클리닉 환자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도 가르치는 코스에서 JNC 8의 내용을 반영하여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JNC 8 지침서는 JNC 7 지침서와 크게 다른 권고사항들이 있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JNC 8 지침서는 고혈압을 치료하는데 있어 목표 혈압치와 어떤 종류의 고혈압약을 써야 하는가에 관한 것을 담고 있다. 여기서 목표혈압치란 고혈압을 치료할때 도달하고자 하는 혈압을 말한다.
목표혈압치는 진단에도 이용되고 고혈압 치료의 강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즉, 목표혈압치보다 혈압이 높으면 고혈압으로 진단하며 목표혈압치가 낮을수록 고혈압약의 수와 용량을 증가시켜야 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고혈압 치료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고혈압약은 인종에 따라 반응이 다르고 미에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기 때문에 지침서는 이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에는 맞지 않으므로 이 부분은 생략하기로 한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목표 혈압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아래 표는 JNC 8 지침서, JNC 8과 거의 동시에 발표된 미국 고혈압 협회와 국제 고혈압 협회가 공동으로 만든 고혈압 치료에 관한 지침서, 그리고 2013년에 발표된 한국 고혈압 협회의 치침서의 목표혈압치를 비교하고 있다.
표. 목표혈압치
환자군
JNC 8 (2014)
미국 고혈압 협회/국제 고혈압 협회 (2014)
한국 고혈압 협회 (2013)
60 세 미만 단순 고혈압 환자a
<140/90
<140/90
<140/90
60 세 이상 단순 고혈압 환자
<150/90
60-79세:
<140/90
80세 이상:<150/90
노인c: <140-150/90
당뇨병
<140/90
<140/90
<140/85
신부전b
<140/90
비단백뇨: <140/90
단백뇨d: <130/80
비단백뇨: <140/90
단백뇨d: <130/80
관상동맥 질환,뇌졸중
60세 미만: <140/90
60세 이상:
<150/90
<140/90
<140/90
a: 단순 고혈압 환자: 고혈압 외에는 당뇨병, 신부전, 관상동맥 질환, 뇌졸중 등 다른 질환이 없는 환자들
b: 70세 미만 환자의 경우 사구체 필터 속도가 60 ml/min/1.73 m2 미만 또는
나이에 관계없이 뇨중 단백질의 양이 g 크레아티닌당 30 mg이상인 경우
c: 노인의 정의가 분명하지 않음.
d: 뇨중 단백질의 양이 g 크레아티닌당 30 mg이상인 경우
표에서 보듯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목표혈압치는 140/90미만이다. 즉, 대부분의 고혈압 환자들은 수축기 혈압이 140미만, 이완기 혈압이 90미만으로 조절하여야 한다. 이때 둘 중 하나라도 목표혈압치보다 높으면 혈압이 조절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JNC 8 지침서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당뇨병과 신부전이 없는 60세이상의 환자들의 목표혈압치인150/90미만이다. 이 권고사항은 목표혈압치가 140/90미만인 기존의 JNC 7 뿐만 아니라 최근 발표된 다른 고혈압 협회의 것과도 차이가 있다.
JNC 8지침서가 다른 지침서들과는 달리 무작위로 시험군을 배정한 임상시험들만을 고려하였다 하더라도, 당뇨병과 신부전이 없는 60세이상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목표혈압치가 150/90인 군과 140/90인 군을 비교한, 믿을 만한 임상시험이 아직까지 발표된 바 없다.
뿐만 아니라, 역학조사에 의하면 수축기 혈압이 올라감에 따라 뇌졸중의 위험도도 같이 증가한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수축기 혈압목표치를 140에서 150으로 올리면 뇌졸중 환자의 수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물론, JNC 8 지침서에서는 이것을 고려하여 기존의 환자중 혈압이 약물 부작용 등의 문제없이 140/90미만으로 조절되고 있는 경우 140/90미만을 목표혈압으로 유지해도 괜찮다고 권고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새롭게 고혈압으로 진단받는 환자의 경우, 올린 목표혈압으로 혈압을 조절할 가능성이 높다.
또, JNC 8 지침서는 관상동맥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단순 고혈압 환자들과 따로 구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순 고혈압 환자처럼 당뇨병과 신부전을 갖지 않은 60세이상의 관상동맥 질환 환자들의 목표혈압치는 150/90미만이 된다.
하지만, 2015년에 발표된 미국심장학회의 관상동맥 질환 환자들의 혈압조절에 대한 치료지침서에서는 목표혈압치를 140/90미만으로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심장학회의 치료지침은 이들 환자중 낮은 혈압에도 문제가 없는 환자들은 130/80미만으로 목표혈압을 낮추는 것을 고려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당뇨병과 신부전을 갖지 않은 60세이상의 환자들에 대한 목표혈압치는 JNC 8 위원들간에도 이견이 큰 부분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150/90미만의 목표혈압치에 대해 동의하지 않은 위원들이 Annals of Internal Medicine의 오피니언란에 따로 이 목표혈압치의 문제점에 대해 기고를 하였기 때문이다.
또, 일부 위원들은 미국 고혈압학회 치료 지침서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Annals of Internal Medicine에 기고한 글에는 없는 분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JNC 8에서는 150/90미만에, 미국 고혈압학회 치료 지침서에서는 140/90미만에 찬성했다는 이야기인데,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두 지침서에서 서로 다른 목표혈압치에 어떻게 동의할 수 있었는지 참 궁금하다.
<필자 약력>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 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7-01-06 1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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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20> 미국 약대가 통6년제가 아닌 이유
우리나라 의과대학에 이어 약학대학도 전문대학원제에서 통6년제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하는 모양이다. 미국의 약대는 대부분 4년제이지만, 그 전에 2-3년간 약대입학에 필요한 과목들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약사가 되기 위해서는 총 6-7년이 걸린다. 상위권 약대인, 내가 근무하고
있는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UCSF)약대의 경우, 90%이상의 입학생들이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약사가 되기 위해 8년의 공부과정을 거친다.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한 학생들을 뽑아 예과와 본과를 거치는 통6년제의 교육과정을 통해 약사를 양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약대가2+4년제의 교육과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학생
우리나라에 있을 때 내가 약대를 선택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대학 원서 지원 마감일을 얼마 남기지
않고 어머니와함께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주관하는 진학 상담에참석했다. 그런데,
난 지옥같은 고3생활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의
모의고사 점수를 바탕으로 서울대에서 합격이 확실한 곳에 가고 싶었다.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과가 어떻냐고 어쭸더니 담임선생님은 내 점수가 거기
가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말리셨다. 그
대신, 약대는 어떠냐면서 당시 각광받고 있던 생명공학도 배울 수 있는 과라고 추천하셨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난 약대에 가면 약사가 된다는 것도 모르면서 약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해 보니 약사가 되기 위해 들어온 동기들도 있는 한편, 2지망으로 들어오거나 나처럼 점수에 맞춰 들어온 동기들도 있었다. 이들 중에는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해서 다음 해에 자기가 가고 싶은 과로 간 학생도 있었다.
이처럼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하고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경험을 한 다음 생각이 달라져 다른 것으로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의 대부분의 대학교는
학부에 입학하고 2년이 지난 뒤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를 택하고 있다. 따라서, 2+4년제는 이런
제도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2년여의 준비기간 동안 자원봉사 등을 통해 병원이나 약국에서 일해봄으로써 약사가 하는 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 본 다음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
또, 약대에서도 병원이나 약국경험을 한 지원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약대
지원자들이 약국 테크니션 (pharmacy technician) 등 약국에서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UCSF는 약국 경험을 입학사정에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입시에 바쁜 고등학교 생활동안 자신의 진로를 탐색할 시간을 갖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진로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 2+4년제는
학생의 입장을 좀더 고려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의사와 약사같은
건강을 다루는 전문 직업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좋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공부만 잘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다시
말해서 좋은 약사가 되기 위해서는 삶의 경험이 필요한데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한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한 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성숙도 (maturity)가 떨어질 수 있다.
2. 전문직업학교 (professional school)
미국의 대학원 (graduate
school) 과정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대학원”으로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석사 (Master)나 박사학위(Doctor of Philosophy; Ph.D.)를 받는다.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능력(ability for independent research)을 길러 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이므로 연구자의 길을 자신의 진로 (career)로 결정한 학생들이 학부를 마치고 연구 중심 대학원으로 진학한다.또 다른 대학원의 종류인 전문직업학교에는 자신의 진로를 변호사, 의사, 치과의사, 약사
등 전문직업인으로 결정한 학생들이 진학한다.
따라서, 전문직업학교의 교육 목표는 전문직업인을 길러 내는 것이고, 이에 맞게 실습 위주로 교육과정이 짜여져 있다. 그리고, 이미 전문직업인이
된 선배들이 교실과 실습현장에서 직접 교육에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직업의식(professionalism)이 교육과정에서 강조된다. 전문직업학교를 졸업하면Doctorate 학위를 받는다. 예를 들어, 의대는 Doctor of Medicine (M.D.), 약대는 Doctor of
Pharmacy를 수여한다.
위에서 보듯 전문직업학교는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유일한 교육기관이므로
어떤 학생들을 선발하느냐가 그 전문직업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UCSF약대는
다양한 학부 전공과 인생 경험을 가진 학생들로 구성되도록 학생들을 선발한다. 그래서, 생물학과 화학이 교육과정을
따라 가는데 중요한 기초과학 과목이긴 하지만, 생물학이나 화학을 전공한 학생들만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대신 경영학, 컴퓨터공학, 심지어는 성악을 전공한 학생들도 있다 (그런데, 내가 가르쳐 보았던 학생 중 가장 뛰어난 학생은 그 성악을 전공한 학생이었다). 이런 학생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학부에서 전공한 것과 약대에서 배운 것을
접목시키는 곳으로 진로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경영학을 전공한 학생은 제약회사 마케팅 부서로 진출한다. 또,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학생은 병원으로 진출하여 약국 정보시스템을 관리하거나 약국의 정보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로
간다. 이렇게 졸업생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게 되면 약사라는 직업 자체의 영역이 확장되고 발전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또, 학부를 마치고 사회에서
몇 년동안 일을 하고 약대에 입학한 학생들도 많다.
예를 들어, 실리콘 밸리의 IT업체에서
관리자 (manager)로 일하다 온 학생도 있고, 임상시험관리
업무를 하다가 온 학생도 있으며, 고등학교에서 과학교사였던 학생도 있다. 그래서,
40대나 50대 학생들도 드물지 않다. 이런점에서 전문직업학교는 사람들에게 제2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나이가
든 학생은 암기능력이 젊은 학생들에 비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약사가 되고자 하는 동기가 보다 뚜렷하고 성숙하기 때문에, 성적보다는 배움 자체에 집중하고 임상에서 환자들과 좀 더 좋은 관계를 맺는 경향이 있다. 또, 이런
학생들은 스트레스가 심한 UCSF 약대 교육과정동안 리더로서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다양한 학부 전공과 인생 경험을 가진 학생들로 구성되는 것은 학교의 큰
자산이기도 하다. 교육과정은 크게
겉으로 드러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나뉜다.
학교 홈페이지에 명시된, 겉으로 드러난 교육과정은 각 학년마다 수강하는 과목들을 말하고, 히든 커리큘럼 (hidden curriculum)이라고 불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교육과정은 드러난 교육과정 외에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런데, 드러난 교육과정은
학교간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좋은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의 차이점은 어떤 점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교육과정에 있다. 학생들끼리는
공부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므로 학교가 어떤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드러나지 않은 교육과정의 일부다. 따라서,
삶의 경험이 다양하고 성숙한 학생들이 많을수록 학교는 좀 더 좋은 교육과정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학생들에게 진로에 대해 좀 더 탐색할 시간을 주고, 전문직업의 발전에 기여하며, 학생들에게 좀 더 양질의 교육과정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약대는 2+4년제도를 유지하고 있다.앞서 기술했듯이 미국의 약대는 전문직업학교이기 때문에 졸업생에게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사가 되기 위해 약대에 입학했기 때문에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수는 매우 적다. 실제로 한 해 배출되는 UCSF 약대
졸업생 120여명 중 2-3명 만이 석사나 박사과정으로 진학한다. 그러면,
전문직업학교 제도하에서 미국의 약대 대학원은 어떻게 연구를 수행할까? 다시 UCSF약대의 예를 들어
본다.
UCSF약대는 연구능력의
지표인 미국 보건성 (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의 연구비를 미국 약대 중에서
가장 많이 받는다. UCSF 대학원생들을
보면 생물학, 화학 등 다양한 과를 졸업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대학원생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학원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UCSF Department of Pharmaceutical Chemistry 에 소속된 32명의 교수들 중 약학을 전공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대신, 이들은 화학, 수학, 물리화학 등을 전공했다. 이는 기초 연구 (basic
science)를 수행하는 데에는 연구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이 필요하지, 약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약물을 디자인하는computational chemistry 연구에서는 화학, 생물정보학 등의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약물치료학 지식은 그렇지 않다. 또, 전문직업학교 교육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학부 전공이 연구 대학원의 연구 업적에도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약동력학에서 중요한
clearance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UCSF 약대 Dr. Leslie Benet은 화학공학을 공부하다가 약대로 전공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말에 따르면, 화학공학에서
배운 input/output의 개념을 약동력학에 적용해서clearance 개념을 만들었다고 한다.
전문직업학교제도하에서도 UCSF약대가
연구업적을 꾸준히 낼 수 있었던 데에는 다양한 배경의 대학원생과 교수진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나라마다 문화와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서 잘 운영되는 제도가
다른 나라에 도입되었을 때 잘 운영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는 나라의 성공요인을
일부 소개해 봄으로써 새로운 제도가 정착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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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신재규교슈 프로필>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University 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6-12-14 1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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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19> 헷갈리는 인슐린
지난 주 클리닉에 67세의 히스패닉계 여성 당뇨병 환자가 아들과 함께 내원하였다. 환자의 주치의 (primary care provider)는 병원내 차트 시스템의 협진 요청서 (referral request)를 통해 나에게 환자의 인슐린 조절과 약물 치료 최적화 (medical therapy management; MTM)를 요청하였다. 환자는 당뇨병외에도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앓고 있었다. 환자는 영어를 할 줄 몰랐지만 아들이 통역을 해 주었다.
만나기 전에 환자의 차트를 읽어보니 가장 최근 당화혈색소 A1c 수치가 12.5%로 목표치인 7-7.5%보다 매우 높았다. 또, 신장기능도 약간 저하되어 있었다 (eGFR = 50 ml/min/1.73m2). 뿐만 아니라, 클리닉에서 측정한 혈압도 목표치인 <140/90 mmHg보다 높은 150-160/90-100 mmHg였다. 차트에 의하면 주치의는 환자가 만성질환의 치료에 많은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다 영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약에 대해 혼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여러 만성질환 때문에 많은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노인 환자들은 질병과 약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 이런 환자의 약물 치료를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환자가 집에서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가 집에서 복용하고 있는 약을 정확히 알아내서 병원내 차트에 반영하는 작업을 영어로는 medication reconciliation이라고 부르고 이는 모든 MTM의 기본이 된다 (reconciliation을 직역하면 “화해”니까 환자가 집에서 복용하는 약들과 병원내 차트에 적혀있는 약들을 서로 “화해”시키는 작업이라고 보면 되겠다).
Medication reconciliation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환자가 집에서 복용하고 있는 약들의 약병을 직접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환자는 그만 약병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고 한다. 또, 복용하고 있는 모든 약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침, 점심, 저녁, 취침전에 복용하고 있는 약의 종류와 숫자가 반복해서 물어볼 때마다 달랐다. 따라서, 복용하고 있는 약에 대해 환자가 말하는 것을 100%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2주 뒤에 다시 방문할 때 꼭 약병을 가져오시라고 부탁하였다.
차트에 따르면 환자는 인슐린 글라진 펜 (insulin glargine; Lantus SoloStar Pen) 25 units를 취침전에 한 번, 그리고 아스파트 펜 (insulin aspart; Novolog Flexpen) 10 units을 아침과 점심 먹기 전에 한 번씩 주사하도록 주치의로부터 지시받았다. 환자의 기억력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구글 이미지 (Google image)를 이용하여 인슐린 글라진 펜과 아스파트 펜을 보여주며 각각을 집에서 어떻게 복용하는지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환자는 아침과 점심 먹기전에 글라진 펜을 10 units씩, 취침전에는 아스파트 펜을 25 units씩 주사하고 있었다. 인슐린의 종류에 대해 혼동을 한 것이다!
우리 몸의 세포는 당 (glucose)을 주된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음식물 섭취를 통하거나 간에 의해 만들어진 당은 혈액을 통해 몸의 구석구석에 있는 세포로 운반되고, 인슐린은 이 혈액속의 당이 세포속으로 잘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인슐린이 만들어지지 않거나 만들어져도 효율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몸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음식을 먹을 때다. 이 때, 음식물 속의 탄수화물 때문에 갑자기 혈당이 증가하게 된다. 이를 사용하고자 많은 양의 인슐린이 분비된다. 다시 말하면, 음식을 섭취할 때마다 갑자기 들어온 많은 당을 세포들이 사용하기 위해 많은 양의 인슐린이 한꺼번에 분비되는 것이다. 이를 bolus insulin (bolus는 한꺼번에 분비되거나 투여한다는 뜻이다)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음식을 먹지 않을 때이다. 예를 들어, 밤에 잠을 잘 때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잠을 자는 긴 시간 동안에도 우리 몸의 세포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당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간은 당을 만들고 혈액으로 내보내는데 이를 세포들이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슐린이 필요하다. 그런데, 음식을 섭취할 때와 비교해서,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동안 간에서 만드는 당을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인슐린의 양은 훨씬 적다. 이를 기저 인슐린 (basal insulin)이라고 부른다. 적은 양의 기저 인슐린은 하루 종일 계속 분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을 사용해야만 하는 경우, 보통 이와같은 인슐린의 생리적인 분비 방식을 따르도록 인슐린의 종류와 주사횟수를 선택한다. 따라서, 식사전에 bolus insulin을, 취침전에는 기저 인슐린을 주사한다. 여러 인슐린 상품 종류 중 bolus insulin으로 사용되는 것은 insulin regular, 아스파트 (aspart), 리스프로 (lispro) 등이 있고, 기저 인슐린으로 사용되는 것은 insulin glargine, detemir, degludac 등이 있다. Bolus insulin 용으로 사용되는 인슐린 상품들은 효과가 15분에서 30분내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대고 작용시간이 2-4시간으로 짧은 반면, 기저 인슐린으로 사용되는 상품은 효과가 나타나는 시간이 주사후 1시간반정도로 느린 대신 작용시간이 24시간 정도로 길다. 또, 기저 인슐린으로 사용되는 상품은 bolus insulin과는 달리 혈중 농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음식물 섭취 후 크게 증가하는 혈당을 낮추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반면, bolus insulin은 인슐린의 혈중 농도가 높게 올라가므로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을 때 주사하게 되면 저혈당을 일으키기 쉽다.
환자가 가져온 혈당측정계에 저장된 혈당치를 보니 다행히 저혈당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기저 인슐린 용으로 사용하는 인슐린 글라진을 bolus insulin으로, bolus insulin 용으로 사용하는 인슐린 아스파트를 기저 인슐린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혈당이 200-450 mg/dL으로 매우 높았다. 환자가 인슐린의 종류를 혼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인슐린의 용량이 적절한 지 알 수 없었지만, 혈당치와 당화혈색소 수치로 미루어 볼 때 저혈당의 위험이 높아 보이지 않아 기존에 의사가 지시한 대로 인슐린을 주사하도록 권고했다. 또, 인슐린의 종류를 혼동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인슐린 글라진 펜과 아스파트 펜의 사진을 넣고 스페인어로 각각 얼마를 언제 주사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복약지도서를 만들어서 환자에게 읽어보도록 한 다음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확인하였다. 환자의 높은 혈당과 당화혈색소, 그리고 질병과 약에 대한 낮은 이해도에 미루어 볼 때 자주 여러 번 follow up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2주 뒤에 약병과 함께 혈당측정기도 함께 가져오도록 하였다.
<필자 신재규교슈 프로필>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University 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6-11-10 1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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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18> 당뇨병 치료제 사용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당뇨병 치료제
사용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Mr.G는 67세의
2형 당뇨병 환자로, 지난 번에 게재된 “당뇨병 치료에서 당화혈색소의 목표치를 얼마로
잡아야 할까?”편에 소개되었다. 케이스 스터디를 시작하기 전에 Mr.G의
병력과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당뇨병 약에 대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그는 당뇨병 외에 고혈압, 고지혈증, 갑상선저하증 등의 병력을 가지고 있으며, 당뇨병 치료를 위해 메트포민 (metformin)을 1000 mg씩 하루 두 번, 글리피지드 (glipizide)를10 mg씩 하루 두 번 복용하며 인슐린 글라진을 자기 전에 한 번 주사하고 있다.
이 환자가 3개월 전에 클리닉을
방문했을 때, 측정한 당화혈색소 수치가 목표수치인 7%보다
높은 7.6%였기 때문에, 인슐린 글라진의 용량을 당시 주사하고
있던 용량인 17 unit에서 아침 식사전 일주일 평균 혈당이80-130 mg/dL 사이에 들 때까지 매주 1 unit씩 올리도록 권고하였었다. Mr.G는 당화혈색소 검사와 당뇨병 약물치료를
위해 오늘 내 클리닉을 다시 방문하였다.
클리닉에서 측정한 Mr.G의
키는 170cm, 몸무게가 80 kg이었으며 혈압과 맥박은
각각 135/88 mmHg, 85 bpm이었다 (체질량지수; body mass index: 27.7 kg/m2). 또, 측정한 당화혈색소 수치는 8.4%로 3개월 전보다 더 악화되었으며 eGFR은 48 ml/min/1.73m2였다. 환자는 그동안 약을 잊지 않고 복용했으며
내가 권고한 대로 인슐린 글라진 용량을 증가시켜 지금은 21 unit씩 주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 3개월 동안 저혈당 증상이 나타난 적이 없었다고 말했고, 집에서 측정한
혈당기록을 보아도 100 mg/dL보다 낮은 수치는 한번도 없었다.
아침 식사 전에 측정한 혈당은 3개월전에는
평균 155 mg/dL이었지만 최근 일주일 동안은 125 mg/dL이었다. 뿐만 아니라, 혈당이 80-130 ml/dL사이에 든 날이 최근 일주일 동안 5일이 있었다.
따라서, 최근 일주일간 아침 식사전 혈당 수치는 목표혈당치에 도달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저녁 식사 2시간 뒤에 측정한 혈당은 200-300 mg/dL로, 목표치인 180 mg/dL미만보다 훨씬 높았다. 환자가 평소대로 역기 운동을 매일 1시간씩
해 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운동량은 변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느라 자주 모임에 나가 저녁을 먹었고 이 때 혈당수치가 특히 높았다. Mr.G는 앞으로도 계속 저녁에 모임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으며 주사제를
하루 한 번 이상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Mr.G의 악화된 당화혈색소 수치는 주로 빈번한
저녁 모임에 따른 식후 고혈당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저녁 식사 후 고혈당을 낮추는 데에는 저녁 식사량, 특히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는 모임의 성격상 쉽지 않다고 했다. 다른 좋은 방법은 속효성 인슐린을 저녁식사 전에 주사하는 것이지만 환자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대신, 현재 복용하고 있는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의 용량을 증가시키거나, 필요하다면, 새로운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를 더 복용할 수 있다고는 했다. 그렇다면, Mr.G의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를 어떻게 조절하는 것이 좋을까?
Mr.G는 현재 하루에 메트포민을 총 2000 mg, 글리피지드를 20 mg 복용하고 있다. 메트포민은 하루에 2550 mg까지 복용할 수 있지만 2000 mg이상에서는 혈당 강하
효과가 더 커지지 않아서 보통 하루 2000 mg을 최대 유효 용량(maximum effective dose)로 간주한다. 또, 메트포민은 신장으로 배설되기
때문에 신장기능을 나타내는 eGFR이 30-45 ml/min/1.73m2이면
하루 총 복용 용량을 1000 mg으로 줄여야 한다. Mr.G의 eGFR이 48 ml/min/1.73m2이므로 하루 총 2000 mg을
복용할 수 있지만 eGFR이 45 ml/min/1.73m2이하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용량을 올리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글리피지드는 하루 총 40 mg까지
복용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지만 하루 최대 유효 용량은 20 mg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글리피지드 용량을 올리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니다.
나테글리니드 (nateglinide)와
같은 글리니드 (Glinide)는 췌장에서 인슐린의 분비를 증가시켜 혈당을 떨어뜨린다. 이는 글리피지드와 비슷한 작용 방법이므로
글리피지드와 같이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글리피지드를
중지하고 글리니드로 바꾸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환자의 문제는 일부 식사를 건너 뛰는 것이
아니라 모임에서 먹을 때 식사량이 많다는 것이므로 작용시간이 짧은 글리니드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글리니드는 하루에 세
번, 식사와 함께 복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알파글루코시다제 (alpha-glucosidase) 억제제는
탄수화물의 흡수를 억제하여 혈당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메트포민과 글리피지드와 작용방법이 다르다. 하지만, 알파클루코시다제 억제제들은
다른 계열보다 당화혈색소를 낮추는 정도가 평균 0.5% 정도로 적기 때문에 이 환자의 당화혈색소 목표치인 7%에 도달시키기가 어렵다. 또, 방귀, 설사 등의 부작용이 있어 모임을 자주 나가야 하는 환자의 형편에 적당하지 않다.
티아졸리딘디온(thiazolidinedione) 계열인 피오글리다존 (pioglitazone)은 당화혈색소를
약 1% 낮추고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장점이 있다. 또, 근육 등에서 인슐린의
민감성 (insulin sensitivity)를 증가시켜 혈당을 낮추게 때문에 Mr.G가 복용하고 있는 약들과 작용 방법이 겹치지 않는다. 하지만, 체중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Mr.G와 같이 과체중 (overweight)인
환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SGLT-2 (sodium
glucose co-transporter 2) 억제제는 포도당이 신장에서 재흡수되는 것을 억제하여 혈당을 낮춘다. 따라서, Mr.G가 복용하고
있는 약들과 작용기전이 다르다. 이
계열약들은 피오글리타존처럼 당화혈색소를 약 1% 낮추고 하루에 한 번 복용할 뿐만 아니라 몸무게를 줄이는
장점이 있다. 이 계열약들은 오줌
속의 당의 농도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요도염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Mr.G는 요도염의
병력이 없다. 그런데, 이 계열약들은 주로 신장으로 배설되기 때문에 Mr.G와 같이 신장
기능이 떨어진 환자에게는 조심해야 한다. 즉, 다나글리플로진 (danagliflozin)은 eGFR이 60 ml/min/1.73m2미만이면
사용할 수 없고, 카나글리플로진 (canagliflozin)과
엠파글리플로진 (empagliflozin)은 45 ml/min/1.73m2미만이면
사용할 수 없다. Mr.G의 eGFR은48 ml/min/1.73m2이므르 카나글리플로진이나
엠파글리플로진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45 ml/min/1.73m2와 가깝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다.
디펩티딜펩티다제-4
(dipeptidyl peptidase-4) 억제제는 장 호르몬인 디펩티딜펩티다제-4의
분해를 억제하여 혈당을 낮춘다. 디펩티딜펩티다제-4는 혈당에 따라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간에서 혈당을 만들어
분비하는 것을 억제한다. 또, 뇌의 포만 중추를 자극하고 장운동을 늦춰 포만감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Mr.G가 복용하고
있는 약들과 작용기전이 같지 않다. 또, 이들은 당화혈색소를 약 1% 정도 떨어뜨리며 하루에 한 번 복용한다. 그리고,
체중을 줄일 수도 있다. 이들은
췌장염 (pancreatitis)의 위험을 증가시키지만 Mr.G는
췌장염의 병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 계열약들은 신장으로 주로 배설되어 신장기능에 따라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 이 계열약 중 색사글립틴 (saxagliptin),
알로글립틴 (alogliptin) 등은 심근경색 등의 심순환기 질환을 앓았거나 신장기능이
저하된 환자들에게 심부전이 발생할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따라서, Mr.G에게는 시타글립틴 (sitagliptin)을 그의 신장기능에 맞는 용량인 50 mg을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것을 처방하고, 3개월 뒤에 다시 당화혈색소를 측정하도록 했다.
<필자소개> 신재규 교수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University 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6-10-04 1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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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17> 저혈당 – 어떻게 인지하고 어떻게 치료하나
혈당 강하제의 무서운 부작용인 저혈당 – 어떻게인지하고어떻게치료하나
작년 당뇨병에 걸린 버스 운전사가 심한 저혈당 상태에서 운전하다 건너편의 화물차를 들이받아 화물차의 운전사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버스 운전사는 인슐린을투약하는환자였고, 사고당시혈당이33 mg/dL이었다고한다.
몇 년전, 내 클리닉의 환자 중 한 분도 저혈당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이 노인 환자는 평소보다 저녁을 적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슐린의 용량을 줄이지 않고 평소대로 투여하여 한밤중에 저혈당이 일어났다. 가족들의 말에 따르면 밤 1시에 환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러 놀라 가보니 환자는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혈당을 측정해보니 35 mg/dL이었다고 한다.
인슐린 등 혈당강하제에 의한 저혈당의 원인
인슐린은 고위험약물 (high risk medication)로분류된다. 그 이유는바로생명을위협할수있는저혈당(hypoglycemia) 때문이다. 인슐린외에도체내인슐린의분비를촉진시키는설포닐우레아(sulfonyl urea) 등의 혈당 강하제도저혈당을일으킬수있다. 저혈당은 혈당치가70mg/dL미만인경우를말한다. 그런데, 중요한것은약물에의한저혈당은대부분은예방이가능하다는사실이다.
이는 약물에의한저혈당은 주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
-인슐린의 종류와용량을착각해서과량으로투약한경우
-식사를 거르거나줄였는데 인슐린의 용량을 조절하지 않은 경우
-운동량이 증가한경우
현재 판매되고있는인슐린은여러종류가있는데종류에따라작용속도나기간이다르다. 인슐린은 용량이조금만달라도혈당에큰영향을끼칠수있다.
따라서,
여러종류의인슐린을투여하는환자와보호자는언제,
어떤종류를,
얼마나투여하는지알고있어야하며투여할때마다이를꼭확인해야한다.
마찬가지로,
인슐린의분비를촉진시키는약물을복용하는경우,
언제얼마의용량으로복용하는지잘알고있어야한다. 또,
식사량(특히,
탄수화물 섭취량)과운동량을일정하게유지하는것이중요하다. 내 환자처럼식사량을줄였는데인슐린이나인슐린의분비를촉진하는약물의용량을줄이지않고평소의용량으로투여하면저혈당이일어날수있다.
또,
운동을하게되면근육이당분을더많이이용하므로혈당이떨어지게된다. 따라서,
인슐린과인슐린의분비를촉진하는약물의용량을조절하지않거나 탄수화물을 추가로섭취하지않고운동을할경우저혈당이발생할수있다.
저혈당을 방지하기위해서는무엇보다매일담당의사가정해준시간에맞춰혈당을측정하고혈당치에따라인슐린과인슐린의분비를촉진하는약물의용량과탄수화물섭취량을조절해야한다.
저혈당의 증상
당분은 우리몸의 주요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혈당이 낮아지면 몸에서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인슐린이나 혈당강하제를 투약하고 있는 환자들은 만일 일어날 수 있는 저혈당에 대처하기 위해 저혈당일때 나타나는 증상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림의 출처: 서울아산병원)
저혈당의 증상은 아주 배가 고플때 나타나는증상이라고생각하면쉬울것같다. 그런데,
주의할점은환자가배타차단제를 복용하고있으면식은땀이나는증상만제외하고다른증상을못느낄수있으므로환자는자신이베타차단제를복용하고있는지알고있어야한다.
저혈당의 치료:15-15-15 규칙
저혈당을 스스로치료할때가장많이권고하는방법은15-15-15 규칙(15-15-15 rule)이다:
- 저혈당 증상이 일어나면혈당을재어그수치가70미만이면15 g의당질(아래예를참조)을먹는다.
- 당질이 흡수되도록 15분을 기다린뒤혈당을잰다.
- 수치가 여전히70미만이면15 g의당질을다시먹는다.
두번째15 g의당질을섭취한후15분뒤에도증상이사라지지않고혈당이여전히70
mg/dL 미만이면 그때는119를불러야한다.
15
g의당질을이용하는이유는15 g의당질은혈당을보통50
mg/dL정도올리는데이정도면대부분의저혈당(< 70 mg/dL)을 치료할 수있기때문이다.
.
15
g 의당질의예로는:
(그림의출처:
인제대학고 상계백병원)
주의할 점은 다이어트 콜라 (Diet Coke)나다이어트사이다는설탕을쓰지않기때문에저혈당의치료로쓸수없다. 뿐만 아니라,
초콜렛은지방때문에장에서당분의흡수가느리므로저혈당의치료로는적당하지않다.
인슐린을 투약하는환자는저혈당의증상을반드시숙지해야하고만일을대비하여항상사탕등을가지고다녀야한다. 불가피하게 혈당을측정할수없을때에는저혈당증상과비슷한증상이나타나면바로당질을섭취해야한다.
저혈당으로 의식을 잃었을때: 119와글루카곤
마지막으로,
그버스기사나내환자처럼혈당이너무낮으면스스로치료할여유가없이의식을잃을수있다. 내 환자의경우,
가족이환자에게당질을먹이려고했으나의식을잃어서주지못했다. 이 때에는빨리119를불러야한다. 미국에서는 저혈당으로의식을잃은경우,
119 구급대가오기전에보호자가응급약으로쓸수있는글루카곤 (glucagon) 주사제를약국에서구입할수있다. 글루카곤을 집에비치할수있는경우,
환자보호자는글루카곤을 어떻게 투여하는지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필자소개> 신재규 교수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University 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6-09-06 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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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16> 혈당 조절만이 전부가 아닌 당뇨병 치료
의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내 클리닉으로 오는 환자들의 상당수는 당뇨병 환자들이다. 이 환자들에게 질병과 약에 대해 상담하다보니
많은 환자들이 당뇨병은 혈당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런 오해는 환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학생들에게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당뇨병은
혈당 조절만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해서 가르치고 있다.
물론 당뇨병 치료에서 혈당 조절은 아주 중요하다. 오줌에 당이 나오는 병(당뇨병, 糖尿病)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만 들어서는 오줌을 이용하여 진단을 내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혈액내 포도당의 양이나
이를 반영하는 당화혈색소 A1c (glycated hemoglobin A1c)의 수치로 진단을 하고
치료를 하기 때문에 혈당 조절은 당뇨병 치료의 핵심이다.
높은 혈당이 오랫동안 유지되면 미세혈관이 손상되고, 이 미세혈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장, 눈, 말초신경 등의 장기들이 망가진다. 그래서, 당뇨병은 신장 투석과 실명의 가장 큰 원인이다.
병원에서 신장 투석을 받는 당뇨병 환자들을 많이 보는데 일주일에 세 번, 한 번에 서너시간씩 투석을 받아야 하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그리고,
내 클리닉에 오는 여러 당뇨병 환자들은 혈당 조절을 소홀히 한 결과 시력이 떨어져 안과 치료를 받고 있다.
혈당이 조절되지 않으면 결국 시력을 잃게
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중요성을 깨닫고 있지 못한 환자들을 보면 걱정스럽다. 또 상당수의 당뇨병 환자들은
말초신경 질환 (peripheral neuropathy)으로 고생하고 있다.
따끔 거리거나 뜨거운 느낌을 주는 통증을
동반하는 말초신경 질환은 결국에는 감각 기능을 떨어뜨려 발이나 발가락 등에 염증이 생겼을 때도 그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데,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염증이 생겨도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지 않게 되고 그래서 결국에는 발이나 발가락을 잘라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지난 주
내 클리닉에 오는 한 당뇨병 환자는 오른쪽 발가락 하나를 자르는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따라서, 당뇨병 환자들은 혈당
조절에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적어도 매년 한번은 신장검사, 눈 검사, 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당뇨병 환자들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은 신장, 눈, 신경 질환이 아니라 심근경색, 중풍과 같은 동맥경화성 심순환기 질환이다. 왜냐하면, 당뇨병 환자들은
비당뇨병 환자들보다 동맥경화성 심순환기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비당뇨병 환자들과 당뇨병 환자의 7년간의
심근경색 발생률을 비교한 시험을 예로 들어보자. 이 시험에서 심근경색이 가장 많이 발생한 환자군은 심근경색증을 이전에
앓은 적이 있었던 당뇨병 환자들이었다 (표).
표. 비당뇨병 환자들과 당뇨병 환자들의 심근경색 발생률.
환자 구분
비당뇨병 환자
당뇨병 환자
심근경색
앓은 적이 없음
심근경색
앓은 적이 있음
심근경색
앓은 적이 없음
심근경색
앓은 적이 있음
7년동안
심근경색 발생률
4%
19%
20%
45%
뿐만 아니라, 심근경색증을
앓아 본 적이 없는 당뇨병 환자들은 심근경색을 앓은 적이 있는 비당뇨병 환자들과 비슷한 정도로 심근경색증이 발생했다 (20%와 19%).
반면 심근경색증을 예전에 앓은 적이 없는 비당뇨병 환자들의 심근경색 발생률은 4%에
불과했다. 이 결과는 심근경색증을
앓아 본 적이 없어도 당뇨병의 진단을 받으면 심근경색증을 앓은 적이 있는 비당뇨병 환자들과 비슷한 정도의 심근경색 발생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 대학 병원의 심장내과에 심근경색으로
입원하는 환자들 중 많은 수가 당뇨병 환자들이다.
당뇨병 환자들이 심순환기 질환에 걸릴 위험률이 높은 이유는 높은 혈당과
더불어 당뇨병 환자들에게 흔한 고혈압과 고지혈증 때문이다. 그래서, 당뇨병을 치료할 때
혈당뿐만 아니라 혈압과 콜레스테롤도 함께 조절해야 한다.
당뇨병 진단을 받으면 혈압과 혈중 콜레스테롤도 함께 검사한다. 미국고혈압치료 지침서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의 목표혈압은 140/90
mmHg미만이다. 따라서, 수축기 혈압이 140 mmHg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90 mmHg 이상이면 혈압이 이보다 낮아지도록 치료를 받아야 한다.
또, 미국당뇨병학회 (American Diabetes Association)는 당뇨병 환자 중 젊거나, 오줌에서 알부민이 배설되거나, 고혈압 등의 동맥경화성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인자가 한 개 이상 있는 환자의 경우 수축기 혈압을 130 mmHg미만으로 조절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뇨병 환자의 혈압을 정상 혈압 (120/80 mmHg미만)으로 되돌리는 것이 당뇨병 환자의 고혈압 치료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몸무게와 소금섭취를 줄이며 운동을 하는 것은 혈압을 낮추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데, 당뇨병 환자들은 동맥경화성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이 높고 생활습관을 바꿔 혈압을 떨어뜨리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고혈압 진단이 내려지면 바로 약을 이용하여 혈압을 낮추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혈압을 낮추는 모든 약이 동맥경화성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을 낮출 수 있지만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억제제나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이유는 다른 고혈압 치료제들보다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억제제와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가 당뇨병 환자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신장 질환의 발생 위험을 더 많이 낮추기 때문이다.
콜레스테롤을 치료할 때는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추는 것에 중점을 준다. 2013년 미국 콜레스테롤 치료 지침서에 의하면 스타틴 계열의 약을 이용하여 당뇨병 환자들의 LDL-콜레스테롤을 적어도 30% 이상 떨어뜨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 향후 10년내 동맥경화성 심순환기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7.5%이상인 당뇨병
환자의 경우에는 센 스타틴을 이용하여 LDL-콜레스테롤을 적어도50% 이상 낮추도록 권장하고 있다. 물론, 고혈압 치료와 마찬가지로
몸무게와 기름진 음식 섭취를 줄이고 운동을 늘리는 생활습관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 그리고, 혈중 콜레스테롤 검사를 1년에 한 번씩 받아야 한다.
또, 미국 당뇨병 학회는 향후10년내 동맥경화성 심근경색이 발생할 위험이 10%이상인 당뇨병 환자들에게 100 mg이하의 저용량 아스피린을 하루 한번 복용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런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당뇨병 환자들은 50세이상으로 고혈압, 흡연 등의 동맥경화성 심근경색의 위험인자를
하나이상 가지고 있는 분들이다. 이
권고안은 동양인에게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담당의사와 상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혈당을 조절하고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낮춰도 담배를 피우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금연은 필수적이다.
내 클리닉에서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가장 많은 시간이 투자된다.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을 함께 조절해야 하고 다른 환자들보다 복용하는
약의 수도 더 많아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의 사용을 위해 세심한 상담과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환자들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식생활을 포함한 생활습관을 바꾸고 금연을 하며 처방대로 약을 복용하며 집에서 혈당과 혈압을 측정하고 신장, 눈, 발, 콜레스테롤
등을 정기적으로 검사받는 클리닉의 환자들은 합병증의 발생없이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신재규 교수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 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6-08-09 1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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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15>당뇨병 치료에서 당화혈색소의 목표치
당뇨병 치료에서 당화혈색소의 목표치를 얼마로 잡아야 할까?
Mr.G는 며칠전 내 클리닉을 방문했던 2형 당뇨병 환자다. 67세인 Mr.G 는 당뇨병 외에도 고혈압, 고지혈증, 갑상선저하증 등의 병력이 있다. 당뇨병 치료를 위해 메트포민 (metformin)을 1000 mg씩 하루 두 번, 글리피지드 (glipizide)를 10 mg씩 하루 두 번 복용하며, 인슐린 글라진 (insulin glargine) 17 units을 자기 전에 한 번 주사하고 있다. 지난 10월에 측정한 당화혈색소 (hemoglobin A1c) 수치는 7.6%로 4월의 7.6%와 같았다. Mr.G의 당화혈색소 목표치는 얼마로 잡아야 할까?
피속의 헤모글로빈에 당이 얼마나 붙어있는지를 알려주는 당화혈색소는 당뇨병의 진단과 치료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는 피속에 당이 많을수록 헤모글로빈에 붙는 양이 늘어나 당화혈색소 수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상인의 당화혈색소 수치는 5.7%미만이고, 5.7%에서 6.4%는 전당뇨병 (pre-diabetic), 그리고 6.5%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당화혈색소 수치는 음식물 섭취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공복에서 측정할 필요가 없다. 또, 혈당은 측정하기 직전 섭취한 음식이나 약 등에 의해 그 수치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환자가 오랫동안 약을 복용하고 있지 않다가 병원에 가기 전에 혈당을 낮추는 약을 복용하면 혈당이 좋게 나올 수도 있다. 반면 당화혈색소 수치는 음식이나 약에 의해 바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헤모글로빈은 적혈구안에 있으므로 당화혈색소 수치를 보면 적혈구의 수명기간 동안 혈당이 어떻게 조절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적혈구의 수명은 일반적으로 3개월 정도되므로, 당화혈색소는 최근 3개월동안의 혈당이 어떻게 조절되었는지 알려준다.
당화혈색소는 측정의 편리함과 비교적 장기간의 혈당 조절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장점외에도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이 나타날 가능성을 예측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당화혈색소 수치는 눈, 신장, 신경에 나타나는 미세혈관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당화혈색소 수치가 9%인 환자는 당화혈색소가 6%인 환자에 비해 눈에 합병증이 일어날 가능성이 5배, 신장 합병증은 약 3배, 그리고 신경 합병증은 약 2배 정도 더 높다. 또, 임상시험에 의하면, 당화혈색소가 1% 낮아짐에 따라 미세혈관 합병증이 나타날 위험이 35% 감소한다. 뿐만 아니라, 당화혈색소가 조절된 환자들은 나중에 조절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조절이 되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장기적으로 심근경색, 중풍 등의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당화혈색소는 당뇨병 합병증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당뇨병 치료의 지표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그러면, 당화혈색소 목표치는 얼마가 되어야 할까?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형 당뇨병 치료에 큰 영향을 끼친 UKPDS라는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모든 2형 당뇨병 환자의 당화혈색소 목표치를 7%미만으로 잡았다. 그런데, 7%는 정상인 5.7%보다 높고, UKPDS 시험에서는 7%정도로 조절된 환자들이 그보다 높게 조절된 환자들보다 미세혈관 합병증 발생률은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낮았지만 심순환기 질환 발생률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당화혈색소 목표치를 정상에 가깝게 조절하면 7%정도로 조절하는 것 (일반적인 조절)에 비해, 특히, 심순환기 질환 발생률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하여 2000년대 중후반에 대규모 임상시험 시험들이 수행되었다. ACCORD, ADVANCE, VADT 등이 대표적인 것들인데 이들의 결과는 다음 표와 같다.
당화혈색소를 정상에 가깝게 조절하는 것과 7%정도로 조절하는 것을 비교한 임상시험들
임상시험
평균 당화혈색소 (%)
시험에서
비교한 것
상대적인 위험도 (95% 신뢰구간)
정상으로 조절
일반적인 조절
ACCORD
6.4
7.5
심순환기 질환*
0.90 (0.78-1.04)
사망률
1.22 (1.01-1.46)
ADVANCE
6.5
7.3
심순환기 질환*
0.94 (0.84-1.06)
미세혈관 합병증
0.86 (0.77-0.97)
VADT
6.9
8.4
심순환기 질환*
0.88 (0.74-1.05)
* 심순환기 질환의 종류는 시험마다 약간 다르다.
상대적 위험도 (hazard ratio)란 당화혈색소를 정상으로 조절할 때와 7%정도로 조절할 때의 심순환기 질환 등의 발생률의 비율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1보다 크면 정상으로 조절할 때보다 심순환기 질환 등의 발생률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1보다 작으면 더 적다는 것을 뜻한다. 또, 95% 신뢰구간에 1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면 통계적으로 의미있다고 판정한다.
따라서, 위 임상시험들에 따르면 당화혈색소를 정상으로 조절했을 경우 7%정도로 조절할 때보다 미세혈관 합병증 발생률은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14% 줄어들었지만, 심순환기 질환 발생률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심순환기 질환의 병력이 있거나 위험이 높은 환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ACCORD 시험에서 당화혈색소를 정상으로 조절할 때 사망률이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22% 더 높았다.
뿐만 아니라, 정상으로 조절했을 때 심한 저혈당의 발생률이 약 2-3배 더 높았다. 즉, 당화혈색소 목표치를 정상에 가깝게 잡으면 미세혈관 합병증 발생률 감소라는 혜택도 있지만 사망률과 저혈당 발생률이 증가하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당뇨병 협회 치료지침서는 개개인 환자들의 저혈당 위험도, 심순환기 질환 병력 여부, 나이, 당뇨병 병력, 복약 순응도 (adherence) 등에 따라 당화혈색소 목표치를 다르게 잡도록 권고하고 있다. 예를 들면, 노인들이나 저혈당을 자주 경험한 환자들과 같이 저혈당 위험이 높은 환자들에 대해서는 당화혈색소 목표치를 높게 잡도록 권고하고 있다 (7.5-8%).
또, 심근경색, 중풍 등 심순환기 질환의 병력이 있는 환자도 목표치를 높게 잡는다. 뿐만 아니라, 당뇨병 병력이 오래되어 당화혈색소 조절이 쉽지 않거나 오래 살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 환자들도 목표치를 높게 잡는다. 반면, 젋고 저혈당 위험이 낮으며 복약 순응도가 높고 저혈당이 일어났을 때 조치를 잘 취할 수 있으며 심순환기 질환의 병력이 없는 환자들은 당화혈색소 목표치를 정상에 가깝게 잡을 수 있다 (6-6.5%).
Mr.G는 비교적 젋고 (67세!) 심순환기 질환 병력이 없다. 저혈당이 가끔 있지만 저혈당의 증상을 잘 알고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약을 잊지 않고 복용하며 하루에 두 번씩 꼭 혈당을 잰다. 따라서, Mr.G는 당화혈색소 목표치를 7%미만으로 잡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Mr.G에게 아침 식사전 평균 혈당이 80-130 mg/dL 사이에 들 때까지 인슐린 글라진의 용량을 매주 1 unit씩 올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3개월 뒤에 다시 클리닉을 방문하여 당화혈색소를 측정하기로 했다.
<필자소재> 신재규 교수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 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6-07-04 1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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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14> 우리나라 약처방의 독특한 점들 2
우리나라 약처방의
독특한 점들 2
어머니께서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드시고 계신 모양이다. 만성 축농증기가 있다고 이비인후과 의사가
일주일전에 항생제를 처방해서 3일간 복용을 했고, 지금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약을 드시고 계신다고 한다.
슈도에페드린(pseudoephedrine) 60 mg 하루 세 번
레보세티리진(levocetirizine) 5 mg 하루 한 번
아세틸시스테인(acetylcysteine) 200 mg 하루 두 번
나조넥스나살스프레이 (Nasonex
nasal spray; 성분명: mometasone) 하루 한 번
어머니께서는 의사가 이 약들을 7일간
복용하고 다시 보자고 했다고 하신다. 우리나라
감기약 처방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중복 처방은 없지만, 위의 처방은 미국의 것과 비교했을때 몇 가지
점에서 독특하다.
먼저 항생제의 사용이 독특하다. 어머니께서는 항생제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지 않았지만, 재진 방문에서 의사가 좋아졌다고 하면서 3일간 복용해온 항생제를
중단했다고 하신다. 항생제는 시작한
후 증상이 호전되었더라도 권장되는 기간동안 계속 복용해야 한다. 그 이유는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권장되는 기간을 마치기 전에 항생제를 중단하게
되면 완전하게 치료되지 않을 수 있고, 남아있는 균들이 사용한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상이 호전되는 것은 항생제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의미하므로 권장하는 기간 끝까지 사용해야 한다. 미국 이비인후과학회 성인 축농증 치료지침서에 의하면 항생제가 필요할 경우 5-10일간 사용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따라서, 3일간의 항생제 복용은
권장기간보다 짧다.
둘째, 슈도에페드린은 필요할때만
복용해도 되는 약인데 매일 규칙적으로 복용하도록 하고 있다. 슈도에페드린은 콧속의 혈관을 수축시켜 콧물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는 약이다. 즉, 이
약은 축농증의 근본적인 원인인 염증반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축농증에 의해 발생한 콧물이라는 증상을 줄여 줄 뿐이다. 따라서,
콧물 증상이 있을 때만 복용해도 된다.
어머니께서는 콧물 증상이 없기 때문에 슈도에페드린을 매일 하루 세 번 드실 필요가 없다. 이렇듯 필요할 때만 복용해도 되는 약을 매일 규칙적으로 복용하도록 처방하는
것은 우리나라 약 처방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독특한 점 중 하나다. 그런데, 모든 약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처럼 약을 쓰게 되면 필요없는 약에 노출되게 되어 이익을 얻기 보다는 부작용의
위험이 더 크다.
세째, 레보세티리진을 사용하는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 레보세티리진은
항히스타민제로 재채기, 콧물 등의 증상을 줄여준다. 이 경우 역시 증상이 있을 때만 복용해도 된다. 하지만,
알러지성 축농증의 경우에는 알러지를 일으키는 물질이 축농증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알러지를 일으키는 물질에 계속 노출되는
경우에는 매일 규칙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어머니께서
알러지성 축농증에 대해 모르시는 것으로 보아 병원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들으신 것 같지 않다.
마지막으로 디자인이 잘 된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약의
사용이다. 아세틸시스테인은 우리나라에서
축농증의 치료에 허가받았다. 의학관련
문헌 검색 사이트인 미국 정부의 PubMed를 통해 알아본 바로는 2016년 1월1일 현재 이 약을 이용하여 면역결핍환자들과 급성 축농증이 재발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소수의 임상시험 연구만이 있었을 뿐이다. 어머니는
면역결핍환자도 아니고 급성 축농증이 재발한 것도 아니다. 이 약이 축농증에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이론
중 하나는 세균들이 만들어 놓은 막 (biofilm) 때문에 항생제가 세균에 접근하지 못하여 만성 축농증이
될 수 있는데, 아세틸시스테인은 이 막을 부숴서 항생제 효과가 나타나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항생제를
계속 사용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는 이론일 뿐이지 아직 그 효과가 임상시험을 통해 증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임상에서 사용할
시험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약들이 처방되는 것은 우리나라 처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독특한 점이다.
결국 위의 처방에서 매일 규칙적으로 복용이 필요한 약은 축농증의 염증반응을
줄여 주는 나조넥스나살스프레이 하나뿐이다.
슈도에페드린과 레보세티리진은 증상이 나타나면 그 때만 써도 되는 약이고, 아세틸시스테인은
사용할 근거가 부족하다.
지금까지 여러 처방을 통해 볼 때 우리나라의 약처방에 개선할 점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불필요한 부작용을
줄이고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약의 사용을 위해 임상시험 근거가 충분한, 반드시 필요한 약만 사용하도록
의사와 약사의 교육을 강화하고 처방과 조제 제도를 정비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약력>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 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6-05-09 1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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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13> 의약품을 오프라벨로 사용하면 안전할까?
의약품을 허가받은 내용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을 오프라벨 (off label) 사용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베타차단제인 메토프로롤 (metoprolol)은 고혈압과 심부전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지만, 맥박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부정맥의 일종인 심방세동 (atrial fibrillation)의 치료에도 쓰인다.
이렇게 메토프로롤을 심방세동의 치료에 사용하게 되면 이는 허가를 받은 적응증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프라벨 사용이 된다. 적응증 외에도 허가범위를 벗어난 용량이나 투여경로를 사용한다든지, 또는 허가받지 않은 환자군에 사용하는 것 등도 오프라벨의 사용에 포함된다. 그래서, 오프라벨 사용을 의약품 허가외 사용이라고도 부른다.
미국에서는 라벨 (영어로는 레이블이라고 읽는다)을 의약품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의약품의 라벨에 들어가는 내용, 예를 들면, 적응증, 용량, 투여경로, 투여기간, 환자군 등은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라벨에 쓰여진 대로 사용하는 것을 온라벨 (on label) 사용이라고 하고, 라벨에 쓰여진 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 즉, 허가받은 내용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을 오프라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의약품을 허가받은 대로만 사용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현재의 허가과정으로는 라벨이 허가받은 의약품이 쓰이는 모든 방법을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허가과정에 따르면 의약품 허가를 받아 판매를 원하는 자 (주로 제약회사)가 허가에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 규제 당국 (예, FDA, 식약처)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면, 규제 당국은 이를 바탕으로 법에 따라 심사하여 허가한다. 그런데, 허가받은 의약품에 대한 새로운 연구나 환자사례보고에 의해 허가내용에 없는 방법으로도 의약품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보고되면 이를 라벨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제약회사가 다시 허가에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사항에 대해 제약회사가 허가신청을 하면 허가를 받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만약 새로운 방법으로 허가받은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이 환자 치료에 획기적인 것이라면 임상에서는 그것이 허가내용에 반영되기 전에 사용될 것이다 (오프라벨 사용).
또, 새로운 연구가 허가받은 의약품의 판권을 가진 제약회사에 의해 수행되지 않았거나, 새로운 허가 사항을 추가한 뒤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으면 제약회사는 허가신청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특허가 풀린 의약품의 경우에는 의약품을 독점적으로 팔 수 없기 때문에 제약회사가 새로이 허가신청을 할 이유가 별로 없다.
하지만, 임상에서는 새로운 연구나 환자보고사례가 있다면 허가내용외로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고 이는 법에 어긋난 의약품의 사용이 아니기 때문에 오프라벨 사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듯 허가 내용만이 의약품의 임상 사용 범위를 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의약품이 오프라벨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전체 처방의 약 20%가 오프라벨이라고 한다. 그런데, 의약품을 오프라벨로 사용하는 것은 허가사항대로 사용하는 것에 비해 안전할까? 2016년 1월의 JAMA Internal Medicine에서 이에 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소개한다.
캐나다 퀘벡 지방의 전자 건강 기록부 (electronic health record)를 이용하여 수행된 이 시험은 2005년 1월부터 2009년12월까지 46,000여명의 성인 환자들에게 발행된 150,000여개의 처방전을 적응증에 따라 온라벨과 오프라벨로 구분하여 환자들에게 발생한 부작용의 발생률을 추적, 비교하였다. 오프라벨 사용군은 다시 적어도 1개 이상의 무작위 임상시험 결과가 있는 등의 강력한 증거 (strong evidence)가 있는 적응증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었다.
전체 처방전 중 약 12%가 오프라벨 적응증으로 발행되었고 이 중 약 20%만 강력한 증거를 가진 적응증이었다 (이 연구가 이전 연구보다 오프라벨 처방률이 낮은 이유는 적응증에 대해서만 조사하였기 때문이다).
의약품 계열 중 오프라벨 사용이 많은 두 가지는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의약품과 심순환기계 의약품으로 각각 전체 오프라벨 사용의 25%와 23%를 차지했다. 환자들에 대해 살펴보면 평균 나이는 약 58세였으며 여성이 60%를 차지했다. 또, 42%의 환자들은 5개 이상의 의약품을 처방받았다.
전제적으로 부작용 발생률은 10,000 person-months 당 13.2 명으로, 이것의 의미는 예를 들어 1000명을 10달간을 추적할 때 13.2명에게 부작용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부작용 발생률은 온라벨 사용의 경우 12.5명인 반면, 오프라벨 사용은 19.7명으로 더 높았다. 그런데, 오프라벨 사용 중 강력한 증거가 있는 적응증에서의 발생률은 13.2명으로 온라벨 사용 중 부작용 발생률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강력한 증거가 없는 적응증에서는 21.7명으로 부작용 발생률이 훨씬 더 높았다.
환자들의 나이, 성별, 동반질환 등을 고려한 다변수 회귀분석에서도 온라벨 사용에 비해 오프라벨 사용은 부작용 발생위험이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44% 더 높았고, 강력한 증거가 없는 적응증을 위한 오프라벨 사용도 54% 더 높았다. 하지만, 강력한 증거가 있는 적응증을 위한 오프라벨 사용은 온라벨에 비해 부작용 발생 위험이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다르지 않았다.
부작용의 위험이 가장 높은 의약품군은 감염증 치료제로 10,000 person-months 당 66.2명이었다. 1981년이후에 허가된 의약품들이 그 이전에 허가된 것들보다, 여성이 남성보다, 그리고 사용하는 의약품의 갯수가 증가할수록 부작용의 위험이 더 높았다. 부작용으로는 위장관, 신경, 호흡기, 근골격계에 나타나는 것들이 가장 흔했다.
이 연구는 의약품을 허가 사항에 따라 사용할 때보다 오프라벨로 사용할 때 부작용의 위험이 더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오프라벨로 사용할 때 적어도 1개의 무작위 임상 시험 결과가 뒷받침되어 있으면 허가 사항에 따라 사용하는 것과 부작용 발생률이 다르지 않은 반면, 무작위 임상 시험 결과없이 의약품을 사용하는 경우 부작용 발생률이 55%나 증가한다는 결과는 오프라벨로 의약품을 사용하고자 할 때 무작위 임상 시험 결과가 있는 적응증에 사용하는 것이 의약품을 보다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비교적 신약을 사용할 때, 여성에게 사용할 때, 여러 개의 의약품을 사용할 때 부작용의 위험이 높으므로 더 주의해서 사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오프라벨으로 의약품을 사용할 때 부작용의 위험이 더 높은 이유는 온라벨 사용이 엄격한 임상시험에 의해 의약품의 사용방법이 정해지는 것에 비해 오프라벨 사용은 그런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작용의 위험이 높은 데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프라벨 사용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한 미용회사는 오프라벨 사용의 배경으로 임상시험은 평균적인 효과와 부작용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환자 개개인에 대해 더 잘 아는 의사의 재량에 의해 의약품을 처방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처방이 오프라벨 사용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적절한 오프라벨 처방이 대다수겠지만 안전성이 우려되는 오프라벨 처방도 꽤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경구용 또는 주사용 비만약 처방 또는 다이어트 처방들은 효과와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은 오프라벨 사용이다.
효과적이고 안전한 오프라벨 사용을 유도하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퀘벡 지방의 전자 건강 기록부와 같이 의사가 새로운 의약품을 처방하거나 쓰던 의약품을 중단할 때마다 그 적응증과 중단 이유를 전자 건강 기록부나 전자 처방전에 기록하게 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모든 의약품 처방이 전산화되어 있고 국가의료보험에 의해 지불되는 경우 이런 전자 건강 기록부를 도입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또, 암 치료이나 소아 치료 등 오프라벨 사용을 피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허가받은 치료제가 있는 질환에 대해서 다른 약을 오프라벨로 사용할 때 임상증거 수준에 따라 보험적용에 차등을 둔다든지 처방자가 환자에게 오프라벨 처방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 필자소개 / 신재규교수 프로필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 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6-03-16 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