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약국] <14> 냄새나는 약 메트포르민 이야기
냄새 때문에 입에 넣기 힘들었던 알약을 떠올려보자. 우선 생각나는 건 비타민이다. 종합비타민제나 비타민B 컴플렉스에는 티아민, 즉 비타민B1이 들어있는데, 화학 구조상 황이 들어있어서 특유의 불쾌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냄새에 관한 한 티아민보다 더 악명 높은 약은 2형 당뇨병 환자의 치료에 흔히 사용되는 메트포르민(metformin)이다. 이 약이 악취가 심해 많은 환자들이 복용을 주저하거나 중단하는 경우가 있다.
2010년 2월 의사와 약사가 공동으로 참여한 연구 보고가 내과 전문저널인 ‘Annals of Internal Medicine’에 실렸다. 메트포르민의 악취가 해당 치료제의 빈번한 부작용으로 알려진 메스꺼움(nauseated)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연구진은 환자들이 메트포르민에 대해 왜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해 했으나 이와 관련된 연구 보고서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금까지 많은 환자들이 메트포르민이 그들을 메스껍게 한다는 점을 느꼈을 것이나 당연한 반응 혹은 개인차로 치부해 간과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트포르민이 일부 환자들에 생선 비린내와 땀에 쩔은 양말 냄새 같은 악취를 풍겨 보통 식후 바로 복용하는 환자들을 괴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보고서의 저자 앨런 펠레티에는 메트포르민의 독특한 악취가 환자들이 복용을 중단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으므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서방정 제제로 메트포르민을 별 문제 없이 여러 해 동안 복용한 성인 당뇨 환자가 속방정으로 제형을 교체하자마자 복용을 중단한 경우를 예로 들었다.
펠레티에는 “속방성 제제가 생선 썩은 냄새를 풍겨 환자를 메스껍게 만들었다”고 강조하고 서서히 용해되는 서방정의 경우 코팅이 되어 있으므로 냄새 문제가 덜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메트포르민의 암모니아 비슷한 냄새는 약성분 자체로 인한 것이므로, 냄새를 덮을 수는 있어도 제거할 수는 없다. 비슷한 다른 예로 고혈압이나 심장기능부전에 사용되는 이뇨제 스피로노락톤에서도 박하 또는 민트 같은 냄새가 난다.
항고혈압약 딜티아젬에서는 플라스틱 같은 냄새가 나고, 페니실린과 세팔로스포린 계열의 항생제에서도 유황 냄새가 난다. 그중에서도 악명 높은 세팔렉신의 경우 달걀 썩는 냄새가 아주 고약하다. 사이클로스포린 같은 면역억제제도 불쾌한 냄새가 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런 냄새가 약성분 자체의 화학구조로 인한 것이므로, 약효와는 관계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펠레티에가 사례로 든 환자의 경우처럼 냄새 때문에 환자가 약 복용을 중단하면 문제가 된다.
메트포르민의 악취에 대한 환자들의 반응을 더 깊이 있게 연구한 후속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메트포르민은 냄새 때문에 복용을 포기하기에는 장점이 많은 약이다. 메트포르민은 인슐린 감수성을 높이며 간에서 포도당이 과다하게 생합성되는 것을 막아 혈당을 떨어뜨린다. 또한 근육에서 포도당 흡수 및 이용을 늘려준다.
메트포르민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지 않으며 저혈당과 체중 증가와 같은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는 면에서도 설포닐우레아와 같은 다른 경구용 혈당강하제보다 낫다고 볼 수 있다. 메트포르민은 지방산의 산화를 억제하고 혈액 내 지방(TG)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킨다. 메트포르민이 비만이나 대사 증후군이 동반된 당뇨병의 경우에 1차 선택약으로 사용되는 이유다. 흥미롭게도 메트포르민이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이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다수의 연구에서 2형 당뇨 환자는 다양한 암(간, 췌장, 자궁내막, 대장, 직장, 유방, 방광암) 발생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메트포르민을 장기 복용한 당뇨 환자를 추적한 연구에서 암 발생률과 암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가 관찰됐다.
하지만 아직 무작위 임상시험에서 인과 관계가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메트포르민에 정말 암의 예방 또는 치료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이다.
염증과 산화 손상을 줄이고 칼로리 제한 다이어트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는 메트포르민에 실제 수명 연장 효과가 있을지도 관심의 초점이다. 장수나 암 예방을 목적으로 이 약을 복용해야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로 효과가 분명하게 증명된 연구 결과는 아직 없지만, 냄새 때문에 약을 포기하려던 당뇨환자들에게는 용기를 줄만한 상황인 셈이다.
2018-07-18 09:40 |
[약사·약국] <13> 알약 쉽게 삼키는 법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약 먹을 때 제대로 삼키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알약을 삼키기란 알고 보면 만만치 않은 일이다. 뭔가를 삼킨다는 건 목과 입의 근육 25쌍이 협조적으로 움직여줘야만 가능한 복잡한 동작이다. 게다가 알약은 씹지도 않고 그대로 삼켜야 하니 심리적 부담이 더 크다.
2013년 유럽임상약리학지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럽 성인의 37.4%가 알약과 캡슐을 삼키기 어려워하며, 전체 응답자 중 9.4%가 이로 인해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도 상황은 비슷하여, 성인의 40%가 알약 삼키기를 어려워하며 다섯 명에 한 명은 알약을 앞에 두고 약이 안 넘어가면 어쩌나 걱정에 빠져 주저한다.
어떻게 하면 알약을 더 쉽게 삼킬 수 있을까? 먼저 기억할 점 하나는 고개를 너무 뒤로 젖히지 말라는 것이다. 약을 삼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고개를 있는 힘껏 뒤로 젖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지만 이렇게 고개를 뒤로 하면 삼키기는 더 어려워진다. 생각해보라. 밥 먹을 때 식탁에서 밥이 안 넘어간다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
물을 입에 넣으려면 고개를 뒤로 해야 하지만, 입에 넣은 물과 알약을 삼킬 때는 고개를 앞으로 조금 숙이면 더 잘 넘어간다. 고개를 지나치게 뒤로 기울이면 알약이 기도로 잘못 넘어가거나 식도 점막을 뚫고 들어갈 위험성이 높아진다.
이 방법은 특히 캡슐에 효과적이다. 물보다 가벼운 캡슐은 고개를 뒤로 젖히면 치아 쪽으로 둥둥 뜨게 되므로 넘기기 힘들다. 2014년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 고개를 살짝 숙이고 캡슐을 삼키는 방법에 대해 참가자의 88.6%가 삼키기가 더 수월해졌다고 응답했다.
독일 연구진은 정제를 혀 위에 올린 다음 물병을 입에 대고 물을 쭉 빨아들이면서 알약을 동시에 삼키는 방법도 실험했다. 이 경우에도 참가자에서 59.7%가 목넘김이 수월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때 타이밍을 제대로 못 맞추거나 고개를 너무 뒤로 젖히면 알약이 목에 걸려 위험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알약을 입에 넣기 전 물 한 두 모금으로 입안과 목을 적셔주면 더 부드럽게 삼킬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알약을 혀에 미리 올려둘 때는 앞쪽 가운데 부분에 두면 넘기기 좋다. 알약이 혀 안쪽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면 구역질이 날 수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이에 더해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는 알약보다 작은 크기의 젤리나 사탕으로 삼키는 동작을 연습해보거나 알약을 요거트나 과일 퓨레와 함께 먹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고 추천한다. 일반 정제라면 깨물어 먹거나 부숴 먹는 것도 무방하지만, 서방형 제제나 장용정처럼 특수하게 설계된 알약은 반드시 그대로 삼켜야 한다.
약사와 상담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한편 평소에 약을 잘 삼키던 사람이 갑자기 알약 복용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반드시 원인을 체크해보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연하곤란을 경험하기도 하며, 뇌졸중, 치매, 파킨슨병과 같은 질환으로 인해 알약뿐만 아니라 음식을 삼키는 데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도 중요하다. 알약이 멈추지 않고 얼른 위까지 전달되게 하려면 물을 200ml 이상 쭈욱 마셔야 한다. 뜨거운 물은 곤란하다. 입으로 호호 불면서 조금씩 마시는 물로는 알약을 시원하게 내려 보내기 어렵고 약이 중도에 멈춰 설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너무 차가운 물도 피하는 게 좋다.
약 때문에 평소보다 물을 더 많이 마셔야 할 때도 있다. 약사가 특정한 약을 복용 중에 물을 많이 마시라고 당신에게 권고한다면, 그건 하루 6-8잔 정도의 물을 마시라는 의미이다. 물론 물 여덟 잔을 단번에 마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루 중 여러 번에 나누어 마시면 된다.
항생제와 같은 일부 약 성분이 소변으로 빠져 나갈 때 결정을 만들어 통증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물을 많이 마시면 소변양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소변 중 약성분이 희석되어 요로에서 이들 약이 결정으로 굳는 걸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약 먹고 물을 너무 많이 마신다고 약효가 줄어들거나 약효 지속시간이 줄어들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소변에서 희석될 뿐 약의 혈중 농도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물 한 잔에 알약을 삼키는 데도 이렇게 할 말이 많다. 알쓸신약 이야기는 계속된다.
2018-07-04 09:40 |
[약사·약국] <12> 새로운 감기 치료 물질
지난 5월 중순 ‘역사상 첫 감기치료제가 나올지도 모른다’, ‘감기 완치 기술이 나왔다’는 놀라운 소식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신약에 대한 많은 뉴스가 그렇듯, 과장된 감이 없지 않았다. 관련 연구결과를 실은 논문이 네이처 화학이라는 학술지에 발표되긴 했지만 아직 신약이라기보다는 기초연구 단계의 신물질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기존의 감기약과는 다른 식으로 작용하는 물질의 발견이란 면에서 주목할 만했다.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 간다는 말처럼 현존하는 감기약은 모두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감기의 원인이 바이러스를 퇴치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신물질은 감기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걸 막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화제가 된 것이다.
약국에서 가장 흔한 질문 중 하나가 감기 원인 치료약은 왜 없냐는 거다. 답은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200종이 넘는 변종이 있다. 감기환자 전체의 30-50%에서 발견되는 리노바이러스만 해도 혈청형(serotype)이 100가지가 넘는다. 이렇게 다양한 바이러스에 대해 일일이 백신을 만들 수도 없는 데다 변이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어려움이 가중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대신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는 인체 세포 내에 있는 물질을 이용해서 바이러스를 막으려고 시도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영국 임페리얼 컬리지 연구팀에서 이번에 발표한 실험 결과도, 감기 바이러스가 인간의 체내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증식하는 데 이용하는 인간 세포 안의 단백질 N-미리스토일트랜스페라제(NMT)를 표적으로 하는 신물질(IMP-1088)에 대한 것이었다.
감기 바이러스는 자체 공장을 운영하는 대신에 숙주 인체 세포의 NMT라는 효소를 납치하여 자신의 단백질 피각(capsid)을 만들어낸다. 감기 바이러스의 주류를 이루는 리노바이러스를 포함하여 피코르나바이러스과에 속하는 바이러스는 공통적으로 NMT를 납치하여 이용한다. 때문에 IMP-1088은 다양한 리노바이러스 변종에 효과가 있다.
이 신물질의 개발과정도 흥미롭다. 원래 IMP-1088은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신물질을 합성하기보다는 이미 찾아둔 말라리아 원충 속 NMT 효소를 억제하는 물질을 비슷한 구조를 가진 인체세포 속 NMT 효소를 막는 용도로 변형시키는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연구진은 원래의 물질보다 효력이 1000배 이상 강하여 적은 양으로도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를 나타내는 신물질을 개발했다.
감기 바이러스 자체 대신 바이러스가 이용하는 숙주 인간 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는 전에도 개발을 시도한 바 있지만 대부분 인체에 해를 끼치는 부작용 문제로 인해 실패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IMP-1088은 인간 세포를 대상으로 진행한 시험관 실험에서 사람 세포에 대한 독성 없이 항바이러스 효과를 나타냈다. 바이러스가 아닌 인체 세포의 효소를 표적으로 한 덕분에 내성 문제도 피해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신물질의 단점은 아직 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는 아직 초기단계이며 이제 겨우 실험실에서 배양세포를 대상으로 연구한 단계에서는 인체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임상 시험에서 효과가 입증될 수 있을 것인가는 더 큰 장벽이다.
2000년대 초반 감기치료 항바이러스 신약으로 기대를 불러모았던 루핀트리버와 피코버가 임상시험에서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을 떠올려봐도 갈 길이 멀다. IMP-1088 역시, 감기 바이러스 감염 후 3시간 이내에 신속하게 투여할수록 효과가 커서 스프레이 형태로 연구 개발 중이지만 실제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을지, 감기치료 효과를 입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성공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IMP-1088이 이 모든 장벽을 넘어 감기치료 신약으로 개발에 성공한다면, 옆에서 자꾸 재채기하는 감기환자 때문에 불안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될 듯하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에만 기대기보다는 지금 가능한 예방 방법을 사용하는 게 현명한 태도일 거다.
비록 감기를 뿌리 뽑는 약은 아직 없지만, 수시로 손을 씻고, 감기에 걸리면 가급적 집에서 쉬고, 재채기할 때는 사람이 없는 쪽으로 팔이나 옷소매에 대고 기침하는 걸 습관으로만 해도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틈만 나면 약국에서 떠들고 싶은 이야기다.
2018-06-20 09:40 |
[약사·약국] <11> 새로운 편두통 약 이야기
지난 5월 17일에 미국 FDA에서 편두통 치료가 아니라 예방에 효과가 있는 예방약, 에레누맙을 최초로 승인했다. 편두통이 사회적 비용이 워낙 큰 질환이고 이제껏 미국에서 편두통 예방 용도로 승인된 약이 없었기에 세계적으로 큰 뉴스였다.
편두통 유병률은 국내 성인 인구의 6%, 세계적으로는 이보다 높은 12-14%으로 환자 수가 많은데다가 사회적 비용이 큰 질환이다. 통증 자체도 긴장성 두통보다 훨씬 더 심하고 메스꺼움, 구토, 현기증 등의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 업무와 일상 활동을 제대로 이어나가기 어렵다.
이로 인한 비용이 미국에서만 1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편두통 예방약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모두 허가 사항 외 사용(off-label use)이었고, 여러 나라에서 승인 사용해온 피조티펜 같은 약에는 졸음, 체중 증가와 같은 부작용이 심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번에 미국FDA에서 승인된 에레누맙은 처음부터 편두통 예방을 목적으로 개발한 약이며, 기존 약과 비교하여 알려진 부작용이 경미한 편이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비용이 상당하다.
아직 국내 승인과 출시는 기다려봐야겠지만, 미국에서 약값이 1년에 미화6,900달러, 원화로 740만원 정도 든다. 이렇게 고가인 것은 이 약이 단일클론항체로 만들어진 바이오의약품이기 때문이다. 펜처럼 생긴 피하주사 장치로 인슐린을 주사하듯 환자 본인이 위팔, 복부, 대퇴부 등의 부위에 한 달에 한 번 주사한다.
편두통 발생 빈도나 발생 일수를 50% 이상 줄여주면 예방약으로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는데, 6개월 동안의 임상시험에서 에레누맙 70mg 투여군, 140mg 투여군, 위약군을 비교해본 결과 편두통 일수가 매월 평균 8.3일에서 각각 3.2일, 3.7일, 1.8일씩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플라시보를 주사해도 1.8일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효과가 아주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편두통 일수에 더해 증상이 완화되거나 두통약에 대한 반응이 좋아진다는 추가적 이점이 있었고, 약이 아주 잘 듣는 경우 6개월 동안 편두통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보고도 있다. 물론, 비교적 짧은 기간에 한정된 결과이므로 장기적 예방 효과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에레누맙은 편두통 빈도를 줄여주는 약이기 때문에 두통이 생기면 치료제를 따로 복용해야 한다.
에레누맙이 효과 면에서 대단한 약은 아니지만, 주목 받는 것은 이 약이 편두통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줄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에레누맙은 편두통 발작이 시작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CGRP(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 calcitonin gene-related peptide) 수용체를 차단하는 항체이다. 수용체가 아닌 CGRP 자체를 표적으로 하여 그 작용을 막는 프레마네주맙, 갈카네주맙도 편두통 예방약으로 개발되어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1985년부터 여러 연구를 통해 편두통 환자의 CGRP 수치가 상승했다가 수마트립탄과 같은 편두통약으로 증상이 가라앉으면 다시 정상수준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는 CGRP를 표적으로 하는 편두통 예방약의 개발로 이어졌다. 하지만 에레누맙이 승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들 약이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에레누맙은 뇌-혈관 장벽을 통과해서 들어가기엔 너무 거대한 단백질 분자(150kDa)이다. 덩치 큰 단일클론항체가 뇌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게 많은 연구자들이 편두통약으로서 CGRP차단항체 개발을 포기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아주 적은 양이라도 항체가 뇌-혈관 장벽을 통과해서 뇌간으로 들어가야만 약효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CGRP의 작용을 차단하는 에레누맙과 같은 약이 편두통 예방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은 뇌 바깥에서 이들 펩타이드가 삼차신경을 과잉으로 활성화하고 혈관을 확장시키는 것을 막는 것만으로도 편두통의 불씨를 꺼뜨릴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반면 CGRP 차단제로도 편두통 예방효과가 중간 정도 밖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편두통의 발병기전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앞으로 CGRP를 표적으로 하는 편두통약이 늘어나고, 후속 연구가 더 많이 진행되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매우 고가인데다, 부작용에 대한 자료 축적이 필요한 신약이서 모든 사람을 위한 약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약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약임에는 분명하다. 공부하자.
2018-06-06 09:40 |
[약사·약국] <10> 공부 잘하는 약 논쟁
운동선수가 도핑테스트를 하듯 수험생도 시험을 치르기 전 약물 검사를 받아야 할 시대가 올 것인가? 농담 같지만 곧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2008년 1월 과학저널 네이처에서 전세계 60개국 1,400명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 5명 중 1명 꼴로 질환 치료가 아니라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을 목적으로 메틸페니데이트, 모나피닐, 베타차단제와 같은 약물을 복용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메틸페니데이트와 같은 중추신경흥분제에 대한 논란은 일단 뒤로 하고 최근 몇 년 사이 화제가 된 모다피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참고로, 앞서 언급한 네이처 설문조사에서 약물 유경험자의 44%가 이 약을 복용했다고 답했다.
모다피닐은 원래 낮 시간에 과다하게 졸리고, 마치 졸도하듯이 수면발작이 오는 기면증 치료에 사용되는 약이다. 몇 년 전부터 이 약이 해외 대학생들 사이에서 공부 잘하는 약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았다.
영국에서는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할 수 있는 약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이런 약을 복용하는 대학생의 수가 늘어나면서 학교 측에서 이러한 약물 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기사가 여러 매체에 실리기도 했다.
모다피닐이 효과가 있긴 있는 것 같다. 24건의 최근 연구를 연구자들이 종합 분석한 결과, 모다피닐은 주의력을 향상시키고 학습과 기억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약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맥락과 상황을 파악하여 유연하게 행동하는 뇌의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에 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약은 뇌 속의 여러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주는데, 예를 들어 도파민 시스템에 영향을 주어서 기민성을 높일 수 있고, 노르에피네프린에 영향을 주어 집중하는 데 도움을 주고, 히스타민에 영향을 주어서 졸리지 않게 할 수 있다. 항히스타민제 복용 시 졸릴 수 있는 것과 반대가 되는 약리 작용이다.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 모다피닐의 경우에도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원래부터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경우 이 약을 먹고 나서 창의력이 도리어 낮아지는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고, 두통, 불면증, 신경이 예민해지고 짜증이 나거나 불안증, 구역감 등이 부작용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 졸리거나 코가 막히거나 설사를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남용 및 중독성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메틸페니데이트, 암페타민과 같은 중추신경흥분제에 비하면 모다피닐은 비교적 안전한 편으로 보인다. 특히 중독 현상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하지만 이 약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가 짧은 기간 복용하는 상황만을 가정한 것으로, 장기 복용했을 경우의 위험성은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의사와 상담 없이 인터넷으로 불법 구매하여 약을 복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 경우 약 자체의 부작용도 문제가 되지만 알약 속에 실제로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문제 또한 심각하다.
요즘은 정말 세계가 비슷하게 돌아간다.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압박감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도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해있다. 네이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수험생뿐만 아니라 50-60대까지 전 연령대에 걸쳐 약물 남용 비율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는 사회 분위기와 체계를 바꿔나가지 않고는 상황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모다피닐과 같은 약의 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니면 공정한 경쟁을 위해, 부작용을 막기 위해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인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가난한 지역에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 환경을 개선해줄 수 없으니 공부 잘하는 약이라도 처방해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새로운 약이 개발되고, 기존 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머리 아프더라도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행히 그런 사회적 토론은 약의 도움 없이 가능하다.
2018-05-23 09:40 |
[약사·약국] <9> 이대로 좋은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옆 사람 휴대폰 화면이 살짝 눈에 들어온다. 녹색창에 약 이름을 검색 중인가보다. 인터넷으로 약에 대한 정보를 찾는 사람 수는 최소 백만 명 이상이다.
네이버 한 군데에서만도 타이레놀정 조회수가 106만 뷰, 소론도정 94만 뷰, 페니라민정이 84만 뷰에 이른다. 상위권에 든 약들은 일주일에 조회수가 5천-1만씩 늘어난다. 하지만 과연 소비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약에 대한 정보는 어려운 의약학 용어로 가득한 전문가 버전뿐이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단순히 나열되어 있다. 타이레놀정에는 메트헤모글로빈혈증이 있을 경우, 이 약의 복용을 즉각 중지하고 의사, 치과의사, 약사와 상의하라는 지시문이 나온다.
소론도정에는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중심성 장액성 맥락망막증’이 등장한다. 설명을 읽으라는 말인가, 아니면 어차피 읽어도 모를 말이니 포기하라는 뜻인가. 읽는 이가 내용을 이해하느냐 마느냐에 제조사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해외 의약정보 사이트에서 전문가 버전과 환자 버전을 나누어 환자용 정보에는 쉬운 말로, 보기 쉽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약 복용 뒤에 혹시라도 시력에 이상이 있을 경우 병원이나 약국에 문의하라는 설명은 있어도, 중심성 장액성 맥락망막증과 같은 난해한 부작용을 열거하진 않는다.
하지만 국내 의약정보 사이트는 일반 대중에게도 날것 그대로의 전문용어를 강요한다. 일이십 개의 부작용을 나열하고 부작용 각각마다 다시 6-7가지 세부사항을 나열하면서도 정작 환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정보의 중요도나 부작용의 빈도에 따라 가중치가 표시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인터넷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 영화, 책에 대해 찾아볼 때와 약에 대한 정보를 찾을 때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흔히 나타나는 가벼운 약 부작용으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인지, 드물지만 심각한 부작용으로 증상을 경험하는 즉시 의사, 약사에게 알려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106만 명의 사람이 궁금해서 찾아본 타이레놀정 의약품 정보에는 정작 음식과 함께 복용해야 하는지, 음식과 관계없이 복용 가능한 약인지와 같은 기본 사항이 빠져있다.
건강정보 이해능력(health literacy)이 낮을수록 질병, 건강악화, 응급치료, 입원의 위험이 높아진다. 2015년 일본 연구팀의 발표에 따르면, 건강정보 이해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흡연, 지나친 음주, 운동 부족과 같은 해로운 습관을 가질 확률이 낮으며 따라서 건강을 유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
약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이 약을 복용하는지, 약을 어떻게 복용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약의 부작용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런 경우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해 알면 꾸준히 약을 복용하는데 도움이 된다. 치료 목적을 모르고, 부작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속으로 키울수록 약 복용을 제대로 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문제가 터질 위험은 높아진다.
숫자만 봐도 겁을 먹는 사람들도 많다. 건강 정보에 숫자만 더해져도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수가 40% 이상 증가한다. 그림, 도표, 그래프와 같은 식으로 시각화한 인포그래픽스가 인기를 끄는 시대에 약 사용 설명서만 텍스트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전문용어로 가득한 약 설명서는 치우고, 이해하기 쉬운 약 설명서로 바꿔야 할 때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금도, 제약회사들이 자사의 약을 광고하기 위해 만든 홈페이지에는 소비자들이 보기 쉽게 정리된 정보가 한가득이다.
나 하나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더 사람이 지식을 공유하고, 지식을 찾기 쉬워질수록 사회는 질적으로 변화한다. 지식의 공유는 심지어 그 사회의 패러다임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말하는 지식 혁명이다. 더 쉬운 상담, 더 보기 쉬운 자료로 약과 건강에 대한 정보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아마 언젠가는 약업계의 혁명도 찾아올 것이다.
2018-05-09 09:40 |
[약사·약국] <8> 약사용과 시간
때에 맞는 말이 아름다운 것처럼, 약 사용도 시간이 중요하다. 특정 항암제를 아침에 주는 것과 저녁에 주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알아보려고, 진행성 난소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5년 동안 생존율을 비교 연구했다.
한쪽은 아침 6시에 A 항암제(독소루비신)를 투여하고 저녁 6시에 B(시스플라틴) 항암제를, 다른 쪽은 순서를 바꾸어서 B를 아침에, A를 저녁에 투여했다. 같은 약을 동일 용량으로 투여하면서 시간대별로 순서만 바꾸어 준 것이다.
그런데 아침에 A, 저녁에 B를 투여한 사람들은 5년 뒤 44%가 생존했지만, 순서를 반대로 하여 약을 준 경우는 생존율이 11%에 불과했다. 약을 먹는 시간만 다르게 했는데 커다란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독소루비신을 아침에 투여했을 때 백혈구 감소 부작용이 덜한 것과 연관된 것으로 추측된다.
아직 항암제와 투여 시간에 따른 효과 및 부작용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메커니즘에 의한 것인지는 더 많은 후속 연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특정한 약을 언제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효와 부작용에 차이가 나타나는 사례는 많다.
예를 들어, 테오필린을 함유한 천식약(유니필)은 저녁 식사 뒤에 복용하는 게 좋다. 이른 아침에 저하된 폐 기능으로 인해 천식증상이 악화될 때 약물 혈중 농도가 최고치에 이르게 되어 제때 약효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폐 기능뿐만 아니라 혈압, 혈당치도 24시간 주기적으로 변한다. 인간은 낮에 주로 먹고 활동하며, 밤에 자는 것처럼 생체시계를 따라 변화하는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을 가지고 있다. 앞서 천식의 경우를 예로 든 것처럼 질병의 증상도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에 따라 항고혈압약을 아침에 복용하는 게 유익한 경우가 있고 저녁에 복용하는 게 나은 경우가 있다.
보통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은 매일 아침에 복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만성신장질환 등으로 밤중에도 떨어지지 않는 환자의 경우 고혈압치료약을 자기 전에 복용하도록 권하는 경우가 있다.
서방형 칼슘채널차단제처럼 저녁에 자기 전에 복용하여 아침녘에 최대 효과를 나타내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항고혈압약도 있다. 이런 약을 복약 상담할 때는 환자가 복용 시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봐야 한다.
감염성 질환의 치료에 있어서도 약과 시간의 관계가 중요하다. 단순포진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생기는 구순포진(cold sore)이 자주 나타나는 경우 항바이러스제 크림을 쓰면 증상 지속기간이 0.5일 정도 단축되는데, 이 때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약을 증상 초기 1시간 내에 신속하게 발라줘야 한다.
요즘 매스컴에 화제로 자주 오르는 대상포진의 경우도 증상이 나타나고 72시간 내에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통증과 증상지속기간을 줄일 수 있지만 이보다 늦게 쓰면 효과가 떨어진다.
약 사용이 빠를수록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캐나다에서는 어린이 중이염에 항생제를 쓰는 경우, 나이가 2살 이상인 경우에는 48-72시간 정도 지켜보는 방법(wait and see)이 종종 사용된다.
처방을 받고 나서 잠시 기다렸다가 약을 탈 것인지 보호자가 결정하라는 것인데, 염증이 저절로 나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이다. 감기나 비염 증상에 무조건 처음부터 항생제를 쓰지 않고 1주일 정도 기다렸다가 증상이 계속 악화되거나 좋지 않을 때에 한하여 사용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약과 시간의 관계에 관한 한 여전히 모르는 게 더 많다. 장기간 약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특정한 약을 복용하고 나서 하루 뒤, 일주일 뒤, 한 달 뒤에 어떤 증상 변화가 나타날 수 있으며, 어떤 부작용을 경험할 수 있는가는 중요한 정보이다.
가령 금연을 계획 중인 사람이 금연보조제 복용 1, 2, 3주에 무엇을 경험할지 미리 알면 약 복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 이러한 정보는 시간 순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으며, 약 사용 초기에 나타나는 부작용과 장기간 사용시 나타나는 부작용, 복용 기간과 관계없이 가능한 부작용에 대해서도 정리가 부족하다.
약 사용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환자들의 네트워크가 발전하면서 약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을 것인가, 미래 언젠가는 약효와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시간 순으로 정리해서 볼 수 있을 것인가. 시간만이 답을 알려줄 것이다.
2018-04-25 09:40 |
[약사·약국] <7> 역발상의 당뇨약
아껴야 잘 산다고 뭐든 버리려고 내놓으면 다시 들고 오는 사람이 있다. 우리 몸이 딱 그렇다. 인체는 당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 신장에서 걸러서 소변에 버려지는 포도당을 남김없이 100% 재흡수한다. 이렇게 하여 버리지 않고 다시 거둬들이는 포도당이 하루에 180그램이다.
칼로리로 치면 밥 두 공기 반에 해당하는 양이다. 칼로리 과잉을 걱정하는 현대인에게는 버리고 싶은 유혹이 생길만한 분량이지만, 식량이 부족하던 과거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체가 매일 이만큼의 포도당을 소변으로 버리고 다녔다면 생존이 가능했을까 싶은 분량이다.
신장 사구체에서 걸러진 포도당은 근위 세뇨관에서 다시 재흡수된다. 이때 80-90%는 SGLT2라는 수송체 분자를 통해, 나머지 10-20%는 SGLT1를 통해 재흡수된다. 혈당이 증가하여 재흡수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가면 소변으로 포도당이 흘러나간다.
보통 혈당이 180-200mg/dL에 이르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문제는 당뇨병에 걸렸을 때다. 이 경우 핏속에 돌아다니는 당이 워낙 많으니까 소변으로 걸러져나가는 포도당의 양도 늘어나는데, 인체는 여기에 나쁜 방향으로 적응한다.
더 많이 버려지는 포도당을 어떻게든 다시 들고 오려고 재흡수 수송체 SGLT2를 더 많이 만들어낸다. 높은 혈당치를 낮추기 위해 어떻게든 핏속의 포도당을 덜어내면 좋으련만, 아끼는 데 익숙한 우리 몸은 어떻게든 포도당을 다시 들고 오려고 애쓰는 셈이다.
SGLT2 억제제는 인체가 소변으로 버린 당을 다시 가지고 들어오는 걸 막아서 혈당치를 떨어뜨리는 약이다. 소변 속 당의 양은 도리어 많아지니까 역발상처럼 들리지만, 췌장에서 분비하는 인슐린의 작용과 관계없이 혈당을 낮춘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더해 체중을 감소시키고 혈압도 약간 떨어진다. 체중이 감소하는 것은 이 약을 복용하면 평소보다 소변으로 버리는 당의 양이 늘어나기 때문인데, 포도당의 양으로 치면 하루 70그램, 칼로리로 환산하면 280kcal 정도가 된다. 하루 밥 한 공기만큼을 줄이게 되는 셈으로 체중이 2-3kg 감소하지만 그 이상 줄어들진 않는다. 이에 더해 늘어난 소변 속 당으로 인해 삼투성 이뇨제와 같은 효과가 나타나 혈압도 조금 낮아진다.
신약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약 무슨 약이냐, 당장 나도 그 약을 써봐야겠다 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새로운 약일수록 임상 경험과 부작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SGLT2 억제제에는 소변량 증가와 소변횟수 증가, 생식기 진균 감염, 요로 세균 감염과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소변으로 배출되는 포도당이 미생물 감염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드물지만 당뇨병성 케톤산혈증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이 약을 써도 별 효과를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이들 약은 신장에 작용해서 효과를 나타내는 약이다보니 신장기능이 심하게 저하된 환자들에게는 효과를 나타내기 어렵다. 당뇨병환자, 특히 혈당조절이 어렵거나 심혈관질환을 동시에 가진 환자에서는 원래 감염과 궤양 위험이 높다.
그런데 SGLT2억제제 중에서도 카나글리플로진에 의한 발가락 절단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이 명확하게 약물에 의한 것인지 인과관계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파글리플로진와 엠파글리플로진 등 다른 SGLT2억제제를 이용한 임상시험에서는 이러한 위험이 높아지지 않았다.
아직 임상 자료가 축적되지 않은 만큼, 다른 SGLT2억제제에서도 동일한 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SGLT2 억제제의 개발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숨어있다. 역발상처럼 당뇨를 심하게 만들어서 당뇨병을 치료하는 이 약이 개발된 것은, 드물지만 유전적 변이로 SGLT2 수송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심한 당뇨를 경험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 덕분이다.
이들에 대한 수십 년의 추적 연구 결과 소변 속 당 배출 외에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나 합병증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를 당뇨병 치료의 타겟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신약의 개발만큼 다양한 학문 간의 협력과 융합이 필요한 분야도 없다. 알약 하나를 삼킬 때야말로 우리가 서로 생명을 빚지고 도와가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가장 좋은 순간이다.
2018-04-11 09:40 |
[약사·약국] <6> 타이레놀서방정 퇴출의 진실
얼마 전 유럽에서 아세트아미노펜(상품명:타이레놀) 서방정의 판매가 중지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대한민국 식약처는 3월 13일자로 안전성 서한을 배포했고, 미디어에 관련 뉴스가 쏟아졌다.
대부분의 기사는 정확한 사실을 보도했지만, 팩트에 기자의 상상력을 더한 일부 기사는 대중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편의점 타이레놀은 안전하다, 서방정은 오용 위험성이 크다는 식의 기사는 명백한 오보였다.
우선 사실만 짚어보자. 유럽집행위원회(EC)가 아세트아미노펜 함유 서방형 제제의 유익성-위해성 검토 결과, 위험성이 유익성을 상회한다고 판단하여 판매 중지를 결정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비슷한 뉴스를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든다.
이번에 유럽집행위원회가 EU 회원국 전체에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20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30일 스웨덴 독극물정보센터에서 처음 문제를 제기했고, 2017년 9월 약물감시 위험평가 위원회(PRAC)가 문제를 검토하여 권고안을 내놓았으며, 제약회사들이 재고를 요청함에 따라 다시 한 번 문제를 조사한 뒤에 원래의 권고안을 확정한 게 지난 해 12월이었다. 이 때마다 뉴스에 아세트아미노펜 서방정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렸다.
이제 오보를 하나하나 따져보자. 일부 매체는 약효가 느리게 나타나 과잉 복용할 위험이 커서 이번에 유럽에서 서방정을 퇴출했다고 보도했다. 일리 있게 들리지만 잘못된 추정이다. 아세트아미노펜 서방정은 절반은 빨리 녹고 절반은 서서히 방출되는 방식의 방출제어형(modified-release) 제제다.
골관절염 환자 403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이중맹검 임상시험에서 아세트아미노펜 서방정(665mg)을 2정씩 하루 3회 투여했을 때와 일반정제(500mg)을 2정씩 하루 4회 투여했을 때 통증 완화 효과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약효가 적다고 생각해서 서방정을 과잉복용할 위험이 크다고 말할 근거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편의점 타이레놀은 안전하다는 기사는 오보 중의 오보였다. 이번에 유럽에서 아세트아미노펜 서방정이 퇴출된 것은 서방정이 일반정제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다. 약국은 아세트아미노펜 일반정제와 서방정을 모두 취급하며, 편의점에는 일반정제만 있다.
일반정제이든 서방정이든 아세트아미노펜은 정해진 용법대로 복용하면 안전하고, 이를 넘어서면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애초에 쟁점은 누군가가 약을 과잉복용하여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 치료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에 문제를 제기한 곳이 스웨덴 독극물정보센터였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식약처 안전성 서한은 이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 “서방형 제제의 약물 방출 방식이 일반 제제와 상이하여 과다 투여시 실현가능하거나 표준화된 관리 방법이 확립되지 아니하여 위험성이 유익성을 상회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쉽게 말해 약물 중독으로 응급실에 입원한 환자를 치료할 때 그 환자가 과용한 약이 서방형이냐 일반정제냐에 따라 흡수패턴과 약효지속시간이 달라지고 따라서 치료 방식도 달리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이를 효과적으로 구별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아세트아미노펜 중독 치료의 표준 프로토콜이 일반정제를 삼킨 경우만을 염두에 두고 세워졌다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됐다. 식약처가 안전성 서한에서 보충 설명한 내용도 사실이다. ‘아세트아미노펜’ 함유 서방형 제제는 현재 미국, 캐나다 등 외국에서도 사용되고 있으며, 유럽 의약품청(EMA)는 권장량에 맞게 적절하게 복용하였을 경우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으로 인한 유익성이 위험성을 상회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럽 의약품청에서 이번에 서방정을 퇴출하기로 했지만, 이미 약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은 원래 용법에 따라 안전하게 소진해도 된다고 권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방정 퇴출은 알약을 더 꺼내기 어렵게 안전 포장한 것과 마찬가지다. 복용회수가 적은 서방정이 더 편리할 수 있겠지만, 오남용시 치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그 편의성을 희생한 셈이다.
가벼운 두통에 서방정보다 일반정제가 낫다. 한 알에 들어있는 아세트아미노펜의 함량이 625mg으로 하루 최대 6정까지만 복용하도록 되어있어서 한 알에 500mg이 들어있어 하루 최대 8정까지 복용하도록 하는 일반 필름코팅 정제와는 차이가 있다.
동일 약성분이 들어있는 감기약, 근육통약, 해열진통제를 중복 복용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약국에는 이런 주의점을 설명해주는 약사가 있고, 편의점에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유럽발 아세트아미노펜 서방정 퇴출 뉴스에 숨은 진실이다.
2018-03-28 09:07 |
[약사·약국] <5> 약과 공감
약은 음식과 다르다. 음식은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다. 맛, 향, 식감, 모양새 등의 여러 관점에서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쉽다. 약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의 약에 대한 느낌이나 경험에 대해서는 공감하기가 참 어렵다. 약사로 일한 지 벌써 21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항우울제로 사용되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를 복용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직접 체험해 본 적이 없다.
항고혈압약, 이뇨제, 고지혈증 치료제나 당뇨병 치료제를 복용해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 약들이 작용하는 원리와 부작용을 배우고 약을 복용해본 환자들을 상담해본 게 고작이다.
약을 복용한 뒤에 이런저런 느낌이 있었다며, 혹시 약 부작용인지 물어올 때마다 되새겨보는 사실이다. 나는 그 약을 복용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우선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보아야 한다. 공감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용설명서에는 약 부작용이 깨알같이 적혀있지만, 환자가 호소하는 부작용이 리스트에 빠져있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이 때는 약이 작용하는 기전에 대한 지식이 환자의 경험을 잘 듣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드름이 많이 난 10대 청소년이 알레르기 비염 복합제를 먹고 얼굴에 피지가 늘어났다며 약 부작용인지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약이 음식과 같다면 그냥 약을 한 알 먹고 몇 시간이 지나면 얼굴이 기름지게 되는지 여드름 면포 수가 늘어나는지 볼 수도 있겠지만, 약 부작용이 누구에게나 나타날 가능성도 낮을뿐더러, 부작용이 있는지 보겠다고 알레르기비염이 없는 사람이 약을 먹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약성분과 작용기전을 알면 추론이 가능하다. 복합제 속에 들어있는 슈도에페드린은 교감신경 흥분제이다. 수용체에 직접 작용하기도 하지만 저장된 노르에피네프린을 밀어내는 간접적 방식으로 작용한다. 약으로 교감신경이 흥분되면 땀 분비가 촉진되고 땀구멍도 커진다.
약 복용 후에 거울을 보면 땀구멍이 유난히 커 보인다는 이야기가 간혹 들리는 이유다. 드물지만 약 복용 뒤에 식은땀이 나는 것도 비슷한 기전이다. 하지만 피지 분비는 주로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피지분비가 늘어난 건지, 아니면 땀구멍이 커져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약의 작용기전은 부작용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다.
전립선 비대증 증상완화를 위해 알파차단제를 복용 중인 환자가 눈에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이 경우에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부작용 리스트 상에 시력 감소 또는 흐려보임과 같은 시각이상 증상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눈에 느낌이 이상하다는 식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약사로서 우리의 역할은 나열된 부작용 중에서 환자가 이야기하는 증상을 찾는 게 아니다. 우선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정말 약의 부작용인지, 그냥 느낌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나중 일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약리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전립선비대증에 사용되는 알파차단제는 홍채에 있는 알파수용체에도 작용하여 홍채의 수축을 방해하는 홍채긴장저하증후군이라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환자가 호소한 불편감이 홍채 근육이 느슨해진 것과 관련되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일단 눈에 부작용이 보고된 바 있는 약이라면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새로운 약이 정부에서 신약 승인을 받고 시장에 출시되기까지 많은 임상시험과 연구를 거쳐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의 효과가 아닌 부작용을 모두 알기에는 임상시험 참여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효과는 100명 중에 절반 이상에게 나타나는지 보는 것이라면 부작용은 만 명, 십만 명 중에 한 명에게만 나타나도 부작용이다. 부작용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약 복용을 기피하는 환자들이 걱정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약을 열심히 복용 중인 환자가 약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할 때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약을 상담할 때 약사는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기억해야 한다. 상담의 기본은 공감이다.
2018-03-14 09:40 |
[약사·약국] <4> 피린계특이체질
“피린계 특이체질”이란 정확히 무슨 뜻일까? 간단해보이지만 의외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우선 피린계 약물이 무슨 뜻인지부터가 애매하다. 피린계 약물은 아미노피린, 안티피린, 이소프로필 안티피린처럼 피린으로 끝나는 진통제를 통칭하는 용어다.
피라졸론이라는 화학구조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으므로 피라졸론 계열 진통제라고 불러야 더 정확한 명칭이지만, 발음이 어렵다보니 대신 피린계 약물이라는 말로 굳어졌다.
안티피린은 피린계 약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약이다. 1884년 독일의 화학자 루트비히 크노르가 개발한 것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화학 합성된 진통제이다. 그런데 안티피린은 본래 일반명이 아니라 상품명이다.
해열제를 뜻하는 영단어 antipyretic에 약 이름이라는 걸 표시하는 -ine을 합쳐서 만든 상품명이다. (이 약의 국제일반명INN은 phenazone이다.) 1929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동인의 <동업자>라는 소설에 안티피린 이야기가 나오는데, 주인공 홍선생은 철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의사인척 하고 다닌다.
“약은 역시 안티피린과 위산뿐이엇습니다. 어떠한 병에든 食前藥(식전약)으로 안티피린, 食後藥(식후약)으로 위산이엇습니다.”
이런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안티피린이 상당히 잘 알려진 약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후 설피린(다이피론), 아미노피린과 같은 약이 많이 쓰였는데, 피린으로 끝나는 약들이 워낙 인기가 좋아서인지 나중에는 피린계 소염진통제가 들어있지 않은 약에도 끝에 피린이라는 말을 붙여 팔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피린계 소염진통제가 들어있든 들어있지 않든 약 이름에 피린이 들어있는 것들이 많았다. 원래부터 비공식 용어였던 ‘피린계 약물’이 더욱 두루뭉술한 말이 되고 만 셈이다.
자신이 피린계 약물 특이체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모두가 실제로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약국이나 병원에 가서 자신이 피린계 특이체질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대체로 피린계 약물을 복용 후에 피부 발진 또는 두드러기가 생기거나 또는 천식, 만성 비염과 같은 질환이 악화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정말 피린계 특이체질이라면 그 한 가지 계열의 약에만 과민한 것이다. 따라서 피린계가 아닌 다른 계열의 소염진통제는 복용해도 무탈해야 맞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환자 본인은 피린계 약물 특이체질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피린계가 아닌 다른 소염진통제를 복용해도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가성 알레르기 반응이다.
가성 알레르기 반응은 알레르기와 증상은 비슷하지만 진짜 알레르기로 인한 ‘면역 반응’이 아니다. 때문에 ‘가성’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이다. 소염진통제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가성 알레르기 반응은 약에 의해 COX-1 효소가 억제되면서 반대로 염증성 물질인 류코트리엔이 축적되어서 생겨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두드러기가 나거나 만성 호흡기질환이 악화된다. 가성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이라면 아세트아미노펜처럼 COX-1 억제 효과가 미약한 약은 대체로 별 문제없이 복용할 수 있고, 세레콕시브처럼 COX-1은 건드리지 않고 COX-2만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약도 복용이 가능하다.
드물지만 진짜 피린계 약물에 특이체질인 사람도 있다. 이들이 모르고 피린계 약성분이 들어있는 알약을 복용했다가는 몇 분 만에 두드러기와 안면부종, 구역, 구토, 저혈압에 심하게는 기절하거나 아나필락시스와 같은 응급상황을 경험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건 정말 면역반응이다. 따라서 피린계 약물이 아닌 다른 계열의 소염진통제를 사용했을 때는 아무 반응 없이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집에서 시험해볼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특정계열의 소염진통제에만 진짜 알레르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반 소염진통제에 가성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것인지 판별은 알레르기 전문의가 상주하는 병원에서만 가능하다. 진단을 받고 나서는 자신이 그러한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카드를 항상 소지하고 다녀야 한다.
피린계 특이체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정말 피린계 약물에 알레르기인지 아니면 일반적 소염진통제에 가성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의 수는 많지 않다. 누군가 피린계 특이체질이란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귀를 쫑긋 세워야할 이유다.
2018-02-28 09:42 |
[약사·약국] <3> 탈리도마이드의 부활
1957년에 독일에서 탈리도마이드라는 새로운 수면제가 시판됐다. 동물 실험 결과 이 약은 아주 안전해보였기에 처방 없이 구입이 가능한 일반약으로 판매되었다.
과거 언론에 보도된 기록을 보면, 당시 이 약이 수면 효과는 뛰어나면서도 다음날 몽롱해지는 부작용이 없어서, 잠에서 깬 뒤에도 머리가 말끔하다는 이유로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유럽 각국에서 매일 밤 이 백만 명이 탈리도마이드를 먹고 잘 정도였다. 그런데 탈리도마이드(상품명: 콘테르간)가 출시되고 나서 당시 서독의 손과 발이 없이 태어나는 기형아 출생률이 백만 명에 한 명에서 천 명에 2명꼴로 크게 늘어났다.
마침내 1961년 11월에 이 약이 문제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졌다. 이미 늦었다. 세계 전역에서 피해자 수가 10,000명에 달했다. (주로 영국, 독일에 피해가 컸고, 일본의 경우도 300명이 넘었다. 다행히 당시 우리나라에는 이 약이 시판되지 않았다.)
탈리도마이드 사태가 벌어진 1950년대 말까지만 해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약품 규제는 지금보다 느슨했다. 특히 독일 의약품 시장은 개방적이어서 약품의 효능이나 안전성에 대해 자세한 증거 자료를 제시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탈리도마이드의 경우, 생쥐를 대상으로한 독성 실험 결과로만 보면 대단히 안전해보였다. 생쥐에게 체중1kg당 5000mg을 먹여도 죽지 않을 정도라니, 소금의 치사량과 비교하면 1600배를 투여해도 될 정도로 안전한 약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원숭이 실험에서는 임신 초기 투여시 예외 없이 기형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때는 늦었다. 역사상 최악의 약화사고로 불리는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이미 벌어진 뒤였다.
탈리도마이드가 기형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몇 년이 지나 놀라운 반전이 생겼다. 한센병과 다발성 골수종과 암등의 치료에 이 약이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1964년 예루살렘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센병 치료 과정에서 심한 피부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탈리도마이드를 처방하였더니 증상이 놀랍게 향상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탈리도마이드가 비록 악명 높은 약물이었지만 진통효과가 높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고, 대상이 남자환자였기 때문에 시험 삼아 투여해보았더니 의외로 상당한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워낙 큰 문제를 일으켰던 약이라 공식 승인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1998년에 미국 FDA는 탈리도마이드(상품명: 탈로미드)를 한센병환자의 합병증 치료제로 승인했다.
임산부나 가임기 여성에게는 사용하지 않으며, 남성이 복용 시에는 반드시 피임하도록 하는 조건이었다. 물론 여전히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가급적 탈리도마이드보다는 다른 약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뒤이어 2006년에는 탈리도마이드가 항암제로 승인됐다. 탈리도마이드가 태아의 기형을 유발하는 기전을 알게 된 덕분이었다. 이 약은 임신 초기 태아의 팔과 다리가 생성되는 시기에 필요한 새로운 모세혈관이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혈관신생억제효과)가 있어, 손과 발이 결손되는 기형을 유발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암세포는 빠르게 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주변에 신생혈관을 만들어서 영양을 공급받으려는 성질이 있고 이렇게 주위에 모세혈관이 새로 생기는 걸 막으면 암세포 사멸을 유도할 수 있다. 엄마 뱃속 태아에게는 엄청난 비극을 일으킬 수 있는 약 부작용을 역으로 항암 치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날의 비극을 잊을 수는 없다. 새로 승인된 용도로 사용될 경우에도 탈리도마이드 이용에는 여러 제한이 따른다.
여성은 복용에 앞서 4주 전부터 복용 4주 뒤까지 최소 두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피임해야하고 남성도 복용 시점부터 4주 동안 성관계를 가질 경우 반드시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 부작용에 대한 지식이 없었을 때는 몰라도, 이제 알고 있는 이상 최대한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부작용 없이 효과만 강력한 완벽한 약은 세상에 없다. 그렇기에 약의 사용은 항상 저울질에 따른다. 치료 상의 유익이 부작용의 위험보다 훨씬 더 클 경우에는 부작용을 알면서도 사용해야 할 경우가 있다.(항암제로서 탈리도마이드) 반대로 치명적 부작용 위험이 예상될 경우라면, 효과가 있더라도 해당 약의 사용을 피해야 한다.(수면제로서 탈리도마이드) 비극을 야기한 탈리도마이드의 부활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이다.
2018-02-14 09:42 |
[약사·약국] <2> 약학은 과학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동안 항생제는 끝까지 약을 복용하는 게 상식이었다. 캐나다 약국에 근무할 때로 되돌아가보면, 항생제 조제 시에는 항상 약병에 “끝까지 복용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보조라벨 스티커를 붙이곤 했다.
중도하차하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생길 위험이 커질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지난 2017년 7월에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리뷰 논문이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실렸다. 항생제를 끝까지 복용하라는 것은 잘못이며, 도리어 내성을 키울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논문의 저자인 영국 브라이튼 서섹스 의대 마틴 르웰린 교수는 감염성 질환의 전문가이며, 그의 주장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반드시 끝까지 치료해야 하는 결핵 같은 질병은 예외지만, 다수의 감염성 질환은 항생제를 오래 복용할수록 내성균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가령 대장균이나 황색포도상구균은 평소에도 우리 몸 여기저기에 살고 있지만 감염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들 세균이 원래 거주지를 떠나 장, 요도, 핏속과 같은 다른 곳으로 침투할 때 문제가 생기고, 항생제가 필요하다.
항생제를 오래 쓴다고 세균을 모조리 박멸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세균이 항생제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성을 갖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르웰린 교수는 입원 환자의 경우라면 병원에서 항생제를 중단해도 좋을지 검사결과에 따라 결정할 수 있지만, 통원 환자는 증상이 좋아지면 항생제 복용을 중단하는 게 낫다는 매우 과감한 주장을 펼쳤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들 연구진이 너무 앞서 갔다고 생각한다. 항생제를 가급적 짧은 기간 사용하는 게 내성균 발생을 막는 데 도움이 되긴 할 테지만 복용기간을 제대로 정하려면 환자의 증상 완화 외에도 더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각각의 감염성 질환에 대해 최적의 항생제 사용기간을 정하기 위한 과학적 근거가 아직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다 나은 것 같다는 환자의 주관적 판단으로 약 복용을 멈추는 게 낫다는 르웰린 교수의 주장에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반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들이 항생제 치료기간이 가능한 한 짧을수록 좋다는 점에 동의한다.
항생제를 실제로 복용해야 하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복잡하다.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머리가 아플 수 있다. 그러니 간단히 정리해보자. 병원에 찾아가서 항생제를 더 달라고 조를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증상이 좋아졌다며 내 맘대로 항생제를 끊는 것도 곤란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항생제가 아직 남아있는데 의사가 이제 그만 먹어도 좋다고 권고할 수 있다. 그 때는 안심하고 약을 끊어도 된다. 약을 끊어서 내성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 없다. 다시 캐나다 약국 이야기로 돌아가서, 항생제 약병에 붙이는 보조라벨에도 실은 “처방 의사가 다르게 지시하지 않는 한”이라는 추가문구가 더 들어있다.
독감의 전파에 대해서도 전과는 다른 이야기가 들린다. 얼마 전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재채기뿐만 아니라 그냥 숨을 쉬고 있을 때도 옆 사람에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고 한다. 전에는 재채기나 오염된 표면에 접촉을 통해서만 독감 바이러스 전염이 된다고 믿었는데, 그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연구결과가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손을 열심히 씻고, 기침하는 사람들 옆에 있는 걸 피하는 것만으로 독감을 예방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독감의 전파를 막기 위해서는 독감에 걸린 사람들이 가급적 집에서 쉬고 공공장소에 가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굳이 바깥에 나가야만 한다면 (기침을 하든, 안 하든 간에)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한 번의 연구 결과로 가이드라인을 바꿀 수 있지는 않지만, 후속 연구에 대해 눈여겨볼만하다.
약학은 과학이다. 그리고 과학은 진보한다. 수십 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지식이 여전히 옳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잘못된 믿음에 불과했던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 약대를 졸업한 뒤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지식을 최신의 과학지견에 맞추어 업데이트해야 하는 이유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환자는 21세기의 과학지식으로 돕는 게 맞다.
2018-01-31 09:42 |
[약사·약국] <1> 디지털 알약
정재훈 약사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시간 참 빨리도 흐른다. 디지털 알약이라는 장치가 의료기기로서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승인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2012년 7월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 2015년 9월에는 오츠카제약에서 조현병 치료제인 아리피프라졸 정제에 이 센서를 탑재하여 FDA에 신약 승인을 신청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가 했더니 마침내 작년 11월에는 승인을 받았다는 발표가 나왔다.
디지털 알약은 쉽게 말해 일반 정제에 약 자체에 모래알 크기의 아주 작은 센서를 붙여서 만든 정제이다. 알약을 삼키면 약성분이 녹는 동시에 구리, 마그네슘, 실리콘으로 만든 센서가 위액과 반응하여 전기 신호를 만들어낸다.
환자의 왼쪽 가슴에 붙여둔 웨어러블 패치가 이 신호를 잡아서 스마트폰 앱으로 기록을 전송한다. 약 복용날짜와 시간은 이렇게 자동적으로 기록되지만, 여기에 더해 환자는 자신의 기분을 추가할 수 있고, 그 날의 휴식시간과 활동량도 함께 기록이 가능하다.
환자가 약을 복용한 날과 복용하지 않은 날 환자의 기분, 휴식시간, 활동량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앱을 통해 한눈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제약회사들이 디지털 알약 개발에 앞장서 나서는 것은 의사가 처방해준 대로 약을 복용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의료적 비용 때문이다. IMS헬스(현 IQVIA)의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환자들이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아서 생기는 재정적 손실은 연간 1050억 달러(약 111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FDA가 조현병 치료제에서 디지털 알약을 처음 승인한 것도 같은 이유다. 조현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은 환자의 병이 깊어져 입원이나 응급실 방문과 같은 추가적 의료비용이 종종 발생한다.
사실 매일 습관적으로 약을 복용하다보면, 약을 복용했는지 안 했는지 본인 스스로도 혼동하기 쉽다. 차를 주차한 다음 문을 잠궜는지 안 잠궜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것과 비슷하다.
디지털알약은 약을 잊지않고 복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당장 사생활 침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환자는 앱을 통해 알약 복용 추적 기능을 공유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의사에 더해서 가족 구성원 등 추가로 4명, 도합 5명까지 환자가 약복용을 하는 시간과 날짜에 대한 데이터 접근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다.
물론 환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환자가 데이터 공유를 즉시 차단할 수도 있도록 되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브라더처럼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해외 언론매체들은 디지털 알약으로 첫발을 내딛은 새로운 의약체계가 생물의학적 빅브라더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디지털 알약이 환자로 하여금 강압적으로 약을 복용하도록 하게 만드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보험사에서 환자가 약복용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적용할 수도 있을 텐데, 좋게 보면 환자의 복약이행률을 높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 환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막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할 만하다. 첫 번째로 승인된 디지털 알약이 하필 약 복용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은 조현병 치료제인 것도 논란거리다.
다른 한 편으로, 약이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며 불규칙한 약복용이 자신을 어떤 위험에 빠뜨리는지를 환자에게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복약이행률을 높이려는 연구자들도 있다. 환자가 약이 필요한 이유를 알고 나면 더 잘 복용할 거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 또한 사람이 아닌 기계장치를 통해서 이뤄진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존 무어 박사가 개발한 첨비(Chumby)라는 장치는 HIV 치료약이 어떻게 바이러스와 싸우는지 동영상으로 보여주면서 환자가 제때 약을 복용하도록 도와준다.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나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면 어느 날엔가 새로운 기술이 우리 생활 속 깊숙이 들어와 있을 것이다. 전화기를 하나씩 들고 다니는 건 꿈속의 이야기였던 시절이 분명히 존재했는데, 이제는 그 전화기가 우리의 얼굴과 지문을 인식하고, 말을 알아듣는 시대다.
비트코인으로 널리 알려진 블록체인 기술을 의약품 배송체계와 의약정보 관리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벌써부터 활발하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은 없다. 내가 가만히 있든 말든 세상은 변해간다. 약사로서 우리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멈추어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
2018-01-17 09: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