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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42> 혼자서도 잘 산다구요?
누구나 늙을수록 누군가 함께 놀아주길 바란다. 여기에서 ‘누군가’란 단연 손주, 자식, 며느리, 사위 같은 가족을 말한다. 젊어서는 혼자 사는 게 좋을 때가 많다. 혼자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혼밥’ ‘혼술’을 즐기는 젊은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젊은이가 모르는 게 한가지 있다. 늙으면 본의 아니게 몸이 아프고, 우울해지고, 외로움을 타게 된다는 사실이다. 또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그랬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말씀하시면 ‘또 시작이신가’하고 귀찮게만 생각했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나는 참 무심한 자식이었다.
의사도 자신이 병을 앓아 보고 나서야 환자를 살갑게 치료한다고 한다. 비로소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젊은이가 자기가 경험해보지 못한 노년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얼마 전 유행하던 노래에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란 가사가 있다. 늙은이는 젊어 봐서 젊은이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젊은이는 늙어보지 못해서 늙은이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내용이다.
아무튼 늙은이는 이런 저런 이유로 누군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식보고 그래 달라고 하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우선 젊을수록 바쁜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손주들도 학원 다니느라 할아버지 할머니와 놀아 줄 시간이 없어졌다. 어쩔 수 없이 늙은이는 스스로 자신의 아픔과 외로움을 감당해 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대개 교양(敎養)있는 사람일수록 자식에게 덜 의존하려고 노력한다. 교양이란 음악 미술 영화의 감상, 독서, 산책 등처럼 혼자 잘 노는 기술을 말한다. 이런 기술, 즉 교양이 없을수록 자식들이 싫어한다. 자식만 바라보고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늙은이에게 교양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늙은이는 누구나 교양 있게 늙다가 품위 있게 죽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천부적으로 교양이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옛날 시어머니가 흔히 했던 며느리 괴롭히기도 어쩌면 심심해서, 외로워서, 즉 교양이 없어서 할 수 밖에 없었던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소위 교양이 있는 (척 하는) 사람은 이런 행동을 자제하지만, 아무리 교양이 있어도 더 나이를 먹어 몸이 아프거나 우울증 등이 생기면, 내심 자식들이 안 놀아주나 바라게 된다.
다만 겉으로 괜찮은 척, 교양 있는 척, 위선을 떨고 있어서 남들이 잘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아무튼 혼밥, 혼술은 특히 늙어서는 절대 피하고 싶은 못된 생활양식이다.
자식, 특히 손주를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지하게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더니 우리 부부도 정말 아들딸보다 손주가 더 예쁘다. 내리사랑은 하나님의 섭리인 듯 하다.
함께 살며 수시로 손주들의 재롱을 즐기는 우리 부부지만, 우리도 몸이 아플 때면 자식이 그리워진다. 하물며 가족과 가정도 없이 평생을 혼자 사는 독거노인의 삶은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응급 시 119에 전화 걸어줄 사람, 아플 때 병원에 데려다 줄 사람도 없는 노년을 산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그것은 결코 교양 있는 삶이 아니다.
요즘 비혼(非婚)이 무슨 풍조(風潮)처럼 되어 있지만 20-30년 후, 나는 사회가 독거노인 생활의 어려움을 심각하게 인식한 다음에는 다시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하는 시대로 돌아 오게 되리라 믿는다.
2030년이 되면 인류 최초로 평균수명이 90세가 되는 나라가 출현한단다. 그리고 그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란다. 작년에 Lancet이라는 의학잡지에 실린 내용이다. 머지않아 인생의 대부분은 늙은이로서 살게 될 모양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결혼해서 가족과 함께 늙어가기 바란다.
우리 부부도 교양 있게, 자식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인생 말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우리도 어느덧 자식의 따듯한 말과 사랑의 기도가 그리운 나이가 되었다. 늙을수록 자식들, 특히 손주들을 더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다.
2018-02-14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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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41> 13년만의 걷기, 그리고 구세주
2001년 경미한 보행 장애를 겪고 있던 3살짜리 여아 (A양)가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수 차례 입원치료를 받고 국내외 병원을 전전했으나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20세가 된 2012년 7월, 전처럼 재활치료를 받던 중 물리치료사 윤씨로부터 “뇌병변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다시 진찰을 받았다.
의료진은 MRI 사진 등을 보더니 이 병은 ‘뇌성마비가 아니라 도파 반응성 근육긴장이상’이라고 했다. 즉 신경전달 물질과 관련된 효소의 이상으로 주로 소아에게 나타나는 소위 ‘세가와병’이라는 인데, 소량의 도파민을 투여하면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고 대구 병원과는 다른 진단을 내린 것이다.
새로운 진단에 따라 도파민을 투여 받은 A양은 투여 개시 단 1주일만에 스스로 걷게 되었다. 13년을 못 걷던 사람이 1주일 만에 기적적으로 걷게 되다니 기적이 얼마나 감격했겠는가? 지난 13년간이 누워지낸 세월이 억울하게 생각된 A양과 A양의 아버지는 대구의 그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 당시의 의료 기술로는 세가와 병이라고 진단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환자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환자 가족은 이 결정을 수용했다고 한다. 이상은 2017년 12월 6일자 한국일보 기사를 가감한 것이다.
13년 누워있던 세월을 어찌 1억원에 보상받을 수 있겠는가? 100억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 판결은 환자의 삶을 너무 낮게 평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구의 그 병원도 고의(故意)로 오진(誤診)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의료수준으로 세가와 병인 줄 알기 어려워 그리 진단한 것이라니 크게 나무랄 수도 없는 법적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A양에게 있어서 세가와 병이라고 새로운 진단을 내려 준 의료진은 구세주(救世主)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당신의 병은 뇌성마비가 아닌 것 같으니 다른 데 가서 다시 진찰을 받아보라’고 말해 준 물리치료사는 환자를 구세주 앞으로 인도한 복음(福音)의 전도자였던 셈이다.
이 세상의 의료진은, 극히 일부 악덕(惡德)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환자의 치유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모두 선(善)한 의도로 환자 치료에 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A양의 경우처럼 어느 의료진을 만나느냐에 따라 병을 고치느냐 못 고치느냐가 극명하게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환자를 다른 의료진이나 다른 의료기관으로 보내는 것이 선한 의도라고 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가 치료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환자를 붙잡아 둔 결과, 환자의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면 그 의료진의 고집은 더 이상 선의(善意)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문외한(門外漢)들이 어떤 환자에게 섣부른 조언을 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그 조언 때문에 환자가 더 좋은 진료를 받을 기회를 늦추거나 잃게 되었다면 그 조언은 결과적으로 악(惡)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지어 의료진까지도, 환자의 질병이나 건강에 관해 조언을 하거나 의술을 베풀 때에는 늘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행여 나 때문에 환자가 더 좋은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TV를 보면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단정적인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행여 그들의 조언 때문에 시청자들의 건강이 훼손되지 않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며칠 전 교회에서 ‘왜 예수님만을 구세주라 하는가?’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나에게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영육(靈肉)을 살려 줄 진정한 구세주 단 한 명이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들렸다. 선한 의지를 가진, 그러나 환자를 살릴 능력이 모자라는 의료진을 모두 구세주라 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다.
새 해 아침, 물리치료사의 복음을 경청했던 A양처럼, 나를 구세주 앞으로 인도하는 진정한 복음에 더욱 귀와 마음을 열고 살기를 다짐해 본다. 근하신년(謹賀新年)
2018-01-31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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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40> ‘식후 30분’ 무용론 유감
2017년 9월 27일 서울대병원은 그 동안 ‘식후 30분’에 먹으라던 약의 복용 규정을 ‘식사 직후’로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식후 30분’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며, 식약처의 허가사항에도 ‘30분’이라는 기준은 없기 때문이란다.
나는 환자가 정확히 식후 30분에 약을 복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나 자신도 식후 30분 맞추려다가 복용을 잊어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서울대 병원의 조치가 ‘30분 지키려다가 복용을 잊어먹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치일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식사 직후나 식후 30분이 정말로 약물의 흡수면에서 동일하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특히 약물요법의 최적화를 공부하는 약학인들이 이렇게 인식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래서 오늘은 이 문제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음식물을 먹으면 우선 위내용배출시간(胃內容排出時間, gastric emptying time: 위 안에 들어있는 물질이 소장으로 내려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연장된다. 음식물을 반죽하고 소화시키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이 연장되면 식사 직후에 먹은 약이 위장 내에 오래 머무르기 때문에 약에 따라서는 위액에 의해 분해된다. 또 약의 흡수부위인 소장(小腸)에 늦게 도달하기 때문에 약효가 늦게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타이레놀 정은 굶고 먹으면 30분 이전에 최고 혈중농도가 나타나지만 아침 식사 후에 복용하면 2시간이 지나서야 최고혈중농도가 나타난다.
식사, 특히 밥을 먹으면 위장관 내액(內液)이 밥의 연화(軟化) 과정에 사용되기 때문에, 약물의 붕해(崩解, 부스러짐)나 용해(溶解, 녹음)에 사용될 위장관 내액이 부족해져 약물의 흡수가 지연될 우려가 있다. 또 음식물은 위장관 내용물의 점도(점도, viscosity)도 증가시킨다.
그러면 위장관 내에서 약물의 확산속도(擴散, disffusion)가 낮아져 약물의 흡수가 낮아지기도 한다. 마치 물이 들어 있는 비이커에 잉크 한방울을 떨어트리면 금방 확산되어 비이커 기벽(器壁)에까지 잉크가 도달하지만, 비이커에 죽을 담아 놓은 경우에는 좀처럼 비이커 기벽에까지 잉크가 퍼지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밥을 먹은 직후의 소장 안의 상태는 비이커에 죽을 담아 놓은 상태와 비슷해 지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약물이 흡수 부위인 소장벽에까지 확산되지 못하고 분해되거나 대변으로 나가기 쉽게 된다. 즉 흡수의 속도와 양이 감소하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도 흡수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고(高)지방식을 하면 담즙분비가 촉진되기 때문에 담즙에 의해 녹는 grisefulvin(먹는 무좀약)같은 약물의 흡수를 촉진한다. 일반적으로 설탕은 약물의 흡수를 지연시킨다. 술은 위장관 혈류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용해를 촉진하기 때문에 어떤 약물의 약효를 빠르고 강하게 만들어 준다.
자몽 주스를 계속해서 마시는 사람이 고혈압약을 먹으면 주스를 안 마신 사람보다 4배 이상 혈중약물농도가 높아진다. 자몽 주스가 약물을 분해하는 효소의 역가를 낮추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첨언하자면 음식물뿐만 아니라 제제(製劑)를 만들 때 어떤 첨가제를 얼마나 사용했느냐에 따라 약의 흡수가 현저하게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약의 성분과 함량이 같다고 해도 제제 설계에 따라 약효에 차이가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주목하여 이런 변동요인들을 엄격하게 컨트롤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을 제제학 또는 약제학(藥劑學)이라고 한다.
요컨대 ‘식후 30분’은 ‘식사 직후’와 위장관 내 상황이 동일하지 않으므로 약물의 흡수에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해야 한다. 엄격한 척 30분을 고집하다 약 먹기를 잊어먹는 문제가 더 심각하기 때문에 서울대 병원이 ‘식후 30분’을 ‘식사 직후’로 바꾸었을 것으로 짐작이 가지만, 이를 모든 약, 모든 음식에 대해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진리’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이번 조치가 행여 약학이나 약물요법학 발전에 역행하는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2018-01-17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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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39> 아버지
1. 어렸을 때 집 근처에 있는 국민학교에 다녔던 박동규(서울대 명예교수)는 어느 날 하교(下校) 길에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 손을 잡고 오면서 아들은 오늘 쪽지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고 자랑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대견해서 길 옆에 있는 빵집에 데리고 들어 가 빵 한 개를 사 주셨다.
얼마 후 아들은 하교 길에서 다시 아버지를 만났다. 그날은 쪽지 시험에서 100점을 못 맞아 다소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아버지 손을 잡지 못하고 몇 발자국 뒤에서 아버지를 따르면서 저번에 아버지가 빵을 사 주셨던 가게를 흘깃거렸다. 그 때 아버지가 물으셨다. “얘야 오늘은 왜 아버지 손을 잡지 않고 빵도 사달라지 않느냐?” 아들은 머뭇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오늘은 100점을 못 맞았거든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돌아서서 아들에게 다가 왔다. 그리고는 와락 아들을 껴 안으며 “얘야,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언제 100점을 맞아야 너를 예뻐하고 빵을 사준다고 했더냐? 너는 100점을 맞던 못 맞던 사랑하는 내 아들이다.” 하시면서 빵집으로 데리고 들어 가 빵을 사 주셨다. 아들은 울었다.
박동규가 장성(長成)하여 서울대학교 강사가 된 어느 날, 하루 종일 강의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는 시내 버스를 탔다. 버스 안은 언제나처럼 퇴근하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그 때 누군가가 자신의 등을 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 보니 아버지였다. 의외였다. 아버지는 ‘서울 시내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버스를 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우연이냐’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가는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자꾸 아들의 배를 만지시는 것이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왜 그러시나 몰랐다. 잠시 후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번 정거장에서 내리자고 하셨다. 아직 집에 가려면 다섯 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 데 말이다.
둘이 내리자 아버지는 “너 배 고프지? 집에 가려면 아직 머니 우리 여기서 같이 국수 한 그릇씩 먹고 가자. 내 주머니에 잔치국수 사줄 돈이 있구나” 하시며 국수를 사 주셨다. 아버지는 아들의 홀쭉한 배를 만져 보시고 아들이 배 고프다는 걸 아신 것이었다. 아버지가 사 주시는 국수를 먹으며 아들은 그만 울고 말았다고 한다.
위 두 이야기는 80이 넘은 박동규 교수가 어떤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아버지 박목월 시인을 회고한 이야기이다. 박동규 교수는 늘 이와 같은 따듯한 이야기로 듣는 이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어 준다. 그는 늘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그의 가슴은 상당 부분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추억으로 채워져 있는 것 같았다. 박동규 교수의 가슴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흘러 넘치고 있었다.
2. 우리 아버지의 사랑은 박목월 시인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고 평생을 근면, 검소, 정리, 정돈하는 삶을 사셨다. 덕분에 나는 담배를 숨어서 피워야 했고, 처자식과 함께 시골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갈 때 택시를 타더라도 아버지 눈에 띄지 않도록 멀리서 내려서 걸었다.
젊은 놈이 담배 값이나 택시비로 돈을 낭비한다고 걱정하실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또 아버지는 깜깜한 밤에라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물건을 잘 정리 정돈해 두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덕분에 나도 정리하는 버릇이 몸에 배었다.
내가 대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네 인생의 방향을 정했느냐?”고 물으셨다. 당신은 이미 스무 살 때 정했었노라고 하셨다. 그날 그날 대충 살고 있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때부터 나도 인생의 진로를 고민해 보기 시작하였다.
삶으로 인생을 가르쳐주신 우리 아버지가 지난 11월 13일, 98세를 일기(一期)로 소천(召天)하셨다. 돌아보면 죄스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남은 몰라도 나는 안다. 나는 솔직히 불효자이었다.
그나마 2014년에 세례를 받게 해 드린 일, 그리고 마지막 6개월을 우리 집에서 다시 모신 일 등이 작은 위로가 된다. 소천하신 순간 나는 아버지 귀에 말씀 드렸다. 아버지,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2018-01-03 0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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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38> ‘한국약학사’ 발간에 붙여
지난 2017년 10월말에 ‘한국약학사’라는 책을 약업신문사를 통하여 발간하였다. 이 책은 내가 2013년 한국약학교육협의회(이하 약교협)의 김대경 이사장(현 중앙대 약대 교수)의 부탁을 받아 40여명의 전문가로 필진을 구성하여 집필 제출한 보고서를 책으로 인쇄한 것이다.
2013년 막상 한국약학사 집필 작업에 들어가 보니 우선 ‘약학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부터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고심 끝에 약학을 ‘약학대학을 중심으로 수행된 교육과 연구’로 좁게 보기 보다는, 제약기업에서의 신약개발 연구는 물론, 약과 관련된 모든 제도와 기술 및 연구까지를 포함해서 넓게 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약학의 범위를 이처럼 넓게 잡고 보니, 기존의 약학사에 대한 선행연구 결과물에만 의지해서는 도저히 「한국약학사」를 집필할 수 없었다. 이는 대부분의 선행연구가 신약개발이나 제약산업을 부실하게 다루는 등 그 관심 범위가 이 책의 범위보다 훨씬 좁기 때문이었다.
천만 다행으로 책의 범위를 구상하는 단계에서, 제약산업과 신약개발의 역사 등을 집필해 줄 수 있는 탁월한 국내외 전문가들을 집필진으로 모실 수 있었다.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단군신화에서 현대 약학까지: 시대별로 보는 한국 약학의 발자취(제1장), 약학교육 및 연구 활동(제2장), 한국약업 100년(제3장), 신약개발의 역사(제4장)의 4개 장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3장과 4장에는 각각 ‘한국제약기술발달사’와 ‘신약개발사’를 첨부하였다.
각 장은 주승재(1), 김진웅(2), 이종운(3), 여재천(4) 님 등이 각각 총괄 집필하였다. 그리고 각 장의 세부 내용은 주경식, 이덕규, 정규혁, 류종훈, 윤기동, 서영거, 문애리, 오유경, 강삼식, 양현옥, 이현선, 이선경, 한효경, 김병각, 홍청일, 안해영, 이범진, 안창호, 한용해, 이은방, 권순경, 이덕규, 백우현, 장문호, 고광호, 이강추, 반재복, 이종욱, 이봉용 님 및 각 제약회사(한미약품, 유유제약, 일동제약, 신풍제약, 동아제약, 대웅제약, CJ 제일제당, 한국유나이트 제약, 종근당)의 신약개발 담당자님들이 집필해 주었다. 주승재님은 발간위원으로서 원고 전반의 오류를 면밀히 점검하였고, 김현정님은 발간위원 회의 업무 전반을 챙겨주었다. 나와 서울대 약대의 김진웅 교수는 발간 작업 전반을 주관하였다.
그러나 솔직히 이 책은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적지 않음을 고백한다. 모름지기 역사서란 단순히 과거의 자료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시대정신을 읽고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 자체도 충실하게 정리해 놓지 못하였다. 변명 같지만 이는 2013년 11월에 약교협에 제출한 ‘한국약학사’ 보고서를, 2017년 어느 날 느닷없이 책으로 발간하게 된 데에 기인하는 바 적지 않다. 즉 갑작스러운 발간으로 인하여 최근 4년간의 약학사가 비어 있고, 완벽한 책자로의 편집에도 만전을 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의 탄생을 바라보는 나의 소감은 기쁨과 함께 부끄러움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이 책이 앞으로 완벽한 한국약학사가 발간될 때까지만이라도 우리나라 약학사 정리에 조그마한 징검다리 역할을 감당해 주는 것뿐이다.
끝으로 「한국약학사」의 발간 필요성을 절감하고 사업을 의뢰하고 후원해주신 약교협의 역대 이사장님들(김대경, 이범진, 정규혁님)의 결단과 재정 후원에 감사 드린다.
또한 광고 협찬을 해 주신 8개 회사 (녹십자, 대웅제약, 동아제약, 동화약품, 보령제약, 유한양행, 종근당, 한미약품) 및 관계자 여러분, 표지 디자인 및 원고 교정작업을 도와주신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출판 작업을 주관하여 주신 약업신문사의 노고에 깊이 감사 드린다.
크고 작은 하나의 작품은 실로 여러분의 노고의 결과물임을 실감하게 된다.
2017-12-20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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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37> 종교약학
일본약사학회(日本藥史學會)가 발행하는 ‘약사학잡지(藥史學雜誌)”의 최근호(Vol. 52, No.1, 2017, 71~73쪽)를 보니, 오쿠다 준(奧田 潤) 교수가 쓴 “인문사회약학 1. 종교약학”이란 제목의 논문이 눈을 끈다.
‘종교약학’은 다양한 인문약학 과목이 개설되어 있는 일본의 약대에서도 생소한 과목이다.
오쿠다 교수는 오래 전 메이조(名城)대학 약학부를 퇴임한 명예교수로 퇴임 전에 제자 한 명에게 윤리학 전공으로 약학박사 학위를 줄 정도로 인문약학(人文藥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분이다. 이하에 그의 논문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1. 종교약학이란?
원래 일본에서는 약을 물질(物質)로 보고, 약학을 물질인 약의 성질, 제조, 분석, 조제, 위생, 약리 및 응용에 대하여 연구하는 자연과학계 학문으로 여겨 왔다. 그래서 약학을 ‘기초약학(基礎藥學)’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약학교육이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면서 약제사가 의료 팀의 일원으로 환자와 빈번하게 접촉하게 되는 것을 고려하여, 상기한 ‘기초약학’ 외에 인문사회과학 계열의 윤리, 약사학(藥史學), 심리학, 사회약학, 약사법규, 커뮤니케이션 등의 과목도 개설하였다.
저자는 인간성이 더욱 풍부한 약제사를 길러내기 위해서 무슨 과목을 더 추가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2012년부터 인문과학(human science)과 사회과학(social science) 중에서 약학과 관련 있는 항목을 뽑아 이에 ‘인문사회약학(人文社會藥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앞으로의 약학교육은 ‘기초약학’과 ‘인문사회약학’이라는 두 기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 종교약학 각론
여러 종교에서는 신(神), 부처, 인물, 약물 및 관련 사상(事象)을 통해 사람에 대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면 관계상 불교와 기독교에 대한 내용의 키워드 또는 골자(骨子)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불교: (1)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과 약사여래 본원경(本願經), (2) 사천왕사(四天王寺)와 시약원(施藥院), (3) 법륭사의 약사여래상과 약물관계 기록, (4) 고승 감진(鑑眞)과 동대사 정창원(正倉院)의 약 장부(藥帳), (5) 고승 영서(榮西)와 차(茶), (6) 서대사(西大寺)의 풍심단(豊心丹), (7) 주방국분사(周防國分寺)의 약사여래상과 약병(藥壺)
2) 기독교: (1) 다미안(약사)과 코스마스(의사) – AD 300년경 아랍 (현 터키)의 쌍둥이 형제로 태어난 두 사람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가 병에 걸리면 치료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303년, 기독교를 탄압하던 로마 황제 디오클레아디누스에 의해 체포되어 익사형, 화형, 화살형 등을 차례로 받았으나 매번 기적적으로 살아 났다.
끝내 단두형으로 죽었을 때에는 그들의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 가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사후에 이스탄불이나 로마 등지에 성자로 추대된 이 두 사람을 추모하는 웅장한 교회가 건립되었다. 이 두 사람을 의약분업의 마중 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2) 중세유럽의 수도원 약국과 약사.
(3) 영국에서 평화와 자유로운 신앙을 찾아 아메리카로 온 셰이커 교도들은 뉴욕의 뉴레바논에서 약초를 재배하였다.
(4) 약사가 된 예수 그림이 유럽에 98점 있다고 한다. 독일 하이델베르그 성에 있는 약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5) 동경대 약대 교수와 일본약제사회 회장을 역임한 이시다떼(石館守三) 박사는 기독교 교인으로서 의약분업을 촉구하는 포스터에 “사랑은 모든 것을 완성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종교는 보상(補償), 통합, 창조와 같은 일반적인 기능 외에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을 부여함으로써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학문의 탄생은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약사에게 ‘종교약학’을 교육하는 것은, 환자를 더욱 사랑해야 하는 변화된 환경에 약사를 적응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일 것이다.
일본의 종교약학 교육! 우리에겐 무엇을 시사하는지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2017-12-06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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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36> 일본약제학회의 “일본 약제사 선언”
금년 6월 30일, 일본약제학회는 2025년도까지 일본도 한국처럼 완전의약분업을 실시토록 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학회 내에 “의료 ZD 및 완전분업” 포커스 그룹(FG)을 만들어 “약제사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다음은 최근 나가이(永井 恒司)교수가 보내온 선언문의 전문(前文)과 본문을 번역한 것이다. *ZD: Zero Defect 무실점 운동.
전문 (前文)
1985년 10월 1일에 창립된 공사(公社, 공익사단법인) 일본약제학회는 1987년 8월 29일 국제약학연맹(FIP)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일본에서도 국제표준 의약분업(=완전분업)이 시행될 수 있도록 추진하는 활동을 해 왔다.
즉 2011년 5월 24일 약제학회의 회장과 명예회장이 당시 후생노동대신을 만나 이 사업의 추진 의사를 밝히고 지원을 부탁함으로써 공식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위에서 말한 전 후생노동대신의 지도편달을 받아 FIP의 100주년 기념대회(2012)에서 “The Internationalization of Pharmacy-Moving away from Medical Doctor’s Dispensing in Japan”이라는 주제로, 그리고 아시아약과대학(藥科大學) 학장회의(AASP, 2014)에서 “Activity for Moving away from Doctor’s Dispensing in Japan”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으며, 일본 내의 각종 심포지엄, 시민 강연회 등에서도 활동해 왔다. 2015년에는 학회 내에 “의료 ZD 및 완전의약분업” 포커스 그룹을 설치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국제 강연 시 “선진국인 일본에서 의사가 조제할 수 있다니?” 하며 놀라면서 질문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때 일본이 선진국 중 유일한 “의사 조제” 용인국이라는 사실에 국제적 관심이 확대되고 있음을 느꼈다. 약(제)사의 신분은 국제 공통이기 때문이다.
유신(維新)을 한 명치(明治) 정부는 1874년 구미 문화 도입의 일환으로 의약분업 포고(布告)를 내렸다. 그 내용은 의제(医制) 41조에 “의사 스스로의 조제를 금지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처방서를 부여함으로써 소정의 진찰료를 받는다”라고 써 있는 것처럼 완전분업이었다.
그러나 이 분업은 겨우 15년간 지속되다가 1889년 약제사의 부족을 이유로 “의사의 조제”를 용인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이를 “임의분업”이라고 불렀다. 그 후 약 130년 동안 “의사의 조제”를 금지했던 분업의 원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 약제사 선언 본문
1. 분업은 “의사는 처방하고 약제사는 조제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의사법 제22조, 치과의사법 제 21조 및 약제사법 제 19조 각각의 예외 규정에 따라 “의사의 조제”가 용인되어 있는 탓에 선진국 중 유일하게 참된 의미의 약제사 자격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2. 분업은 인류의 예지(叡智)에서 유래한 것으로, 의사와 약제사가 서로 독립되어 있는 2인제 더블체크 시스템이다. (일본에서는) 의사(처방전 피 감사인)와 약제사(처방전 감사인) 각각의 기능이 발휘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의약의 안전이 보증되어 있지 않다.
3. 조제는 “처방감사”와 “약제조제”의 2단계로 구성된다. 조제의 주 업무는 “처방감사”로 이는 약제사의 고유한 업무이다. (일본에서는) “처방감사”가 경시되고 “약제조제”가 조제의 주 업무로 인식되는 바람에, 의사라면 조제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여 “의사의 조제”를 용인하게 되었다.
4. 분업이라는 제도와 기구(機構)에 의해, “약제사 Ethics (윤리)”가 약제사 직업의 기반이 되었다. 그 덕분에 “약제사는 시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최상위의 직업”이라는 사회적 평가(Gallup 조사)를 연속적으로 받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분업이 시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약제사의 Ethics” 개념이 생겨나지 못한 실정이다.
추기: 상기한 법의 각 조문을 폐지하면 “의사의 조제”를 금지할 수 있다 한국은 2000년에 “의사의 조제”를 폐지한 의료선진국이다.
2017-11-22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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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35> 깜박이와 젓가락질
오늘은 고집(固執)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자동차 운전시 방향지시등(속칭 깜박이)을 켜지 않고 좌 또는 우회전을 하는 자동차가 너무 많다. 대충 절반 이상의 자동차가 깜박이를 제대로 켜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저 차가 오른쪽으로 갈 줄 알았다면 나도 우회전해서 갈 수 있었는데 공연히 기다렸다가 화가 났던 적이 적지 않다.
깜박이를 켜 주면 다른 차들의 진행이 원활해질 뿐만 아니라 많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깜박이를 켜지 않을까? 혹시 배터리 아낄려고? 아님 자기 가는 방향이 비밀? 도대체 무슨 심보로 깜박이를 켜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또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빨간 신호등이 들어 와도 슬금슬금 정지 대기선을 넘어서 서는 차들이 많다. 그런다고 해서 더 빨리 출발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뭐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이처럼 별 이익이나 의미도 없이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의미 없는 위반’이라고 지적을 해줘도 좀처럼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 나는 이런 것도 일종의 고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할 때 일상(日常) 중의 으뜸가는 고집은 단연 흡연(吸煙)이다.
흡연은 건강에 백해무익하다고 그렇게 광고를 해도 담배를 끊지 않는(또는 못하는) 사람이 많다. 등산이나 골프 같은 운동을 하며 건강을 도모하는 한편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사실 고집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특성이기는 하다. 많은 사람들은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걸 잘 알면서도 게을러서 운동을 하지 않는다. 미련하게도 몸이 아플 때만 겁을 먹고 억지로 운동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게으름도 일종의 고집일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고집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가짓수가 많음을 깨닫게 된다.
사소한 고집 하나를 더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집 애들(두 아들, 두 며느리)은 젓가락질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우리 애들뿐만이 아니다. 돌아보면 젊은 사람 중에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오히려 적어 보인다.
우리 애들에게 지금이라도 제대로 배워보라고 하면 ‘잘 집기만 하면 됐지 꼭 정해진 방식대로 해야 됩니까?’ 하는 표정을 짓는다. 예전에는 ‘젓가락질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며느리로 들이지 말라’는 말까지 있었다는데,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제대로 된 젓가락질을 강조하는 사람의 논리는, 젓가락질을 제대로 배우려 들지 않는 사람의 게으름 또는 고집을 문제 삼는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젓가락질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우리 집 애들(손주 포함)도 나름대로 알콩달콩 잘만 살고 있는 걸 보면, 그 정도의 고집은 용납해 주어야 하는 세상이 된 모양이다. 결국 제대로 된 젓가락질을 강조하는 나의 시대착오적인 고집을 버리기로 작정한지 오래 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집이 세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성격이 부드러워지는 사람도 있다. 98세 잡수신 우리 아버지는 젊어서는 늘 깐깐하게 근면 성실 검소를 강조하는 분이셨다. 그 바람에 이웃들이 우리 집에 별로 놀러 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놀러 온 내 친구들에게 ‘숙제는 다 하고 왔느냐? 학교에서 공부는 잘 하고 있겠지?' 등을 물으시는 바람에 친구들이 질려서 도망가기도 하였다. 그러시던 아버지가 연세가 드시면서 점차 부드러워지셔서 언제부터인가는 자식이나 친척은 물론 이웃들도 전혀 싫어하지 않는 분이 되셨다.
나도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없어지고 성격이 부드러워지기를 희망한다. 플라스틱 제조 시 제품이 너무 딱딱해서 사용 중 부러지거나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통 소량의 가소제(可塑劑, plasticizer)를 첨가하는데, 나도 나이가 들수록 이웃으로부터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성격에 가소제를 조금씩 첨가해 나갈 결심이다. 아마 감사와 겸손이 성격의 가소제 역할을 해 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래도 젓가락질은 몰라도 깜박이는 당분간 더 우기려고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2017-11-08 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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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34> 약방의 감초?
오늘은 내가 학창 시절에 잘못 알고 있던 약학 관련 용어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약방의 감초’란 말이 있다. ‘너는 약방의 감초처럼 안 끼는 데가 없냐?’ 와 같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 말을 ‘약방(藥房)에 감초(甘草)가 있듯이 꼭 있다’라는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약방은 藥房이 아니라 藥方 즉 약 처방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이 말은 ‘한약 처방에 감초가 들어가듯 꼭 있다’라는 의미이다. 옛날부터 한약 처방에 감초가 많이 사용된 데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2. 상등액/상징액 (上澄液): 어떤 혼합 액체를 원심분리하였을 때 위 층에 생기는 맑은 액을 상등액이라고 배웠다. 澄자의 오른 쪽 登(등) 때문에 澄을 ‘등’으로 잘못 읽은 것이다. 그러나 澄은 ‘물 맑을 징’자이므로 상등액이 아니고 상징액으로 읽어야 한다. 물이 맑다고 할 때에도 ‘징명(澄明)하다’고 해야 한다.
3. 천평/천칭 (天秤): 저울을 말하는데 천평으로 잘못 읽곤 하였으나 천칭이라고 해야 한다. 역시 秤자의 오른 쪽 平(평) 때문에 秤을 ‘평’으로 잘못 안 것이다. ‘저울로 달다’라는 의미의 秤量도 평량이 아니라 칭량이다.
4. 활탁제/활택제 (滑澤劑): 약제학 시간에 활탁제라고 배웠으나 활택제가 맞다. 澤을 탁으로 읽을 근거가 없는데 탁으로 잘못 읽게 된 내력이 오랫동안 궁금하였다. 마침내 일본어에서는 澤의 일본자인 沢을 ‘타꾸’로 읽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일제 때 일본어로 약제학을 배우신 원로 교수님들 입에 밴 ‘활타꾸제’에서 활탁제가 나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5. 충진/충전 (充塡): 역시 약제학 시간에 충진이라고 배웠으나 충전이 맞다. 오래 전 모 제약회사 공장에 가 봤더니 어떤 방에 ‘충진실’이라는 문패가 붙어 있었다. 塡자의 오른 쪽에 있는 眞(진) 때문에 塡을 ‘진’으로 잘못 읽은 것이다.
6. 각반/교반 (攪拌): ‘저어준다’는 뜻인데, 각반이 아니라 교반으로 읽어야 한다. 攪자의 오른 쪽 覺(각)에 속아서는 안 된다.
7. 엑기스/엑스 (Ex): 흔히 ‘인삼 엑기스’라고 부르지만 실은 ‘인삼 엑스’가 옳은 표현이다. 대한약전(大韓藥典)에서는 오래 전부터 의약품 ‘엑기스’를 ‘엑스’로 바꾸어 부르도록 정하였다. 엑스는 extract (Ex)의 번역에 해당하는 말인데, 일본 사람들은 일본어의 특성 상 Ex를 엑기스라고 밖에 발음하지 못 한다.
왜정 때 일본어로 약학을 배운 우리의 선배들도 자연히 엑기스가 정답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르러서 우리는 Ex를 ‘엑스’라고 발음할 수 있는 민족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때부터 엑기스 대신 ‘엑스’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은 것 같기도 하다. 엑스라고 하면 어쩐지 ‘엑기스’처럼 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8. 캅셀/캡슐: 예전에는 capsule을 캅셀이라고 불렀다. 역시 ‘캅세루’라고 읽을 수 밖에 없는 일본어 교육의 잔재이다. 뒤늦게 우리는 캡슐이라고 발음할 수 있음을 깨달은 다음부터 대한약전에서 ‘캡슐’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참고로 캡슐과 캡슐제도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빈 캡슐에 약을 충전하면 그 때 캡슐제가 되는 것이다.
9. 프세이도/슈도: pseudo를 ‘프세이도’라고 발음하는 분을 본 적이 있다. 슈도가 맞다.
10. 불계속성 초본: 약용식물학 전공의 고 임기흥 교수님은 약용식물을 계속성 초본 (草本)과 불계속성 초본으로 분류하고 각각을 continuous plant와 uncontinuous plant라고 명명하여 논문을 발표하셨단다. 그런데 한참 뒤에 영어 사전을 뒤져보니 아뿔싸! 불계속성은 uncontinuous 가 아니라 discontinuous이었단다. 본인이 강의 중에 하신 말씀이다.
이상의 오류는 옥편(玉篇)만 한번 찾아 봤어도 진작에 바로 잡을 수 있는 일이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돌아보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에는 모든 정보가 다 부족했었다. 아, 옛날이여!
2017-10-25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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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33> 틀렸거나 비겁한 표현들
매스컴에 사용된 말이나 글이 바르지 못한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가끔 속내를 교묘하게 감추고 있는 말이나 글도 눈에 띈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1.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는 뜻의 회자(膾炙)라는 말은 ‘인구(人口)에 회자된다’, ‘사람 입에 회자된다’와 같이 사용해야 옳은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엔 그냥 ‘회자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기에 사전을 찾아 보니 이것도 틀린 표현은 아니라고 적혀 있다. 그래도 나에게는 그냥 ‘회자된다’는 좀 거북하다.
2. 누군가 훈장을 받았을 때 ‘아무개가 훈장을 수여하였다’고 표현한 기사를 보았다. 수여(授與)는 남에게 주는 것이므로 그냥 ‘받았다’로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3. ‘무슨 영화가 무슨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개봉(開封)이란 새 영화를 처음 상영한다는 의미의 타동사(他動詞)이니, ‘개봉된다’ 처럼 수동태(受動態)를 사용하여 표현해야 할 것이다.
4. ‘염두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던데, 염두(念頭)란 ‘마음속’이란 의미이므로 ‘염두에 두다’가 맞는 표현이다. ‘염두한다’는 틀린 표현 같다.
5. 어떤 현직(現職)에 있는 사람을 주례자로 모셔 놓고, 무슨 직을 ‘역임한 아무개 선생님’이라고 소개하는 사회자가 있다. 역임(歷任)은 과거에 어떤 직위를 지냈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현직에 잘 있는 사람에게 ‘역임했다’는 표현을 써선 안 된다. 소개받는 사람이 현 직장에서 방금 쫓겨났나 화들짝 놀랄지도 모른다.
6. 젊은이 중에 ‘어이가 없다’를 ‘어의가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단다. ‘어이’를 어의(語義)의 잘못으로 생각했나? 아무튼 어이없는 일이다. ‘어이없다’는 ‘어처구니없다’와 같은 말로,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는 뜻이다.
7. 대화 중에 ‘부분’이란 단어를 남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예컨대 “대화 중에 부분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부분’은 고쳐야 할 ‘부분’이다”라는 식이다. 여기에서 뒤의 두 ‘부분’은 사용하지 말아야 할 표현이다.
8. 물건을 산 후 계산대로 가면 점원이 “계산 도와드릴까요?“ 묻는다. 나는 속으로 ‘도와주긴 뭘 도와줘, 나도 계산할 수 있는데’ 하는 마음이 든다. 예의 바르게 말하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표현은 좀 마음에 안 든다.
9. 음식점에서 ‘냉면 나오셨습니다’ 하는 소리도 듣는데 이것도 이상하다. 냉면이 무슨 상전이나 되나? 이건 그냥 ‘냉면 나왔습니다’ 하면 족할 일이다.
10. 방송에서 인터뷰할 때, ‘바람도 시원하고 경치도 참 좋은 것 같아요’ 식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많은데, 좋으면 좋은 거지 ‘좋은 것 같아요’는 또 뭔가? 자기가 좋은지 안 좋은지도 모르나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나중에 누군가가 ‘나는 안 좋던대~’라고 시비(?)를 걸어 오면, ‘그래서 나도 좋다고는 안 했어요, 좋은 것 같다고만 했지’라고 변명할 여지를 남겨 놓으려 한 걸까? 그렇다면 좋아하는 주체인 ‘내가’가 빠진 ‘좋아 보여요’는 좀 비겁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11. ‘보여진다’는 그냥 ‘보인다’고 하면 될 표현이다. 구태여 수동태로 쓸 필요가 없는 말이다.
12. ‘생각된다’, ‘전망된다’, ‘예상된다’, ‘느껴진다’와 같은 수동태 표현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일본어의 특징이기도 한 수동태 표현은 1) 표현 중에 ‘내’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얼핏 들으면 예의 바르고 부드럽게 들린다. 2) 그러나 나는 가만 있는데 저절로 그렇게 생각되고, 전망되고, 예상되고, 느껴진 것이므로, 혹시 ‘나중에 그게 아닌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나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는 변명의 느낌이 있다.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처럼 비겁한 느낌을 풍긴다. 3) 마지막으로 수동태는 ‘내 생각과 상관없이 어차피 그리 된다’는 표현 양식이므로 보기에 따라서는 능동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표현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수동태는 자기의 강력한 주장을 교묘하게 위장하는 ‘비겁한’ 표현 양식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던 생각할수록 말은 참 신비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2017-10-11 0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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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32> 세계의 표준으로 삼음직한 우리의 문화
1. 우리나라 식당에는 세계적으로 내세울만한 문화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주 메뉴에 딸려 나오는 반찬의 가짓수가 엄청 많다.
특히 전라도 식당엘 가면 수많은 반찬 접시가 겹쳐 놓여 식탁 바닥이 안 보일 정도이다. 놀랍게도 그 반찬들은 전부 다 공짜로 무한 리필 된다.
게다가 식사 후에는 ‘셀프’라는 이름의 공짜 커피까지 준다. 나는 식당에서 주는 이 공짜 커피가 세상 커피 중에서 제일 맛있다.
어떤 식당은 손님이 나갈 때 카운터에서 박하 사탕까지 공짜로 준다. 우리나라 식당은 이처럼 인심이 넘쳐나는 장소이다.
반면에 외국의 식당엘 가면 반찬도 두세 가지 밖에 안 주지만 추가로 더 달라고 부탁하면 여지 없이 별도 요금을 징수(?)한다. 심지어 물도 돈을 받는 곳이 많다. 한번은 북경에 있는 식당에 가서 밥을 시켜 놓고 물을 좀 달랬더니 신이 나서 생수병을 들고 오는 것이었다.
웬일인가 했더니 물도 공짜가 아니고 매상을 올리는 상품이었던 것이다. 외국 식당에서 공짜 커피란 언감생심(焉敢生心) 상상도 할 수 없는 메뉴이다. 우선 대부분의 식당이 커피 자체를 취급하지 않는다. 혹시 취급한다고 해도 반드시 비싼 별도 요금을 내야만 한잔 얻어 마실 수 있다. 아무리 비싼 음식을 주문했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반찬이건 커피건 간에 일절 공짜가 없는 외국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땐 종종 야박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너희들 인생 이런 식으로 살지 말라”고 마음 속으로 나무란다.
외국과 달리 별별 걸 다 공짜로 주는 우리나라 식당에서는 ‘사람 사는 맛, 즉 인심’이 느껴진다. 공짜 인심이 풍요로운 우리나라의 식당 문화가 세계의 표준이 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2. 두 번째로 언급할 것은 우리나라의 인터넷 서비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디를 가도 대개 초고속 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에 가보면 사정이 다르다. 얼마 전까지 미국의 호텔은 숙박객에게 인터넷 사용료를 받았다.
또 호텔로부터 무슨 비밀번호인지 패스워드인지를 받아 입력하지 않으면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 인터넷 속도도 대개 속이 터질 정도로 느리다. 호텔이 비싸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나는 인터넷 사용료를 받는 외국 호텔의 조짠함에 분노(?)를 느낀다.
그래서 “너희들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차라리 호텔비를 올리는 한이 있더라도 인터넷은 제발 공짜로 제공해라. 너희들 대한민국엘 한번 가봐라. 어디 인터넷 사용료를 받는 곳이 있나”라고 역시 속으로 욕을 해 본다. 우리나라의 빠르고 공짜인 인터넷 서비스가 세계의 표준이 되었으면 좋겠다.
3. 세 번째로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의 배달 문화이다. 우리는 거의 모든 상품을 집안에 앉아서 구매할 수 있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물품을 주문하면 퀵서비스와 같은 배달을 통해 신속하게 집으로 배달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티브이를 통한 홈쇼핑 사업이 성황을 이루게 된 것도 이와 같은 배달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덕분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배달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산속이나 해수욕장에서 자장면을 주문해도 배달이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가히 ‘배달의 민족’이다.
주문한 음식을 먹고 난 다음에는 빈 그릇을 집이나 문 앞에 내다 놓기만 하면 상황 끝이다. 얼마나 편리한가! 아내의 홈쇼핑 중독만 방지할 묘책이 있다면, 우리의 배달 문화는 문자 그대로 세계 최고이다. 우리의 배달 문화 역시 세계에 전파할만한 가치가 있는 우리 문화가 아닐까?
과거에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직 선진국의 문물들뿐이었다. 풍족하게 사는 선진국 사람들이 하는 언행은 모든 것이 다 멋져 보였다. 그래서 머리카락 물들이기, 길거리에서 키스하기, 혼전 순결 가벼이 여기기 같은 별로 대단할 것 없는 그들의 문화마저 우리의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와 돌이켜 보니, 오히려 세계에 전파하고 싶은 우리의 문화들이 이것 저것 눈에 띄기 시작한다. 어찌 공짜 거피, 인터넷과 배달뿐이겠는가?
문득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들기도 하는 요즈음이다.
2017-09-20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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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31> 일꾼의 정의(正義)와 농장 주인의 정의
어느 농장 주인이 일당(日當) 10만원에 일꾼들을 모집하였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일꾼 몇 명이 나타나자 주인은 계약 조건을 이야기 하고 일을 시켰다. 그런데 그 뒤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 심지어 오후 5시에도 일꾼 몇 명이 일을 하게 해 달라며 나타났다.
주인은 이들도 받아들여 일을 시켰다. 오후 7시, 날이 저물자 주인은 일꾼들에게 품삯을 지불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먼저 왔거나 나중에 왔거나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일꾼들에게 똑같이 10만원씩을 지불하였다.
그러자 새벽 5시부터 일한 일꾼들부터 “우리는 새벽부터 뼈빠지게 일을 해서 10만원을 받는데, 나중에 온 저 사람들은 몇 시간 일하지 않고도 10만원을 받다니 불공평 하지 않은가?”하며 주인에게 항의하는 것이었다. 성경(마태 20, 1-8)에 나오는 예화(例話)이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일찍 온 일꾼들이 그런 불평을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 처하면 그런 불만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주인의 반응은 우리의 생각과 영 달랐다.
주인은 “내가 새벽부터 온 당신들에게 주기로 한 일당은 10만원이었고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도 후하게 일당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는 전적으로 내 처분에 달린 일이 아닌가? 일찍 온 당신들은 새벽부터 일자리를 얻어 일당 걱정 없이 하루를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늦게 온 일꾼들은 일자리를 못 구해 오후 늦게까지 걱정을 하다가 겨우 일자리를 얻어 일당을 벌게 된 것 아닌가? 내가 그 사람들에게 후하게 일당을 주었다고 당신들이 불평을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대꾸하였다.
세상에 이렇게 착한 주인이 있을 수 있을까? 동서고금을 통해 실제로 이러한 주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이 농장 주인처럼 세상의 정의보다 훨씬 높은 가치의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 농장 주인과 같은 정의를 갖고 살게 된다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란 찬송가(438장) 가사처럼 ‘죽어서 가는 저 세상이 아닌 바로 이 세상이 천국’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란 말을 듣는다. 아침 일찍 온 일꾼의 마음이나, 지난 주 약창춘추 230호에서 소개한 ‘돌아 온 탕자(蕩子)’를 환영하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나타내는 형의 마음이나 다 ‘배 아픈 걸 못 참는’ 우리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오래 전에 은사 한 분이 내게 “당신이 잘 되면 누가 진심으로 좋아할 것 같소? 아마 부인, 부모, 자식 정도 밖에 없을 것이요. 형제? 아닐 겁니다. 친구는 더욱 아닙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가슴 한 켠이 서늘해졌지만 이내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다. 좀 확장해 보자면 이런 류의 시기와 질투는 인간의 본성인 것 같기도 하다.
오래 전 한 해외 주재 고급 공무원이 교민들에게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있었다. 워낙 잘 가르쳐서 큰 인기를 끌 즈음, 어떤 교민이 정부에 투서를 하였다. ‘공무원이 특정 종교에 대해 강의를 해도 되겠냐?’고.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 공무원은 난감(難堪)하였다.
그래서 온누리 교회의 하용조 목사를 찾아 ‘어찌 하면 좋겠느냐’고 조언을 구하였다. 하 목사는 의외로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그럼 일단 그만 두시죠”. 그 공무원은 그 조언에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그가 예상했던 목사님의 조언은 “믿음의 길에는 고난이 따르기 마련이니 굽히지 말고 그 길을 계속 가세요” 이었던 것이다. 갈등을 피하라는 목사님의 조언을 따른 그 공무원은 마침내 훌륭한 목사가 되었다.
사실 인생을 조금만 긴 눈으로 보면 작은 정의에 근거한 시기, 질투 또는 갈등보다는 농장 주인과 같은 (또는 하 목사와 같은) 넉넉한 마음 씀씀이, 즉 큰 정의(大義)가 오히려 더 귀한 열매를 맺는 경우가 많음을 깨닫게 된다.
오 주여! 제 안목, 제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2017-09-06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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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30> 형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
지난 6월 25일 충북 보은에 있는 작은 시골 교회인 노티교회에 아웃리치를 다녀 왔다. 그 교회의 교인 수는 30명도 채 안 되지만 그나마 해마다 교인의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연로한 교인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시기 때문이다. 나는 9년째 그 교회를 지키고 계신 여자 목사님께 감사한 마음과 빚진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나누고 돌아 왔다.
[어떤 아버지에게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를 모시며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작은 아들은 제 몫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졸라 결국 그 재산을 받아 가지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들이 대개 그렇듯이 그도 얼마 되지 않아 재산을 허랑방탕(虛浪放蕩) 다 탕진하고 밥도 못 먹는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춥고 배고파서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 가고 싶었지만 큰 소리치고 나온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또 아버지한테 야단 맞을 것이 두려워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 아들이 언제 돌아 오려나 매일 같이 동구 밖을 내다보며 노심초사 기다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멀리서 작은 아들이 초라하고 지친 모습으로 머뭇머뭇 돌아오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반가워서 맨발로 뛰어 나가 얼싸 안으며 “잘 왔다, 이 녀석아, 정말 잘 왔어” 하며 환영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소까지 잡아 동네 사람들과 큰 잔치를 벌이며 기뻐하였습니다.
그 때 밭에 나가 일하고 있던 큰 아들이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동생이 돌아 온 것이 기뻐서 큰 잔치를 베푼다는 것이었습니다. 형은 동생이 돌아 온 것이 기쁘기에 앞서 큰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가 섭섭해졌습니다.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항의를 하였습니다. “아버지, 어째 이러십니까? 아시다시피 저는 여태껏 뼈빠지게 아버지 농사 일을 도와드렸지만, 언제 저한테 수고했다고 닭 한번 잡아 주신적이 있습니까? 근데 제 몫 다 챙겨 갖고 나가 실컷 놀다가 거지 신세가 되어 돌아온 저 녀석이 뭐가 예쁘다고 소까지 잡고 이 잔치를 벌이십니까? 아버지 너무하십니다”라고 볼멘 소리를 하였습니다.
단단히 삐친 것입니다. 형이 생각할 때에는 우선 동생을 몽둥이 찜질을 해놓고 환영을 하던지 말던지 해야 마땅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너는 그 동안 나와 쭉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니? 그리고 내 것이 다 네 것이잖니? (그래서 너는 밥을 주리거나 마음 고생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네 동생은 죽다가 살아 났고, 우리는 잃었던 아이를 다시 찾았으니, 어찌 기쁘지 않느냐? 어찌 잔치를 벌이지 않을 수 있겠냐?”
여러분은 누구 생각이 더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형입니까? 아버지입니까? 아마 대부분은 형이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사실 형의 입장에서 동생한테 뭐가 예쁜 구석이 있겠습니까? 예쁜 게 아니라 밉기만 하겠지요.
우리의 형제에 대한 사랑은 이 형과 비슷한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형제간에 사랑은 커녕 오히려 시기와 질투만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신혼부부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장차 재벌이 될 계획을 갖고 있다면 아들이건 딸이건 하나만 낳으라고 하겠습니까?
이 이야기는 성경(누가복음)에 나오는 예화(例話) 입니다. 성경은 돌아 온 작은 아들 즉 탕자(蕩子)를 위해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의 마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가르칩니다. 놀라운 가르침 아닙니까? 성경을 보면 이와 같은 놀라운 가르침이 무궁무진합니다.
왼손이 한 착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누가 추위에 떨며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도 벗어 주어라, 5리를 가달라고 하거든 10리를 가 주어라. 왼뺨을 때리거든 오른쪽 뺨도 내 주어라, 예배당에 오기 전에 너와 다툰 사람과 화해부터 하여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등을 반복해서 가르칩니다.
동생을 시기하는 형의 마음 가지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높은 차원의 고귀한 사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놀라운 가르침을 주시는 분입니다.]
2017-08-23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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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29> 초당림과 산림녹화
지난 6월 30일부터 이틀간 대학 동기 부부 13명이 전남 강진에 있는 초당림(草堂林) 견학을 다녀 왔다. 수서역에서 기차(SRT)를 타고 나주에 내려 초당대학교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초당림을 향하였다. 가고 오는 길에 다산 정약용이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던 다산초당(茶山草堂), 김영랑 시인의 생가(生家), 청자 박물관 및 초당대학교의 안경 박물관도 구경하였다.
초당림은 백제약품의 명예회장이신 김기운 선생이 50년 전인 1967년 강진군 칠량면 일대의 산 약 300만 평을 매입하여 조림(造林)한 국내 최대의 조림지이다. 광대한 산에는 편백, 리키테다, 백합나무 등이 이미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산 자락에 세워진 제재소에서는 재목으로 자라난 나무들을 가공하고 있었다.
우리들을 안내해 준 분은 김기운 선생의 아들인 김동구 회장(백제약품)이었다. 안내를 위해 서울에서 일부러 내려온 그는 조선대 약대를 졸업한 약사이지만 약보다 나무에 대한 애정이 더 커 보였다. 산림청에 나무에 대한 강의도 나갈 정도로 나무 하나 하나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였다. 우리들은 오랜 세월 조림을 해 온 그분들의 열정과 안목과 애국심에 감동하였다.
과거 우리나라의 산들은 모두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녔던 1950년대는 물론이고, 대학에 다녔던 1960년대 말까지도 그랬다. 당시 학생들이 즐겨 부르던 ‘메아리’란 동요(1954년 유치환 작사)에, “벌거벗은 붉은 산에 살 수 없어 갔다오. (후렴)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산에 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 메아리가 살게시리 나무를 심자”란 가사가 나올 정도이었다.
그랬던 우리나라 산들이 요즘에는 어디를 가나 숲으로 덮여 있다. 도시 개발 등으로 인하여 산림의 면적은 줄어들었지만, 단위 면적당 산림의 밀도는 수십 수백 배 높아진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산림녹화(山林綠化)에 성공한 것이다.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에 의해 그 답이 이미 나와 있을 터이지만 이하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원인을 적어 보기로 한다.
첫째는 누구나 인정하듯 정부의 식목(植木) 장려 덕분이다. 돌아 보면 1960년대 후반까지도 내 고향 김포 검단면 사람들은 집집마다 때때로 산으로 동원되어 나무를 심었다. 나도 하루 종일 나무를 심은 후 이장 댁 마당에 줄을 서서 일당(日當)을 받던 생각이 난다. 그 정도로 정부, 특히 박정희 정부는 식목 장려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나는 산이 푸르러진 것이 오직 식목의 장려 덕분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연료 혁명, 즉 연탄의 기여가 오히려 훨씬 더 컸을 것으로 생각한다. 시골에까지 연탄이 보급되기 전인 1960년대까지는 시골에서는 으레 산의 나무를 잘라다 취사 및 난방을 하였다. 도시에서도 가로수마저 몰래 잘라다 땔 정도로 그 때는 나무가 우리나라 가정의 주된 연료이었다.
그러나 자기집에서 땔 나무를 자신의 산에서 베어 올 수 있는 집이 몇이나 되었겠는가? 대개는 몰래 남의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는 일종의 ‘서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앞 동네는 이름마저 ‘나무서리’이었다. 이처럼 나무서리를 하지 않으면 취사나 난방을 할 수 없던 시절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가 되자 농로(農路)가 정비되어 시골까지 연탄을 배달하는 트럭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곧 연료 혁명이 일어났다. 너도 나도 나무대신 연탄을 때기 시작한 것이다. 나무꾼을 사서 나무서리를 하는 것보다 연탄을 사서 쓰는 것이 더 편하고 쌌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시골도 더 이상 나무를 베지 않고 연탄을 사용하게 되었다. 실로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혁명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연탄 보급을 우리나라 산림녹화의 일등공신이라고 믿는다. 물론 연탄의 부작용도 많았다. 도시의 골목길은 연탄재투성이였고, 겨울의 대기(大氣)는 일산화탄소에 절어 있었다. 방에 스며든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사람이 죽는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리 멀지도 않은 시절의 이야기이다. 산림녹화 만세, 초당림 만세!!
2017-08-09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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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28> 두려운 미래 기술
며칠 전, 미래 기술과 생명 윤리에 대한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머지 않아 인공지능이나 로봇, 유전자 조작 같은 미래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할 것인데 그 때가 되면 매우 심각한 생명 관련 윤리 문제 발생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그 때 들은 이야기를 포함하여 몇 가지 생각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인공지능의 위력은 이미 알파고의 바둑 실력에서 입증된 바 있다. 사람이 운전할 필요가 없는 인공지능 자동차도 곧 실용화 될 전망이다. 인공지능이 장착된 로봇도 진화를 반복하고 있다. 사람이 설정한 명령 프로그램대로 사람대신 어려운 작업을 해 주는 서비스 로봇은 이미 여러 종류 개발되어 있다.
앞으로는 무슨 작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까지 스스로 판단해서 일을 하는 노동 로봇도 개발될 것이다. 또 국경에 배치되어 스스로 적의 동향을 관측하고 필요 시 전투를 하여 적을 물리치는 군사 로봇도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희로애락 등 7가지 감정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감성 로봇도 오래 전부터 개발되고 있다. 사람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부와 외모가 사람과 닮은 로봇도 만들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가 사귀고 있는 상대가 진짜 사람인지 로봇인지 좀처럼 알 수 없어 답답해 하기도 한다.
벌써 어느 나라에서는 체온과 피부 촉감이 진짜 사람과 비슷하고 섹스 기술이 사람보다 월등한 인공 지능 섹스 로봇(여성)을 약 1,700만원에 팔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결혼 대신 ‘섹스 로봇’을 구입하는 남자들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어떤 영화를 보니까 인공지능 노동 로봇들이 어느 날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가혹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중에는 로봇의 지능이 더욱 진화하여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쟁취하더니 마침내 로봇이 대통령으로까지 선출되었다.
이는 일하기 싫어하는 인간들이 인공지능 노동 로봇을 사람의 수보다 훨씬 많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때쯤이면 고도의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는 연구 자체를 로봇이 담당하게 된다.
의사의 영역도 이미 인공지능에게 빼앗기기 시작하였다. 이미 IBM사는 인공지능 의사인 왓슨(Watson)을 개발하였다. 2년 전 일본 동경대 의대 병원에 도입된 왓슨은 60세 여성을 진찰한 뒤 10분만에 ‘희귀성 백혈병’이라는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
수천 환자의 유전자 특성과 2,000만개의 논문을 비교 분석한 결론이었는데, 이는 사람 의사들이라면 적어도 2주는 걸릴 방대한 작업이었다. 국내에서도 길병원에 이어 부산대 병원이 지난 2월부터 왓슨을 진료에 투입하였다고 한다. 권위를 잃어가는 것은 의사뿐만이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 목사나 인공지능 스님이 출현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유전자 가위 기술’은 세계 3위라 할 정도로 그 수준이 높다. 장차 이 기술을 이용하면 마치 옷감을 재단하듯 유전자의 나쁜 특성 부위를 잘라내고 좋은 특성을 갖고 있는 부분을 갖다 붙일 수 있다. 그 날이 오면 세상은 온통 좋은 유전 특성을 가진 사람들, 즉 건강하고 인물 좋고 머리 좋고, 성격 좋은 사람들로만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가 삽입되고, 인간 지능을 가지며, 인간 감정을 가진 로봇은 섹스 파트너일 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된다. 사람이 자식을 낳듯 로봇도 자식을 만든다. 마치 창조주가 인간을 만드셨듯이 인간 또는 로봇이 로봇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로보사피엔스(Robo-Sapiens)가 자연산 인간 즉 호모사피엔스의 직업을 빼앗고 마침내 인간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인간의 통제 하에서 사용될 수만 있다면 ‘미래 기술’은 인간에게 막대한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환자의 유전자 특성을 파악하여 그 환자에게 최적의 약물을 투여하는 ‘맞춤약학’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윤리라는 통제의 틀을 넘어서는 순간, 미래 기술은 기관사 없이 천길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는 기관차처럼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안겨 줄 우려가 있다. 미래가 무서워진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수호해야겠다는 심정이 절박해진다.
2017-07-19 09: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