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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8>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를 기입하자
“저희 약국으로 보낸 메트로니다졸 (metronidazole) 처방을 확인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지금 환자분이 여기 계신데 자신은 감염증 진단을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셔서요.”
지역약국의 약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해당 환자의 의무기록을 찾아 보니, 아뿔싸, 당뇨병약인 메트포민 (metformin)을 처방해야 했는데 실수로 약이름이 비슷한 metronidazole이라는 항생제를 처방한 것이었다! 전자의무기록으로 처방할 때 “met”를 치면 met로 시작하는 여러 약들이 뜨는데, 오늘따라 클리닉이 너무 바빠서 약이름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처방전을 보낸 것이다. 다행히 지역약국의 약사가 환자에게 복약지도를 하는 동안 처방 실수를 발견하고 이를 알려 주어 매우 고마왔다.
처방 실수 (prescribing errors)는 비교적 흔하다. 지역과 의료 시스템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1000개의 처방당 3-100개의 빈도로 처방 실수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방 실수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연구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컬럼에서 여러 번 다루었듯이, 처방 실수는 드물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약의 모양이나 이름이 비슷한 것이 여러 개 있으면 처방 실수가 일어나기 쉽다. 위의 metformin과 metrodinazole이 좋은 예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약들을 ‘look alike, sound alike’ (비슷한 모양이나 비슷한 이름)이라고 구분하고 이런 약을 처방하고 조제할 때 처방자와 약사 모두 좀 더 조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처음으로 허가받은 오리지널약만이 상품명을 가질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오리지널약 뿐만 아니라 제네릭약도 상품명을 가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네릭약의 상품명이 비슷한 것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보자. 베아베린과 베아셉트는 상품명이 비슷한 제네릭약들이다. 그런데, 베아베린은 프로피베린 (propiverine)이 성분으로 요실금에 쓰이는 약인 반면, 도네페질 (donepezil)이 성분인 베아셉트는 치매에 쓰인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다른 적응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상품명을 가진 제네릭약이 많아 약이름의 혼동으로 인한 처방 실수가 일어나기 더 쉽다.
의사가 처방 실수를 하더라도 약사가 이를 발견하고 의사에게 알려 고칠 수 있도록 하면 환자가 처방 실수로 인해 해를 입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위에서 기술한 대로, 내 처방 실수를 잡아내 고치도록 한 지역약국의 약사가 좋은 예이다. 이 약사는 복약지도 과정에서 처방 실수를 발견했지만 이 과정에서 처방 실수를 모두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환자가 적응증을 모르거나 같은 적응증을 갖지만 금기 등으로 인해 환자에게 쓸 수 없는 약을 처방한 경우가 특히 그렇다. 그래서, 아마도 가장 좋은 방법은 약사가 환자의 전자의무기록을 읽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의무기록에는 의사가 왜 이 약을 처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병원약국에서 일하는 약사는 병원의 전자의무기록을 접근할 수 있지만 지역약국의 약사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미국의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한 기관 (Institute of Safe Medication Practice; ISMP)은 처방전에 적응증 또는 진단명을 기재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즉, 처방전에 적응증 또는 진단명이 담겨 있으면 약사가 왜 이 약이 처방되었는지 알 수 있어 처방전을 좀 더 꼼꼼히 검토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환자에게 잘못 처방된 약이 전달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일부 약의 처방에 한해서 의사가 처방전에 진단명을 기입하도록 강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17년부터 오하이오 주 등 일부 주에서는 오남용으로 부작용의 폐해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모르핀과 같은 아편계 진통제를 처방할 때 진단명이 빠지면 약국에서 교부할 수 없도록 법제화했다.
처방전에 진단명을 기재하는 방법으로 널리 이용하는 것이 질병분류기호이다. 질병분류기호는 국제보건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가 분류한 질병들을 간단하게 기호로 만든 것으로 현재 국제 표준으로 쓰이고 있는 질병분류기호는 ICD-10 (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 코드이다. 예를 들어, 2형 당뇨병의 ICD-10 코드는 E11 이며, 고혈압은 I10이다. 질병분류기호는 의사가 어떤 진단을 내렸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써 누구나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해볼 수 있어서 이 기호를 보면 어떤 질병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
질병분류기호는 우리나라에서 처방전에 기입해야 하는 항목 중 하나이다. 이는 약물을 안전하게 사용하는데 도움을 주는 제도이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안타깝다. 왜냐하면, 환자의 요구가 있으면 의사는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를 기입하는 것을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 기입난이 있음에도 우리나라의 많은 처방전이 이곳을 비워 두고 있다. 실제로, 2017년에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병의원을 방문했을 때 어떤 의사도 어머니에게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 기입을 생략하는 것을 원하는지 물어 보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받은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 기입난이 빈칸으로 남겨져 있었다.
환자의 요구가 없는데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질병분류기호의 기입을 생략하는 이유는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처방전이 약사를 제외한 제 3자의 손에 들어 가면 개인정보가 누출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처방전에는 신용카드 정보 등 거의 모든 개인정보가 연결되어 있는 주민등록번호도 기입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환자에게 처방전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육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보다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 사용을 위해, 법이 규정한 대로 처방자로 하여금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를 기입하도록 해야 한다. 또, 환자의 동의가 없는 이상, 약사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질병분류기호에 따른 진단명 등 처방전에 기입된 모든 환자 개인정보를 제 3자에게 알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의 경우, 처방전의 질병분류기호는 보험금 청구에 필요하기도 하다. 따라서, 첫 진료를 받을 때부터 질병분류기호가 기재되어 있는 처방전을 발급받는다면 실손보험에 청구하기 위해 필요한 질병분류기호가 빠진 처방전 때문에 의원이나 병원을 다시 방문해야 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환자 자신의 안전한 약 사용을 위해 처방전의 질병분류기호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만약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가 빠져 있다면 이를 기입하도록 환자가 요구해야 한다. 아, 그리고, 의사가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를 기재하는 것에 대해 환자가 내야 하는 비용은 무료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8-02 1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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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7>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에 의한 혈전증 위험을 증가시킬까?
고혈압, 고지혈, 또는 당뇨병 등의 기저질환을 가진 분들이 아스트라제네카 (AZ)와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을 경우 혈전증이 나타날 위험이 더 커진다는 우려가 있는 것 같다. 즉, 이런 기저질환은 그 자체만로도 혈전증의 위험을 증가시키는데 여기에 혈전증 부작용을 가지고 있는 AZ나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으면 혈전증의 위험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기저질환을 가진 분들 중 일부는 AZ나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접종을 받지 않으시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정말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에 의한 혈전증 위험을 증가시킬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 이유는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에서 나타나는 혈전증과 AZ 또는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의한 혈전증은 발생 기전과 장소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기저질환과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의한 혈전증의 발생 기전과 장소를 살펴 보기로 하자.
혈관내에 생기는 혈전은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기전에 의해 발생한다.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 기저질환에 의해 발생하는 혈전은 동맥내벽에 쌓인 여러 물질에 의해 발생한다. 동맥혈관 구조상 피에 직접 접촉하고 있는 부분을 동맥내벽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쌓이는 물질들은 주로 콜레스테롤, 지방, 죽은 염증 세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물질들은 막으로 덮여져 있어 혈액과는 직접 접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 이유는 잘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 막이 깨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막 아래의 물질들이 혈액과 직접 닿게 되고 혈전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 물질들에는 혈액으로 하여금 혈전을 생성하도록 유도하는 물질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의 질환은 동맥내벽에 이런 물질들이 쌓이는 것을 촉진한다. 동맥내벽에 상처가 생기면 여기에 물질들이 쌓인다. 그런데, 고혈압은 동맥내벽 상처의 원인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혈압이 높으면 동맥내벽에 상처가 나기 쉽기 때문이다. 즉, 건물의 벽에 미치는 압력이 세면 벽에 균열이 생기기 쉬운 것처럼 혈관내벽에 작용하는 압력이 높으면 상처가 쉽게 나는 것이다. 동맥내벽에 생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혈액 속에 돌아다니는 콜레스테롤과 지방 등이 혈관내 상처에 쌓인다. 따라서, 혈중 콜레스테롤의 양이 많으면, 즉 고지혈증을 가지고 있으면, 더 많은 양의 콜레스테롤이 동맥내벽에 난 상처에 쌓일 수 있다. 또, 피부에 상처가 나면 염증반응이 일어나듯이 동맥내벽에 상처가 나도 염증반응이 일어난다. 그런데, 혈중 콜레스테롤의 양이 많으면 동맥내벽의 상처에 쌓여 염증반응을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는 산화된 콜레스테롤의 양도 증가한다.
또, 당뇨병으로 혈당이 높은 경우에도 동맥내벽의 상처에 발생한 염증반응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염증반응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동맥내벽에 쌓이는 물질들의 양도 커지고 이 물질들을 둘러쌓고 있는 막도 얇아져 쉽게 깨질 수 있다. 따라서,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 기저질환은 동맥내벽에 쌓이는 물질들의 양을 늘리고, 이들이 쉽게 혈액과 접하게 하여 동맥내에서 혈전이 발생할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서 혈전이 발생하면 심장근육에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지 못하여 심장근육이 죽게 된다 (심근경색). 만약,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에 혈전이 생기면 뇌세포가 죽게 된다 (뇌경색).
동맥내벽에 콜레스테롤, 지방, 염증세포 등이 쌓여 발생하는 혈전과는 달리 AZ와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면역반응을 일으켜 혈전을 만든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021년 4월30일자 컬럼“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의한 혈전증 –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약물 알러지?” 편을 참조하기 바란다). 즉, 백신의 성분이 우리몸 안의 혈소판 인자 4라는 것과 결합함으로써 혈소판 인자4 구조를 변형시키고 이에 대한 항체 생성을 유도하여 혈전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혈전은 동맥이 아닌 주로 정맥에서 발생한다. 이처럼 AZ와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과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 기저질환은 혈전증을 일으키는 기전 및 발생 장소가 완전히 다르다.
혈전증을 일으키는 기전과 발생 장소가 다르기 때문에 AZ와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의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혈전증 발생 위험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증가시키지 않는다. 또, 임상시험에 따르면, 이 두 백신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예방효과도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간에 다르지 않다. 오히려,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백신 접종에 의한 혜택이 더 크다. 왜냐하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사망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혈압, 고지혈, 당뇨병 등의 기저질환을 가진 분들은 백신에 대한 금기사항이 없다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접종받으시기를 권한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7-02 1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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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6> 스타틴과 근육 부작용
“약사님, 스타틴의 사용에 관한 질문이 있어 연락드립니다. 제 환자 중 과거에 스타틴에 의해 근육통이 발생하여 지금은 스타틴을 복용하지 않고 있는 60세의 환자가 있습니다. 이 환자에게 스타틴을 다시는 사용할 수 없는 건가요? 만약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스타틴을 써야 할까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내게 자주 진료의뢰를 보내는 일차의료제공자가 병원내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상의 메신저 기능을 이용하여 질문을 보내왔다. 의무기록을 살펴보니 말초혈관질환의 병력을 가진 이 환자는 2년전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했을 때 근육통을 호소했고, 당시 혈중 크레아티닌 키나제 (creatinine kinase; 영어로는 “크레아티닌 카이네이스”로 읽는다)의 수치가 좀 높았다. 그래서, 담당 의료진은 환자가 그동안 복용하던 아토바스타틴(atorvastatin) 40mg을 중단시켰고 이후로 이 환자는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말초혈관질환(peripheral vascular disease 또는 peripheral arterial disease)는 팔, 다리 등에 있는 동맥에 콜레스테롤과 같은 지방 등이 쌓여 발생하는 질병인데, 심근경색증을 일으키는 관상동맥질환에 준하여 치료한다. 그 이유는 두 질환의 발병과정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두 질환 모두 동맥에 콜레스테롤과 같은 지방 등이 쌓여 동맥이 좁아져서 발생하는 데 이를 동맥경화 (atherosclerosis)라고 부른다. 이 동맥경화가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주로 발생하면 관상동맥질환이 되고, 팔, 다리 등에 있는 동맥, 즉 말초혈관에 주로 나타나면 말초혈관질환이 된다.
다시 말하면, 이 두 질환은 동맥경화가 심하게 발생한 동맥의 위치만 다를 뿐 그 발생과정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동맥경화는 전신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말초혈관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관상동맥에도 동맥경화가 많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말초혈관질환을 관상동맥질환의 치료에 준하여 치료하는 이유이다.
동맥경화의 발생과정에서 콜레스테롤의 축적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혈중 콜레스테롤의 양을 줄일 수 있는 약물의 사용이 권장된다. 특히 아토바스타틴의 예처럼 약의 이름이 스타틴으로 끝나 ‘스타틴’이라고 불리는 약물 계열이 권장된다. 그 이유는 여러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관상동맥질환이나 말초혈관질환의 병력을 가진 환자들에게 이 약물들을 사용했을 때 심근경색증이나 뇌경색증을 발생할 위험 뿐만 아니라 사망률도 낮추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치료지침서는 관상동맥질환과 말초혈관질환의 치료에 스타틴을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스타틴의 부작용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근육통이다. 스타틴에 의한 근육통은 스타틴을 시작한 첫 해 동안 가장 많이 나타나지만 스타틴을 사용하는 동안에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다. 이 근육통은 손가락처럼 작은 근육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리, 가슴, 어깨 등 큰 근육에서 나타난다. 또, 한쪽 다리나 팔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양다리, 양팔에 동시에 발생한다. 심한 경우에는 근육 세포가 죽어버려서 심한 근육통, 코카콜라 색깔과 같은 오줌, 죽은 근육 세포들이 신장에 쌓여 신장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횡문근 융해증(rhabdomyolysis)이 일어날 수 있다. 근육 세포가 죽게 되면 근육 세포내의 단백질 중 하나인 크레아티닌 키나제가 혈액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글머리에서 기술한 환자의 예처럼 스타틴을 복용중인 환자가 근육통을 호소하면 혈중 크레아티닌 키나제의 양을 측정한다.
그런데, 임상시험에서 보고된 근육통 발생률은 스타틴군에서 위약군보다 높기는 하지만 그 차이는 0.1%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는 스타틴을 복용하는 동안 근육통을 호소하는 환자들 중 스타틴이 근육통을 직접 일으킨 경우는 매우 적다는 뜻이다. 근육통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활동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무거운 것을 들거나 달리기를 하면 근육통이 나타날 수 있다. 또, 근육을 많이 쓰게 되면 죽는 세포들이 생기므로 혈중 크레아티닌 키나제의 수치가 높아질 수 있다. 따라서,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는 동안 발생한 근육통 중 일부는 이런 활동들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
또 하나의 원인은 노시보(nocebo) 효과이다. 노시보 효과란 환자가 부작용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상함으로써 나타난 부작용을 말한다. 즉, 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이유에서 발생한 것이니 진짜 부작용이 아니라 가짜 부작용인 셈이다. 스타틴은 워낙 많이 사용되고 있으므로 환자들이 스타틴을 시작하기 전에 벌써 언론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근육통이 스타틴의 흔한 부작용이라고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스타틴을 시작할 때 근육통이 나타날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고, 근육에 조그마한 통증이라도 느끼게 되면 이를 약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들이 호소하는 근육통이 대부분 노시보 효과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임상시험이 작년말에 발표되었다. 삼손(SAMSON)이라 불리는 이 임상시험은 스타틴을 시작한 후 2주내에 근육통을 호소해서 약을 중단한 60명의 참가자를 모집했다.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던 동안, 참가자들의 크레아티닌 키나제 수치가 정상치의 5배를 넘지 않아야 했다. 시험참가자들은 아토바스타틴 20mg 30알이 담긴 약병, 위약 30알이 담긴 약병, 그리고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약병을 각각 4개씩 총 12개의 약병을 받았다 (위약은 아토바스타틴과 동일한 모양과 색깔로 만들어져서 시험참가자들은 둘을 구분할 수 없었다).
다음, 매달마다 약병의 순서를 무작위로 배정받아 알약을 하루에 하나씩 복용하고 근육통 여부와 그 정도를 매일 인터넷을 통해 보고했다(아무것도 들지 않은 약병을 배정받으면 그 달에는 아무것도 복용하지 않았다). 즉, 모든 참가자가 1년동안 아토바스타틴 20mg, 위약, 빈병을 각각 총 4개월씩 복용했지만 각 달마다 무엇을 복용하는 지는 달랐던 것이다. 이처럼 매달마다 복용하는 약의 순서를 무작위로 바꾼 이유는 복용하는 약의 순서가 근육통의 발생과 정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빈병을 둔 이유는 약을 복용하는 행위자체가 근육통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 지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즉, 빈병을 사용하는 동안, 즉 아무것도 복용하지 않는 동안 발생한 근육통은 자연발생하는 근육통이다.
따라서, 위약을 복용하는 동안 발생한 근육통의 정도에서 빈병을 사용하는 동안 발생한 근육통의 정도를 빼면 약을 복용하는 행위 자체에 의해 생기는 근육통의 정도 – 즉, 노시보 효과의 정도 - 를 측정할 수 있고 이를 A라 하자. 그리고, 아토바스타틴 20mg을 복용하고 있는 동안 발생한 근육통의 정도에서 빈병을 사용하는 동안 발생한 근육통의 정도를 빼면 이는 아토바스타틴 20mg과 약을 먹는 행위에 의해 발생한 근육통의 정도가 되고 이를 B라 하자. 이 때, A에서 B를 나눈 비율은 스타틴에 의해 발생한 근육통의 정도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노시보 효과에 의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런데, 위 임상시험 결과에 의하면 이 비율은 무려 90%에 이르렀다. 즉, 스타틴에 의해 발생한 근육통의 90%는 노시보 효과에 따른 것이다.
또, 시험 참가자의 23%가 스타틴을 복용하는 달에, 20%는 위약을 복용하는 달에 근육통으로 약을 중단했으니 진짜로 스타틴에 의해 일어나는 근육통은 스타틴을 근육통으로 중단했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드물게 나타나는 것이다. 시험이 종료된 다음, 연구자는 시험 참가자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시험결과를 알려주고 6개월 뒤에 연락해서 스타틴을 다시 시작했는지 물어보았다. 이 때 시험참가자 중 50%가 성공적으로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임상시험 결과는 이전에 발표된, 근육통으로 스타틴을 중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임상 시험 결과들과 일치한다. 즉, 근육통으로 스타틴을 중단한 사람들 중 절반 정도만 진짜로 스타틴 때문에 근육통이 일어났고 나머지는 노시보 효과 등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근육통으로 스타틴을 중단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스타틴을 안전하게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
글머리에 기술한 환자로 돌아가 보자. 비록 이 환자는 2년전 혈중 크레아니틴 키나제의 수치가 높아져 있었지만 그 정도가 정상치의 약 2배 정도로 아주 높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말초혈관질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스타틴이 필요한 환자였다. 또, 스타틴의 혈중 농도를 증가시켜 근육통이 일어날 위험을 증가시키는 약물을 같이 복용하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이 환자에게 스타틴을 다시 시도해 볼만 했고, 앞에 기술한 임상시험의 예에 따라 아토바스타틴 20mg을 하루에 한 번 복용하도록 추천했다. 그리고, 스타틴을 시작하기 전에 크레아티닌 키나제를 측정하는 것도 함께 추천했다.
많은 환자들이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다. 스타틴은 심근경색증과 뇌경색증의 발생, 그리고 이들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어 준다고 여러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된 약들이다. 반면 스타틴에 의한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은 매우 낮다. 이처럼 스타틴을 복용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해보다 훨씬 크므로 담당의사의 지시에 따라 스타틴을 꾸준히 복용하기를 권한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6-01 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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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5>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의한 혈전증 –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약물 알러지?
아스트라제네카 (AZ)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백신 접종 후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혈전증 (thrombosis) 때문인데 이로 인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AZ 백신의 접종 대상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에서 허가받은 얀센 (Janssen; 미국에서는 회사명이 Johnson & Johnson으로 불린다)의 백신도 혈전증에 대한 우려로 인해 미국의 연방정부는 이 백신의 접종을 약 1 주일간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이 백신들이 어떻게 혈전증을 일으키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 연구 결과들이 최근 의학잡지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되었고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을지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혈전증이란 혈관내에서 피딱지(혈전)가 생김으로써 산소 및 영양소를 운반하는 혈액의 흐름이 막혀서 조직이 죽는 것을 말한다. AZ 백신을 맞은 후 혈전증이 발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위 연구들에 따르면 혈전증은 첫 번째 접종 후 5-24일사이에 발생했다. 얀센 백신을 맞고 혈전증이 발생한 환자들도 접종 후 비슷한 기간내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혈전은 주로 뇌정맥에 나타났지만, 내장 혈관, 다리 정맥, 폐정맥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는 백신에 의한 혈전증이 특정 장기에 국한되어 발생하는 국소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전신적인 증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젊은 여성에게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영국에서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23명의 환자 중 40%는 남성이었으며 30%는 50세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 두 백신에 의한 혈전증의 가장 큰 특징은 혈소판 수의 감소 (thrombocytopenia)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혈소판은 혈액내의 성분 중 하나로 혈전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다. 즉, 혈소판은 혈전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혈액 성분으로 혈소판의 수가 적다는 것은 혈전을 만드는데 사용될 수 있는 성분의 수가 적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혈소판 수가 감소하면 일반적으로는 출혈의 위험이 증가한다. 그런데, 백신을 접종받고 발생한 것은 출혈이 아니라 혈전증이었다. 그러면, 왜 혈소판 수가 줄어들었을까? 그 이유는 혈소판이 혈전을 만드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혈소판을 혈전 만드는데에 많이 써 버려 혈소판 수가 적어진 것이다.
이처럼 혈소판 수 감소와 혈전증이 함께 일어나는 현상은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는 극히 드물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 글 마지막 부분에서 설명하는 자가면역 HIT를 참조하기 바란다). 반면, 앞서 설명했듯이 혈소판 수가 감소하면 출혈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이 훨씬 더 흔한 현상이다. 그런데, 혈소판 수가 감소하면서 혈전증이 일어나는 현상은 항응고제인 헤파린 (heparin)을 투여했을 때 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를 헤파린이 유도한 혈소판 수 감소증 (heparin-induced thrombocytopenia; HIT)이라고 부른다.
글머리에 소개한 연구들에 따르면, 백신 접종후 발생한 혈소판 수의 감소를 동반한 혈전증은 HIT과 유사한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래서, HIT에 의해 혈전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먼저 알아보자. HIT에 의한 혈전의 생성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들로는 헤파린, 혈소판 인자4 (platelet factor 4), 항체가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 보기로 한다.
헤파린은 시술, 수술할 때는 물론이고 혈관에 링거 같은 수액을 투여하기 위해 관을 삽입할 때 등 혈전 생성 방지의 목적으로 병원에서 아주 널리 사용되는 약이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중 헤파린을 투여받지 않은 환자는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런데, 헤파린은 분자 구조적으로 볼 때 그 구조가 크고 음이온이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분자 구조적인 특징으로 인해 헤파린은 우리몸의 혈액에 들어 있는 혈소판 인자4라는 단백질과 잘 결합할 수 있다. 이 혈소판 인자4는 혈소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양이온이 많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음이온은 양이온과 잘 결합하기 때문에 음이온이 많은 헤파린은 양이온이 많은 혈소판 인자4와 결합할 수 있는 것이다.
헤파린이 혈소판 인자4와 결합하게 되면 혈소판 인자4의 구조가 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헤파린으로 인해 혈소판 인자4의 구조가 변해도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의 몸에서는 혈소판 인자4에 대해 항체가 만들어져 혈전이 생긴다.
항체는 면역반응을 매개하는 단백질로 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세균과 바이러스가 우리몸과는 다른 단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인지하면 우리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따라서, 항체는 우리몸과는 다른 세균과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인지하여 이들을 죽임으로써 우리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해 우리몸이 항체를 만들도록 투여하는 것이 백신이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잘 밝혀져 있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만든 단백질에 대해서도 항체를 만든다. 헤파린과 결합한 혈소판 인자 4에 대한 항체가 만들어지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헤파린과 결합한 혈소판 인자 4에 대한 항체는 공교롭게도 혈소판과 반응하여 혈소판이 혈전을 생성하는데 소비되도록 만든다.
따라서, HIT으로 혈전증이 발생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헤파린이 혈소판 인자 4와 결합 → 2) 혈소판 인자 4의 구조 변형 → 3) 혈소판 인자 4에 대한 항체 생성 → 4) 혈소판이 혈전 생성에 소비 → 5) 혈소판 수 감소와 혈전증 발생
AZ 와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들도 일부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혈전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즉, 백신의 성분이 혈소판 인자 4와 결합함으로써 혈소판 인자4 구조의 변형과 이에 대한 항체 생성을 유도하여 혈소판을 혈전생성에 사용하도록 하여 혈전증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 때, 혈소판 인자 4와 결합하는 백신의 성분은 아데노바이러스 (adenovirus)의 DNA인 것으로 추정된다. 파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들과 달리 AZ 와 얀센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들은 감기 바이러스 중 하나인 아데노바이러스의 DNA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 DNA가 혈소판 인자 4와 결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헤파린처럼 DNA도 그 구조가 크고 음이온이 많은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헤파린을 투여받은 적이 없는데에도 혈소판 수의 감소를 동반한 혈전증이 일어난다. 이런 현상을 자가 면역 HIT – autoimmune heparin-induced thrombocytopenia라고 부른다. 그런데, 자가면역 HIT는 헤파린을 투여받지 않았음에도 혈소판 수의 감소를 동반한 혈전증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헤파린을 투여받은 뒤 일어난 HIT보다 백신에 의한 혈전증에서 혈전이 발생과정과 좀 더 유사하다. 그래서, 글머리에 소개한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백신에 의한 혈전증이 자가 면역 HIT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직까지 혈전증과 뚜렷한 연관이 보고되지 않은 파이자나 모더나의 백신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백신들은 미국의 사재기로 당분간 다른 나라에 다량으로 공급되기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이 백신들이 공급되기 전까지는 AZ 백신을 사용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AZ 백신의 접종 여부를 결정하는데 위의 연구결과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첫째, AZ 백신의 첫번째 접종 후 혈전증이 발생하지 않은 사람들은 두 번째 접종을 할 때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혈전증이 발생한 사람들은 첫번째 접종을 한 후 5-24일사이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둘째, AZ백신에 의한 혈전증은 부작용이라기 보다는 약물에 대한 알러지 반응에 더 가까와 보인다. 약물에 대한 알러지 반응이 면역반응을 매개로 나타나듯이 백신에 의해 혈전이 생성되는 과정도 항체 형성이라는 면역반응이 관여한다. 또, 약물에 대한 알러지 반응이 드물게 나타나듯이 백신에 의한 혈전증도 백만명에 한 명에서 네 명이라는 빈도로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4월 19일 현재 AZ 백신을 1백만명 이상 접종한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혈소판 수의 감소를 동반한 혈전증의 사례가 보고된 바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백신을 접종한 다음 발생한 혈전증 사례는 백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경우, 어떤 사람에게 약물에 대한 알러지 반응이 나타날지 알 수 없듯이, 현재까지 백신에 의한 혈전증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미리 찾아낼 수 있는 수단은 아직까지 없다.
그런데, 백신에 의한 혈전증을 알러지 반응으로 보게 되면 백신 접종을 받을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약은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복용하는 이유는 치료에 필요하고,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는 빈도는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헤파린을 투여받은 환자들 중 HIT의 발생률은 약 1% 정도이지만 HIT때문에 헤파린 사용을 피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치명적일 수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예방을 위해 백신은 필요하고 백신에 의한 알러지 반응의 빈도는 매우 낮다 - AZ백신에 의한 혈전증의 발생률은0.0001-0.0004% (백만명 중 1-4명)에 불과하니 헤파린에 의한 HIT보다도 2,500-10,000배나 더 낮다. 백신에 의한 혈전증이 발생하는 과정이 밝혀지기 전에는 효과적인 치료법을 몰랐기 때문에 치사율이 높았다.
예를 들어, 백신에 의한 혈전증이 발생한 일부 환자들에게 낮은 혈소판 수치를 보정하고자 혈소판을 수혈한 것 같은데 이는 혈전증을 악화시킬 따름이다. 하지만, 이제는 혈소판 수혈을 피해야 하고, 대신 면역 글로뷸린 (IV immunoglobulin G)이라는 약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증상을 빨리 인지하고 이에 따라 조기에 치료한다면 치사율과 후유증이 나타날 가능성도 낮아질 것이다.
4월29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 의하면, 혈전 발생의 위험으로 접종이 잠시 중단되었던 얀센 백신을 미국인들은 적극적으로 맞으려고 한다고 한다. 두 번 맞아야 하는 다른 백신들보다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얀센 백신의 혈전발생의 위험은 AZ백신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얀센 백신에 거부감을 적게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선정적인 보도를 지양하고 과학적 데이타를 바탕으로 백신 접종에 관한 이익과 위험을 객관적으로 보도해 온 미국 언론에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4-30 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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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4>다파글리플로진 (포시가)와 엠파글리플로진 (자디앙) – 새로운 심부전증 치료제
“이것이 이번에 새로 처방받으신 약이군요!”
Mr. T는 45세의 환자로 지난 주 심부전증 (heart failure)이 악화되어 4일간 입원했었다.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 가정의학과는 모든 환자들이 퇴원 후 2주안에 자신들의 일차의료제공자를 만나도록 하고 있다. 일차의료제공자는 환자 돌봄에 있어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하므로 환자가 입원했을 때 받았던 치료를 검토한 후 외래에서는 어떻게 치료할지 결정하고 주도하기 위해 환자가 퇴원한 뒤 만나는 것이다. 이때 일차의료제공자의 진료를 돕기 위해, 심부전증 같이 여러 약을 동시에 써야 하는 질병을 가진 환자들은 가정의학과 소속 약사를 일차의료제공자보다 먼저 만나서 약에 대해 교육과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다.
“네, 이 약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새로 시작한 약입니다.”
Mr. T가 새로 시작한 약은 다파글리플로진 (dapagliflozin), 상품명으로는 ‘포시가 (Farxiga)’라고 불리는 약이다.
“저는 이 약이 당뇨병에 쓰이는 약이라고 들었는데 당뇨병이 없는 저한테 왜 처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파글리플로진은 SGLT2 억제제로서 원래는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약이다. 그런데, 이 약과 또 다른 SGLT2 억제제인 엠파글리플로진 (empagliflozin)은 최근 발표된 여러 임상시험에서 심부전증 치료제로서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었다. 그래서, 미국 심순환기 학회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는 금년초에 개정한 치료지침서에서 심장의 수축능력이 떨어져 발생한 심부전증 환자들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베타차단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체, 알도스테론 억제제 등과 더불어 SGLT2 억제제를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심부전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SGLT2 억제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한 임상시험은 현재까지 두 개로, 2019년에 발표된 DAPA-HF라 불리는 임상시험과 2020년에 발표된 EMPEROR-Reduced라고 불리는 임상시험이 그것이다 (소타글리플로진 – sotagliflozin - 의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한 SOLOIST-WHF라는 임상시험이 2021년 초에 발표되기는 하였지만 이 임상시험은 심부전증과 당뇨병을 동시에 가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제외하기로 한다).
DAPA-HF시험와 EMPEROR-Reduced시험은 각각 다파글리플로진과 엠파글리플로진이 심순환기 질환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심부전증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할 위험을 낮추는지를 위약과 비교하였다. 이 두 시험에서, 다파글리플로진은 심순환기 질환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심부전증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할 위험을 26%, 엠파글리플로진은 25% 낮추었다. 또, 두 약은 심부전증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할 위험을 각각 30% 줄였다. 뿐만 아니라, 다파글리플로진은 심순환기 질환으로 인해 사망할 위험도 18%나 낮추었다 (엠파글리플로진은 심순환기 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을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낮추지는 못하였다).
다파글리플로진과 엠파글리플로진이 이처럼 심순환기 질환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심부전증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할 위험을 줄이는 것이 이 두 임상시험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미국 심순환기 학회가 이 두 약을 심장의 수축능력이 떨어져 발생한 심부전증 환자들에게 사용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심부전증은 심장의 수축 능력이나 이완 능력이 떨어져 발생하고, 이 두 부류의 심부전증은 치료 방법이 좀 다르다. 그런데, DAPA-HF시험과 EMPEROR-Reduced 시험 모두 심부전증 환자들 중 심장의 수축 능력이 떨어진 환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다파글리플로진과 엠파글리플로진은 심장의 수축 능력이 떨어진 환자들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 또, 두 임상시험은 당뇨병 여부에 관계없이 심부전증의 진단을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했으므로 Mr. T와 같이 당뇨병을 가지지 않은 심장 수축 능력의 저하로 인해 생긴 심부전증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다파글리플로진이나 엠파글리플로진을 심장 수축 능력의 저하로 인해 생긴 심부전증 환자들에게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다파글리플로진이나 엠파글리플로진을 복용하는 환자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베타차단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 알도스테론 억제제 등도 함께 복용해야 한다. 이 약들 역시 심장의 수축 능력이 저하되어 발생한 심부전증 환자들의 수명을 늘려주고, 심부전증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할 위험을 낮춰주는 것이 그동안의 여러 임상시험에서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DAPA-HF시험과 EMPEROR-Reduced 시험 모두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 약들을 복용하도록 하였기에 시험에 참가한 환자의 70%이상이 이 약들을 SGLT2 억제제와 같이 복용하고 있었다.
둘째, 다파글리플로진과 엠파글리플로진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혈압, 체중, 신장기능, 혈당, 비뇨생식기 감염, 정상혈당을 동반한 당뇨병성 케톤산증 등을 모니터해야 한다. SGLT2 억제제는 혈압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래서, DAPA-HF시험과 EMPEROR-Reduced 시험에서는 수축기 혈압이 95-100 mmHg미만인 환자들을 제외시켰다. 즉, 수축기 혈압이 95-100 mmHg미만인 환자들은 다파글리플로진이나 엠파글리플로진을 복용하지 않아야 한다. 또, 시험기간 중 두 약은 수축기 혈압을 평균 2 mmHg 정도 낮추었으므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동안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해야 한다. 만약 혈압이 많이 낮아지면 약의 용량을 줄이거나 잠시 중단하는 것이 좋다.
또, 심부전증 환자들은 부종이 쉽게 생기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뇨제를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뇨제와 SGLT2 억제제는 모두 오줌의 양을 늘리고 혈압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다파글리플로진이나 엠파글리플로진을 시작할 때 이뇨제의 용량을 미리 줄이는 것은 혈압이 낮아지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이 된다. 또, 심부전증 환자들에게 꼭 필요하지는 않은 혈압약들, 예를 들면, 칼슘 차단제나, 클로니딘 (clonidine)을 중단하는 것도 저혈압을 방지하는 방법이다.
체중은 심부전증 환자의 치료 효과를 알아보는 데 있어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심부전증이 악화되면 몸안의 물의 양이 늘어나고 체중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체중이 하루만에 1 kg 이상 늘거나 일주일 사이에 3 kg 이상 증가하면 이는 심부전증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따라서, 몸안의 물의 양이 늘어나기 전의 체중 – 영어로는 dry weight라고 하고 우리말로 기준 체중이라고 하겠다 – 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SGLT2 억제제 자체가 체중을 줄일 수 있으므로 기준 체중도 줄일 수 있다. 가령, SGLT2 억제제를 시작하기 전의 기준 체중이 70 kg인 환자가 SGLT2 억제제를 시작하고 나서 체중이 2 kg 줄었다면 68 kg이 새로운 기준 체중이 된다. 따라서, 약을 시작한 이후에 체중의 변화를 잘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SGLT2 억제제는 신장기능을 일시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DAPA-HF시험에서는 신장기능을 알려주는 지표인 사구체 여과속도 (eGFR; estimated glomerular filtration rate의 약자로 단위는 ml/min/1.73 m2이다)가 30미만인 환자들, EMPEROR-Reduced시험에는 20미만인 환자들을 시험에 참가시키지 않았다. 약을 시작하고 첫 한달동안 신장기능이 5-10% 정도 떨어질 수 있으므로 혈액 검사 등을 통해 이를 잘 모니터해야 한다. 그리고, 신장기능이 30%이상 저하되면 약의 용량을 줄이거나 중단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SGLT2 억제제가 장기적으로는 신장을 보호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장기능이 갑자기 크게 저하되지 않는 이상 약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SGLT2 억제제는 원래 당뇨병약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혈당을 떨어뜨린다. 다행인 점은 SGLT2 억제제가 혈당을 떨어뜨리는 정도는 혈당 수치에 비례하기 때문에 혈당이 정상인 환자들의 경우 SGLT2 억제제에 의해 저혈당이 일어날 위험이 낮다는 것이다.
비뇨생식기 감염은 SGLT2 억제제의 가장 흔한 부작용이다. 비뇨생식기 감염은 SGLT2 억제제에 의해 소변의 포도당 양이 증가하기 때문에 비뇨생식기 주변에 사는 곰팡이가 번식하여 발생한다. 중요한 점은 이 감염증은 보통 항진균제로 쉽게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비뇨생식기 감염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다파글리플로진이나 엠파글리플로진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비뇨생식기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소변을 본 뒤 휴지로 잘 닦아 피부에 소변이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SGLT2 억제제는 정상 혈당을 동반한 당뇨병성 케톤산증 (euglycemic diabetic ketoacidosis)이라는 드물지만 치명적일 수 있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당뇨병성 케톤산증을 의심할 수 있는 메스꺼움, 구토, 복통, 정신 혼미, 숨쉴때 나는 과일 냄새 등의 증상들이 나타나면 빨리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정상혈당을 동반한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탈수, 감염 등에 의해 나타날 수 있으므로 평소에 물을 충분히 마시고 감염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며 감염이 생겼을 때에는 빨리 의사를 만나 치료해야 한다.
Mr. T는 베타차단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 알도스테론 억제제를 다파글리플로진을 시작하기 전부터 처방받아 복용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수축기 혈압은 110으로 95-100보다 높았으며, 어지러움과 같은 저혈압의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의무기록을 보니 다파글리플로진을 시작하기 전에 측정한 사구체 여과 속도는 70으로 30보다 훨신 높았다. 그리고, 다파글리플로진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체중에는 변화가 없었다. 또, 저혈당, 비뇨생식기 감염, 또는 정상혈당을 동반한 케톤산증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그에게 다파글리플로진을 계속 복용하도록 권고하였다. 그리고, 신장 기능을 모니터하기 위해 한달 뒤 재진을 예약해 주고 혈액을 검사하도록하였다. 아직 젋은 나이인 Mr. T가 처방받은 약들을 잘 복용하여 증상이 개선되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4-01 1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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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3> 의사 등 건강관련 전문직이 면허를 자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예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인이 강력범죄나 성폭력범죄를 저지르는 등 의료법 외의 법률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을 때 의사 면허를 최장 5년간 취소시킬 수 있는 법률안을 심의 통과시켰다. 단, 의료 행위중 발생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예외를 두었다. 이에 대해 의사단체들은 “범죄의 종류나 유형을 한정하지 않은 채, 사실상 모든 범죄로 하여 강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오히려 의료인이 자율적으로 윤리의식을 제고하고 스스로 엄격하게 면허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오히려 자율징계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직역의 경우, 직역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소비자 (건강관련 전문직역의 경우, 환자)의 신뢰이다. 그런데, 일반 공무원처럼 직역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면허의 관리를 맡기면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가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타율적인 조직으로 보이며 스스로의 자정 능력조차도 없는 것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전문직역들은 오래전부터 면허관리 행정에 직접 참여해 오고 있다. 이번 컬럼은 캘리포니아주에서 건강관련 전문직역의 면허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소개함으로써 직역의 자율적인 면허관리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면허제도의 목적
캘리포니아 제도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면허제도의 목적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면허는 기본적으로 그 소지자가 면허와 관계된 일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있어 적어도 최소한의 능력 (minimum competency)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부기관이 인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 지원자는 차를 안전하게 운전하고 다니는 데 필요한 적어도 최소한의 도로교통법 지식과 운전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따라서, 면허소지자가 면허와 관계된 일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그 면허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운전 면허 소지자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었을 경우 혈중 알코올 농도 등에 따라 면허가 취소된다. 그 이유는 면허 소지자가 차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의사와 약사와 같은 건강관련 전문직 종사자의 면허도 마찬가지다 - 만약 건강관련 전문직 종사자의 건강 상태나 행위 등이 그들의 직무를 안전하게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면허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환자를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건강관련 종사자의 면허관리제도는 면허 소지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고 유지하며 환자를 안전하게 돌볼 수 있는 지를 정기적으로 검증, 관리하여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2. 면허관리 주체와 방식
미국은 각 직업군마다 상임위원회 (Board)라는 조직에서 면허를 관리한다. Board라는 영어 단어는 어떤 조직의 최종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의미가 있으므로 이 상임위원회는 면허와 관련된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소비자 사업부 (Department of Consumer Affairs)에 의사 상임위원회 (Medical Board of California), 약사 상임위원회 (Board of Pharmacy), 간호사 상임위원회 (Board of Nursing) 등 직역별로 약 40개의 상임위원회들이 있다 (소비자 사업부 소속이기 때문에 이 직역에는 건강에 관련되지 않은 것들도 많다).
각 상임위원회는 해당 직역의 면허와 직역의 행위 (practice)를 관리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건강에 관련해서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따라서, 각 상임위원회는 면허 발급과 갱신, 직역의 재교육과 벌칙 (discipline), 및 직역에 관련된 법과 규정을 제안하고 만드는 역할을 한다.
상임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는 각 직역에 관한 법률과 규정에 따른다. 가령, 약사 면허를 관리하는 약사 상임위원회는 총 1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7명은 캘리포니아 주 여러 곳에서 일하는 약사들이고 6명은 일반인이다. 약사 7명과 일반인 4명은 주지사가 임명하며, 나머지 2명은 주의회 하원과 상원에서 각각 지명한 일반인들 (대개는 법률가)이다. 상임위원회 구성원의 임기는 4년이며 최대 8년동안 상임위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위에서 보듯이,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역종사자들이 상임위원회에 참여하기 때문에 직역이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관리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상임위원회의 구성원으로 법률가 등 일반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상임위원회가 직역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면 이들이 내린 중요한 결정, 가령, 규정을 어긴 면허 소지자의 벌칙에 대한 결정 등이 직역에 유리하게 내려져서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또, 상임위원회의 임무가 건강에 관련되어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상임위원회가 어떤 사항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 일반인들의 관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상임위원회는 직역을 관리하는 법과 규정을 만드는 일도 하므로 법률가의 관점도 필요하다. 따라서, 직역 혼자 면허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가 등을 포함한 일반인과 함께 협력하여 하고 있는 것이다.
3. 면허의 발급, 갱신 및 면허소지자에 대한 징계와 벌칙
미국의 면허 발급과 갱신의 주체는 각 직역의 상임위원회이다. 즉, 상임위원회가 면허 소지자격의 기준을 정하고 면허시험을 집행한다. 또, 상임위원회는 해당 직역 면허 소지자의 징계와 벌칙을 조사하고 결정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면허에 관련된 모든 행정상의 업무가 상임위원회로 일원화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면허에 관련된 정책의 설정과 집행이 효율적이며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면허 취소와 정지는 관련 법을 어긴 면허 소지자에게 내릴 수 있는 징계와 벌칙이다. 그리고, 징계와 벌칙의 사유와 내용은 각 직역에 관련된 법률과 규정에 정해져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의료법은 비직업적인 행위 (unprofessional conduct)가 징계와 벌칙의 중요한 사유로 취급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과처방 (clearly excessive prescribing), 과량의 검사 (clearly excessive use of diagnostic procedures), 환자에 대한 성적인 비행 (sexual misconduct) 등을 비직업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성적인 비행은 성폭행 뿐만 아니라 성희롱, 동의없이 이루어진 성적인 행위, 가령 만지기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런 비직업적인 행위는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이는 법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비직업적인 행위는 건강관련 종사자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건강관련 종사자에 대한 환자의 신뢰는 치료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왜냐하면, 환자가 자신의 몸에 대한 치료를 건강관련 종사자에 맡기는 것은 건강관련 종사자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신뢰가 깨지면 성공적인 치료를 이룰 수 없다. 그리고, 그 직역의 존립 자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각 건강관련 직역의 상임위원회는 환자의 신뢰를 깨뜨릴 수 있는 행위 – 성적인 비행, 과처방, 과잉검사, 부당청구 등 – 에 대해 형사처벌과 별도로 징계와 벌칙을 내리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의 건강관련종사자의 면허 취소와 징계 과정은 다음과 같다. 환자 등이 상임위원회에 신고를 하면 조사가 진행되고 여기서 법규를 어긴 것과 징계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상임위원회가 이를 검찰에 알린다. 이 때, 면허 소지자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면허 소지자는 청문회를 요구할 수 있다. 청문회는 정식 재판은 아니지만 재판과 비슷한 과정을 따른다. 청문회를 주관하는 사람은 행정법 판사 (Administrative Law Judge)로 이 판사는 청문회가 끝난 뒤 판결 결과를 상임위원회에 보낸다. 이 때 상임위원회는 이 판결 결과를 받아들이거나 바꾸거나 판결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조사와 징계 결정의 주체는 면허의 발급과 갱신을 책임지고 있는 상임위원회이다. 또, 조사 결과 위법사항이 확인되면 상임위원회가 검찰에 알려 형사소송도 따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즉, 면허 정지나 취소와 별도로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는 이중처벌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면허소지자는 면허를 갱신할 때마다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있는지 또는 병원 등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지에 대해 싱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만약 면허소지자가 그런 적이 있으면 상임위원회는 처벌과 징계의 이유가 직역을 수행하는 동안 환자 보호를 담보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여 면허 갱신 여부 - 면허 정지나 취소 여부 - 를 결정한다.
(의사 면허 갱신때 형사처벌 또는 징계 받았는지를 보고해야 한다는 안내문. 미국이나 외국에서 $300 이상 벌금 - 우리돈으로 약 30만원 - 낸 것은 모두 보고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캘리포니아주의 전문직종의 면허관리제도를 통해 보았을 때 전문직역이 자율적으로 면허관리를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필요하다.
1) 면허관리주체의 일원화
면허 정책에 대한 일관성과 효율성을 위해 한 주체 (예를 들면, 상임위원회)가 면허관리에 대한 모든 것 (면허 발급, 갱신, 면허관련법 제안 및 면허 소지자에 대한 징계와 벌칙) 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면허 소지자의 징계와 벌칙에 대한 행정을 면허 발급, 신고 (우리나라는 면허관리 주체가 소지자의 면허 유지 자격을 다시 검토하는 갱신제가 아니라, 이보다 덜 엄격한 – 면허관리 주체의 검토없이 소지자의 신고로만 면허가 유지될 수 있는 - 신고제이다)에 대한 행정과 분리하는 것은 면허 정책에 대한 일관성을 떨어뜨리며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
2) 직역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환자를 보호하는 면허관리 주체
면허 정책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문직역의 특성과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전문직역의 특성과 성격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그 전문직역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이 면허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데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면허관리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소비자와 환자 보호이므로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도 함께 참여해햐 한다. 그리고, 면허의 발급주체는 정부이고 면허관리제도의 목적은 소비자와 환자 보호이므로 면허를 관리하는 주체는 이익단체가 아닌 정부기관 소속이어야 한다.
3) 소비자 및 환자 보호를 위해 제정된 면허관리법
면허관리는 면허를 관장하는 법에 따라야 하며 이 법의 목적은 소비자와 환자의 보호이다. 그런데, 현재 집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의료법과 약사법은 이런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선, 환자에 대한 성적인 비행 등 비직업적인 행위에 대한 조항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를 저질러서 소비자와 환자의 보호를 담보할 수 없는 면허소지자도 면허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형사처벌을 받았거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병원 등의 조직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경력이 있는 면허소지자의 경우, 면허관리주체는 처벌과 징계의 이유에 따라 면허소지자가 직역을 수행하는 동안 환자 보호를 담보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서 면허 유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조항이 빠져있다 (신고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보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4) 법에 따른 면허소지자에 대한 징계와 처벌
면허소지자에 대한 징계와 처벌은 면허관리 주체의 임의가 아닌 법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현행 면허관리에 관련된 법은 소비자와 환자 보호라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무리 이익단체가 최선을 다해 자율적으로 관리를 하려고 하더라도 현행법의 한계로 인해 소비자와 환자의 보호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건강관련직종의 면허제도는 소비자 및 환자 보호라는 목적아래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제도의 여러가지 미비점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현행 면허제도는 이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전문직역, 정부, 소비자 단체들이 협력하여 보다 나은 제도를 만들 수 있길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3-02 1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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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2>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맞다
‘귀하는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접종 대상자로 확인되었으니 아래 지시사항을 따라 접종하시기 바랍니다.’
학교로부터 받은 이 이메일에는 백신 접종을 어떻게 예약해야 하는지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학교는 접종 대상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전에 학교의 전자의무기록인 MyChart에 접종 대상자들을 모두 등록시켜 놓았다. 학교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인 UCSF Health가입자는 이 이메일을 받기 전부터 학교의 전자의무기록에 이미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등록시킬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나처럼 다른 종류의 건강보험을 가진 학교 직원들도 학교에서 접종받을 수 있도록 미리 등록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여러가지 다른 종류의 건강보험을 가진 사람들도 학교에서 접종할 수 있는 이유는 연방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비용을 지불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전자의무기록의 스크린 갈무리.
학교의 전자의무기록은 학교 병원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환자용으로 만든 것이다. 환자가 집에서 자신의 의무기록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환자용 전자의무기록은 웹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로그인을 하니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접종에 대한 전자 동의서를 바로 볼 수 있었다. 이 동의서는 두 가지 사항을 확인하도록 요구하였다. 첫째, 내가 이메일을 받았을 때에만 해도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접종 대상자가 환자를 직접 보는 건강관련종사자 (healthcare provider)로 제한되어 있었다 (현재는 65세 이상의 일반인으로 대상자를 넓힌 상태이다). 그래서, 내가 이에 해당하는지 확인하는 문항이었다. 둘째,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위험군인지 확인하기 위해 내가 과거에 다른 백신을 접종받았을 때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성분 (예, polyethylene glycol, polysorbate)에 의해 알러지 반응을 겪었는지에 대해 물어 보았다. 이 두가지 사항에 대해 확인을 한뒤 백신 접종 동의서에 전자 서명을 하도록 했다.
서명을 마치자 백신 접종을 예약하는 페이지로 인도되었다. 이 페이지에는 접종 날짜별로 현재 예약이 가능한 시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자 예약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 메시지는 이메일로도 자동으로 전달되었다). 또, 메시지는 백신 접종 장소와 근처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장소를 지도와 함께 자세히 알려 주었다.
접종일 아침 일찍, 당일 접종예약을 확인해 주는 메시지가 이메일과 휴대전화기의 문자로 동시에 들어왔다. 우리 학교는 샌프란시스코 시내 여러 군데에 캠퍼스와 병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중 두 군데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제조회사 별로 접종하고 있다. 화이자 (Pfizer)백신은 파나서스 (Parnassus) 캠퍼스에서, 모더나 (Moderna) 백신은 미션 베이 (Mission Bay) 캠퍼스에서 접종한다. 내가 접종을 받은 곳은 미션 베이 캠퍼스였다 (그런데, 예약과정에서 접종대상자가 백신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내가 백신 접종을 받은 건물은 회의와 수업 등으로 그동안 여러 번 가 보았던 곳이었다. 건물 문을 들어서자 출입자를 통제하고 있는 안내인이 방문 목적을 물어 보았다. 백신 접종을 위해 왔다고 하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여부를 확인하는 자가 보고에 대한 결과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여부를 확인하는 자가 보고 (Daily Health Screen)의 첫 페이지 갈무리.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아직까지 우리학교는 재택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볼 일 등으로 학교를 방문하고자 하면 직원들은 학교 건물안으로 들어서기 전에Daily Health Screen이라 불리는 자가 보고를 온라인으로 마쳐야 한다. 이 자가 보고는 시료를 추출해서 바이러스를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증상이 있는지, 최근 20일동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진단을 받았었는지, 코로나바이러스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과 같이 살고 있는지, 최근 14일 동안 밀접 접촉이나 여행을 다녀왔었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 직원 스스로 보고하는 것이다. 자가 보고가 음성이면 보고를 마친 시간으로부터 18시간 동안 학교 건물에 출입할 수 있다는 온라인 허가증을 받는다. 이 시간이 지나면 자가 보고를 다시 해야만 학교 건물에 들어갈 수 있다.
온라인 허가증을 휴대전화로 보여주자 안내인은 백신 접종 방문을 등록하는 창구로 안내하였다. 이 창구에서 일하는 직원은 내 이름과 생년월일로 전자의무기록에 예약된 시간을 확인하고 백신 알러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다음, 그는 미국질병통제센터 (CDC)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부작용을 모니터하기 위해 만든 v-safe라는 백신접종자 추적 프로그램에 등록하도록 나에게 요청하였다. 휴대전화로 등록창구에 마련된 QR 코드를 스캔하니 이 프로그램의 웹사이트로 자동으로 인도되었다. 프로그램에 등록하기 위해 이름, 나이, 인종, 성별과 휴대전화번호를 기입했다.
등록을 마치자 접종하는 곳으로 안내받았다. 백신을 접종하는 곳은 두 군데였는데 각각 30-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이었다. 강의실 안은 5-6 개의 긴 책상들이 띠엄띠엄 간격을 두고 평행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 의자들이 띠엄띠엄 배치되어 있었다. 책상과 책상, 의자와 의자 사이의 간격을 보니 거리두기 기준 – 약 2 미터 – 을 맞추고 있었다. 또, 한 책상 당 접종을 담당하는 사람이 한 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이들은 간호사, 간호대 학생, 약사, 약대 학생들로 모두 녹색 조끼를 입고 있어서 구분이 쉬웠다. 그런데, 이들은 한 자리에 고정되어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자신이 맡은 책상에 띠엄띠엄 앉아 있는 환자들에게 옮겨 다니면서 백신을 접종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배치와 방법은 접종대상자간 거리두기 간격을 유지하면서 한 예약 시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접종시키고 접종 후 15분 동안 관찰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만약 접종자가 한 곳에만 앉아 있으면 접종대상자들이 접종과 접종 후 관찰을 위해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한 예약시간 대에 오는 접종대상자 수가 접종자 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접종대상자들이 이동하게 되면 이들간 거리두기 간격이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접종자가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이 이용되었다. 첫째, 간호사들은 모두 데스크탑 (desktop)이 아닌 노트북을 이용하여 접종대상자의 전자의무기록에 접근하고 있었다. 둘째, 백신은 바이알 (vial) 이라 불리는 작은 유리병에 담겨 제조사로부터 공급된다. 바이알 당 접종할 수 있는 양은 제조사마다 달라 화이자 백신은 최대 6번을, 모더나 백신은 10번을 쓸 수 있는 양을 담고 있다. 따라서, 접종하기 위해서는 바이알로부터 주사기로 적정량을 뽑아 내어야 한다. 만약 접종자가 이 일을 해야 한다면 여러 자리로 이동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를 약국이 도와 주고 있었다. 즉, 약국이 미리 소분하여 주사기에 적정량을 담아 접종하는 곳에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접종자는 접종이 바로 가능한, 미리 마련된 주사기만 들고 다니면 된다. 이 소분 작업에 약대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여 도와주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높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그래서, 백신 바이알을 훔치는 사건도 발생했을 정도다. 그런데, 약국이 바이알을 직접 관리하면 약국 출입이 허가된 사람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백신 바이알을 도둑맞을 가능성이 적다 (백신 절도를 막기 위해 우리 학교 병원 약국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마약에 준하는 수준으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나를 접종한 사람은 간호대 학생이었다. 백신 맞을 때의 느낌은 독감 등 다른 백신과 다르지 않았다. 백신 접종을 마치자 그는 두 번째 접종을 받으러 올 때 필요하다며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기록 카드에 이름, 생년월일, 제조회사, 로트 번호 (lot number), 접종일, 접종장소 등을 기입하여 주었다. 그리고, 전자의무기록을 통해 두번째 접종 예약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48시간안에 받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기록 카드 (COVID-19 vaccination record card).
접종 후 15분간의 관찰기간동안 아무런 이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접종때부터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접종 장소를 떠날 수 있었다. 접종대상자의 동선은 일방통행으로 설계해 놓았기 때문에 건물을 나가는 통로는 들어가는 통로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가는 동안 다른 접종자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접종 당일에서 그 다음날까지 접종 부위의 통증만 있었을 뿐 – 다른 백신보다는 좀 더 아프기는 했다 - 다른 이상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질병통제센터는 내가 등록한 v-safe 프로그램을 통해 접종후 이상 증상유무를 매일 확인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매일 내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이 전화메세지안의 링크를 클릭하면 접종후 이상 증상이 있는지 묻는 웹사이트로 연결된다.
v-safe 프로그램 접종후 이상 증상 질문 화면.
전체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접종 과정은 단시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접종시키기 위해 세심하게 배려하고 준비되어 있었다. 접종대상자가 전자의무기록을 통해 스스로 예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편리했으며 지도를 통한 지시가 잘 마련되어 있어 접종 장소를 찾기 쉬웠다. 또, 접종대상자의 동선을 일방통행으로 설계하고, 접종대상자의 이동을 최소화하도록 접종실의 책상과 의자를 배치하며, 접종자가 이동하도록 하여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접종받고 또 접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접종 등록 때 QR 코드를 사용하여 접종대상자가 연방정부의 v-safe 프로그램에 쉽게 등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프로그램은 휴대전화와 인터넷 링크를 이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백신의 안전성을 모니터링하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잘 디자인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약대 학생들은 백신을 주사기에 소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간호대 학생들과 함께 백신을 직접 접종하는데 참여하고 있어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뿌듯했다. 뿐만 아니다. 우리 학교 총장 (Chancellor)도 소분한 백신을 담은 주사기를 나르는 데에 일일 자원봉사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나르는 UCSF 총장, 호구드박사 (Dr. Sam Hawgood). 백신을 나르는 사람은 파란색 조끼를 입는다. 사진출처: UCSF 페이스북 갈무리.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치고 있으니 코로나바이러스를 퇴치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2-01 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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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1> 헷갈리는 인슐린 상품들 – 기저 인슐린과 식사 인슐린
Mr. H 는 78세의 2형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 일차의료제공자로부터 인슐린 용량 조절에 대한 진료의뢰를 받아 내 클리닉을 방문했다. Mr. H의 의무기록을 읽어 보니 그에게 두 종류의 인슐린이 처방되어 있었다:
인슐린 글라진 (glargine) 12 units 하루 한 번
인슐린 아스파트 (aspart) 4 units 식사15분전마다 하루 세 번
“Mr. H, 인슐린 글라진을 어떻게 사용하시나요?”
“매 식사 15분전 4 unit 씩, 하루 세 번 주사합니다.”
“네? 식사 전마다 세 번 주사하신다고요?”
“예. 글라진은 세 번 맞고 아스파트는 매일 자기 전에 8 unit을 한 번 주사합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혹시 밤중에 저혈당의 증상, 예를 들어, 허기지고 기운 없으며 식은 땀이 난 적은 없으세요.”
“네, 밤중에 혈당이 60대로 떨어진 적이 두어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단음식을 좀 먹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스파트 용량을 12 unit에서 8 unit으로 줄였습니다.”
Mr. H는 처방받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종류의 인슐린 - 글라진과 아스파트 – 의 용도에 대해 혼동하고 있었다. 그가 이민자이기 때문에 영어가 서툴러서 약병에 쓰인 라벨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혼동을 일으킨 한 원인일 것이다. 무엇보다 인슐린 상품은 여러 종류가 있고 사용목적이 다르다는 것이 많은 환자들에게 혼동을 준다.
인슐린은 췌장에서 만드는 호르몬으로 혈액 속에 있는 포도당이 우리 몸의 세포안으로 잘 들어 가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즉, 혈액의 포도당이 세포안으로 잘 들어가면 혈액 속의 포도당의 양이 줄게 되므로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만드는 인슐린은 한 종류인데 왜 여러 종류의 인슐린 상품들이 사용되고 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루동안 우리 몸이 인슐린을 분비하는 경향 (pattern)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먼저 인슐린이 우리 몸에서 하루동안 어떤 경향으로 분비되는 지를 아래 그림 1을 이용하여 설명하기로 한다.
그림1. 당뇨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의 24시간 동안의 인슐린 분비 경향.
(그림 출처: www.dtc.ucsf.edu)
그림1은 당뇨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에서 혈중 포도당 농도와 인슐린 농도가 어떻게 24시간동안 변하는 지 보여 준다 (위쪽 그림은 혈중 포도당 농도이고 아래쪽 그림은 인슐린 농도이다). 두 그림 모두 가로축은 시간을 나타내며 세로축은 각각 혈중 포도당 농도 (glucose level)와 인슐린 농도 (insulin level)를 나타낸다. 또, 아래 그림의 가로축은 아침 (breakfast), 점심 (lunch), 저녁 (supper) 식사를 먹는 시간도 화살표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윗 그림에서 0으로 표시된 자정에서 아침식사전까지 혈중 포도당 농도는 약 80-100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이 기간 (nighttime)동안 인슐린의 농도도 비교적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 중요한 점은 밤중에 혈중 포도당 농도와 인슐린의 농도가 0이 아닌, 이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몸의 장기들은 그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 에너지원인 포도당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장기들은 낮과 밤에 관계없이 포도당이 필요하다. 즉, 포도당이 24시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에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포도당을 얻는다. 하지만, 우리는 밤에 자기 때문에 아무런 음식을 먹지 못하므로 우리 몸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포도당을 조달해야 한다. 이를 맡은 우리 몸의 장기는 간이다 - 간은 외부로부터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밤에 포도당을 만들어 다른 장기들에게 공급한다. 이 때문에 밤중의 혈중 포도당 농도는 0이 아니며 80-100 mg/dL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포도당이 장기의 세포안에 들어가서 사용되기 위해서는 인슐린이 필요하다. 그래서, 밤중에도 인슐린이 분비된다. 그런데, 밤에는 간이 필요한 양만큼의 포도당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분비되는 인슐린의 양은 많지 않다. 그리고, 밤동안 간이 만들어 내는 포도당의 양은 일정하기 때문에 분비되는 인슐린의 양도 일정하다. 이처럼 적지만 일정한 양의 인슐린은 밤에만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 24시간동안 분비된다. 왜냐하면,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기간인 식사와 식사 사이 (예: 아침과 점심식사 사이)에도 포도당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인슐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적지만 일정한 양으로 인슐린이 하루종일 꾸준히 분비되는 것을 기저 인슐린 (basal insulin)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식사를 하게 되면 음식으로부터 갑자기 많은 양의 포도당을 얻게 된다. 그런데, 우리 몸은 혈중 포도당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갑자기 외부로부터 섭취하는 많은 양의 포도당을 처리하기 위해 많은 양의 인슐린을 짧은 시간동안 분비한다. 그림 1의 아래 그림을 보면,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한 다음, 인슐린의 양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1의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외부로부터 많은 양의 포도당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분비되는 많은 양의 인슐린 덕분에 식사 후 혈중 포도당은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이와같이 식사직후 짧은 시간동안 많은 양의 인슐린이 분비되는 것을 식사 인슐린 (bolus insulin; meal time insulin)이라고 부른다.
요약하면, 우리 몸은 두 가지 경향으로 인슐린을 분비한다. 하나는 적지만 일정한 양으로 인슐린이 하루종일 꾸준히 분비되는 기저 인슐린, 다른 하나는 식사직후 짧은 시간동안 많은 양으로 분비되는 식사 인슐린이다. 따라서, 인슐린을 약으로 이용하여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조절하려고 할 때 인슐린의 정상적인 분비 경향 – 기저 인슐린과 식사 인슐린 - 을 따라야 효과적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우리 몸은 혈중 포도당 농도를 인지하고 이에 따라 알맞은 양의 인슐린을 분비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인슐린을 주사하여 혈당을 조절해야 하는 경우, 시시각각 변하는 혈중 포도당 농도를 24시간내내 측정하고 이에 따라 인슐린 양을 조절하여 24시간내내 주입하는 것은 대부분의 환자에게 실용적이지 않다. 그래서, 하루 2-4 회라는 비교적 적은 횟수의 주사로도 하루동안의 혈중 포도당을 조절할 수 있도록 여러 인슐린 상품들이 인슐린의 용도 - 기저 인슐린과 식사 인슐린 -에 따라 개발되었다.
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인슐린 상품들 (혼합인슐린 제품은 포함하지 않음).
기저 인슐린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슐린 상품은 하루 한 번이나 두 번의 피하주사로 일정량의 인슐린이 주사맞은 부위로부터 24시간내내 혈액으로 분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켜 기저 인슐린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인슐린 상품으로는 인슐린 글라진, 디터머 (determir; 영어로는 데트미어라고 읽는다), 데글루덱 (degludec) 이 있다 (아래 그림 2 참조). 이 인슐린 상품들을 용량에 따라 하루에 두 번 주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인슐린 상품들은 하루에 한 번 주사한다.
그림 2. 주사한 후 시간에 따른 인슐린 상품들의 혈중 인슐린 농도 (괄호안의 시간은 작용시간을 말한다).
인슐린 NPH는 기저 인슐린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작용기간이 24시간동안 지속되지 않아 하루에 두 번 주사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기저 인슐린들은 혈중 농도가 24시간동안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에 비해 NPH는 시간에 따른 혈중 농도의 변동이 커 저혈당의 위험이 더 높다 (그림 2 참조). 하지만, NPH는 주사하고 4-6시간 후에 혈중 인슐린의 농도가 최고로 높아지기 때문에 이 시간에 섭취한 음식으로부터 증가한 혈당을 내릴 수 있다. 즉, 식사 인슐린의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NPH는 기저 인슐린과 식사 인슐린의 두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인슐린 글라진은 두 종류가 있는데 글라진과 글라진-300이 그것이다. 글라진과 글라진-300은 내용물 – 글라진 - 이 같지만 내용물의 농도가 다르다. 글라진은 1 ml에 인슐린 글라진이 100 unit 들어 있지만 글라진-300은 1 ml에 300 units이 들어 있다. 즉, 같은 용량에서 글라진-300은 글라진보다 3배 더 글라진의 농도가 더 높은 것이다. 따라서, 글라진-300은 많은 양의 글라진 용량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
식사 인슐린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슐린 상품은 음식의 섭취로 인한 급격한 혈당증가를 막기 위해 혈당 강하 작용이 빠르게 나타나야 한다. 또, 작용기간이 길어 다음 식사 시간 이후에까지 작용하게 되면 그 식사 전에 주사한 식사 인슐린과 함께 작용할 수 있어 저혈당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침식사 전에 주사한 식사 인슐린이 점심식사 이후까지 작용한다고 하자. 그리고, 이 환자는 점심식사 전에도 식사 인슐린을 주사한다. 그러면, 점심식사 후 몸에 있는 인슐린의 총량이 늘게 되어 저혈당의 위험이 증가한다. 따라서, 식사 인슐린은 작용기간이 다음 식사 전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 좋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인슐린 상품은 아스파트 (aspart; 영어로는 애스파트라고 읽는다), 리스프로 (lispro), 글루리신 (glulisine; 영어로는 글루라이신이라고 읽는다) 등이 있다. 이들은 식사 15분전에 주사하고 식사를 하지 않으면 주사를 생략한다.
인슐린 레귤라 (regular)도 식전 인슐린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인슐린 상품은 우리 몸에서 만드는 인슐린과 동일한 것이지만 아스파트, 리스프로, 글루리신에 비해 몇 가지 단점이 있다. 먼저, 인슐린 레귤라는 주사 후 혈당강하 작용이 나타나는 시간이 비교적 느려 식사전 30분전에 주사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또, 작용기간이 다른 식전 인슐린 상품보다 좀 길어 저혈당의 위험이 높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종합한 것이 그림 3이다.
그림 3. 생리적인 인슐린 분비 경향을 따르기 위한 기저 인슐린과 식사 인슐린 상품의 사용 방법.
당뇨병 치료를 위해 인슐린을 사용할 때 두 종류의 인슐린이 필요하다. 하나는 기저 인슐린, 다른 하나는 식사 인슐린이다. 이렇게 두 종류의 인슐린이 필요한 이유는 생리적인 인슐린 분비 경향을 따르는 것이 혈당 조절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글라진, 데글루덱과 같은 기저 인슐린은 작용시간이 24시간 또는 이보다 길기 때문에 보통 하루에 한 번 자기전에 주사한다 (그림 3에서 빨간 화살표). 아스파트, 리스프로, 글루리신과 같은 식사 인슐린은 혈당 강하 효과가 빨리 나타나기 때문에 매 식사 15분 전에 주사한다 (그림 3에서 녹색 화살표). 하루 세 번 식사하는 환자의 경우, 이 방법은 하루 네 번 주사를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인슐린의 효과와 저혈당을 방지하기 위해 혈당을 하루에 네 번 이상 측정해야 한다. 즉, 환자에게 많은 것들이 요구되는 방법인 것이다. 그래서, 이를 따르기 어려운 환자의 경우, 이번 블로그에서는 다루지 않겠지만, 기저 인슐린과 식사 인슐린을 혼합한 제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두 종류의 인슐린을 혼합한 제품을 쓰면 하루 주사 횟수를 2-3번으로 줄일 수 있어 환자에게 좀 편리하다. 하지만, 하루에 4번 주사하는 방법보다 혈당 조절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Mr. H 는 기저 인슐린으로 써야 하는 글라진을 식사 인슐린으로, 식사 인슐린으로 써야 하는 아스파트를 기저 인슐린으로 사용해 왔다. 글라진은 작용시간이 느리고 혈중 인슐린 농도가 낮아 식사후 급격히 증가하는 혈당을 낮출 수 없다. 그래서, 식사 후 혈당을 낮추기에 부적합하다. 아스파트는 작용시간이 빠르지만 작용기간이 짧다. 그래서, 기저 인슐린으로 사용할 수 없다. 또, 아스파트는 주사 후 혈중 인슐린 농도가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에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저혈당이 발생하기 쉽다. 그래서, Mr. H는 밤에 저혈당이 두어 번 발생한 것이다. 인슐린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저 인슐린과 식사 인슐린을 용도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1-01-04 1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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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80>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개발 동향에 대한 정부의 오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개발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모양이다. 그동안 백신 개발을 주도해 오던 화이자 (Pfizer), 모더나 (Moderna), 아스트라제네카 (AstraZeneca) 세 제약회사가 각각 개발해 오던 백신의 임상시험 결과를 최근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화이자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자사 제품의 판매 허가를 벌써 신청해 놓았는데 허가 승인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빠르면 12월 중순에는 백신이 미국시장에 나올 수 있으리고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정부 차원에서 이 세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백신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지난 11월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화이자의 경우 94%의 효능이 있다고 하고, 모더나는 90%라고 하는데 자사들이 소수의 시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고 학문적으로는 정확하지 않다”며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두 개 실험집단에서 하나는 60%, 하나는 90% 나와 90% 나온 효능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박 장관은 “아스트라제네카 생산기지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데 그 중 우리나라에서 상당량 생산하고 있어 유리한 조건에서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이자 백신의 임상시험은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모더나 백신 임상시험은 미국에서, 그리고 아스트라제네카의 것은 영국과 브라질에서 수행되었다. 아직까지 이 백신들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를 담은 논문이 발표되지 않아 이 백신들의 효능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박장관의 발언은 미국언론 보도와 인터넷에 공개된 이 세 회사의 백신 임상시험 프로토콜 내용과 많이 상충된다.
먼저 피험자 수에 대해 살펴 보자.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세 회사의 임상 시험 중 가장 피험자 수가 적은 것은 아스트라제네카의 임상 시험으로 약 2만 3천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임상시험은 각각 4만 3천여명과 3만여명이 참여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현재 미국내에서 임상시험을 따로 진행 중인데 이도 약 3만여명의 피험자를 모집할 계획이니 화이자나 모더나의 임상시험보다 규모가 더 크지 않다.
임상시험의 피험자 수는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 정해진다. 그 중 두 군 – 여기서는 백신 접종군과 위약 접종군 – 간의 효능의 차를 충분히 관찰할 수 있는지 여부도 한 요소이다. 미국내 시판을 위한 백신은 보통 위약군보다 50% 이상의 보호 효과를 나타내면 허가를 받을 수 있으므로 화이자와 모더나의 임상시험은 모두 백신군이 위약군보다 60% 이상의 보호 효과를 나타낼 경우 이 차이를 충분히 관찰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임상시험은 프로토콜을 찾을 수 없어 피험자 수를 어떻게 결정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아스트라제네카의 임상시험은 사실 영국과 브라질에서 수행된, 디자인이 다른 두 개의 서로 다른 임상시험들의 결과를 하나로 묶어 발표한 것이다. 이렇게 다르게 디자인된 임상시험들의 결과를 하나로 묶어 발표하는 것은 임상시험의 결과를 보고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다. 따라서, 아스트라제네카의 임상시험 분석과 보고 방식은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많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임상 시험은 또다른 중요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임상시험 수행 초기에 발생한 실수로 백신군에 할당된 일부 피험자가 시험에서 계획한 용량보다 더 적은 양의 백신을 접종받았다는 것이다. 이 임상시험에서 백신은 28일 간격으로 두 번에 걸쳐 접종하도록 디자인되었지만 실수로 인해 첫 2300여명의 피험자들은 첫번째 백신을 맞을 때 원래 계획했던 용량의 반만 접종받았다. 그런데, 실수를 발견한 다음 참가한 나머지 약 8900명은 원래 계획했던 용량을 접종받았기 때문에 임상시험에서 처음에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세 개의 군이 생긴 것이다: 첫번째 백신을 반량만 맞은 군, 첫번째 백신을 원래 용량대로 맞은 군, 그리고 위약군. 그런데, 문제는 예상과 달리 첫번째 백신을 반량만 맞은 군은 보호 효과를 90% 정도 나타낸 반면 원래 용량대로 맞은 군은 60%의 효과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적은 양을 접종받은 군에서 더 높은 보호효과가 나타난 것을 아스트라제네카는 아직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반량만 맞은 군에는 면역력이 떨어지고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합병증에도 취약한 55세 이상의 고위험 참가자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반량만 맞은 군이 더 좋은 보호효과를 보인 것은 좀 더 면역력이 강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많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반량 접종이 고위험군에도 그처럼 좋은 효과를 보이는지는 아직 알 수 없는 것이다. 또, 반량 접종군의 피험자 수는 고작 2300여명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반량 접종군은 원래부터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실수로 인해 우연히 더해졌고, 이것의 보호 효과가 더 좋다는 것도 우연히 발견되었다. 따라서, 반량 접종이 정량 접종보다 더 우수한지를 정식으로 확인하는 임상시험을 다시 수행해야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들이 제기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이런 문제점으로 미루어 볼 때,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개발 동향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의 정보 수집과 분석에 아쉬움이 든다. 물론, 어떤 회사의 백신을 선택할 때 백신의 가격과 국내 생산 여부는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의 근본적인 목적은 감염병으로부터 보호이므로 임상시험에서 확인된 보호 효과와 안전성이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가장 효과가 좋고 안전한 백신을 공급할 수 있도록 현재 개발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정보 수집과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나는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나 다른 제약회사와 아무런 이해 관계에 대한 충돌이 없음을 밝혀둔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11-30 1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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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9> 인슐린 보관의 중요성 (환자 사례)
Mr. S 는 2형 당뇨병을 앓고 있는 42세의 환자로 인슐린 용량 조절을 위해 내 클리닉에 오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인슐린 상품들은 다음과 같다.
인슐린 글라진 (Insulin glargine) 35 units하루 한 번
인슐린 아스파트 (Insulin aspart) 12 units 하루 세 번 식사 전
Mr. S씨가 내 클리닉을 처음 방문한 것은 2개월 전이었다. 당시 그는 당뇨성 케톤산혈증으로 입원하였었고 인슐린을 처방받아 퇴원하였다. 그 후에 그의 일차의료제공자는 나에게 진료의뢰를 보내 인슐린 용량 조절을 부탁하였다.
Mr. S의 혈당은 처음에는 매우 높았다. 그래서, 나는 매주 클리닉에서 그를 만나 인슐린의 용량을 조절하였다. 그는 나의 지시를 성실히 따랐으며 또 식사량을 조절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였다. 덕분에 지난 달부터 그의 식전과 식후 혈당은 모두 목표치에 도달하였다. 그러다가 2주 전에 저혈당이 몇 번 나타나서 인슐린의 용량을 줄여야만 했다. 그런데, 그의 지난주 혈당을 보니 모두 목표치보다 높았으며 200이 넘는 때도 꽤 있었다.
혈당수치에 영향을 주는 것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약, 식사, 운동량이 그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Mr. S, 혈당수치가 갑자기 높아져서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지난 주에 인슐린 주사 맞는 것을 잊은 적이 있었나요?"
"한 번도 없습니다."
"얼마의 용량으로, 얼마나 자주 인슐린 글라진을 주사하셨나요?"
"35 units을 하루에 한 번 주사했습니다."
"인슐린 아스파트는 어떻게 주사하셨나요?"
"12 units을 식사 15분 전에 매번 주사했습니다."
"2주전과 비교했을 때 지난 주의 식사량은 얼마나 달라졌나요?"
"거의 달라지지 않았는데요."
"하루에 몇 번 식사하셨나요?"
"요일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에 두세 번 식사했습니다."
"하루에 간식을 몇 번 드셨습니까?"
"간식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청량음료나 쥬스는 몇 번 드셨나요?"
"한 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Mr. S 께서 하루에 30분씩 두 번 밖에서 산책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지난주에 운동량이나 운동 횟수를 줄이셨나요?"
"줄이지 않았습니다."
미스테리였다. 약, 식사, 운동 중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혈당 수치가 갑자기 높아졌을까?
최근, 날이 좀 더웠다는 것이 생각났다.
"인슐린을 어떻게 보관하고 계셨나요?"
"제 방 안에 두었는데요."
"언제 약국에서 인슐린을 받으셨나요?"
"약 5주전에 받았습니다."
"인슐린은 상온에서 28일까지 보관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혈당 수치가 갑자기 높아진 이유는 아마도 인슐린을 상온에서 너무 오랫동안 보관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인슐린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나요?"
"개봉하지 않은 인슐린은 냉장고에 보관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인슐린이 차면 주사할 때 아플 수 있기 때문에 인슐린을 개봉한 다음에는 상온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온에서 보관하는 경우, 말씀드린 대로 28일, 즉, 4주동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슐린을 개봉한 후 상온에서 보관하고자 할 때에는 인슐린 병에 개봉 날짜를 꼭 적어 두십시요."
"네, 알겠습니다."
"집에서 보관하고 계신 인슐린은 모두 폐기하십시요. 제가 오늘 약국에 새로운 인슐린 처방전을 보내겠습니다."
다음 주, Mr. S가 클리닉을 방문하였다.
"지난주 선생님과의 방문을 마치고 바로 약국에 가서 새 인슐린을 받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져온 혈당계에 기록된 혈당 수치를 보니 많이 좋아져 있었다. 지난 번 그의 혈당 수치가 높아졌던 이유는 인슐린을 잘못 보관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슐린을 적절하게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은 효과적인 당뇨병 조절을 위해 아주 중요한 사항이다.
* 인슐린 상품 중 데글루덱 (Degludec; 상품명: 트레시바)는 상온에서 56일까지 보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데글루덱과 아스파트를 혼합한 상품인 리조덱을 포함한 다른 인슐린 상품들은 상온에서 최대 28일 동안만 보관할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11-02 1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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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8> 인슐린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
Mr. G 는 59세의 남성으로 2형 당뇨병 환자이다. 그는 2주전 일차의료제공자로부터 인슐린을 처방받았는데 인슐린에 대한 환자 교육을 위해 오늘 내 클리닉을 방문했다. 클리닉 방침에 따라 그는 사용하고 있는 모든 약을 들고 왔다.
“Mr. G, 복용하시는 약을 가져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약들이 현재 복용하고 계신 모든 약들인가요?”
“예.”
“여기 새로 처방받은 인슐린도 있군요. 그런데, 포장이 뜯기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인슐린을 시작하지 않으신 것 같군요.”
“예, 아직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슐린이 정말 저에게 꼭 필요한가요? 저는 그동안 경구용 당뇨병 약도 여러 개를 꾸준히 복용해 와서 아무 증상을 느낄 수 없어서요. 그리고, 인슐린을 맞으면 약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아 시작하기 싫습니다.”
Mr. G는 당뇨병 진단을 받은 이래로 지난 6년간 메트포민 (metformin), 글리피지드 (glipizide), 시타글립틴 (sitagliptin) 등 세 가지 경구용 당뇨병약을 최고 용량으로 복용해 왔다. 진단후 첫 5년간 그의 당뇨병은 그런대로 잘 조절되었다. 하지만, 최근 1년 동안 당뇨병 조절의 지표인 혈중 당화혈색소 (당화 헤모글로빈; hemoglobin A1c) 수치가 7-7.5%에서 9%대로 악화되었다. 식이조절을 더 강화하고 운동량도 늘렸지만 혈중 당화혈색소 수치가 줄어들지 않자 일차의료제공자가 인슐린을 처방한 것이다.
인슐린 (insulin; 영어로는 인설린으로 발음한다)은 췌장에서 만드는 호르몬으로 혈액 속에 있는 포도당이 우리 몸의 세포안으로 잘 들어 가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즉, 혈액의 포도당이 세포안으로 잘 들어가면 혈액 속의 포도당의 양이 줄게 되므로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2형 당뇨병은 과체중, 복부비만 등으로 인해 인슐린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여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인슐린이 혈액 속에 있더라도 세포들이 인슐린에 잘 반응하지 않아 포도당이 세포안으로 잘 들어가지 못하여 혈당이 높은 것이다. 혈당이 높아지면 췌장은 이를 낮추기 위해 인슐린을 더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것이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면 췌장은 지치게 되고 결국 인슐린을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2형 당뇨병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인슐린 주사를 필요로 하게 된다.
연구에 의하면, 당뇨병 증상이 처음 나타나서 2형 당뇨병으로 진단받았을 때에는 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드는 세포의 반이 이미 인슐린을 만들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남아 있는 세포의 반마저도 병이 진행함에 따라 향후 5-10년 사이에 과로로 인슐린을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들은 혈당을 낮춰 췌장이 빨리 지치지 않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이들은 당뇨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의 당뇨병 치료에서의 주 역할은 인슐린이 필요하게 되는 시기를 지연시키는 것이다.
“Mr. G. 당뇨병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다행입니다만 혈중 당화혈색소 수치가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인슐린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식이조절을 강화하고 운동량도 늘리며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 세 종류를 최대 용량으로 복용하고 계셨음에도 혈중 당화혈색소 수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2형 당뇨병이 진행함에 따라 몸에서 만들어 내는 인슐린의 양이 많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몸에서 필요한 인슐린의 양에 비해 만들어 내는 인슐린의 양이 너무 적어서 이제는 인슐린이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선생님이 약하거나 치료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얼마나 오랫동안 인슐린을 써야 하나요?”
“안타깝게도 평생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몸이 인슐린을 예전에 만들어 내던 양만큼 다시 만들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Mr. G는 실망한 모습이었다.
“제가 복용하고 있는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외에도 다른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가 더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 약들을 추가하면 안 될까요?”
“인슐린을 평생 주사해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당뇨병을 잘 조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혈중 당화혈색소 수치가 높을수록 신장질환, 실명, 신경질환과 같은 합병증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합병증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모든 당뇨병 환자에게는 혈중 당화혈색소 목표치가 있습니다. 이 목표치는 나이, 동반질환 등에 다른데 선생님의 경우에는 7%미만이 목표치입니다. 선생님은 이미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 세 종류를 복용하고 계십니다. 다른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를 추가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이들은 혈중 당화혈색소를 평균 약 0.5%정도만 더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또, 말씀드렸듯이, 몸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인슐린의 양이 많이 줄었고요. 따라서, 현재 인슐린이 선생님의 당뇨병을 조절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그래도 인슐린을 평생 주사하는 것은 좀 꺼려집니다.”
“네, 인슐린은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에 비해 불편합니다. 하루에 여러 번 인슐린을 투여해야 하고 주사시간과 식사시간, 식사량을 맞춰야 하며 식사를 밖에서 해야 하는 경우에는 인슐린을 가지고 다녀야 하니까요. 그리고,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들보다 저혈당의 위험도 더 높기 때문에 혈당도 좀 더 자주 측정해야 하고요. 하지만, 이런 불편함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인슐린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혜택이 훨씬 더 큽니다 -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신장이 망가져서 투석을 해야 하는 것 보다 약간의 불편함과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더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Mr. G는 인슐린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Mr. G, 다행히 처음부터 인슐린을 하루에 여러 번 투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차의료제공자 선생님이 처방했듯이 일단 하루 한 번 투여하는 인슐린부터 시작하고 혈당이 조절되는 정도에 따라 필요할 때 더 추가하면 됩니다. 그리고, 인슐린을 사용하는 법에 익숙해지게 되면 인슐린을 추가해야 하게 될 때 좀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
“그래도 밖에서 식사하게 되면 인슐린을 가지고 나가야 하잖아요?”
“아닙니다. 하루에 한 번 투여하는 인슐린은 자기 전에 투여하면 되므로 밖에 가지고 나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또, 식사시간과 주사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고요.”
“그러면 크게 불편하지는 않겠군요.”
“네, 현재는 그렇게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후에 인슐린을 추가해야 하면 그 때에는 식사시간과 주사시간을 맞추어야 합니다. 또, 밖에서 식사할 때에도 인슐린을 가지고 나가야 하고요. 인슐린은 바이알 (vial)의 형태도 있지만 선생님이 처방받으신 것과 같은 펜 (pen)의 형태로도 나옵니다. 보시다시피 펜은 우리가 글쓸 때 쓰는 펜처럼 생긴데다 만년필보다 약간 크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기 번거롭지 않습니다.”
“저는 저혈당이 좀 걱정됩니다.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를 복용하는 동안에도 한 두어 번 저혈당을 겪었거든요.”
“예, 심한 저혈당은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인슐린을 사용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지요. 매일 혈당을 자주 측정하고 식사를 거르지 않으며 인슐린을 주사하기 전에 혈당이 낮으면 추가로 탄수화물을 더 섭취하는 등의 방법으로 저혈당의 위험을 많이 낮출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구에 의하면, 이와 같은 방법을 따른 경우, 인슐린을 사용하는 2형 당뇨병 환자의 약 0.5%에게서만 심한 저혈당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심한 저혈당의 위험은 높지 않습니다.”
“인슐린 주사는 많이 아플 것 같은데요.”
“인슐린은 정맥이 아닌 피하로 주사하고 주사 바늘이 아주 가늘기 때문에 아프지 않습니다. 저도 환자들에게 인슐린 주사방법을 보여주느라 그동안 인슐린 주사 바늘을 제 배에 여러 번 찔러 보았습니다. 그런데, 찌르는 느낌조차 거의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답니다. 또, 펜은 주사기보다 바늘이 더 가늘고요. 사실, 인슐린 주사보다 혈당 측정할 때 찌르는 것이 더 아픕니다.”
Mr. G는 크게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안 아프다고 하니 다행이군요. 인슐린을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10-05 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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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7> 전문직업정신 (Professionalism)
“AZ, 오늘 소그룹 수업 (small group session)에 출석하지 않아서 이메일을 보내요. 지난 번에 건강문제로 수업에 빠진 적이 있어서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연락바랍니다.”
AZ는 내가 가르치는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으로 그동안 소그룹 수업을 이미 한번 빠졌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소그룹 수업에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소그룹 수업은 동료들와 함께 토론하면서 배우는 시간인데 학생이 빠지게 되면 다른 동료들의 배움의 기회를 줄여 피해를 줄 수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 학생이 정당한 사유없이 빠지면 교수는 학교에 전문직업정신 우려사항 보고서 (professionalism concerns report)를 제출해야 한다. 이 보고서는 학생 관련서류로 학교에 영구히 남게 되고, 전문직업정신 우려사항 보고서를 두 번 이상 받은 학생은 학교의 학생 진도 위원회 (Student Progress Committee)의 심사 대상이 되며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다음날, AZ로부터 답장이 왔다.
“교수님, 제가 어제 저의 학업 조언자 (academic advisor)를 만났는데 이 미팅이 그만 길어졌습니다. 미팅을 끝냈을 때는 소그룹 수업시간이 벌써 반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황당했다. 소그룹 수업의 중요성을 알면 그 학생은 학업 조언자를 만날 때 미팅 후에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 수업이 있다고 말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또, 만약 소그룹 수업을 피치 못하게 빠져야 한다면 자신의 소그룹 수업 담당 교수와 전체 수업을 책임지는 나에게 연락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AZ의 이런 행동은 이번 소그룹 수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 학생은 내 과목에서 내는 전체 열 개의 과제 중 무려 일곱 개를 늦게 제출하거나 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행동에 대해 사과하거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학업 조언자 등 다른 사람이나 상황 탓으로 돌리고는 했다. 우리 학교는 이러한 행위를 비전문직업인적 (unprofessional)으로 판단하고 심각하게 다룬다. 그 이유는 전문직업정신이 약사 또는 건강관련종사자 (healthcare professionals)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이나 기술과 동일하게 중요한 항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문직업정신 (professionalism)이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해 여러 정의가 있지만 의사단체인 미국 전문의 상임 위원회 (American Board of Medical Specialties)에서 만든 것이 가장 잘 표현된 것 중 하나이다. 이 정의는 비록 의사를 대상으로 하지만 건강관련종사직역인 약사에게도 적용된다:
“Medical professionalism is a belief system in which group members (“professionals”) declare (“profess”) to each other and the public the shared competency standards and ethical values they promise to uphold in their work and what the public and individual patients can and should expect from medical professionals.”
이를 의역해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건강관련 전문직업정신은 건강관련전문직업인들이 서로에게와 일반 대중에게 선언하는 신념체계로 이에는 건강관련전문인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동안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두 가지가 포함된다. 하나는 자신들이 공유하는 역량의 기준 (competency standards)과 윤리적인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대중과 환자들이 건강관련종사자로부터 기대할 수 있고 또 마땅히 기대해야 하는 것들이다.”
여기서 자신들이 공유하는 역량의 기준이란 건강관련종사자들이 일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에 관련된 기준을 말한다. 이 기준은 높을수록 좋으므로 건강관련종사자들은 필요한 지식과 기술에 대해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서로 공유하여야 한다. 그러면 두번째 사항인 대중과 환자들이 건강관련종사자로부터 기대할 수 있고 마땅히 기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환자들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다. 이 지식과 기술은 수련기간동안 배운 것으로만 충족되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계속 만들어지므로 대중과 환자들은 건강관련종사자들이 수련을 마친 다음에도 평생동안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보완할 것을 기대한다.
예를 들어, 어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나왔는데 예전에 쓰던 방법만 고수한다면 이는 대중과 환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습득이 전문직업정신에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건강관련종사자는 수련후에도 정기적으로 보수 또는 연수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건강관련종사자의 보수교육의 양은 미국에 비해 현저히 적다. 우리나라는 약사는 16시간, 3년간 의사는 24시간의 보수 교육을 받아야 하는 데에 비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2년간 약사는 30시간, 의사는 50시간을 받아야 한다. 즉, 우리나라 약사와 의사의 보수 교육 요구량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이다).
전문직업정신에 입각하여 환자가 기대할 수 있는 것 중 또 하나는 건강관련종사자가 자신의 이해관계보다 환자의 이익을 우선으로 두는 것이다. 환자는 질병의 치료를 위해 건강관련종사자들을 신뢰하고 이들의 조언과 지시를 따른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는 건강관련종사자가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길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 믿음이 깨지면, 즉, 환자를 치료하는 건강관련종사자가 환자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느끼게 되면 그 환자는 건강관련종사자의 조언과 지시를 더 이상 따르지 않을 것이다. 약사와 같은 건강관련종사 직역은 환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환자가 따르지 않는 건강관련직역은 직역으로서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건강관련종사자는 환자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행동해야 한다.
이외에도 대중과 환자는 건강관련종사자들이 그들을 존중해 주고 효과적인 치료를 위한 협력자로 대해 주기를 기대한다. 또, 환자와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며, 사실을 정직하게 전달하고 문제가 생기면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여 이해를 구하기를 기대한다.
이런 대중과 환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국 전문의 상임위원회는 건강관련종사자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구체적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At the heart of these ongoing declarations is a three-part promise to acquire, maintain and advance: (1) an ethical value system grounded in the conviction that the medical profession exists to serve patients' and the public's interests, and not merely the self-interests of practitioners; (2) the knowledge and technical skills necessary for good medical practice; and (3) the interpersonal skills necessary to work together with patients, eliciting goals and values to direct the proper use of the profession's specialized knowledge and skills,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art” of medicine.”
“첫째, 건강관련직업은 건강관련종사자의 이익이 아닌 환자와 대중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윤리적 가치를 습득하고 유지하며 진전시킨다. 둘째, 환자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유지하며 증진시킨다. 세째, 직역만의 고유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목표와 가치를 끌어내어, 환자와 함께 협력하는 데에 필요한 대인관계기술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진전시킨다.”
그런데, 이런 약속을 선언하면 이것이 잘 지켜지는지 확인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말로만 한 약속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전문의 상임위원회는 “이 약속을 지키는지 감시하고 확인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직역에 속한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Core to both the profession’s technical expertise and its promise of service is the view that members, working together, are committed to maintaining the standards and values that govern their practice and to monitoring each others’ adherence to their standards on behalf of the public.”
전문직업정신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건강관련종사자가 있으면 그 직역에 속한 사람들이 이에 대해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징계를 내리거나 그 직역에서 내쫓을 수 밖에 없다. 같은 배를 탄 사람끼리 너무 한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조처는 해당 건강관련직역의 존속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건강관련종사자가 환자를 성추행했다고 하자. 그런데, 같은 직역의 건강관련종사자가 이를 두둔하면 대중과 환자들은 그 직역에 속한 건강관련종사자는 누구나 자신들을 성추행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환자와 그 건강관련직역과의 신뢰는 깨지게 된다. 즉, 전문직업정신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건강관련종사자를 눈감아 주거나 두둔하면 그 건강관련 직역은 환자의 신뢰를 잃게 되어 직역으로서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 따라서, 건강관련직역은 스스로의 존립을 위해 스스로 관리하고 규제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관련종사자가 아무리 지식과 기술이 뛰어나도 전문직업정신이 부족하면 좋은 건강관련 종사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환자의 신뢰를 잃으면 건강관련종사자의 지식과 기술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입학하자마자 전문직업정신을 가르치고 강조한다. 학교의 데이타에 의하면, 임상실습 과목에서 낙제하는 학생들은 지식의 부족이 아닌, 주로 전문직업정신의 문제로 인해 낙제한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전문직업정신에 문제가 있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여 이들이 빨리 잘못을 깨닫고 고쳐서 학교의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도록 전문직업정신 우려항목 보고서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전문직업정신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은 졸업 후 독립된 건강관련종사자로 일할 때 환자와 사회에게 해를 끼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구된 바에 의하면,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비전문직업적인 행위를 했던 의과대학생은 그렇지 않았던 의과대학생들보다 의사가 된 다음 비전문직업적인 행위 – 성추행, 부당청구 등 - 로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3배 이상 높다. 따라서, 약학대학은 환자와 사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건강관련종사자들을 배출해 내야 하는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
대학생들은 성인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길들여졌던 습관과 행동을 바꾸기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나를 포함한 여러 교수들이 전문직업정신에 대해 조언했어도 AZ의 행동이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약사라는 건강관련종사직역에 들어온 이상, AZ가 현재와 같은 행동으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빨리 깨닫고 고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8-31 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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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6> 메트포민에 대해 환자가 알아야 할 사항들
당뇨병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메트포민 (metformin)에 대해 환자가 꼭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하여 문답식으로 정리하였습니다.
1. 메트포민은 어떻게 혈당을 떨어뜨리나요?
메트포민은 다양한 방법으로 혈당을 떨어뜨립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방법은 간에서 포도당을 만드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포도당은 우리몸의 주된 에너지원이고 주로 음식을 통해 섭취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는 음식을 먹지 않죠. 하지만, 이 동안에도 우리 몸은 체온을 유지하고 기본적인 대사 작용을 수행하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음식물에 의해 포도당을 섭취할 수 없을 때 간은 포도당을 만들어 공급합니다. 메트포민은 이렇게 간에서 포도당을 만드는 것을 억제하여 혈당을 낮춥니다.
두번째 방법은 인슐린이 몸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 주로 발생하는 2형 당뇨병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인슐린이 효과적으로 이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췌장에서 만들어지는 인슐린은 혈액 속의 포도당이 근육같은 세포속으로 잘 들어가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췌장에서 인슐린 만들어지지 않거나 만들더라도 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혈액 속의 포도당이 세포 속으로 잘 들어 갈 수 없어 혈액 속에 그대로 머무르게 되어 혈당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인슐린의 양이 충분해도 인슐린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포도당은 세포속으로 잘 들어가지 않아 혈당이 높아집니다. 이를 인슐린 저항성 (insulin resistance)라고 부르는데 2형 당뇨병 환자에게 흔하게 보이는 현상입니다. 메트포민은 인슐린 저항성을 낮춰 포도당이 세포속으로 잘 들어가게 하여 혈당을 낮춥니다.
뿐만 아니라, 메트포민은 위장관에서 포도당이 흡수되는 것을 줄입니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작용방법이고 간에서 포도당을 만드는 것을 막는 것과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는 것이 메트포민이 혈당을 낮추는 주된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메트포민은 췌장에 직접 작용하여 인슐린의 분비를 늘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메트포민은 간에서 포도당을 만드는 것을 다 막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막기 때문에 저혈당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2. 메트포민은 어떤 당뇨병 환자들에게 사용되나요?
메트포민은 췌장에서 인슐린을 더 만들어지도록 돕지 않기 때문에 췌장에서 인슐린이 만들어지지 않는 1형 당뇨병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면, 메트포민은 인슐린 저항성이 혈당 증가의 큰 원인이 되는 2형 당뇨병 치료에 널리 쓰입니다. 실제로 미국 당뇨병 협회 (American Diabetes Association)에서 발행한 당뇨병 치료 지침서에서는 메트포민을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메트포민이 가장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권고되는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메트포민은 당화혈색소를 평균 1-1.5%정도 떨어뜨리는 데 이는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들 중에서도 가장 큰 편에 속합니다. 그리고, 메트포민은 저혈당의 위험이 거의 없습니다. 또, 2형 당뇨병 환자 중에는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분들이 많은데 메트포민은 몸무게를 줄이는 효과도 부가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메트포민은 당뇨병 환자들이 심근경색증과 같은 심순환기 질환을 발생할 위험을 낮춰줍니다. 마지막으로 메트포민은 가격이 저렴합니다.
3. 메트포민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양을 얼마나 자주 복용하나요?
메트포민은 보통 하루에 500 mg에서 2000 mg을 두세 번으로 나누어 복용합니다. 하루에 복용할 수 있는 최대 허가 용량은 2550 mg이지만 2000 mg을 넘게 되면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크게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하루 2000 mg이상 사용하는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하루에 메트포민을 복용할 수 있는 총용량은 신장기능에 따라 다릅니다 (표).
표. 신장 기능에 따른 하루에 복용할 수 있는 메트포민의 양.
위 표에서 eGFR (사구체 필터 속도)은 신장기능을 나타내고 eGFR 수치가 낮을수록 신장기능이 더 낮습니다 (정상치는 90-120 ml/min/1.72 m2입니다). 하루에 복용할 수 있는 메트포민의 용량이 신장기능에 따라 다른 이유는 메트포민이 신장으로 배설되기 때문입니다. 표에서 보여주듯이 eGFR (사구체 필터 속도)가 45 ml/min/1.72 m2 이상이면 하루 2000 mg, 30-45 ml/min/1.72 m2이면 1000 mg, 그리고 30 ml/min/1.72 m2미만이면 복용하는 것을 권하지 않습니다. 한가지 주의점은 eGFR이 45 미만인 환자에게는 메트포민을 새로 시작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메트포민을 기존에 복용하고 있는 분이 신장기능이 떨어져 eGFR이 30-45 사이가 되면 용량을 낮춰 하루에 총 1000 mg을 복용하지만, 메트포민을 기존에 복용하지 않았던 분의 경우, eGFR이 45 미만이면 복용자체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복용하는 횟수는 메트포민의 제형에 따라 약간 다릅니다. 메트포민의 제형에는 속방정 (immediate release formulation)과 서방정 (slow release formulation)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속방정은 복용후 빨리 흡수되는 반면 작용시간이 짧습니다. 반대로, 서방정은 서서히 흡수되어 약효가 나타나는데에 시간이 좀 걸리지만 작용시간이 깁니다. 따라서, 속방정은 하루에 두 번 또는 세 번 복용하는 반면 서방정은 한 번 또는 두 번 복용합니다. 두 제형이 혈당을 낮추는 효과는 서로 다르지 않지만 서방정은 위장관 부작용의 빈도가 속방정보다 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 메트포민의 부작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위장관 부작용과 젓산 산증 (lactic acidosis)은 메트포민의 가장 중요한 부작용들입니다.
1) 위장관 부작용
설사, 가스, 방귀, 메스꺼움, 구토 등은 메트포민을 복용하는 환자의 20-30%에서 나타나는, 가장 흔한 부작용입니다. 이 때 설사는 체했을 때 나타나는 물과 같은 변이라기 보다는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생기는 묽은 변에 더 가깝습니다. 이런 위장관 부작용은 메트포민을 처음 복용하기 시작했을 때 주로 나타나고 2-3주 지나면 많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 부작용들은 많은 용량을 갑자기 복용하기 시작했을 때 나타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부작용들은 메트포민을 음식과 함께 복용하면 줄어듭니다. 따라서, 주말에 일하지 않는 분의 경우, 보통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 식사와 함께 가장 낮은 용량인 500 mg으로 복용을 시작하도록 권합니다.
미리 가장 낮은 용량으로 2-3일 복용해 봄으로써 출근하기 전에 몸이 적응할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용량을 올려야 할 경우에는 매 1-2 주마다 서서히 500 mg씩 용량을 증가시킵니다. 위장관 부작용은 한 번에 복용하는 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나타나기 쉬우므로 하루 총 용량을 두세 번으로 나누어 복용하도록 권합니다. 또, 가격이 좀 더 저렴하기 때문에 속방정을 우선적으로 사용하지만 위장관 부작용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서방정으로 바꿔어 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중요한 점은 위작용 부작용은 생명을 위협하기보다는 생활에 불편한 부작용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드렸듯이 메트포민은 다른 당뇨병 치료제보다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불편하지만 2-3주 참고 견디면 위장관 부작용이 나아질 가능성이 크므로 의사의 지시에 따라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젓산 산증 (lactic acidosis)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젓산 산증은 메트포민의 가장 심각한 부작용입니다. 젓산 산증은 치사율이 50%가 넘고 무력감,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나타냅니다. 다행히, 메트포민에 의한 젓산 산증이 메트포민을 복용하고 있는 10만명의 환자당 2-5명에게만 나타날 정도로 드뭅니다.
포도당이 에너지로 쓰이기 위해 우리몸에서 대사될 때 산소를 이용하는 경로와 산소를 이용하지 않는 경로를 이용합니다. 메트포민은 산소를 이용하지 않는 경로를 좀 더 이용하게끔 하는데 이 경로에서 발생하는 물질이 젓산입니다. 따라서, 메트포민에 의한 젓산 산증은 메트포민의 혈중 농도가 크게 증가할 때 나타납니다. 그런데, 메트포민은 신장에 의해 배설되므로 젓산 산증의 위험은 신장기능이 떨어진 환자에게 높습니다 – 배설이 잘 안 되어 메트포민의 혈중 농도가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장기능에 따라 메트포민의 용량을 조절하거나 중지하는 것이 메트포민에 의한 젓산 산증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또 신장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이 있으면 그에 의한 영향이 사라질 때까지 메트포민의 복용을 중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병원에서 관상동맥 조형술 (coronary angiography)을 할 때 관상동맥을 좀 더 잘 보이게 일종의 염색약인 조형제 (radiocontrast)를 투여합니다. 이 때, 이 조형제들은 신장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상동맥 조형술전 48시간, 또 시술 후 48시간 동안 등 총 96시간 (4일동안) 메트포민 복용을 중지합니다.
젓산 산증은 다른 질환에서도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간질환이나 심부전증이 잘 조절되지 않아도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질환을 가진 분들이 메트포민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동반질환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조절이 쉽지 않다면 메트포민의 복용을 중단하는 것을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또, 술을 많이 마셔도 젓산 산증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메트포민을 복용하는 동안에는 되도록 금주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메트포민에 의한 젓산 산증은 흔하지 않고 대부분은 신장기능에 의해 메트포민의 용량을 조절하면 방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신장기능 검사를 받아 이에 따라 메트포민의 용량을 조절하는 것을 권합니다.
이외에 메트포민은 비타민 B12의 흡수를 떨어뜨려 비타민 B12부족에 의한 빈혈을 일으키기기도 합니다. 이 부작용은 메트포민을 오래 복용하는 경우에 나타나고 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메트포민을 복용하는 동안 비타민 B12를 함께 복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5. 메트포민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검사들을 받아야 할까요?
당화혈색소와 혈액을 이용한 신장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당화혈색소는 메트포민이 혈당을 낮추는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메트포민을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시작하고 나서 3개월 뒤에 다시 측정합니다. 신장 기능은 보통 혈중 크레아티닌 (creatinine)의 양을 측정하여 이에 따라 eGFR를 계산함으로써 평가할 수 있습니다.
6. 메트포민을 얼마나 오래 복용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메트포민은 두 종류의 인슐린을 시작할 때까지 사용합니다. 이 때 두 종류의 인슐린이란 하루에 한 번 맞는 인슐린과 식사 전마다 맞는 인슐린을 말합니다. 이 두 종류의 인슐린은 작용 속도와 기간이 다릅니다. 어쨌든 두 종류의 인슐린을 맞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도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복용할 약의 갯수를 줄여주기 위해 메트포민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만약 환자가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면 메트포민을 인슐린과 함께 계속 복용할 수 있습니다.
7. 메트포민을 하루 중 언제 복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위장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메트포민은 식사할 때 함께 복용합니다. 하루에 한 번 복용하는 경우 저녁과 함께 복용하는 것을 권하고 하루 두 번 복용하는 경우 아침식사와 저녁식사와 함께 복용합니다.
8. 함께 복용할때 메트포민에 의한 효과를 줄이거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을 높이는 약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메트포민은 신장에 의해 배설되므로 신장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약은 조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약들로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는 것으로는 이부프로펜, 나프록센 (naproxen) 등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들이 있습니다. 또, 앞서 말씀드렸듯이, 관상동맥 조형술을 받는 경우 시술 48시간전에 메트포민의 복용을 중단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위장약 중 시메티딘 (cimetidine)과 부정맥약 중 도페틸리드 (dofetilide)는 메트포민의 신장 배설을 방해하여 메트포민의 혈중 농도를 높일 수 있으므로 함께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시메티딘은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으므로 약사와 미리 상의하시길 권합니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8-10 1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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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5> 정부 의과대학 정원 증원 계획의 문제점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계획은, 2022년부터 매년 400명씩, 10년간 총 4000명의 의사를 더 배출하여 지역간 의사 분포의 불균형을 줄이고 필수과목, 특수 전문 분야, 의과학 분야의 전공의와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이 계획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매년, 400명 중 300명은 지역의사제 특별 전형으로 뽑고 나머지 100명 중 50명은 역학조사관, 중증 외상 등 특수 전문 분야 의사로, 다른 50명은 기초과학, 바이오, 제약 등 의과학 전공으로 나누어 선발한다.
지역의사제 특별전형으로 선발된 학생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내과, 일반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과목만을 전공과목으로 선택할 수 있다.
선발된 학생들은 재학 중 장학금을 받는 대신 의사면허 취득 후 10년간 반드시 지역병원 필수의료에 종사해야 한다. 이 10년에는 전공의 수련기간도 포함된다.
만약 개인병원을 개업하는 등 지역 병원 필수의료 종사 규정을 어기면 장학금을 환수하며 면허도 취소시킨다.
정부가 16년만에 의대 정원을 늘리기로 결정한 배경은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현저히 낮고 그나마도 의사의 분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지역별 의료불균형이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구 1000명 당 OECD의 평균은 3.4명이지만 우리나라 전체 평균은, 한의사를 포함해서, 2.4명에 불과하다 (인구 1000명당 한의사 수는 0.6명이니 실제 의사 수는 2명이 채 안되는 셈이다). 또, 서울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 당 3.1명이지만, 경북 1.4명, 충남 1.5 명, 경남1.6명 등 지역별로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비록 나는 의사가 아니지만, 건강관련종사자 – 약사 – 를 길러내는 교육자와 전문직업인으로서 정부의 계획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먼저 명확하게 하고 싶은 것은 큰 틀에서 나는 의대 정원을 늘리려는 정부의 계획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의사 수는 OECD에 비해 현저히 적고 이는 의료의 질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나라 의료경험기에서 여러 번 지적했듯이 3분 진료로 대표되는 짧은 진료시간은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동네병원과 대학병원 모두에게 나타나는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짧은 진료시간은 근본적으로 낮은 수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수가가 높다고 하더라도 의사 한 명당 보아야 하는 환자 수가 많으면 진단이나 처방 오류의 가능성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를 위해서 의사는 환자와 다른 적절한 정보원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하며 진단과 치료에 대해 환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고 양질의 의무기록을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환자 한 명당 진료에 의사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의대 증원은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에 필요한 조건 중 하나인 충분한 진료 시간을 만들어 주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첫째, 언론의 보도로는 확실하지 않지만, 특수 전문 분야와 의과학 분야로 뽑는100명의 경우, 입학할 때부터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것 같다. 만약 이것이 시실이라면, 이는 학생들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의과대학생들의 약75%가 졸업할 때, 입학할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전공을 선택한다. 이는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새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통해 자신이 평생동안 하고 싶은 분야를 새롭게 발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우리나라 의과대학생들에 대한 통계를 찾지 못했지만 미국의 의과대학생들과 크게 다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학부를 졸업해야만 지원할 수 있는 미국 의과대학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 학생들의 인생 경험이 미국보다 적다.
따라서,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도 이득이다. 만약 학생들이 자신이 선택한 전공이 마음이 들지 않으면 중간에 그만 둘 수 있다 - 이는 학생 자신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학생을 지원해 왔던 학교와 정부 모두에게 손실이다.
둘째,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들이 실제 독립된 의사로서 해당 지역에서 일하는 기간이 너무 짧아 보인다. 의사의 임상수련과정은 전공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의사 면허 취득 후 보통 인턴쉽 (internship) → 레지던시 (residency) → 펠로우쉽 (fellowship)의 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수련기간만 총 5-7년이 걸린다. 따라서, 10년동안의 지역병원 근무 조건에 수련기간을 포함하게 되면 수련을 모두 마치고 최소 3년만 지역에서 더 근무하는 것으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래서, 차라리 수련 지역에 제한을 두지 말고 수련 후 지역 근무 10년으로 조건을 두는 것이 의료 지역불균형 해소라는 이 제도의 목적에 좀 더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과대학 재학 중 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병원에서 임상실습을 실습한다. 그런데, 병원마다 지역마다 질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방법 등의 의료행위 (medical practice)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이 독립된 의사가 되었을 때, 보다 넓은 관점에서 의료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 등의 수련과정을 다른 병원에서 밟는 것이 좋다. 또, 이런 경험은 학생들이 졸업 후 수련과정을 마치고 자신의 지역이나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지역의료와 병원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학생들이 자신이 졸업한 의과대학교과 다른 병원에서 졸업 후 수련과정을 밟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UCSF 의과대학 가정의학과의 일차의료 수련과정에 새로 들어온 레지던트 15명 중 UCSF 졸업생은 단 3명 뿐이다. 우리나라 대학병원도 타교 출신의 레지던트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 같으므로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들에게도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과 동일한 수련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필수의료를 전공하는 의사의 수가 줄어들고 있으므로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수련 지역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이들을 필요로 하는 다른 지역의 병원에도 도움이 되는 방법일 것이다.
물론, 지역의사제도는 지역간 의료불균형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역간 의료불균형은 경제, 문화, 교육 등의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지역간 불균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같은 지역간 전체적인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의료불균형이 완전히 시정되기는 힘들 가능성이 많다.
세째,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이 지역 병원 필수의료 종사 규정을 어기면 면허를 취소한다는 계획은 면허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독소조항일 수 있다. 면허는 기본적으로 그 소지자가 면허와 관계된 일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있어 적어도 최소한 능력 (minimum competency)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부기관이 인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 지원자는 차를 안전하게 운전하고 다니는 데 필요한 적어도 최소한의 도로교통법 지식과 운전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따라서, 면허는 그 소지자가 면허와 관계된 일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없을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운전 면허 소지자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었을 경우 혈중 알코올 농도 등에 따라 면허가 취소된다. 그 이유는 면허 소지자가 차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의사면허도 의사의 직무를 안전하게 수행할 수 없을 때에만 취소시켜야 한다 (이는 약사, 간호사 등 다른 면허에도 해당한다). 그런데,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이 지역 병원 필수의료 종사 규정을 어기는 것은 의사의 직무를 안전하게 수행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이는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시킨다.
현재 우리나라는 성추행한 의사의 면허를 취소시키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대형병원의 한 인턴은 상습적으로 여성 환자와 동료를 성추행하였지만 정직 3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병원은 이 인턴을 복귀시켰다). 지역 병원 필수의료 종사 규정을 어기는 것과 성추행 중 어떤 것이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일까? 따라서, 지역 병원 필수의료 종사 규정을 어겼다고 해서 면허를 취소시켜서는 안된다. 대신, 정부가 지원한 금액의 10배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등의 다른 벌칙을 이용하는 것이 면허제도에 부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의 큰 문제점 외에도 앞으로 10년동안 각각 500명의 인원이 배출될 특수 전문 분야과 의과학 전공자들의 일자리가 충분히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의대 증원은 우리나라 의료의 질을 더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므로 앞으로 입법과정에서 충분한 준비와 토론으로 제기된 여러 가지 우려 사항을 보완하여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를 기원한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7-27 1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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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4> 건강보험이 한약 첩약을 지원해 주는 것에 대해
최근 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금년 10월부터 3년동안 한방 첩약을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건강보험은 모든 첩약에 대해 지원하는 것이 아니고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 질환 후유증 등 3개 질병의 치료에 쓰이는 첩약에 대해서만 지원할 계획이다. 또, 지원 기간도 제한되어 있어서, 환자 1명 당 1년에 한 번, 10일치의 첩약에 대해서만 건강보험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이를 경제적 효과로 환산하면, 각 질병당 환자는 1년에 7-8만원 정도 첩약값을 절약할 수 있다. 환자들이 건강보험의 지원을 받아 경제적인 혜택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번 계획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첫째,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기간이 너무 짧다.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 질환 후유증 같은 질병은 만성질환이다. 따라서, 이런 질환을 치료, 조절하기 위해서 환자는 장기간동안 약을 복용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건강보험은 첩약을 10일치 분에 한해 일 년에 일 회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즉, 환자는 첫 10일 이후의 첩약값을 모두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건강보험의 계획은 1회용 상품 할인 쿠폰 (Coupon)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Netflix를 가입하면 첫 달의 멤버쉽 (membership)은 무료지만 이후부터 가입자는 매달 멥버쉽 비용을 내야 한다. 건강보험의 첩약에 대한 지원 계획은 한 달이 아니라 10일로 더 짧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하면, 보험이라기 보다는 1회용 할인 쿠폰인 것이다. 또, 이것은 한의사가 첩약에 대해 손님을 끄는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마치 Netflix가 가입자에게 첫 한 달을 무료로 이용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가입을 중단할 수 있게 만들었듯이 한의학적인 필요와는 별도로 한의사는 첫 10일은 할인을 받으니 일단 복용해 보고 효과가 없으면 중지해도 된다고 첩약을 환자에게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 계획은 건강보험의 재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건강보험의 재원은 국민들이 낸 돈으로 마련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재원은 꼭 필요한 곳에 투입되어야 한다.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 질환 후유증에 대한 첩약은 국민들 사이에 인기가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재원이 필요한 곳으로 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치료방법과 건강보험의 재원이 필요한 곳은 반드시 동일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피로회복 등을 위해 박카스와 같은 비타민제를 복용하는 것은 국민들 사이에 인기가 있지만 건강보험은 이를 지원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비타민제를 복용하는 것이 피로회복 등에 효과가 있는 지 임상시험 (clinical trial)을 통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재원은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이 뒷받침된 곳에 사용되어야 한다.
비록 한방의 첩약은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지만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받지 못했다. 오랫동안 사람을 대상으로 사용해 왔으니 검증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임상시험을 통한 검증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보겠다. 폐경기이후 여성은 몸이 화끈거리는 증상 (hot flash)이 나타나거나 골다공증에 쉽게 걸린다. 이런 증상은 에스트로겐 (estrogen)의 양이 줄어 들어 나타나므로 이를 치료하는 방법은 – 당연히! - 에스트로겐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 과거에 에스트로겐을 사용한 폐경기 여성들을 살펴 보니 이들에게 심장마비, 뇌경색 등 심각한 심혈관기 질환이 적게 나타나는 것이 관찰되었다. 그래서, 한 때 에스트로겐은 폐경기 여성들에게 널리 사용되었다. 그런데, 무작위 (random)로 환자를 배정한 임상시험을 통해 에스트로겐과 위약의 안전성과 효과를 비교해 보니 에스트로겐은 위약보다 심장마비, 뇌경색 등 심각한 심혈관기 질환의 위험을 오히려 증가시켰다. 즉, 그동안의 경험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인 것이다. 그러면, 왜 임상시험 결과은 그동안의 치료 경험과 다른 결과를 내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여기서는 중요한 점 두 가지만 들기로 하겠다.
1) 임상시험은 무작위로 환자를 배정하기 때문에 치료방법의 효과와 안전성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
무작위로 환자를 배정하는 것은 치료방법의 효과와 안전성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데에 중요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무작위 배정 방법은 효과가 있을 만한 환자들을 특정한 치료방법에만 배정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치료방법 중 어떤 것이 질병 X에 대한 사망률을 더 낮추는 지 비교한다고 하자. 이 때, 질병X의 초기단계인 환자들은 A라는 치료방법만을 쓰고 말기단계인 환자는 B라는 치료방법만을 쓰면 A 치료방법의 효과가 더 좋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무작위로 환자를 배정하면 두 치료방법에 초기와 말기인 환자들이 골고루 분포하게 되어 두 치료방법을 공정하게 비교할 수 있다. 반면, 치료경험은 의사가 환자를 무작위로 배정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또, 어떤 의사가 시행한 치료방법으로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는 그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의사는 효과를 본 환자들만 가지고 치료방법의 효과를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즉, 임상상의 치료경험만으로는 치료방법을 공정하게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2) 임상시험은 위약효과 (placebo effect)를 보정하여 치료방법의 효과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위약효과란,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동안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효과를 보는 것을 말한다. 위약효과는 질병에 따라 다르지만, 많게는 50-75%의 환자들에게 나타난다. 따라서, 어떤 치료방법이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위약 효과를 보정해야 한다. 또, 많은 질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나아지기도 한다 (암 중에도 이런 경우가 꽤 있다). 즉, 자연치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질병이 치료와 무관하게 자연적으로 좋아지는 것도 보정해야 한다. 이를 보정하는 방법은 치료방법을 위약 (placebo)군과 비교하는 것이다. 이 때, 위약은 효과가 있을 만한 성분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즉, 가짜 약인 것이다. 임상시험은 보통 무작위로 환자를 새로운 치료방법군과 위약군에 배정하여 효과와 안전성을 비교한다. 만약, 새로운 치료방법을 받은 환자들이 보인 효과가 위약을 받은 환자들과 다르지 않다면 새 치료방법은 효과가 없는 것이다. 또, 새 치료방법이 위약보다 효과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심각한 부작용을 나타내면 환자들에게 널리 사용하기 힘들다. 이처럼, 임상시험은 치료방법을 위약과 비교하기 때문에 치료방법이 위약효과와 자연치유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 검증할 수 있다. 반면,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에는 위약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관찰된 효과가 위약 효과와 자연 치유 때문인지 알기 힘들다. 즉, 자연적으로 치유되더라도 치료방법의 효과로 오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무작위로 환자를 배정하여 위약군과 비교한 임상시험은 치료방법에 대한 효과와 안전성을 경험보다 더 공정하고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다. 즉, 임상시험의 결과가 치료경험보다 신빙성이 더 높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미국 산부인과학회는 에스트로겐을 모든 폐경기의 여성에게 권하지 않는다. 에스트로겐이 경험적으로 안전해 보였는지 몰라도, 임상시험 결과, 안전하지 않은 것 – 심순환기 질환 발병의 증가 - 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수천 년동안 사용해 온 경험도 중요하다. 하지만, 경험은 치료방법이 효과적이고 안전한 지에 대한 검증의 수단으로 부족하다. 또, 에스트로겐을 폐경기 여성에게 사용하는 예에서처럼, 경험에 의존하면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임상시험 증거가 부족하고 환자에게 해를 끼칠 지도 모르는 치료방법을 국민이 피땀흘려 마련한 돈으로 건강보험이 지원해 주어야 할까? 대신, 오랫동안 사용해 온 치료방법을 검증할 수 있도록 그 재원을 임상시험에 지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 치료방법이 효과적이고 안전하다는 것이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되면 그 때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도 늦지 않다. 또, 1회용 할인 쿠폰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질병이 조절되도록 충분히 오랜 기간 동안 지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6-29 1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