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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3> 코로나바이러스와 대학교육
코로나바이러스와 대학교육
“이번 주로 재택 명령이 시작된 지 8주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입원환자 수가 줄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업무 재개 계획을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누어 준비 중입니다.
먼저, 지금부터 6월말까지인 단기 계획을 알려 드립니다. 일단, 5월말까지로 발효된 시 당국의 재택 명령를 따르고 6월에는 일부 업무 재개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업무를 재개해도 수업은 계속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중기는 7월부터 금년 12월말까지로 잡습니다. 상황을 보아야 하겠지만 현재 계획은 중기에도 수업을 계속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단, 소규모 실습 수업은 대면 수업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장기인 내년 1월부터 6월은 상황이 유동적이라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 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이 지속되면 온라인으로 수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지난 3월 17일의 재택 명령이후 매주, 학장은 학교 상황을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화상통화 프로그램인 줌 (Zoom)을 이용하여 업데이트해 주고 있다. 지난 5월 7일에는 교육과 관련된 학교의 업무 재개 준비와 계획에 대해 알려 주었다.
단기인 6월말까지 온라인으로 수업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는 것은 예상한 일이었다. 사실, 6월 초에 2019-2020년도 학사 일정이 끝나기 때문에 (미국은 일년 학사 일정이 9월 가을 학기에 시작하여 다음해 5-6월에 마친다) 6월말까지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학교의 계획은 실제 수업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런데, 12월말까지 온라인으로 수업을 계속 진행한다는 계획은 예상밖의 결정이라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를 그동안 잘 막아 왔던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환자의 수가 이태원 클럽, 쿠팡 등을 통해 최근에 갑자기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지금은 잠잠하더라도 언제든지 갑자기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교직원, 학생들의 안전을 우선으로 한 학교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난 골치가 아프려고 해.”
학교의 계획을 들은 동료 교수 Y가 이메일을 내게 보냈다. 교수 Y는 7월말부터 시작하여 10월 중순까지 지속되는 1학년의 첫 코스를 담당한다. 대면 수업을 전제로 미리 세워 두었던 교육 계획을 지금 갑자기 바꾸어야 하니 골치 아픈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Y교수만 골치 아픈 것이 아니다. 나도 그렇다. 10월말부터 시작하는 1학년의 두 번째 코스를 담당하는 나는 Y교수보다 상황이 좀 낫지만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온라인으로 교육하는 코스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우리 학교는 지난 3월 초부터 모든 수업을 Zoom을 이용하여 온라인으로 진행해 왔다. 3월과 4월에 학생들 교육을 담당한 교수들에 따르면 Zoom을 사용한 온라인 수업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른 대학교에 다니기는 하지만 집에서 Zoom으로만 수업을 받고 있는 내 아들도 수업의 질이 괜찮다고 말한다). 오히려 학생들의 수업 출석률과 참여도가 대면수업을 할 때보다 늘었다고 한다.
특히, 높아진 참여도 때문에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 정리해서 수업 말미에 교수에게 알려 주는 조정자 (moderator)가 필요할 정도였다고 한다. 얼굴을 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온라인 속성상 모르는 것을 물어 볼 때 느낄 수 있는 부끄러움이 대면수업보다 덜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좀 더 편하게 질문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업들은 강의 (lecture)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뒤집어 교실 (flipped classroom)이라는 수업 방법을 주로 이용하는 내 코스에 Zoom을 사용하는 방법이 잘 적용될 지 좀 우려된다. 왜냐하면, “뒤집어 교실”의 수업 방법은 교실 수업이 강의가 아닌 토론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 토론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코스를 듣고 있는 약 130명의 학생들을 30개 정도의 소그룹으로 나누어 토론을 진행한다.
따라서, 온라인으로도 토론이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Zoom이 소그룹 토론을 잘 뒷받침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Zoom에는 Breakout Room이라는 기능이 있어 소그룹 토론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기능이 뒤집어 교실이라는 독특한 토론 수업 형식에 맞을 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온라인 교육의 또 다른 문제점은 시험이다. 우리 학교는 2014년부터 종이 시험을 주지 않고 ExamSoft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컴퓨터로 시험을 시행해 왔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교육이 전환된다 하더라도 시험을 시행하는 방법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문제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감독관의 감독하에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혼자 시험을 본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부정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 ExamSoft는 몇 가지 방법을 쓴다. 먼저, 프로그램에 사진이 미리 등록된 사람만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시험 중에는 수험생 컴퓨터의 카메라와 마이크를 사용하여 수험생의 눈동자와 몸의 움짐임, 소리를 녹화, 녹음하고 인공지능을 동원해서 감시한다. 하지만, 최신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이러한 방법들도 부정행위를 완벽하게 방지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많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A, B , C, D, F 학점이 아닌 통과/비통과 (pass/no pass)로만 성적을 매기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점을 높이려고 부정행위를 할 가능성은 낮다.
대면수업을 전제로 설계된 기존의 대학 교육을 온라인으로 갑자기 바꾼다는 것은 교수, 교직원, 학생들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안전이 우선이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수 밖에 없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없었던 내가 대학교를 다녔던 90년대 초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휴학밖에는 방법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온라인으로라도 수업을 전달하고 받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이다. 아직 내 코스를 시작하기까지 약 반 년의 시간이 남아 있으니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그동안 잘 준비해야 겠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6-01 16: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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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2> 미국 정부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이 실패한 이유
“저에게는 책임이 전혀 없습니다 (I don’t take responsibility at all).”
이 말은 지난 3월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코로나바이러스 테스트가 미국에서 아직 널리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대통령의 책임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묻자 트럼프의 답변이다. 이러한 대통령의 무책임한 대답이 왜 미국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응에 실패했는지 설명해 준다고 난 생각한다.
지난 1월부터 3월 중순까지 트럼프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유행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하면서 이들의 경고를 “민주당이 만들어 낸 공갈”, “주류 언론이 지어낸 가짜 뉴스”라면서 오히려 이들을 공격해 왔다. 그리고, 1월 말, 보건부 장관이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에 대한 대응 준비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그를 군걱정을 하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미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는 잘 조절되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4월이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라고 말하는 등, 국민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자신이 재선되어야 할 가장 큰 근거로 삼았던, 그동안 고공행진해 오던 주가가 연일 폭락하자 그는 결국 3월 13일 코로나바이러스가 국가 위기 (National Emergency)라고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자신의 재임중에 일어난 국제 건강 안보팀 (Global Health Security Team)의 해체를 자신은 몰랐으며 테스트 키트의 개발과 공급이 지연된 데에 대해 자신은 하나도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던 것이다.
미국에는 연방정부 기관인 질병 통제 센터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 식약청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 등 여러 연방기관들 뿐만 아니라 주정부 산하의 보건부 등 다양한 기관들이 감염증의 유행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데에 관여한다. 이처럼 여러 기관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이들의 역할을 조절하고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2014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 (Ebola virus)가 바다 건너 미국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을 경험한 오바마 행정부는 2016년 국가 안보 회의 (National Security Council) 산하 국제 건강 안보팀라는 것을 만들어 해외에서 발생한 감염증의 유행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컨트롤 타워를 백악관내에 마련했다. 그런데, 2018년, 백악관 안보 보좌관이었던 존 볼턴 (John Bolton)의 건의를 받아 들여 트럼프는 이 팀을 해체해 버렸다. 여러 기관들의 역할을 조율하고 조절해야할 컨트롤 타워가 없기 때문에 감염증 유행을 조절하고 통제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기구인 테스트 키트 (test kit)의 개발과 생산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은 세계보건기구가 승인한 독일에서 만든 테스트 키트를 사용하기보다는 자체적으로 제조 생산하는 것을 고집했다. 그동안 새로운 감염증이 나타나면 해 왔던 것처럼, CDC가 테스트 키트를 만드는 것을 처음에는 주도했다. 그런데, 2월 중순, CDC가 개발해서 각 주에 배포한 테스트 키트가 부정확한 결과를 낸다는 것이 밝혀졌다 (시약 중 하나 – 정확하게는 네거티브 콘트롤 (negative control) 중 하나 - 가 생산과정에서 바이러스에 오염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테스트 키트의 사용이 지연되자, 2월말, 연방정부는 각 의료기관이 개별적으로 테스트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또, FDA와 테스트 키트 제조회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협력하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왜냐하면, 테스트 키트의 개발이 지연되는 사이, 코로나바이러스는 미국내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 전세계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환자와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 4월 30일 현재, 미국에서 백만명 이상의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했는데 이는 전 세계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수의 약 3 분의 1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 수보다 더 많은 6만 여명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했다. 그동안 미국내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지연시키고자 40여개 주들이 자택 대비 (shelter-in-place) 나 재택 (stay-at-home)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수퍼마켓, 약국 등 주민들의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점을 제외한 다른 상점들의 영업이 금지되어 지난 6주동안 약 3천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수당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 숫자는 지난 10년 동안 경제성장으로 창출해 낸 일자리 숫자와 맞먹는 숫자이니 지난 10년 동안의 경제적인 성과를 단 6주만에 허물어뜨린 셈이다.
이상에서 보듯 미국은 지도자의 리더쉽 (leadership) 부재와 이에 따른 연방정부의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이런 위기 상황을 돌파하려면 우선 지도자가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하는 데 자신은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하고 있으니 이 위기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자택대피나 재택 명령을 안전하게 풀기 위해서는 검사, 추척, 격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여전히 검사조차 원활히 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테스트 키트와 검체 채취에 필요한 도구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감염된 환자가 접촉한 사람들을 추척하는 인력도 크게 부족하다 (1800명의 추적인원을 동원한 중국 우한시의 예를 보았을 때 미국에는 삼십만명의 추적 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검사, 추척, 격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연방정부가 주도해야 하지만 트럼프는 이를 주정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대신 트럼프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는 살균제 주사와 같은 치료방법을 제안하여 국민을 혼동에 빠뜨리고 있다.
인적. 물적. 기술적 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위기에 봉착한 미국. 미국의 사례는 지도자의 리더쉽이 위기 상황을 방지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필자소개>
-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5-06 1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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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1> 샌프란시스코로 찾아온 코로나바이러스
“3월에 예약된 환자들 중 꼭 보아야만 하는 환자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전화 진료로 바꾸든지 아니면 예약을 연기하도록 하세요.”
지난 3월 6일, 팀허들 (team huddle)에 온 가정의학과 클리닉 디렉터가 팀원들에게 직접 지시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라 난 깜짝 놀랐지만 이유를 듣고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크게 유행할 것 같습니다. 가정의학과로 방문한 환자들 중에서는 아직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없었지만 곧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병원의 클리닉 디렉터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한 결과, 환자들간의 감염 위험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병원으로 오는 외래환자 수를 줄여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면진료를 피하고 당분간 전화진료로 바꾸거나 아예 대면진료 예약을 연기해 주면 좋겠습니다.”
가정의학과 의사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주치의라고 불리는 일차의료제공자 (primary care provider) 들이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정기적인 건강검진 (health check-up)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의 치료를 위해 방문하는 환자들을 본다. 그런데, 이 환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고령이거나 고혈압, 당뇨병 등 기저 질환을 가지고 있다. 이런 환자들이 클리닉에서 진료를 기다리다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와 접촉하게 되면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노출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여러 클리닉에 방문하는 외래환자 수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클리닉 입장에서 보면, 외래환자 수를 줄이면 수입이 줄어든다. 절충안으로 환자 수를 줄이지 않고 대신 손 세정제를 더 비치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환자의 건강을 위해 병원의 클리닉 디렉터들은 환자 수를 줄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진료예약을 연기하는 경우, 아직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5월달이나 그 이후로 잡도록 하세요.
진료실에 돌아오니 가정의학과 클리닉 디렉터가 보낸 이메일이 와 있었다. 허들때 발표된 내용을 다시 글로 정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클리닉에서 진료예약을 도와 주는 여러 스태프 중 누가 내 클리닉의 진료예약 변경을 도와줄 것인지, 어떻게 진료예약변경을 이메일로 지시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진료예약변경을 완료해야 하는지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오랫동안 예정되어 있거나 일상화된 일들을 갑작스럽게 바꾸게 되면 관련된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기 쉽다. 지난 10년간 내 클리닉은 매주 금요일에 있어 왔고 난 클리닉에서 환자를 볼 때 90%이상 대면진료를 해왔다. 또, 이번달에 예약된 환자들 중 지난해 10월에 예약된 환자들도 있다. 환자들의 예약을 5월 이후로 변경하거나 대면진료를 전화진료로 바꾸라고 갑자기 요구하게 되면 나나 환자나 모두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정의학과 클리닉에는 내 클리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개의 클리닉이 있다. 이 모든 클리닉이 갑자기 진료방법과 예약을 바꿔야 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사람들과 명확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그래서, 난 클리닉의 수뇌부가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말과 글로 최대한 명확하게 소통하도록 노력하려고 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내 클리닉의 진료 예약 변경을 위해 지정된 스태프에게 이메일을 보낸 다음, 난 복도에서 우연히 동료약사인 B를 만났다.
“B약사님, 진료예약 다 바꾸셨어요?”
“아니. 난 환자가 좀 많아서 시간이 좀 걸려.”
“사태가 빨리 진정되었으면 좋겠어요.”
“피크가 지나야 수그러들지. 이제 시작도 안 했는데.”
B약사는 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라 불리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후천성면역결핍증 (AIDS; 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이 1980년대에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HIV에 감염된 환자들을 돌보아 오고 있다. HIV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심지어 신의 저주를 받은 병이라고까지 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느끼는 공포처럼 당시에는 HIV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HIV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병에 대해 훨씬 잘 이해하게 되었고 HIV에 효과적인 약물들도 많이 개발되었다. 그래서, 지금 HIV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약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만성질환으로 취급되고 있다.
작년에 처음 나타난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에 의한 감염증도 몇 년 뒤에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HIV처럼 사람들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은 감염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니 감염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제 유행이 시작했다면 언제 끝날 수 있을까? 5월에는 클리닉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필자소개>
-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4-02 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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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70>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 과정에서 배워야 할 교훈 하나
“약사님, A약사가 좀 전에 전화했어요 - 감기로 클리닉에 못 온다고.”
클리닉을 시작하기 전에 열리는 팀 허들 (team huddle)이라고 불리는 모임에서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내게 알려준다. 팀 허들은 하나의 팀으로 외래 클리닉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환자를 만나기 전에 갖는 모임이다.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에 있는 내 클리닉은 가정의학과 (Family Medicine) 소속이다. 그런데, 가정의학과에 속한 외래 클리닉이 많기 때문에 이를 몇 개의 팀으로 나누고 있고, 이 중 내 클리닉은 파랑팀 (Blue team) 소속이다. 이 파랑팀은 가정의학과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약사, 진료 예약 받는 사람 등 여러 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환자를 효율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팀원들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므로 팀원들은 매일 클리닉을 시작하기 전에 모임을 갖고 있고 이를 허들이라고 부른다.
이 허들 모임에서 이야기되는 사항으로는 당일 팀에 할당된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수, 진료전에 특별한 검사나 준비가 필요한 환자 이름, 당일 아침 전화로 급히 병가를 낸 팀원에게 진료예약이 되어 있는 환자를 어떻게 할 지 등등이다.
A약사와 나는 같은 팀 소속이고 같이 동료로서 일하기는 하지만 서로 독립적으로 클리닉을 운영한다. 그래서, A약사와 내게 진료예약된 환자가 서로 다르다. 그런데, 오늘 아침 A약사가 감기로 클리닉에 올 수 없다고 전화를 한 것이다 - 환자와 다른 팀원들과 대면접촉하면 감기를 전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A약사에게 몇 명의 환자가 진료예약되어 있어요?”
“오전에 8명. 일단, 진료예약 업무를 처리하는 B씨가 A약사에게 진료예약된 환자들에게 전화해서 가능하면 예약을 취소하거나 다른 날로 옮겨 보도록 해요. 만약 연락이 닿지 않거나 오늘 꼭 보아야 하는 환자들이 있다면, 약사님이 이분들을 보실 수 있겠어요? 필요하면 A약사에게 배정된 진료실을 써도 돼요.”
내 클리닉에 오늘 오전에 예약된 환자 수는 8명으로 빈자리가 없었지만 팀과 환자들을 위해서 더 볼 수 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A약사에게 배정된 약대에서 온 실습학생이 두 명 있는데 약사님이 그 학생들도 지도할 수 있겠어요?”
내게도 따로 배정되어 지도해야 하는 약사 레지던트가 있었지만 학생들의 실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프리셉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두 학생도 같이 지도하기로 했다. 그런데, 보아야 할 환자 수가 갑작스럽게 불어난 데다 환자 보는 데에 아직은 서툴 지 모르는 학생들까지 지도하게 되어 환자의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실수를 할까 봐 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A환자에게 진료예약된 8명 중 6명의 예약을 변경할 수 있어서 2명만 더 보면 되었다. 이 두 환자들도 항응고제인 와파린 (warfarin)의 용량 조절을 위한 진료였는데 검사결과가 좋아서 진료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또, 세 명의 수련생들 – 약사 레지던트, 2명의 약대생 – 도 클리닉 상황을 이해하고 모두 열심히 일해 주어 클리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약사 레지던트가 약대생들이 환자 보는 것을 지켜보고 도와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감기와 같이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호흡기 질환은 쉽게 다른 사람을 전염시킨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손을 자주 씻는 등의 개인위생수칙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주변에 전염성이 강한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있으면 아무리 개인위생 수칙을 철저하게 실행한다 하더라도 이를 완벽하게 예방하기 힘들다.
그래서, 전염을 막기 위해서는 환자들의 도움 - 증상이 호전될 때까지 다른 사람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스스로 피하도록 하는 “자가격리” - 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염이 강한 질병을 가진 환자가 스스로 “자가격리”를 실행하며 이를 도와주고 이를 격려하고 지원해 주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의심스러운 증상이 있던 한 환자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 예배 등에 참석하면서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된 것 같아 더욱 그렇다.
설사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질환이 아니라 단순 감기였을지라 하더라도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밀접접촉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전염시켜 고생시킬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환자 자신의 자가격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환자가 자가격리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이를 격려하고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환자가 자가격리를 하고 싶어도 급여에 손해를 보거나 조직의 멤버쉽을 유지할 수 없는 등의 불이익을 받는다면 환자는 이를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자가격리로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이를 메꾸기 위해 다른 사람이 더 일을 해야 하는 등 조직에 예상치 않았던 부하가 더 걸릴 수 있다.
위에 기술한 클리닉의 예처럼, A약사가 병가로 나오지 못하게 되어 내가 더 일을 해야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좀 더 크게 본다면, 자가격리는 조직에 궁극적으로 더 이득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자가격리를 하게 되면 환자는 집에서 휴식을 하게 되어 빨리 나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약사가 출근해서 진료한 환자와 같이 일하는 다른 동료들을 감염시키면 이를 치료하는데 비용과 시간이 들게 된다. 또, 아픈 상황에서 진료하게 되면 실수를 할 확률도 높아진다. 따라서, 자가격리가 조직에는 단기적으로 손해로 보일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이익일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수그러들어도 호흡기로 전염되는 새로운 감염성 질환은 앞으로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마치 사스 (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다음에 메르스 (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나타났고 그 다음에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이 생겼듯이 말이다.
하지만, 호흡기로 전파되는 새로운 감염성 질환이 출현하더라도 증상이 있으면 환자는 자가격리하며 사회가 이를 격려하고 지원한다면 이의 확산을 줄이고 막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3-04 1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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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9> 표절과 대학의 윤리적 기준
작년 5월, 한창 내가 맡은 코스를 진행하고 있을때, 캐나다에 있는 한 약대의 학장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교수님, 지난 3월에 저희 학교 교수인 Dr. E가 교수님의 슬라이드 사용건으로 연락드린 일이 있었지요. 그 때, 슬라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 사용건에 대해 제가 전화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내일 하고 싶으니 언제 시간이 되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몇 년전 내가 미국내 학회에서 구두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발표 슬라이드를 학회에 제출했었는데 이 슬라이드가 여전히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를 발견한 Dr. E가 자신의 코스에 이 슬라이드를 쓰고 싶다고 요청해 와서 지난 3월 승낙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학장이 통화하고 싶다고 할까?
아무 조건 없이 단번에 승낙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학장과 통화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더군다나 코스 때문에 바빠서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은 일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이 일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한 달 뒤에 학장으로부터 다시 이메일이 왔다.
“교수님, 내일이나 다음 주에 저와 통화할 수 있으신지요?”
벌써 두 번째 이메일인데다 상대가 학장이고 지난 번에 답장을 보내지 않은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첫번째 이메일에 대해 답장을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리고 통화가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보내 주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네, 안녕하세요 학장님.”
“제가 왜 통화를 하자고 했는지 궁금하시죠?”
“네.”
“먼저 Dr. E가 교수님의 슬라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Dr. E가 교수님의 슬라이드를 승낙받기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알려드리고 사과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학생들에게 교수님께 승낙받기 전에 사용한 슬라이드들을 모두 지우라고 지시했고, Dr. E에 대해서도 학교차원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신선한 놀라움이었다. 비록 내가 승낙하기 전에 슬라이드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결국 승낙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어차피 승낙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학교일로 바쁜 학장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시켜 연락하고 사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승낙을 받았건 안 받았건 승낙을 받기 전에 사용한 것은 윤리적 기준을 어긴 것이고, 이에 대해 학교를 대표하는 학장이 직접 나서 설명하고 사과하는 것으로 보아 이 학교는 표절에 대한 높은 윤리적 기준을 교수와 학생들에게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학교는 표절 (plagiarism)에 대한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학이 생산해 내는 것이 주로 지적 재산이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 말, 저작을 사용 허가 받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고 마치 자신의 것인양 사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도둑질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논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보듯 교육자료, 과제물 등 모든 것에 적용된다.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 대학에서는1학년 신입생때부터 표절을 포함한 academic integerity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예를 들어, 최근 대학을 들어간 내 아들에 따르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academic integrity에 대한 강의를 듣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서 낸 다음 동료학생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문학 (Humanities) 코스 수업 때 따로 두 번 - 코스 시작전과 마지막 학기말 과제 제출전 – 표절에 대한 교육을 더 받았다고 한다. 우리 학교도 약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academic integrity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 표절에 대한 징계는 매우 무겁다. 몇 년전 우리학교 약대 학생이 다른 학생의 것을 일부 베껴서 과제물로 제출한 것이 발견되었다. 이에 대한 징계로 그 학생은 F학점을 받았고, 이 때문에 그 과목을 1년 뒤에 다시 들어야만 했으며 졸업도 1년 더 늦어졌다.
Academic integrity는 대학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자신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사용할 때에는 먼저 승낙을 받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존중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높은 윤리적 기준이 필요하고 구성원들은 이를 따라야 한다. 위의 캐나다 약대의 예처럼.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2-04 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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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8>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복처방
“형, 항응고제를 과다 복용하면 어떤 문제가 생겨?”
얼마전, 한국에 있는 친척동생이 문자를 보내왔다.
“왜?”
“아버님이 숨차고 힘들어하셔서 대학병원 응급실에 왔어. 그동안 드시고 계신 약들을 내가 알아 보다가 아버님이 지난 8일 동안 프라닥사와 엘리퀴스를 이중으로 복용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출혈은 없으시고?”
“응, 없어. 그런데, 항응고제를 이중으로 복용하셔서 걱정이 되어서.”
친척동생의 아버님은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고 심방세동의 병력을 가지고 계시다. 심방세동이 혈전에 의한 뇌경색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항응고제가 심방세동의 치료로 쓰인다.
프라닥사 (Pradaxa) 와 엘리퀴스 (Eliquis)는 모두 항응고제이다. 우리나라의 일반명으로 다비가트란 (dabigatran; 영어로는 대비가트란이라고 읽는다)이라 불리는 프라닥사와 아픽사반 (apixaban; 영어로는 애픽사반이라고 읽는다)이란 일반명을 가진 엘리퀴스는 모두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항응고제들로 모두 심방세동을 적응증으로 갖고 있다.
비록 두 약이 약간 다른 방법으로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지만, 두 약을 같이 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출혈의 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항응고제를 고위험약 (high risk medications)으로 따로 분류해서 처방과 조제과정에서 좀 더 주의를 기울인다.
“신경외과, 심혈관센터, 환자간 커뮤니케이션이 엉망이 되어서 8일동안 과다 복용하셨어; 기존에 드시던 엘리퀴스가 남아서 복용하고 계셨는데, 심혈관센터에서 프라닥사를 또 처방한 거야. 아버님은 그걸 모르고 다 복용하셨고. 그래서, 내가 응급의학과 의사한테 물었더니 좋을 건 없는데 자기는 확실히 모르겠다라고 하더라고. 그 의사는 그냥 기존에 드시던 엘리퀴스만 폐기하라고 했어.”
친척동생의 아버님은 금년 초에 뇌경색으로 입원하신 적이 있다. 아마 그 때 신경외과에서 엘리퀴스를 처방한 모양이다. 그런데, 심장질환 때문에 심혈관 센터를 방문하셨는데 그 때 프라닥사가 처방된 것 같다. 그러면서 환자에게는 처방이 바뀌었다는 것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위험한 약 두 개를 동시에 복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대략 두 가지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중복처방이다. 이처럼 중복처방이 일어나는 데에는 약의 처방, 교부, 복용 과정에서 틈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가 새로운 약을 처방하기 전에 환자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하지만 이 과정이 생략되었을 수 있다. 또는, 환자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확인했더라도 환자에게 뚜렷하게 지시 – 엘리퀴스는 더 이상 복용하지 말고 프라닥사만 복용 - 가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다. 특히, 노인의 경우, 이해력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새로운 지시사항을 말로만 전달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지시사항을 글로도 함께 적어 주어야 한다. 또, 환자에게 지시 사항을 말로 되풀이 하도록 해서 환자가 지시사항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 (이를 teach-back이라고 부른다)이 생략되었을 수 있다.
약국에서 처방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항응고제의 중복처방이 있다는 것을 놓쳤을 수 있다. 또는, 중복처방을 확인했더라도 환자에게 다시 확인하는 과정 - 엘리퀴스는 더 이상 복용하지 말고 프라닥사만 복용하시도록 – 을 거치지 않았을 수 있다.
중복처방은 전산 시스템으로 비교적 쉽게 발견할 수 있으므로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문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병원과 약국 컴퓨터가 심평원에 직접 연결이 되어 환자의 약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즉, 의사가 새로운 약을 처방하려고 입력하거나 약사가 약을 청구할 때, 지난 1년간 비슷한 계열이나 적응증을 가진 약이 처방되었으면 경고 화면을 뜨게 해서 의사와 약사로 하여금 다시 확인하게 한다면 중복처방을 많이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환자가 의사를 방문할 때 복용하고 있는 약을 모두 가지고 오게 한 다음, 새로운 약을 처방할 때 기존에 복용해 오던 중복되는 약을 아예 환자로부터 뺏어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약의 선택에 관한 것이다. 비록 엘리퀴스와 프라닥사의 적응증이 같기는 하지만, 적어도 미국에서는 엘리퀴스를 선호하고 있다. 먼저, 임상시험 결과를 보자. 두 약이 직접적으로 비교된 적이 없기 때문에 와파린 (warfarin)과 비교한 두 임상시험 결과만을 보기로 하겠다.
와파린은 두 약이 허가받기 전에 심방세동에 널리 쓰이던 항응고제다. 심방세동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두 약은 모두 와파린보다 출혈의 위험을 더 낮추었기 때문에 두 약의 출혈 위험은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엘리퀴스는 중풍이나 혈전증의 위험을 와파린보다 더 낮춘 반면 프라닥사는 용량에 따라 그 결과가 달랐다.
친척 아버님이 처방받은 용량인 프라닥사 110 mg의 효과는 와파린과 비슷한 정도였으므로 엘리퀴스의 중풍과 혈전증에 대한 예방효과가 더 좋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엘리퀴스는 출혈외에 특별히 다른 부작용이 없는 반면, 프라닥사는 출혈외에도 속을 거북하게 하는 부작용이 더 있기 때문에 부작용 측면에서도 엘리퀴스가 유리하다. 두 약 모두 하루에 두 번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 편의성은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친척 아버님이 엘리퀴스에서 프라닥사로 바꾸어야 할 이유가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그 이후, 그 친척 동생으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형, 아버님이 최근에 새로운 처방전을 받았는데 너무 약을 많이 드시고 계신 것 같아. 약을 좀 봐 줄 수 없을까 해서 연락해.”
처방전을 살펴 보니 다음과 같은 두 약이 있었다.
트라린 정 50 mg (설트랄린; sertraline)
졸로프트 50 mg (설트랄린; sertraline)
또 다른 중복처방. 친척동생에 따르면 하나는 신경정신과에서, 다른 하나는 심혈관 센타에서 처방받은 것이라고 한다. 한 달전에 일어났던 항응고제 처방과 똑같이, 다른 과에서 같은 계열 또는 같은 약을 중복처방해서 벌어진 일이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 의사회, 약사회, 정부가 함께 중복처방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빨리 마련해야 할 것 같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20-01-02 0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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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7> 황당한 치과의사
“여보, 당신한테 황당한 편지가 왔어.”
아내가 들어 오면서 내게 편지를 건네 주었다. 발송인을 보니 2주전에 치석 제거 (teeth cleaning; 우리말로는 스케일링)를 위해 방문했던 치과였다.
‘친애하는 미스터 _.
저는 치료하는 환자들과 좋은 의사-환자 상호 관계를 맺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저는 당신과 이런 관계를 맺지 못한 것으로 믿습니다.
당신의 진료기록을 보니 아직도 치료받지 못한 치아가 몇 개 있습니다.
치료를 계속 미루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어서 더 비싼 치료를 요하게 되며 치료를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고 치통도 생기고 결국은 이빨을 잃고 말게 될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치과 치료가 당신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저희 치과 대신 다른 치과로 가는 것이 더 낫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이 요구한다면 저희가 가지고 있는 엑스레이 결과를 포함한 진료기록을 당신이 원하는 치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다른 치과로 옮기는 데에 필요한 시간을 드리기 위해서 앞으로 30일의 기간 동안 당신이 저희 치과에서 응급 치료는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다른 치과를 찾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당신의 치과 보험에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치료가 지연되면 될수록 이빨은 더 썩을 것이고 이로 인해 이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닥터 매트 키이스크’
비즈니스 편지라 점잖게 말하고 있지만 요지는 권하는 치료를 받지 않아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자기 치과에는 더 이상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상업화된 미국 치과 의료계의 갈 데까지 간 모습인 것 같다.
난 이 치과에 두 번 - 2018년 3월과 2019년 2월 - 방문했었다. 모두 치석 제거를 위해서였다. 2018년에 처음 방문했을 때, 모든 새 환자들에게 하듯이, 치석 제거를 시작하기 전에 엑스레이를 찍어 치아에 문제가 없는 지 살펴 보았다. 검사 결과, 충치 등 몇 개의 치아에 문제가 있다면서 치료를 권했다. 금년에 내가 다시 방문하자 치석 제거를 해 주던 치과 보조사는 치료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고, 난 생각해 보겠다고 했었다. 그러자 갑자기 이런 편지를 내게 보낸 것이다.
내가 이 치과에서 권하는 치료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은 데에는 나의 과거 경험 때문이다. 이 치과에 가기 전에 난 다른 치과에 다녔었다. 2007년, 난 아무런 증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치과에서 충치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었다. 그런데, 치료를 받은 뒤 치통이 새로 발생하고 심해져서 치료를 받은 지 1주일도 안 돼 이빨을 갈아야 했다.
치과 치료는 대부분 시술을 요한다. 그런데, 모든 시술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금년에 치과를 방문했을 때 치료에 의한 이득과 위험에 관한 임상시험 증거를 물어 보았는데 만족할 만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 보고 싶었다.
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결정이기 때문에 전문가인 치과의사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권하는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자기 치과에는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하다니 그러면 이 치료는 정말 필요한 걸까? 그리고, 필요한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환자에게 다시 오지 말라고 하는 사람을 과연 의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난 미국의 치과 의료가 너무 상업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위의 극단적인 예 외에도 한 가지 예를 더 든다면 거의 모든 치과가 부과하는 no show fee로, 이는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환자들에게 부과하는 일종의 벌금이다. 환자가 미리 약속한 진료시간에 안 나타나면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그 시간에 다른 환자가 의사를 볼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박탈하는 것일 수 있다. 둘째, 의사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no show를 막기 위해 치과 의사 뿐만 아니라 일반 의사들도 진료 약속을 지키지 못한 환자들에게 no show fee를 걷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치과의사들이 일반 의사들과 다른 점은 일반의사들은 한두 번의 no show에 대해서는 fee를 물리지 않지만 치과의사들은 첫 번째 no show에도 물리는 경향이 크다. 또, 일반의사들이 물리는 no show fee는 20-30달러 (우리돈으로 2-3만원)로 비교적 소액인 반면 많은 치과의사들은 진료비 전체를 부과한다. 실제로 나는 예전 치과와의 치석 제거 예약을 한 번 못 지켰는데 이에 대해 치과의사는 내게 치석 제거 비용인 75달러 (우리돈으로 8만원)를 모두 부과했다.
이처럼 미국 치과의료가 너무 상업적이 된 데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치과 치료가 거의 없어서 사보험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이 큰 이유로 보인다.
각양각색의 사보험이 지불해 주는 치료의 종류와 심지어는 치과의사마저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위 편지에서 치과의사를 찾아 보는 데 도움을 받으려면 내가 가진 치과 보험에 연락해 보라고 한 것이다). 또, 치료마다 지불해 주는 정도도 보험마다 달라 어떤 경우에는 보험이라기 보다는 할인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진 치과보험은 나이트 가드 (night guard; 우리말로는 마우스 피스) 비용의 고작 20%만 지불해 준다. 그런데, 나이트 가드 하나에 500-600달러 (우리돈으로 60-70만원)이니 보험을 적용받아도 적어도 400 달러 (우리돈으로 약 50만원)을 내야 하는 것이다.
여러 개의 사보험이 있어서 가입자가 분산되니, 보험 회사의 협상력과 구매력이 낮아져 치과의사들과 협상할 때 지불하는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줄어 든다. 예를 들어, 100명이 살고 있는 곳에 3개의 치과가 있다고 치자. 만약 1개의 보험이 있다면 이 세 개의 치과 중 더 싸게 치료를 제공하는 곳으로 100명의 모든 환자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치과 비용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만약 5개의 보험이 20명씩 가입자를 나눠 갖는다면 이런 협상력과 구매력이 떨어져 치과 치료 비용은 올라간다. 또,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가입자가 고를 수 있는 치과 의사를 더 확보하려고 치과의사들이 원하는 가격에 맞춰 줄 가능성이 커진다.
메디케어같이 정부 차원에서 지불하는 치과 치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정부 보험은 치과 치료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 그렇다 보니 치과 치료 임상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많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치과 치료는 임상시험 결과에 따른 것보다는 치과 의사의 경험과 개인적인 의견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 많다는 인상을 받는다. 임상연구가 활성화되려면 많은 연구자들이 배출되어야 하는데 대다수의 치대생들은 졸업하고 바로 치과에서 일한다. 그래서,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연구자가 되는 사람의 수가 적어 임상연구는 계속 더디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는 것 같다.
치대교육을 받고 치과를 개업하는데에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많은 치과의사들이 큰 빚을 지고 치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최대한 수입을 올리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위 편지를 쓴 치과의사는 너무 했다. 다음 치과 의사는 좀 더 상식적인 의사였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9-12-02 1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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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6> 상호협력 관계인 환자와 의료진
“선생님, 지난 주에 받은 테스트 결과가 어떤가요?”
Mr. Z이 재진을 위해 이번 주에 클리닉을 방문했다. 60대 중반인 Mr. Z은 심근경색을 앓은 적이 있으며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의 만성질환이 있는 남성 환자다. 난 5 년 전에 Mr. Z의 주치의로부터 협진의뢰를 받은 이후, 계속 정기적으로 만나 오면서 약물치료를 돕고 있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 1월이었는데, 당화혈색소 수치를 측정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기에 나를 만나기 전에 다시 측정하도록 오더를 넣었었다.
“Mr. Z. 당화색소치가 더 좋아졌네요. 지난 4월 측정했을 때에는 6.7%였는데 지난 주에 측정한 것은 6.3%로 낮아졌습니다. 축하합니다! 우리 하이 파이브 한번 할까요?”
Mr. Z은 수줍어 하면서 나와 손바닥을 마주쳤다. 2019년 미국의 당뇨병 치료 지침서에 따르면 심근경색의 병력을 가진 Mr. Z의 당화혈색소 목표 수치는 7.5-8%미만이 되겠지만, Mr. Z은 저혈당의 병력도 없고 저혈당 위험이 없는 메트포민만 당뇨병 약으로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당화혈색소 목표 수치를 6.5%미만으로 잡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임상연구에 따르면 당화혈색소 수치가 낮을수록 당뇨성 신부전증, 신경병증, 안질환의 위험이 줄어든다.
“Mr. Z. 그런데, 좋지 않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혈압이 오늘도 여전히 높습니다.”
해맑게 웃던 Mr. Z의 표정이 좀 굳어졌다. Mr. Z은 고혈압 치료를 위해 베나제프릴 (benazepril) 40 mg을 하루에 한 알, 메토프로롤 서방정 50 mg을 하루에 한 알 복용해 오고 있다. 그의 이완기 혈압은 90 mmHg미만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축기 혈압은 금년 내내 143-158 mmHg로 140 mmHg보다 높게 유지하고 있었다 (2017년 미국 심장학회의 고혈압 지침서에 따르면 Mr. Z의 목표혈압 수치는 130/80 mmHg미만이어야 하지만, 노인 환자와 영어 이해력이 떨어지는 환자들이 많은 저커버그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가정의학과 클리닉은 약물에 따른 부작용 위험을 줄이고자140/90 mmHg미만을 목표 혈압 수치로 정하고 있다).
Mr. Z의 베나제프릴과 메토프로롤의 복용량은 최대 허가 용량보다 낮기 때문에 용량을 높이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베나제프릴을 하루 최대치 80 mg 까지 복용하더라도 혈압을 40 mg보다 크게 낮추지 않기 때문에, 하루에 40 mg이상으로는 보통 권하지 않는다. 메토프로롤의 경우 Mr. Z의 맥박이 분당 60 회정도로 낮았기 때문에 용량을 증가시키면 맥박수가 너무 낮아질 가능성이 컸다.
“Mr. Z. 고혈압 치료제를 하나 더 드시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Mr. Z은 대답이 없다. 복용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난 Mr. Z의 과거 약력을 떠올렸다.
Mr. Z의 주치의는 작년 초에 이뇨제인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 (hydrochlorothiazide)를 처방했었다. 우리 클리닉에서는 환자들에게 의사나 약사를 만날 때마다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약병을 모두 가져 오라고 지시한다. Mr. Z은 이를 잘 따르는 환자 중 하나인데 나를 만날 때마다 이상하게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 약병만 가지고 오지 않았었다. 구두로 물어보면 하루에 한 알 복용한다고 대답해서 처음에는 믿었었다. 그런데, 혈압은 조절되지 않고, 계속 이 약병만을 가지고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해서 한 번은 약국에 전화를 했었다. 그랬더니 약국에서는 Mr. Z이 이 약을 한 번도 타 간 적이 없다고 알려 주어서 Mr. Z가 이 약을 복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다. 내가 작년말에 학교에서 처음으로 가르쳐 보는, 무려 11.5학점짜리 코스로 인해 내 클리닉을 잠시 닫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를 대신해 동료 약사가 내 환자를 봐 주었는데 Mr. Z의 혈압이 조절되지 않자 암로디핀 (amlodipine)을 추가로 처방했었다. 그런데, 내가 금년 1월에 Mr. Z를 보았을 때 이 약병이 빠져 있어 물어 보니 암로디핀을 복용하지 않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었다.
Mr. Z은 벌써 다섯 종류의 약을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약을 추가로 복용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환자가 약물의 추가를 꺼리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경제적인 부담이나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으로 추가 복용을 거부하기도 한다. 또, Mr. Z처럼 자신이 약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는 생각때문에 꺼리는 환자들도 많다.
Mr. Z의 혈압이 아주 높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Mr. Z의 과거 약력과 복용을 꺼리는 이유를 고려할 때 새로운 고혈압약을 처방하더라도 Mr. Z은 이를 복용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의료진과 환자와의 관계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 협력적인 관계여야 치료결과가 더 좋다. 아무리 좋은 치료 방법이라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강요하면 환자들은 클리닉에서는 따르겠다고 말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서는 이를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들이 선호하는 것을 고려하면서 상호 협력적인 관계를 맺어야 환자들이 수긍하고 오래 따를 수 있다. 그래서, 난 Mr. Z이 원하는 방법을 먼저 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로 했다.
“Mr. Z, 그럼 우리 다른 방법을 먼저 시도해 보고, 그래도 효과가 충분하지 않으면 약을 추가로 복용하는 것이 어떨까요?”
Mr. Z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서, Mr. Z은 소금 섭취를 더 많이 줄여 보기로 했다. Mr. Z은 집에 부엌이 없어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 오고 있는데 음식을 주문할 때 소금의 양을 반으로 줄여달라고 요청하겠다고 했다. 또, 이틀에 한 번 30분씩 하는 걷기 운동을 매일 하기로 했다.
내년 1월에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그 때 Mr. Z의 혈압이 어떨지 매우 궁금하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9-11-12 1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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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5> 환자들의 거짓말
“교수님, Ms. T의 혈압약을 더 센 것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내 클리닉에서 외래 실습 (ambulatory care advanced pharmacy practice experience)을 하고 있는 UCSF 약대 4학년 학생이 혼자 Ms. T를 진찰실에서 먼저 만난 다음 내게 보고했다. 77세인 Ms. T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데, 주치의 (primary care provider)가 고혈압 조절을 도와달라고 협진의뢰를 요청한 여성 환자다. 원래는 3주전에 내 클리닉으로 초진이 예약되어 있었지만, 그 때 나타나지 않아서 (no show라고 부른다) 다시 예약이 잡힌 환자다.
차트에 따르면 Ms. T는 세 가지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베나제프릴 (benazepril) 40 mg 하루 두 번, 펠로디핀 (felodipine) 10 mg 하루 한 번,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 (hydrochlorothiazide 또는 HCTZ) 25 mg 하루 한 번. 베나제프릴의 경우 환자의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자 주치의가 한 달 전에 40 mg 하루 한 번에서 하루 두 번으로 용량을 올린 것이었다.
“혈압은 다시 재 봤니?”
오늘 학생이 Ms. T를 보기 전, 간호사가 혈압을 두 번 측정했었다. 혈압 측정치가 162/82와 158/80으로 목표혈압인 140/90미만보다 높았기 때문에 학생에게 혈압을 다시 측정해 보라고 지시해 놓았었다. 환자들이 클리닉 약속 시간을 맞추느라 서둘러 오게 되면 혈압이 높아지기 때문에 간호사가 측정한 혈압이 높은 경우 진찰실에서 환자를 안정시킨 후 혈압을 다시 측정한다.
“예, 152/80으로 여전히 높았어요.”
“집에서 측정한 혈압수치들도 봤니?”
차트에 따르면, Ms. T는 집에 혈압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클리닉에 오면 긴장이 되어서 집에서 측정한 혈압보다 클리닉에서 잰 혈압이 높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집에서 측정한 혈압수치들을 가지고 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집에서는 혈압이 138/76 이었다고 해요.”
“그 정도면 괜찮은데… 그런데, 왜 혈압약을 더 센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니?”
“Ms. T는 금년에 병원을 6번 방문했는데, 2월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혈압이 목표혈압보다 높아서요.”
“집에서 측정한 혈압이 클리닉에서 측정한 것보다 환자의 혈압을 좀 더 잘 알려주기 때문에, 난 집에서 측정한 혈압을 가지고 혈압약을 조절하는 것을 선호해. 하지만, 매번 클리닉에 올 때마다 혈압이 높았으니 약을 바꾸거나 더하는 것을 한 번 고려해 보기로 하자.”
고혈압 환자들의 혈압이 조절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혈압약을 처방에 따라 복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혈압약을 바꾸거나 더하기 전에 혈압약을 처방대로 복용하고 있는 지 꼭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Ms. T는 약을 처방한 대로 복용해 왔니?”
“베나제프릴은 40 mg 하루 한 번 저녁때만 복용하고 있다고 했고, 다른 두 혈압약 펠로디핀과 HCTZ는 처방대로 하루 한 번 복용하고 있다고 했어요.”
“베나제프릴은 왜 하루에 한 번만 복용하고 있다니?”
“약을 너무 많이 먹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랬대요.”
“그런데, 리필 날짜와 수량도 확인해 보았니?”
“아, 그걸 확인해 보지 않았네요!”
미국에서는 처방약 리필 제도가 있다. 이는 처방약을 다 복용한 뒤 의사를 따로 만나 다시 처방전을 받을 필요없이, 한 달에서 석 달 단위로 의사가 지정한 기간동안 (보통 1년) 약국에서 받아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약국에서 교부한 약병에는 약 이름 외에 리필한 날짜와 수량이 적혀 있기 때문에 이를 환자가 처방약을 처방대로 복용하는 지에 대한 평가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Ms. T가 있는 진찰실에 함께 들어 갔다.
“Ms. T. 약병들을 좀 볼 수 있을까요?”
펠로디핀은 지난 5월말에 약국에서 리필을 했지만 다른 두 약은 작년 12월에 석 달 수량을 리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약병에는 20-30개 정도 약이 남아 있었다.
“Ms. T, 이 약병들이 약국에서 가장 최근에 받은 것들인가요?”
“맞아요.”
“약병을 보니 작년 12월에 HCTZ와 베나제프릴을 3개월치 받으셨습니다. 오늘이 6월말이니 약을 다 드시고 다시 리필을 받으셨어야 하는데, 아직도 약이 많이 남아 있네요. 약을 매일 복용하고 계신 것이 맞습니까?”
“…”
“저희는 잘잘못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 약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그냥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는 것 뿐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Ms. T께서 약을 다 드시고 계시지 않은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저희가 약을 더 센 것으로 바꾸거나 새로운 약을 더하고 Ms. T께서 모든 약을 다 드시게 되면 갑자기 혈압이 크게 떨어질 수도 있어요.”
“…. 실은 펠로디핀만 복용해 왔어요.”
“왜 다른 약들은 복용하지 않으셨나요?”
“그냥 약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아서요. 또, 약을 많이 먹으면 간에 안 좋다고 듣기도 했고.”
내가 처음 클리닉을 시작할 때, 같은 클리닉에서 20년이상 환자를 봐 온 선배 약사 교수가 내게 이런 조언을 주었다.
“You will learn to appreciate patients’ lies.”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클리닉에서 환자를 본 경험에 의하면 많은 환자들이 거짓말을 한다. 특히, 처방대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지에 대해. 환자가 의사나 약사에게 거짓말을 할 때는 악의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의사나 약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의사와 약사의 입장에서는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를 위해서 환자의 처방약 사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환자가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리필 날짜와 수량을 확인하는 등 환자의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른 정보를 함께 얻으려 노력한다.
환자에게 화를 내거나 꾸지람을 하게 되면 환자가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또,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를 위해 필요한 환자와의 원만한 관계가 구축되기 어렵다. 그래서, 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처방약이 환자에게 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환자가 정확한 정보를 주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환자에게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추궁해야 하는 상황은 참 난감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환자가 그동안 내가 추천한 대로 따르지 않았으면 실망을 좀 할 것이다. 하지만, 환자도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터이니 이를 공유하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대안을 마련할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환자들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리고 싶다:
약을 안 드셨다고 해도 좋으니 본인의 건강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9-10-01 0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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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4> 고위 공직 후보자의 검증과 학생의 개인정보
‘교수님, A 학생의 재시험에 대한 건으로 연락드립니다. A학생은 자신이 재시험 본다는 것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아서 그 학생만을위해 따로 시험장소를 잡아야 합니다.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10년전, 내가 처음으로 과목을 담당했을 때 학교내 교육지원부로부터 받은 이메일이다. 중간고사를 통과하지 못한 학생이 10명쯤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재시험을 보아야 했다. 그런데, 그 중 학생 하나가 재시험을 다른 학생들과 같이 보면 자신이 시험을잘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므로 시험장소를 따로 잡아달라고 요구한 모양이었다. 학교 교육지원부는 이 요구에 따라 담당 교수였던 내게 이메일을 보냈던것이다.
학생의 요구에 따라우리는 시험 장소를 따로 잡았을 뿐만 아니라 시험감독관도 그 학생만을 위해 따로 구해야 했다. 그 학생 하나를 위해 학교의 더 많은 자원 – 교실과 감독관 - 을 써야 했지만 학교는 학생의 요구를 들어주어야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학생의 개인 정보 보호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시험도 못 본 주제에별 걸 다 요구하네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험 못 본 것과 학생 개인정보 보호는 별개의 사항이다. 시험을 못 보았다고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이는 법적으로 보호받는 사항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FERPA(Family Educational Rights and Privacy Act)라는 법이 있어 교육기관에서 생산된 학생에 대한개인 정보, 예를 들면, 시험 성적, 학사 징계 등에 대한 정보를 당사자 학생이나, 미성년자인 경우 부모의허락을 받지 않고는 제 삼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 여기에는 간접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포함한다. 그래서, 성적을 직접 제 삼자에게알려주지 않더라도 재시험을 치루는 다른 학우들이 A 학생을 보게 되면 A 학생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면 보호를 받을 수 있는것이다.
생각해 보면, 학업 성적, 징계 여부 등에 대한 정보는,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지않은 것들이다. 이는 성적이 좋건나쁘건 관계없다. 지금은 어떤지모르지만 내가 우리나라에서 교육받을 때만 해도 학생의 성적을 본인의 동의없이 공개하는 것은 꽤 흔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전교석차를 복도에 붙여 공개해서 누가 전교 몇 등인지 다 알 수 있었다. 학교측에서는 자극을 주고 분발하라는 뜻에서석차를 공개했겠지만, 특히 석차가 낮거나 떨어진 학생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성적이 다른 사람에게공개된 적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들은 일반화학 과목은 자연대 과사무실 앞 게시판에 시험 성적을 붙여 놓음으로써 성적을 발표했다. 그래서,성적이 발표되었다는 소문을 듣자마다 학우들이 자신의 이름과 점수를 지우려고 자연대로 전속력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이메일도 없고 학생들의 성적을학교 전산 시스템을 통해 알려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랬을 터이긴 하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내점수가 얼마인지 아는 것 보다 남에게 내 점수가 알려지는 것을 막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그 때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개념인 “개인정보”가 당시의 우리들에게 중요했던 것이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대한 검증이 한창이다 (아래 이슈를 제기하기 전에, 다른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언행이 일치하지 않았던 조국 후보자에 대해 많이 실망했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그런데, 검증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가 무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후보자 딸에 대한 개인정보가필요한 수준이상으로 공개되어 있다. 신문기사에의하면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후보자의 딸은 두 번이나 낙제를 했다고 한다. 과목도 알려져 있고 학점평균 조차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이 모든 정보는, 우리나라 법으로도 보호받는 사항들이다.
교육기본법 23조 3항에따르면 학교생활기록 등의 학생정보는, 법률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해당학생의 동의없이 제3자에게 제공되어서는 안된다. 성인인 후보자의 딸에 대한 이런 정보가 후보자 측이 아닌 언론에 의해공개된 것으로 보아 해당학생의 동의를 받지 않고 공개된 것으로 보인다. 이 학생은 학업을 끝내려면 아직도 몇 년이 더 남은 것 같은데 자신의학우들 뿐만 아니라 전국민에게 자신의 성적이 공개된 데에 대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앞으로 어떻게 학업을 지속할 수 있을 지 우려된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검증을 철저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법이 정해둔 테두리안에서 관련된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혹자는 특권층 부모를 둔 덕택에 좋은대학과 의전원을 갔으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할 지 모르지만 받은 특혜와 개인정보의 보호는 별개의 문제다. 마치 학생이 시험을 잘 보았거나 잘 보지못했거나 법이 정한 대로 개인정보를 보호받아야 되는 것처럼.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9-09-02 1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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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3> 논란이 일고 있는 국가 폐암 검진 – 검진대상자가 고려해야 할 득과 실
금년 7월1일부터 정부가 국가암검진사업의 일부로 시행하고 있는 폐암 검진이
논란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폐암
검진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위험군인 30갑년
이상의 흡연경력을 가진 만 54-74세의 남녀에게만 2년에
한 번씩 제공된다. 여기서 갑년이란
담배 한 갑을 1년 동안 피우는 양과 동일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30갑년은 매일
한 갑씩 30년동안, 또는 매일 두 갑씩 15년간 피우는 것과 같다. 검사대상자는 검진방법인 저선량 흉부 CT
검진료의 10%인 약 1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폐암은 조기 발견율이 20.7%로
낮아 진단 후 5년 생존율도 주요 암 중 췌장암에 이어 두번째로 낮은 26.7%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는 폐암 검진 사업을 통해 수술가능한 조기 발견율을 높여 진단
후 5년 생존율을 60%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1만3천여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폐암검진 시범사업에서 69명 (검진자의 0.52%)이
폐암진단을 받았는데 이 중 약 70%가 조기폐암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7월3일, 대학병원 의사 7명으로 구성된 과잉진료예방연구회는 기자회견을 열고이 폐암검진사업은 가짜환자를 양성하여 이들이 받을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로 인해 비용이 더 들 수 있고, 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미국 연구에서 폐암 검진을
받은 사람들 중 35.1%가 가짜양성이었는데 이 중 약 1%는
조직검사 등 추가 검사 과정에서 합병증이 발생했으며 약 0.3%는 사망에 이르는 등 불필요한 검사에
따른 위험성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또, 연구회는 폐암검진 혜택이 과장되었다면서 “정부는 국가 폐암 검진이 폐암 사망률을 20% 낮췄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폐암 검진을 통해 흡연자가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은 5%에서 4%로 1%포인트 낮아질 뿐”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저선량 흉부 CT검사 방법이 흡연자들의 폐암을 조기에 발견해 검진법으로
적절하다는 근거를 세계적으로 찾을 수 없으며 "현재 폐암검진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거나 국가가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권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사업의 중단을 요구했다.
폐암은 사망률도 높아
조기 발견하면 좋을 텐데 이 상반된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내가 폐암 검진 대상자라면 검진을 받아야 할까?
먼저 나는 과잉진단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높인 연구회의 용기와 활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치료에 대한 보험 수가가 낮은 우리나라 의료현실에서 폐암 검진은 추가
검사 등으로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 연구회의 주장은 병원의 이해에 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회의 성명서와 정부의 홍보에는 모두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이 있다.
국가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암검진 사업이라는 것이 없다. 하지만, 미국 암학회나 전문가들로
구성된 US Preventive Task Force에서 그 동안의 임상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암검진 (cancer screening)에 대한 지침 (guideline)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하여 정부보험과 사보험이 암검진을 지불한다.
폐암검진에 대해서는 미국 암학회와 US
Preventive Task Force에서 모두 지침서가 나와있으며 현재 정부보험과 사보험 모두 검진 대상자에 대해 지불해
주고 있다. 검진 대상자가 폐암
증상이 없는, 30갑년이상의 흡연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지만 검진 대상의 나이는
55-77세로 약간 다르다. 또, 우리나라가 2년에 한 번 검진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은 검진을 매년 받을 수 있으며 무료다.
이 지침서의 근거가
되는 임상연구는 미국에서 수행된 National Lung Screening
Trial (NLST)이라는 것이다. 이 시험은 폐암의 증상이 없는 30갑년
이상의 흡연경력을 가진, 55-74세의 5만여명을 저선량
흉부 CT와 흉부 엑스레이 군으로 나눠 약 6.5년간 추적하여
사망률을 비교하였다. 이 시험의
디자인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먼저, 시험을 시작한
첫 3년인, 2002년에서 2004년 동안 매년 검진을 수행하였다는 것이다. 검진 횟수와 간격이 중요한 이유는 검진에서 이상을 발견할 가능성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암검진의 목적은
조기 암을 발견, 치료함으로써 수명을 늘리는 데에 있다. 그런데, 조기 암이 임상적으로
증상을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는 암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적게는 몇 년에서 몇 십년의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검진을 자주할수록 초반 검진에서 놓치더라도 나중 검진에서 잡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증가하여 검진의 효용성이
높아진다. 두 번째는 폐암 진단
후 5년 생존율이 아닌 전체 사망률을 비교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망률은 폐암 뿐만이 아닌 검사의 부작용, 심순환기 질환 등 다른 이유로 사망한 것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사망률이 진단 후 5년 생존율보다
중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암 검진을 하게 되면 지금은 자각증상이 없더라도 나중에 암 진단을 받게 될 사람들의
진단 날짜를 당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들이 모두 암으로 사망한다고 하더라도 진단 날짜가 당겨졌기 때문에, 암진단
후 5년 생존율이 더 길어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를 lead-in bias라고 부른다). 둘째는 암의 확진 검사와 치료에 따른 부작용이다.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암검진은
이상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다른 영상 검사나 조직검사 등을 추가로
수행해서 확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검사들은 일반적인 암검진보다 부작용의 위험이 훨씬 높다.
예를 들어, 영상검사를 통해
더 많은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으며 (방사선은 암을 일으킬 수 있다),
조직검사는 출혈 등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모든 종류의 조기 암들이 자라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조기 암은 스스로 없어지기도 하고, 다른 것들은 너무 천천히 자라서 노환 등 다른 이유로 죽을 때까지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런
조기 암들은 굳이 치료해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조기에 발견된 암이 앞으로 문제를 일으킬 지 여부를 현재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술이든 항암제든
치료에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없는 조기 암을 치료하게 되면 환자는 해만 입게 된다.
이처럼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질병을 진단하는
것을 과잉진단 (over-diagnosis)라고 부른다. 따라서, 암검진에 의해 발생한
과잉진단으로 입은 해, 특히 가장 심각한 위해인 사망률을 고려해야 암검진의 득과 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과잉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생존할 것이므로 이에 따라 당연히 증가할 진단 후 5년
생존율은 암검진의 효용성을 알려주는 지표로서 부적절하다.
이제 NLST
시험결과를 살펴보자. 저선량 흉부 CT와 흉부 엑스레이 군의1000 명당 사망자 수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결과
저선량 흉부 CT
흉부 엑스레이
사망률
1000 명 중 70명
1000 명 중 75명
이 결과에 따르면, 저선량 흉부 CT를 1000 명에게
수행하면 흉부 엑스레이를 사용한 것보다 사망자의 수를 5명 더 감소시킬 수 있다. 정부 예측에 따르면, 연간 11만명이 저선량 흉부 CT
검사를 받을 것이라고 하니 6년간 500여명의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혜택에는 다음과같은 위해도 함께 따른다.
위해
검진자 1000명
당
결과가 양성
380
가짜 양성
356
침습성 검사가 필요한 사람 수
18
침습성 검사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 사람 수
0.4
저선량 흉부 CT로 1000명을 검사하면 38%인 380명이 양성 판정을 받는데, 이 중 무려 94%에 해당하는 356명은 추가 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을 받았다 (물론, 시험이 수행될 당시인 2002-2004년보다
영상기술이 발전해서 가짜양성 판정을 받을 확률은 좀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 추가 검사에는 비용과 부작용이 따른다. 특히,
조직 검사 등의 침습성 검사 (invasive procedures; 수술 등 상처를 내서
하는 검사)에서 감염, 출혈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만 명당
4명에게 일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선량 흉부 CT로 양성인 사람 중 10-20%는 과잉진단을 받을 것으로 예측되므로, 연간 11만명을 검사한다면 3800-7600명의 사람들이 필요없는 치료를
받게 되는 셈이다. 또, 비록 저선량 CT는 진단용 일반 CT에
비해 방사선 노출량이 20%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흉부 엑스레이보다는
14배 더 높고 한 번의 저선량 CT 검사로 일상생활에서
일 년동안 받는 양의 약 30%를 받는 것과 같아 암 발생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요약하면, 미국에서 수행한 대규모 임상시험결과 저선량 흉부 CT는 흉부 엑스레이에
비해 폐암 고위험군의 사망률을 감소시킨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의 암학회 등은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매년 검사하는 것을 권고하며, 정부보험과 사보험 모두 검사비용을 지불해 주고 있다. 하지만,
검사에 따른 위해도 만만치 않다.
검사결과가 가짜양성의 확률이 90%이상이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불필요한
추가검사의 비용과 부작용이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과잉진단을 받아 수술과 항암제 등 불필요한 치료를 받을 사람들의 수도 만만치 않다.
앞서 지적했듯이 정부가
수행하고 있는 폐암검진 사업은 NLST 시험 디자인과 좀 차이가 있기 때문에 NLST 시험결과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폐암검진사업의 검사 간격은 2년으로
NLST 시험의 매 1년보다 더 길다. 그래서,
시범사업을 할 때 대조군을 두고
2년마다 한 번씩 검사하고, 조기 폐암 발견율이 아닌 사망률을 측정했으면 좀
더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폐암검진 사업을 도입할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
그러면, 검진 대상자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처럼 득과 실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은 검사의 경우, 대상자에게 득과 실을 충분히 알려주고 본인이 검사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국 대상자의 몸에 대한 결정권은 본인 자신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를 받는다는 것은 양성이 나왔을 경우 침습성 검사 등 위험이 따르는
검사도 받게 되고, 여기에서 암으로 진단을 받으면 과잉진단의 위험이 있더라도 수술 등 치료를 받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만약 이런 것이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으면 검사를 받지 않으면 된다.
일차의료가 확립되어
있으면 주치의가 득과 실에 대한 정보를 주고 대상자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에 대해서도 대답해 주는 등 대상자의 선택을 도와 줄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검사기관에서 이런 역할을 대신하여야 할 것이다. 흡연은 폐암의 가장 큰 원인이므로 폐암을 줄이기 위해서는 금연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검사를 금연 상담과 연계시키겠다는 것은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저선량 흉부 CT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온 흡연자들은 담배를 계속 피워도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금연 상담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금연 상담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점에서, 주치의가 없는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상담이 이루어져 궁극적으로 금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흡연율이 아직도 20%가 넘기 때문에이를 낮추는 데 더 많은 재원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9-09-02 1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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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2> 학장님의 리더쉽 (Leadership) – lead by example
‘안녕하세요 교수님, 다음 주 3일간 예정된, 약사들을
포함한 병원직원들의 파업때문에 교수님 과목의 구두시험에 시험관으로 배정했던 12명의 약사 레지던트들을
부득이 약국 업무로 복귀시켜야 되겠습니다.
이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UCSF
대학병원 약사 레지던시 프로그램 디렉터’
엥,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인가? 구두시험 (oral
examination)이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레지던트들이 참여할 수 없으면 어디서 12명의
시험관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난감했다.
내가 봄학기에 약대2학년생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과목인 약물치료학 2는 6학점짜리로 심순환기질환에 대한 약물치료법을 주로 다룬다. 약물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식뿐만 아니라 의사소통 기술도 중요하기
때문에, 구두시험을 통해 학생들의 의사소통 기술을 평가한다.
구두시험은 학교 도서관의 Kanbar 센터라
불리는 임상 시뮬레이션 센터를 이용하는데 이 시설은 약대뿐 아니라 의대, 간호대, 치대, 물리치료학과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보통 시험 1년전에 미리 예약해 두어야 원하는 날짜에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봄학기 중에 구두시험
날짜를 다시 잡는 것은 불가능하고 다음 주에 예정대로 치뤄야만 한다.
Kanbar 센터에 예약한 5시간
안에 120여명의 학생들을 모두 평가하기 위해서는 12명의
시험관이 필요하다. 이는 레지던트들이
주로 맡는데 그 이유는 교육 수련 (education training)이 우리 병원의 레지던트 수련의
목적 중 하나이고, 약대생들의 교육 평가에 참여하는 것도 교육 수련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참여할 수 없으면 일주일도 안 남은 시간동안 12명의 시험관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일단 약대 내의 교육지원부서 (Office of Educational and Instructional Support)를 통해 약대 내부 교수들과
외부 겸임교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급하게 보냈다. 사정을 들은 학과장도 내게 이메일을 보내 환자 케어 때문에 자신이 직접
도와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과내의 교수들에게 따로 이메일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시간이 별로 없는 데다, 병원이 파업하는 경우 약사 면허증을 가진 학교 교수들까지도 병원 약국의 업무를 도와 주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이메일을 보낸 지 1시간도 안 되었는데 도와 줄 수 있다는 이메일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단 하루만에
무려 13명이 도와줄 수 있다고 해서 그 중 하나를 거절해야만 했을 정도었다.
이들 중에는 병원 파업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은퇴한 교수들, 외부 겸임교수들, 임상약리학과의 펠로우들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학장도 있었다. 학장은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자신의 일정을 조절해서 구두시험 5시간동안 모두 도와 줄 수 있으니 필요하면
편히 부탁하라고 썼다. 나보다도
훨씬 바쁠 텐데 시간을 내 주겠다니 정말 고마웠다.
학장이 도와주겠다고
한 것은 이 번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작년 7월부터 새로운 교과과정을 시작했다. 새 교과과정에서 난 1학년을
대상으로 10월말부터 12월까지 진행되는 심순환기 블럭 (Cardiovascular block)을 맡았는데 블럭 시작을 1주일
앞두고 UCSF 대학병원 레지던시 프로그램 디렉터로부터 또다시 그 공포의 이메일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다음 주 3일간 예정된, 약사들을
포함한 병원직원들의 파업으로 인해 심순환기 블럭의 소그룹 지도에 배정된2명의 약사 레지던트들을 부득이
약국업무로 복귀시켜야 되겠습니다. 이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UCSF
대학병원 약사 레지던시 프로그램 디렉터’
지난 5월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쟁점이 타결되지 않아 다시 파업한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과목을 운영할 때만 파업을 하는 것일까?? 5개월전에 경험했기 때문에
그 때 했던 대로 교수들과 겸임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돌렸더니 또 학장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먼저처럼 일정을 조절해서 도와주겠다고.
학장은 단과대학의 리더다. 여느 조직처럼 리더의 행동은 교수를 포함한
학교 구성원들의 학교에 대한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 조직을 효과적으로 이끄는 방법 중 하나로 lead by example – 모범을 보여 줌으로써 이끈다 - 란
말이 있는데 우리 학교 학장의 리더쉽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모범을 보임으로써 학장이 나와 다른 교수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는 학교일을 수행하는
동안 동료 교수가 어려운 사정에 놓였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라는 것이다. 대학교는 다른 조직과 달리 팀워크가 덜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또,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조직의 경우, 높은 자리에 있거나 나이든 사람은 시험관같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일을 내 짠밥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학교 학장은 학교의 미션들 – 연구, 교육, 환자치료, 사회공헌(service) - 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팀워크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들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있고 더
바쁠 학장이 시간을 내서 도와 주면 다른 교수들도 따라 도와 줄 수밖에 없다.
둘째, 교육은 학교의 중요한
미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 두 에피소드에서 사실 학장이 도와주려고 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학생들이다. 구두시험과 소그룹 활동이 취소되면 학생들이 그만큼 배움의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장이 바쁜 자신의 일정을 바꿔 가면서 양질의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려고 했던 것이다.
몇년 전 난 우리나라 약학회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었다. 6년제가 실시된
지 얼마되지 않아 열린 학회여서 새롭게 도입한 실무실습에 대한 학교간에 그동안의 경험을 공유하는 세션이 있었다. 실무실습은 임상약학교수 담당이라 당연히 많은 임상약학교수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어느 임상약학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약대 교육을 최종 책임지는 학장님은 단 한 분도 참석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UCSF
약대가 양질의 졸업생을 꾸준히 배출해 내는 데에는 학교 구성원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보여주는 학장의 리더쉽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9-07-03 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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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1> 인터넷 건강관련 정보에 의해 생기는 환자들의 오해
‘어~, Mr. Y 환자가 지난 주에 Urgent care 클리닉에 왔었나 보네.’
내 클리닉은 금요일에 있다. 그래서, 난 방문예정인 환자들의 의무기록을 목요일 오전에 미리 읽고 다음 날 있을 클리닉을 준비한다 (이를 영어로는 patient work-up이라고 한다). 3주 전에 만난 Mr. Y의 재진 (follow-up)이 예정되어 있어서 그동안 새로 작성된 의무 기록을 읽어 보던 중 그가 통풍 발작 (gouty attack 또는 gout flare)으로 urgent care 클리닉을 일주일 전에 방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Urgent care 클리닉이란 응급실 (emergency department)에 가야 할 정도 위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빨리 의사를 만나야 하는 경우 환자가 방문할 수 있는 클리닉이다. Urgent care 클리닉을 방문한 것으로 보아 Mr. Y의 통풍이 심한 상태였나 보다.
Urgent care 클리닉에서 작성된 의무기록에 의하면, Mr. Y는 본인이 인터넷에서 찾아 낸 의료정보를 보고, 혈압약인 이베사탄 (irbesartan)이 통풍 악화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때문에 Mr. Y는 저커버그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 (Zuckerberg San Francisco General Hospital)을 못 믿겠다고 해서, Urgent care 클리닉 의사는 신뢰회복이 지금은 가장 필요하다고 적고 있었다.
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베사탄은 내가 3주전에 Mr. Y에게 처방한 약이었기 때문이다. Mr. Y는 40대 초반의, 조현병 (schizophrenia), 통풍, 고혈압의 지병을 가진 중국계 환자로 고혈압 치료를 위해 내게 의뢰된 환자다. 고혈압 치료로 원래는 발사탄 (valsartan) 320 mg을 하루에 한 번 복용하고 있었는데, 나를 방문하기 한 달 전, 주치의가 리시노프릴 10 mg 하루 일회 복용으로 바꾸었다. 주치의가 약을 바꾼 이유는 미국에는 중국에서 제조된 제너릭약이 많은데 이 중 발사탄이 발암물질에 오염되었다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리시노프릴로 바꾼 다음, Mr. Y의 혈압은 조절이 잘 안 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우선, Mr. Y는 발사탄 최고용량을 복용하고 있었던 반면, 리시노프릴은 허가 받은 최고 용량인 80 mg보다 훨씬 적은 용량으로 처방받았다. 또, 리시노프릴은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발사탄보다는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Mr. Y의 혈압은 발사탄으로 비교적 잘 조절되어 왔었다. 그래서, 난 리시노프릴을 발사탄과 같은 계열인 안지오텐신 수용체 길항제인 이베사탄 (irbesartan; 우리나라에서는 이르베사탄으로도 부르는 것 같다. 그런데, 어베사탄이 영어 발음에 더 가까운 표기다) 150 mg 하루 일회 복용으로 3주 전에 바꾸었다.
이베사탄을 고른 이유는 Mr. Y의 보험은 안지오텐신 수용체 길항제 중 로사탄 (losartan)과 이베사탄만을 급여로 취급하고 있었고, 이베사탄이 로사탄보다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 당시 Mr. Y는 어머니와 함께 방문했었다. 어머니는 은퇴한 간호사였고, 집에서 Mr. Y의 혈압을 재고 있었다. 그래서, 난 어머니와 Mr. Y에게 이베사탄 150 mg으로 바꾼 뒤 일주일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으면 300 mg 하루 일회 복용으로 올리라고 지시했다.
Mr. Y은 통풍의 병력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따로 통풍약을 복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른 약을 따로 복용하지 않아도 지난 5-6년 동안 한 번도 통풍 발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육류 섭취나 알콜 섭취가 늘어나면 통풍 발작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단 하나 바뀐 것 – 이베사탄 - 이 통풍발작을 일으켰다고 생각하고 인터넷을 찾아 본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이베사탄이 통풍 발작과 관련이 있는 지는 확실하지 않다. 2012년에 영국의학잡지 (British Medical Journal)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로사탄을 제외한 안지오텐신 수용체 길항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통풍이 발생할 위험이 24% 높다. 약 75,000명의 대규모 환자들의 의무기록을 바탕으로 한 이 연구는 통풍의 발생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 - 예를 들어, 알콜과 육류 섭취 – 에 대한 정보를 환자들부터 직접 수집하지 않았으며, 여러 안지오텐신 수용체 길항제를 함께 묶는 등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 의하면 이베사탄은 통풍의 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혈중 요산 수치를 낮춘다. 혈중 요산 수치가 높을수록 통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베사탄이 혈중 요산 수치를 낮춘다면 이는 통풍이 발생할 가능성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도 의무기록을 가지고 한 연구이기 때문에 여러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이베사탄이 통풍을 일으키는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날, 어머니와 함께 다시 클리닉을 방문한 Mr. Y의 손에는 프린트물이 쥐어져 있었다.
“여기에 의하면 이베사탄이 통풍을 일으킨다고 하는데요.”
그 프린트물은 미국에서 가장 큰 체인 약국인 월그린스 (Walgreens)의 약물정보 웹사이트에서 출력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이베사탄이HCTZ와 함께 들어 있는 복합제에 대한 약물정보였다. HCTZ는 hydrochlorothiazide (우리나라에서는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로 표기하고 영어로는 하이드로클로로사이아자이드로 발음한다)의 약자다. HCTZ는 이뇨제로, 요산의 배출을 막아 통풍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잘 알려진 약물이다. 위에 언급한 영국의학잡지의 연구에 따르자면, 이뇨제는 통풍이 발생할 가능성을 약 2.4배나 높인다.
“난 HCTZ가 무엇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여기에 irbesartan이 씌여져 있어서 irbesartan이 통풍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자신이 걸린 질병이나 복용하고 있는 약을 직접 찾아 보는 환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약도 잘 복용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난 건강관련 정보를 찾아 보는 환자들을 격려하는 편이다. 인터넷 덕분에 Mr. Y와 같이 대부분의 일반 환자들이 건강관련 정보를 찾기는 쉽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찾은 정보가 자신에게 맞는지 판단하고 적용하는 데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과 수련이 부족하기 때문에, 처방받은 치료법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이런 오해로 말미암아 자신을 담당한 건강관련 종사자들을 믿지 않고 치료를 임의로 중단해서 질병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Mr. Y도 마찬가지다. 월그린스의 웹사이트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이베사탄을 더 이상 복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혈압이 지난 번 방문했을 때보다 훨씬 높아져 있었다.
“Mr. Y, 건강관련 정보를 직접 찾아 보신 것은 잘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이 정보들이 자신에게 맞는 내용인지 판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지금처럼 오해를 일으킬 수 있으니 저에게 직접 물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이건 제 이메일 주소입니다. 클리닉에 오기 전에 건강이나 약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제게 이메일을 주세요.”
그로부터 약 일주일이 지났을 때 Mr. Y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혈압약을 복용하고 1시간이 지났는데 혈압이 안 떨어집니다. 혈압약이 듣지 않는 것인가요?”
Mr. Y에게 다시 신뢰를 얻었나 보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9-06-10 1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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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60> 소비자 직접 의뢰 (DTC)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할까?
지난 2월, 정부는 소비자직접 의뢰 (DTC) 유전자 검증 서비스인증제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시범사업을 위해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산하 유전자 심의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판단된 “개인의 특성이나 건강에
관련”된 57 개 항목이 선정되었다 (아래 표 참조).
표. 인증제 시범사업 적용 DTC 검사항목
이를 살펴보면, 비타민 등의 영양소 농도를 비롯하여 기미/주근깨, 새치 등 피부/모발의 특성, 그리고
혈압, 혈당 등 건강에 관련된 다양한 항목이 들어 있다.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공청회 등을 통해 유전자 검사 제도 개선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하니 궁극적으로는DTC 유전자 검증제도를 도입하여 “안전하고
정확한 유전자 검사를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것이 그 목적인 것 같다. 유전자 검사라는 용어가 많이 낯설 일반인들, 혹은 이 제도의 말을 빌려 말하면 소비자들에게 우리 약사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이 유전자 검사에 대해 어떻게
조언해야 할까?
먼저 몇 가지 용어에
대해 설명해 보기로 한다. 유전자란,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가진 모든 DNA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DNA는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생명현상에 아주 기본적이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DNA는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으로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얼굴이 서로 다르게
생겼고 질병에 대한 감수성, 약물에 대한 반응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예를 들면, 내가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보통 의학 검사는 의사가 환자를 대신해서 검사기관에 의뢰하지만, 이 제도는
소비자가 의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검사기관에 의뢰한다고 해서 “소비자 직접 의뢰”라는 말을 붙였다.
그런데, 영어 약자인 DTC는 direct to consumer란 말로, 검사기관이 의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자에게 검사상품을 파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검사기관 – 이 제도에서는 검사회사 – 가 직접 소비자에게 광고해서 소비자로
하여금 검사를 주문하게 하는 것이므로 “소비자 직접 의뢰”보다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검사상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이름일 것이다. 어쨌든 요약을 하면, 이 제도는
유전자 검사 회사가 의료기관이나 의사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광고하고 소비자가 유전자 검사를 주문하면 검사결과를 직접 소비자에게 건네주는
것이다.
의사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 자신이 상품을 고르는 것이 매력적으로 들리기는 하지만 검사를 주문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검사를 통해 어떤 정보를 얻느냐이다. DTC 유전자 검사의 경우, 소비자가
얻는 정보는 검사항목에 대한 발현 가능성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여기서의 가능성이란 내가 가진 유전자 특징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를 말하므로 상대적인 가능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내가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이 20% 더 높다라는 결과를 받았다면, 이는
내 유전자 특징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내가 20% 더 높다는 의미지 내가 앞으로 고혈압에 걸릴
확률이 20%란 뜻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DTC 유전자 검사의
대상이 되는 유전자들이 개인의 특성이나 건강에 대해 끼치는 영향은 대부분 10-30% 정도로 비교적
작다. 즉, 어떤 유전적 특징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발현 가능성이 10-30%
정도 높을 뿐이지 10-30배 더 높은 것이 아니다.
상대적이며 제한된 영향만을
알려준다는 측면외에도 DTC 유전자 검사를 통해 얻는 정보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개인의 특성이나 건강에 관련”된 항목들은 유전자 외에 환경 등
다른 요인도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는 기미/주근깨의 예를 들면, 햇볕의
강도와 이에 노출된 시간이 큰 영향을 끼친다.
또, 식단, 운동 등 개인의 생활습관이
고혈압의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개인의 특성이나 대부분의 질병은 여러 유전자와 환경적 요인이 함께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다. 또, 어떤
유전적인 특징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특성이나 질병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그 유전적 특징을 가지지
않았다고 해서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DTC 유전자 검사
대상은 아니지만, 돌연사를 일으키는 ‘긴 QT 증후군 (long QT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이 증후군은 심장세포 내외로 이온들을
이동시키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의 변이 때문에 나타난다. 그런데, 이 증후군은 유전적
변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모두 나타나지 않는다.
반대로, 이 변이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약물 등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심장세포 내외로 이온들을 정상적으로 이동시키는 데에 문제가 생겨 돌연사하기도 한다.
또 다른 한계는 개인의
특성과 건강과 관련있는 유전적 변이들이 모두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밝혀지지 않은 유전적 변이들은 유전자 검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검사결과가 정상으로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두 번째로 고려할 점은, 검사결과를 어떻게 진단, 예방,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느냐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새치가 나올 가능성이 30% 높다고 하자. 내가 새치 발생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마도 거울을 자주 보면서 흰 머리카락이 나올 때마다 뽑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새치 뽑는 일은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고도 외모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면 부지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새치는 개인 특성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자. 그러면 질병 발현에 관련된 경우는 어떨까? 예를 들어,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20% 더 높은 결과를
받았다면 고혈압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예방법이 있지 않을까? 일단, 고혈압 예방약은 아직
허가받은 것이 없으므로 약은 쓸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생활습관 – 소금섭취
줄이기, 규칙적인 운동 등 – 밖에 없는데 이는 유전적으로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이 높든 낮든간에 정부와 의사단체 등이 모든 사람들에게 실천하기를 권고하는 것들이다. 이처럼 DTC 유전자 검사에
포함된 항목들은 실제 그 결과를 임상적으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 다시 말하면, DTC 검사
결과, 어떤 유전적인 특성을 가졌다고 해서 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진단, 예방, 치료방법이 달라지지 않는다.
진단, 예방, 치료라는 관점에서 보면, 검사는
반드시 필요한 것 (necessary to have)과 알면 좋은 것 (nice to know)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진단, 예방, 치료 방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다. 그런데, 예방과 치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검사 결과에 따른 예방과 치료법이 존재해야 한다. 혈압이 좋은 예이다. 혈압약이 있으므로 혈압이 높으면 약을 사용하여 떨어뜨릴 수 있다. 반면,
어떤 검사 결과는 알면 좋지만 그렇다고 그 결과가 진단과 치료방법을 바꾸는 것이 아닌 것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건강검진검사 항목으로 인기가 있는 체지방 측정이 이에 해당한다. 몸의 어느 부분에 지방이 더 많다라는
정보는 알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부분에서만 특별히 지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식품으로든 약으로든 아직까지는 없으므로 치료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즉, 몸무게 재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알면 좋은 검사는 진단, 예방,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돈을 들여서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세째, 검사에 따른 위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약이나 시술과 달리 검사를 쉽게 받는 경향이 있는데 약과
시술처럼 모든 검사에는 위험이 따른다. 이
위험에는 크게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있다.
물리적인 위험은 약하게는 주사로 채혈할 때 수반되는 통증에서부터 엑스레이나 CT 검사에서
피할 수 없는 방사선 피폭 (암을 일으킬 수 있다), 시술을
필요로 하는 조직검사에서의 출혈과 같이 심각한 것 등 그 정도가 다양하다. 또, 모든 검사는 오류의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부정확한 결과에 따라 불필요한 치료를 받게 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다행히 DTC 유전자 검사는 침을 채취하여 입안쪽 점막에서 떨어져 나온 세포들을 분석해서 결과를 내기 때문에 물리적인 위험은 거의 없다. 또, 유전자 감식의 경우 현재
기술 수준으로 정확도 (analytical validity)가 99%
이상이므로 오류가 있는 결과가 소비자에게 제공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 그런데, 유전자 검사는 특히, 건강에 관련된 경우, 정신적인 위험이 따른다. 예를 들어,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암에 걸릴 가능성이 20% 높다는 결과를
받았다고 하자. 어떤 사람들은
그 결과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을 수 있다.
물론 DTC 유전자 항목에는 암이나 치료가 어려운 질병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가 받을 정신적인 위험은 비교적 낮아 보이기는 하다.
마지막으로 DTC라는 독특한 제도에 관련된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DTC 유전자 검사 결과가 직접 소비자에게 보내지기 때문에 건강과 의학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소비자가 이를 잘못 해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흡연자가 DTC 유전자 검사결과
자신의 니코틴 의존도가 다른 사람보다 낮게 나왔다고 하자. 이 결과를 가지고 자기가 니코틴에 대한 영향을 덜 받으므로 담배가 자신에게
덜 해로울 것이라고 잘못 해석해서 계속 흡연할 수 있다. 또, 건강에 관련된 모든 유전자
검사가 정상이라는 결과를 받은 소비자가 자신은 위험이 낮다고 생각해서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을 게을리할 수도 있다.
이상과 같이 DTC 유전자 검사를 주문하기 전에 1) 이 검사로부터 얻는 정보에는
많은 한계가 있고 2) 이 검사 결과가 진단, 예방, 치료방법에는 현재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3) 이 검사 결과를
잘못 해석하면 건강에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 글이 약사의 임무 중 하나인,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환자들에게 조언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필자정보>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9-05-07 1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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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59> 이대목동 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이대목동 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지난 2월, 법원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 사고’와 관련하여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병원 의료진과 간호사 7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한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 사고는 2017년 12월16일 밤 약 1시간 30분에 걸쳐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던 4명의 신생아가 사망한 사건이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상온에 방치된 뒤 시트로박터 프룬디 (Citrobacter freundii)라는 균에 의해 오염된 주사 영양제를 맞고 패혈증에 걸려 사망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검찰은 담당 의료진과 간호사들이 감염예방수칙을 위반하고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다며 기소했지만 법원은 “감염을 방지할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은 인정되지만 이 점과 신생아 사망 사이의 인과 관계가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흠.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고귀한 생명을 넷이나 잃었는데 잘못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나는 검찰이 번지 수를 잘못 짚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개인보다는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위해가 일어나는 사건의 경우, 고의나 태만이 원인이 아닌 이상, 개인의 잘못 때문에 벌어졌다기 보다는 여러 사람이 관련된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 벌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병원에서 받는 케어의 과정이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굉장히 복잡한 시스템에 의존한다. 한 환자의 케어에는 직접 환자를 접하는 의사, 간호사외에도 환자가 직접 접하지 않을 수 있는 검사실 직원, 약사 등등 여러 사람들이 필요하고 이들의 역할은 시스템에 의해 규정된다. 즉, 병원이라는 시스템에서 의사, 간호사, 약사 등 각 구성원의 역할이 정해지고, 이에 따라 각각 맡은 역할을 함으로써 환자 케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병원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병원의 시스템에는 환자의 안전을 위한 장치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 의사 자신이 직접 약을 구해 환자에게 투약하는 것이 아니라 처방전을 약국에 보내 약사가 검토하게 하고, 약국이 병동으로 보낸 약은 투여하기 직전에 간호사가 다시 최종 점검을 하는 등 여러 겹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에게 위해가 일어났다는 것은 시스템이 마련한 안전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병원의 시스템은 여러 사람이 관여하는 복잡한 것이라 때로는 구성원들의 역할과 책임이 모호해 질 수 있다. 그래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의 운용을 돕고자 병원은, 영어로는 ‘policy & procedure’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매뉴얼이라고 부른다)와 지침서 (guideline)이라는 것을 만들어 구성원들과 공유한다. Policy & procedure에는, 말 그대로 어떤 사항에 대한 병원의 정책과 과정이 담겨있다.
이 문서에서 주사 영양제라는 사항의 예를 들어 보면, 누가 만들고, 어디에 보관하며, 유효기간은 언제이고, 어디에 어떻게 표시하며, 소량으로 분주하면 누가 어디에서 어떤 시설을 갖춘 곳에서 하는지 등등이 포함되어 있다. 지침서는 보통 어떤 사항에 대한 권장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주사 영양제는 어떤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며 어떤 것을 모니터하는 것이 좋겠다하는 것을 권장하는 식이다.
그런데, 시스템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 아무리 잘 디자인했다고 하더라도 사용을 하다보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병원은 정기적으로 시스템을 검토 분석해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함으로써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이를 질 개선 (quality improvement) 활동이라고 부르는데 병원내 여러 위원회 (committee)가 이를 맡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나는 우리학교 병원의 anticoagulation & hemostasis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데 의사, 약사, 간호사, 혈액 검사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분기별로 모임을 갖고, 병원에서 사용하는 항응고제, 항혈소판제 등의 사용에 관련된, 병원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나 환자 안전에 관련된 사항을 검토 분석하고 이 약물들의 사용에 관련된 policy와 procedure와 지침서를 만들고 개정하는 활동을 한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사망 사건의 원인을 살펴 보면 1) 약국에서 조제한, 쉽게 상할 수 있는 주사용 영양제가 상온에 보관되었고 2) 신생아 한 명당 한 병의 영양제를 주사해야 하지만 병원은 이를 나누어 여러 신생아에게 사용했고 3) 무균 시설을 갖춘 약국에서 약사가 분주해야 할 영양제를 간호사가 병동에서 직접 분주했으며 4) 보관 또는 분주 과정에서 균에 오염되어 투약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사제 준비자와 투약자가 같아야 한다는 간호 수칙도 어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대목동병원은 1993년 개원이래 한 병의 영양제를 여러 신생아에게 나누어 맞추는 관행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위에서 보듯 이 사건은 한 사람이나 소수의 고의나 태만으로 벌어진 것이 아니다. 대신 의사, 간호사, 약사 등 신생아 중환자실 케어에 관련된 병원 직원들이 시스템이 요구하는 역할을 다 하는 가운데서 벌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에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약국에서 병동으로 보낼 때 영양제 주사제 병 라벨에 어디에 보관해야 하는 것이 명확히 표기되지 않았거나 병동의 냉장보관시설이 충분하지 않았을 수 있다. 또, 병동에서 주사제 준비자와 투약자가 같은 지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과 개선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주사 영양제를 신생아에게 사용하는 데에 대한 policy와 procedure나 지침서가 만들어져 있지 않았거나, 만들어졌어도 이를 제대로 지키는 지에 대한 병원 차원의 정기적인 검토와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특히, 개원이래 한 병의 영양제를 여러 신생아에게 나누어 맞추는 관행을 계속해 왔다는 것은 구성원들이 이를 주사 영양제에 대한 병원의 정책으로 여기고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사건은 병원이 신생아들에게 주사 영양제를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에 대해 촛점을 맞춰야 한다.
시스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도 필요하다. 고의나 태만이 아닌 이상 개인에게 탓을 돌리게 되면, 잘못 작동되고 있던 시스템이 계속 운영될 가능성이 커서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가능성이 큰 반면, 시스템에 대해 촛점을 맞추면 비슷한 시스템을 가진 다른 병원들도 이를 개선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어 의료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개선되기 때문이다. 네 명의 어린 생명을 잃었는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9-04-01 12: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