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약국] <89> 궁금한 약 수면제 이야기
대체로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매 가능한 비처방약은 부작용이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수면제는 약국에서 처방 없이 사는 비처방약보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처방받아서 약국에서 타는 처방약이 더 효과적이고 부작용 면에서 나을 수 있다. 약국에서 판매되는 비처방약 수면제도 안전하기는 하다. 미국 FDA는 항히스타민제인 디펜히드라민을 ‘자가 치료에 안전하고 효과적인 수면보조제’로 분류했다. 수면제는 크게 나눠서 잠이 안 올 때 졸리도록 유도해주는 수면유도제와 계속 졸리게 해서 7~8시간을 잘 수 있게 도와주는 수면제로 나눌 수 있다. 처방약을 수면제, 비처방약을 수면유도제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처방약으로 쓰이는 수면제를 수면유도제라고 부르면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비처방약 수면제는 약효가 생각보다 오래간다. 보통 약효가 7~8시간 지속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졸음이 낮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경우에 낮에 운전이나 기계 조작을 하면 매우 위험하다.
불면증 치료에 있어서 비처방약 수면제는 일시적으로만 써야 한다. 쉽게 말해 때때로 잠이 잘 안 오는 경우에 띄엄띄엄 써야 한다. 만성 불면증 환자에게는 효과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디펜히드라민 같은 항히스타민제는 오래 쓰면 진정 효과에 대해 내성이 생겨서 효과가 떨어진다. 건강한 사람이 비처방 수면제를 매일 쓰면 4일째 되는 날 진정 효과에 대한 내성이 발생한다고 보고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비처방약 수면제는 일주일에 4회 이하로 필요할 때만 쓰는 걸 권장한다.
불면증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다른 질환의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디펜히드라민을 일주일 넘게 연속으로 복용해서는 안 된다. 먼저 가까운 병·의원에 방문하여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상담을 받아보아야 한다.
모든 주의사항을 숙지한 뒤에 비처방약으로 항히스타민제 성분의 수면제를 사용해보기 원하는 경우 보통 하루 1회 잠들기 30분~1시간 전에 복용하며 가장 낮은 용량부터 시작해야 한다. 처음 복용하는 사람은 연질 캡슐보다 정제가 낫다. 요즘은 정제보다 연질캡슐이 효과가 빠르다는 광고를 많이 하지만 그런 건 그냥 마케팅이다. 흡수 속도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정제는 반으로 쪼개서 적은 양을 복용할 수 있지만 연질 캡슐은 그런 게 불가능하니 용량을 조절할 수 없다. 25mg 정제로 반 알(12.5mg) 또는 한 알을 먼저 복용해보고 효과와 부작용에 따라 복용량을 조절하는 게 안전하다. 항히스타민제 계열 수면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는 다음 날까지 졸음이 지속되는 것 외에도 신체 운동성 저하, 몽롱한 시야, 목마름 등이 있다. 또한 항콜린작용이 있어서 협심증, 부정맥, 녹내장, 전립선 비대증, 배뇨곤란, 호흡곤란 등이 있는 환자는 복용을 주의해야 한다. 하루 복용량인 50mg을 초과해서 복용해도 효과는 별 차이가 없다. 부작용만 커진다. 심하게는 호흡곤란까지 나타날 수 있다. 비처방약 수면제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용법 용량을 지켜야 한다.
약물 상호작용도 조심해야 한다. 항히스타민 성분 수면제를 복용하는 동안에 다른 수면제, 감기약, 해열진통제, 진해거담제, 다른 항히스타민제를 함께 복용하면 과도한 진정 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이미프라민계 항우울약이나 항파킨슨약과 병용 시 요로폐색, 변비 등의 부작용이 증가할 수 있다.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할 때는 항상 지금 복용 중인 약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처방약과 비처방약을 모두 알리는 것을 습관으로 해야 한다.
처방약이든 비처방약이든 수면제를 복용하는 동안에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위험한 습관이 될 수 있다. 어쩌다 한 번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술을 조금 마시면 잠이 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술을 많이 마시고 나면 중간에 자다 깨서 수면장애를 경험하기 쉽다. 게다가 저용량 알코올의 수면 촉진 효과는 내성이 빠르게 생긴다. 결국 자려고 마시는 술의 양이 늘어나고 그러면 선잠이 들어 몇 시간 자다가 깨어서 잠을 못 자는 악순환이 생긴다.
술이나 약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수면 습관을 개선하는 게 좋다. 매일 자러 가는 시간과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하자. 자기 전에 따뜻한 목욕도 좋다. 잠자는 환경을 조용하고 어둡게 한다. 오후에는 과도한 카페인 섭취를 피하자.
2021-07-28 15:57 |
[약사·약국] <88> 약국에 갈 때마다 말해야 하는 것
약국에 가면 이것만은 반드시 이야기해야 하는 정보가 몇 가지 있다. 만성질환 유무, 복용 중인 약,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약물 알레르기에 대한 것이다. 약에 대한 알레르기는 약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약을 복용하고 나서 가볍게는 두드러기, 심하게는 호흡곤란과 같은 심각한 알레르기 부작용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다.
약물 알레르기 중 미디어를 통해 제일 많이 알려진 것은 아나필락시스이다. 약물 알레르기 반응 중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급성 과민반응이다. 약에 대한 폭발적 면역반응으로 두드러기, 혈관부종(주로 얼굴에 나타나며 눈두덩이나 입술이 심하게 부풀어 오른다), 복통, 호흡곤란, 저혈압이 나타나고 심한 경우 쇼크로 사망할 수도 있다. 약만 원인은 아니다. 벌에 쏘이거나 알레르기 유발 음식을 먹고 생길 수도 있다. 백신 접종 뒤에도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있을 수 있다. 보통 알레르기 항원 노출 후 15분 이내에 이런 반응이 나타나므로 백신 접종 뒤에 최소 15분~30분을 병원에 머무르도록 한다. 하지만 아나필락시스는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모든 원인으로 인한 경우를 다 합치면 0.05~2% 정도로 나타난다. 이런 중증의 알레르기 반응보다는 소염진통제 과민반응 같은 약물 알레르기가 더 흔하다.
소염진통제 과민반응을 예전에는 피린계 특이체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피부가 가렵고 붉어지거나 두드러기가 나는 등의 증상이 흔하지만 간혹 혈관부종이 나타나기도 한다.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경우는 금방 목이 부어오르고 호흡곤란과 같이 치명적인 과민반응이 생길 수 있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거나, 약국에서 진통제를 구입할 때 항상 자신이 소염진통제에 과민반응이 있다는 이야기와 구체적으로 어떤 과민반응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는 걸 습관으로 해야 한다. 소염진통제에 대한 과민반응은 엄밀히 말해 알레르기인 경우와 가성 알레르기 반응으로 나눌 수 있다. 특정 화학구조의 약물에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라면 그 계열의 약만 피하면 된다. 하지만 가성 알레르기는 약물에 대한 면역 반응이 아니고 소염진통제의 기전상 류코트리엔 같은 염증성 물질이 체내에 축적되기 때문에 생긴다. 이때는 세레콕시브처럼 COX-2만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소염진통제를 쓰면 과민반응이 생기지 않는다. 아세트아미노펜도 한번에 650mg까지는 쓸 수 있다. COX-2를 억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에 1000mg(일반 정제로 두 알)을 복용하면 아세트아미노펜도 COX-1를 약하게 억제하여 과민반응이 생길 수 있다. 소염진통제에 과민한 사람의 20%가 아세트아미노펜 1000mg 이상을 복용하면 과민반응을 경험한다는 보고도 있으니 한 번에 한 알까지만 복용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주의할 점은 음주 후 약 복용이다. 술마신 뒤에는 약에 대한 과민 반응이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알코올이 면역세포(비만세포)를 자극하여 알레르기반응을 촉진시키는 물질을 더 많이 쏟아내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정 발효시에 생성된 히스타민이 술에 녹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은 특히 맥주와 와인에 고농도로 들어있고 색깔 있는 술에 더 많다.
소염진통제 외에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생제이다. 페니실린 계열 항생제의 경우, 환자 10명에 1명꼴로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진짜 항생제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순한 설사, 소화불량 등은 알레르기와는 무관한 단순 부작용을 알레르기로 알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항생제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정확한 여부를 알려면 병원에서 진단검사가 필요하다.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의 경우 이를 모르고 약을 투여하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약국, 병의원을 방문할 때는 항상 자신의 약물 알레르기에 대한 정보를 먼저 말하는 것을 습관으로 해야 한다.
2021-07-14 14:47 |
[약사·약국] <87> 코로나19와 약에 대한 이슈 정리해보기
작년에 아스피린이 코로나19 입원환자의 심혈관질환 위험이나 사망률을 낮추는 걸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몇 건 있었다. 대부분 관찰 연구 결과였다.앞서 칼럼에서 쓴 것처럼 관찰만으로는 인과 관계를 알 수 없다. 위약(플라시보)을 주고 진짜 약의 효과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약을 복용 중인 환자만 효과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연구자들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다보면 결과가 편향될 수 있다. 이런 선입견으로 인한 편향을 막기 위해 이중맹검법을 쓴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의사와 환자 모두 투여한 약이 위약인지 아닌지 모르게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거의 1만5천 명의 코로나19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무작위로 위약 또는 아스피린을 배정하여 생존률을 비교한 RECOVERY(Randomised Evaluation of COVid-19 thERapY) 임상 시험 결과가 6월 8일 공개되었다. 기대와는 달리 사망률에 별 차이가 없었다. 매일 아스피린 150mg을 복용한 환자 7351명과 위약을 복용한 환자 7541명의 사망률은 17%로 동일한 수준이었다. 아스피린을 투여한 환자의 입원기간이 8일로 위약 그룹(9일)보다 하루 짧은 정도였다. 28일 뒤에 생존해서 병원을 퇴원하는 비율은 75%로 위약그룹(74%)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이 연구 결과는 미디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약업 신문에서 6월 9일자 기사 한 건을 찾은 게 전부이다. 그동안 아스피린이 코로나19 생존률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뉴스가 많이 보도된 것에 비하면 의아할 정도로 적게 다뤄졌다.작년 가을 RECOVERY 임상시험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은 18건을 찾을 수 있는데 그 결과에 대한 보도는 한 건에 불과한 것이다. 효과가 없다는 소식은 적게 다루고 뭔가가 효과 있다는 소식은 떠들썩하게 다룬다.유튜브, 카카오톡,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매체도 마찬가지다. 아스피린 복용이 코로나19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건 거의 안 다룬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뭐가 좋다는 게 귀에 솔깃하지 별 도움 안 된다는 이야기에는 시큰둥하다.하지만 이렇게 뉴스가 한쪽으로 쏠리면 위험하다. 불필요하게 나도 아스피린 복용을 시작해야 하나 궁금해 하는 사람이 주변에 너무 많다. 그럴 필요 없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 요약해보자. 코로나19를 대비하여 스스로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할 이유는 없다. 의사의 권유로 이미 아스피린을 오랫동안 복용 중 이었던 사람이 코로나19 때문에 약을 끊을 필요도 없다. 아스피린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이제 거둘 때다.백신을 맞고 난 후에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에 대한 권고도 바뀌었다. 반드시 아세트아미노펜일 필요는 없고 아스피린과 소염진통제도 복용할 수 있다. 이게 맞다. 백신 접종 후 통증이나 발열이 있을 때 해열진통제 대신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위험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게 아니다. 소염진통제의 염증 완화 효과로 인해 혹시나 백신의 효과가 줄어들까 우려하여 백신 접종 뒤에 가급적 해열진통제를 권하는 것이다.그런데 왜 소염진통제도 괜찮다는 것인가? 이부프로펜 같은 소염진통제라고 해도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용량에서는 소염 작용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1200mg 정도에서는 소염 작용이 약하다. 하루 2400mg 이상이 되어야 소염 작용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이부프로펜 알약은(애드빌, 부루펜, 이지엔6애니, 탁센400)은 보통 한 번에 200~400mg을 하루에 세 번 복용하므로 하루 1200mg 이하가 될 때가 대부분이다.
정리하면 백신 접종 이후에 굳이 타이레놀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타이레놀 외의 아세트아미노펜 해열진통제도 많고 다른 소염진통제도 많다. 물론 약 성분에 알레르기나 과민반응이 있는 사람, 만성질환자는 이들 약을 복용 전에 약사와 상담하는 게 안전하다.<수상록>으로 유명한 몽테뉴가 16세기 온천수를 두고 쓴 것처럼 사람은 바라는 것에 쉽게 속는다. 뭔가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효능에 대한 소식에는 민감하고 효과 없다는 이야기에는 둔감하다. 21세기에는 과학 지식이 그런 편향성을 바로잡아 약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2021-06-23 16:45 |
[약사·약국] <86> 가짜약이 필요한 이유
진짜약은 가짜약을 필요로 한다. 실제 효과와 약에 대한 믿음으로 인한 효과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다. 플라시보는 라틴어로 “나는 기쁠 것이다”라는 뜻이다. 신약 후보물질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살펴보는 임상시험은 한쪽 그룹은 진짜약, 다른 한쪽 그룹에는 가짜약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짜약을 받은 환자들도 증상 완화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니 실제 약의 효과가 얼마인가를 보려면 그중 얼마까지 플라시보 효과일 수 있는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진짜약과 가짜약의 효과에 별 차이가 없다면 그 약은 신약으로 승인받기 어렵다. 신약이 정부의 허가를 받으려면 임상시험으로 플라시보 이상의 유의미한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가짜약을 사용한 임상시험이 필요한 것은 관찰만으로 인과 관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로 돌아가보자. 남성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여성호르몬이 치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남성환자에게 여성호르몬을 투여한 연구자들이 있었다. 작년 4월 미국에서만도 2건의 연구가 있었다. 뉴욕에서는 남성 코로나19 환자에게 에스트로겐을 투여하는 식으로 LA에서는 또 다른 여성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투여하는 식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남성과 여성의 코로나19 감염 확률은 비슷한데 유독 사망 비율은 남성이 높게 나타난다. 이런 차이가 남성 호르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 연구자들이 남성 코로나19 환자에게 여성호르몬을 투여하기로 한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남성 호르몬이 코로나19 예후에 좋지 않다고 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5월 발표된 다른 연구에서는 반대로 남성 호르몬 수치가 낮은 남성 환자들이 정상인 환자에 비해 중증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 이제 남성 코로나19 환자에게 여성호르몬이 아니라 남성호르몬을 투여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 그런 관찰 연구만으로는 인과 관계를 알 수 없다. 약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물질이 정말 약효가 있는가 보려면 가짜약 투여그룹과의 비교하는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긍정적 믿음은 긍정적 효과를 낳는다. 이런 긍정적 믿음이 삶에서는 좋은 결과로 이끌 수 있지만 약의 연구에서는 잘못 오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파킨슨병 환자의 경우 플라시보 효과가 치료에 특히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약이 비싸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약효가 28%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가짜약은 진짜약의 부작용에 대해 알아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약으로 인해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인해 부작용을 경험할 수 있는 노시보 효과 때문이다. 진짜약 때문에 부작용이 생긴 것인지 가짜약으로도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인지 보면 약의 실제 부작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가짜약은 이렇게 신약 개발에 중요하지만 실제 약의 사용자인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어떤 약을 쓰기로 결정한 후에는 플라시보 효과를 최대화하고 노시보 효과는 최소화하는 전략을 세워야한다. 한 연구에서는 천식 증상 완화에 사용하는 기관지 확장제를 주고, 두 그룹에 각기 설명을 반대로 했다. 이 약이 숨을 쉬기 어렵게 만드는 약이라고 거짓 정보를 준 쪽 그룹에서는 약효가 제대로 설명한 그룹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다른 실험에서는 천식 증상을 악화시키는 약을 주고 한쪽에는 제대로 말해주고 다른 쪽에는 이 약이 천식에 효과 있는 약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약으로 인해 천식이 악화되는 비율이 절반으로 줄었다.약을 사용할 때에야 효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겠지만 약을 개발할 때는 그렇지 않다. 가짜약을 사용한 경우와 대조하여 효과를 검증한 약만 진짜약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효과 있는 치료약이나 치료법이 나왔다는 소식이 종종 들리지만 대부분 아직 근거가 부족하거나 가짜뉴스이다. 효과 있는 치료법이 얼른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다보니 이런 가짜뉴스에도 흔들릴 수 있다. 그러지 말자. 효과가 검증된 백신을 맞자.
2021-06-10 09:12 |
[약사·약국] <85> 아스피린 팩트체크
코로나19 백신 접종 전에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하는가 묻는 사람이 많다. 아스피린 복용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혈전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이때는 면역 반응으로 인해 혈소판이 줄어들기 때문에 아스피린 복용은 오히려 출혈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아스피린과 소염진통제를 백신 접종 전에 복용하면 백신의 효과를 떨어드릴 우려도 있다.
최근에는 아스피린에 대한 이야기가 카카오톡, 페이스북과 같은 메신저나 소셜미디어를 타고 돌면서 나도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하나 고민하는 경우도 본다.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 중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감염률이 29% 낮다는 이스라엘 관찰 연구 결과도 있긴 하다. 하지만 백신의 효과가 훨씬 분명하고 뛰어나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1분기 코로나19 백신의 접종 후 예방효과는 접종 14일 후 기준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92.2%, 화이자 100%이다.
게다가 아스피린은 출혈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런 부작용 위험 때문에 최근에는 심혈관계 질환 예방 목적으로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경우도 의사의 판단 아래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게 원칙이다.
그래도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중요한 사실을 하나 더 체크해보자. 아스피린의 출혈 위험은 코로나19 백신보다 더 높다. 이는 프랜시스 콜린스 미국 국립보건원(NIH) 원장이 한 이야기다. 미국에서 혈소판 감소를 동반한 뇌정맥동혈전증(CVST, Cerebral venous sinus thrombosis)이라는 희귀 혈전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얀센 백신 접종을 일시 중단시켰다가 지난 4월 23일부터 재개하는 일이 있었다. 얼마나 희귀한 부작용인가 하면 지난 4월 21일 기준 보고된 CVST 사례는 얀센 백신을 접종한 800만명 중 16건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50세 미만 여성(18~48세)에서 나타났다. 100만명당 2명 수준이다. 콜린스 원장은 아스피린을 복용한 뒤 장출혈을 일으킬 위험은 500명~1000명 중 1명 수준이라면서 백신 접종 뒤에 부작용을 경험할 확률이 아스피린 복용시보다 1000분의 1로 적다고 말했다. 나중에 콜린스 원장은 아스피린의 출혈 위험이 이보다 더 높아서 1.8%로 100명당 2명이라고 사실을 정정했다. 원래 발언보다 아스피린 출혈 위험이 더 높다며 백신의 안전성을 강조한 것이다.
저용량 아스피린을 매일 복용하면 뇌졸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팩트체크 해보자. 정답은 누가 아스피린을 복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건강한 성인은 뇌졸중을 예방하려고 아스피린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아스피린의 복용은 뇌졸중 방지에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환을 이미 앓은 환자한테 재발을 막으려는 2차적 예방 목적으로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 경우에 따라 아직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을 겪지 않은 사람도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게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역시 환자 스스로 복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와 상담하여 신중하게 유익과 위험에 대해 저울질해봐야 한다. 약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려면 그로 인한 유익은 크고, 위험은 작아야 한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질환을 겪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부작용보다 유익이 더 클 것이 기대되지만,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매일 아스피린을 복용할 때는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지 않다. 이때는 출혈 부작용 위험이 더 예상되는 이익보다 더 클 수 있다. 최근에는 건강한 사람이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한다고 더 건강해지진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아스피린이 희귀한 백신 부작용 예방에 별 효과가 없고 건강한 사람에게 특별한 유익을 주지 않는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아스피린이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혈전 생성을 막아 치료에 도움을 주는가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약은 필요한 사람에게만 약이다.
2021-05-26 12:59 |
[약사·약국] <84>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이야기
지난 4월 말부터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가 약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콧속 깊이 비인두에서 전문가가 검체를 채취하여 검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나 집에서도 손쉽게 코로나 검사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검사 전 손을 깨끗이 씻는다. 제품에 포함된 멸균면봉을 반대편 끝으로 잡고 한쪽 콧구멍 속에 1.5cm 깊이로 넣어 10번 정도 원을 그리면서 문지른다. 동일한 면봉으로 반대쪽 콧구멍 속에 면봉을 넣고 동일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한다. 이렇게 하여 면봉에 콧속 점액을 충분히 뭍힌 뒤에 면봉을 용액이 들어있는 통에 넣고 다시 10번 정도 원을 그리면서 저어준다. 마지막으로 면봉을 용기 벽면에 대고 눌러 짜내면서 꺼낸다. 미리 포장박스에 용액통을 꽂아두면 편리한데 꽂는 곳이 잘 안 보인다. 짜장 컵라면 뚜껑에 젓가락 꽂아서 물 버리는 곳을 찾는다는 느낌으로 표시된 부분을 찾아보면 쉽다. 면봉을 용액통에 넣고 휘젓는 과정을 통해 이제 콧속 점액을 용액에 녹이는 과정까지 완료된 상태이다. 노즐캡을 눌러 닫고 검사용 디바이스의 동그란 검체점적부위에 4방울만 떨어뜨린다. 검사 결과는 15분 뒤에 판독하면 된다. 두 줄이 다 나타나면 양성, C라고 표시된 대조선만 나타나면 음성, T라고 표시된 곳 아래만 선이 나타나거나 선이 둘다 안 보이면 무효이다.
검사 결과에 따라 취해야 할 행동이 달라진다. 양성일 경우는 우선 1339콜센터에 확인한 후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 방문하여 PCR 검사(RT-PCR)를 받아야 한다. 음성이어도 발열, 마른기침, 피로감 등의 증상이 있을 경우에는 1339콜센터에 확인한 후 선별진료소에 방문해야 한다. 검사 결과는 15분 뒤에 확인해야 한다. 30분이 지난 뒤 결과는 신뢰할 수 없다.
기존 유전체 분석 검사가 코와 목의 경계부위인 상기도 비인두 부위에서 채취했다면 자가 검사키트는 비강에서 채취하는 것이 차이다. 면봉을 깊이 넣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검사를 할 수 있다.
편리해서 좋지만 검사 결과 정확하지 않으니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반론도 있다. 정확한 용어는 민감도(sensitivity), 특이도(specificity)이다. 검사 결과 양성이어도 실제로는 양성이 아닌 위양성이 있다. 검사 결과가 양성일 때 실제로 양성일 확률이 민감도이다. 반대로 검사결과가 음성인데 실제 음성일 확률이 특이도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임신진단테스트로 생각해보자. 민감도는 검사 결과가 양성일 때 실제로 임신일 확률, 특이도는 검사 결과가 음성일 때 실제로 임신이 아닐 확률이다. 결과 판독 뒤 행동도 비슷하다. 임신 테스트기로 양성이 나오면 정말 임신인지 확인하기 위해 우선 병의원부터 가야한다. 임신 테스트기로 음성이 나왔는데도 임신 증상이 있다면 역시 확인을 위해 병의원부터 가야한다.
지난 4월 23일 식약처에서 조건부로 신속허가를 받은 항원방식 자가검사키트 2개 제품은 임상시첨 자료를 추가 제출하라는 조건 하에 3개월 동안 사용이 허가된 것이다. SD바이오센서 제품은 민감도 90%, 특이도 96%, 휴마시스 제품은 민감도 89.4%, 특이도 100%로 전문가용 허가를 받은 적이 있다. 코크란 리뷰(Cochrane review)에 따르면 항원 테스트는 코로나19 증상이 있을 때는 감염자를 제대로 확인할 확률이 72%로 높은 편이지만 무증상자일 경우는 확률이 58%로 떨어진다. 증상이 나타나고 1주일 이내에 검사했을 때 실제 감염자가 양성으로 나타날 확률이 78%로 제일 정확하다.
64건의 보고서를 분석한 리뷰에서 연구자들은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의 사용으로 PCR 검사를 해야 할 사람을 선별하거나 접촉자 추적을 하여 검사에 드는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자가검사키트를 가정에서 사용할 때 얼마나 정확히 지시사항을 따르냐,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올 경우 자발적으로 콜센터에 연락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실제 효과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자가검사키트 검사결과 두 줄(대조선 C, 시험선 T) 모두 붉은색이 나타나 양성인 경우에는 사용한 키트를 비닐 등으로 밀봉 후 선별 진료소 등 검사기관에 제출해 코로나19 격리의료폐기물로 처리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하자.
2021-05-13 12:03 |
[약사·약국] <83>물에 대한 속설 정리해보기
카페인 음료도 수분 섭취에 포함된다. 차나 커피 속 카페인이 이뇨제로 작용하므로 수분 섭취에 도움이 안 된다는 속설은 틀렸다. 하루 종일 물 대신 차를 마시는 나라 사람들은 어쩌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차는 세계에서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이다. 양으로 봐도 커피보다 차를 세 배 더 마신다. 카페인 음료로 수분을 섭취할 수 없다면 물 대신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생존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카페인의 이뇨 효과는 그리 강력하지 않다. 차나 커피로도 수분을 섭취할 수 있다.
카페인 음료는 섭취 수분에 포함하면 안 된다는 속설의 시작은 1928년 캐나다에서 단 세 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6년 더 채워 백년 되기 전에 틀린 이야기는 그만 하자. 덧붙이면 맹물이 아닌 음식으로도 수분을 섭취할 수 있다. 식단에 따른 개인차가 있으나 음식으로 섭취하는 수분이 전체 섭취 수분의 20% 이상이다.
커피나 차로 약을 복용하면 안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뜨거워서 그렇다. 약 먹을 때 물은 알약이나 캡슐이 식도에서 중간에 들러붙지 않고 위까지 쭉 내려갈 수 있게 돕는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음료는 한 번에 마시기 어렵다. 조금씩 마시면 그만큼 알약이 중간에 식도 점막에 달라붙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식도 점막에 구멍이 뚫릴 위험이 있다.
안전하게 알약을 위까지 전달하려면 가급적 미지근한 물로 약을 삼키는 게 좋다. 커피나 차의 카페인도 문제가 된다. 감기약, 두통약, 근육통약에도 카페인이 들어있어서 카페인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약에 따라서는 카페인으로 인해 약효와 부작용이 증가하거나 반대로 약효가 줄어들기도 한다.
하루에 물 2리터를 마셔야 한다는 말도 근거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루 물 2리터는 미국의 8x8룰에서 왔다. 매일 8온스의 음료를 8잔 마시라는 것이다. 8온스면 240ml이니까 하루 1920ml로 약 2리터가 된다. 하지만 언제 누가 시작한 권고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기억하고 전달하기 쉬운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이 아닌데도 전달력이 좋아 수십 년을 살아남았다. 스토리의 부정적 힘이다.
2008년 미국 신장학회지는 물을 많이 마시면 건강에 유익하다는 속설을 낱낱이 팩트체크했다. 우선 물을 마시면 신장 기능을 향상시키고 독소를 제거한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근거가 없다. 물을 많이 마시면 오히려 사구체여과율이 줄어들어서 신장의 청소기능이 감소한다. 다만 이 연구 결과도 장기간에 걸친 것은 아니므로 결론을 짓기 어렵다.
물을 많이 마시면 다양한 인체 장기에 남아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이 역시 근거가 없다. 물을 천천히 마시면 단 시간에 마실 때보다 조금 더 천천히 빠져나가긴 한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는 대부분 24시간에 걸친 짧은 시간을 본 것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알 수 없다.
음료 중 거의 유일하게 술은 탈수를 일으킨다. 알코올이 대사되는 과정에서 수분이 빠져나간다. 과음한 다음날 얼굴이 땅기는 느낌이 드는 것은 탈수가 원인이 맞다. 탈수 증상으로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도 맞다. 하지만 반대로 탈수가 없는 사람이 평소에 물을 많이 마신다고 피부가 더 촉촉해지진 않는다. 겨울에 물을 충분히 마셔도 핸드크림 안 바르면 손이 튼다.
물을 많이 마시면 체중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식전에 물을 많이 마시면 포만감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수프처럼 수분 함유량이 높은 음식을 식전에 먹으면 섭취 열량이 감소한다는 연구도 있긴 하다. 2008년 비만 학회지에 실린 연구는 물 섭취량이 하루 1리터 이하인 비만여성을 대상으로 했다.(이 연구는 음료가 아닌 물 섭취량을 비교했다.)
이들의 물 마시는 양을 하루 1리터 이상으로 늘리도록 하자 동일한 다이어트를 따르면서 하루 물 1리터 미만을 마신 경우보다 평균 2.3kg 더 체중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당분 음료 대신 물을 마시면 섭취 열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물을 많이 마신다고 해서 적게 먹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너무 큰 효과를 기대하지는 말자.
끝으로 갈증을 느끼기 전에 수분 섭취가 필요하다거나 갈증을 못 느끼는 만성 탈수가 있다는 주장도 근거 없다. 요약해보자. 목마르면 물마시자. 물 많이 마시지 말라는 주의를 듣는 경우에는 너무 많이 마시지 말자. 굳이 하루 8잔을 세가면서 마시지는 말자.
2021-04-28 15:16 |
[약사·약국] <82> 새벽에 약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
새벽에 일어나서 알약을 먹는 경우를 종종 본다. 빈속에 약을 먹으면 흡수가 더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고 뭔가 더 정성이 들어가는 느낌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새벽녘에 복용해도 매일 같은 시간에만 복용하면 되는 약도 있다.
하지만 약에 따라서는 이렇게 복용하면 오히려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지용성 성분의 약이 그렇다. 오메가3지방산은 약으로 승인된 것도 있고 건강기능식품도 있지만 제형은 대부분 연질 캡슐로 동일하다. 보통 말랑말랑한 연질 캡슐 속에는 기름에 녹인 약성분이 들어있다. 오메가3지방산 제품에 TG, EE(Ethyl Ester), rTG의 여러 형태가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언제 복용해야 제일 흡수가 잘 되는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오메가3 지방산 보충제는 식후에 섭취해야 가장 잘 흡수된다. 새벽에 빈속에 먹으면 흡수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 아침 식후에 복용해도 흡수 효율이 그리 좋지 않다. 아침부터 기름진 음식으로 배불리 먹는 사람은 드물지만, 가벼운 식사 뒤에 오메가3 지방산 보충제를 복용하면 흡수되기 어렵다. 저녁 식후에 복용해야 흡수가 잘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비타민D가 인기를 끌면서 연질캡슐 제형이 주류가 되었다. 방송에서 연질캡슐이 흡수가 잘 된다는 이야기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타민D 2,000 IU라고 해봤자 0.05mg에 불과하다. 이렇게 양이 적으므로 비타민D를 기름에 녹여 연질캡슐로 만드느냐 일반 정제로 만드느냐 제형에 따른 차이는 크지 않다. 식전에 복용하느냐 식후에 복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비타민D 역시 새벽에 일어나서 빈속에 복용하면 흡수 효율이 가장 떨어진다. 비타민D는 식후에 복용하는 게 좋다.
동일한 원칙에 따라 종합비타민제도 식후에 복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종합비타민제에는 지용성, 수용성 비타민이 모두 들어있다. 수용성 비타민의 경우는 식전에 복용하는 게 흡수가 더 잘 될 수도 있지만 차이는 크지 않다. 이에 반해 지용성 비타민은 식전에 복용하면 흡수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 꼭 흡수율을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비타민을 섭취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 식사를 통해서라는 점도 종합비타민제를 복용하기에 제일 좋은 시간이 식후라는 걸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대로 철분제는 빈속에 복용하는 게 흡수 면에서 제일 좋다. 하지만 빈속에 철분제를 복용하면 오심, 복통, 설사와 같은 부작용이 증가하기도 한다. 이런 부작용으로 철분제를 복용하기 힘들어질 경우에는 식후에 복용하는 게 약을 건너뛰는 것보다 낫다. 철분제를 식후에 복용하라고 권하는 것은 흡수율이 조금 떨어지더라고 부작용을 줄여 약을 더 꾸준히 복용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탄산칼슘, 산화마그네슘과 같은 다른 미네랄 제제는 물에 녹아서 흡수되려면 위산이 필요하다. 칼슘보충제나 마그네슘보충제와 같은 약을 식후에 복용하도록 권하는 이유다.
패취제(patch)를 자르면 서서히 방출, 흡수되어야 할 약성분이 한꺼번에 나와서 문제가 된다는 설명도 여러 매체에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이는 경우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펜타닐 패치처럼 약물저장소(reservoir)층과 약물 방출속도 조절층이 있는 막제어형 타입일 경우는 반으로 자르면 절단면을 따라 약물이 저장소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위험하다. 반으로 자르는 의도는 약의 용량을 절반으로 줄이려는 것인데 그와 정반대로 약의 용량이 증가하는 셈이 되어 부작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매트릭스(matrix) 제어형 패취제일 때는 원칙적으로 잘라도 된다. 이 때는 중합체 매트릭스 속에 약성분이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으므로 반으로 정확히 자르면 시간당 흡수되는 약물량과 전체 용량도 절반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패취제를 잘라 쓰지 말라고 권고한다. 실제로 사용자가 패취제를 자를 때는 사람에 따라 정확히 반으로 자르는 게 어려울 수도 있고 절단된 패취에 접착력이 떨어져서 잘 안 붙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회용 밴드를 반으로 잘라 붙이면 피부에 제대로 고정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니코틴 패취제의 경우 주로 매트릭스 타입이지만 잘라쓸 수 없다. 니코틴이 상온에서 휘발성이 강하여 자르면 대부분 공기중으로 날아가 버린다. 약은 성분과 제형에 따라 사용방법이 다르다. 제대로 알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사용해야 효과적으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2021-04-14 10:30 |
[약사·약국] <81> 바르는 약이야기
연고와 크림은 어떻게 다를까? 연고는 바셀린처럼 조금 더 기름에 가까운 끈적끈적한 타입이다. 크림은 물과 기름이 섞여있는 제형으로 조금 더 촉촉한 느낌이다. 쉽게 말해 크림은 수분감이 있다고 표현하는 타입이다. 대부분의 화장품은 크림 타입이다. 하지만 콜드크림은 크림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음에도 유분감이 크다. 콜드크림은 수분이 유분 속에 분산되어 있는 형태이다. 피부에 발랐을 때의 차가운 느낌 때문에 콜드크림이라고 불린다.
바르는 약에는 수분 함유량이 더 높은 젤이나 로션 제형도 있다. 이들 중에서 어떤 성분이 피부를 제일 건조하게 할까? 정답은 겔이다. 겔이나 로션에는 수분이 많이 들어가는데, 대체로 약성분은 기름에 잘 녹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런 약성분을 물과 함께 녹이려면 알코올 성분이 들어가게 된다. 알코올은 피부를 건조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겔은 건조한 느낌이 들기 쉽다. 게다가 물 자체는 금방 말라버리기 때문에 피부 보습에 큰 도움이 안 된다. 보습을 위해서는 연고, 크림, 겔 순으로 효과가 좋다. (단, 이는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분류이다. 연고 기제로 사용되는 친수성 연고나 PEG 연고는 이름은 연고이지만 물로 잘 씻긴다.)
연고는 그 자체에 물이 안 들어 있어서 특별히 보존제나 유화제가 필요없다. 하지만 크림은 물과 기름을 섞어서 만들어지는 에멀젼이다. 수분이 있으면 세균이 번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크림에는 미생물 오염을 막기 위한 보존제를 넣어주어야 한다. 간혹 보존제에 피부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같은 약성분이 들어있는 로션이나 크림보다 연고를 사용하는 게 낫다. 아토피성 피부나 피부가 건조해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연고가 상대적으로 보습이 잘 되면서 자극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연고가 끈끈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보습을 위해 크림, 로션, 연고를 사용할 때도 바셀린 같은 연고타입은 효과는 오래가는데 끈적거려서 사용에 어려움이 있고, 크림이나 로션은 사용에는 편리한데 효과가 금방 사라진다는 단점이 있다.
같은 약성분이 들어있어도 제형이 연고냐 크림이냐에 따라 효과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약 성분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 경우, 연고나 겔이 크림이나 로션에 비해서 더 잘 흡수되어서 효과가 잘 나타난다. 연고는 겔이나 크림에 비해 바른 부위에 더 오래 머물기 때문에 약성분이 오랫동안 흡수되고 약을 바른 부위를 보호해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런 장점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연고는 기름진 성질 때문에 제거하기 어렵고 진물이 나는 부위에는 바르기 힘들다. 상처 부위에 진물이 날 때 연고를 바르면 제대로 펴 발라지지 않고 들뜨게 되므로 이때는 가급적 동일 성분의 크림을 발라주는 게 낫다.
약의 흡수를 높이기 위해 흡수촉진제 등을 넣어 특수하게 제형 설계한 연고나 크림도 있다. 이렇게 같은 약이라도 제형이 여러 가지이므로, 자신에게 맞는 제형을 골라서 쓰는 게 좋다.
연고나 크림은 사용상 지시사항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 환부(질환 부위)에 적당량을 바른다고 쓰여 있다. 적당량이 얼마인가를 알려주는 설명이 없다. 적당량은 약성분에 따라 다르다.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 연고는 얇게 펴서 바른다. 구체적으로 사용량은 손끝마디단위(finger tip unit, FTU)를 따른다. 성인의 손가락 끝마디에 연고를 한 줄 짜냈을 때 0.5그램 정도 되는데 이걸 1 FTU라고 한다. (연고 튜브 노즐이 표준 5mm 직경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야기이다.) 1 FTU는 양손 손가락과 손바닥면을 바르기에 충분한 양이다. 한 손으로 치면 손가락 전체와 손등, 손바닥을 바를 수 있는 양이다. 부위에 따라 스테로이드 연고나 크림을 바르는 양이 다르다. 계산이 복잡하게 느껴질 때는 스테로이드 연고는 아껴 쓴다는 걸 원칙으로 생각하고 바르면 된다. 상처에 바르는 크림이나 페이스트는 경우에 따라 두껍게 발라야 할 때도 있다. 친숙한 제형의 약이라도 제대로 알고 써서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줄이자.
2021-03-31 10:41 |
[약사·약국] <80> 코로나19 가짜뉴스와 언론이야기
코로나19 관련 오보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국내 한 언론사인 K일보는 지난주 기사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의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뒤 이상반응을 보이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유럽 일부 국가가 해당 백신의 사용을 전면 중단했다”고 썼다. 대형 오보이다. 백신 사용이 전면 중단된 게 아니다. 백신을 맞은 뒤 사망 사례가 나오자 이에 대한 조사를 위해 해당 제조단위(batch) 백신의 사용을 잠정 중단한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집에 있는 상비약 중 하나를 집어 박스 포장을 확인해보자. 사용기한 바로 위에 20543, 20016같은 제조번호가 적혀있다. 제조단위(batch)란 대량으로 약품을 생산할 때 하나의 생산주기에 만들어낸 묶음이다. 만약 약품을 만드는 원료에 불순물이 들어가서 리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전체 약품이 문제되는 게 아니라 불순물이 혼입된 원료가 투입된 특정 생산분(batch)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해당 제조번호만 리콜하면 된다.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이번에 특정 제조단위의 백신에 대해 접종 중단을 결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백신 자체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해서가 아니라 특정 제조번호가 붙은 생산 분량에 대해 혹시라도 혈액 응고와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불순물 혼입이나 품질상 문제가 있었는가 보기 위해 해당 생산분에 대해 사용을 중단한 것이다. 집에 있는 상비약의 예로 바꾸어 생각해보자. 집에 있는 감기약의 제조번호를 확인해서 해당 제조번호면 사용을 중단하고 버려야 하지만 제조번호가 다르다면 아무 문제없이 그대로 사용해도 되는 것이다.
제조단위(batch)에 대한 이해가 없이 단어 하나를 빼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오스트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등 5개국이 AZ 백신 사용을 중단한 것처럼 보도되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제조번호가 ABV 5300인 백신만 사용이 중단되고 나머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그대로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오보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다행히 3월 11일 오후에 일부 매체에서 팩트체크 기사를 내보냈고 다음 날인 3월 12일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오스트리아, AZ백신 전체 중단 아닌 특정 일련번호 중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 정부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뒤에 숨진 11명 중 8명의 사례에 대해 접종과의 관련성이 없다는 발표를 했을 때도 같은 맥락이다. 동일 요양병원, 같은 제조번호의 백신을 맞은 사람에 대한 조사 결과 중증 이상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혹시라도 해당 병원의 백신 접종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거나 특정 제조번호 제품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의미인 것이다. 관련하여 조금 더 쉬운 설명을 한 기사가 없었던 점은 아쉽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오보가 이어지는 것은 오보를 거를 만한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H언론사에서 자사 백신 보도에 대한 열린편집위원회 회의 내용을 보도한 기사를 살펴보자. 한 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백신은 불확실한 것이 맞다. 안정성이 100%라고 전문가 중에서도 누구도 말을 못 한다.” 틀렸다. 백신의 안정성에 대해 말하는 전문가는 없다. 논점은 안정성(stability)이 아니라 안전성(safety)이다. 100% 안전한 약은 없다. 그러나 백신처럼 부작용 위험이 낮고 기대되는 유익이 큰 약은 있다. 안전성과 안정성을 헷갈리면서 백신의 안전성을 논할 수 없다. 틀린 내용을 거르지 못하고 그대로 내보낸 것은 언론사의 역량 부족이다.
일부 언론이 의도적으로 왜곡기사를 내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기네스 펠트로가 김치를 먹고 코로나19를 극복했다는 기사가 그런 경우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의료책임자인 스티븐 포위스 교수가 기네스 펠트로가 추천하는 해결책들 중 일부는 NHS에서 추천하는 해결책이 아니라고 반박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치의 효과를 칭송하는 국내 기사가 이어졌다. 포위스 교수의 다음 발언을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기사를 쓴 것 같다. “코로나19를 심각하게 여기고 진지하게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바이러스처럼 가짜정보가 국경을 넘어 이동하며 변이하고 진화한다.” 그렇게 가짜뉴스가 국경을 넘는 게 한국 언론 때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1-03-18 10:45 |
[약사·약국] <79> 코로나19 백신과 진통제 이야기
2월 26일부터 국내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이와 관련해서 약에 대한 질문이 하나 생겼다. 백신 접종 전에 진통제를 복용해도 되는가? 결론부터 살펴보자. 백신 접종 전에 진통제 복용은 피하는 게 좋다. 그러나 접종 뒤에 통증이나 불편감이 있으면 의사에게 문의하여 진통제를 복용할 수 있다. 아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한국어 안내문을 보자.
“통증이나 불편함이 있으면 백신 접종후 생기는 통증과 불편함에 대해 이부프로펜, 아스피린, 항히스타민제, 아세트아미노펜과 같은 일반 의약품을 복용해도 되는지 의사에게 문의하세요. 이러한 약물을 정상적으로 복용하는 데 방해가 되는 다른 의학적 이유가 없다면 백신 접종후 부작용 완화에 이러한 약을 복용할 수 있습니다. 부작용 예방을 위해 백신 접종 전에 미리 약을 복용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약이 백신 효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https://korean.cdc.gov/coronavirus/2019-ncov/vaccines/expect/after.html )
백신 접종 전에 해열제를 피하라는 뉴스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이 퍼졌다. 그런데도 한국 식약처에서 공식 자료를 아직 내놓지 않은 것은 아쉽다. 대부분의 뉴스는 미국 CDC에서 내놓은 논평이나 안내 자료를 인용해서 보도됐다. YTN 와이파일은 이에 대해 자세히 다뤘는데 세계보건기구의 논평을 인용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백신 접종 시 주의사항과 관련해 백신 접종을 앞두고 이부프로펜 성분의 소염진통제를 피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WHO 대변인은 ‘이부프로펜이 우리 몸의 면역물질 생성을 억제할 수 있어 이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https://www.ytn.co.kr/_ln/0134_202102140700020292 )
이 뉴스에는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다. 우선 세계보건기구에서 백신 접종을 앞두고 소염진통제를 피하라고 권고한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WHO 대변인이 소염진통제에 대한 논평을 한 것은 작년 3월이다. 이부프로펜과 같은 소염진통제보다는 아세트아미노펜 같은 해열진통제를 쓰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세계보건기구는 이부프로펜 사용을 피할 것을 권고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대변인이 올해 백신 접종과 해열제 사용에 대해 권고를 했는데 보도가 많이 안 된 것인지 아니면 YTN 와이파일에서 작년과 올해 뉴스를 혼동하여 사용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기사 출처를 링크로만 달아주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문제다.) 기사로 다룬 매체는 많지만 한국 식약처에 관련하여 사실 확인을 하고 나서 보도한 기사는 드물다. 의약관련 이슈에 대해 제대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가 늘어나길 바란다.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나서 주사 부위 통증이나 몸 전체에 발열, 오한, 피로감, 두통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정상적 면역 반응이다. 실제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나타나는 면역 반응이 경우에 따라 제어되지 않고 염증 과잉으로 인체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에 반해 백신을 맞은 뒤의 면역 반응은 진짜 바이러스가 들어올 때를 대비하기 위한 통제된 면역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접종 전에 진통제 복용을 피하는 게 좋다는 것인가?
백신 접종 뒤에 염증 반응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염증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백신 접종 뒤 약간의 염증은 필요하다. 열을 낮추고 염증을 줄이는 것은 면역 반응을 방해하여 백신의 효과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아직 논란이 있다. 관절염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매일 꾸준히 진통제를 복용해야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계속하여 복용하면서 백신을 접종해야 할 수도 있다. 궁금할 때는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의사, 약사와 상담이 필요하다.
2021-03-05 10:00 |
[약사·약국] <78> 클럽하우스와 약 이야기
구정을 앞둔 주말 클럽하우스라는 말하는 SNS가 화제였다. 미리 가입한 친구 덕분에 초대장을 받아 들어가 보니 신세계였다. 언뜻 보기에는 다자간 통화와 비슷해 보이지만 토론을 주재하는 모더레이터가 있다. 손을 드는 사람에게 발언권을 주거나 뮤트하는 권한이 모더레이터에게 주어지므로 온라인 컨퍼런스와 비슷한 모양으로 대화가 진행된다. 하지만 화면을 공유하거나 문자로 채팅하는 게 없이 그저 음성으로 대화만 할 수 있다.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를 제거했기 때문에 대화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누구나 손을 들면 스피커가 될 수 있으니 참여가 쉽다. 유명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무엇보다 편집을 기본으로 하는 방송, 유튜브 같은 매체와 달리 즉흥적 대화가 가능하다. 채팅처럼 기록이 남는 게 아니라 대화 내용이 바로 사라지는 휘발성도 클럽하우스의 매력이다.
실제 사용해보니 클럽하우스가 약을 소재로 한 대화에 딱 맞는 매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방송에서 약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사회자 또는 청취자의 질문을 듣고 답하게 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시간적 제한이 크고 그러다 보니 질문을 다 받기 어렵다. 클럽하우스로 30분 동안 약에 대한 질문을 받아보기로 했다. 클럽하우스라는 열린 공간에서 사람들이 약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가장 궁금한 내용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참여자 수가 많진 않았지만 질문은 공통적이었다. 어떻게 약을 끊느냐 하는 것이었다. 약 복용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제일 궁금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가이고 또 하나는 이 약을 먹는 동안 나에게 어떤 부작용이 생길 것인가이다. 약 복용의 이유가 고혈압 때문이든 고지혈증 때문이든 마찬가지다. 약 복용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끊을 궁리를 하는 게 사람이다. 약사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환자와 공감하며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환자가 아닌 약사의 입장에서 생각하다보면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나 역시 그렇다. 2019년 8월 21일자 칼럼에서 고혈압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어떻게 하면 이 약을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써놓고도 막상 클럽하우스에서 그런 질문을 받고 나니 놀라웠다. 약국에서는 의외로 그런 질문이나 상담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약을 타가면서 그 약을 끊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에 캐나다에서 약사로 근무할 때 혈압약(항고혈압약)을 하루 건너 하루 복용하는 방식으로 끊을 수 있는지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걸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건 약국에서 그런 질문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답은 ‘그럴 수 없다’이다. 하루 건너 하루로는 약의 혈중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 하루에 반 알을 복용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고 의사, 약사와 상담 하에 시도해야 할 일이다. 이런 식의 감량은 본인의 의지로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 연령, 혈압의 조절 정도, 생활 습관의 조정 여부 등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아직 클럽하우스는 생소한 SNS이고 국내 이용자 수도 많지 않은 듯하다. 아이폰에서만 가능하고 안드로이드 폰에서는 아직 제공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볍고 손쉽게 대화와 토론할 수 있는 이런 매체가 늘어날수록 약에 대한 대화 역시 늘어날 듯하다. 궁금한 점에 대한 질문과 동시에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도 많아질 것이다.
약국은 아직도 정체된 모습이다. 약 포장의 사용 설명은 언제 봐도 어렵고 깨알 글씨는 커질 기미가 안 보인다. 약과 건강기능식품의 과대포장도 여전하다. 수시로 포장을 바꾸는 제약회사의 관행도 여전하다. 약 포장이 바뀔 때마다 이게 같은 약인지 다른 약인지 헷갈려 하는 소비자의 목소리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약 사용을 줄일 수 있는지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약을 복용한다는 게 가능한지 약의 실제 소비자와 약사가 반복해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를 용해야 한다. 클럽하우스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약사, 약국, 제약회사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2021-02-17 10:33 |
[약사·약국] <77> 탈모에 도움이 되는 약 이야기
탈모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약을 쓰면 도움이 되는 경우와 약을 써도 별 소용이 없는 경우다. 먼저 원형 탈모를 살펴보자. 동전 모양으로 머리가 빠지는 원형 탈모는 인구의 2%가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증상의 정도나 범위에는 차이가 있지만 원형탈모는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다. 특별히 약을 쓰지 않아도 1년 내에 저절로 낫는 환자 비율이 절반 이상이다.이런 경우에는 특정 약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임상 시험을 제대로 시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스테로이드를 해당 부위에 주사하기도 하고 바르는 약이나 면역억제제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들 약에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하지만 실제로 원형 탈모가 왔을 때 그걸 경험하는 사람의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뭐라도 써서 빨리 낫고 싶은 마음이 크다.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으로 대응하다가 비용을 낭비하는 사람도 종종 본다.원형 탈모의 경우 가만히 둬도 낫는다는 사실을 악용해서 검증되지 않은 고가의 장비나 약초를 권유하기도 한다. 본인이 원형 탈모가 아닌가 의문스러울 때는 가까운 병의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부터 받자. 약으로 치료해볼 것인가 아니면 기다려볼 것인가는 개인적 선택이다. 하지만 약물 치료를 받기로 결정할 경우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지 않는다. 현대 의약학에 대한 지식이 머리카락과 지갑을 동시에 지켜줄 수 있다. 안드로겐성 탈모(남성형 탈모)는 원형 탈모에 비해 훨씬 더 흔하다. 미국에서는 40세~49세 남성의 53%가 안드로겐성 탈모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에 반해 한국 남성의 40-49세 안드로겐성 탈모 비율은 11%로 매우 낮은 편이다. 한국 남성의 경우 머리가 빠지는 비율이 낮은 대신 머리가 가늘어진다. 여성 탈모와 유사한 패턴이다. 두피를 보면 숱이 많은 상태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머리카락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고 짧은 모발의 비율이 늘어난다.미녹시딜은 본래 항고혈압약으로 개발되었다가 탈모치료약으로 재발견된 약이다. 미녹시딜을 두피에 발라주면 모낭으로 연결되는 피부의 혈액 흐름을 증가시키고 모낭을 비대하게 만들어서 모낭의 성장기를 연장시킨다. 미녹시딜을 발라주면 휴지기 모낭이 다시 성장기로 들어가면서 처음에는 머리가 더 빠지는 경우도 있다.미녹시딜을 바르고 첫 두 달 동안에 머리가 더 빠진다고 약의 사용을 너무 일찍 중단해서는 안 된다. 하루 두 번씩(여성의 경우 제품에 따라서는 한 번씩) 최소한 4개월 정도 꾸준히 사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모발이 자라는 효과가 안정될 때까지는 12-18개월이 걸리므로 1년 이상 꾸준히 써보고 나서야 약효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미녹시딜은 탈모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약이 아니다. 효과를 보려면 최소한 4개월이 걸리는 것처럼 반대로 사용을 중단하면 4개월 이내에 탈모가 다시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안드로겐성 탈모는 DHT라는 남성호르몬 때문에 점점 더 악화된다. DHT는 테스토스테론보다 더 강력하게 앞머리 부위에 있는 모낭 DHT 수용체에 결합한다. 그 결과 모발 단백질 합성이 저하되고 모발 성장이 줄어든다. 그런데 얼굴 모낭에서는 DHT가 반대 작용을 하여 모발을 성장시킨다. 나이 들면서 남성호르몬의 작용이 정수리 모낭에서는 머리가 빠지는 쪽으로 작용하고 코털, 귀털 같은 다른 부위의 털은 더 길고 두껍게 자라도록 만드는 것이다. 머리숱은 줄어드는데 코털과 귀털은 자꾸 더 자라는 배후에는 DHT라는 남성호르몬이 있었던 것이다.운동선수들이 오남용하여 종종 문제가 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탈모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남성호르몬 수치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남성형 탈모의 치료약인 피나스테리드는 이와 반대로 남성호르몬 전환을 막아서 탈모를 줄여준다. 테스토스테론이 효소에 의해 DHT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DHT는 안드로겐 수용체에 테스토스테론보다 5배 더 강하게 결합하므로 탈모 진행을 더욱 가속화한다. 피나스테리드는 여성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약이지만 남성 탈모 환자의 경우 탈모가 줄어들고 모발 성장을 증가시켜준다. 이 약 역시 3-6개월은 매일 복용해야 효과를 보기 시작하고 눈에 띌 정도로 효과를 보려면 1년은 복용해야 한다.이 약 또한 탈모의 근본 원인을 치유하는 약은 아니다. 아직 그런 약은 없다. 약 복용을 중단하면 탈모가 다시 진행된다. 효과도 사람마다 달라서 탈모 전처럼 머리숱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탈모 진행을 늦추는 정도에 불과한 효과에 만족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약을 잘 알고 쓰면 탈모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2021-02-03 15:55 |
[약사·약국] <76> 구충제 이버멕틴에 코로나19 치료 효과 있을까
“구충제 이버멕틴, 코로나19 치사율 최대 80% 낮춰” 지난 1월 5일 SBS, 연합뉴스, 헬스조선,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다수의 국내 언론에서 이런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기사의 출처는 모두 동일하다. 영국 타블로이드지 데일리 메일이다. 아직 정식 게재된 논문도 아니다. 영국 리버풀 대학의 바이러스학자 앤드루 힐이 데일리메일과 인터뷰에서 다음 달에 발표된 자신의 메타분석 연구 결과라며 밝힌 내용이다.데일리 메일 기사에서는 연구 자료가 마치 일부 유출되기라도 한 것처럼 슬라이드 몇 개를 올려놓고 있다. 하지만 이게 특종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미 지난 12월 27일 유튜브에 앤드루 힐 본인이 공개한 내용이다. (https://youtu.be/yOAh7GtvcOs) 이버멕틴이 코로나19 치사율을 낮추는 데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이 약은 주로 열대지역에서 강변사상충과 같은 기생충의 구제에 사용되는 약이다. 옴 치료에도 사용한다. 이버멕틴이 코로나바이러스를 막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가 있다. 이 약이 세포내에서 임포틴importin이라고 하는 핵 수송 단백질을 억제하는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바이러스가 세포에 침입하면 이 단백질을 강탈해서 숙주가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걸 막는다. 결과적으로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감염되는 세포가 더 늘어난다. 이버멕틴은 바이러스가 임포틴을 강탈해서 쓰지 못하도록 막는다. 말하자면 테러범이 버스를 강탈해서 쓰지 못하도록 버스 타이어에 자물쇠를 채워 버리는 것이다.작용 기전상 예상되는 이런 효과는 실험실 연구에서 실제로 나타났다. 지난 4월 호주 모나쉬 대학 연구팀은 이버멕틴이 코로나19의 원인 바이러스(SARS-CoV-2)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정식 논문으로 <항바이러스 연구> 학회지에 실렸다. 이버멕틴이 실험실 배양 세포에서 48시간 내에 바이러스를 99.98% 감소시켰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연구 결과만으로 코로나19 치료에 이버멕틴을 쓰면 되겠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실제로 미국 COVID-19 치료 가이드라인 위원회는 코로나19 치료에 이버멕틴 사용을 하지 말도록 권고한다. 예외적으로 임상 시험에서만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세포 수준에서는 강력한 효과가 나타난 것 같은데 왜 현장 치료에서는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가?실험실 배양 세포에 약을 투입할 때와 인체에 약을 투여할 때 결정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약의 농도다. 실험실 배양 세포에 효과를 낸 정도의 약을 우리 몸에 약을 넣어주려면 인체 사용이 허용된 양의 100배나 되는 엄청난 양을 써야 한다. 항바이러스 효과를 나타내는 농도는 마이크로그램 수준이고 인체 허용된 치료 용량에서 이버멕틴의 혈중 농도는 나노그램 수준(20–80 ng/ml)이다. 1마이크로그램은 1000나노그램이다. 약물 분자에 따로 눈이 달려있지 않으므로 항바이러스 효과를 내려면 엄청난 양을 쓸 수밖에 없다. 실험실 배양 세포에는 약액을 넣어주면 바로 전달되지만 실제 인체 내에서는 약물 분자를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에만 전달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니 약이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감염된 세포에 충분한 양을 보내기 어렵다. 하지만 양을 늘려서 100배를 투여하면 부작용, 독성도 함께 늘어난다. 과학자들이 이버멕틴에 대한 후속 연구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장밋빛 환상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유다.앤드루 힐이 유튜브와 데일리메일을 통해 공개한 메타분석 연구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이집트, 방글라데시, 이란 등 11개국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을 분석해서 치사율이 80%까지 줄었다는 것이지만 문제는 분석에 사용된 임상 시험이 그리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사용한 약의 용량도 저마다 다르고 연구 방법에도 많은 오류가 있다.게다가 다수의 연구가 아직 정식으로 심사를 거쳐 논문으로 게재되지 못한 것들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투여량의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버멕틴에 대해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근거가 더 확실한 백신은 두려워하면서 아직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약을 영약처럼 믿지는 말자. 과학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맞을 수 있을 때 백신부터 맞자.
2021-01-20 09:54 |
[약사·약국] <75> 겨울철 비염약 이야기
겨울에도 비염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 알레르기 비염이 아닌 경우도 있다. 급격한 온도 변화나 냄새로 인한 혈관운동성 비염, 코막힘 완화 스프레이를 너무 많이 써서 나타나는 약물성 비염이 대표적이다.결로 현상으로 인해 집안에 곰팡이가 증식하고 이로 인해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악화되기도 한다. 일단 원인이 분명할 때는 그 원인부터 제거하는 게 먼저다. 곰팡이가 눈에 띈다면 제거해야 한다. 개가 고양이 털에 알레르기가 있다면 실내에서 함께 사는 건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알레르기 원인물질에 대한 접촉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다. 필요에 따라 비염 증상을 완화하는 약을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처방 없이 사용하는 약으로 항히스타민제가 대표적이다. 이 약은 진정작용이 있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와 진정작용이 없는 2세대 항히스타민제로 나뉜다. 1세대 항히스타민제는 뇌-혈관 장벽을 통과하여 중추신경계에 들어갈 수 있어서 진정작용이 나타나지만 2세대 항히스타민제는 그렇지 않다.보통 감기약에 들어있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는 졸음을 유발하고 주의력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운전이나 기계 조작을 해야 하는 경우는 복용을 피하는 게 좋다. 심하게는 전날 저녁에 약을 먹고 나서 다음날 낮까지 졸릴 수 있다. 1세대 항히스타민제가 얼마나 졸음을 유발하느냐 하면 그 부작용을 반대로 이용하여 수면유도제로 사용될 정도이다. 실제로 처방 없이 구입 가능한 수면유도제는 대부분 항히스타민제이다. 약이 정말 안 졸린가에 대해서는 약사와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감기약이나 알레르기 비염약 중에 졸음이 덜하다고 표시된 약에도 1세대 항히스타민제가 들어 있는 제품이 흔하다. 이들 제품이 덜 졸리다는 건 다름 아닌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에 불과하다. 졸음을 유발하는 약과 카페인을 함께 먹는다고 졸리지 않은 건 아니다. 사람에 따라, 몸 상태에 따라 졸릴 수도 있고 안 졸릴 수도 있다. 절대 졸면 안 되는 상황을 앞두고 이런 약을 복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항히스타민제 중에서도 클로르페니라민, 디펜히드라민과 같은 1세대가 특히 졸음을 유발하는 진정 작용이 흔하게 나타나고 2세대 가운데 세티리진은 전체 복용자의 10%에서 진정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로라타딘도 2세대 항히스타민제이지만 권장 용법보다 많은 양을 복용하면 졸릴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펙소페나딘, 데스로라타딘, 레보세티리진과 같은 항히스타민제를 3세대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들은 졸음 부작용이 2세대보다 더 줄어들어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음을 유발하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가 감기약에 자주 쓰이는 건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먹고 자면 낫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기 증상 완화에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가 2, 3세대 항히스타민제보다 조금 낫긴 하다.하지만 그렇다고 감기에 이들 항히스타민제 사용을 무작정 권하기는 어려운데 1세대 항히스타민제의 부작용으로 항콜린 작용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폐쇄각 녹내장이나 전립선비대증과 같은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 사용을 피하는 게 좋다. 먹는 항히스타민제 대신 뿌리는 비충혈제거제 스프레이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들 약은 막힌 코를 뚫어주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너무 자주 연속으로 사용하면 약물성 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약을 안 쓰면 더 심하게 코가 막히고 비염 증상이 악화되는 것이다.이에 대해 논란이 있긴 하지만 가급적이면 5일 이상은 비충혈제거제 스프레이를 연속으로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콧속이 가려운 증상이 동반되거나 알레르기가 아닌 혈관운동성 비염일 때는 비충혈제거약에 더해 항히스타민제를 함유한 스프레이를 쓰는 게 나을 수 있다. 코를 식염수로 세척하는 것도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콧속 점액질을 씻어내고, 그와 동시에 호흡할 때 묻어 들어온 먼지와 이물질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알레르기 증상은 인공눈물이나 안약을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그러나 항히스타민제는 주로 가벼운 알레르기 증상에 사용하는 약으로, 증상이 심한 사람은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 콧속에 뿌리는 스테로이드분무제 같은 처방약을 타서 쓰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끝으로 누군가 비염을 완치하는 약이 있다고 소개할 때는 아직 그런 약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좋다.
2021-01-06 1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