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대·약학] <58> 건강한 노인들도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할까?
건강한 노인들도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할까?
“약사님, 저희 어머니는 75세이고 고혈압외에는 다른 만성질환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아스피린 (aspirin)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순환기 질환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또 대장암도 예방하는 것 같은데
어머니께 아스피린을 복용하시라고 해야 할까요?”
19세기 후반부터 임상에 사용하기 시작한 아스피린은 가장 오래된 약 중 하나로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여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심근경색증, 뇌졸중 등 심순환기 질환은 동맥에 혈전이 생겨서 발생하기 때문에 아스피린은 혈전의 생성을 줄여 이런 심순환기
질환이 발생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스피린이 대장암의 발생 가능성을 줄여 준다는 보고도 있다. 그런데,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아스피린의 효과는 출혈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특히, 위장관 출혈과 뇌출혈 등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아스피린은 혈전
방지의 이득과 함께 출혈의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의 여러 임상 연구에 의하면, 심순환기 질환을 앓았던 사람들에게는
아스피린의 이득이 위험을 능가하기 때문에 아스피린을 사용해야 한다 (2차예방:secondary prevension). 그러면, 심순환기 질환을 앓은 적이 없는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아스피린을 써야 할까? 작년 9월, 의학잡지인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된, 만9천 여명을 대상으로 한, ASPREE라는 임상연구 결과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것 같아 소개하고자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에서 수행된 ASPREE시험은
거주하는 나라에 따라 참여 기준 (eligibility criteria)이 조금 다르다. 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하는 경우, 70세이상의, 심순환기 질환을 앓지 않았던 노인들이 참여한 반면, 미국에 거주하는 경우, 65세이상의 심순환기 질환 병력이 없는 흑인
또는 히스패닉의 노인들이 참여하였다. 이렇게
거주 국가에 따라 참여 기준이 다른 이유는 인종간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이 좀 다르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인데 백인은 흑인이나 히스패닉
사람들에 비해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이 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흑인이나 히스패닉은
좀 더 일찍 심순환기 질환이 나타날 수 있어 백인보다 더 적은 나이 (65세)를 참여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한 가지 명확하게 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말하는 심순환기 질환은 고혈압, 고지혈증이 아닌, 더욱 심각한 심근경색, 뇌졸중 등을 의미한다 (이 컬럼에서 고혈압과 고지혈증은 따로 만성질환이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한국인 등
동양인은 심순환기 질환에 걸릴 위험이 백인보다도 더 낮은 반면 출혈의 위험은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ASPREE 결과를 해석하는 데에 이런 참여 기준을 고려해야 한다.
ASPREE 시험은 참여자들을 두
개의 군으로 나누어 비교하였다. 한
군은 아스피린 100 mg을 하루에 한 번 복용하였고, 다른
군은 위약을 하루에 한 번 복용하였다. 아스피린
100 mg은 심순환기 질환 예방을 위해 가장 흔하게 쓰는 용량이기 때문에 시험결과를 임상에 적용할
수 있다.
ASPREE 시험은 아스피린군과
위약군 사이에 장애가 없는 생존률 (disability-free survival)을 비교하였다. 장애가 없는 생존률이라는 말은 좀 복잡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개념은 간단하다. 심근경색, 뇌졸중
등 심순환기 질환 또는 암이 발생하거나 위장관 출혈, 뇌출혈 등이 일어나면 그 후유증으로 일상적으로
쉽게 하던 일, 예를 들어, 목욕을 한다든지, 옷을 입는다든지, 산책을 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를 ASPREE
시험에서는 장애 (disability)로 보고 이런 장애가 나타난 참여자들의 비율을 비교한
것이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장애가 없는 생존률은 아스피린의 이득과 위험을 모두 포함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아스피린이 심순환기
질환의 발생률을 낮추면 장애가 나타나는 참여자들의 수가 줄겠지만, 아스피린이 출혈의 위험을 높이게 되면
장애가 생기는 참여자들의 수가 늘기 때문이다.
자, 이제 결과를 살펴보자. 전체 만9천여명의 참여자들 중 91%는 백인이었고 86%는 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심순환기 질환의 발생 가능성을 높여주는 만성질환을 가진 참여자들을 살펴보면, 전체 참여자의74%가 고혈압을,
65%는 고지혈증을 가지고 있었다. 또, 전체 참여자의 34%가 고지혈증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이런 만성질환을 가진 참여자들의 비율과 고지혈증 치료제 사용자들의 비율을
보면 동네에서 흔히 보는 건강한 노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무작위로 군을 배정했기 떄문에 이 비율은 아스피린군과 위약군 간에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두 군간의 장애가 없는 생존률을 공정하게 비교할 수 있다.
시험 참여자들을 약 5년간의 추적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아스피린군
(n = 9525)
위약군
(n=9589)
위험비율
(95% 신뢰구간)
연간 1000 명당 발생률
연간 1000 명당 발생률
장애가 없는 생존률
21.5
21.2
1.01 (0.92-1.11)
심각한 출혈발생률
8.6
6.2
1.38 (1.18-1.62)
사망률
12.7
11.1
1.14 (1.01-1.29)
위 결과에서 보듯이 아스피린군과 위약군 간의 장애가 없는 생존율은 거의 비슷하였다. 아스피린군에서는 연간 1000명당 21.5명이, 위약군에서는
21.2명이 장애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장관 출혈, 뇌출혈 등 심각한 출혈률을 비교했을 경우, 예상대로 아스피린군이
위약군에 비해 38% 더 높았다. 뿐만 아니라, 아스피린군은
사망률도 위약군에 비해 14%나 더 높았다. 건강한 노인들이 아스피린을 복용한다면 이는 장애를 줄이고 오래 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ASPREE 시험 결과는 아스피린을 복용해도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심각한 출혈이 일어날
확률이 증가하며 사망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ASPREE 시험은 아스피린군에서
왜 사망률이 증가했는지도 살펴보았다. 분석결과, 심순환기 질환이나 심각한 출혈에 의한 사망률은 두 군간에 서로 다르지 않았지만, 암에 의한 사망률은 아스피린군이 위약군에 비해 31%나 더 높았다. 특히,
아스피린군은 위약군에 비해 대장암과 직장암의 위험이 77%나 더 높았다. 이는 그간의 연구 결과와는 배치되는 것으로
후속 연구를 통해 좀 더 살펴보아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인 등 동양인은 백인에 비해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은 낮은 반면 출혈의 위험은
더 높다. 백인 노인들을 위주로
한 ASPREE 시험에서 아스피린이 심순환기 질환, 암, 출혈에 의한 장애의 발생률을 낮추지 못했다면 비슷한 연배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을 가능성은 더 낮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스피린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출혈의 위험을 더 증가시킬 수 있다. 따라서, 심순환기 질환을 앓은
적이 없는 건강한 노인들은 아스피린을 복용하기 보다는 고혈압,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의 조절과 함께 건강한
식단, 규칙적인 운동 등을 통해 심순환기 질환을 예방하는 것을 권한다.
2019-03-04 1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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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57> 정성어린 호스피스 케어를 받을 수 있었던 보바스 기념병원
“야~ 좋다!”
상쾌한 아침공기와 함께 확 트인 전망에 어머니는 매우 좋아하셨다. 입원하셨을 때에는 구토를 심하게 하셔서 상태가 꽤 좋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하신 뒤 드시지도 못한 데다 입원하기 위해 차를 타고 오신 것이 메스껍게 한 것 같다. 하지만, 영양제 수액을 맞으시고 잠도 잘 주무셔서인지 입원 다음날 아침에는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실 수 있었다.
“전화기 좀 줘 봐. 사진 좀 찍게.”
동네 노인복지관 사진반 활동을 꾸준히 하신 어머니는 아름다운 전망을 열심히 사진으로 담으셨다.
“잘 찍었지?”
우거진 숲과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을 아침 햇살과 푸른 하늘에 담은 이 사진들은 결국 어머니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지만 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도 좋아하시던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다.
보바스 기념병원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망과 환경만이 아니었다. 보바스 기념병원의 정성어린 호스피스 케어는 나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보바스 기념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은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매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어머니는 특히 자원봉사자가 병실을 방문해서 해 주는 발 마사지를 좋아하셨다.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어머니의 양발을 정성스럽게 주물러 주시며 마사지 해 주시던 자원 봉사자 두 분을 잊을 수 없다. 카드 만들기도 기억이 나는 프로그램이다. 난 단순히 준비해 온 흰 종이에 환자가 색칠해서 카드를 만드는 프로그램으로만 생각했는데 종이 뿐만 아니라 단추, 실 등 여러 생활소품들을 이용해서 가족들이 환자를 위해 카드를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내 아들이 만든, 꽃 사진을 찍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카드는 어머니도 좋아하셔서 돌아가신 다음 제단에 올려 놓기도 했다.
환자와 가족들이 마지막 시간들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런 프로그램들도 좋았지만 보바스 기념병원을 지금도 특별하게 생각하게 하는 것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병동 스태프들이었다. 보바스 기념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들은 모두 하나라도 더 해 주고 도와주려고 노력했으며 환자를 대하는 표정, 어투, 태도 등에서 환자에 대한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를 담당했던 한 간호사는 어머니와 이야기를 할 때 어머니가 침대에 앉아 계시면 옆에 앉고, 어머니가 누워 계시면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이 간호사가 어머니의 위치에 따라 자신의 위치를 조절한 이유는, 의사소통기술 (communication skills) 과목에서 가르치고 있듯이, 환자의 눈 높이에 자신의 위치를 맞추면 환자에게 공감을 표시할 수 있어 좀 더 원활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다른 병원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데다가 어머니와 이야기할 때 항상 손을 잡아 주는 등, 어머니를 단순히 배정받은 환자가 아닌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인간으로 공감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매우 고마왔다.
고마웠던 일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음악을 좋아하셨는데 나는 피아노를 좀 칠 줄 아는 손자의 연주를 돌아가시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들을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입원 다음날 우연히 병동에 전자 피아노가 있는 것을 보고 간호사에게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지 물어 보았다. 간호사는 가능하다며 1인실이 비어 있으니 그 곳을 쓰라고 전자 피아노와 어머니의 침대를 자신이 직접 옮겨 어머니가 손자의 연주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뿐만 아니라, 간호사는 다음날 병원 1층 예배당에 있는 피아노를 예배가 끝난 다음 쓸 수 있도록 해 주어서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손자의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보바스 기념병원의 원장님은 완화치료와 호스피스를 전공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를 직접 담당하셨는데 이 분은, 우리나라에서는 여지껏 보지 못한, 정말 환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분이셨다. 금요일 오후 늦게 어머니가 입원했을 때 저녁까지 남아서 어머니를 직접 진찰하셨고 주말에도 아침에 나와서 어머니를 직접 보고 가셨다. 또, 가족 면담의 일환으로 나와 따로 10여분간 만나기도 했다. 이 때, 원장님은 어머니가 너무 갑작스럽게 상황이 안 좋아져서 죽음을 받아드릴 준비가 충분히 된 것 같지 않다며 우려하셨다. 그래서, 이 후 매일 본인이 직접 찾아 오던지 심리치료사를 보내 어머니의 심리적 안정을 도와주려고 노력하셨다.
난 학교를 6월말부터 비웠기 때문에 8월 중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비행기를 예약해 둔 상황이었다. 내가 돌아가기로 한 날은 어머니가 입원하신 다음 주 월요일이었는데. 원장님은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떠나기 전날 나를 불렀다.
“꼭 지금 미국에 돌아가셔야 하나요? 제가 판단하기에는 어머님이 일주일 정도 밖에 남은 것 같지 않아서 말씀드립니다.”
상황이 서울삼성병원에 입원하기 전보다는 많이 안 좋아지기는 했어도 의식도 또렷하실 뿐만 아니라 좋아하시던 야구도 노트북 컴퓨터로 보시는 등 아직은 괜찮아 보였기 때문에 난 일주일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학교를 많이 비워서 잠깐이라도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원장님은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비행기 시간이 오후여서 떠나는 날 아침 난 짐을 들고 병원에 들러서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병실을 나와 공항으로 향하려는 데 간호사가 불렀다.
“정말 지금 가셔야 해요?”
“네. 다음 주 중반에 다시 돌아올께요.”
“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겠지만 저희가 생각하기로는 어머니에게 남은 날이 며칠 안 되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드님 직장이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자칫 늦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너무 진중하고 간곡하게 말려서 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생각해 본 뒤 이메일로 학과장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비행기 예약을 취소했다. 어머니는 그 날로부터 4일만을 더 사셨기 때문에, 만약 원장님과 간호사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난 평생 후회할 뻔 했다.
어머니는 보바스 기념병원에 입원하신 지 일주일만인 8월18일 새벽 3시경에 돌아가셨다. 간호사들은 임종이 가까와졌을 때 우리에게 알려주어 모두 곁에서 어머니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돌아가신 뒤 간호사들은 입원복을 입고 계신 어머니를 우리가 준비해 온 평상시 입는 옷으로 갈아 입히고는 어머니의 두 손을 모아 꽃을 들게 해 드려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먼 곳으로 떠나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가신 직후 당직의사가 바로 와서 사망진단서 작성을 하였음에도 4시경에 원장님이 직접 찾아 오셨다.
“어머니 표정을 보니 편하게 돌아가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리고는 원장님은 보바스 기념병원에는 장례식장이 없기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옯겨야 하는데 병실의 짐을 옮기려면 차가 여러 대 필요할 지 모른다면 주차증을 더 주겠다고 하셨다. 원장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담당하던 환자가 사망하자 새벽에 일찍 나와서 돌아가신 환자의 정신적인 건강을 걱정해 주고 동시에 가족들의 주차증도 챙겨 주는 의사는 아마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이 분밖에 없으리라.
비록 짧은 기간동안 입원하시기는 했지만, 어머니는 마지막 일주일 동안 인간적이고 정성어린 케어를 받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보바스 기념병원에 감사해 하셨을 것이다. 나도 어머니와 우리 가족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신 보바스 기념병원의 원장님, 간호사님들, 그외 스태프 모두에게 매우 감사드린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9-02-01 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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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56> 대학병원의 퇴원 후 케어 계획의 부족으로 급하게 재입원
“얘들아, 난 도저히 못 먹겠다. 너희들 맛있게 먹거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신 지 6일만에 퇴원해서 처음으로 집에서 드시는 저녁식사였다. 우리 가족은 모두 이제 어머니가 담즙배액관도
다셨으니 좀 드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또, 미국에서 온 손자와 아내도 어머니가 췌장암 진단을 받으신 다음 처음으로
어머니와 집에서 함께 하는 저녁이어서 동생과 아내는 어머니가 드실 만한 음식을 정성스럽게 마련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죽조차도
거의 드시지 못한 채 숫가락을 내려 놓으셨을 때 우리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어머니가 얼마 드시지 않은 죽마저 다 토하시자 입원하시기 전보다도
더 안 좋아지신 것 같아 크게 걱정이 되었다.
이틀 뒤, 어머니와 같이 거동이 힘든 분들을 위한 가정방문 간호 서비스의 일환으로 삼성서울병원
간호사가 영양제 수액을 가지고 집을 방문했다.
필자: “어머니 복수가 좀 더 많아진 것 같은데 수액을 맞으셔도 될까요?”
간호사:”일단 수액을 맞으시고 복수를 빼시면 될 것 같아요.”
필자:”그럼 복수를 빼 주실 수 있으신가요?”
간호사:”그건 제가 할 수 없고 병원을 방문해서 빼셔야 합니다. 굳이 서울삼성병원에 오실 필요는 없고
집 근처의 가까운 병원에서 빼시면 됩니다.”
필자:”어머니가 기운이 없으셔서 병원에 가시는 것 자체가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가정 간호사를 신청한 것이고요.”
간호사:”사정은 잘 알겠는데 복수를 제가 뺄 수는 없어요.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면서 빼셔야 하니까요.”
집에서는 복수를 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영양제 수액을 드릴 수 없었다. 음식도 드시지 못하고 영양제도 맞을 수 없으면 어떻게 암을 견딜 수 있을까? 너무 걱정이 되었다. 영양을 공급해 드리면서 복수도 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 데 이는 병원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를 다시 병원에 입원시키기로 결정했다.
퇴원 후 재입원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데, 많은 경우, 재입원은 입원환자
담당팀이 퇴원 후 약물치료, 영양공급 등 퇴원 후 케어 (post-discharge
care) 계획을 세심하게 짜지 않은 채 환자를 퇴원시키기 때문에 일어난다. 다시 말하면, 방지할 수 있는
입원인 것이다.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을 때 담당 간호사나 의사가 어머니가 얼마나 식사를 하실 수 있는지, 얼마나 자주 구토하시는 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면 퇴원한 지 이틀만에 어머니가 다시 입원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또, 담당교수가 영양제 수액으로
인한 복수 증가에 대해 환자의 상황에 맞는 대처방안을 미리 만들어 놓았어도 어머니는 빨리 다시 입원할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영양공급과 복수제거였으므로 큰 병원에 입원할 필요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틀 전 퇴원했던
서울삼성병원은 아무도 다시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호스피스 서비스를 알아보기 위해 며칠 전 방문했던 분당 보바스 기념병원이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처음에는
금요일 늦은 오후라서 입원이 어렵다고 대답했지만 어머니의 사정을 이야기를 하니 원장님과 상의해 보고 다시 연략을 주겠단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떠나기 전 만났던, 우리학교 완화치료과의 Steven Pantilat 교수는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으라고 내게 강력하게 권유했었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틈틈히 호스피스 서비스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기대수명이 6개월이하로
진단된 환자들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에 비해 우리나라는 3개월이하로 좀 짧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의 편이를 고려하여
전국에서 지역별로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들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환자들이 원하면
거주 지역이 아닌 곳의 병원이 제공하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기있는 호스피스
병동, 예를 들어,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은 대기 시간이
길어 빨리 신청해야 하는 것 같았다. 가정방문
호스피스 서비스도 신설되었는데 이는 거주지역 근처의 지정된 병원에서만 받을 수 있다.
난 기계음 들리는 병원보다는 살던 집에서 세상과 이별을 고하는 것이 좀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되도록이면 가정방문 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랬다. 하지만, 가정 방문 호스피스
서비스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입원 호스피스 서비스보다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종류에 제한이 많았다. 특히, 먹는 약으로 통증을
조절할 수 없거나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경우, 정맥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가정 호스피스 서비스로는 정맥주사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입원 호스피스 서비스를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입원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병원에 대한 조사한 다음, 동생과 나는 우리 사정에
가장 맞을 것 같은 집 근처 두 병원을 어머니가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하시기 전날 직접 방문해 보았다. 두 병원 모두 호스피스 서비스에 대한 상담사가 따로 있어서 호스피스 병동
투어를 하면서 병원에서 제공하는 호스피스 서비스 내용, 비용, 대기
기간 등에 대해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두 병원 모두 호스피스 환자들만 입원한 병동이 따로 있었고 마시지, 카드 만들기, 함께 노래 부르기 등 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매일 다양하게 짜여져 있었다.
6인실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하루 입원비가 만원대로 저렴했지만 상급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대기기간은 일주일에서 한 달로 예측하기 힘들었는데 입원환자의 상태와 기다리는
환자의 수에 따라 달랐다. 두
병원 중 우리는 분당 보바스 기념병원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다른 병원과 달리 특정 종교에 편중되어 있지 않았으며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전망이 좋고 주변에 숲이 우거져
있어 어머니가 좋아하실 환경이었기 때문이었다.
10분쯤 지난
뒤, 분당 보바스 기념병원에서 전화가 다시 왔다. 오늘 입원하실 수 있고 원장님이 직접 보실 수 있단다. 이틀만에 다시 입원해야 하는 것이 가슴
아팠지만 지금 되돌아 보면 분당 보바스 기념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생의 마지막 8일 동안 어머니는 진정어린 의료진과 간호사들을 만나 인간적 케어를 받으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9-01-14 1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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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55>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고 치료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증질환 보장제도
“오빠, 약값이 고작 500원이네!”
대학병원 근처 약국으로 진통제인 트라마돌 (tramadol) 2주일치를 타러 갔던 동생이
영수증을 보여 준다. 미국의 비싼
의료비에 익숙한 나는 저렴한 약값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중증환자로 등록되어서 5%만 내면 된대.”
이는 약값 뿐만 아니라 진료비, 검사비, 시술비
등 병원비 전반에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완화치료과 신동욱 교수를 만날 때마다 낸 진료비는 1000원밖에
되지 않았다. 의료비와 약값 자체가
미국보다 싼 데다 5%만을 부담했기 때문에 어머니 치료에 든 비용은 장례비용보다 더 적게 들었을 정도였다.
암 등 중증 질환은 오랫동안 비싼 치료를 받아야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의료비 부담이 크다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치료를 장기간 꾸준히 받기 어려울 수 있다. 또, 좋은 치료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환자와 보호자 모두 치료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중증질환의 진단을 받은 것만으로도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정신적인 충격이 커 집중하기 힘들 수 있는데 여기에 비싼 의료비까지 걱정해야 한다면
치료에 집중하기 더욱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중증 질환 환자들의 병원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비 걱정을 덜고 치료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비싼 의료비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미국의 경우, 비싼 의료비는 개인 파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의 의료비 그 자체가 비싸다. 그래서,
미국에는 두 종류의 의료비가 있는데 하나는 비싼 의료비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비싼 의료비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예를 들어, 응급실 방문에 우리 돈으로 50만원이상 들고 맹장염 수술에 2000만원 가까이 든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을
갖는 것을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보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 병에 걸리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암에 걸리면 집 팔아서 치료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의료비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었는데 이제 부담이 많이 줄어든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몇 가지 개선해야 할 점도 눈에 띈다. 먼저, 정부가 정한 중증질환인
암, 심장, 뇌혈관, 증중화상
등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4대 질환에 적용되지 않지만 다른 중증 질환, 예를 들면, 간경변 등은 이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같다. 반면,
미국의 공적보험인 메디케어 (Medicare)는, 외래진료의
경우, 80%의 진료비/치료비를 질병의 종류에 관계없이 보험이
지불해 준다.
둘째, 5%의 본인부담률 적용이 되지 않은 경우가 꽤 있었다. 어머니가 요도염으로 동네에서 치료를 받았을 때 일반적으로 내는 금액을
지불했으므로 이 5%의 본인부담률은 동네의원과 동네약국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동네의원의 설명으로는 췌장암 치료에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항목들에 대해서만 5%의 본인부담률이 적용된다고 한다. 그런데, 중증 질환이 진행되거나
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다른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증가한다. 예를 들어, 중증 질환이 진행되면
식욕을 잃어 잘 못 먹게 되어 살이 빠지게 되고 이에 따라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 또, 중증 질환 치료과정 중
크고 작은 여러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어떤 항목이 중증 질환의 치료와 직접 관련이 있는 지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중증 질환의 치료에
직접 관련이 있는 항목에만 5%의 본인 부담률의 혜택을 받게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증 질환의 치료에 직접 관련이 있더라도
비급여로 규정되어 있는 항목들도 많은 것 같다.
췌장암이 진행함에 따라 자라난 암세포에 의해 췌담도가 막히게 되어 췌장에서 만든 효소들이 소장으로 잘 분비되지 않을 수
있다. 췌장에서 만든 효소들은
소화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이 효소들이 부족하게 되면 소화가 되지 않고 영양분이 흡수되지 않아 더욱 살이 빠지고 약해지게 된다. 그런데,
췌장효소제인 노자임은 비급여로 되어 있어서 본인이 100% 부담해야 했다.
미국 건강보험의 경우, 이처럼 필요해서 처방한 약이 비급여로 되어 있으면 이에 대해 처방자가 이의를 제기하고 보험사로부터 심사를 받아
지불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도
환자의 상태와 처방자의 의견을 급여방법에 유연하게 반영할 수 있다면 환자와 가족들이 좀 더 치료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9-01-02 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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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54> 해 드린 게 없으니 시술을 해 드리자는 대학병원 의사
“오늘 오후에
하기로 한 시술은 예정대로 하는 거예요?”
난 너무 궁금해서 간호사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지난 토요일 한 밤 중에 MRI 검사를 받으셨다. 담당교수가 주말 동안 병실에 들르지 않았기
때문에 난 월요일 오전에는 우리에게 들러 결과를 설명해 주고 시술 계획에 대해 알려줄 줄 알았다. 그런데, 정오가 다 되어 가는데도
우리에게 검사 결과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 1시반에 예정대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받으시는 시술은 담관에 작은 관 (스텐트)을
삽입하여 담즙이 소장으로 잘 배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RCP, endoscopic retrograde
cholangiopancreatography). 이를 위해서는
위내시경을 할 때처럼 카메라가 달린 튜브를 입안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위내시경은 카메라가 식도를 지나 위까지만 도달하지만 담관에 스텐트르 삽입하기
위해서는 카메라는 위를 지나 담즙이 나오는 통로가 있는 십이지장까지 좀 더 내려가야 한다.
예정 시간이 가까와지자 병원 직원들은 어머니를 1층의 시술실로 옮겼다. 가뜩이나 기운이 없으신 어머니는 시술
준비로 전날 저녁이후로 계속 금식까지 하셔서 운송침대로 스스로 이동하실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간호사는 정말 혼자 운송침대로 움직일 수 없냐고 묻고…
시술실 밖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담당교수가 시술복을 입고 나타났다.
“MRI 검사결과를
보니 그동안 암이 많이 진행되어서 여러 군데로 더 퍼졌어요. 특히, 간 이곳 저곳에 많이
퍼져 있어서 시술을 해도 빌리루빈 (bilirubin) 수치가 많이 내려갈 것 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노란색을 띄는 빌리루빈은 헤모글로빈의 대사물질로 담관을 통해 소장으로 배출된다. 그런데, 췌장암은 물리적으로
담관을 막기 때문에 빌리루빈이 배출되지 않아 황달을 일으킨다. 혈중 빌루루빈의 수치는 정상적으로는 1.5
mg/dL미만이지만 어머니는 20 mg/dL로 크게 올라간 상태였다.
“또, 퍼진 암이 십이지장을 누르고 있어 십이지장이 많이 좁아져 보입니다. 카메라가 이를 통과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설명을 마친 담당교수는 시술실로 들어갔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담당교수가 시술실 문을 열고는 나왔다.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스텐트를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카메라
직경이 1.5 cm정도인데 어머니의 십이지장이 너무 좁아져서 카메라조차도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이 정도로 좁아져 있으면 액체음식도 드시기
힘들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음식이 뱃속에 고여 있는 것 같다고 하셨고 물만 드셔도 토하셨던 것이다.
“답즙 배액관을
다는 것으로 계획을 바꿔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시술은 저희가 할 수 없고 방사선과 (interventional
radiology)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병실로 돌아가시면 저희가 협진 의뢰를 넣겠습니다.”
“담즙 배액관을 꼭 달아야 하나요? 어머니가 물만 드셔도 토하시는 것은 황달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씀을 들어보니
십이지장이 너무 좁아져 있는게 원인인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또, 암이
많이 퍼져서 시술을 해도 빌리루빈 수치가 많이 내려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구요.”
담당교수는 짐짓 놀라는 눈빛이었다. 아마 부모에게 권유한 시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자식은 보기 드물기 때문이리라.
“지금까지
해 드린 것이 없으니 담즙 배액관 시술을 해 드리는 것이 어떨까요?”
어머니의 의사를 알 수 있으려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시술을
위해 진정제 (sedative)를 맞으셔서 정신없이 주무시고 계셨기 때문이다 (깨어나시기 까지 4시간 정도 걸렸다). 동생과 아내와 상의하고 고심한 끝에
담즙 배액관 시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도 했고 혹시 황달이라도 좀 좋아지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협진 의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병실로 돌아온 지 두어 시간만에 담즙 배액관 시술을 받으실 수 있었다. 수송 침대에 실려 방사선과에서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누워있는 배 위에 조그마한
투명한 백 (bag) 놓여져 있었다. 지난 금요일에 입원해서 이를 달기까지 걸린 시간과 많은 고심을 한 것에
비해 참 간단하게 생긴, 참 쉽게도 달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불편한 물건이었다. 우선 매일같이 백안에 담긴 담즙을 비워줘야 했다. 이는 화장실 가는 것처럼 생각하면 되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관이 몸밖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감염을 막기 위해 배액관과 나온 담즙을 모은 백을 포비돈으로 정기적으로 소독해야
했다. 또, 매일마다 멸균 등장액으로 관을 세척하기는 했지만 관이 막힐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움직임이 크게 제한되었다. 어머니가 이동할 때마다 백을 누군가 옆에서
들어 주어야 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또, 백이 어머니의 배보다
높이 있으면 역류할 수 있기 때문에 백의 위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담즙 배액관은 어머니
배의 오른쪽으로 나왔고 몸밖으로 나온 관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몸을 왼쪽으로 돌릴 때에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황달이 좋아졌으면 이런 모든 불편함은 감수할만 한 것이었을 것이다. 시술을 마친 이틀 뒤, 어머니는
퇴원을 하셨다. 퇴원하시는 날이
공교롭게도 완화치료 외래진료를 미리 예약한 날이었기 때문에 완화치료과 의사를 만난 다음,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시술은
잘 되신 것 같군요. 빌리루빈
수치를 한 번 볼께요.”
완화치료과 의사는 전자차트에서 그동안 측정한 어머니의 혈중 빌리루빈 수치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어, 어제 검사한 것을 보니 15네. 고작 5밖에 안 떨어졌어요??”
굉장히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담즙 배액관을 달지 않았으면 빌리루빈 수치는 20보다 더 올라갔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더 올라간다고 해서 어머니의 경과가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담즙 배액관을 단지
단 11일만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시술을 시도한 담당교수는
퇴원 3주 뒤로 후속 진료를 잡아 두었는데 이는 환자의 예후를 완전히 잘 못 본 것이었다). 생명을 몇 주 연장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담즙 배액관이 어머니의 증상을 완화시켜 주었으면 달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구토로 어머니는 마지막 11일을 물조차도 마음대로 드시지
못하고 영양공급은 수액으로만 받으셔야 했다.
어머니가 마지막 11일을 담즙배액관 때문에 불편하게 지내신 것을 생각하면 난 이를 달기로
동의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 해
드린 것이 없어서 시술을 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경우에만 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12-17 14: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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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53> 자식의 도리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23 – 자식의 도리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세 가족은 큰 탁자를 가운데 두고 서로 뻘쭘이 마주 앉아 있었다. 이윽고
간호사로 보이는 분이 방으로 들어 왔다.
‘이제 초진
암환자들에게 제공되는 암교육이 시작되는가 보다.’
환자교육에 경험이 많은 듯 한 간호사 덕분에 말없이 앉아 있던 세 가족은 자신들에 대해 소개할 수 있었다. 한 가족은 50-60대인것 같은 아버지가 대장암 2기 진단을 받았다고 하고, 아들만 참석한 다른 가족은 80대 아버지가 식도암 3기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런 치료방법이 없는 말기 췌장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에 비해 다른 환자들은
아직은 암과 싸울 수 있는 희망이 있어 보여 매우 부러웠다.
암교육은 암의 완치 가능성을 강조하고 항암치료제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으로만 채워져서,
항암치료를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한 어머니와 우리 가족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똑같은 정보를 모든 환자에게 제공하기 보다는 각기 다른 환자의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이 아쉬웠다.
설명이 끝나자 간호사가 말했다.
“질문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식도암 3기 아버지를 둔 아들이 물었다.
“저희 아버님은
지방의 한 병원에서 식도암 3기 진단을 처음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암이 많이 진행되어서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는 할 수 있지만
수술은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알아
보니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식도암 3기라도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여기로 아버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살 만큼 사셨기 때문에 수술은 받기 싫다고 하세요. 하지만, 자식의 도리로서 수술을
해 드리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일까?
완치가 불가능하고 생존기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게 되면 치료를 포기하려는 환자와 무엇이든 해 보려는 환자 보호자 사이의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 어머니는 황달을
줄이는 시술을 받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이유는
근본적인 문제인 췌장암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완화치료과의 신동욱 교수의 권유에도 꿈쩍 않으시던 어머니는 아무것도 해
드린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시술만은 꼭 해 드리고 싶었던 동생이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자 마음을 바꾸셨다.
“네 동생이
울어서 해야 겠어.”
또, 환자 보호자 사이에도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처음에는 나도 시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헌을 찾아보니 이 시술은 황달로 불편한 증상 (특히, 가려움증)을 줄이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증상이 없으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특히, 담즙배액관의 경우, 몸밖으로 관을 빼는 것이기 떄문에 감염의 위험이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배액관의 위치를 조정해야 하는 불편함도 만만치 않았다.
Less is more - 미국 의료현장에서 쓰이는 표현 중 하나다 (저명 의학잡지 JAMA Internal Medicine에도 “Less is More”라는
코너가 있다). 번역하면 “적게 하는 것이 더 많이 하는 것이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의료 현장은 환자에게 무언가를
더 해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는
뭔가 더 할수록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물론, 하나라도 의료 행위를 더 할수록 금전적으로 보상을 더 많이 받는 행위별 수가제 – fee for service – 도 그 배경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검사 하나라도, 수술 하나라도 더 하고 약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점은 이런 의료 행위에는 부작용의 위험이 따르며 이로 인해 오히려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Less is more”는 환자에게 도움이 확실한 것만 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Less is more를 의료 현장에 적용하는 데에 몇 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그동안 하나라도
더 하는 것에 익숙한 의료인들이다. 이는
교육과 연구로 풀어가야 할 부분이다. 또, 하나 큰 장벽은 문화의 차이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은 환자 중 하나는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20대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의사에게 들었다지만 50대 중반까지
산 환자였다. 이 환자는 그동안
버텨온 심장이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어 호흡곤란 등의 증상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의료진은 심장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증진시키지만 심장을
지치게 하여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강심제 (inotrope)로 연명을 시킬지 아니면 이를 포기하고
통증 등 불편한 증상만을 조절하다가 얼마 뒤 죽음을 맞이 하는 “comfort care”로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침 회진에서 이를 듣던
환자는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던 가족을 옆에 두고 “comfort care”를 선택했다. 환자가 이 때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I have lived a good life.”
반면 내게 익숙한 동양문화는 이와는 많이 다르다. 이는 미국 의료현장에서도 심심치 않게 관찰할 수 있다. 몇 년전 80대 중반의 동양계 환자가 심장에서 대동맥 사이에 있는 판막 (대동맥판; aortic valve)가 심하게 좁아져서 (협착; stenosis) 입원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는데 환자가 고령에 신부전증 등
여러 합병증을 가지고 있어서 수술 자체에 의한 사망 위험률이 50% 이상이었다. 수술로 살 수 있는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더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가족은 의료진의 수술 불가능 판단에 동의하지 않았다. 수술을 어떻게든 해 보자고 했지만 의료진이 거부하자 다른 병원을 찾아
보겠다며 환자를 퇴원해 데리고 나갔다.
자식의 도리. 어려운
질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부모님을
살리고 싶은 것은 자식의 당연한 심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치료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 본의와는
다르게 부모님이 더 고생할 수 있다. 어머니의
투병과정에서 난 어머니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을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항암치료를 했으면 몇 달 더 사셨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를 선택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의사를 존중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어머니에게 혜택은 없이 불편함만 주었던
담즙배액관 시술을 마지막에 동의한 것이었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12-03 1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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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52> 수익을 위해 급하지도 않은 검사를 한밤중에 하는 병원
‘드르륵’
병실 문 열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새벽 1-2시쯤 온다고 했는데 벌써 때가 되었나 보다.
“환자님, MRI 찍으러 가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어제 (8월 4일) 낮, 담당 교수에게 외래진료를 받았다. 담당 교수는 어머니의 황달이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 입원해서 MRI 등 검사를 좀 한 다음, 이를 토대로
시술을 해서 황달을 완화해 보자고 권유했다.
우리도 어머니의 상태가 점점 나빠졌기 때문에 이에 동의했다. 다행히, 빈 병실이 있어서
당일 입원할 수 있었다.
입원 수속을 할 때 간호사는 오후 11시쯤 MRI를
찍게 되며 시술은 월요일에 받으실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저녁시간에 간호사는 MRI 검사실
사정으로 계획이 새벽 1-2시쯤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주었다. 구토로 거의 드시지 못한데다 외래진료를 마치고 입원하기까지 거의 4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기에 입원하셨을 때 어머니는 너무 지치신 상태였다. 그래서, 저녁시간부터 주무시기
시작한 어머니는 MRI 검사실로 수송하는 사람이 왔을 때에는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어머니, MRI 검사 장소로 수송하는 분이 오셨어요. 일어나실 수 있으세요?”
“몇 시니?”
시계를 보니 2시였다. 옆 침대의 다른 환자분도
인기척에 깨셨는지 코고는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힘겹게 일어나신 어머니는 침대에서 휠체어로 옯겨 타셨다. 나는 어머니와 수송하는 분을 따라 나섰다. 우리는 북적대던 낮과는 달리 적막감이
드는 병동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MRI 검사실로 갔다. MRI 검사실에는 검사를 담당하는 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명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이
토요일 새벽인데 이 시간에도 일을 하네.’
검사 스케줄에 적힌 환자들 수로 보아 밤새도록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검사실로 어머니를 수송하시는 분은 다시 병동 쪽으로 휠체어를 끌고 돌아갔다. 보호자는 검사실로 들어올 수 없어서 나는
환자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환자
대기실은 텅텅 비어 있었고 MRI에 대한 안내방송만이 TV 스크린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낮에는
기다리는 환자로 붐빌 텐데 밤이라 아무도 없구나.’
난 주위를 둘러 보았다. 환자
대기실로 들어오는 통로에 걸린 안내판에는 ‘외래’라고 크게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 왔다.
‘입원환자만을
위한 MRI 검사실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병원에서 MRI같이 비싼 장비를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로 구분해서 사용할 이유가 없지.’
착각에서 벗어나게 되자 난 왜 병원이 위급하지도 않은 입원환자에게 MRI 검사를 한밤중에
시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비싼 MRI를 하루 종일 돌려야 이익이 극대화되니 외래환자는 낮에, 입원환자는
밤에 검사하는 구나!’
입원수속할 때 당일 밤에 MRI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빨리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해 준 병원에 대해 고맙게 생각했었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먹지도 못하는 환자를 잘 자게라도 해서 기운을 내도록 돕지는 못할 망정
돈 몇 푼 더 벌려고 곤히 자고 있는 중증 입원환자를 한밤 중에 깨워서 급하지도 않은 검사를 시키다니! 병원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3시가 넘어서 검사를 마치셨다. 거의 한 시간 동안 검사를 하신 것이다. 기진맥진해서 병실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바로 주무시기 시작했다.
며칠 후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하신 뒤 어머니는 토요일 새벽에 받으신 MRI 검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가
입원기간 중 가장 힘들었어. 암
때문에 등이 아픈데 좁은 기계안에 갖혀서 한 자세로 오랜 시간동안 참고 있어야 하는게 너무 견디기 어려웠어. 거기에 못 먹고 토해서 기운이 없는데 잠도 못 자게 했잖아.”
환자의 안녕보다는 수익을 우선시하는 비인간적인 병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곳이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11-19 1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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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51> 직역 고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간호사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실을 배정받자 마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환자 보호자분이세요? 저는 담당 간호사인데 환자에 대해 좀
여쭤볼 게 있어서요.”
간호사는 나를 nursing station으로 데리고 갔다. 널찍한 nursing station은 금요일 오후 5시가 지나서인지 북적거리지
않고 비교적 한가했다. 간호사는
30분정도는 걸릴거라고 의자를 주면서 앉으라고 권했다. 처음에는 간호사가 환자에 대해 알아볼 것이 그렇게 많이 있을까하고 의아해했지만
간호사의 질문을 들어 보니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간호사는 어머니의 병력, 가족력, 약력에 대해 정말 자세하게 물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병원에서 진단받은 날짜, 그동안
받은 치료 내역, 지금 복용하고 있는 약 등을 꼬치꼬치 묻고는 전자차트에 꼼꼼히 기록했다.
미국 병원에서는 환자가 입원하면 담당의사가 H&P (history &
physical)이라는 입원의무기록을 작성해야 한다. 이 H&P에는 환자의
병력, 가족력, 약력, 치료
내역, 청진/촉진 검사기록,
피검사/요검사/영상검사기록, 그리고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한 환자 평가와 치료 계획 등이 자세하게 기술된다. 이 H&P는
환자를 담당하는 팀의 수련의인 레지던트가 작성하고 교수급인 attending physician이 사인을
마치면 공식적인 의무기록으로 남게 된다.
H&P는 기본적인
의무기록 중 하나인데다 서울대 병원에서 받은 어머니의 의무기록에 어머니가 췌장암 진단 확진 검사를 받기 위해 입원하셨을 때의 H&P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간호사의 인터뷰가 끝난 다음, 여기서도
당연히 담당의사 – 레지던트지만 서울삼성병원에서는 주치의라고 부른다 -
가 어머니에게 와서 인터뷰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입원한 다음, 담당의사가 나는 물론이고 어머니를 인터뷰를 하러 병실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난 담당의사가 어떻게
어머니 상태에 대해 평가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을런지 상당히 궁금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답은 입원기간
동안 간호사들과 접하고 소통하면서 알아낼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불편한 점이 있으면 저희에게 말씀해 주세요. 그럼 저희가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릴께요.”
나와의 인터뷰가 끝날 즈음, 간호사는 내게 이렇게 부탁했다. 난 이 말을 어머니가 호소한 불편한 점을
간호사에게 말하면 간호사가 담당의사를 불러 줄 것이라고 이해를 했는데 이는 나의 큰 오해였다. 어머니의 통증이 잘 조절되지 않는다고,
어머니가 음식을 드실 때마다 토한다고 간호사에게 전달해도 의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시간이 좀 지나서 간호사가
나타나서는 다른 약을 주거나 이렇게 해 보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이로보아 환자와 담당의사간의 의사소통과정은 간호사를 중간매개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즉, 내가 간호사에게 어머니의 불편한 점을 말하면 간호사는 이를 담당의사에게 전달한다. 그러면,
담당의사는 환자를 직접 보러 오는 대신, 간호사에게 치료방법에 대한 지시를 내리고 이를
간호사가 수행한다. 마치 의사는
높은 자리에 있어서 접근하기 힘든 사람이고, 간호사는 그 중간에서 의사의 일을 대신 해 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입원했을 때 담당의사를 대신해서 간호사가 나를 자세히 인터뷰했던 것으로 보인다.
간호사가 고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입원환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서울대 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을 외래 방문했을 때, 혈압 등vital을 측정하고triage를
하는 간호사 고유의 역할을 하는 간호사를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간호사는 환자를 호명하고는
환자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가서 의사의 지시에 따라 검사 또는 재진예약을 도와주는 일을 주로 하고 있었다. 물론, Kaiser와 같은
미국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대기실에서 환자를 호명하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검사와 재진예약에 대해 환자를 안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고유 역할을 모두 수행하며 의사의 진료실에는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
간호사의 역할에 대해서 눈에 띄는 것이 몇 가지 더 있었다. 먼저, 간호사들은 대체적으로
할당된 일 이상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한 번은 어머니가 검사를 받기 위해 병실침대에서 수송침대로 옮겨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너무 기운이 없으셔서 스스로 움직여서 수송침대로 가실 수 없어서 간호사를 불렀다. 그런데,
들어온 한 간호사의 비직업적인 (unprofessional) 질문에 난 깜짝 놀랐다.
“제가 바빠서
그런데요, 정말 혼자 하실 수 없으세요?”
이런 간호사들의 태도에 대해 아내는 환자나 보호자가 무엇을 더 부탁할까봐 병실에 들어오면
빨리 나가려는 듯이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마도 담당하고 있는 환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어떤 때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을 하기도 했다. 퇴원
전날이었다. 간호사는 필요한 서류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아서 입원기간 동안 작성된 의무기록이 필요하다고 했다. 난 의무기록을 떼는 곳을 알려 줄 알았는데 간호사는 다음날 의무기록 사본을
준비해 와서 깜짝 놀랐다. 환자를
수송침대로 옮길 시간은 없어도 환자의 의무기록을 떼어 줄 시간은 있었나 보다.
우리나라 간호사들의 이직율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되지 않아 보이는 젊은 간호사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나이 든 간호사들이 흔한 미국 병원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런데, 아마도 간호사로서의
보람을 크게 느끼지 못한는 것도, 격무와 박봉과 더불어, 우리나라
간호사들의 높은 이직율의 한 원인이 될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운 간호사 고유의 역할보다는 일종의 비서와 같은 역할을 주로 한다면 간호사로서 보람을 얼마나 느낄 수 있을까?
미국 병원에서 간호사들은 관찰자 (observer)와 환자 옹호자 (patient advocator)라고도
불린다. 왜냐하면, 환자 가까이에서 환자의 크고 작은 변화들을 관찰해야 하고 환자의 건강과 치료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들도 관찰하지 못한 것을 간호사가 회진 중인 의사들에게 보고하여 진단과 치료를 돕는 모습을 미국 병원에서 많이 보아 왔다.
또, 의사들이
마련한 치료계획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환자들의 편의를 고려하고 도와주는 간호사들도 많이 만났다. 우리나라 병원에서도 환자와 담당의사간의 의사소통의 매개자로서 뿐만 아니라, 간호사가 고유의 역할인 환자의 관찰자와 옹호자로서 환자 치료에 더 큰 도움을 줄 날을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11-05 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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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50> 미국과는 많이 다른 우리나라 대학병원 수련의 교육
1.
사라진 인턴
어머니 병실에서 내가 잠을 자던 간이침대에는 장갑이며 피묻은
솜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어머니는
복수천자 시술 (paracentesis)을 시작할 때처럼 왼쪽으로 모로 누워 계셨다. 어머니 배에 복수를 빼기 위한 관이 보였지만
연결된 용기에는 1/3정도만 찬 것으로 보아 복수가 별로 나온 것 같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물어 보니 인턴은 다른 병실로
복수천자하러 갔다고 한다.
좀 기다리니 인턴이 헐레벌떡 돌아왔다. 아마 간호사가 연락했나 보다. 2월에 의과대학을 졸업해서 3월부터 인턴생활을 시작했으니 병원경력은 고작 5개월에 불과했다. 물어보니 선배의사가 휴가를 가서 자기 혼자 입원환자들의 복수천자 시술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한다.
잘 수련받은 인턴은 복수천자와 같이 간단한 시술을 대부분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턴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좀 어려운 사례 (case)를 만나면 일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당황하기 쉽다. 그래서,
인턴을 지도 감독하는 전문의 (프리셉터 –
preceptor - 라고 부른다)의 도움을 필요할 때 쉽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턴은 수련의의 신분이기 때문에 프리셉터는 인턴이 수행한 시술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 대학병원에서는 인턴에게 간단한 시술을 혼자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더라도, 인턴을 지도, 감독하는 전문의가 와서 보고 확인한 다음 인턴이 작성한 환자 차트에 같이 사인해야 한다 (attending attestation; 아래 설명을 참조). 이는 수련의가 스스로 독립해서 책임지고 환자를 볼 수 있는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2.
프리셉터의 확인이 빠진 수련의의 의무기록
어머니가 췌장암 진단을 위해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작성되었던
의무기록의 일부다. 이 기록들은
수련의 신분인 레지던트가 작성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는 환자의 외래 담당 전문의가 그 환자가 입원했을 때 지정의가 되는 동시에 그 입원환자를 돌보는 레지던트를 지도, 감독하는 프리셉터가 된다. 그래서, 어머니의 외래 담당
전문의가 어머니에 대한 이 레지던트의 프리셉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레지던트들이 작성한
의무기록에는 어머니 담당 교수가 이들의 기록을 확인해 주는 항목 (attending attestation이라고
부른다)이 빠져 있다. Attending attestation은 수련의들이 작성한 기록이 정확한지
확인해 주고 이들의 환자 평가와 치료계획에 대해 상의하고 동의한다는 프리셉터의 기록과 서명을 담는다. 레지던트는 수련의 신분이기 때문에 환자 치료의 최종 책임을 맡은 전문의의
기록이 따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레지던트가 작성했는데 attending attestation이 빠진
의무기록은 마치 상사의 사인이 빠진, 말단 사원이 작성한 효력없는 보고서와 같은 것이다.
교육적으로도 의무기록 작성은 의사 수련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의무기록은 다른 의료진과의 의사소통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지던트를 지도하는
프리셉터가 레지던트의 의무기록을 읽지 않으면 누가 레지던트의 의무기록 작성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물론,
attending attestation이 없다고 해서 프리셉터가 레지던트의 의무기록을 읽지 않았다고 단정지을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의무기록의 질로 보아 수련의의 의무기록 작성에 대한 프리셉터의 교육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터무니없지는 않을 것
같다.
3.
투명인간의 역할을 하던 외래의 레지던트
어머니는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에 완화치료를 받으러 네 번 방문했었다. 그때마다 진료실에는 레지던트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완화치료 담당 교수와 함께 앉아 있었다.
간호사 등 다른 직역이 사진과 이름이 코팅된 명찰을 매달고 다니는 것과는 달리 서울삼성병원에서는 의사가 금색의 명찰을
가슴에 달고 다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의사만 다른 형태의 명찰을 달고 다니는 것은 의사가 일종의 특권직역임을 은연중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병원이
환자치료를 위해 여러 직역들의 협력을 도모한다면 이는 별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의사를 레지던트라고 생각한 이유는 우리나라 진료여건상
한 진료실에 두 명의 전문의를 둔다는 것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3주에 걸쳐 네 번 담당 교수를 만나는 동안 이 레지던트는 투명인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질문을 한 적도 없고 담당 교수와
치료방법에 대해 서로 상의하지도 않았다. 단
하나 하는 일이 있었다면 우리와 담당 교수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들으면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 의무기록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이로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외래에서 레지던트 수련과정 중 하나가 아마도 바쁜 프리셉터를 대신해서 의무기록을 작성해
주는 것 같다.
이는 내가 경험한 미국 대학병원의 레지던트의 외래 수련과정과
크게 차이가 난다. 과마다 좀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레지던트가 먼저 환자를 진료실에서 단독으로 보면서 문진, 촉진 등을 한다. 이때 전문의인 프리셉터는 대부분 다른
방 (attending room)에 있다. 다음, 레지던트는 환자를 진료실에
남겨 두고 attending room으로 가서 프리셉터에게 문진, 촉진
결과와 함께 자신이 생각한 진단과 치료계획을 말한다 (이를 환자 발표 – patient presentation – 라고 부른다). 이를 바탕으로 프리셉터는 수련의와 함께 진단과 치료계획을 토의하여 결정한
뒤 수련의와 함께 진료실에 있는 환자에게 가서 이을 설명해 주고 환자의 질문에 답한다. 환자가 떠난 후 수련의는 진료기록을 작성하고 프리셉터는 여기에 attending attestation을 남긴다. 나도 클리닉에서 수련인을 지도할 때 이 모델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 모델에서는 진료실 수만 충분하다면 전문의 한 명이 레지던트 2-3명을 한꺼번에 지도, 감독할 수 있다.
과실습 첫 주에는 레지던트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전문의가 처음부터
환자를 보고 레지던트는 전문의가 환자 보는 것을 옆에서 관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때 의무기록을 작성하는
사람은 전문의이지 레지던트가 아니다. 왜냐하면, 전문의가 환자를 직접 보았고, 레지던트는 단지 이를 관찰했기 때문이다.
과실습 3주차에서
전문의가 환자 보는 것을 레지던트가 관찰만 하는 경우는 (레지던트가 잘 못하지 않는 이상) 드물다.
레지던트는 수련을 마친 다음에 독립적으로 환자를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수련시키기 위해서 전문의의 지도, 감독하에 레지던트는 환자를 직접 혼자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삼성서울병원의 가정의학과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또, 서울대 응급실에서도 전문의와 함께 수련의가 앉아 있었지만 환자 보호자로서 내가 보기에 두드러진 수련의의 역할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환자를 호명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진료실 내에서는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레지던트처럼 투명인간으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아무리 레지던트가 관찰만 하더라도 교육을 위해서 프리셉터가 진단과
치료 계획에 대해 레지던트와 토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문의와의 토의를 통해 레지던트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것이나 몰랐던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문의도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토의과정을 통해 수련의가 이를 제기할 수도 있어 환자에게 해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다.
4.
병실에 들어와 보지 않는 병동의 레지던트
어머니가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주치의는 레지던트였다. 그런데,
이 레지던트는 행방이 묘연했다 -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왜냐하면, 난 어머니가 5박 6일동안 입원하시는 동안 매일 병원에 있었고 3일밤을 병원에서 지내기도 했지만 이 레지던트가 어머니 병실에 들어온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입원 당일 환자 병력, 약력을 꼬치꼬치 물어 보며 나를 인터뷰했던 사람은 이 레지던트가 아닌 간호사였다. 간호사는 간호평가와 계획 (nursing assessment and plan)을, 의사는 간호계획과는
촛점이 다른 H & P (history & physical examination)이라는
입원의무기록을 따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난 주치의 타이틀을 가진 레지던트가 올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어머니가 물을 드실 때마다 토하신다고
해도, 통증이 좀 심해진 것 같다고 해도, 복수가 차서 불편해
하신다고 해도 이 레지던트는 들어와 본 적이 없다.
병동에 있으면서도 환자를 보지 않는 레지던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난 굉장히 궁금했다.
병동 중앙에 간호사들이 모여 앉아 있고 컴퓨터가 여러 대 비치되어
있는 곳을 영어로는 nursing station이라 부른다 (한글로는
무엇이라고 불리는지 몰라서 영어를 쓴다).
어머니 병실을 나서면 바로 nursing station이 있었는데 그 레지던트는
컴퓨터 앞에 항상 앉아 있었다. 그럼
컴퓨터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난
이 레지던트가 인터넷 서핑이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 레지던트는 대부분의 시간을 검사 오더하고 결과를 리뷰하며 의무기록을
작성하는 데 사용했을 것이다. 이
레지던트는 혼자 20여명의 환자를 맡고 있었는데 이들의 검사를 오더하고, 약을 처방하고, 검사결과를 리뷰하며, 의무기록을 작성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를 직접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환자를 직접 봄으로써 검사결과가 임상적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정보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예, 구토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음식을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즉,
검사는 단지 환자 정보의 일부분이지 환자를 직접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대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미국 병동의 수련의는
적어도 하루 한 번, 매일 attending과 회진하기 전에
병실에 들어가 문진 (이를 history라고 부른다), 촉진, 청진 (이를
통틀어physical examination이라고 부른다) 등을
하고 이 결과를 다른 검사 결과와 함께 회진 중에 동료 수련의와 프리셉터에게 발표한다.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시리즈의 다른 블로그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입원환자 의료진 운영은 환자를 외래에서 보아왔던 지정의 중심이다. 즉, 병동을 담당하는 레지던트는
각각의 병동 환자들이 외래에서 보아왔던 전문의 (=지정의)들의
지도 감독을 받는다. 이 제도는
병동의 환자 치료에 대한 결정이 지정의의 외래 진료 스케줄에 의존하는 비효율적인 단점외에도 레지던트 교육에도 긍정적이지 않은 면이 많다. 일단 외래 진료 스케줄이 다른 여러 명의
전문의들에 자신의 스케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레지던트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힘들다. 미국 대학병원의 여러 과에서는 하루 중 일부의 시간을 레지던트 교육에
사용한다. 예를 들어, 우리학교 병원의 경우, 오후 1시30분에서 한 시간 동안 심순환기 내과 전문의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심순환기 병동을 실습하고
있는 레지던트들에게 강의를 한다. 레지던트들이 오후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이유는 attending이 입원환자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 오전에 병동회진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병원처럼
많은 수의 환자를 맡아야 하는데다 스케줄이 제각각인 여러 명의 프리셉터가 있는 경우 레지던트를 위해 교육시간을 따로 떼어내기 어려울 것 같다. 또, 수련의 여러 명과 프리셉터 한 명으로 이루어진 팀체제에서는
프리셉터가 입원환자들을 맡는 기간동안에는 외래 환자를 보지 않기 때문에 입원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레지던트 교육에 신경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를 동시에 보아야 하는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는 프리셉터로부터 양질의 교육을 기대하기 힘들다.
5.
휴일에는 보이지 않은 프리셉터
주말을 삼성서울병원에서 보내는 동안, 난 어머니를 담당한 레지던트를 nursing station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레지던트의 프리셉터인 담당 교수는 병동을 찾지 않았다. 간호사도 이를 당연히 여기는지 “교수님이
월요일에 회진할 것”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병원 상황이 달라 직접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자를 최종 책임지는 전문의가 환자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병동을 들르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 대학병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또, 프리셉터는 수련의 자신이
미래에 환자를 스스로 독립해서 책임지고 돌보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역할 모델 - role model - 이라고 부른다). 주말에 병동에 나오지 않는 프리셉터를 보면서 수련의는 무엇을 배울까?
외래와 병동에서 만난 수련의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진단과 치료방법에 대해 가졌던 여러 의문점을 좀 해소할 수 있었다. 환자들과의 의사소통 기술이 부족한 것은 수련기간 중 병동 실습에서 환자에게
문진하는 일이 드물고, 외래 실습에서 환자를 독립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 보이는 것이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또, 환자의 상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는 문진과 촉진/청진 등은 소홀히
하고 검사에만 의존해서 진단과 치료를 하려는 경향도 이러한 수련과정에서 생긴 것처럼 보였다. 또, 대학 교수급 전문의의
의무기록 작성 능력이 미국 의과대학생보다 떨어지는 것도 수련과정에서 프리셉터의 지도 감독이 부족했던 데에
기인한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과 교육이 서로 균형잡힌 체계적인 수련과정이 아닌, 일의
수행에 집중된 수련과정으로 보였다. 이런
수련과정에서는 문헌을 읽고, 자신이 수행한 일에 대해 스스로 성찰 (reflection)하고, 프리셉터의 조언 (feedback)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이런 수련과정 때문에 전문의가 처방을 했건 수련의가 처방을
했건 문제가 없었던 약처방을 발견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10-17 1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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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9> 입원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진 운영제도의 비효율성
“담당 교수 왔었어?”
어제 병원에서 잠을 잔 나는 아내와 교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병실을 나온 시각이 오전 9시쯤이었는데 그 때까지도 의료진은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 오니 11시가 좀 넘어 있었고 나는 곧바로 병원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했다.
“아니, 아직 안 왔어. 이따 오후 3시쯤 온대.”
“어머니 좀 어떻셔? 어제 단 담즙배액관으로 담즙은 잘 나오고 있지?”
“응, 배액관은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아. 그런데, 복수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셔.”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어머니는 담즙배액관을 달기 이틀 전에 복수천자 시술 (paracentesis) - 주사기로 복수를 빼는 시술 –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계속 정맥으로 수액을 맞고 계신데다 암으로 생긴 복수이기 때문에 다시 금방 찼다.
“어머니 복수 찬 거 어떻게 할 계획인지 모르지?”
“아침에 잠깐 들른 레지던트에게 물어 보았는데 담당 교수가 오면 상의해 보겠대.”
“그럼, 담당 교수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네.”
우리나라와 미국 대학병원 모두 입원환자를 담당하는 의료진은 교수와 레지던트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을 운영하는 방법은 크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경우, 특정 병동을 담당하는 1-2 명의 레지던트가 주치의로서 그 병동에 입원한 모든 환자들의 치료에 관한 실무를 맡고 교수급 전문의인 외래 담당의사가 환자의 지정의로서 레지던트를 지도, 감독한다. 그런데, 병동에는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외래 담당의사의 환자들이 입원해 있기 때문에 레지던트 주치의는 여러 명의 지정의의 지도 및 감독을 받는다.
어머니를 담당한 레지던트는 췌담도암 병동에 입원한 20명의 환자를 담당했는데, 적어도 3명의 지정의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정의는 입원환자 뿐만 아니라 자신의 클리닉에서 외래환자도 보아야 한다. 그래서, 클리닉 스케줄에 따라 입원환자를 보는 시간이 다르다 – 어머니 담당 교수처럼 클리닉이 오전에 있으면 입원환자를 오후에 보고, 클리닉이 오후에 있으면 오전에 본다. 그런데, 비록 주치의의 명칭을 달고 있기는 해도 레지던트는 수련인 신분이기 때문에, 담즙배액관을 새로이 단 환자의 복수를 어떻게 할 지를 결정하는 등의 환자 치료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어서 지정의가 병동에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레지던트가 실무를 맡고 교수급 전문의가 이들을 지도 감독한다는 것은 미국 대학병원도 같다. 하지만, 한 레지던트가 여러 명의 전문의의 지도 감독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전문의의 지도 감독을 받는 것이 다르다. 또, 입원환자의 치료는 팀 (team)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팀의 모든 환자들의 치료를 책임지는 교수급인 전문의가 주치의 (attending physician)의 명칭을 갖는다 (따라서, 지정의라는 개념이 없다). 한 팀은 주치의 한 명과 1-3명의 레지던트로 구성되어 있고, 레지던트들은 팀이 담당하는 환자들을 나누어 맡는다.
예를 들어, 우리학교 병원의 심순환기 내과에는 4개의 팀이 있다 (팀 A-D). 한 팀은 수련의 2명-3년차 레지던트와 1년차 인턴 (1년차 레지던트는 레지던트라고 부르지 않고 인턴이라고 부른다) –과 심순환기 내과 전문의 한 명로 구성되어 있고 최대 12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또 하나 우리나라 대학병원과 크게 다른 점은 입원환자 팀을 담당하는 전문의는 입원환자를 보는 날 외래환자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입원환자 보는 시간을 전문의의 클리닉 스케줄에 맞출 필요가 없다. 그래서, 우리학교 병원의 심순환기 입원환자를 담당하는 팀들은 모두 아침 8시30분부터 회진을 시작하여 치료에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을 오전에 내릴 수 있다.
입원환자만을 담당하는 한 명의 전문의가 책임지는 팀제로 운영되는 미국 대학병원의 입원환자 치료는 우리나라 대학병원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오전에 회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머니의 예에서 보듯이, 입원환자 치료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오후까지 미룰 필요가 없다. 그리고, 입원환자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의사결정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전문의가 입원환자만을 담당하고, 병동에 거의 상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이화여자 대학교 목동병원에서 벌어진, 오염된 주사제를 맞은 신생아들의 사망사건과 같은 급한 일이 벌어졌을 때 병동에 담당 전문의가 없었다는 것은 미국 대학병원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또, 어머니가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을 때 주말에는 지정의인 담당 교수가 병실을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미국 대학병원에서는 입원환자 팀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의가 주말에도 팀과 함께 아침에 회진한다. 뿐만 아니라, 전문의가 입원환자만 담당하고 병동에 상주하기 때문에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입원환자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보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환자가 입원했을 때 외래에서 만나왔던 전문의에게 치료를 맡긴다는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의료진 운영 제도는 치료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언뜻 이치에 닿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환자를 여지껏 보아왔던 의사가 다른 사람들보다 그 환자를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전문의는 다수의 입원환자와 더불어 엄청난 수의 외래환자도 함께 보기 때문에 환자 개개인을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입원환자의 상태는 빠르게 변할 수 있고 검사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합리적인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환자를 직접 자주 보아야 한다.
“그냥 복수천자만 하고 말았어? 내일 퇴원한 다음에 집에서도 계속 수액을 맞으실 거고, 그러면 금방 도로 찰 텐데… 복수천자를 매일 외래로 받을 수도 없잖아?”
나는 체중이 15 kg정도 줄어든 어머니의 영양공급이 크게 걱정이 되었다.
“담당 교수는 담즙배액관도 달고 했으니 음식을 좀 드실 수 있을 거래.”
“난 배액관 달고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이제는 물만 드셔도 토하시잖아? 그래서, 가정간호사가 와서 수액을 집에서 놓아 주도록 한 것이고.”
“…”
주치의 레지던트는 환자를 직접 보기 보다는 거의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지정의는 오후에 2-3분 동안만 잠깐 와서 보고 갔으니 환자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구토증세가 얼마나 심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지 답답했다.
퇴원한 이튿날 오전, 삼성서울병원의 가정 간호사가 수액을 들고 집을 방문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어머니에게 수액을 놓아 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복수가 다시 차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음식이건 물이건 드시자마자 바로 토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한 지 이틀만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실 수밖에 없었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10-02 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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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8> 입원환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간호인력
어머니는 삼성서울병원 암병동에 8월 4일부터 9일까지 5박 6일동안 입원하셨다. 난 환자보호자로서 매일 어머니곁에 있었고 병원에서 세 밤을 보냈기 때문에 삼성서울병원의 입원환자 케어 시스템이 24시간동안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었다. 삼성서울병원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병원 중 하나이므로 이 병원의 입원환자 돌봄 제도 (inpatient care system)가 우리나라 다른 병원들보다 낫거나 비슷하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3-4개의 컬럼을 통해서 효과적이고 안전한 환자 케어를 위해 우리나라 병원의 입원환자 돌봄 제도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 지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우리학교 병원의 예과 비교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입원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부족한 간호, 의료인력이었다. 난 병동을 돌아보면서 간호사와 의사 한 명이 몇 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는지 세어 보았다. 처음에 센 숫자가 너무 황당해서 다시 세어 확인해야 했다 – 왜냐하면, 놀랍게도, 간호사는 1인당12명, 의사는 20-25명의 환자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일반 병동 (Medical/Surgical wards)의 경우, 간호사 1인당 5명을 담당하니 간호사 1인당 12명은 우리학교 병원의 두 배를 약간 넘는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병원 소속 전문간병인이 환자를 같이 돌보기 때문에, 우리나라 병원에서의 간호인력 1인당 업무량은 미국 병원 간호사 1인당 업무량의 두 배를 훨씬 초과하는 셈이다.
이렇게 간호인력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이를 메꾸기 위해 우리나라 병원은 환자보호자를 이용하고 있다. 즉, 환자보호자에게 전문간병인 역할과 간호사 역할의 일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입원하고 조금 있다가 담당 간호사가 들어와서 어머니의 상태를 살펴 보았다. 그러고는 환자가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뼈가 직접 침대 매트리스에 닿기 때문에 욕창의 위험이 아주 높아서 어머니의 자세를 2시간에 한 번씩 바꾸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난 간호사들이 2시간마다 병실에 들어오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정작 환자 자세를 바꾸는 것은 자기들이 아니라 환자 보호자의 책임이라고 하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환자의 자세를 바꿔 주는 일은 미국에서는 전문간병인이 역할인지라 난 누워 있는 입원환자 자세를 바꾸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시범이라도 보여줄 줄 알았는데 어머니 담당 간호사는 환자 자세 바꾸는 법을 설명한 종이 한 장을 달랑 놓고는 나가 버렸다.
이 뿐만이 아니다. 환자가 하루 동안 얼마나 소변을 보았는지 계량하고 기록하는 것과 시간에 따라 환자에게 이 약 저 약 주는 것은 미국에서는 간호사의 역할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환자보호자인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가족이 입원하면 그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인데 거기에 더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환자보호자에게 맡기는 것이 환자를 안전하게 돌보는 것일까? 또, 환자에게 안전사고가 생겼다면, 누가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나? 예를 들어, 환자보호자가 경황이 없어 2시간마다 환자의 자세를 바꾸지 못해 욕창이 생겼다면 이는 환자보호자 책임인가 병원책임인가? (원래는 병원이 해야 할 일이고 환자보호자가 자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의 책임으로 보인다)
8월 8일 월요일 새벽 5시경, 여느 때처럼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와서는 혈압 등 바이탈을 측정하고는 그날 드릴 어머니 약들을 놓고 나갔다. 이 중에는 진통제인 옥시코돈 (oxycodone) 15 mg 네 알이 들어 있었는데, 한 알씩 6시간마다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전날 어머니가 통증을 많이 호소하지 않아서 두 알만 드렸기 때문에 두 알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난 간호사를 바로 찾아 가서 오늘은 네 알이 다 필요없다고 말했다가 크게 혼나고 말았다.
간호사:”아니 왜 이걸 이제 말해 주시는 거예요? 어제 말해 주셨어야죠. 그리고, 약을 환자보호자 마음대로 바꿔주면 안 돼요!”
난 환자보호자의 역할이 부족한 간호인력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간호사는, 그 태도로 보아, 약을 주는 것은 환자보호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환자에게 때에 맞춰 투약하는 것은 간호사 고유의 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입원환자 개개인의 약물 투여 기록지 (Medication Administration Record; MAR)를 마련하고 간호사로 하여금 작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투약을 직접하지 않으면 어떻게 간호사가 무슨 약을 언제 얼마나 투약했는지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 또, 정기적으로 투약하는 약도 환자의 상태를 봐 가며 주어야 하는데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는 법을 배우고 수련받지도 않은 환자보호자에게 투약을 맡기는 것이 효과적이고 안전한 환자 돌봄일까?
경황이 없는 환자보호자가 제 시간에 약을 주는 것을 잊어 버릴 수도 있고, 환자보호자가 바뀌는 경우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약을 잘못 주거나 빼먹을 수 있다. 또, 옥시코돈 같이 중독성이 큰 마약성 진통제의 경우, 반드시 지정된 환자만이 사용해야 하며 병원은 이런 약들이 본래 의도한 목적을 벗어나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그런데, 환자보호자에게 이런 약들의 투약을 맡기면 환자가 복용하는 지 다른 사람이 쓰는 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내가 간호사에게 8월 7일에 남은 2알을 이야기하지 않고 병원밖으로 몰래 가지고 나가면 과연 병원은 알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 병원도 이제는 환자보호자 대신 전문간병인을 많이 쓰기 시작하는 것 같다. 전문간병인은 환자보호자보다 환자 돌봄에 대한 수련과 경험이 많기 때문에 안전하고 효과적인 환자 돌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병원이 아니라 환자가 직접 전문간병인을 고용해야 한다 (물론, 병원이 주선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돈을 주는 쪽은 환자이지 병원이 아니다). 병원 외부 인력을 고용하는 경우, 병원마다 다른 내규를 잘 모르기 때문에 효과적이고 안전한 환자 돌봄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또, 환자 개인정보 보호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다인실 병실이 많은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환자 개인정보 보호가 특히 더 중요하다). 그리고, 간병인은 간호 수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간호인력이 수행해야 할 역할 – 예를 들어, 약물 투여와 기록 – 을 대신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양질의 환자 돌봄을 위해 간병인의 사용과 함께 병원의 간호인력을 확충시켜야 한다.
간호인력 뿐만 아니라 약사인력도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부족하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 약사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미국을 방문한 약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알고 있다. 우리학교 병원은 약 700병상인데 100명이 넘는 약사가 활동하고 있다. 반면, 비슷한 규모의 우리나라 어느 대학병원에는 고작 10명정도의 약사만이 고용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학교 병원에서도 입원환자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있어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은데, 이보다 약 10배나 적은 수의 약사로는 이를 담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입원환자 수 당 최소한의 약사인력을 규정하는 법률의 제정에 정부가 반대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의사 한 명당 환자 수에 대한 것은 의료진 운영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다음 컬럼에서 따로 다루기로 한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09-18 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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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7> 환자보다는 의사 중심으로 보이는 대학병원 입원절차
7월말부터
어머니의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7월
중순만 해도 음식을 조금씩 드실 수 있었고 하루에 한 번 10분 정도 산책을 다녀오실 수 있었다. 하지만,
7월 마지막 주부터 구토증세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음식을 드시고 난 다음 구토를 하셨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물만 드셔도 구토를 하시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기운이 더 떨어졌으며 거동을
하기 위해서 휠체어가 필요하게 되었다.
두 가지 원인을 생각할 수 있었다. 하나는 심해진 황달이었고 다른 하나는 커진 암에 의해 소장이 막히는 소장폐색이었다. 황달이 심해지면 식욕이 떨어지고 구토가
생길 수 있다. 7월 중순만 해도
혈중 빌리루빈 수치가 정상보다 약간 높은 수준 (5미만)이었는데
8월초에는 20에 달하게 되었다. 피부가 너무 노랗게 변해서 휠체어를 타고
밖에 산책을 나갔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사람 황달인가봐”라고
소근거리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 소장폐색은
따로 검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장이 막히면 물조차도 장으로 내려갈 수 없기 때문에 구토 증세가
생길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완화치료 담당의사는 황달을 먼저 치료해 보자며 어머니를 먼저 진료했던 췌담도암 센터의 교수에게 진료의뢰를 넣어 주었다. 췌장암이 커져 담관을 물리적으로 막아서
생기는 황달이기 때문에 담관에 스텐트를 넣어서 뚫어 주거나, 담즙을 몸밖으로 배출하도록 인공담관인 배액관을
달아야 한다. 둘 다 가정의학과에서는
할 수 없는 시술이었다.
8월4일 금요일, 우리는 췌담도암 센터의 교수를 외래에서 다시 만났다. 11시30분쯤으로 예약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환자가 너무 많아서 12시 10분이 지나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서너
번 구토를 하셔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담당의사는
입원해서 MRI 검사를 한 다음 시술을 하자고 하면서 입원날짜에 대해서는 간호사에게 알아 보라고 했다. 병실 상황을 살펴 본 간호사는 다행히
당일 퇴원하는 환자가 있어 2인실이지만 입원이 가능하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필자 : “오늘 입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간호사: “네, 4시이후에 병실에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필자 :”다음주
초에는 안 될까요? 내일 미국에서 손자가 오는데 병원보다는 집에서 맞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하나밖에 없는 손자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 지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가 집에서 만날 수 있기를 난 바랬다. 하지만,
이것이 입원을 늦춰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간호사는 말했다.
간호사 “퇴원하는
환자가 있어야 입원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음 주에는 입원이 가능할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빨라야 아마 다음 주 금요일일 거예요.”
동생: “오빠, 다른 사람들과 인터넷에서 알아 보니까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 보통은 며칠 걸리고 심지어 몇 주 기다려서
입원한 사람도 많은 것 같아. 오빠
마음은 알겠는데 대학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일주일 더 기다렸다가 어머니가 잘못되면 어떻게 해?”
좋은 기회? 미국의
우리학교 병원의 입원 제도에 익숙한 나에게는 대학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것이 좋은 기회라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머니가 받을 예정인 시술은 엄밀히 말하면
선택시술 (elective procedure)이다. 이 시술은 당장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환자의 생명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우리학교 병원에서는 이런 경우 입원 예약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병원은 병실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장 시술을 받지 않더라도, 어떻게
보면, 자리를 잡기 위해서 입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어머니는 입원 다음 날인 토요일 8월 5일 새벽에 MRI검사를
받은 후, 그 다음 주 월요일 8월7일에 시술을 받으셨다 –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그냥 병실만 지키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입원이 반드시 요구되는 검사나 시술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입원비를 그냥 챙길 수 있었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들어 보니 우리나라 대형대학병원에 입원하는 절차는 크게 세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입원예약, 둘째는 응급실을
통해서, 세째는 외래진료과를 통하는 것이다. 이는 겉으로는 보기에는 우리학교 병원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몇 가지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먼저, 당장 입원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 이용하는 입원예약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나라 대형병원은 비싼 건강검진을 받을 때나 유명 정치인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입원할 때를 제외하고는 입원예약을 받지
않는 것 같다.
반면, 우리학교 병원은 선택시술로 입원하는 경우에도 예약을 통해 입원할 수 있다. 만약 어머니가 미국에 계셨다면 손자가 온 다음 주에 입원하도록 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로, 당장 입원치료가 필요한 경우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외래진료과가 응급실을 통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입원시킬
수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응급실로 갈 필요없이 바로 췌담도암병동에 입원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학교 병원은 외래진료과를
통해도 일단 응급실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외래 심장내과에 방문한 환자의 심부전증상이 심해져 당장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외래 심장내과는 환자를 일단 응급실에 보낸다. 그러면, 응급실의 판단에 따라 환자의 입원이 결정된다 (물론, 외래진료과가 응급실 담당의사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놓기 때문에 대부분 입원된다).
또,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는 담당의사별로 입원병실 수가 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 담당의사
이름으로 일정 수의 병실이 배정되어 있어 이 의사가 담당한 환자가 퇴원하면 그 병실로 이 의사의 환자가 입원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당일 입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운이 좋게도 어머니 담당의사의 환자 하나가 마침 퇴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관계자들이 응급실을
통하는 것보다 외래진료를 통해야 빨리 입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학교 병원에는 의사별로
병실 수가 배정되어 있지 않아 응급실에 온 순서대로 입원된다. 후속 글에서 설명하겠지만
이는 입원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운영방법과도 크게 관계가 있다.
이상과 같이 입원절차를 보면, 우리나라 대학병원은 환자보다는 의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외래진료과를 통하면
선택시술을 위한 입원일지라도 응급실에서 입원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를 제치고 바로 입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또, 의사 별로 병실 수가
배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의사의 병실이 비어도 담당의사의 병실이 비지 않으면 입원이 지연될 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환자가 한 번도
해당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없으면 입원기회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어머니가 입원하시는 동안,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다른 환자 보호자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지방에서 온
환자의 보호자 같았는데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고 한다.
벌써 한 달째 입원하는 중인데 응급실에서 보낸 3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당일 입원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09-04 10: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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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6>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16 – 처방전 검토와 약사-의사간의 소통
“어, 우루사를 한번에 세 알씩 하루 세 번으로 처방했네.”
어머니의 황달이 심해지면서 나타난 증상 중 하나가 가려움증이었다. 생각보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 심한 환자의 경우, 잠도 못 잘 정도라고 한다 – 불편해 하셔서 문헌을 이것저것 찾아 보았다. 황달은 빌리루빈이라는 노란색의 노폐물이 체내에 쌓여서 생긴다. 빌리루빈은 담관를 통해 배출된다. 췌장암이 진행되면 황달이 생기는 이유는 암이 자라서 물리적으로 담관을 막아 빌리루빈이 배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달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췌장암을 없애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치료법이겠지만, 어머니같이 전이성 말기 췌장암의 경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는 담관에 스텐트라는 작은 관을 삽입하던가 아니면 복부에 관을 삽입하여 이를 통해 담즙을 몸밖으로 배출시키는 배액관을 다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 방법들은 시술을 필요로 하고 어머니의 증상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약물 치료를 먼저 시도해 보고 싶었다. 약물 치료방법으로는 어소디옥시콜릭 산 (ursodeoxycholic acid; 상품명 우루사) 200 mg을 하루 세 번씩 총 600 mg 복용하는 방법이 추천되고 있었다.
어머니의 완화치료를 담당한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의사와 황달로 인한 가려움증 치료에 대한 상담을 했는데 약물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서 우루사 방법을 권해 보았다. 의사도 동의하며 처방전을 써주었는데, 나중에 처방전을 받아보니 내 말을 잘못 알아 들었는지 우루사 200 mg 한 알씩 하루 세 번이 아닌 세 알씩 하루 세 번으로 적혀 있었다. 우루사 200 mg 세 알씩 하루 세 번은 흔히 쓰는 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난 당연히 약사가 확인해서 고쳐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약을 받아 보니 한 포에 우루사 한 알이 아닌 세 알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복약지도를 받아 보니 약사는 우루사가 과량으로 처방되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의약분업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처방전을 여러 사람 – 의사와 약사 –이 검토하게 함으로써 실수를 줄이자는 것이다. 이 처방전 검토에는 적응증, 용량, 용법, 복용 회수, 복용 기간 등이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적응증, 용량, 용법, 복용 회수, 또는 복용 기간이 포함된 처방전을 받았을 경우, 약사는 의사에게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사용방법이 아니라는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약사는 약물정보자료집이나 문헌을 먼저 살펴보고 의사에게 연락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우루사는 심각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약사가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사에게 먼저 확인을 하고 환자에게 교부하는 것이 약사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과량이 투여되기 때문에 부작용과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복약지도에서 강조해야 한다.
대학병원 주변 조제전문약국의 예 하나만 들었지만 부실한 처방전 검토는 단순히 그 약국의 문제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전 블로그에서 다룬 내용 중 내 주변 분들이 받은 이상한 처방들은 모두 동네약국이 처방전 검토를 제대로 수행했으면 충분히 수정이 가능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치매나 간질이 없으신 이모님이 무려 1년 가까이 복용하신 뉴옥시탐정도 동네약국에서 충분히 걸러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직업인 대 직업인의 대등한 관계가 아니며 대체조제조차 쉽지 않은 갑을 관계인 우리나라 동네의원과 동네약국 사이에서 동네약국이 이상한 처방전에 대해 의사에게 물어보고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의사가 갑으로 군립할 수 있는 것은 이상한 처방을 보내도 조제를 해 주는 약국들이 주변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약국들이 이상한 처방전을 조제해 주지 않는다면 환자가 약을 받기 위해서는 의사는 반드시 처방을 수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약사를 대등한 직업인으로 보지 않는 의사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약사 자신들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일 수 있다. 변화를 일으키는 시작이 쉽지는 않겠지만 환자의 건강을 위해, 또, 처방전 검토를 통한 직업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약사들의 노력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
어머니의 체중이 계속 줄어드니까 의사는 식욕을 높여 주는 메게스트롤 (megestrol)이라는 약을 처방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체중이 주는 이유는 식욕부진이라기 보다는, 췌장암이 진행함에 따라 십이지장이 물리적으로 막히게 되어 음식물을 드실 수 없기 때문으로 보였다. 또한, 메게스트롤은 현탁액 – 액체 - 였다. 그런데, 물을 조금이라도 드시면 다른 음식을 드실 수 없었기 때문에 난 메게스트롤 대신 차라리 음식을 좀 더 드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메게스트롤을 어머니께 드리지 않았고 재진 때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사정을 말하고 메게스트롤을 빼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처방전을 받아 보니 여전히 메게스트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필자: “약사님, 메게스트롤을 빼고 다른 약만 받을 수 있을까요?”
약사: “왜요?”
필자:”환자에게 필요없는 약이라서요. 이거 안 드십니다.”
약사: “그런데, 그건 처방을 바꾸는 것이라 안 됩니다. 빼고 싶으시면 병원에 가셔서 처방전을 바꿔오셔야 합니다.”
필자:”제가 필요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마 잊어버리고 넣으신 것 같아요, 그런데도 다시 병원에 가야 하나요?”
약사:”네.”
필자:”거길 언제 다시 가요. 그냥 넣어 주세요. 빼고 먹으면 되니까요.”
약사말대로라면, 현행제도하에서는 처방전이 여러 약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 개개의 약을 각각의 다른 처방으로 보지 않고 모든 약들을 합쳐 하나의 처방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약 하나를 바꾸려고 하면 이는 처방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처방전을 다시 발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온라인 상으로 만난 약사의 말에 따르면 건강보험의 지불관계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은데, 이는 좀 비논리적이며 행정편의주의적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처방은 “어느 질병에 대한 처방” 등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의미하는데, 처방전이 여러 다른 질병을 치료하는 약들로 구성되어 있으면 처방전에 포함된 모든 약을 “한 처방”으로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동네의원의 경우 환자가 처방전을 다시 들고 가서 바꾸는 것이 어렵지 않겠지만, 대학병원의 경우 약국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지 않은데다가 환자들로 붐비는 병원에 다시 가서 의사를 만나고 처방전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아마 많은 경우, 나같이 약을 그냥 받고 집에 가서는 빼고 복용할 것 같다. 만약 환자가 복용하기 싫은 약이 급여라면 공연히 건강보험 돈을 들여 복용하지도 않고 버릴 약을 지불하는 것이 되니 경제적으로도 낭비다.
미국의 경우, 처방전에 여러 약이 포함되어 있고 어떤 약에만 문제가 있는 경우 그 약의 처방만 바꿀 수 있다. 또, 환자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약은 의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약국에서 받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약을 받고 말고는 환자의 자유인데 이를 왜 의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나? 대신, 어떤 약이든 처방할 때 환자가 약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확신시키는 것은 의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약사가 의사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고 나보고 다시 가서 처방전을 바꾸어 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소수의 의원만을 상대하는 동네약국에 비해 수많은 의사가 발행한 처방전을 다루는 대학병원 근처의 조제전문약국은 처방의와의 의사소통이 수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환자보고 다시 처방전을 받아 오라고 하는 것은 직업의식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본다). 전화로 연락할 수 있겠지만 의사가 환자를 보고 있는 중이면 의사와의 통화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쓴 처방에 문제가 있으면 나도 약국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데 환자를 보고 있으면 난 전화를 받을 수 없다. 저커버그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 경우, 콜센터가 따로 있어 약국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병원의 전자차트시스템 안의 내 계정으로 보내 준다.
또, 리필 처방전이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약국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전자처방전 전달 라인을 통해 약국이 처방자의 계정으로 직접 리필 전자처방전 발행을 요구할 수 있다. 반면, 삼성서울병원은 처방의가 전자처방전을 약국으로 직접 보내지 않고 수납을 한 다음 환자가 약국을 선택해서 처방전을 보내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약국이 처방한 의사의 계정으로 직접 연락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만약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동네약국에서 받으려고 하는 경우에는 처방한 의사와 약국간의 소통이 더욱 어려울 것 같다. 약국과 처방한 의사와의 소통이 좀 더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제도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08-16 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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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4>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15 – 환자 중심으로 개선되어야 할 현행 의약분업제도
약국에서 약을 타는 동안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오빠, 나 상가앞 길에서 기다리고 있어.’
암병원은 삼성서울병원 안쪽 깊숙히 위치해 있는데 비해, 약국들은 병원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떨어진 아파트 상가내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주차가 쉽지 않은데다 어머니는 기운이 없으셨기 때문에 나 혼자 약을 타러 가고 동생은 어머니를 모신 차를 몰고 주변을 배회하곤 했다. 그래서, 문자나 전화로 서로의 위치를 알려 주어야 했다.
약 타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처음에는 동네 약국에서 약을 받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어 불편하더라도 대학병원 근처의 약국을 이용하기로 했다. 첫째, 동네 약국이 대학병원에서 처방된 약을 모두 구비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둘째, 제너릭 약이라도 의사가 “대체조제 불가”를 적으면 동일 성분, 용량, 제형의 다른 약으로 바꿀 수 없는 우리나라의 기이한 대체조제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처방전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병원과 교류가 더 많은 병원앞 약국이 해결하는 데 편하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어느 약국에 가든지 처방된 약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흔히 쓰이지 않는 약은 약국이 따로 주문을 하든지, 이런 약을 따로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약국 (전문약국: specialty pharmacy)을 통해서 받을 수 있다. 전문약국에서만 취급하는 약의 경우, 의사가 이런 약국으로 처방을 보내고 우편으로 약이 배달되기 때문에 환자가 약이 구비된 약국을 찾아 돌아다니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 반면, 우리나라 동네약국은 주변 의원들이 주로 처방하는 약을 위주로 구비해 놓기 때문에 환자는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에서 처방된 약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대형 체인 약국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 동네 약국들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이기 때문에 흔히 쓰이는 약들을 모두 구비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일 수 있다. 또, 의사의 개인적인 선호 때문에 처방된 약과 같은 계열중에서 임상적 효과가 다르지 않은 약으로 바꾸기 힘든 현실도 한 몫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차단제들은 임상적으로 서로 효과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우리학교 병원 약국에서는 단 2 종류만을 구비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전 만난 서울대 병원의 약사에 의하면, 과와 의사마다 선호하는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억제제가 다르기 때문에 서울대 병원 약국은 허가 받은 20여종의 모든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차단제들을 구비하고 있다고 한다. 약의 구매와 관리에 드는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병원 자원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제너릭에도 상품명을 부여할 수 있는데, 현행 대체제도 하에서는 처방전에 이 상품명과 함께 ‘대체조제 불가’와 임상적 사유를 쓰면 다른 제너릭약으로 바꿀 수 없다. 미국의 동네 약국은 동일성분, 용량, 제형의 약의 경우, 일반적으로 단 한 회사의 제너릭 약만을 구비해 놓는다. 아스피린 81 mg 일반 제형의 예를 들자면, 허가받아 판매되는 수없이 많은 회사들의 제품중에서 자기 약국에 가장 싸게 공급하는 회사의 제품 하나만을 비치한다. 반면, 우리나라 동네 약국은, 동일성분, 용량, 제형이더라도, 주변 의원들이 선호하는 회사의 제품들을 모두 구비해 놓아야 한다. 그렇지만 다양한 성분, 용량, 제형의 모든 약들을 구비해 놓을 수는 없다.
의사에게 처방받고 약국에 가서 처방된 약을 받아야 하는 의약분업은 원래 환자에게 좀 불편한 제도이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의약분업제도는 환자 중심이 아닌 처방자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 환자에게 더욱 불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병원이나 의원에서 바로 약을 탈 수 있었던 예전의 제도가 환자에게 가장 편리하겠지만 난 이 제도도 환자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의원에서 약을 타게 되면 바쁜 의사보다는 간호사가 복약지도를 할 가능성이 큰 데, 안타깝지만 간호사는 이 직능을 위해 수련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또, 처방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
특히, 앞서 글들을 통해 여러 번 지적했듯이, 동네의원이 발행했건 대학병원이 발행했건 처방자의 사고과정에 의문이 들거나 실수가 많은 처방이 우리나라에는 이상하게도 많다. 따라서, 처방자가 약을 직접 주게 되면 이런 실수와 의문점들이 걸러지지 않게 되어 환자에게 해가 일어날 수 있다. 환자가 어떤 약을 그동안 사용해 왔는지에 대한 정보 – 약력(medication history) - 는 약을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정보는 한 곳에서 관리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이다. 그런데, 환자가 여러 의원과 병원으로부터 약을 받는 경우에는 환자의 약력이 통합적으로 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약이나 중복된 약을 쓸 수도 있어서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의 사용이 어렵게 된다.
의약분업에 따른 환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통합적인 약력관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은 동네약국이라고 생각한다. 환자 집과 가까워 접근이 용이하고 환자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네약국에서만 약을 받는 경우, 환자가 그동안 사용한 약에 대한 정보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어 약력관리가 통합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일하는 저커버그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Zuckerberg San Francisco General)에서는 환자가 원하는 약국에 온라인으로 처방을 보내 주고, 환자의 약력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면 그 약국으로 전화해서 알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어느 병원에서 처방을 받든지 동네약국에서 약을 불편없이 받을 수 있는 환자 중심적인 의약분업제도로 개선해야 하겠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08-01 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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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3>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14 –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복약지도
“항생제 처방 받으셨네요. 아침, 저녁 하루 두 번 식후 30분에 드세요.”
약봉투의 ‘아침’과 ‘저녁’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동네약국의 약사가 설명한다.
동그라미 치는데 열중하느라 내가 듣고 있는지, 보고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는다. 또,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저 짧은 두 문장 말하는 게 전부였으니 복약지도에 걸린 시간은 단 10초도 채 되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에는 다른 환자들도 있으니 바빠서 그러나보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환자들이 없었던 다음 번 방문에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복약지도’하는 것으로 보아 이 약사에게 복약지도란 약봉투의 복용법란에 동그라미를 쳐 주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주마간산격인 ‘복약지도’는 대학병원 근처 조제전문약국이라고 불리는 약국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단, 말로 약의 종류를 설명하면서 – 예를 들면, 이뇨제 – 색깔있는 펜으로 이를 약봉투에 친절하게 써 주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었다.
물론, 최대한으로 효과를 얻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약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약복용법에 대해 말로 설명하면서 봉투에 표시를 해 주는 것은 말로만 설명하는 것에 비해 환자가 약복용법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환자가 약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이들의 복약지도에 몇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다.
첫째, 약복용법외에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약을 사용하기 위해 환자가 꼭 알아야 하는 다른 사항들, 예를 들면, 적응증, 부작용 등이 빠져 있었다. 두 약국에서는 적응증, 부작용, 약물상호작용에 대해 간단한 정보를 담은 복약안내문을 따로 주었기 때문에 아마도 약사들이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습에 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듣기나 보기 중 하나만 하는 것에 비해 듣기와 보기를 동시에 하는 경우 학습의 효과가 더 높다고 한다. 따라서, 복약안내문을 보면서 말로 함께 설명해 주는 것이 환자의 이해를 더 돕는 방법이다. 또, 복약안내문은 대강의 일반적인 정보만을 담고 있는데, 환자 개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환자의 상황에 맞는 정보를 제공해 주기 힘들다.
둘째, 복약지도전에 환자가 약이나 질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생략되었다. 복약지도는 약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돕기 위해 환자에게 약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가르친다”이다. 그런데, 위 두 약사는 약에 대해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복약지도를 끝냈다. 이는 과연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학생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면 학생은 지루해 할 것이고, 아는 것에 비해 너무 어려운 것을 설명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약지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약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기 전에 환자가 약과 질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반드시 물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물 것 같기는 하지만) 처방할 때 의사가 설명했을 수도 있고, 혹시 의사가 준 정보와 다르면 환자가 혼동할 수 있으므로 보통 “의사가 이 약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했나요?” 라고 물어 보면서 복약지도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동안 가르친 것을 학생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다시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 하나에 대해 설명이 끝난 다음, 또는 설명할 것이 많은 약의 경우 (예, 와파린), 중간중간에 그동안 설명한 것 중 중요한 점을 환자가 이해했는지 물어 보는 것이 좋다 (teach back method). 예를 들어, 복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지금까지A 약에 대해 설명해 드렸는데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제가 설명한 것을 잘 이해하고 계신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에 가셔서 이 약을 드실 때 하루에 몇 번 드시라고 말씀드렸나요?”라고 물어 볼 수 있다.
만약, 흡입제처럼 기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했다면 사용하는 것을 한 번 보여 달라고 해서 확인해 보야야 한다. 또, “지금까지 설명드린 것 중 혹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나 설명을 더 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에게 질문의 기회도 주어야 한다. 설명을 확인하고 질문의 기회를 주는 것은 복약지도 중간중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끝난 뒤에도 해서 환자가 약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다음 약국문을 나서도록 해야 한다.
세째,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말과 글 뿐만 아니라 눈 맞춤, 말의 속도, 동작 등의 비언어적인 부분도 중요하다. 그런데, 위 두 약사의 복약지도에는 이 부분이 간과되었다. 환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약봉투에 동그라미만 치면 환자가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또, 표정을 통해서 환자가 설명을 이해하고 있는 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설명을 하는 중간중간 환자를 쳐다 보아야 한다. 또, 말의 속도와 목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도 환자를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너무 빨리 말하거나 너무 느리게 말하면 이해가 떨어질 수 있다. 또 중요한 부분에서는 속도를 좀 늦춰서 설명하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환자와 대화 (conversation)한다고 생각해 보면 될 것 같다. 서로 대화가 되려면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야 한다. 대신, 질문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 눈도 마주치고 말의 속도와 억양을 상황에 따라 조절하며 적절한 제스쳐를 써 가면서 이야기해야 대화가 제대로 진행된다. 또, 상대방이 잘 모르는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는 되도록 쉬운 말로 풀어 쓰게 되며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면서 대화를 하는 게 보통이다. 복약지도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대화하듯이 진행해야 약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돕기 위해 가르친다는 복약지도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복약지도료를 건강보험에서 따로 지불해 주고 있다. 이는 약사 직역의 일부로 복약지도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러한 인정에 걸맞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서, 약사들이 좀 더 복약지도에 대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8-07-17 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