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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76> 치매 위험을 낮추는 백신
정재훈 약사.치매는 자신과 가족의 삶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이다. 전 세계적으로 5,500만 명 이상이 치매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매년 약 1,000만 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한다. 불행히도 치매의 발병을 늦추는 예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지난 4월 2일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새로운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대상포진 백신 접종이 치매 발병 위험을 무려 20%나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도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와 흡사한 자연 실험을 이용한 것이어서 눈여겨볼 만하다.과학자들이 왜 대상포진 백신과 치매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대상포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대상포진은 어린이에게 수두를 일으키는 것과 동일한 바이러스인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에 의해 발생한다. 대개 어린 시절 수두에 걸린 후, 이 바이러스는 수십 년 동안 신경 세포에서 무증상 휴면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면역 체계가 약해지면, 휴면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어 대상포진을 일으킬 수 있다.화끈거리거나 따끔거린 느낌의 통증, 고통스러운 물집, 무감각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포진 후 신경통이 만성화되어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추는 이유에 대한 이론 하나는 백신이 대상포진으로 인한 신경 염증을 줄인다는 것이다.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사람과 안 맞은 사람을 단순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백신 접종 여부가 아닌 다른 생활상의 차이가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을 접종받는 사람이 건강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더 나은 식습관에 운동을 더 자주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상포진 백신이 정말 치매 위험을 낮추는지 인과성을 확인하려면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이 필요하다.마침 2013년 영국 웨일스에서 우연히 그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 백신 공급 부족으로 2013년 9월 1일 시점에 79세인 사람은 누구나 1년간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고 80세 이상인 사람은 무료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시행일 일주일 전에 태어난 사람과 일주일 후에 태어난 사람을 비교하면 두 그룹에는 그 짧은 시간차 외에는 차이점이 거의 없어서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시행하는 것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진이 교육 수준, 만성질환(당뇨병, 심장병, 암), 약물 등 치매 위험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을 비교한 결과 두 그룹은 모든 면에서 비슷했다. 연구진은 이후 7년 동안 이들 두 그룹을 추적했다. 2013년에 2주일 차이로 79세 또는 80세였던 사람은 2020년에 86세와 87세가 되었고 그 사이 일부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은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이 기간 동안 치매에 걸릴 확률이 20% 낮게 나타났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스탠포드 의학 조교수 파스칼 겔드세처 박사는 “이는 정말 놀라운 발견”이라며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으로 더 강력하게 인과성을 밝히는 후속 연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추는 이유에 대한 또 다른 이론은 백신이 면역 체계를 광범위하게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백신의 치매 보호 효과를 더 크게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여성의 면역체계가 남성보다 더 잘 반응하기 때문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자가면역 질환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서 백신의 치매 보호 효과가 더 컸다.2017년 미국에서 기존 대상포진 백신(Zostavax)보다 더 효과적이며 지속적인 새 백신(Shingrix)으로 전환된 후 자료를 분석한 2024년 영국 연구에서도 새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기존 백신을 맞은 사람보다 치매 진단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후속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대상포진 백신의 효과와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할 이유가 늘어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2025-04-10 1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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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75> 알아두면 쓸모있는 레티노이드 이야기
정재훈 약사.피부에 미치는 효과 면에서 레티놀과 같은 비타민 A 유도체(레티노이드)는 압도적이다. 레티노이드는 유전자 수준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레티놀은 피부세포 내에서 레티노산으로 전환되며 레티노산은 세포 핵으로 들어가 수용체와 결합하여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 그 결과 콜라겐 합성이 증가하여 주름이 감소하고 피부세포 턴오버가 증가하여 각질이 자연스럽게 제거된다. 이 과정에서 막힌 모공이 청소되며 피지선 활동이 조절되므로 여드름의 치료와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멜라닌 색소의 과잉 생성이 억제되므로 다크 스팟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레티놀, 레티닐 팔미테이트 성분의 제품은 처방 없이 구입이 가능하지만 레티노산(트레티노인) 성분 제품은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레티노이드는 올바른 정보와 상담을 필요로 한다. 피부 박리, 각질, 발적, 광민감성, 자극, 그리고 경우에 따라 역설적으로 색소 침착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안전하게 사용하려면 어떤 강도와 농도의 제품으로 시작해야 하는지, 얼마나 자주 발라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둬야 한다.약의 효과가 강력할수록 부작용도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 비타민 A 유도체도 비슷하다. 레티노산은 별도로 전환될 필요없이 그대로 피부에 효과를 내므로 가장 강력하다. 하지만 피부 자극을 일으킬 가능성도 가장 높다. 레티닐 팔미테이트와 같은 에스터는 전환 단계를 여러 번 거쳐야 하므로 효과가 제일 낮지만 부작용도 적게 나타나서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적다. 레티놀은 두 단계의 전환, 레티날은 레티노산으로 한 번의 전환을 거쳐야 효과를 낸다.레티노이드를 함유하는 화장품, 처방약을 사용할 때는 우선 강도가 낮은 제품으로 적은 양부터 천천히 사용하는 게 원칙이다. 완두콩만한 적은 양으로 얼굴 전체에 얇게 펴 발라야 한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2-3회 정도로 바르다가 여기에 어느 정도로 적응이 되고 나서 매일 사용하는 게 좋다.사용 시작 2-4주 동안에는 피부가 적응하는 과정에서 피부가 붉어지거나 건조감, 자극감, 따끔거림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보습제를 함께 사용하면 이런 증상을 줄일 수 있지만 초기 부작용이 심할 때는 잠시 사용을 중단하거나 사용 빈도를 낮춰야 한다. 처음부터 너무 강력한 제품을 사용하거나 많은 양을 바르면 마치 얼굴에서 피부가 떨어져 나가듯 박리가 일어날 수 있다.참고로 레티노이드의 최적 사용량에 대한 정보는 많은 사람의 고통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레티노산에 주름 개선, 여드름 치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1960년대 미국의 피부과 의사 앨버트 클리그만(Albert Kligman)이다. 당시 클리그만은 필라델피아 홈스버그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을 대상으로 끔찍한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재소자들이 자극을 견딜 수 있는 용량을 찾을 때까지 레티노산을 바르는 식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비윤리적 실험이었고 이는 연구 동의 절차와 관련한 체계를 마련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레티노이드는 본래 색소 침착을 막고 다크 스팟을 개선할 수 있지만 과하게 사용하면 역설적으로 더 많은 색소 침착과 다크 스팟을 유발할 수도 있다. 피부세포 턴오버가 증가하기도 하고 레티노이드로 인해 피부의 자외선 차단 기능이 약화될 수 있어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다. 이를 막으려면 보통 밤에 레티노이드 제품을 바르고 낮 동안 자외선 차단제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밤에 바르는 이유 또 하나는 레티놀과 같은 성분 자체가 빛, 공기 중 산소에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성분의 안정성을 높이고 피부 자극을 줄여서 사용이 용이하도록 하는 리포좀, 나노입자와 같은 다양한 방법, 낮에도 바를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레티노이드가 세포 핵 유전자 수준에서 작용한다는 사실로 돌아가보자. 이 이야기는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2-3개월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온전히 효과를 보려면 6개월~1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사용하면 비용 대비 가장 만족스러운 효과를 볼 수 있는 성분이기도 하다.
2025-04-04 0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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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74> 월경 전 증후군 약 이야기
정재훈 약사.피로감이 심해진다. 기분이 요동치고 짜증이나 분노가 밀려오기도 한다. 우울감, 불안, 긴장감이 증가하고 집중력, 기억력이 저하된다. 수면 장애나 수면 패턴 변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여드름, 복부 팽만감, 유방 통증, 두통, 근육통, 식욕 변화, 특정 음식에 대한 갈망이 생길 수도 있다.많은 여성이 월경 시작 1-2주 전에 경험하는 월경 전 증후군(Premenstrual Syndrome, PMS)의 신체적, 정서적 증상이다. 가임기 여성의 40~90%가 월경 전 증후군을 경험하며, 3-8%는 더 심각한 형태인 월경전 불쾌장애(PMDD)로 고통받는다.생리통은 월경 기간 동안 발생하는 통증과 경련으로 월경 시작 시점부터 처음 1-2일 동안 가장 심하게 나타나지만 월경 전 증후군은 월경이 시작되기 1-2주 전에 증상이 나타나서 월경이 시작되면 대부분 증상이 사라진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생리통과 달리 월경 전 증후군의 경우 정서적, 행동적 변화가 두드러진다는 점에서도 다르다.월경 전 증후군의 정확한 원인이 모두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여성 호르몬 수치의 변화, 뇌 세로토닌 수치의 변화, 유전적 요인 등이 관련 요인으로 생각된다. 증상이 가벼울 경우 소염진통제(NSAID) 복용이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준다. 월경 시작 며칠 전부터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두통, 근육통, 유방 통증이 줄어든다. 소염진통제는 생리통과 월경 전 증후군에 모두 효과가 있다는 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생리통의 원인이 되는 프로스타글란딘이 더 적게 만들어지도록 하기 때문이다.아세트아미노펜 같은 해열진통제는 생리통과 월경 전 증후군에는 효과가 부족하여 추천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생리통이나 월경 전 증후군에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알러지나 부작용 등으로 소염진통제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월경 전 증후군이나 생리통에는 해열진통제(아세트아미노펜)이 아니라 소염진통제(이부프로펜, 나프록센)를 복용하는 게 낫다. 월경 전 증후군이나 생리통일 때 이뇨제가 들어있는 복합제를 찾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때 몸이 붓는 느낌이 드는 것은 실제로 나트륨이나 수분이 실제로 체내에 정체되거나 체중이 정말로 늘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월경 전 증후군에서 복부가 붓는 느낌이 드는 건 주로 체액이 해당 부위로 몰리기 때문이다. 이뇨제는 월경 전 증후군 증상 완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전문가가 다수인 이유다. 굳이 이뇨제가 들어있는 복합제를 찾을 필요가 없다.비타민 B6(피리독신)은 도파민 합성과 세로토닌 대사에서 보조인자로서 기능하므로 월경 전 증후군의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하루 200mg 이상으로 피리독신을 과하게 복용하면 말초신경병증의 발병 위험이 높아지므로 위험하다. 월경 전 증후군 증상 완화를 위해 비타민 B6를 시도해보고 싶다면 하루 50-100mg 정도를 복용하는 게 안전하다.마그네슘이나 칼슘 같은 미네랄이 부족하거나 결핍한 것도 월경 전 증후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하루 400-500mg 정도 저용량으로 칼슘보충제를 복용하면 가벼운 월경 전 증후군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하루 1200mg 이상의 고용량으로 칼슘보충제를 복용하면 감정 기복, 수분 저류, 특정 음식에 대한 갈망, 통증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마그네슘 수치가 낮은 여성은 월경 전 증후군 증상으로 신경과민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보충제로 하루 200-400mg의 마그네슘을 섭취하면 월경 전 증후군으로 인한 정서적 증상이나 체액 저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고용량으로 마그네슘 보충제를 복용할 경우 부작용으로 설사를 경험할 수도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가벼운 증상일 때는 앞서 설명한 소염진통제나 보충제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월경 전 증후군 증상이 심하거나 월경전 불쾌장애로 고통받을 때는 병의원에 방문하여 정확한 진단과 상담을 받는 게 좋다. 피임약이나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를 처방받아 복용하면 증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월경 전 증후군은 매우 성가신 질환이지만 약을 적절히 사용하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2025-03-24 0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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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73> 독감에 제대로 대처하는 방법
정재훈 약사.올겨울 독감(인플루엔자) 유행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독감 환자는 ‘역대급 유행'이었다는 2016년(86.2명) 이후 최고치에 달했다. 2025년 1주차(2024년 12월29일∼2025년 1월4일) 38도 이상 갑작스러운 발열, 기침 또는 인후통 증세를 보이는 독감 의사환자는 1000명 중 99.8명이었다. 이제는 정점을 지나 유행이 지나가는 듯하다. 하지만 개학을 전후로 다시 유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독감은 입원,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질병이다. 독감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다. 며칠 동안 아프고 직장, 학교, 또는 가족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정도에 그칠 수도 있지만 더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합병증으로 세균성 폐렴, 중이염, 부비동염이 있을 수 있으며, 울혈성 심부전, 천식, 또는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 독감의 심각한 합병증을 줄이는 제일 좋은 방법은 백신 접종이다. 독감 백신을 맞은 뒤에도 일부 사람이 여전히 인플루엔자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서 예방접종이 질병의 중증도를 감소시키고 독감 관련 질환, 입원, 독감 관련 사망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2025년 1월 스페인에서 발표한 대규모 메타분석 연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38개국 650만 명이 넘는 환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독감 예방접종이 전 연령대에서 독감 관련 이환율과 사망률을 크게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연구진의 분석 결과, 인플루엔자 A(H1N1) 바이러스와 인플루엔자 B 바이러스(IBV)에 대한 예방접종이 5세 미만 아동, 5-65세 연령대, 65세 이상 고령자에서 감염률과 독감 관련 합병증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인플루엔자 A(H3N2) 바이러스에 대한 보호 효과는 어린 아동에게는 효과적이지만 고령자에게는 다소 낮은 편이었다.연구진에 따르면 이러한 효과 차이는 H3N2가 다른 두 바이러스보다 변이율이 약간 높은 편이기 때문일 수 있다. 본래 독감 백신은 접종 후 약 2주 후에 체내에서 항체가 생성되도록 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항체들이 독감 바이러스를 중화시켜 우리를 보호해준다. H3N2는 당화율이 더 높아서 항체가 바이러스를 중화하는 능력도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H3N2의 경우 감염률이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3N2에 대한 예방접종은 모든 연령대에서 독감 관련 이환율과 사망률을 감소시키는 데 H1N1과 IBV에 대한 예방접종만큼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독감 백신 효과의 척도는 감염 여부가 아닌 중증 독감 발병, 중환자실 입원, 또는 사망 가능성으로 측정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면에서 백신이 효과적이며 H1N1, H3N2, IBV 모두에 대해 효과가 있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독감 백신을 맞고 나서도 독감에 걸렸다며 푸념하기 전에 백신 덕분에 입원과 사망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았을 거란 사실을 기억하는 게 좋단 얘기다.이번 연구는 2003년부터 2023년까지의 환자 데이터를 다룬 논문들의 독감(인플루엔자) 발생률과 중증도 데이터를 종합 분석했다. 연구진은 독감 예방접종이 감염 예방보다는 중증 질환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CEU 산 파블로 대학교 미생물학 교수 니스탈 비얀은 "예방접종이 다양한 연령대와 위험군에서 이환율, 병원 입원, 중환자실 입원, 그리고 무엇보다 사망률을 감소시킨다"고 말했다. 비얀 교수는 독감이 심혈관 질환이나 신경퇴행성 질환이 있는 사람들과 같은 고위험군에서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예방접종은 중증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 위험을 3-4배 감소시킨다"는 게 비얀 교수의 결론이다.매번 독감 유행 시즌이 되면 어떤 약이 효과적인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진다. 올해는 독감에 5일 동안 먹는 약이 나은가 한 번 맞으면 되는 주사가 나은가, 10만원대에 달하는 주사 비용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걸리고 나서 이런 고민을 하기보다는 미리 독감 예방접종을 받는 게 낫다. 스페인에서 발표한 최신 연구 결과를 기억하자.
2025-03-21 1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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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72> 술 마신 다음 날 불안한 이유
정재훈 약사안전한 음주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주량이 많을수록 암 위험도 계단을 오르듯 비례하여 늘어난다. 중년 성인이 평소보다 음주량을 늘리면 암 위험이 증가한다.2022년 해외학술지 JAMA Network 발표된 국내 연구에서 2009년과 2011년 국가건강검진에 참여한 40세 이상 성인 남녀 451만 3746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이다. 음주는 7가지 유형(구강암, 인두암, 식도암, 대장암, 간암, 후두암, 여성 유방암)의 암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연구진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09년에서 2011년 사이에 음주량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한 참가자들은 이전의 음주 습관을 유지한 참가자들에 비해 알코올 관련 암의 발병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검진에서 비음주자였던 사람이 2011년 검진에서 저위험 음주자가 되면 암 발병 위험이 3%, 중위험 음주자가 되면 10%, 고위험 음주자가 되면 34%까지 높아졌다. 치매 위험, 사망률도 음주로 인해 높아진다. 음주의 위험을 알면서도 술을 계속 마시게 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술 한 잔이 스트레스,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코올이 체내로 들어오면 우리 뇌는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이라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증가시키고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의 분비를 억제한다. 술을 마시면 긴장, 불안감,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평온한 느낌이 들게 되는 원리이다.하지만 알코올과 불안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약간의 음주가 주는 유익은 연이어 술을 마시면 반대쪽으로 뒤집혀 불안을 자극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 과다 음주로 인해 알코올이 GABA의 작용을 계속하여 강화하면 뇌는 이러한 알코올의 억제 효과에 대응하기 위해 GABA를 더 적게 만들고 글루타메이트의 활성을 증가시킨다.이렇게 뇌가 적응한 상태에서 갑자기 술을 안 마시게 되면 균형이 깨지면서 글루타메이트 활성이 우세해져서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또한 뇌가 과도하게 흥분되어 공황발작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매일 같이 과음하는 사람이 간혹 술 마신 다음 날 매우 불안해지는 이유다.원래 불안 장애나 공황 장애가 있는 사람일 경우에는 이런 위험이 더 크다. 불안 장애가 있는 사람은 과음을 반복하기 쉽고 과음은 불안 장애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진다.아캄프로세이트(acamprosate)와 같은 약물은 이럴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캄프로세이트는 과도한 글루타메이트 활성을 감소시키고 GABA의 작용을 강화하여 뇌의 흥분성/억제성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의 균형을 회복시킨다.아캄프로세이트는 뇌의 글루타메이트 수용체인 NMDA 수용체를 억제하여 글루타메이트가 과도하게 작용하는 것을 막아준다. 아캄프로세이트를 꾸준히 복용 중일 때는 뇌의 GABA 시스템이 안정화되어서 술을 마셔도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덜하게 느껴질 수 있다. 술을 마셔도 예전처럼 즐겁지 않으니 술을 덜 마시거나 금주를 지속하기 쉬워진다.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약으로 날트렉손도 자주 사용된다. 평소 술에 대한 갈망이 큰 사람이 특히 날트렉손에 더 잘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술을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 약간의 유익을 준다고 생각했다. 가벼운 음주를 즐기는 사람이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이나 과음하는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낫다는 식으로 음주와 위험에 J자 형태의 상관성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하지만 멘델리안 무작위 분석을 이용한 2024년 중국 연구에서는 가벼운 음주를 포함하여 모든 수준의 음주가 치매 위험 증가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량이 많을수록 치매 위험이 비례하여 증가했다. 가벼운 음주도 가볍지만 여러 방면에서 건강상 위험을 높인다는 게 최근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알코올 문제를 겪는 한국인은 무려 134만 명에 이른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국민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알코올 남용과 의존증을 포함한 국내 알코올 사용장애 1년 유병률 2.6%에 근거한 추산이다. 하지만 실제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이들 중 10%도 되지 않는다. 금주나 절주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할 때는 전문가의 상담과 약물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2025-02-19 0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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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71> 유당불내증 있을 때 식사와 약 복용
정재훈 약사.전 세계 인구의 약 75%가 유당불내증으로 추산된다. 한국 성인의 경우 84.7%가 유당불내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경우 우유에 있는 당인 유당을 장에서 적절히 분해, 흡수하지 못하므로 섭취시 불편을 겪게 된다. 가스, 복부 팽만, 구역질, 설사, 복통 등이 발생할 수 있다.증상이 언제 나타나느냐는 섭취 시점에 따라 다르다. 아침 빈속에 유당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약 30-60분 내에 배가 아플 수 있지만 다양한 음식과 함께 먹거나 또는 식후에 먹을 경우는 여러 시간이 지나서 신호가 올 수도 있다. 이렇게 시차가 존재하는 것은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이라고 반드시 유제품을 피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준다.특정 음식을 먹고 탈이 나면 그 음식을 기피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는데 위에서 발생하는 구역질, 구토 등의 증상은 더 즉각적이고 불쾌한 경험으로 이어져서 더 강한 기피 반응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생존을 위한 자연스런 현상이다. 반면에 장에서 발생하는 복통, 설사 등의 증상은 먹고 나서 시간이 좀 더 지난 뒤에 나타나므로, 특정 음식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인지하기가 더 어렵다.음식이 장까지 내려가서 탈이 나면 위에서 구역, 구토를 일으킬 때보다는 기피 반응을 강하게 형성하지 않을 수 있다. 영화 ‘프렌치 키스’에서 멕 라이언이 연기한 캐릭터인 케이트가 유당불내증인 걸 알면서도 치즈를 먹고 탈이 나는 장면은 과학적으로 이해 가능하다.만약 케이트가 유당불내증이 아니라 우유 알레르기 증상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치즈를 입에 대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이다. 우유 단백질에 대한 알레르기는 유당불내증과 달리 즉각적인 구토나 구역질을 일으킬 수 있어 강한 기피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유당불내증인지 우유 알레르기인지 또는 염증성 장질환과 같은 다른 질환인지 정확히 알려면 병의원에 방문하여 의사와 상담하는 게 좋다. 나이들면서 유당분해효소인 락타아제가 적게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증상 정도에는 개인별 차이가 있다. 우유 200 mL까지는 별 문제 없이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드물지만 유당 함유 음식 섭취 뒤에 구역, 구토까지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이런 경우에는 약 복용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유당이 들어있는 약 때문에 증상을 겪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일반적인 의약품에서 유당은 부형제(첨가물)로 사용되며, 2017년 가톨릭대 약학대학 연구에 따르면 알약 한 정당 평균 93.4 mg, 캡슐 1개당 91.8 mg, 과립제에는 평균 344.9 mg이 함유되어 있다. 유당 400 mg과 위약을 주고 비교한 연구 결과에서 두 집단 간에 유의할 만한 차이가 없었다. 유당불내증이 있다며 걱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 의약품에 포함된 소량의 유당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한번에 여러 개의 알약을 복용해야 하거나 심각한 유당불내증이 있다면, 의사 또는 약사와 상담하여 동일 성분에 유당이 없는 제형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처방전 없이 구입가능한 일반의약품의 경우 제품 설명서나 포장면에서 유당 함유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도 있다.유당으로 인한 증상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고 싶다면 식후 복용이 가능한 약일 때는 식후에 바로 복용하는 게 좋다. 음식 성분에 유당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유, 유제품과 약을 함께 먹으면 전체 유당 섭취량이 많아지면서 유당불내증 증상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유당불내증이 있다고 모든 유제품을 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 치즈처럼 숙성한 치즈에는 유당 함량이 낮다. 박테리아가 숙성 중에 유당을 분해하여 젖산으로 변환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모짜렐라, 코티지 치즈처럼 숙성하지 않은 신선한 치즈에는 유당이 상당량 들어있다. 요거트는 발효 과정에서 유당이 분해되므로 우유보다 낫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플 수 있다. 유청을 빼낸 그릭요거트는 일반 요거트보다 유당이 적게 들어있어서 덜 부담스럽다. 락타아제로 처리하여 유당을 분해하거나 필터로 여과하여 유당을 줄인 우유를 마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조금만 주의하면 유당불내증으로 인한 불편감 없이 식사와 약 복용이 가능하다.
2025-02-03 1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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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70> 국민건강영양조사 들여다보기
정재훈 약사.질병관리청은 매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가장 최근 조사 결과는 2023년 12월 3일에 발표됐다. 살펴볼만한 중요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만성질환과 운동, 식습관 등 전반적인 건강 행태에서 더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소득이 높으면 운동과 식단에 좀더 주의를 기울일 여유가 있으니 적정 체중을 유지할 가능성도 높다고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소득수준별 만성질환 및 건강행태에서 2023년 남성 기준 소득 수준이 '상'인 남성의 비만율은 42.7%로, '하'인 남성 45.2%보다 2.5%포인트(p) 낮게 나타났다. 반대로 소득 수준이 ‘하’인 남성이 ‘상’인 남성보다 유산소 신체활동 비실천율은 13.3%p, 현재 흡연율은 13%p 높았다. 소득이 낮을수록 담배를 피우고 운동은 적게 한다는 이야기다.여성의 경우도 결과는 비슷했다. 비만 유병률에 있어서 소득 수준이 '상'인 여성과 '하'인 여성의 격차는 14.6%p였고 현재 흡연율은 7.8%p, 유산소 신체활동 비실천율은 4.2%p였다. 비만의 경우는 남성보다 소득층간 격차가 컸고 흡연율과 유산소 신체활동 비실천율 격차는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그렇다면 이런 습관 차이는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고혈압 유병률, 당뇨병 유병률의 경우 소득수준이 높은 계층이 낮은 계층보다 소폭이지만 수치가 좋게 나타났다. 혈압과 당뇨는 식단, 운동과 같은 생활습관으로 일정 부분 조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국민건강영양조사에도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고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은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이 오히려 수치가 약간 더 좋았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고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이 높아지는 현상은 인도, 중국에서도 나타난다.하지만 고소득 국가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이런 연관성을 입증할 수 없었다. 혈중 콜레스테롤에 음식보다 유전적 영향이 더 크긴 하다. 그래서 스타틴과 같은 약을 복용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인의 경우 소득이 높을수록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음식을 더 많이 먹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건강영양조사는 설문조사 방식으로 식생활을 살펴보는 것이라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식품섭취빈도조사법이든 24시간 회상법이든 설문조사 방식으로는 정확한 식품섭취량을 알 수 없다. 나 자신이 무엇을 얼마큼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데 답이 정확할 리 없다. 그러니 현실과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한국인의 하루 에너지 섭취량은 남성이 2014년 2369kcal에서 2023년 2115kcal로, 여성이 1757kcal에서 1597kcal로 감소했다. 이 결과만 놓고보면 우리는 더 날씬해졌어야 맞다.하지만 그렇지 않다. 남성의 경우 비만율은 2014년 37.8%에서 7.8%p 높아져 2023년 45.6%, 여성은 23.3%에서 4.5%p 높아져 27.8%가 되었다. 응답자 대부분은 자신이 실제로 먹고 있는 식품 섭취량이 아니라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식품 섭취량을 답했을 가능성이 있다.2001년 기준 국민 1인당 에너지 섭취량은 평균 1976kcal이었지만 하루 에너지 공급량은 2994kcal이었다. 실제 섭취량은 두 수치 사이 어디엔가 있을 거란 이야기다. 많이 안 먹는 거 같은데 살이 찌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억 속 음식 섭취량은 실제 음식 섭취량보다 적어 보인다. 물론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미국에서 한 사람당 매일 실제 공급되는 식품의 양은 3800kcal인데 미국인의 기억에 따라 추정된 섭취 칼로리는 우리와 비슷한 2000kcal에 불과하다. 적게 먹고 싶다면 우선 음식 일기를 써봐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다행히 소득격차로 인한 만성질환 유병률 차이가 지난 10년 동안 크게 변화한 것 같지는 않다. 고혈압의 경우 남성은 큰 차이가 없었고 여성은 차이가 조금 줄었다. 당뇨병은 남성, 여성 모두 소득격차로 인한 유병률 차이가 소폭 줄어들었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이번 국민건강영양조사에도 명확히 나타났다. 건강 불평등은 다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다함께 고민해봐야 한다.
2025-01-08 1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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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69> 자려고 애쓰면 안 되는 이유
정재훈 약사.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불안하다. 만성 불면증이 해롭다는 기사를 읽다보면 더 그렇다. 만성 불면증은 고혈압, 제2형 당뇨병, 심장마비, 우울증, 불안, 조기 사망의 위험 증가와 관련된다.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치매의 위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잠이 줄어들면 수명도 줄어드는 게 아닌가 걱정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그러니 이런저런 방법으로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결국 수면제를 찾게 된다. 처방약을 찾아 의사와 상담하기도 하고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을 구입하여 잠을 청한다.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뜨는 최적의 수면법을 따라하기도 한다. 숙면에 도움을 준다는 각종 추출물을 먹고 비강을 넓히는 기구를 사용하고 밤에 스마트워치를 차고 잔 다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수면패턴을 확인한다.하지만 이렇게 노력을 기울인다고 잠을 더 잘 자게 되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수면을 추구하면 오히려 잠을 망칠 수 있다. 스마트워치나 웨어러블 수면추적기를 사용해보면 왜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잘 자고 일어났는데 깊은 수면이 10%가 되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러나 이들 기기가 보여주는 수치가 나의 수면 패턴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면 시간이나 패턴, 수면 단계가 정확한 분석인지도 알 수 없고 임상적 근거도 불충분하다. 매일같이 기기를 통해 숙면 여부를 확인하려고 하다보면 완벽한 수면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오르소솜니아(orthosomnia)와 같은 수면 강박의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일어나서 크게 피곤하지 않고 상쾌하다면 그걸로 충분한데 굳이 수치를 들여다보려고 애쓰는 것은 해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걱정과 불안은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든다. 잠 자체에 대한 걱정도 마찬가지이다.다른 건 몰라도 잠은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더 잘하게 되는 일이 아니다. 잠은 의식의 통제를 내려 놓는 일이다. 너무 일찍 자려고 하면 오히려 잠이 더 안 오기 마련이다. 의식적으로 자려고 애쓰기보다 자기 전 음악 감상, 가벼운 독서, 또는 잠시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에 집중하는 식으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자기 전 불안과 긴장을 완화하려고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경우도 흔하다.이때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음악이나 강연을 듣는 게 낫다. 지루한 강연 동영상은 밤에 잘 때만큼은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념에 빠져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는 노트에 걱정거리를 적어보는 것도 좋다. 글로 쓰고 나면 잊어도 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도움을 줄 수 있다.카페인, 담배를 비롯하여 각성 효과가 있는 물질을 사용할수록 정신을 내려놓기가 어려워진다. 가끔씩 조금 마실 경우 술은 잠이 오도록 도와줄 수 있지만 음주가 습관이 되거나 과음하게 되면 수면의 질과 지속에 방해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중간에 깨는 일이 잦아진다. 통증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전립선 비대증 때문에 소변을 봐야 해서 또는 다른 만성 질환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호르몬 변화도 불면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중간에 한두 번 잠을 깬다고 해서 반드시 비정상은 아니다.과거 생존 차원에서는 오히려 너무 깊이 자면 문제가 되는 일이 많았다. 자는 중에 맹수가 습격을 할 수도 있고 적이 공격해올 수도 있다. 집단 구성원 전체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자면 위험했던 것이다.중간에 깼더라도 낮에 특별히 피곤하지 않다면 숙면을 못 취했다며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필요로 하는 수면 시간의 양은 다를 수 있다. 반드시 8시간은 자야겠다며 수면제를 찾을 이유는 없는 셈이다. 하지만 반대로 섬유근육통, 암으로 인한 통증, 다발성 경화증처럼 심각한 동반질환이 있거나 비약물 요법이 통하지 않을 때는 수면제를 장기 복용해야 할 수도 있다.불면증이 우울증, 불안장애, 양극성 장애(조울증), 조현병과 같은 다른 정신질환의 초기 증상이나 경고 신호일 수도 있으므로 문제가 지속될 때는 병의원을 방문하여 상담받아야 한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우선 잠에 대한 지나친 걱정부터 내려놓는 게 좋다.
2025-01-03 1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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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68> 고혈압이 치매 위험을 높이는 이유
정재훈 약사.고혈압은 치매 위험을 높인다. 대개 고혈압하면 심혈관계를 떠올린다. 하지만 혈관의 건강은 모든 장기의 건강에 필수적이다.고혈압의 가장 심각한 영향은 심장이 아닌 눈, 신장, 그리고 특히 뇌에 미친다. 뇌는 무게로 치면 1.4kg으로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심장에서 공급하는 혈액의 15~20%를 요구한다. 나이 들어서 건강한 뇌를 유지하려면 혈압부터 정상을 유지해야 한다.높은 혈압이 뇌에 타격을 가하는 이유는 뭘까. 정원에 호스로 물을 뿌리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수도꼭지를 더 세게 틀어서 호스에 가해지는 압력을 높인다고 해서 식물에 물을 더 효율적으로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너무 높은 수압으로 물을 뿌리면 오히려 풀과 나무가 오히려 손상되기 쉽다.고혈압이 뇌에 해를 주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뇌혈관은 섬세하며 충격에 약한 호스와 같다. 과도한 압력이 가해지면 혈관은 손상되고 더 뻣뻣해진다. 고혈압이 아니더라도 혈관은 나이들면서 탄력을 잃는다. 고혈압은 이러한 혈관 노화를 가속화하여 악순환을 불러일으킨다.혈압이 높으면 뇌혈관이 손상되어 뇌 손상과 위축을 일으키고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뇌로 가는 혈액 흐름이 감소하고 산소와 영양분이 효율적으로 공급되기 어려워진다. 뇌의 대사 산물을 제거하기도 힘들어진다.고혈압을 방치하면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치매 위험이 높아진다. 고혈압이 있는 경우 정상 혈압인 사람보다 인지 장애와 치매 위험이 1.5배 이상 높아지는 이유다. 고혈압은 2024년 랜싯 치매 위원회 보고서에서 발표한 치매 발병의 45%를 차지하는 14가지 조절 가능한 위험 요인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혈압을 낮추는 방법은 뭘까. 약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가지 더 할 수 있다면 하루에 단 5분씩이라도 운동하는 것이다. 2024년 11월 6일 학술지 서큘레이션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렇게 짧은 시간이라도 운동하면 혈압이 조금씩 내려간다. 일상에서 하루 5분의 운동을 추가하면 수축기 혈압이 0.68 mmHg, 이완기 혈압이 0.54 mmHg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 연구는 네덜란드, 영국, 호주, 덴마크, 핀란드에서 수행되었으며 14,761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혈압과 활동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참가자의 활동을 더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설문조사 방식이 아니라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사용했다. 넓적다리에 가속도계를 착용하고 일상 생활을 하여 참가자의 활동이 자동적으로 측정되도록 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참가자들의 활동을 6가지로 나누어 수면 시간, 앉아있는 시간, 천천히 걷기, 빠르게 걷기, 서있는 시간, 운동 시간(달리기, 자전거 타기, 계단 오르기와 같은 활동 포함)이 각각 얼마나 되는지 살펴봤다.연구진은 하나의 활동을 다른 활동으로 대체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임상적으로 의미있는 정도로 낮추려면(수축기 혈압 2 mmHg, 이완기 혈압 1 mmHg) 하루 최소 20~26분의 운동이 필요했지만 하루에 5분만 운동 해도 혈압이 소폭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 위험을 낮추고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운동은 일주일에 150분이다. 하루30분은 운동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하루 30분 운동을 목표로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반면 하루 5분 운동시간을 내기는 쉽다.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이 정도로 운동이 될까 의심할 필요는 없다. 미국심장협회 학술지에 실린 2018년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 연구팀 연구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하루 운동의 총합이다. 짧게 여러 번 나눠서 걷든 한번에 오래 걷든 하루에 걷는 시간이 동일하면 사망률 감소효과가 비슷하게 나타났다.끝으로 하나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 연구 역시 참가자들이 웨어러블 가속도계를 착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운동을 조금씩 할 때 하루 활동의 총합이 얼마인지 알려면 매번 기록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스마트워치와 같은 현대적 도구가 도움이 될 수 있다.스마트워치를 착용하는 것만으로 하루 중 움직인 시간, 운동한 시간, 일어선 회수와 같은 정보가 확인 가능하다. 스마트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사용하면 실제로 하루 활동량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혈압을 조절하고 치매 위험을 낮추기 위해 대단한 계획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짧게라도 자주 몸을 움직이자.
2024-12-16 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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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67> 저혈압이 정말 위험해질 때
정재훈 약사.저혈압이 고혈압보다 위험하다는 속설이 있다. 이 말 자체는 사실이 아니다. 고혈압은 심혈관계에 부담을 주어 뇌졸중, 심장마비와 같은 심각한 질환 위험을 높이지만 저혈압은 그렇지 않다. 혈압이 다른 사람보다 낮더라도 일상생활에 별 불편함이 없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저혈압이 고혈압보다 더 위험해질 때가 있다. 기립성 저혈압 때문에 어지럽거나 현기증을 느낄 경우다.기립성 저혈압이란 일어설 때 혈압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체위성 저혈압이라고도 부른다. 사람이 누워있거나 앉아있을 때는 혈압이 낮아지기 마련이다. 앉거나 누운 자세에서는 다리의 정맥 혈액이 심장으로 쉽게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일어나려고 하면 중력으로 인해 혈액이 다리 쪽으로 몰린다. 상당한 혈액이 다리와 몸통의 정맥으로 쏠리면서 심장으로 돌아오는 혈액량이 줄어든다. 이로 인해 뇌에 공급되는 혈류량이 줄어들게 된다.하지만 원래는 일어선다고 해서 현기증이 생기지 않는다. 인체가 혈압 저하를 감지하고 교감신경 활성을 증가시켜서 혈관은 수축하고 심박수가 증가하며 심장이 더 강하게 수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상 기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혈압이 올라가고 뇌로 공급되는 혈류량도 유지되므로 어지럽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보상 기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이다.자세를 바꿔 일어난 뒤에도 혈압이 오르지 못하면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어지럽거나 현기증이 난다. 시야가 흐려지거나 어둡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집중하지 못하고 피로감이 몰려온다. 가장 위험한 것으로 실신 또는 기절할 수 있다. 기립성 저혈압 자체가 직접적 사망 원인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렇게 기절하면서 낙상이나 사고로 이어지면 치명적이다. 운전이나 작업 중에 기립성 저혈압으로 쓰러지면 커다란 사고가 날 수도 있다.기립성 저혈압은 대개 나이가 들면서 더 흔하게 나타난다. 연구별 차이가 있지만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 환자의 최대 24%에서 기립성 저혈압이 발견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인체의 압력수용체 감수성이 떨어져 일어날 때 저혈압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것도 원인의 하나다.하지만 젊은 성인, 중년에게도 기립성 저혈압이 나타날 수 있다. 출혈이나 구토로 체액이 다량 손실되어서 그럴 때도 있지만 약으로 인해 기립성 저혈압이 나타나기도 한다. 혈압약, 이뇨제, 항우울제, 조현병 치료약,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할 때 이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전립선 비대증 증상 완화를 위해 복용하는 알파차단제에도 기립성 저혈압 부작용이 흔하게 나타난다. 약국에서 약을 타올 때 기립성 저혈압으로 어지러울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설명을 들었다면 특별히 주의가 필요하다.기립성 저혈압으로 인한 증상이 언제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오랫동안 앉거나 누웠다가 일어날 때는 천천히 자세를 바꿔주도록 해야 한다. 갑자기 일어나다가 쓰러지면서 주변 가구 모서리나 날카로운 물체에 부딪히면 심각한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약으로 인해 기립성 저혈압 증상이 생기고 자주 어지럽다면 우선 의사, 약사에게 알려야 한다. 경우에 따라 부작용이 덜한 다른 약으로 바꿔주면 증상이 나아질 수 있다. 해당 약을 그대로 복용해야 하는 경우는 처음 1-2주 동안 조심하는 게 좋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적응하게 되면 부작용이 점차 줄어든다.하지만 이때도 주의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복용 중인 약 용량을 늘리거나 비슷한 부작용이 있는 다른 약이 추가될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다시 기립성 저혈압 부작용이 심해질 수 있으니 1-2주 동안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음주도 위험하다. 알코올은 그 자체로 기립성 저혈압을 유발할 수 있다. 전립선 비대증 치료약처럼 기립성 저혈압 부작용이 있는 약을 복용 중인 사람이 술을 마시게 되면 더욱 위험하다는 얘기다.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부득이하게 술자리에 참석해야 한다면 과음을 피해야 한다. 음주 뒤에는 더욱 조심해서 일어나야 한다. 이런 사실을 깜박 잊고 급하게 일어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무엇보다 내가 먹는 약 중에 기립성 저혈압을 일으키는 성분이 들어있는지 항상 확인해보는 게 좋다.
2024-12-16 1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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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66> 감기를 예방하려면
정재훈 약사.감기에 걸리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 콧물, 코막힘, 재채기, 인후통, 기침으로 고생한다. 두통, 발열과 함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괴롭다. 증상이 심하면 병원에 가야하고 직장이나 학교에 가기도 어려워진다. 하지만 감기를 효과적으로 예방하는 약은 아직 없다.비타민C는 어떤가? 감기를 예방해줄 거라는 생각에 고용량으로 비타민C를 복용 중인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한 연구는 20건 이상이 수행된 바 있다. 1954년 노벨 화학상, 1962년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탄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이 비타민C에 감기 예방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 이래 이 문제에 대한 학계와 대중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하지만 연구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2013년 총 11,306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관련 연구 29건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코크란 리뷰에 따르면 비타민C를 정기적으로 섭취해도 감기 발생률에는 별 영향이 없었다. (참고로 연구 대다수는 하루 1,000mg 이상의 고용량 비타민C를 복용하도록 한 것이었다.)다만 마라톤 선수, 스키선수, 추운 지역에서 복무 중인 캐나다 군인을 대상으로 한 5건의 연구에서는 감기에 걸릴 위험이 약 절반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들은 극도로 추운 날씨에 혹독한 신체 활동에 노출되기 2-3주 전부터 비타민C를 복용했다. 그러나 이런 결과를 일반 대중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이런 효과가 나타난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또한 더 큰 규모로 진행된 다른 연구를 종합한 결과 감기 예방 효과가 없으므로 감기 예방 용도로 비타민C 복용을 권할 수 없다는 게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동일 연구에서는 비타민C가 감기 증상의 완화에만 약간의 효과를 보이는 걸로 나타냈다. 감기 증상 지속 기간을 약 10% 단축시키는 효과도 나타났다. 2023년에 발표된 후속 연구에서 10건의 연구를 메타분석한 결과 비타민C가 감기 증상을 15%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기 증상이 가벼울 때는 효과가 거의 없었고 증상이 심할 때만 완화 효과가 나타났다. 증상이 감기 증상의 심한 정도에 따라 비타민C의 효과가 다른지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연구자들의 의견이다.요약하면 비타민C를 복용한다고 해서 감기에 덜 걸리지는 않으며 감기 증상이 조금 완화되거나 증상 지속 기간이 열흘이라면 9일로 하루 정도 줄어드는 정도의 효과가 있을 뿐이다.비타민C에 감기 예방 효과가 없다면 감기약으로는 어떨까? 감기약에는 감기 예방 효과가 없다. 증상을 줄여줄 수 있을 뿐이다. 해열진통제(아세트아미노펜), 또는 소염진통제(이부프로펜, 나프록센)를 복용하면 감기로 인한 두통, 근육통, 불편감이 완화될 수 있다.항히스타민제, 비충혈제거제를 사용하면 콧물, 코막힘 증상이 줄어든다. 대부분의 종합감기약에는 이들 성분이 들어있다. 하지만 감기 초기에 감기약을 먹는다고 해서 감기가 더 빨리 낫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감기약을 초기에 먹고 자면 빨리 낫는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오해하는 이유는 감기약의 부작용과 관련된다.감기약 속 항히스타민제 때문에 졸음, 진정과 같은 부작용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니 밤에 감기약을 먹고 자면 더 졸리고 자고 일어나면 감기가 더 빨리 나은 것 같다고 여기기 쉬운 것이다. 사실은 감기약을 먹지 않고서도 초기 감기 증상이 있을 때 자고 일어나면 전날보다 증상이 줄어들어 나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인체의 면역체계가 작동해서 그런 것일 뿐 감기약 때문에 초기 감기 진압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독감과 달리 감기는 예방 백신도 없다. 감기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가 200개 이상으로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방 수칙은 있다. 외출 후 귀가하면 손을 잘 씻고 외부 활동시 얼굴, 특히 눈, 코, 입을 손으로 만지지 않도록 유의하면 도움이 된다.마스크를 쓴다고 해서 감기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는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줄어든다. 무엇보다 감기 증상이 있는 사람이 마스크를 쓰면 다른 사람에게 감기 전파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감기 증상이 심할 때는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는 게 좋지만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한다면 그때는 마스크라도 착용하는 게 좋다.끝으로, 기침할 때는 티슈나 옷소매에 하는 게 손으로 다른 사람에게 감기 전파를 줄이기 위한 작은 배려라는 걸 기억하자.
2024-12-11 1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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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65>블루존 다이어트의 진실
정재훈 약사.블루존 다이어트가 흔들리고 있다. 관련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한 런던 대학교의 사울 뉴먼 박사는 2024년 9월 12일 이그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그 노벨상은 노벨상을 패러디한 것으로 웃기지만 사람들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과학적 성과를 기리기 위해 만든 상이다. 뉴먼은 2019년 내놓은 출판 전 논문에서 백세인과 슈퍼백세인(110세 이상인 사람들)이 많은 지역들이 부실한 기록 관리로 인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블루존(Blue Zone)이라는 용어는 2004년 학술지 실험 노인학(Experimental Gerontology)에 실린 논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 논문은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의 백세인들에 관한 것이었는데 연구자들은 특별히 장수하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해 섬 지도의 일부를 파란색으로 표시했다. 블루존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은 영양과 생활방식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추측이었다.이후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에 실린 장수 연구자 댄 뷰트너의 특집 기사에서 장수 인구가 많은 세 지역(일본 오키나와, 캘리포니아 로마 린다, 사르디니아)를 빗대어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블루존은 더 유명해졌다. 블루존에 사는 사람들은 과일과 채소가 풍부한 식단, 충분한 신체 활동,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경향과 같은 생활 습관 덕분에 90대와 100대까지도 활기차고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블루존은 단순하며 매력적이다. 하지만 듣기에 너무 좋은 이야기는 사실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뉴먼은 2016년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연구에서 장수 연구의 상당수가 기록상 오류에 의한 것이란 점을 지적한 바 있다. 2019년에 내놓은 출판 전 논문에서도 뉴먼은 같은 맥락의 주장을 이어갔다.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은 기록 관리가 부실한 지역일 뿐 실제로 장수 인구가 많은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뉴먼의 연구 결과, 빈곤한 지역에서 태어나 제때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노인이 실제로 자신의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든 친족이 사망했지만 연금을 타기 위해 아무도 사망신고를 하지 않아서 사망한 사람이 호적상으로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 경우도 흔했다. 블루존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뿐 빈곤과 사기로 인해 만들어진 허구라는 이야기다.아직 논란은 진행 중이다. 뉴먼의 연구가 이그 노벨상을 받기는 했지만 그의 논문은 아직 정식 출판되지 않았다. 장수 지역을 연구하는 다른 학자들은 최근 연구에서는 출생증명서와 사망증명서와 같은 서류 외에도 다른 여러 정보를 확인하므로 기록상의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반론한다. 블루존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균형잡힌 식단, 충분한 신체 활동, 튼튼한 공동체가 사회 구성원이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장수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는 실험이 아닌 관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과학적으로 검증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닌 인과관계를 밝혀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당뇨약 메트포르민이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기 위한 임상시험이 이미 9년 전에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까지도 진행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블루존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연구가 나온다고 해서 블루존의 인기가 쉬이 사그다들지는 않을 것 같다. 장수 마을의 허구성에 대한 논란은 오래 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 일본 교토대학 의료진이 히말라야의 훈자마을을 방문했다. 장수인구가 많다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훈자마을 사람들을 진료한 결과, 그들 중 90퍼센트가 기생충을 갖고 있고, 상당수가 갑상선종, 결막염, 류머티즘을 앓고 있었으며, 다양한 감염성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훈자 마을하면 장수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는 원하는 것에 쉽게 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어떤 섭식법을 따르더라도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난 완벽한 건강을 얻을 수는 없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건강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지만 삶의 목표는 아니다. 더 중요한 일은 진실을 탐구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2024-11-11 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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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64> 약에 대한 흔한 궁금증 7가지
정재훈 약사.많은 사람이 약사에게 궁금해하는 질문들 중 빈도가 높으며 답이 비교적 간단한 것들을 2회에 걸쳐 살펴 본다.1. 당뇨약이나 혈압약처럼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약들도 있는데 이런 약을 오래 먹으면 내성이 생길 수 있을까?그렇지 않다. 혈압약, 당뇨약과 같은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약의 사용량이나 가짓수가 늘어나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내성 때문이 아니라 질환 자체가 악화해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왕 약을 복용 중일 때 약만 믿고 생활습관 조정을 미루기보다 최대한 바꿔나가면 오랫동안 최소한의 약으로도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2. 어떤 약에 내성이 생기나? 약 성분 중에 중추신경계, 쉽게 말해 뇌에 작용하는 약의 경우에 내성이 생겨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편 계열 진통제를 처음에 복용하면 졸음이 유발되지만 계속해서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에는 졸음 부작용이 많이 줄어든다. 뇌가 약의 효과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비와 같은 부작용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위산 분비를 줄이는 약 중에 파모티틴과 같은 히스타민차단제의 경우에도 연속으로 사용하면 빠르게 내성이 생길 수 있다. 항생제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세균이 내성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내성이 생기는 약이 그리 많지는 않다. 3. 소화제를 많이 먹으면 위가 무기력해지나? 그렇지 않다. 소화제 중에 돔페리돈과 같이 위장 운동을 촉진시키는 약이 주성분인 제품(멕시롱, 그린큐, 크리맥)이 있긴 하지만 이런 약을 자주 먹는다고 해서 소화기관이 운동능력을 잃어버리거나 위무력증이 생기지는 않는다. 반대로 위장 경련을 완화하는 진경제, 위산을 중화하는 제산제도 위장배출을 지연시킬 수 있어서 위무력증을 일시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4. 식전 약과 식후 약의 차이는 무엇인가?식전 약은 쉽게 말해 성격이 매우 예민한 약이라고 볼 수 있다. 위산에 불안정하거나 다른 약, 음식과 함께 복용하면 흡수가 방해받는 경우가 많다. 식후 약은 음식과 함께 먹으면 흡수가 더 잘 되거나 또는 음식과 함께 먹어야 위장에 부담이 덜한 약이다. 대개는 식전, 식후에 관계없이 복용이 가능한 약이 많다. 하지만 빈속에 그냥 알약 자체만으로도 불편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런 약도 식후에 복용하는 게 낫다. 5. 약봉투에 표시된 식후30분 복용을 꼭 지켜야 할까?식후 30분을 반드시 기다렸다가 복용할 필요는 거의 없다. 식후30분을 기다리다가 약 복용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2017년부터 서울대 병원에서는 복용기준을 식후30분에서 식사직후로 바꿨다. 소염진통제처럼 빈속에 먹으면 위장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약일때는 식사 직후에 복용이 낫고, 바로 복용하지 못한 경우에는 식후 1시간 이내에 복용하는 게 안전하다. 식전 복용은 식후 복용보다 더 엄격하게 시간을 맞추어 최소한 식사 30분 전에 약을 복용해야 알약이 위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6. 아이에게 어른용 해열제를 반으로 쪼개먹여도 될까? 절대 안되는 건 아니지만 위험하다. 알약을 정확히 반으로 쪼개기 힘들어서 용량을 제대로 맞추기 어렵다. 약품에 표시된 체중과 연령 중 체중을 기준으로 복용량을 정하는 게 원칙이며 나이는 체중을 잘 모를 때만 사용한다. 7. 일반약과 전문약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가 여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병의원에 방문하지 않고 자신의 증상에 따라 판단하여 복용해도 대체로 안전한 약은 일반약, 의사와 상담하여 복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약은 전문약이다. 다만 일반약이라고 해서 부작용, 다른 약과의 상호작용, 함께 먹으면 안되는 병용 금기 약물이 없지 않다. 또한 증상에 따라 일반약 사용을 중지하고 병의원에 방문해야 할 경우도 있다. 안전한 사용을 위해서 일반약의 경우에도 주의사항을 충분히 읽어보고 사용하는 게 좋다. 잘 모르는 점이 있을 때는 가까운 약국에 방문하여 상담을 받아보시는 것을 습관으로 하자.
2024-10-02 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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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63> 혈압약 언제 먹는 게 좋은가?
정재훈 약사.고혈압 약물 복용 시간에 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유럽심장학회(ESC) 학회에서 발표된 두 개의 새로운 임상시험 결과이다. 결론은 고혈압 약물 복용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항고혈압약을 밤에 복용한 환자와 아침에 복용한 환자 사이에 사망률이나 심혈관 사건 발생률에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그동안 혈압약 저녁 복용이 좋다는 2019년 연구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었다. 특히 재현성 문제를 지적한 연구자가 많았다. 2010년에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었지만 동일 연구팀이 주도한 것이란 한계점이 있었다.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인가 확인이 필요했다. 실제로 확인에 나선 연구자들이 있었다. 우선 2022년 영국 연구자들이 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내놓은 TIME 임상시험에서는 아침과 밤 복용 사이에 결과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8월 31일 유럽심장학회에서 발표된 두 건의 캐나다 연구도 같은 결과를 보여줬다. 혈압약으로 얻는 유익이나 부작용 위험은 복용 시간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다.앨버타 대학 가정의학과 스콧 개리슨(Scott Garrison) 교수가 발표한 이번 임상시험(BedMed)에서는 캐나다의 3357명의 고혈압 환자들을 무작위로 취침 전 또는 아침 혈압약 복용 그룹으로 나눠 최대 6년 동안 추적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하루 한 번(54%) 또는 두 번(33%) 고혈압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함께 발표된 다른 임상시험(BedMed-Frail)은 유사한 설계로 진행되었지만 요양원에 거주 중인 77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최대 42개월 추적했다. 사망 또는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 뇌졸중,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이 약 복용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비교했다. 두 건의 임상시험에서 결과는 동일했다. 취침 전 혈압약 복용이 아침 복용에 비해 특별히 해롭지도 더 유익하지도 않았다. BedMed 임상시험에서는 취침 전 그룹에서 심혈관 사건 또는 사망이 9.7%, 아침 복용 그룹에서 10.3%, 장기요양시설 환자를 대상으로 한 BioMed-Frail 임상시험에서는 각각 40.6%, 41.9%였다. 기립성 저혈압, 낙상과 같은 부작용 위험 면에서도 두 그룹 간에 차이가 없었다.유럽심장학회에서 리키 터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임상약학 교수가 이어 발표한 체계적 리뷰와 메타분석 결과에서도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발표된 두 건의 임상시험(BioMed, BioMed-Frail)과 이전의 스페인 연구 2건(Hygia, MAPEC), 영국 연구 1건(TIME)을 포함시켜 분석한 결과, 아침 복용과 저녁 복용 사이에는 심혈관 사건이나 사망 위험 면에서 차이가 없었다. 유의할만한 점으로 이번 캐나다 연구는 편향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스페인 연구 2건에는 일부 편향 우려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그렇다면 언제 혈압약을 먹어야 할까? 아침이든 저녁이든 혈압약 복용으로 인한 유익과 부작용 위험에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복용하는 사람의 선호도와 일정이 중요하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잊지 않고 복용하는 게 핵심이다.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 가장 잘 맞는 편리한 시간에 복용하면 된다. 보통 아침에 약을 복용할 때 기억하기 쉽고 복약 이행률이 높다.이뇨제처럼 아침에 복용해야 화장실에 가기 수월해서 더 나은 약도 있다. 아침 복용은 약 복용을 깜박 잊을 경우 낮 동안에 생각해내서 복용할 여지가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단, 기억난 시간이 이전 복용시간보다 다음 복용 시간에 더 가까울 경우에는 복용을 건너뛰는 게 낫다.) 하지만 저녁에 혈압약을 복용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칼슘채널차단제처럼 저녁에 복용하면 발목이 붓는 부작용이 덜한 약도 있다. 야간 고혈압 관리 때문에 저녁에 약을 복용하도록 의사의 특별한 지시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이번 연구를 발표한 개리슨 교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말 한 마디만 기억하면 된다. “특정 시간에 약을 복용하고자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환자들의 경우, 본인이 복용 시간을 판단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입니다.”
2024-09-19 0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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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62> 사람은 어떻게 늙는가?
정재훈 약사.서서히 나이드는 게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늙는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지난 8월 14일 학술지 <네이처 에이징>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그런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108명의 성인에게서 채취한 135,000여 종의 분자와 미생물이 참가자들이 나이들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했다. 이들 분자와 미생물의 수는 연령에 따라 증가할 수도 있고 반대로 감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의 전환점을 보였다. 평균적으로 44세와 60세에 극적 변화를 보인다는 것이다.연구진은 3~6개월마다 참가자들의 구강, 피부, 비강 면봉 검사와 혈액 및 대변 샘플을 통해 다양한 분자와 미생물을 채취했다. 참가자의 연령은 25세에서 75세 사이였고 건강하고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샘플에서 RNA, 단백질, 대사물질을 포함한 약 135,239개의 서로 다른 분자와 미생물을 분석했다.그 결과, 추적 대상으로 한 분자의 대다수인 81%가 연속적으로 변동하지 않고 40대 중반과 60대 초반을 중심으로 크게 변화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두 연령대에 나타난 변화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모두 존재했다. 우선 심혈관 질환, 카페인 대사, 피부 및 근육과 관련된 분자의 변화는 40대 중반, 60대 초반에 공통적으로 두드러졌다.하지만 알코올과 지질 대사와 관련된 분자들의 변화는 40대 중반에 주로 나타났다. 면역 조절, 신장 기능, 탄수화물 대사와 관련된 분자들의 변화는 60대 초반에 큰 걸로 나타났다. 나이든다고 에너지 대사가 저하되지 않는다는 2021년 허먼 폰처의 연구를 이번 연구가 반박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이들면서 음식이 분해되는 방식에는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운동을 즐기는 사람도 40대 중반부터는 대개 체력이 달리는 느낌이 든다. 술을 웬만큼 마셔도 끄덕도 안하던 애주가도 중년에 접어들면서 주량이 줄어들곤 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러한 현상이 어쩌면 인체 내 분자 수의 변화 때문일지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심혈관 질환, 암이 60대부터 증가하고 신장기능, 면역기능이 저하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하지만 이번 연구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 우선 연구자들이 발견한 분자의 변화가 40대 중반과 60대에 집중되는 이유를 모른다. 인과관계도 불분명하다. 쉽게 말해 40대 중반과 60대 초반에 알코올 대사 능력이 떨어져서 관련 분자 수에 변화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 즈음 주량이 늘어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참가자 수도 1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적은 편이었고 연구 기간도 비교적 짧은 편이었다. 추적 관찰 기간은 1~7년으로 중앙값은 2년에 불과했다.과거 다른 연구에서는 78세가 되면 급속한 노화가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번 연구는 75세까지만 대상으로 해서 이에 대해서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요약하면 이번 연구에서 나타난 분자 변화가 노화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단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이번 연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나이들면서 생기는 변화가 실제 분자 수준에서 변화와 관련될 수 있단 걸 인정하고 생활방식을 바꾸는 데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알코올과 커피에 대한 대사 능력이 44세와 60세 즈음에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생각해보자. 만약 40대 중반에 갑자기 커피에 전보다 민감해지는 게 느껴진다면 하루 커피 마시는 양을 3-4잔에서 1-2잔으로 줄이는 게 변화를 무시하고 전처럼 커피를 들이키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다.주량, 식사량도 같은 맥락에서 40대 중반부터는 조절이 필요하다. 그때부터 지질 대사, 탄수화물 대사와 관련한 변화가 두드러진다니 이삼십대처럼 먹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번만 과식해도 체감하는 여파가 전과 다른 데 분자 수준의 이유가 존재한다는 걸 기억하고 그저 적게 먹는 게 낫다. 끝으로 이번 연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사실을 하나만 더 추가한다면 40대 중반부터는 정기적 건강 검진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겠다.
2024-08-30 10:33 |